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척이나 존경해마지 않는 이윤기의 글이지만, 화장실에서 거의 대부분을 읽었다. 대개 화장실에 갈때에는 서가에서 읽지 않은 책을 뽑아들고 나름대로 탐색의 시간을 갖는게 습관인데, 한동안 유독 이 책만을 뽑아서 들락거렸다. 주변의 이야기들이다. 특히 스스로 밝히고 있듯, 신변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쓴 글도 있으니, 나같은 팬에게는 하나의 선물과도 같다. 읽는이로서의 부담도 없다. 과천에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과천 주변의 생활 풍경이 어떠하며, 슬하에 아들 딸이 하나씩 있는데 딸은 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다. 심지어 한 시간 안에 소주 30잔을 마시는 주량도 알 수 있다.(소주 1병은 꽉채운 7잔이 나온다. 1시간에 4병이라는 무시무시한 주량이다) 그 시시콜콜한 이야기 속에서 경상도 출신의 보수적이고 학식있는 노인네의 인생 철학을 엿본다. 하지만 글쟁이의 주변 이야기란 결국 글 얘기가 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읽는 사람 역시 글쟁이라면 안그래도 일부러 글 얘기만 골라서 읽을 판이다. 당연히 글쓰기에 대한 글들이, 문구들이 눈에 확확 와닿는다. 이윤기 같은 '선수'도 이 점은 아마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잘 쓴 글쓰기를 보면 스스로를 돌아보며, 뭔가 배워나가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제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소개된 사람 중의 하나가 정운영이다. 이미 <무지개와 프리즘="">에서도 정운영의 글쓰기에 극찬한 적이 있는 이윤기지만 그것만으로는 칭찬이 모자랐다고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장거리 약장수가 약을 팔려면 먼저 사람을 끌어모아야 하듯이, 글로써 자기 뜻을 전하려면 먼저 독자를 글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읽게 해야 한다. (중략) 노회한 약장수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다짜고짜 만병통치약 살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정운영)는 먼저 여흥을 베풀어 사람들 마음을 느슨하게 푼 다음에 본론을 슬그머니 내어 놓는다." 이미 5년전에 했던 칭찬과 다를 것이 없다. "그(정운영)의 글은 간명하고 재미있다. 왜 재미있는가? 그는 인문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다. (중략) 그는 독자에게 친절하다. (중략) 독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무지개와 프리즘=""> 중에서) 바로 이 침튀는 칭찬에 힘입어 뒤늦게 정운영의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를 일독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윤기의 저서가 나오면 일단 사고 보려는 '이윤기 병'에 덧붙여, 동시에 '정운영 병'의 합병증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오늘 나는 어쩌면 또다른 병의 단초를 얻은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있다. 그것은 이문구 병이고, 투르니에 병이고, 김화영 병이다. 과연 바이러스가 침투했는지를 진단하는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적어도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이문구)를 다시 한번 읽어 보거나, <짧은 글="" 긴="" 침묵="">(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번역)을 일독한다는 정밀 검사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큰 감흥을 일으킨 텍스트는 아니었지만, 제목으로 쓰인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이 무엇인지 정도는 밝히고 이 짧은 독후감을 마무리하는게 좋을 듯 하다. 이윤기는 그것이 '심심풀이'와 '얼렁뚱땅'이라는 변종을 가진 '낭비한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화장실에서까지 이 깊은 지혜를 얻어가는 나 정도면, '나 역시 어제 그 괴물을 죽였노라'고 말할 수 있는건가?짧은>내>저>무지개와>무지개와> |
| 멀리사는 친정언니집에 늦게까지 꾸물데다가 늦어서 그만 급한마음에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중이였다..라디오에서 저자와의 대담이라는 내용으로 이윤기님의 목소리를 들었고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이라는 낯설은 제목의 책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저자의 목소리를 들은 탓일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윤기님이 직접 그 목소리로 나에게 애기를 해주는 기분이였다...차라도 한잔하면서 나누는 담소랄까.... 내 이웃과 나누는 대화같았고 내 선배와 나누는 애기같았다... 덕분에 이윤기님의 책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이문구님의 책도 아울러 찾아보게 되었다..