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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심.부정하고싶다.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우린존재한다.
시기심이란 것은 보통 부도덕하며 옳지못한 가치로 인식되는 심리이다. 나역시 마찬가지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심리는 부정하고 싶으나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언제 어디에서 생길지 모르는 원초적 심리다.
< 행복과 만족은 충만한 삶을 제공한다. 행복과 만족이란 개념은 차원이 다른 두개념이지만 상보적인, 조화가 필요한 개념이란 생각이 든다.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성격이 시기하지 않는다 함은 거짓말일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게 주어진것은 덜한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넘칠만큼 많았다고나 할까.하지만 난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만족하지 못함에 목말랐고 만족하며 평화를 얻고 싶었다. 이책을 읽으면서 난 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실은. 그렇게 만족을 찾고. 여유를 찾으면서 실은 난 내옆에 있는 만족함의 평화로움을 보지 못하고 행복의 욕구를 더욱더 갈구 하고 찾으려고 노력했던 건 아닐까. 그런 나의 서툰 노력에 난 내가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지듯 만족의 결핍에서 당연히 힘들어 한건 아닐까. 난 사실. 충분히 만족과 행복의 지평선 중간에 설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참 정말이지 다행이다. 책 속에 소개된 윌리엄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나라는 존재는 내 것이라고 칭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총체이다. 여기에서는 자신의 육체뿐 아니라 집, 아내, 자식들, 조상들과 친구들, 명성, 작품, 땅, 말, 요트 , 은행계좌도 포함된다." "우리가 시기심을 참을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강하면, 시기심은 우리 자신의 인식을 넓혀주는 신호로 사용할 수 있다. 시기심은 우리의 가치, 명예욕과 정의감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적절한 것인지 어떤지라는 의문, 또는 우리를 어쩌면 더 행복하고 만족하게 만들어줄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기는 경우이다. "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은 "시기심의 대응"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불러일으키는 시기심을 느긋하게 대할 수 있으려면(느긋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은 자기가치가 안정적이다는것이다.) 자기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재산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자부심이어야한다. 왜냐하면 거짓된 자부심은 자신을 과장되게 평가한 결과이고, 열등감을 속이려는 엉성한 가면이 되기 때문이다. > 작가는 이것을 마지막에 자기관리와 시기심 참기라는 점에서 현명한 방법으로 위와 같이 언급하였으나 읽는 내내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는 배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난 독자로서 그 몫을 찾는데 조금은 시간이 걸렸으나 밝히자면. 시기심은 마이너스측면이 강하고 그것도 사회적으로 마이너스다. 안좋은것이다.이렇게 비춰지고 때문에 감추려는 속성이다. 하지만 이는 누구에게나 있는 지극히 본질적인 것으로 그것을 인정하고 삶에 대한 열정, 일에 대한 동기(자극제)로 환원될 수 있을때 우리는 시기심아래가 아닌 그 위에 선 자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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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적나라하게 말할줄은 몰랐다. 그것도 독일인의 심리학자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비수는 과히 나의 막혀있던 혈관을 관통한다. 신은 우리에게 처음부터 사랑의 감정과 함께 시기심을 주셨다. 그렇다면 과연 현대사회에서 평등은 존재할수 있는 것일까? 시기심은 닫혀있던 우리의 감정들을 쏟아내는 데 무리가 없다. 카인의 표시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기심은 유혹과 다름없으며 때로는 시기심을 통해 살인도 서슴치 않고 행하기도 하고 또한, 시기심을 통해서 나는 누구인가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나는 누구를 시기하고 있는까?누가 나를 시기하고 있을까? 대선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서로 자신이 지지 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이는 시기심과 관련이 있기도 한 것 같다.그러나 우리는 입을 닦는다. "쉿!" 아무한테도 말하지마..라고... [인상깊은구절] 영국의 작가 하틀리는 "얼굴의 정의"라는 제목으로 그 같은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우토피아를 보여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하다. 그같은 평등이 있다고 한다면, 독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독재조차도 서로 구분되도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진정시킬수은 없다. 하틀리는 전체주의적인 사회데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이 사회가 추구하는 지고의 목표는 시민들간에 시기심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모든 차이를 제거하는 것이다. |
|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여러모습을 나를 인정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특히나 복잡해진 요즘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가 수많은 관계를 맺으면서 "나"는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그 "나"와 다른 이들 사이에서 야기되는 시기, 질투, 미움, 사랑 등의 감정이 얼마나 많은지.. 근데 신기하게도 저자는 시기를 미움이나 질투와 차별을 두고 좀더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모호하게 마음속에 있었던 감정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명확히 깨달아갈 수 있었는데, 저자의 논리적이고 명석한 글들은 조금은 무게감 있는 주제들을 이해하기 쉽게 도와준다. 그런 점에서 안경이 필요했던 이에게 안경을 준 것 같다. 난 이 글을 읽고나선 내가 가지고 있었던 시기를 인정하는 것부터 배웠다. 그러고나니 변한 것이 있다. 감정을 전달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좀더 솔직해졌다. 그리고 내 감정을 합리화해서 다른 사람에게 느끼던 시기와 질투에 대해 마치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생각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나 자신을 본다. 부끄럽지만 그것이 나이니까. 그런 부분이 어디에선가 표시가 나는지, 친구들에게 달라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뿌뜻하다. 이제 시기를 인정하는 나가 있어서. 소유를 최소로 하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수행자들 처럼 우리도 우리의 영혼의 무게 중에 이런 감정들을 버릴 필요가 있다. 나는 그 방법을 이 책에서도 일부 찾아서 애착이 더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