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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노벨상에 거론되어지는 고은님의 시집.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고들 했다.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여전한 그 생생한 생동감에 놀라울 따름.
그러나 나는, 아직은 사실, 이 작가의 깊은 사상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사는 삶은 그저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이라서, 자연을 노래하고 깊은 사상을 얘기하는 높은 정신적인 것들과 생명력에 대한 예찬 같은 것들이 아직은 깊이 와닿지 못하는 모양이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언젠가 이 시들에 공감할 날이 오겠지?
그치만 언제 봐도 참 부러운 삶에 대한 시선들. 나도 저런 삶을 살 수 있어야 할텐데. 나이 들어서도 저렇게 삶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할텐데.
매일 지친 삶에 대한 위로만 와닿으니 원. 그렇다고 정말 지쳐있는 것도 아니면서. 사실은 지금이 행복한데 그 행복을 못 느끼고 있는 어리석은 평범한 사람에 머무르고 있을 뿐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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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아우른 시혼(詩魂)
시력(詩歷) 50주년을 맞은 고은 시인은 신작 시집 허공을 상재(上梓)했다. 우리 문학사에서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장구한 세월 동안 굴곡이 많은 한국 현대사를 시와 더불어 헤치고 나온 여정이었다. 고은 시인은 순수와 참여의 두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지향점은 상실의 비애에 두지 않고 고난과 고통을 견디고 오롯이 피어나는 것들을 미구(美句)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필생의 역작인 「만인보」라는 경이에 가까운 시편을 통하여 다양한 인물 군상을 살아 있는 역사로 체현하고 있다. 고은시인이 반세기 동안 견지해온 시의 동력을 결집한 시집「허공」에 내재한 시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귀결된다. 첫째는 불교적 견지에서 자아성찰이 돋보이는 관조적인 시, 둘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의를 질정(叱正)하는 시, 셋째는 인간생명의 고양을 통한 인류애를 추구한 시를 들 수 있다. 이는 고은 시인이 필생을 천착해 온 시정신과 부합되는 것으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의 양상도 변모를 거듭해 왔을지라도 대강(大綱)은 이 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고은 시인이 등단 이후 민족문학의 진영에서 이룩한 성과는 항상 거론되는 유수 문학상의 후보자에 추천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는 듯이 누구도 부인 못하는 위대한 업적이다. 시집「허공」에서 시인이 지금까지 일궈온 시의 업적을 모두 보여준다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언정 부분적으로 시인이 걸어 온 궤도를 엿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시편을 통하여 시집전편을 꿰뚫어보고자 한다.
사랑이든/사랑의 밑창/미움이든/그것 뛰어넘어서//너 거기 허공에 대고/총을 쏘아 보았어?//…//허공은 적이 아니더군 「추억 하나」부분 누구 때려죽이고 싶거든 때려죽여 살점 뜯어 먹고 싶거든/그 징그러운 미움을 다하여/한자락 구름이다가/자취 없어진/거기/허공 하나 둘 /보게/어느날 죽은 아기로 호젓하거든/또 어느날/남의 잔치에서 돌아오는 길/괜히 서럽거든/보게「허공」부분 이로부터 내 어이없는 백지들 훨훨 날려보낸다/맨몸/맨넋으로 쓴다/허공에 쓴다//이로부터 내 문자를 버리고 /허공에 소리친다/허공에 대고/설미쳐 날궂이한다「허공에 쓴다」부분 사람들은 분개하거나 적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허공에 분풀이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속에 총 한 자루를 가지고 살며 허공에 총을 겨누어 보았을 것이다. 총은 적을 향하여 작렬하는 살상의 도구이므로 허공은 인간에게 만만한 적(敵)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단호하게 허공은 적이 아니라고 일갈한다. 인간의 분노를 다 받아들이는 허공이야 말로 시인이 지향하는 피안이 아닐까 한다. 시인에게 허공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수습하는 공간이다. 허공은 불교의 사상적 지탱인 공(空)사상과 밀접한 관련 있으며, 대오각성의 의지를 허공을 통하여 분출하고 있다. 허공을 직선으로 나는 총알은 마침내 포물선을 그리고 '검불 하나도 건드릴 힘없이 떨어진 곳'이 시인의 지향점이 아닐까. 