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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동 앙드레 지드의 코리동을 책 소개에서 보았을때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좁은 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전원교향악등 많은 작품을 남긴 그가 생애 최고의 작품이었다 말한 작품이라니 고전문학을 좋아하는 나는, 그의 생전 엄격한 기독교적 가정에서 성장했고 병약하여 집에서 수학을 하고 동성애적 성향으로 심적 고통이 컸다 라는 소개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좁은 문과 전원 교향악 이 두 작품을 때때로 꺼내 읽어보며 꽤나 감격하고 감탄했던 나인데, 그의 생애와 성향에의 고민과 갈등에 대해서는 다르게 말 하자면 작가인 앙드레 지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 한 사실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동성애 성향의 깊은 갈등과 고민은 작품 코리동으로 만나볼 수 있다.
책은 동성애라는 도발 적인 문제에 대해 코리동이라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코리동이라는 친구와의 대화를 위해 "나" 가 찾아가 나누는 네번의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잘 접해보지 않은 짜임의 작품이고 생소하거나 무지로 알지 못하는 많은 예시들에 놀랍고 경외감마저 들었다. 지드는 작품의 첫머리에서 "무엇인가 비난 하거나 용인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로지 이성과 합리에 있음을 깨달은..."이라 말 하며 코리동인 자신의 자아번민과 고뇌를 한단계 한단계 정리하고 이성과 합리에 의해 논리적으로 풀어나갈 것임을 말 해 준다. 동물과 식물 곤충과 인간의 동성애 성향에 대한 많은 원리와 이론들을 해박한 지식과 철학자 과학자 작가 등등 수많은 학자들의 많은 저서와 말들을 인용하여 주장을 펼치는 코리동, 그의 말에 반론을 제기 하며 의문과 다름을 펼쳐놓는 나의 입을 통해 앙드레 지드는 자신의 갈등과 고뇌의 근원이었을 동성애 성향에대해 마치 스스로에게 정리하듯이 풀어놓는다.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해 볼까. , "동물의 속성이나 본질이 인간의 그것과는 다른 것만큼이나그들의 애정은 인간의 애정과 아주 다르다" 그리고 나중에 특별히 인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는 이렇게도 말했지. " 한 인간의 속성이나 본질이 다른 인간의 그것과 다른 만큼이나, 그의 성적쾌락도 다른 인간의 그것과는 자연이 구분된다
남색이라는 말이 성경에도 언급되는 것을 보면 굳이 동성애라는 것이 남녀를 구분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오래되었고 시대를 따져 보지 않더라도 얼마나 많은 논리와 반박과 죄악시함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관습의 현재 상황은 동성애적인 경향을 위선과 악의와 법률에 대한 반역의 배움터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잖아."(p123) 코리동은 성도착자와 정상적인 동성애자들과의 혼동에 대해 말하며 이 둘이 동일시 되어서는 안되며 이성연애자들 중에도 역시나 타락한 자들과 미치광이와 맛이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며 성도착자와 정상적인 동성애자들이 같이 치부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코리동의 생각인 동시에 지드의 생각일 것이다. 관습적으로 또는 관습적 교육적으로 선입관과 편견의 잣대가 동성애자들에게 더 엄격히 그어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하겠다. 작품을 읽으며 나 역시도 이성애가 당연한것이며 또한 그리 교육되었고 믿어온 것을 부인할 수 가 없었다. 자연의 순응에 대해 이의가 없으나 이성애 만이 정상이다 아니다를 떠나 잘못되고 비정상적인 이성애도 많음을, 그러므로 동성에에만 근거없고 이유없는 약한 논리의 비난과 비판을 할 수능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p.23)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자기만의 판단을 앞세우는 사람은 반박할 수 없는 진리로써 그 뒷받침을 해야한다. 그리고 진리를 자기 편에 두고 있으면서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무서워 그 진리를 고백하기가 두려운 자는 바보이거나 비겁자이다. 나만 빼놓고 온 세상이 모두 다 틀렸다고 말하기란 정말 어려운 노릇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것을 피할 수 있으랴? -대니얼 포우
인용한 대니얼 포우의 말 처럼 코리동은 또한 앙드레 지드는 화자인 나와 또한 나를 이해시킨다.
