|
내가 알고 있는 한 친구의 신랑은 직장도 다니면서 퇴근후엔 목장일도 한다.농촌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일을 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나는 한 편으론 퍽 낭만적으로 보인다고도 생각했었다. 겁.도.없.이. 그리고 종종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을 하면 생활과 여행은 다른 것이라고 막상 터전으로 생각하고 농촌으로 들어온다면 답답 할 것이라고 말을 한다. 맞는 말이다. 이제 농촌은 더이상 푸근하고 넉넉하고,언젠가 내가 다시 돌아가면 반갑게 맞아 줄 그런 곳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소설 읽는 내내 하고 말았다. 저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 소설 속의 이야기들은 모두 지금 농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 들 이라고...
마침 얼마전 본 영화 <워낭소리>를 보면서도 든 생각은 우직하게 소를 일꾼삼아 땅을 터전삼아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존경스러워 보이면서도,왜 저렇게 힘들게 사시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언젠가는 나도 돌아가고 싶은 그 '농촌'을 힘들게 붙어있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모순에 부닥치고 말았다. 아..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어두운 이야로 시작을 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농촌을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 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어쩔 수 없이 드는 바람에... 여기 실린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해설에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였다. 얼마나 오래만에 들어 본 구수한 사투리이던가? 마치 시골마을회관에 들러 노인들의 이야기들 듣는 것 같았고,시골 작은아버지 혹은 이모,고모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사투리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도 한 탓도 있지만, 그래도 정말 너무도 구수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사투리는 요즘 다시 뜨고 있는 개그맨의 말투가 생각나서 비실비실 웃음이 나온다. 질펀한 사투리로 한 번, 그들이 풀어내는 농담같은 진담이 담겨 있는 말투에 또 한 번 나는 웃고 만다.
소설은 농촌이 직면한 문제들, FTA문제,과다한 팬션들의 난립,농사를 짓는 것 보다 땅을 팔아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는 젊은 이들,국제결혼의 문제 등등 거대자본으로 인해 발생하고 그로 망가져 가는 농촌의 자화상을 담담히도 그려내고 있었다. 그들의 질펀한 사투리가 너무도 구수하여 웃고,농담에 맞장구도 치어 가며 읽었지만 언젠가 돌아 가고 싶은 곳이 농촌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면,더이상 농촌을 힘들게 하면 안되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
|
[구수한 사투리 속에 담긴 농촌의 현실]
누가 말을 죽였을까?라는 제목도 흥미롭게 다가왔지만 낯선 이야기꾼인 이시백이라는 작가가 농총소설을 썼다는데 더 흥미로움이 느껴졌다. 농촌소설..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 속에서 농촌계몽소설로 대부분 대했을 것이고 우리가 읽는 일반 소설 중에는 농촌을 그린 소설을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농촌소설이라면 시대를 타고 계몽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거나 혹은 어려운 농촌 생활, 지주와 소작인, 정부와 농민의 대립 같은 것이 생각난다. 솔직히 밝은 모습보다는 힘든 농촌생활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현실적인 상황 때문이겠다. 그러나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이런 생각은 싹 사라진다. 무척이나 밝은 노란빛의 표지를 보고 있으면 암담한 농촌의 현실보다는 다른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모두 11편의 농촌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연작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는 한 마을의 한집 한집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지만 개개인의 집이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듯 이 작품은 그런 느낌으로 읽게 되는 작품이다. 그렇게 다른 모습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은 모두 농촌마을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모습이 도시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고 삶의 터전이 농촌이기에 이들이 갖고 있는 문제나 상황은 모두 그곳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각 집안의 안방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살짝 들여다보는 느낌의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작가의 구수한 입담이 맛깔스러운 사투리와 함께 하기때문에 더 진한 맛이 베어나는 것 같다.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글이 익숙하지 않은 때문인지 처음에는 글을 읽는데 약간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사투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해대는 등장인물을 조금씩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왜 이시백이라는 작가를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설가'라고 말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농촌의 현실은 정말 넘쳐나는 화기애애하지만은 않다. 분명 도시보다는 훨씬 소박한 사람들이 정으로 뭉쳐있는 곳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이 살아가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런 어려움들이 이 소설에도 곳곳에 묻어나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어둡지는 않다. 홈쇼핑에 매달려 소소한 물건을 사들이는 아내의 모습이 못마땅해 택배를 다시 돌려보내는 남편, 외국인 아내의 요상한 행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묵묵히 바라보는 남편, 데모를 하다가 자신들에게 약간의 이익이 되는 길을 택해 살짝 배신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농촌에서 현재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이 보여진다.