암튼 기분좋은 우연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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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학자로, 소설가로, 번역가로, 또 수필가로 만나보게 되는 이윤기는 언제나 즐겁다. 이 책은 그를 좀더 인간적으로 만나볼 수 있게 해준다. 미국에서 잡던 연어이야기에서부터 점심식사로 먹는 깔끔한 초밥 예찬, 이산가족 상봉 장면에 대한 생각, 현재 속에 생생히 살아 숨쉬는 신화, 존경하는 작가들의 이야기 등 실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이 책을 수놓고 있다. 그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잔잔한 사색과 혜안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가 내놓은 또 한 권의 부드럽고 넉넉한 책이다. ''책을 너무 자주 펴내게 되어서 민망하다. 어쩌랴. 이것이 나의 직업인 것을. 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고 하셨는데, 아니다. 자주 내셨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상봉 장면을 보면서, 남북한 사람들의 옷차림을 견주지 마시라. 북한 사람들이 <수령님>이나 <장군님>을 칭송하더라도 제발 이죽거리지 마시라. 우리도 올림픽 같은 데 나가 금메달을 따면 <부처님>이나 <하느님>에게, 심지어는 <회장님>에게까지 영광을 잘 돌리지 않는가? 미스 코리아 먹으면 미용실 원장에게도 영광 잘 돌리지 않는가? // <퀴베르네테스(cybernetes)>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발명한 것으로 전해지는, <키잡이(steersman)>가 내장되어 있는 로봇이다. 20세기 초 인공두뇌 학자들은 이 단어를 <인공두뇌학>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것이 바로 <사이버네틱스(인공두뇌학)>이다. <사이버(cyber)>라는 말이 없으면 이야기가 안 되는 시대를 연 것은 신화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사이버(cyber)>사이버네틱스(인공두뇌학)>인공두뇌학>키잡이(steersman)>퀴베르네테스(cybernetes)>회장님>하느님>부처님>장군님>수령님> |
| 두루 해박하신 이윤기님의 산문집이어서 처음엔 다소 진중한 태도로 시작했지만 유쾌하고 가볍게 마지막장을 덮었다. 다른 데서 낯익은 듯한 두어편의 글도 반가왔고, 짜투리 시간에 한 두편씩 읽고 다음번 책을 열 때 먼저 글의 내용을 되씹어 보는 재미도 좋았다. 예스24를 이용하고부터 그 때 그 때 읽을 책을 카트에 넣어 두었다가 매월초 한차례씩 주문하여 읽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윤기님의 글 속에 있는 책을 추천도서 삼아 찾아보는 재미도 컸다. 이윤기님의 어린시절 성장을 보면 가부장적이고 편협한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을 갖기 쉬운 배경을 갖고 있지만 그의 배움이나 스스로 선택한 중후반부의 삶이 이 땅의 남자로서는 좀체 하기 어려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충고를 서슴지 않는 것을 보고 책을 읽으며 마음속의 박수를 친다. 출퇴근길 버스나 지하철, 점심식사 후 수다 대신, 망중한에 적당하고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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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이번에 이윤기씨가 죽인 괴물은 무엇일꼬..책을 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개인적으로 이윤기씨의 글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생각이 되어졌던 어느 한순간, 삶의 군더더기들이 참으로 귀찮아졌었다. 생각에서도, 대화에서도,살아가는 순간순간에서도 중심보다는 가장자리가, 핵심보다는 군더더기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나의모습이 볼쌍사나왔었다. 그때쯤인가보다.이윤기씨의, 내가 참으로 싫어하는 군더더기가 하나도 붙어있지 않은, 핵심만 단순명료하게 쓰여져 있는, 짧은 소설을 하나 읽게 되었다. 그리고는 만났던 몇권의 책들속에서, 나는 그의 삶의 방식역시 그의 글과 참으로 유사하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는 치열한 노력이,고스란히 그의 사유가 되어져 글로 놓여진다는것을 말이다..
그의 과거 이야기, 환경, 음식에 관한 이야기, 빼먹을수 없는 신화 이야기,그리고 어렵지 않지만 깊은 삶의 성찰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있는 이책에서 그는 그가 어제 죽인 그만의 괴물이 그가 죽이고자 했던 <얼렁뚱땅>과 <심심풀이>라는 괴물대신에 <시간>이라는것에 상심해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다시 한번 노력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번역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가졌던 자만심을 인정하면서도 글로써는 진리를 전할수 없다라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고, 그것을 시작할수 있는 것이 바로 글이라는것에 대해, 글로써 진리를 건드리고 다가갈수 있다는것에 희망을 가지며 글을 끝내고 있다.