형식과 파격적인 주제로 번역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작품인듯하다. 그래서 지금에야 우리나라에 소개 출판된듯도 하다. 수많은 학자들의 저서와 인용하는 말의 어려움이 아니더라도 무지몽매에 작품을 읽는 내내 힘겨웠던 것도 사실이고, 생각이 미처 정리 되지 않아 몇번이고 리뷰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동 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하는 깊은 의문이 남음도 부인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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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삶이란 쓰디쓴 커피와 닮았다고 할까? 성공한 사람들은 설탕이나 첨가료를 어떻게 넣었을까? 단 줄 알고 마셨는데 쓰다던가, 쓴 줄 알고 마셨는데 달았노라. 이런 말은 먼 훗날 나이가 먹은(그것도 멋쟁이 할머니가 된) 내가 어린 새싹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너무 고정관념에 찌들어 있고, 사람이 만들어 낸 틀속에 갇혀서 그에 어긋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욕하는 세상이다. 물론, 현재만 그렇다는 건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다. 얼마전 읽었던 <다빈치의 생각의 연금술사>를 보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다. 아테네의 어느 길목을 지날 때 나그네는 그의 침대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는데, 침대라는 틀에서 몸 길이가 벗어나면 잘라버리고, 부족하면 늘리는 무서운 얘기였다. 오직 몸 길이가 일치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은 그 침대에 묶인 채 같은 방법으로 죽음을 맞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이야기. 나는 여러모로 생각하고 공감했다. 자신이 지은 죄악이 되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현재 우리 눈에 진리인 ‘틀'에 얽매여 행한 모든 것들이 훗날 돌아보면 한심한 짓거린 아니었는지.
그런 생각을 갖고 타인에게 얘기해봤자 철학하냐, 재미없다 소리나 들을게 뻔하고, 실천할 수 없다는 등 조롱이나 당하기 십상이지만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이나 틀 속에 얽매여 있진 않나 하는 발상의 전환이다. 나와 다르면 불안해지고 미워하게 되는 습성들을 하루 아침에 고칠수야 없겠지만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보는 눈을 기르자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이 책을 접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사실 기대를 했던 앙드레 지드의 작품, 코리동이다. 그의 대표작은 단연 <좁은문>이며, 그 밖에 <전원교향악>과 <콩고여행> 등이 있다. 나는 그의 작품은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고 그런만큼 표지에 새겨진 ‘미발표 소설'이란 문구는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쉽게 말해서 두 사람이 대화만 한다. 단 두사람…… 즉, 남성의 동성애에 대한 언급을 시작하는 코리동과 ‘나'라는 존재의 대화체이다. 소설이라 함은 주인공과 조연(?)이라 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시대적 혹은 공간적 배경이 존재하며, 갈등을 풀어나가는 요소들이 등장하는 것 아니었던가? 책을 펼쳤을 때 첫번째 대화,라는 문구를 눈에 새겼을 때는 그렇구나, 하고 지나갈 수 있었는데 두번째, 세번째 대화가 눈에 밟히자 정녕 끝까지 대화만 할 작정이구나, 하며 단념하게 했다.
책에 내용은 동성애에 대한 코리동의 견해를 여러가지 믿음직한 작품이나 인물들의 말들을 거론하며 선입견을 버린 이의 입으로 어떠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그 메세지가 어떤 것인지는 읽어보기를 권하겠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두번 째 대화'부터는 왜곡된 시선으로 뭐 이딴 책이 다 있어? 하며 책장을 덮게 될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에 맡기겠다.
나는 별을 두개 줄까 세 개 줄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별을 인색하게 주기에는 그의 어록은 너무나 멋졌다. 그래서 별은 네 개로 확정! 무기력해진 내 마음에 작은 불씨를 다시 지펴준 그의 책이기 때문이다. 초반에 실망감을 숨길 수 없었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너무 큰 기대감을 갖고 작품을 접한 것이 한 몫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등장했다. 그의 주옥같은 어록모음은 기승전결도 없어보이는 이 소설을 금새 국보급 선물로 변하게 해주었다. 맛보기로 보여주자면 이렇다.
모두가 위장을 하는 세상에서는 꾸밈없는 얼굴이 되레 위장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길을 바꾸면서까지 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란 없다. 어떤 일이든 모두 생기는 대로 맞닥뜨리자.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그들보다 훨씬 더 멀다.