구수한 입담과 사투리 때문에 책읽는 맛을 느끼지만 솔직히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만은 않다. 우리 농촌의 삶이 그리 밝지만은 않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외국농산물은 물밀듯이 들어오지만 농가나 축산업가가 살아남기 위한 대책 하나 변변하게 세우지 못하고 오로지 도시 계발과 부동산활성화만 부축이고 있는 정부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편지 않다. 도시에 살면서 마치 먼곳의 이야기를 대하듯 그렇게만 받아들이게 되는 농촌의 이야기, 실제로는 그리 먼 곳의 이야기도 아니고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도 아닌데...진짜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작품을 읽으면 뭐라고 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현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겠지..싶다. 그렇게 우리는 문학작품으로 뿐 아니라 현실로도 작품을 대할 줄 알아야겠다. 밝은 농촌의 이야기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안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라는 말에 동감한다. 또한 오랜만에 소설책을 집어들고 읽으며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을 느꼈다. 걸쭉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지는 않는것 같지만, 육지와는 조금 동떨어진 곳에서 태어나 생활한 나로서는 이 책에서 표현된 사투리의 걸쭉한 구어체들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와 소설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아랫목에 드러누눠 우리네 사는 이야기를 들은 듯 하다. 누가 말을 죽였는가,는 하나의 장편 소설이 아니라 각각의 단편이 서로 이어져 있고 또 이어져 있는 듯 하면서도 각기 떼어놓고 읽을 수 있는 연작 단편소설집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충청도의 음정면에 속해있는 리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의 현실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책을 통해,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뉴스를 통해 알게 된 농촌의 현실이 이 책에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미화되지도 않고 흑백논리처럼 선과악이 뚜렷이 구분되어 착한 사람과 나쁜놈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저 우리 이웃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처음 글을 읽을 때는 '왜 이모양 이꼴이 되었노..'싶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려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의를 부르짖고 환경을 생각하며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살아야한다는 공명심을 들먹이기 보다는 내 입에 풀칠하기 바쁘고 나의 이익을 우선 생각하게 되는 우리네 솔직한 심정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구차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모두를 끌어안는 것 같아 더 좋아진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다 좋은 모습인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농촌의 현실을 우스갯감으로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을까 적잖이 걱정된다. 그러나 웃음이야말로 그동안 없이 사는 이들이 힘 있는 이들에게 맞서던 무기 아니었던가. 이제 그 무기를 스스로에게 겨눠보기를 권한다. 사람이 풀무치도 아니고, 남에게 맥없이 당하고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려면 우선 제 자신을 알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웃다가 울라는 소리까지는 감히 하지 못하겠다'(작가의 말에서) 우리 농촌의 현실을 희화시켜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희망이 없어보이는 모습에, 결국은 바닥을 치고 올라오리라는 비장함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다 굶어 죽든 말든 농토를 갈아엎고, 죄다 자동차 공장을 만들든, 컴퓨터 공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중에 자동차를 깨물어 먹든 컴퓨터 앞에 엎어져 죽든 그리 되어야 내남없이 정신이 날 것이다. 지금 암만 악을 써 봐야 쌀독에 쌀이 넘치고, 배에 기름이 껴서 걱정인데 귀만 시끄럽다고 틀어막을 뿐이다'(조우, 42) 책을 다 읽을때까지 맘 한구석에서 맴돌고 있는 이 말속에 위기감과 비장함이 뒤섞이며 자꾸만 마음을 가라앉게 하곤 했지만 이 말속에는 또한 끝까지 우리의 생명줄인 농토를 지켜내야 한다는 결의가 담겨져 있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
|
처음 책을 읽으면서는 이야기를 술술 읽어 내지 못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충청도 사투리에 익숙해져 대화체를 소리내어 말하듯이 읽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
|
농촌이야기를 담은책이라 하여 솔직히 흔한 계몽적인 내용,티브이를 통해 느끼는 농촌드라마에서 볼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라는 선입견이 생겼었다.
