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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사는 동안 이상향을 품고, 이상형이 있어야 좀 재밌게 살 수 있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출판사까지. 좋아하는 출판사가 있다면, 어떤 책 읽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 준다. 그 출판사에서 낸 책 목록만 봐도, 10년 정도는 책 안 사봐도 되겠다 싶은 곳이 몇 있다. 내게는 오월의봄, 후마니타스, 교양인, 한길사, 까치, 갈라파고스 정도.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는 후마니타스에서 낸 책. 이 출판사에서 냈다는 이유만으로 사진 않았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나서 콜럼바인 사건에 관해 좀 더 알고 싶어 좀 알아보다 구매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도 좋은 책이긴 하지만, 서술자가 주변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학교에서 발생한 학내 괴롭힘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 1 제목에서 보듯, 콜럼바인 사건만을 다루진 않는다. 오히려 학교 총격 사건보다는 회사 총격 사건을 좀 더 비중있게 다룬다. 뭐라고? 회사 총격 사건이라고? 학교 총격 사건보다는 생소하다. 외신을 다룰 때, 작업장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을 좀 덜 다룬 듯하다는 건 나만의 착각? 실제로 한국 언론이 미국에서 벌어진 작업장 총격 사건과 학내 총격 사건 보도 비중이 어떤지는 모르겠고, 확실한 사실은 미국에서 작업장 총격 사건은 상당히 많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몸과 마음이 망가진 사람들, 정리 해고와 일터 괴롭힘의 피해자들, 학교 폭력과 왕따의 피해자들을 두루 다룬다. # 2 본격적인 논의를 펼치기 전, 저자는 흑인 노예 반란을 다룬다. 노예제가 폐지되는 과정에서, 대다수 흑인 노예는 잘 적응했다. 아주 아주 가끔, 거세게 저항했다. 주인을 죽인다든지 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했다. 이때 백인 사회는 패닉에 빠졌고,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이 그 가해자에게 정신 이상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짓을 할 수 없다는 해석이었다. 그와 비교하자면,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무차별 총격과 학교 총격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가해자에게 정신 이상이라는 낙인을 찍으려 시도한다. 일부는 그렇지만, 나머지 일부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저자는 말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가해자가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학교가 문제라고. 이 대목에서 독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정의롭고 나머지는 비겁하다는 말인가? 저자는 가해자를 영웅으로 묘사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수많은 총기 난사 사례를 분석하면서 미국의 기업과, 학교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 3 레이건. 미국 사회를 망쳐버린 원인으로 저자가 지목하는 사람은 레이건이다. 레이건과 대처, 밀턴 프리드만과 프리드리히 하이예크. 이른바 수정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키를 돌린 사람으로 지목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프리드만과 하이예크의 경제 사상이 어떠했는지는 차치하고, 레이건과 대처가 지향한 정부는 간단하다. 작지만 강한 정부. 부자 세금을 줄이고, 노조를 분쇄했다. 노동 유연화를 추구하며 구성원간 협력이 아니라 경쟁을 부추겼다. 이러한 세계관이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기점으로 한국에도 널리 퍼졌다는 건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 4 그래도 한국은 미국보단 상황이 낫지 않냐고.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메리칸 드림은 옛말. 노동 환경으로 보면, 미국이 한국보다 못하다. 유급 휴가도 없고, 해고도 쉽고, 게다가 거긴 대통령의 인식도... 한국 역시 IMF 이후 - 진보적이라는 평을 듣지만, 노동 쪽에서는 딱히 진보적일 게 없었던 - 진보 정권과 보수 정권이 차례로 집권하는 동안 계속 악화되긴 했지만 미국 정도는 아닌 듯하고. 