중요한 것은 솔직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솔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슬픔이 생기도록 만드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눈물이다.
이 밖에도 주옥같은 말이 정말 많다. 그의 작품은 직접 눈으로 체험해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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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난 동성애자이다, 카메라 셔터가 쉴새 없이 터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상당기간 사회의 이슈가 되었었던 사건, 지금은 이런 뉴스에 대중들의 반응은 어떨까 ? 얼마나 많은사람들의 생각이 지금은 변화했을까? 또한 나는 이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코리동" 을 열었다,
코리동(corydon) 지은이가 선택할수 밖에 없었던 이름
금지된 것으로 여겨졌던 주제, 190-년 소송 사건으로 인해 도마위에 오른다, 맹목적 비난, 비웃음,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들, 자신의 판단을 분명히하기위해 주인공은 부자연스러운 기호(嗜好)를 갖고있다는 코리동을 만나기로 한다,
코리동을 만난다는 두려운 감정, 그 에게서 성적도착자들과 관련된 여성스러움의 징표을 찾아보려는 나, "동성애를 옹호함"이란 글을 집필중인 코리동, 둘 의 불꽃튀는(?) 대화는 시작된다, 코리동의 폭넓은 사상들 앞에서 동성애는 자연에 순행하는 취향으로 결말지을때까지, 일방적으로 그의 주장이 관철되어간다,
자연사 적인 입장에서 출발한 대화는 역사, 문화,예술의 과정을 거쳐 사회학자와 도덕주의자조차 흡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려한다, 위대한 사상가들의 말 한마디, 눈부신 사랑을 찬미했었던 대 서사시의 주옥 같은 구절들,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를 할때마다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그리스 조각상들, 이 모두 이성간의 사랑보다 더 순수한 동성간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코리동의 주장, 여기서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한 장면 "아가멤논을 향한 아킬레스의 분노는, 처음에는 그가 전투에 나서지 않도록 만든다, 하지만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아킬레스의 사랑은, 여자들의 사랑을 능가하는 것으로, 앞서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그를 전장으로 끌어낸다."p112 동성애가 이 토록 오래도록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런 지은이의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의 다양성은 위대하기까지 하다,
이 다양성으로 인해 난해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는 지금 저자의 말처럼 발언권이 나에게 넘어왔다, 나 와는 다른 성정체성, 동성애, 인정할수는 있어도 실질적인 교류나 만남은 거부하고싶다, 이런 나의 모순을 바라보며,,,,,,
끝으로 당부의 말을 하고싶다, 삼독(三讀) 이상은 꼭 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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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지드를 떠올리면 학창시절 필독 도서로 읽히는 도서중의 하나였던 좁은문이 연상되며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미발표 소설을 읽게 되는 설레임이 코리동에 대한 기대를 더욱 설레게 한다. 제목부터 특이한 코리동은 전원시에 등장하는 목동에게 붙여졌던 이름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이끌어갈 두 사람 중 한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코리동과 나와의 대화로 이어진다. 단순하게 두 사람의 대화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네 편의 대화로 이어진다. 동성애에 대한 다른 관점으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두 사람의 대화로 코리동은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반대편의 입장에서 열띤 논쟁을 하는 나는 이해되지 않는 코리동과의 열띤 논쟁을 벌인다. 그가 동성애적 성향에 대한 혼동과 갈등으로 고뇌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대화의 소재가 동성애라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고 할 수 있는데 작가 스스로 코리동이 가장 의미 있는 작품으로 지목되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앙드레지드는 동성애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심적으로 갈등하고 있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런 성향에 대한 갈등이 남다르게 컸음과 해박한 지식과 갈등이 대부분의 인생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을 작가의 고통을 대화의 내용에서 말하고 있다. 그의 깊은 지식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책의 대화에 나오는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밑줄을 그었던 대목이 표지에도 실린 것을 보고 내가 책을 제대로 읽긴 했나 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당시 나는 상당히 독서를 많이 했었다. 헌데 그렇게 책을 읽다가 한 번은 나한테 유익한 경종을 울려준 하나의 글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 그건 갈리아니 사제가 마담 에피네한테 보낸 글이었지. “중요한 것은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병과 더불어 태연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P.17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첫 번째 대화를 시작으로 네 번째 대화로 끝을 맺고 동성애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져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불꽃 튀는 대화속의 이야기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번역본이라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분명 깊이 있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을 들 수 있다. 