그리고 맞다!! 지금 이순간에도 농촌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을수도 있으며 있다는걸 안다.
한권안에 여러단편들이 제각기 다른모습으로,드라마를 보는듯 하기도 하고, 가끔은 울컥하기도 하고, 맞다맞어 하면서 읽기도 하였다.
요즘 우리 동네에서 외곽쪽으로 나가다보면 "베트남 처녀와 맞선을"이라는 현수막을 크게 매달아놓은걸 볼수있다. 가끔 그 현수막을 볼적마다 과연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거둘수 있는지 궁금도 하면서 걱정되기도 했는데 역시 이 소설에서 결코 그냥 지나치질않는다.
요즘 한창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가지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사회적인모습에 반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참 좋아보여 내심 점점 결혼이 힘들어진다는 농촌인들에게 정말 좋은일이라 생각하는데 역효과도 만만치 않음에 무작정 환영하기가 쉽지 않음을 작가역시 느끼고 있나보다. 개값을 읽으면서 정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앞에서 헛웃음밖에 안나온다 이표현이 정말 딱이지 싶다.일방적으로 어느한쪽이 옳고 그른게 아니라 양쪽모두 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상처입는모습이 내게는 뿌연회색빛처럼 암울하게 느껴진다.
단편이긴하지만 어느것 하나하나 쉽게 읽어내릴수가 없다.
|
|
누가 말을 죽였을까? 라는 제목만 보고서는 언뜻 이 책이 농촌소설인지 전혀 가늠이 안됐다. 말이라.....사람이 쓰는 말을 말하는 건지, 타고 다니는 말을 얘기하는건지 당체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천천히 읽어 보면 답이 나오겠지~하며 태평하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아하. 이 소설은 진정한 농촌소설이였다. 시중에 나와 있는 농촌소설이라는 명패를 하나씩 찬 책들치고 제대로 문제를 끄집어 내거나, 혹은 대안없는 이야기만 냅다 깔고 가는 것들이 한 둘이 아닌데, 이 사람 봐라~ 내용 전체가 살아 숨쉬는 농촌 마을 그 모습 그대로를 옮겨 놓았다. 거창하게 농촌의 현실에 대한 촌철살인같은 건 없지만, 오히려 옆집 아저씨의 한숨소리에서 느껴지는 현실에 더 가슴이 무거워졌다. 옛날엔 땅의 가치가 그야말로 상종가를 쳤던 때가 있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그저 땅이 주는 것에 감사하며, 노동의 가치가 그 어떤 가치보다 빛났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선진화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치며 어떡하든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던 그 때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선.진.국.이라는 알량한 명패에 눈이 뒤집혀 한 평 두 평 땅을 팔아 골프장인지 뭔지를 짓고, 모텔을 짓고, FTA인지 뭔지를 들여서 이제는 무한경쟁시대이니까 농촌에서도 변화의 물결 속에 과감히 뛰어 들어야 한다며 등 떠밀기 시작했을 때부터 땅의 가치가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나 보다. 요즘 농촌은 정말 어렵다 어렵다하는 소리가 입에 붙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참말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뼈 빠지게 농사를 짓어도 비료값, 콤바인 기름 값 등등 나가는 돈 투성이고, 어째 집에 들어 오는 돈이 없다. 개풀 뜯어 먹는 소리나 해 대는 도시 촌것들은 그저 유기농 유기농 하지만, 유기농으로도 목구멍에 풀칠 하기 어렵다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이런저런 애환들을 작가는 큰 양푼에 털썩 놓고 맛깔나는 구수한 사투리로 양념을 치고 다양한 11가지의 농촌 이야기로 썩썩 비벼 우리에게 먹으라고 권해 본다. 양푼안에 맛있게 비벼진 농촌이야기에서 우리는 비단 농촌의 현실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까지도 맛보게 된다. 맛깔나는 진행에 눈꼬리에 웃음을 매달고 보긴 했으나, 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쌓여가는 한숨소리에 절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새끼야' 라는 소리를 꼭 곁들이는 그래서 아예 가게이름마저도 '새끼야' 슈퍼로 개명한 평식이네 얘기를 살짝 맛을 볼까? 이젠 범세계화의 물결 속에 아직까지 고스톱을 치는 것은 세계화의 물결을 거스리는 짓이요, 나라의 애국하는 길도 저버리는 것이며, 정말 머리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평식씨. 세련된 사람들의 놀이인 카드에 푹 빠져 카드놀이 전도사의 길마저 닦고 있는 평식씨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상 중에 하나이다. 