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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오빠를 편애하는 엄마로 인해 나는 상처가 많았다. 딸 셋에 아들 하나. 처음엔 언니와 오빠를 낳고 그만 낳으려 했다나? 근데 아빠가 아들이 하나면 불안하다는 말씀을 하셨고 그래서 낳은 아이가 나와 여동생이었다. 어쩌다 생겨 낳기는 했는데 그게 하필 아들이 아니었고, 심지어 아들인 오빠보다 영악하고 욕심 많고 그악스러웠으니 엄마는 내가 싫었는지 모른다. 무디고 착했던 동생은 쉽게 키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오빠 밑으로 낳아선지, 아님 탄생 자체가 별로 축복받지 않아선지 나는 끊임없이 내 존재를 엄마에게 부각시켰고 엄마는 그런 내가 너무도 싫었다고 한다. 모든 사랑이 오빠한테 가기도 부족한데 내가 태어나 울고불고 난리를 쳤고 심지어 오빠를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으니.... 부모님 입장에선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자라면서 나는 늘 생각했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아들로 태어났어도 이렇게 대했을까? 지금은 아들 딸 구별하지 않고 교육시키고 사랑으로 키운다. 요즈음은 아들보다는 딸을 더 선호한다고 하는데... 딸로 태어난 것이 여자로 태어난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만약 ‘탄실’이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면 자신의 재능을 더 열심히 발휘하지 않았을까? 만약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면 쓸쓸하게 죽어가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명순은 태어났다. 1896년 1월 어느 날, 평양의 거상 김희경과 기생 출신 첩 산월의 사이에서 첫째 딸로. 첩의 딸이기는 했지만 명순은 어릴 때부터 신식 교육을 받고 귀하게 자랐다. 아버지가 부자이니 남부러울 것 없었지만 기생첩인 어머니의 출신 때문에 명순은 어릴 때부터 시샘과 편견 그리고 따돌림으로 괴롭다. 똑똑했던 명순은 경성의 진명여고로 유학하며 자신의 출신을 극복하고자 공부하지만 친구들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관찰사가 되고자 했던 아버지가 정계 진출에 실패하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무일푼으로 쫓겨난 어머니와 명순 가족.. 이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기생이었던 이모 영월의 도움으로 명순은 동경 유학을 떠난다. 후견인을 자처하던 숙부 김희순은 명순을 배려해 일본 육사생도 리응준을 소개한다. 어느 날 명순을 밖으로 불러낸 리응준은 그녀를 성폭행하고 이 사실은 왜곡되어 신문기사로 나게 된다. 이후 명순은 사회적으로 비난받게 된다. 관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명순은 경성으로 돌아와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를 발표하게 되는데....
성폭행의 가장 큰 잘못은 가해자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그걸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그럴까? 혹은 그러니 정숙했어야지... 하는 식으로 잘못의 일부를 여자에게 돌린다. 그나마 지금은 수사를 의뢰하기도 하지만 창피하다는 이유로 숨기는 경우도 많을 거라 나름 생각해 본다. 지금도 이럴진대 일제 강점기라면 더 심하지 않았을까? 참혹한 강간의 피해자이면서도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던 아무도 처벌하지 않는 강간범 대신 세상의 비난을 들쓰게 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이자 방어는 그것이었다. 그녀는 철저히 홀로 싸울 운명이었다. (136) ‘당할 말하니 당했다’는 논리는 그녀의 항변을 구차한 변명으로 만들었다. 실패한 자살 시도마저 잘못을 가리기 위한 ‘쇼’라고 수군거렸다. (147) 내 의도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입방아로 쓸쓸하고 외롭게 글을 썼던 여인. 만약 그녀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면 이런 말들을 했을까? 남자들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것에 여자가 글을 쓰고 능력을 발휘하는 게 그렇게도 샘이 났던 것일까? 그 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21세기인 지금도 여자로 사는 게 마냥 편하지는 않으니까. 명절이 지나면 이혼율이 급증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는 참고 견디는 여자들이 그만큼 많지 않다는 뜻이겠지.