자연에 있어 생식이란 그 행위는 유일하게 “자연스러운”것이기는 커녕, 그 모든 불편한 혼동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경우 요행에 지나지 않아. P.27 위의 문장처럼 대충 읽고 넘어가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 책의 두께로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그의 이름에 걸맞는 깊이를 알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 다소 난해하지만 앙드레지드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정독해서 읽어봐야 할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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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문으로 매우 유명한 대가 앙드레 지드가 스스로 "내 생애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업적"이라고 칭한 코리동. 제목이름에서 풍겨져 오는 포스가 앙드레 지드가 왜 "내 생애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업적"이라고 칭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코리동은 나도 처음에는 무척 낯설고, 우스광스러운 제목이었다. 하지만, 책의 서두에 코리동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이 단지 우리의 발음처럼 우스운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 짐작이 되었다. "코리동 (Corydon)은 흔히 전원시에 등장하는 목동에게 붙여졌던 이름으로, 특히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수의 목가에 등장하는 코리동은 어린 소년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이것이 첫번재 대화의 제목 아래의 역주이다. 이 코리동에 대한 소개에서 이미 어느정도 이 책에 대한 개념은 잡을 수 있었다.
코리동은 혈기 왕성한 소년이었으며, 작가는 코리동을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와 코리동은 바잘제트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기독교와 하나님을 마지막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작가는 코리동의 동성애적 성향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코리동은 정확히 흔히 말하는 게이라고만 정의할수는 없는 선구자적 모습이었다. 코리동은 자신 스스로 가지고 있는 동성애적 성향을 온전하게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작가는 그런 코리동을 완전히 이해할수 없이 그저 관습과 인류역사적 major에 집중되고 있었다. 코리동은 자신의 이러한 성향을 과거의 원시적인 인간 본연의 본성이 살아있던 시대와 그리고 자연적인 모습에서 찾으려 하였지만, 작가는 도덕과 윤리에서 그리고, 보편적 사회개념에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처럼 작가와 코리동은 줄의 양끝에서 자신을 향해 당기는 줄다리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네번째 대화를 통해 그들은 완전히 하나되지는 못하였지만, 적어도 등을 돌리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마주보고 또는 서로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기찻길 평행선이 되었다. 코리동은 단순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진보된 선구자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이었고, 작가는 그런 코리동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던것 같다.
사실 이런 점은 현대사회에서는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한 성향이 나와 다르고, 보편적인 모습과 다르다고 반드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다. 몇몇 곳에서는 동성자들의 결혼까지 인정하고 있는 시대이므로, 코리동이 이 책처럼 자신의 입장과 성향에 대해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와 유교 등의 여러 학파와 교리에 의해 인간들은 어떤 틀에 가둬지게 되고, 틀을 벗어나는 것은 반역이거나, 비판받는 관리의 속에 길들여지던 1900년대 초는 코리동의 이론과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난 앙드레 지드가 내 생애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업적이라고 표명할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앙드레 지드가 프랑수와 포르셰에게 남기는 1928년의 편지를 읽으면서 알수 있었다. 앙드레 지드 자신에게도 코리동과의 대화를 이렇게 책으로 남기는 것은 진정 위대한 용기를 가지고, 정면으로 맞선 작품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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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coming out] 이 말은 'come out of closet' 에서 유래한 용어로 '벽장 속에서 나오다' 라는 뜻이다. 사전적의미로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 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말한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연애인들을 중심으로 이런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서 당당하게 밝히는 모습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인식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많은 않아 보인다. 얼마전 모 인기 연예프로 그램에서 여장 남자로 출연했다가 실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장모씨가 자살 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회의 냉대와 따가운 시선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아 버린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커밍아웃을 선언했던 연예인 홍모씨의 경우, 당시 자신 을 자신을 더럽고 징그러운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자연적인것, 관습적인 것에서 어긋나는 모습을 극도로 부정하고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커밍아웃 선언은 이 처럼 파격과 도전이라는 두 개의 시선속에 존재한다. 지금으로부터 80년전 작품이 지만 여전한 논란이 예상되는 <코리동>은 그런 성정체성에 대한 철학적이고 현학적 지식이 넘쳐흐르는 그런 독특한 작품이다.
