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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생각의 나무(출판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 4분을 모시고 지금 우리가 서있는 좌표는 어디이며, 그러한 현실 인식 위에 앞으로 우리는(한국은, 세계는, 인류는)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대담)을 편집한 내용이다. 장회익 교수는 물리학자이다. 서울대 물리학 교수로 있었고 나중에는 생물학에 관심을 가졌고 또 동양사상(성리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한 끝에 '온생명사상'이라는 독특한 생명철학 체계를 정립하신 분이다. 이분은 그야말로 동서양 학문은 물론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을 이루신 분이시다. 그리고 어려서 어려운 환경속에서 공부하셨다. 예를 들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스스로의 생각으로 익히셨다고 한다. 그런 스스로 야생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야생학습법'이라고 하셨다.(자세한 내용은 장회익 교수의 '공부도둑' 참조) 장회익 교수의 대담 주제는 이제는 지구전체를 온전한 생명으로 보는 '온생명사상'과 같은 전체를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생명 하나 하나가 귀하지만 그 낱생명으로는 온전한 생명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낱생명은 식물이나 광물, 동물이라는 보생명에 의해서 생명으로서 존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대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류의 생존, 나아가서는 온생명(지구) 자체가 생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온생명에서는 인간은 없어도 된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지구나 다른 보생명이 없이는 생존할 수 가 없다는 것이다.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그러한 온생명사상과 같은 새로운 차원의 자각과 인식이 일어나지 않고는 안된다는 주장인 것이다. 장회익 교수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통섭,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통섭을 얘기하고 계신다. 그리고 서양의 학문은 앎의 학문이고 동양의 학문은 삶의 학문이라는 것이다. 과학의 발달이 여러가지 문제와 모순을 발생하는 것은 앎의 학문으로 그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양의 엄밀한 과학적 탐구에 의한 지식이 인간의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양의 학문은 비록 삶의 학문을 추구하지만 격물에 있어서 엄밀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동양과 서양의 학문이 통섭되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인문과학과 자연과학간의 통섭만이 아니라 현대의 학문은 너무 세분화되다 보니까 숲을 보지 못하는 폐단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에서도 교수의 실적을 논문으로 평가하다 보니까 논문주제가 되는 세분화된 조그만 주제만 다룬다는 것이다. 논문주제로 적합하지 않은 학문간 경계를 넘나드는 분야는 연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인문과학 내에서도 통합이 먼저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학이라는 주제를 놓고는 독문학과 불문학, 영문학이 함께 연구를 할 수가 있는데 대학교의 현실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밥그릇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에 있어서도 15세기 조선사회를 종합적으로 다룬다고 할 때 역사, 사회, 음악, 국어, 미술 등 여러 과목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면 15세기 조선사회에 대한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 현실에서 통합교과는 매우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사회에 나와서 생활함에 있어서는 실제로는 그런 통합적인 사고와 문제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대학교나 중고등학교의 현실은 세분화된 과목으로 나누고, 거기다가 4지 선다형 중심으로 사고의 틀을 계속 좁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생각한다면 장회익 교수님이 제안하는 학문간의 통섭은 21세기가 지향할 새로운 좌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두번째로 대담에 나오신 석학은 최장집 교수이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분이 극좌사상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이분의 생각을 접하고 보니 대단히 높은 식견을 가지신 훌륭한 분임을 알았다. 이분은 민주주의에 대해서 아주 깊이 고민하고 계셨다. 정치는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여야 한다는 구절도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386운동권이 정권을 잡은 참여정부에서 여러가지 혁신적인 정책이 현실에서 실패한 이유가 설명된다는 것이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정책을 밀어붙이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권력이라도 통제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민주화는 계속 진행해나가야 하는 과정이지 386운동권이 정권을 잡는다고 완성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당정치의 활성화라는 것이다. 지금의 보스 중심의 정당정치가 아니라 일반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당이 제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올바로 자리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화라는 것이 모든 분야에서 선거를 통해서 대표를 뽑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신다. 정치체제는 선거를 통해서 선출해야 하지만, 대학총장이라든가, 노조위원장 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운영이나 노조운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선거를 통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합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의 비전이나 노조의 중장기 비전을 수립했다면 큰 문제가 없는 한 한번 결정된 지도부가 10년, 20년 이상 장기적으로 이끌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어윤대 전 고대총장께서 고려대의 새로운 방향을 놓고서 개혁적인 정책을 정열적으로 추진해왔다. 고려대의 먼 장래를 놓고서 생각한다면 어윤대 전 총장 같은 분이 10년이상 장기적으로 학교를 이끌어가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장 직선제다 보니까 그런 부분이 참으로 아쉽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속적으로 공부를 해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진작에 최장집 교수의 저서를 읽었다면 한국 정치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획득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높은 수준의 생각들이 공유된다면 현실의 정치행태를 제대로 보는 일반 시민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정당정치에 참여한다면 작금의 정치현실을 상전벽해처럼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지 않고서는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 같다. 지난 주말에 통일의 문제에 있어서도 깊은 통찰을 제시하고 계신다. 준비없이 통일이 되면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남한에서 대기업 노조와 하청업체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의 대다수는 비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먼저 합리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통일은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재앙이라는 것이다. 독일은 인간의 삶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통일 후 동서독 화폐 교환비율을 그러므로 최장집 교수께서는 통일에 대해서 감상적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재삼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의 민주화라든가 통일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싶다면 최장집 교수의 저서를 정독하기를 바란다. 도정일 교수는 시장 전체주의를 문제삼고 있었다. 백번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정치적 전체주의, 독재체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의식하고 그 체제를 개혁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는데 시장 전체주의는 우리의 자발적인 참여라는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체제에 매몰되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체제를 더 공고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정일 교수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인터넷 사이트를 가입할 때도 많은 정보를 요구하고 있고 우리의 소비행태, 취미생활 등등 사생활이 전방위적으로 기업들에 의해서 수집되고 분석되고 이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가치의 기준이 돈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의 모델은 누구인가? 고액의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가 아닌가? 사법연수생들의 일순위가 김앤장이라고 한다. 왜일까? 연봉이 많아서 일것이다. 대졸자들이 왜 대기업을 선호하는가? 연봉이 많아서가 아닐까? 물론 공기업을 더 선호하지만 그곳도 연봉이 적지 않고 거기다가 안정적이기까지 하다. 대기업이 도전적인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곳이지만 중소기업보다 연봉이 적다고 하면 대졸 신입사원들이 경쟁적으로 몰릴까? 아닐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정일 교수의 말처럼 시장전체주의가 우리의 삶을 인간다운 삶에서 먼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시장전체주의를 탈피한 새로운 관점의 가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도정일 교수가 제안하는 대안적 방법론은 좀 약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재좌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데 있어서는 탁월한 식견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지식인의 역할이 큰 것 같다. 지금의 세대는 영상문화의 세대이다. 즉흥적인 재미에 익숙한데 학자들은 고답적인 문자문화를 통해서 재미없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어려운 변증법적 방법론으로 삶의 많은 화두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계신 훌륭한 석학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들이 21세기를 살아갈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고 있어서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