이 책을 다 읽고 김명순이라는 작가를 찾아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근대 소설가. 학창시절에 단 한 번도 들어 본적 없는 이름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기회가 되면 김명순 작가의 책을 찾아보고 싶다고. 그녀는 그 시대를 어떤 마음으로 살았고 어떤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는지 알고 싶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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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이자 시인, 번역가로 활동한 사람이라는 구절에 흥미가 생겼다. 김명순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타이틀은 분명 기억해둘만한 것이 아닌가. 사실 여성 최초라는 말이 글을 쓰는 분야에도 사용됐다는건 불쾌하지만 내가 좋건 싫건 당시에 글은 남자들만 썼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무엇이든 처음은 어렵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남녀의 차별이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나라이다. 그 벽을 깨기위해 부단히 애쓰고 버틴 여성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곤 한다. 지금도 그런데 근대라고 불리던 그무렵엔 얼마나 심했을까. 그 자체만으로 인정받을만 하다. 거기다 시도 쓰고 번역도 했다니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일까. 김별아 작가는 역사 속 여성을 새롭게 그려내는 소설을 쓰기로도 유명하다. 작가의 손에서 재탄생한 여성들중 그 사람 자체에 궁금함이 생겨 읽기로 한건 처음같다.
이름은 김명순. 하지만 다른 이름또한 많다고 한다. 그녀의 형제들 이름에서 같은 이름자를 쓴 기동이라는 이름도 있지만 제목에서 쓰인 탄실을 기억해두면 될것 같다. 탄실은 그녀의 어머니가 부르던 이름이다. 첫딸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이름이고 그녀 역시 그 이름을 좋아했다. 가까운 사람들은 계속 탄실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여주인공을 내세운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애용할만큼 그 이름과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은 기쁘고 즐거운 것이었다.
집은 무척이나 부유했고 아름다운 어머니는 돈을 쓰는데에 거침이 없었다. 맏딸이어서 아낌없이 사랑받은 탄실은 원하는대로 학교에도 갔고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커가면서 조금씩 사정을 알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는 기생이고 자신은 첩의 딸, 기생의 딸이라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꼬리표이자 신분이 결코 자랑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다. 남에게 흉보이고 손가락질 받기 싫어 그녀는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잘 부르지 않고 모든것을 어머니와 반대로 하려고 한다.
영리하고 예민한 소녀의 시련은 철들면서 평생을 따라다닌다. 공부에만 매달렸지만 친구하나 없이 외로웠고 집안이 기울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학교에 다니기도 힘들어졌다. 사람들은 그녀를 누군가의 첩으로 들이거나 기생으로라도 보내라고 했지만 본인이 거부했고 어머니 또한 계속 공부를 하게 도와주었다. 기생이었던 어머니 산월과 마찬가지로 기생인 이모 영월에게 있어 탄실은 자신들이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대신 살 꿈의 신여성이었다. 그것조차 탄실에겐 부담이었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후로는 더욱 힘들어졌고 필사적으로 학업에 매달린 그녀는 일본 유학을 결심한다.
유학길에서 더욱 심해진 고생과 시련을 생각하면 참 불쌍하다. 인간관계가 지금도 만인의 고민이지만 탄실은 유독 사람을 사귀는게 서툴렀다. 너무도 예민했고 모두가 자신의 뜻에 맞기를 기대한다. 남들이 자신의 아프고 외로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하지만 결코 입밖으로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그모습이 남들에겐 차갑고 뻣뻣하기만 하다. 그 괴로움을 쏟아낸게 소설이었다. 스스로가 살기위해 절로 가게 된 길이다. 남자를 만나고 사귀는데도 실패하고 믿고 의지할 친구 한명 만들지 못하며 피를 나눈 가족, 형제에게도 짐이 될까 연락하지 않다 소식이 끊겨버린다. 너무 심하게 서투른 인간이 보인다.
평생 조롱과 모함등을 듣고 살았으며 언제나 외로웠던 서툰 사람 김명순 외에 여자 탄실이 보였다. 아니, 딸 탄실이라고 해야겠다. 사람들은 아주 늦게 부모를 한 사람의 불쌍한 인간으로 본다. 아무것도 당연한게 없었는데, 그들도 이렇게 힘들었을텐데 하며 고달프고 긴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다. 너무도 서투르고 예민한 인간으로의 시작에 있던 기생 출신 어머니 산월에 대한 놓지 못한 그리움이 이야기 곳곳에 깔려있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너무도 지쳐 고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깨닫는다.