"중요한 것은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병과 더불어 태연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P. 17) 194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앙드레지드, 내생애 최고의 업적이라고 불렀던 그의 작품 <코리동>이 이제서야 우리 곁을 찾아온 이유는 아마도 이런 성정체성과 관련한 부분에 있어 아직까지도 보수적인 우리사회의 인식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된 다. 파리법과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기독교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나 엄격한 규율속 에 성장했던 앙드레 지드 그 자신에게 성적 정체성, 남성의 동성애란 주제는 어쩌면 그 자체로 파격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앙드레 지드의 커밍아웃' 이라고 말하고 싶다. <코리동>은 학교 친구였던 나와 코리동이 나누는 동성애에 대한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코리동과 그에 동조할 수 없는 나의 대화를 통해서 동성애의 본질을 이해하고 사회적 편견과 인간적 자유사이에 놓인 동성애의 모습을 철학적 접근을 통해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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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는 수많은 철학자와 그들의 말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코리동은 파스칼과
몽테뉴, 그리고 스피노자의 말을 통해 동성애가 자연적인 것에서 벗어난다고 말하 지만 그 자연적인것 이라는 생각은 단순히 우리의 습관과 관습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인간의 속성이나 본질이 인간마다 다르듯이 성적 쾌락도 다른 인간의 그것과는 자연스럽게 구분된다고 말하고 있다.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것은 결국 관습을 통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데 코리동은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책속의 나는 괴테의 말을 인용한다. 문화가 자연에 대해서 거둔 승리,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포기되어서도 안되면 내어 주어서도 안된다는 말로 대답한다. 소크라테스 대화법을 통해서 동성애에 대한 철학 적 접근과 다양한 인식을 전해주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주제 를 가지고 우리에게 편파적이지 않으면서도 사고의 다양성 인식시켜주는 철학적 향기를 가진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한다.
얼마전 모 케이블 TV를 통해 커밍아웃을 선언했던 모 연예인이 직접 진행하는 <커밍 아웃> 이라는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단순히 가십거리로 이런 성적 정체성과 자연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동성애를 바라보고 있어보인다. 모 연예인 동성애에 대해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이 말이 생각난다. '자신은 스스로 더러운 사람 이 아니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또한 더러운 사람이 아닌데, 왜 우리가 이것을 숨겨야 하느냐' 는 그말이 그렇게 가슴을 아프게 한다. 동성애는 어쩌면 종교와도 많은 관련이 있다.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 그의 말씀이 담긴 성경에는 동성애의 죄악을 저지른 소돔 과 고모라를 엄중히 벌하신 장면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고, 이슬람도 마찬가지로 동성 애에 대해서는 엄한 벌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종교적 억압보다 는 동성애자가 가진 인권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는 일은 관습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던 코리동의 말처럼 이제 종교와 어느정도 동떨어진 현대 사회는 관습보다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8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앙드레지드가 자신의 최고의 업적이라고 칭송했던 그 작품속에 담아낸 목소리가 그 힘을 얻어가는 듯하다.
