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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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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를 읽고 나면 대개 하는 말이 '허무하다'이다. 왜 허무하다고 느낄까? 장자는 결코 시니컬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동적이지도 않았고 소극적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허무하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아마 진짜 장자가 아닌 누군가의 손을 거친 장자를 읽어서 일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많은 책들이 그렇지만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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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를 읽고 나면 대개 하는 말이 '허무하다'이다. 왜 허무하다고 느낄까? 장자는 결코 시니컬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동적이지도 않았고 소극적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허무하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아마 진짜 장자가 아닌 누군가의 손을 거친 장자를 읽어서 일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많은 책들이 그렇지만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오래 읽히는 책일 수록 이런 경향이 심한 경우가 많아서 '장자'도 그 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책은 원문 '장자'가 아니다. 장자는 춘추전국시대에 쓰여졌다. 춘추전국시대는 철기가 들어올 무렵이다. 철기가 들어오면서 곳곳에 전투가 일어나던 그 때이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5세기 경에 철기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은 조금 더 빨랐다. 그리고 약 100년간 청동기와 철기가 같이 쓰이다가 철기가 완전히 퍼졌다. 즉, 퍼지는 데 100년이 걸린 것이다. 그 사이에 중국 뿐아니라 세계 곳곳에 전쟁이 일어났다. 고조선은 청동기에 성립된 고대국가이고 위만 철기를 들고 들어와서 위만조선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고조선이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통치하고 있을 즈음에 '장자'가 쓰여진 것이다.

 

 이렇게 오래된 책이 아직 읽혀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읽히고 연구되고를 반복했다. 유교나 불교처럼 조직화 된 적도 큰 세력을 가진 적도 없는 도교라는 것의 경전처럼 되어버렸지만 사실 '장자'는 도교의 경전으로 쓰이라고 쓰여진 것은 아니다. 이 책은 평전이라고 쓰여있지만 장자의 일생을 담겨있진 않다. 장자 철학의 개론서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장자가 쓰여진 시대의 상황, 장자가 이런 말을 했을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장자 철학의 상세내용들이 쓰여져 있다.

 

 장자는 시대의 지식인 이었다. 하지만 재야의 지식인 경향이 강해서 누군가 중용하려고 했도 결코 떠나지 않았고 자신의 생계를 위해 짚신삼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자가 숨어있었던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투쟁적이었으며 사회의 변화를 원했다. 끊임없이 이야기했고 소리질렀다. 많은 사람들이 귀기울였고 장자를 스승으로 모시길 원했지만 결코 그러지 않았다.

 

 장자가 원하던 세상은 앞으로 가는 세상이 아니라 뒤로가는 세상이 었다. 국가가 없어지고 군주가 없어지고 성인이 없어져서 모두 평안했던 그 때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이 말은 과거지향적인 말로써 이 책의 저자는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통을 겪고 있던 세계에서 아마 이 말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과거로 돌아가고자하는 사람이 있고 과거의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더 편해졌지만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장자가 있었던 시기에도 해당되었던 말이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에 정복을 원하는 군주와 이를 보좌하는 사람들 장자의 눈에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었으리라 생각되었을 것이다.

 

  장자는 직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입을 빌린 우화들로 뜻을 전하고 있다. 많은 비유와 우화들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일깨우려고 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은 이치이며 또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 했다. 이 이야기들은 불교의 교리와 어울려 중국의 불교가 뿌리내릴 수 있게 하였다. 불교와 어우러져서 세속과 등지려는 면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는 데 이런 면이 장자를 읽고 허무하다라고 이야기하는 이유일 것이다.

 

 도교가 조직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선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불교와 토속신앙의 영향이 크다. 신선에 대한 이야기는 어릴 때 한 번쯤 안들어본 사람이 없고 절에는 벽 한쪽에 산신령님이나 용왕님의 그림을 붙여놓고 있다. 장자는 애환이 많고 언제나 힘들었던 민초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있는 '민초들의 도'를 추구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힘을 빼기를 원했고 마음대로 되는 것 없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도록 했으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를 바랬고 나고 죽음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기를 원했다.

 

 허무하다고 이야기하고 덮어버리는 그 부분이 아마 장자가 이야기하고 싶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에게 한 번에 와닿지 않으면 덮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경향이 크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할 때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른 것을 찾아보기 일쑤다. 살아가다 보면 힘을 빼야하는 순간들이 분명 있다. 앞으로 전진만을 외치고 살 순 없는 것이다. 속도조절은 인생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자신에게 맞게 생각해보면 어떨까?'라고 말이다. 흔히들 맞지 않는 옷을 수선해서 맞게 만들어서 입는 것 같이 말이다. 도는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은 엄청나게 많다.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엄청 많다. 하지만 위험한 길을 차단하고 국경을 차단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길만 갈 수 있다면 오를 수 있는 길은 얼마되지 않는다. 올라가는 사람도 줄어들것이고 백두산에서 볼 수 있는 것들도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생각을 국경과 위험한 길 같은 것으로 다 막아버리고 한 길만 터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길이 아니라 남이 정해진 길만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한적이고 한정적인 것 밖에 못보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길이 넓어져서 생각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영혼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 탐난다!!! 



d****7 2012.05.02. 신고 공감 6 댓글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