얼굴 새까만 외국인노동자에게는 무례하고, 거만한 태도로 일관하며, 꼭 욕을 달아서 말하는 센스까지 겸비한 그러나, 얼굴이 조금 희멀게 생긴 백인에 가까운 노동자들에게는 점잖은 얼굴을 보이는 그는 우리가 아직도 버리지 못한 백인우월주의의 한 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자와 개는 삼일에 한번씩 패 줘야 집안이 평탄하다고 믿었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런 평범하지만 버리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평식씨는 어느 날 찬양해 마지 않던 카드에서 돈을 왕창 잃고 그 분풀이를 훈수를 뜨던 외국인 노동자에게 양껏 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서 공포를 느낀 외국인 아내는 경찰에 평식씨를 신고해 버리고 멀리 떠나 버린다. 부인이 남긴 메모에는 피부색이 달라도 인간은 인간이고, 누구에게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전인류적인 메시지가 담겨져 있었다. 과연 평식씨는 부인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했을가? 달콤쌉싸름한 아니 구수하고 담백한 맛 뒤에 느껴지는 이 비참함은 무어란 말인가. 정말 농촌에서 등이 휘어져라 일하는 이들이 이 책을 봤다면, 이런 뻥도~ 하고 무릎을 치며 웃었을가 아니면 이 작가 선생님은 필시 우리 동네 사는 그 유식한 그이일지도 몰라 하면서 손에 손을 잡고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고 조금이나마 농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음 한다고 생각할까? 조금이나마 더 살만해진 그래서 유쾌해진 이야기로 농촌을 다시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왔음 좋겠다. |
|
농촌에 터를 잡고, 농촌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쳐 풀어내지못한 서러움을 걸판지게 풀어놓았다고 해야할까. 이시백이라고 하는 작가에 의해 풀어헤쳐진 충청도 음정면 십오리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는 연작소설이라는 장르의 묘미가 제대로 실려있었다. 한사람 한사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의미속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있었던것이다.
경제위기라고 하는 요즘 특히나 농촌사람들은 힘없는 약자일수밖에 없다.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라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추억속의 글씨가 되었을만큼 농촌의 현실은 어둡기 그지없다. 정부의 정책에 착실히 따르며 한때 부농의 꿈을 키웠던 종필씨가 이젠 더이상 땅에 미련을 두지않을만큼 땅에서 가꿀수 있는 미래가 없어진것이다.
그렇듯 농사만이 최고였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에 발맞추어가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 열한편의 이야기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뛰어난 입담이 더해져 아주 맛깔스러우면서도 위태위태한 고발의 현장감이 느껴진다.
한 마을에 살아가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삶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듯 느껴지는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삶이 왜이렇게 안타깝게 느껴지는걸까. 그건 바로 권력과 명예와 경제적 잣대속에서 외면당한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이었다. 거기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또한 그 분위기에 큰 일조를 하고있었다.
어떻게 하든 농촌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자했던 새마을 지도자 우칠이, 눈맞고 비맞으며 10년의 세월을 버텨온 간장과 돈받고도 하기싫은 소여물주는것에 열광하는 도시민들을 위해 두꺼비 펜션을 운영하는 말석씨도 농촌의 주인들이었다. 이어 생태마을로 가꾸고 싶은 최선생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구본중이장의 또다른 속내 또한 농촌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도시로 떠난 자식을 맞이하는 푸근한 부모의 마음이 있는가하면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현실에선 넘어야할 고지를 앞에두고 겹겹이 가로막힌 산이 존재하는 무거운 현실 이렇듯 농촌엔 극명한 두얼굴이 있음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농촌사람들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 소설속에서 우린 우리가 외면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제대로 느낄수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