아직 남은 그리움이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여태 보고픈 얼굴과 삼삼한 이름이 있었다. 어머니, 고향, 그리고 모국어. (p.296) 기생 산월로 불리기 전,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그조차 물어보지 못했다. (p.298)
평생 누구에게 나쁜짓 한번 하지 않고 공부에 매달리며 글을 써왔을 뿐인데 하지도 않은 일로 비난과 모욕을 받고 가족 한명 만들지 못했으며 벌어놓은 돈조차 없이 말라 죽을듯한 몸만 남았다. 목표했던 학업을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고 조선으로 돌아오며 아직도 남은 그리움에 놀란다. 고단한 인생에 빗대어 어머니의 인생을 이해한다. 나도 또 한명의 딸이라 마음이 아렸다.
크게 조명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 나처럼 소설로 처음 알게된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탄실에 대한 기록도 많지 않아 작가가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남겨진 몇몇 기록과 글로 한 사람의 인생을 복원하는게 만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또한 이 책이 소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록의 공백 사이사이에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생각으로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나라가 혼란스럽던 그 시절에 그런 사람, 그런 글이 있었다는것을 잘 기억해두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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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다람쥐 돌듯 같은 템포의 퍽퍽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입니다. 가슴저린 글들로 태어난 책 `탄실`은 흙 속 진주같은 시간속 책으로 옛시대의 공간을 넘어서 읽는이 가슴에 희망으로 파란싹이 자라나듯 행복한 미소를 주는 예쁘고 멋진 책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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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채홍' 등 역사 속 여성을 재조명하기로 유명한 김별아 작가의 작품이다. '탄실'의 발간 소식은 작가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들었다.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김명순의 삶을 그렸다는 내용보다 문학적 명성이 있는 김동인, 김기진, 방정환 등의 마녀사냥 식 공격을 당했다는 내용이 더 눈길을 끌었다. 왜 그녀는 공격당해야 했을까.
탄실의 어머니는 산월이란 이름의 기생이다. 평양의 대부호의 첩이 된 산월의 장녀가 탄실이다. 부유한 경제상황과는 반대로 진명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받았다. 어머니가 기생 출신 첩이란 이유에서다. 학업 성적으로 비난을 극복하려 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이은 죽음에 집안은 궁핍해진다. 하지만 공부를 잘 했던 탄실은 일본 유학을 계획한다. 숙부의 도움으로 일을 하며 공부를 하는 가운데 성폭행을 당한다. 숙부의 소개로 만난 일본 육군사관학교 생도 리응준에게. 이 사람이 친일파와 독립군을 오가며 대한민국 초대 육군 참모총장이 올랐다는 사실이 더욱 놀랐다.
그 일이 있은 후 탄실의 삶은 피폐해진다. 당시 시대상에 비춰 강간 피해자가 더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탄실은 결혼을 포기하고 문학으로 자신을 치유하려 한다. 그렇지만 한국의 문단은 여성이 남성의 영역이 문학계에 들어오는 것에 아니꼬운 시선을 보낸다. 김동인은 김연실전으로 김기진은 대놓고 공격했으며 방정환은 은파리란 필명으로 인신공격을 한다. 문단을 대표하는 이들이 그러할지니 탄실에게 한국에 살 곳이 못됐다.
여혐 논란이 한창인 지금, 소설 '탄실'은 시의적절하다. 조선의 유교가 남긴 남성우월주의가 지금도 남아있는데 일제강점기 탄실이 살 던 시기는 얼마나 더 심했을지 예상할 수 있다. 그러한 시대를 신여성 아닌 신여성으로 살다 간 탄실의 삶에 가슴 한 쪽이 아프다.
탄실이 당시에 연재한 소설과 시, 그리고 작가가 탄실의 글로 재구성한 그녀의 삶이 시간순으로 교차편집했다. 이전의 '미실'과 '채홍'과는 다른 형식이다. 가독성은 '탄실'이 좀 더 높다. 귀에 익은 사람들이 등장해 몰입도를 높인다.