이번에 집권한 정부는 예상하지 못한 여러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여하튼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높이려 하고, 주간 노동시간도 줄이려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 미국과 한국의 큰 차이는 바로 총기 유무다. 한국에서는 미국처럼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옮긴이의 말처럼, 사람들은 조용히 자살한다... (물론, 신자유주의와는 무관하게, 1991년 계속된 해고와 사회적 냉대에 분노하여 여의도광장으로 돌진한 사건도 있긴 하다.) # 5 이 책에서 저자는 여러 차례 말한다. 현대인이 흑인노예제를 보는 시각과, 몇 세기 후 사람들이 지금을 보는 시각은 비슷할 거라고.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말이 안 되게 스트레스가 높은 사회에서, 부조리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책을 읽다 보면, 그래도 영미자본주의보다는 유럽사민주의가 나은 듯. # 6 영화 <기생충>이 화제다. 나는 보지 않을 것이다. 영화관 가서 본 마지막 영화가 <겨울 왕국>일 정도로, 영화관에 애써 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기생충> 후기로 덮여서, 안 봐도 본 듯한 느낌이라 굳이 찾아서 볼 필요가 없겠다. 그 중 인상적인 평이, 마르크스는 이상 현실은 베버, 라는 평이었는데. 그럼에도, 어쩌면 유럽 사민주의과 영미 자본주의의 차이는 마르크스 때문 - 혹은 덕분 -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니체가 어디선가 한 말도 떠올랐다. 최초의 인류는 나무를 타고다니던 원숭이들 사이에서는 미친놈, 배신자로 불렸을 거라고. 저자가 미국 흑인 노예 해방 운동을 다룰 때 니체의 경구가 계속 뇌 주변을 멤돌았다. --- 우체국 사건을 제외하고, 웨스베커 이전에 회사에서 직원이 폭발해 동료들을 모조리 쏴죽인 유의미한 전례는 없었다. 그 원인은,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1980년대 들어 미국의 기업 문화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34쪽) "명랑한 태도"와 웃음은 모든 미국인들이 무의식적, 심지어는 유전적 차원에서 사용하는 전략이다. 많은 미국인들은 자신의 미소가 내면의 행복이 자연스레 흘러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노력의 소산임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48쪽) 반면 그에 맞서 들고일어나는 것은 비정상이다. 당신이 다녔던 모든 직장을 생각해 보라. 특히 당신이 가장 성공했던 직장 - 독립적이고 자립적일 때는 승진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시에 따르고 상사를 기쁘게 했을 때는 성공했을 것이다 - 을 말이다.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 현대인들은 아프리카 노예들만큼이나 노예적이고 가슴이 아플 정도로 유순하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인정할 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 못하거나 그것을 설명할 적절한 구실이 없을 따름이다. (82쪽) 당대인이 그 시대의 악과 부당함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늘 합리화해 버리거나 철저히 무시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똑같다. 우리 시대도 예외는 아니다. (89쪽) 현실은 다르다. 억압받는 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일은 드물고, 그들은 늘 패배하며(이 나라에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설령 드물게 반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사람들은 국가에 협력해 그들이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96쪽) 모든 내국 반란들이 불운하다 하더라도 어떤 경우, 부분적으로는 정의의 실현이 뒤따른다. 반란이란 무릇 폭력적이며,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패배하기 마련이지만, 그 순교가 늘 헛되지는 않다. (132쪽) 이 모든 것과 관련해 가장 이상한 점은 지나가는 미국인에게 미국의 회사들이 소비에트 시절 소련보다 더 소비에트적이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미친놈으로 여겨질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그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게 정상이니 말이다. 그러니 미친놈이나 반기를 드는 것이다. (214쪽) 기업의 이런 비정규직 철학으로 인해 두려움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또 고용 비용은 하락해 회사의 부에서 훨씬 더 큰 몫이 임원 주주 엘리트의 호주머니로 쏙 들어간다. 