이 책을 만나면서 내용이 너무 어렵고, 담고있는 메세지가 너무 파격적 이어서 당황하기 까지 했던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성적 소수자들의 픔과 그들이 말하는 성적자유에 대해서 깊이있게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것 같다. 쉽지 않았던 작품이다. 그리고 내용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성적인 부분을 포함해서 세상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앙드레 지드라는 그 이름을 찾아 선택한 작품속에서 노벨상에 빛나는, 그가 자신 생애 최고 업적이라 말했던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그의 문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코리동> 쉽지 않았고, 높은 벽처럼 느껴졌기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쉽게 잊히 힘든 작품으로 그렇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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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문, 전원교향곡, 콩고여행의 거장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이였던 앙드레 지드. 1924년 발표작이다. 동성애라는 당시에는 파격적인 주제로 출간당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저자 스스로 내 생애 최고의 업적이라고 불렸던 걸작. 코리동. 이 책에 대한 평점을 얼마나 주어야 할지 참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내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라는 생각을했다. 첫번째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지식이 있어야 조금은 쉽게 접근할수 있으리라 생각이된다. 역자의 주석이 아랫부분에 작은 글씨로 빽빽히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어렵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번째는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의 책이라고 쉽게 달려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딱 좋은 작품이다. 세번째는 독특한 구성이 아닌가 싶다. 소크라테스식의 대화식의 구성. 일반적인 소설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구성에 쉽게 재미를 얻지 못할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코리동과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씩 반론을 제기하고 답변을 하면서 주제에 다가서는 방식이 독특하다 말할수 있다. 네번째는 작품의 주제이다. 아버지로부터 프로테스탄트, 어머니로부터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지드가 기독교의 엄준한 모럴속에서 코리동이라는 동성애자를 표현한 것이 더욱 파격적이지 않았나 싶다. 동성애. 모 연예인의 커밍아웃선언을 한것이 겨우 몇년이 지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만으로도 한동안 방송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페리클레스 시정의 그리스나 아우구스투스 시절의 로마세익스피어 시절의 영국 등 역사에서 예술이 꽃피웠던 주요시기는 동성애가 스스로 눈에 띄게 드러냈던 시기와 일치했다고 한다. 코리동이 즉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비난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코리동은 자연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관습이라고 파스칼의 말을 인요한다. 오로지 이성애만이 자연스러운 사랑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관습에 따른것이라고 답한다. 당시의 상황에서 동성애를 표현한다는 것은 달리보면 관습에 대한 반항이 아니였는가 싶다. 예전에도 그랬으니깐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니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야 된다라는 관습. 그것이 파괴되고 깨어져야 발전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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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책을 보고, '얇구나!'라는 생각에 덥썩 집어들었다. 앙드레 지드 라면 사실 읽었다 싶은 게 [좁은 문]이랑 [전원교향곡]을 위시한 중단편집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말을 참 현학적으로 하면서 결론적으로 참 재미는 없구나' 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 것을 왜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긴 했다.
중편 정도의 얇은 소설로, 앙드레 지드가 이 소설을 쓰고는 "내가 이 소설을 쓸 때만큼 세상에 가치있다고 느껴진 적이 없다"라고까지 극찬했다고 하지만 이전에 국내에 번역된 것 같지 않고,이름도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 싶다.
아무래도 내용이 내용이지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그런 현상은 이 책 말미에 실린 다른 작가에게 보내는 작가의 편지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이 책의 주제가 '동성애'및 '인간 및 동물들의 성욕'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나름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알려진 작가가 이런 것을 썼으니 뭐. 당시대에는 욕을 먹어도 제대로 먹지 않았을까 싶다.
내용은 4일간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 화자가 '코리동'이라고 불리는 친구와(대략 '소년 목동'정도의 뜻인데, 실제로 지드의 다른 소설에서 약간 동성애틱한;; 분위기를 몰고 가는 주인공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나누는 대화를 기록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대화의 내용은 무슨 소크라테스 시대 선문답도 아닌 것이 매우 현학적이고 무언가 속에 끼워넣은 지식은 엄청나고 말들은 하나같이 화려하지만 사실 내용은 크게 없다. 무언가 잘난 주인공은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자신이 무언가 이것저것 틀에 갇혀있다는 것만 깨닫고 코리동은 동물이고 인간이고 온갖 책 및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다 끼워넣어가면서 친구에게 좀 오픈마인드(?)를 가지게 하려고 열심히 말싸움을 하지만 결국 친구는 이해는 하면서도 수긍은 할 수 없다는 태도로 한숨쉬다 나가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동성애의 사회 과학적 합리성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야 한 번 읽어봐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재미도 없고 말들이 과다하게 화려해서 두께에 비해서 읽는 속도도 오래 걸리고 한 3일째 대화에 가면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 싶지만 끝이 얼마 안 남아서 계속 읽게 되기는 한다. 나름 중간중간 다른 책 인용한 부분들은 간혹 재밌기도 하지만 좀 재밌을라치면 또 어려운 이야기 꼬아서 해대서 살짝 짜증남. 거기다가 중편 주제에 하드커버 갖다붙이고 12000원이나 하는 가격에는 조금 기분 나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읽어서 나쁜 건 없었지만 처음에 이런 사실을 알았으면 쉽게 손이 가지 않았을, 당시대에는 나름 파격적인 내용이었겠으나 지금 읽으면 그저 고개만 끄덕여지는, 살짝 어렵고 난해한 순수문학 부류라고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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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동이라는 제목만으로 이 책을 가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물론 프랑스 문학을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이야기이다. 코리동이라는 단어부터 알고 넘어가야 책에 대한 기본이 잡힐 수 있겠다. 그 단어는 책을 넘기자 마자 나오는 단어설명이다.