김별아 작가의 여느 작품 중 가장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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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여인, 소설가 김명순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이란 꺼지지 않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가야 하는 일과 다름없었다. 책을 다 읽고 소설의 표지 속에 발그레한 두 볼과 단정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여인에게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인텔리한 여성의 고고함이 그 첫인상이었다면 책을 읽은 후에는 사뭇 달라졌다. 인텔리는 그녀가 내리 붙잡고 놓지 못했던 ‘쓰고 싶다는 열망’의 허울이었을 뿐, 고고함 뒤에는 발 딛고 서있을 곳을 잃은 처지만큼이나 위태롭고 처연해 보이는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시절을 잘못 타고나 그 운명을 끝끝내 밝게 피우지 못한 인물이야 한둘이 아닐 테지만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라는 나름의 문학사적 의의조차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것은 내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만인을 위한 축제는 없다. 벚꽃이 난분분한 한봄에 치명적인 자살이 시도된다. 완전해 보이는 세계의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균열을 감지케 하는 건, 외로움이다. 외로운 사람만이 삶의 표층 아래 균열된 실금을 본다. 삽시에 모든 것이 오싹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홀로이 전율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외로운 사람들은 무감한 세계로부터 겁쟁이로 취급된다. 그리하여 더욱 외로워진다. / 57p
맞서 싸워야 할 적이 보이지 않거나 적과 맞붙기를 두려워할 때, 사람들은 새로운 적을 만든다.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만만한 상대를 찾는다. ‘안정기’에 접어든 식민지의 작가들은 그렇게 서로를 물고 뜯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없고, 돈도 집도 친구도 없는 그녀는 무방비 상태로 가느다란 목덜미를 드러내 약적(弱敵) 중의 약적이었다. / 19p 마침내 돌아왔다. 내처 평양으로 가지는 못하고 제2의 고향인 경성에 낡은 트렁크를 내렸다. 후미진 골목에 자리한 여관의 작은 방에선 쿰쿰한 냄새가 났다.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냄새를 풍긴다. 삶과 삶이 구겨져 접힌 지점에 곰팡이가 피어난다. 외로움이 푸른 꽃을 피운다. / 221p
유달리 솔방울을 많이 매단 소나무가 있다. 가지가 휘어져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솔방울을 매달고 고부라져 있다. 번식의 본능이 왕성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그때, 그러나 소나무는 건강치 않다. 솔잎은 빳빳하게 뻗치지 못해 휘늘어지고 푸른빛이 바랜 듯 누렇게 들뜨며 나무줄기는 말라 벗겨진다. 소나무는 죽어가고 있다. 죽어가는 소나무가 가장 많은 솔방울을 매단다. 일평생을 한자리에 붙박여 보낸 식물에게조차 번식의 본능은 그다지도 절박하고 처연하다. / 3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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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김명순을 아는가? ![]() 우리는 가끔 시대를 잘 못 타고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의 기량을 펼치지 못한 여성들 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 소설가가 있을까? 대부분 남성소설가들이다. 그런데 미실의 김별아 작가가 탄실 김명순 탄생 120주년을 맞아 남성 중심의 문단에서 홀로 험난한 삶을 살아가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사른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이자 시인, 번역가로 살았던 김명순의 생애를 한권의 책으로 풀어 놓았다.
글이 무척 날선듯 선뜩선뜩하게 읽힌다. 문장속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짧게 뚝뚝 끊기는 문장이 주는 느낌마저 탄실 김명순의 처절한 삶을 담아 내는 듯 그렇게 읽힌다. 기생이었던 엄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란 어린시절을 빼고는 저주받은 삶처럼 철저히 고립되어 외롭고 우울하게 살았던 김명순의 생애!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강간을 당하고도 오히려 피해자가되어야 했던 시대적 오류와 자신의 진심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그녀만의 특유의 성정! 그러면서도 남자와의 스캔들에 시달려야만 했고 문단의 가십이 되어 남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했던 김명순! 그녀의 삶은 왜 이리도 모질어야만 했던 것일까?