그러나 이 시작과 끝 사이에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지표가 되어질수 있는 그만의 사상이 고스란히 젼해져오는 글들이 가득하다. 혼자만의 사유로는 삶을 살아갈수 없다. 결국 인간은 상호의존적이며 상호 보완적이고,그렇기때문에 지켜져야 할 서로간의 존중에 대한 글들도 빼먹을수 없는 부분이다. 군더더기라는 가지를 쳐낸 그의 글들은 자칫 딱딱하고 건조하지만, 다시한번 문득 되씹어볼수 있을 정신적 여유를 주게 될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죽여야할 나만의 괴물은 여전히 살려놓으면서 애꿎은 나의 생의 일부분을 죽이고 있는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인상깊은구절] 활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삼는다는 말 한마다. 수십년 내 염두를 떠나지 않는 말 한마디. <세번 쏘았는데도="" 과녁에="" 맞지="" 않으면="" 활쏘는="" 나의="" 자세를="" 살핀다=""> 어떤 사물에 대한 나의 좋은 감정, 싫은 감정은 <나의 호오="">일 뿐이다. 그런데 내 감정이라는것이 늘 바르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잘 훈련되어있지 않을경우 감정는 매우 감정적이다.그르게 작용하는 경우가 더 잦다. 채소를 잡초로 여기고 맹렬한 적의를 품은 일이 왜 없겠는가? 어떤 밭에서는 나도 필시 잡초일터이다.나의>세번>시간>심심풀이>얼렁뚱땅> |
| 사람들이 쓰는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삶이 어떠할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때가 있다..적어도 내 경우에는 인문서를 읽든지, 소설이나 시를 읽든지 글쓴이에 대해 한 번 쯤은 상상을 해본다..이윤기씨의 책을 그리스 로마 신화로 처음 접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장미의 이름과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번역서로 그 다음에는 그의 소설들로 또 그 다음에는 이윤기가 건넌 강으로..나는 이 책들을 토대로 그를 알아왔다..중간에 그와 딸의 대담에 대해서 읽은 적도 있다..그의 책 숨은그림 찾기 처럼 난 그가 쓴 책들을 보면서 그만의 어떤 '코드'를 찾으려고 애쓴 것 같다..그래서 이 책을 읽게된 것 같고..또 시간이 지나서 그도 나이를 먹고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난 계속해서 이 작업을 해 나갈 것이다..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난 무척 궁금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건 예전에 그가 썼던 문장인데, 들었던 얘기인데 하는 부분이 참 많았다..그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잡문을 자제하라는 이유 중의 하나도 아마 이런 반복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 속에서도 난 그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페미니스트적인 면이나 아주 사소한 습관들이 그 예가 될 수 있을것이다..그러나,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내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다른 책과 작가들과 다리를 놓아 준 것이다..김화영,이문구,푸르니에등의 이름을 머릿 속에 메모하여 나중에 서점에 가면 꼭 찾아보리라 다짐할 수 있었다..이 책 한 권으로 내가 읽고 싶어진, 읽어야만 될 책들이 고구마 들처럼 한 번에 달려 올라온 셈이다..아빠 뻘 되는 이윤기씨와 좀 더 친근해진 듯한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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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산문집이다. 저자는 그리스 신화와 번역가로 알려진 이윤기님. 나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의 번역서를 읽었고, 그가 수많은 팬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우리 아빠만큼 나이가 드신 분이었으니, 아마 그의 동네라는 과천에서 만났다면 난 서슴없이 선생님 보다는 아저씨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을까? 그의 박학함에 놀라기도 했었지만 그의 생활인 산문을 읽으면서 바르게 늙어가시는 그의 모습에 더욱 그를 정겨운 작가로 느끼게 한다. 본인의 일에 무엇보다 열심이며, 잘못된 것을 깨닿는 순간 실천에 옮기려는 그의 자세가 완고한 아저씨들과는 달라서 좋고, 군데 군데 나오는 신화얘기도 재밌는 읽을 거리다. 하지만 무언가 깊게 사색하고 책상에 앉아서 읽을 책을 찾는다면 다른 책을 찾아보길.. 전철에서 상당히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가볍고 재밌는 읽을 거리이므로.... [인상깊은구절] p199- 무엇을 먼저 안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미리 아는 것이 안기는 고통이 어떤것인지를 깨달았다. 예언자들은 무척 불행했겠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내일을 알지 못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도중에, 젊은 시절에 부르던 노래 <젊은이들 (the="" young="" ones)="">의 노래말 한 구절이 떠올라, 차를 새우고 다시 읊조렸다.<때로 내일은="" 오지="" 않기도="" 하는="" 날이지요.="" ('="" cause="" tomorrow="" sometimes="" comes)="">. // p222- 어떤 사물에 대한 나의 좋은 감정, 싫은 감정은 <나의 호오="">일 뿐이다. 그런데 내 감정이라는 것이 늘 바르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잘 훈련되어 있지 않을 경우 감정은 매우 감정적이다. 그르게 작용하는 경우가 더 잦다. 채소를 잡초로 여기고 맹려한 적의를 품는 일이 왜 없겠는가? 어떤 밭에서는 나도 필시 잡초일 터이다.나의>때로>젊은이들> |
| 우리에게 매일 떠오르고 가라앉고 스쳐지나가는 생각의 가닥을 잡아 그것을 풀어가는 사람들의 글이 있다. 안개 속에서 희미한 형체만 보이는 것 같은 그런 것들을 붙잡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그것. 그것이 바로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다. 저자의 가족사(史)부터 시작해서 먹을거리에 대한 이야기, 고향에 대한 이야기 등 우리가 늘 접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세심하게, 다른 시각에서 보는, 많은 책과 사람들이 그의 글을 함께 풀어나간다. 짧은 글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뭔가 하지않은(혹은 '하지못한'일지도) 말들이 남아있다는 냄새가 풍긴다. 아쉬움이랄까. 나머지 부분은 스스로 이어갈 수 밖에. 이제 50대 후반인 이윤기씨의 인생 돌아보기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루하루가 아니라 일년단위라도 좋으니 저렇게 차분한 <돌아보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돌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