코리동(Corydon): 전원시에 등장하는 목동에게 붙여졌던 이름으로 특히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목가에 등장하는 코리동은 어린 소년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부분이다. 사실 동성애에 대한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이슈되고 있다. 어느 나라는 그것을 합법화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이 긴 잠을 깨고 출판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프랑스라는 배경에서의 이 문제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생물학과 철학과 진화론과 동물학과....................... 이런 모든 것들이 잡다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책이다. 다시 말하면 150페이지도 않되는 분량을 놓고 쉽게 생각하고 달려들다가는 포기하고 마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아마도 지루한 철학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쉽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철학은 철학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데 이 책은 사방팔방 이리저리 온동네(학문)를 휩쓸고 다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동성애를 옹호하고 있는 책이다. 동물학적인 접근과 고전의 관점을 사용하기도 하고 진화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옹호하기도 한다.
저자는 코리동과 다른 타자의 모습으로 코리동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지만 그러나 결론적으로 같은 입장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는 책이다. 1. 고전에서 여자대신에 남아를 출연시킨것은 사회적인 배경-여성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고 2. 동물의 동성애적 행태을 가지고 인간에게 대비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 과연 동물의 동성애적 행태가 자손번성의 행태일까 아니면 쾌락의 행태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3. 이유가 많지만 자손의 번성에 대한 이성과의 결합을, 쾌락을 위한 동성간의 결합과 같은 선상에 놓는 다는 것도 그렇다.
어쩌든지 동성애가 현재 세계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인권의 차원에서도 어느정도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러나 동성애로 인한 피해가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또 동성애도 어린 아이를 피해 주는 경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이 책은 동성애를 찬성하는 입장에서 이런 관점으로 이것을 찬성하고 있구나 하는 새로운 시각을 준 것이 의의로 남는 책이라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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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동 CORYDON 앙드레 지드 지음 |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앙드레 지드의 미발표작이자 자신의 가장 문제작이라고 표현한 이 소설에 대해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라니... 이 소설은 동성애자인 친구 코리동과의 대화로 이루어지고 있다. 코리동은“자연이 온통 천편일률적이 아니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까 자연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은 관습이다. 관습이야말로 자연을 속박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자연은 종종 관습을 뛰어넘어서, 온갖 관습에도 불구하고(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간을 그 본능 속에다 가둬두기도 한다”라는 말을 통해 이성애만을 자연스러운 사랑으로 간주하는 것은 관습의 횡포임을 주장한다.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는 자연이라는 세계에서는 이성애나 동성애의 방식은 물론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회적이나 종교적으로 인간의 사랑마저 하나로 만들어버린 관습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관습은 인간이 만든 것으로 원래의 자연을 그대로 담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호기심으로 접근하였으나, 단순히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글이었다. E. M. 포스터의 『모리스』나 그 외 동성애를 다룬 많은 영화들에서 그들의 사랑은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앙드레 지드는 비난과 동조의 양면의 모습을 모두 보여 주며 독자들의 통념을 뒤흔들고 혼란을 주입한다. 비난과 조롱을 일삼는 한편과 진지하게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답변을 하는 이들의 대화에서 앙드레 지드의 내면적 고민을 엿볼 수는 있다. 하지만 철저하게 종교적인 틀에서 성장한 작가의 변명으로 들린다. 틀에서 벗어난다는 것, 그것은 작가에게 죄의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뭐 어떤 마음이었든, 동성애를 동경했든 비난했든지 간에 너무나 난해한 책이었다. 조금만 독자를 위해 가독성을 고려한 편집을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했다. 이 모든 게 이 책을 읽는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오~ 책읽기의 어려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