김명순은 기생의 딸로 태어난다. 철없던 어린시절, 엄마 산월과 재력을 가진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났지만 권력에 눈이 먼 아버지가 빚만 남기고 죽고 엄마마저 죽게 되자 동생들을 건사해야하는 가장의 신세가 되고 만다. 하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김명순은 동생들을 이모에게 맡기고 일본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홀로 외로웠던 타향살이에 지쳐 살짝 의지하려 했던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오히려 손가락질 받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경성에서의 삶 또한 그녀를 환영해주지 않자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가 하면 한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는 부표처럼 이리저리 발황해야 했던 그녀의 삶이 너무도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와중에도 문학적 열정으로 수십편에 이르는 소설과 시를 쓰지만 문단은 그녀를 철저히 배척하기만 한다.
작가에 대한 기록이 탄탄치 못했던 그때의 흔적을 쫓아 그녀가 남겨 놓은 문학작품들을 책 속 곳곳에 실어 김명순이라는 여성소설가의 문학세계를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 놓은 독특한 소설이다. 소설을 읽다가 문득 문득 김명순의 자서전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글을 펼쳐 놓은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탄실 김명순, 그녀가 살아 생전 소설 23편과 시 107편, 수필, 평론, 희곡과 번역시, 번역소설등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이러첨 문학적 열정이 가득했던 김명순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떻게 그렇게 문단에서 배척하고 고립시킬 수 있었는지 김별아의 소설로 만나지 못했더라면 영영 모르고 있었으리라! 같은 여성으로 비탄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들게 되는 이 소설, 모두 특히 여성들이 함께 읽고 이름없이 스러져간 많은 여성들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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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숨이 나온다. 짜증이 난다. 여러개의 이름으로 나타났다 숨었다 하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녀는 짧은 기간동안 작가로 활동하며 100편에 가까운 시와 20편의 소설과 에세이와 칼럼 번역물 희곡까지 고루 남겼다. 김명순, 탄실 첨 들어보는 인물이어서 궁금했었고, 첩의 자식이 아닌 같은 시대에 문학활동을 하는 이들과 좀더 사이가 좋았다면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지도 않았을뿐 아니라 더 좋은 더 많은 작품을 남겼을 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탄실은 최초의 여류작가는 김명순(金明淳)이다. 1917년 월간 종합지 <청춘>의 현상 작품 모집에 응모한 단편소설 <의문의 소녀>가 입선됨으로써 당시로서는 전혀 생소한 여류작가라는 호칭을 얻은 것이다. 당시 그녀와 함께 입선하여 문단에 얼굴을 내민 사람으로는 영문 소설 「초당」의 작가로 유명한 강용흘, 현대시를 맨 처음 발표한 주요한, 그리고 아동문학가로 명성을 떨친 방정환이 있었다. 이 무렵 국내 문학계는 최남선과 이광수가 단연 이채를 띠고 있을 때였다. 또한 계몽적인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여성이 남성들 속에 섞여서 문필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저 문학계의 미래상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정도였다. 따라서 김명순의 등장은 세상의 뭇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녀의 나이가 불과 18세라는 점, 최남선이 창간하여 직접 주관하고 있는 <청춘>에서 이광수가 심사, 추천하여 입선시켰다는 점 등이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그녀의 소설 <의문의 소녀>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김명순은 평양 태생으로, 그의 아버지는 명문이며 부호인 김가산이었고, 어머니는 그의 소실이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라다가 이화학당을 거쳐 일본으로 유학, 동경여자전문학교 문과에 다녔으나 중퇴하고 말았다. 전영택은 1963년 <현대문학>에 '내가 아는 김명순'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에 의하면 김명순은 유학시절 당시 일본 문단을 지배하던 자연주의 문학에 빠져 학교에 가기보다 문학작품 탐독하기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세간에서는 학업 중단을 그녀의 방종한 생활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물론 시대의 색안경에 비친 모습이었을 것이다. 김탄실(金彈實)·망양초(茫洋草) 등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김명순의 작품은 우리 나라 현대문학의 기틀을 다진 <창조> <폐허> <개벽> 등의 문예지를 보면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시대는 끝내 한 선구적인 문학인을 포용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세상은 그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했으며, 단지 '연애로 정신 이상이 되어' 죽은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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