바로 이것이 그 모든 것의 총계다. (221쪽) FBI도 정보 당국도 사무실과 학교의 광란의 살인자들에 대한 프로필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런 분노 살인자들의 프로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중요한데, 광란의 살인자를 만드는 것은 [살인자 개인의] 내적 심리 장애가 아니라 외적 요인, 즉 환경적 요인임을 강력히 시사하기 때문이다. (236쪽) 프로파일링 해야 하는 것은 사무실이나 학교의 총격자들이 아니다 - 그런 프로필을 만들 수도 없다. 정작 프로파일링을 해야 할 대상은 직장과 학교다. (302쪽) 이렇게 보면 우리 삶 전체는 대학 시절과 어느 여름에 떠난 유럽 배낭여행을 제외하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 마치 우리의 비참한 인생 대본 전체가 누군가(말하자면, 잭 웰치)의 혜택을 위해 설계된 것 같다. (304쪽) 우리 사회가 왕따를 억제하지 못한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왕따 가해자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왕따 가해자다. (383쪽) 근본적인 수준, 그러니까 인간관계의 수준에서 우리는 마침내, 사무실 세계와 학교 세계가 끔찍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왕따 가해자가 승자가 되는 광란의 왕따가 바로 그것이다. 공유되는 끔찍한 특성은 또 있다. 각각의 무대에서의 삶이 극소수의 엘리트들 - 성인 세계에서는 임원 및 주주들, 학교 세계에서는 행복한 가정과 밝은 미래를 가진 인기 있는 아이들 - 에게는 멋지기만 하다는 것이다. 반면 대부분은 아닐지라도 많은 이들에게, 삶이란 비참한 것이다. (394쪽) 직장과 학교는 동종의 범죄를 낳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의심하도록 권하고 한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에게, 한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 권위주의적 대응을 하고 있다. (중략) 밀고 권장은 이미 유독한 문화를 더 유독하게 만들 뿐이다. 그것은 왕따, 냉소, 분노를 조장한다. (412쪽) 오늘날 미국에서는 한 번 실수해 낙오하면 - 심지어 유아원에서라도 - 평생이 끝장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441쪽) 이 모든 것은 레이건 이후 사회경제적 체계 전체를 관통하는 것의 징후, 즉 거시경제적 수준에서부터 미시적 수준의 개인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 스트레스로 지친 회사원으로부터 프리스쿨 입학시험 준비로 신경과민에 걸린 그의 세 살배기 아이에게까지 적용되는 쥐어짬의 징후다. (455쪽) 우리는 미쳤다. 병들었고 미쳤으며 농노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우리는 우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 주 35시간 노동을 하는 프랑스인들, 전국민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캐나다인들을 미친 사람들이라고 확신한다. (466쪽) 꼭대기에 있다면 잔혹하고 냉혹해야 하고, 그 아래 있다면 관에 들어갈 때까지 내내 두려워하고 억지 미소를 지어야 한다 - 이는 거의 레이건 이후의 시대정신을 요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만큼 명랑하지 못하다면 "개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불만을 토로하면 괴상한 녀석이다. 학살에서 트라우마를 입어도 본인 잘못이다. 가난해도 본인 잘못이다. 정리해고를 당해도, 과로를 해도, 왕따를 당해도, 실패해도 본인 잘못이다. 극복해 버려. 이는 바로 레이건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우리가 배워 온 취약한 사람들을 대하는 법이다. 즉 개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그 개인을 탓하라. 다음으로 넘어가라.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면 그 사람이 괴상하다는 뜻이다. 극복해 버리라고 말하라. 그러니까 "젠장 내 앞에서 꺼지라고." (483~484쪽) 어떤 사람은 이 책이 총기 규제가 엄격한 한국 사회에는 별 의미가 없는 책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인은 하나여도 증상 혹은 표현 방식은 다를 수 있다. 부당한 해고를 당해도 누구는 총을 들고, 누구는 가족에게 화풀이를 하고, 누구는 시위를 하며, 누구는 목을 맨다. 왕따를 당해도 어떤 학생은 총을 들고, 어떤 학생은 참고, 어떤 학생은 자살을 한다. 저마다 자신이 처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레이거노믹스, 신자유주의가 미국에서 야기한 것 중 하나가 총기 사건이라면 한국에서는 자살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490~491쪽, 옮긴이 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