직선으로 치닫는 현실세계에서 무디고 무딘 포물선을 그리는 지점은 허공이다. 오욕칠정의 인간의 모든 탐욕을 탈각(脫殼)하고 무아(無我)의 공간인 허공을 시인은 영육(靈肉)을 다하여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60년 전/여순사태 그때/14연대 반란군이/지리산으로/지리산으로 들어갔는데/그 빨치산들에게/밥해주었다고/밥해줄지 모른다고/마을 남정네 데려다 죽이고/아낙들 죽이고/다 불질러버린 빈 마을 잿더미에/에라잇 에라잇/산수유나 심어버렸네 「산수유꽃」 부분 울고 난 뒤에도 사라지지않누나//뛔저라/뒈저라/얻어맞고 난 뒤에도/이 욱신욱신 쑤셔대는 몸으로도/내버려지지 않누나//사흘 굶고/겨우 무청 국물 먹고 난 뒤에도/앞산 보며/영영 잊혀지지않누나//돌이켜보면 백년 억압에도 묻혀버리지않누나 「호소」부분
이제 나에게 울음이 없다/날마다 바빌로니아인들이 죽어가는데/저 봉천동 윗말 할머니 여생에는/식은 연탄재뿐인데/두만강 숫처녀가 갈보가 되는데/팔레스타인 아이들이/허리에 폭탄 매고 달려가는데/서울역 지하도 노숙자가/신문지 덮고 뻐극뻐극 앓고 있는데//아, 이 세상에 더 이상 눈물이 없다/실컷 울고 난/푸른 하늘이 없다/그 많은 푸른 하늘의 신들 다 죽어버렸다「나에게 눈물이 없다」부분 어디쯤인가?//캄보디아/바람 잔 마을/지뢰 밟아/다리 하나 잃은 아이/눈동자 고요하였다//그 아이에게 물었다/이름이 무어냐고//라이라 하였다//그 아이에게 물었다/네 희망이 무어냐고//그 아이가 좀 크게 대답하였다/남은 한쪽 다리 잃지 않는 거라고//앙코르와트 어디쯤인가?/옛날의 짝 잃은 수코끼리 울음 어디쯤인가? 「앙코르와트」전문 시인에게 눈물로 점철된 세월보다는 정의롭게 구동(驅動)할 수 있는 수레바퀴가 없음을 메말라 버린 세상을 향하여 통탄하고 있다. 가깝게는 봉천동 독거노인부터 탈북여성, 팔레스타인의 전쟁희생양이 되어버린 어린이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다. 살상용 지뢰를 밟아 불구가 된 아이의 소박한 희망을 통하여 인간이 인간에게 가해지는 용인할 수 없는 잔인한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종국에는 절대자인 신에게 원망도 불사하는, 시인의 아픔은 극점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이 보고 싶은 '푸른 하늘'과 가고 싶은 '앙코르와트'를 통하여 인류 구원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시를 쓴지 50년이 되는 문맹률 0퍼센트의 시절, 내가 시인이라면 세상의 한모서리가 이 지경이겠냐, 고 자책하는 시인의 목청은 왠지 숙연해진다. 시인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자괴감보다는 시가 변혁의 동인(動因)이 되지 못했다는 뼈아픈 토로겠지만, 고은 시인은 '여생의 숙주(宿主)역시 변함없이 시'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이런 시혼(詩魂)은 거침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여백을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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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좋아한다.
짧은 단어, 짧은 문장에도 그 느낌을 다 포함할 수 있기에 사랑스럽다. 그래서 나 또한 장문 보다는 늘 단문에 더 강하다고 생각했었다.
수능을 본 직후, 난 집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부끄러운 것도 있었고,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도 감출 수가 없었다. 가족도 내가 걱정이 되지만 쉽사리 위로의 말을 건낼 수도, 그리고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후, 나름의 만족을 가지고 대학생활을 하던 나에게 처음으로 학벌에 대한 부러움을 가지게 한 뉴스가 있었다. 바로 '고은'시인의 서울대 강의 소식이었다. 왜 나는 더 공부하지 않았을까. 이때까지 잘 참아온 만큼 더 참았으면 됐는데 하는 아쉬움.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간혹 나오는 노벨 문학상 소식. 번번히 들려오는 아쉬움. 그리고 내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읽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다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접하고 즐기고 있을 때 '파주북소리축제'는 나에게 정말 또 하나의 축제였다.
망설임 없이. 시간을 아까워 하지않고, 얼굴에 철판도 좀 깔고 나름 좋은 자리에서 열심히 '고은'시인의 낭독회를 참여했다. 부끄러웠던 점은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시집 한 권 없었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알고 있으면서도 준비 못한 내가 봐도 참... 그렇게 나름 제목이 맘에 들었던 시집 중 한권이 바로 '허공' 시인의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이었다.
사실, 생각보다 시인의 시는 그렇게 단편적이거나 함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시가 아닌 정말 단문의 글이라고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시는 어느 곳에서나 가볍게 연속되지 않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다는 점에서 참 좋다. 소설과 같은 장문은 끝날 때 까지 기달려야하는 묘미가 있다면 시는 짧기 때문에 여러번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묘미가 느껴진다.
내 버릇중에 하나는 모든 책을 서문부터 끝장의 날인과 표지의 광고들까지 다 읽는 버릇이 있는데, 시집의 마지막 한켠에는 역시 추천사가 포함되어 있다. 다시 한번 놀랐던 사실은 시인이 불교에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종교에 구애없이 누구나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역시 문화와 예술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냥 스쳐 지나가면 시는 짧고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세월에 맞춰가며 내가 그 시와 동할 수 있을 때 그 짧은 어구들의 묘미는 다시 한번 나를 전율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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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
깨쳐라 나는 내가 아니다 극도로 너도 네가 아니다
지금 진달래꽃이 나오려 한다 개나리꽃들도 과감하게 나오려 한다
이 흔해빠진 것들의 직전에 감사한다 아직 멸종되지 않은 박태기꽃도 좀 있다가 나오려 한다 박태기에게도 감사한다
온 마을 가득 암내가 진동한다
모든 개념분석들 모든 논리실증주의들 모든 경험론들 모든 좌우 도그마들 이 꽃들의 암내에 씨근벌떡 쓰러지거라
모든 관념들의 오랏줄 사슬 차꼬 성춘향의 큰칼 풀려나 뛰쳐나와라 뛰쳐나와 봄처녀 한사코 붙잡을 저 녀석으로 오라
때가 왔다 어서 오라
시인의 이력을 보니 1933년에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세는 나이로 70대 후반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흔해빠진 것들의 직전에 감사’하는 시인이라니! ‘온 마을 가득 암내가 진동’하는 것을 맡고, ‘모든 관념들의 오랏줄 사슬 차꼬 성춘향의 큰칼 풀려나 / 뛰쳐나와라 / 뛰쳐나와 / 봄처녀 한사코 붙잡을 / 저 녀석으로 오라’고 소리치고 있으니! 한참 울근불근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힘을 가진 사내의 시를 쓰고 있다니! 청년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시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마흔을 넘기니 가깝게 지내던 선배들의 죽음을 가끔 맞이합니다. 허망하기 그지없이 쓰러지는 선배들. 채 쉰 살이 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만큼 쉰 살이 다가오도록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대견한 일인데 시인은 일흔을 훌쩍 넘기고 시력 오십 년을 지나면서도 청년의 시를 쓰고 있습니다. 더구나 첫 시집을 내면 대부분 조로하는 이 나라의 시단의 풍토에서 말입니다.
70대 후반의 청년 시인, 고은 시 세계는 참 넓은 스텍트럼을 갖고 있습니다. 그 동안 낸 시집 『만인보』나 『백두산』 들을 제쳐놓고 이번 시집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외국을 여행하며 쓴 시입니다. 특히 해발 사천 미터 턱밑에서 만난 티베트 거지에게서 들은 구걸인사, “당신께서 가장 높으십니다” 를 듣고 깨달음을 읊은 「라싸에서」는 고은의 여행 시 답습니다. 날마다 신생하는 시인의 글쓰기를 엿볼 수 있는 「허공에 쓴다」에서는 ‘백지들 훨훨 날려보낸다 / 맨몸 / 맨넋으로 쓴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분단 조국의 현실에 관한 관심의 끈도 여전하거니와 출가했던 시인답게 불교의 세계가 잔뜩 묻은 시편도 여럿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가장 깊이 가 닿는 작품은, 군에서 돌아온 사내가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며 우는 정경을 그린 서정시 「집」, 밤비 소리를 들으며 아주 짧은 글만으로 생의 통찰과 정경을 그린 「밤비소리」, 표제작이기도 한 다음의 작품입니다.
허공
누구 때려죽이고 싶거든 때려죽여 살점 뜯어먹고 싶거든 그 징그러운 미움 다하여 한자락 구름이다가 자취없어진 거기 허공 하나 둘 보게 어느날 죽은 아기로 호젓하거든 또 어느날 남의 잔치에서 돌아오는 길 괜히 서럽거든 보게 뒤란에 가 소리 죽여 울던 어린시절의 누나 내내 그립거든 보게 저 지긋지긋한 시대의 거리 지나왔거든 보게 찬물 한모금 마시고 나서 보게 그대 오늘 막장떨이 장사 엔간히 손해보았거든 보게 백년 미만 도(道) 따위 통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게
거기 그 허공만한 데 어디 있을까보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