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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서 기의가 없는 기표는 허튼 소리다
"언어에서 기의가 없는 기표는 허튼 소리다" 내용보기
롤랑 바르트의『기호의 제국』을 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호의 제국은 일본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내가 허구의 어떤 나라를 상상한다면, 나는 그 나라의 이름을 짓고 그것을 소설적 객체로 선언하고 새로운 가라바니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환상속에서 만들어낸 것이 실제의 어떤 나라와도 타협하지 않게 할 것이다. 아니면 실체 그 자체를 나타낸다거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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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기호의 제국』을 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호의 제국은 일본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내가 허구의 어떤 나라를 상상한다면, 나는 그 나라의 이름을 짓고 그것을 소설적 객체로 선언하고 새로운 가라바니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환상속에서 만들어낸 것이 실제의 어떤 나라와도 타협하지 않게 할 것이다. 아니면 실체 그 자체를 나타낸다거나 분석한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이 세계 어딘가의 몇몇 특질을 골라내서 하나의 체계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나의 체계는 ‘무(無)’이며 ‘텅빈 것(vide de parole)'를 말한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세계 최고의 지성인이 된 롤랑 바르트는 여러 모순적인 이유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는 문화 현상에 대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던 구조주의자였다. 그는 구조주의를 ‘문학의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과학을 즐거움의 측면에서 이해했다. 즉 독서의 즐거움과 독자가 개인적으로 특유하게 읽을 수 있는 권리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말한다. 그는 지은이의 생각이나 의미를 알아내는 비평이 아니라 독자들의 창조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문학을 옹호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일본 여행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서양과 대조되는 동양은 이방인의 나라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서구의 특질과는 전혀 다른 일본이라는 나라의 상징체계의 개념을 즐기게 되었다. 이러한 즐거움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면 ‘이전의 독서가 반복되고 그 의미는 파고되어 환원될 수 없는 진공 상태에 이르고, 객체가 무의미하다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없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그 나름대로 깨달음’이라고 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일본의 여러 문화 현상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가 구성해낸 일본은 하나의 텍스트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굳이 일본문화 현상에 대해 이렇고 저렇고 따지지 않는다. 또한 그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내세우지도 않는다. 겉만 봐서는 알맹이가 없어 의미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이유인즉 그가 이 책에서 추구하는 것은 일본이라는 텍스트 속을 이리저리 유유히 즐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는 독특하다. 남들이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알맹이 가득 채울 때 오히려 그는 ‘텅 비어 있음의 충일함과 가벼움’을 지향하고 있다.


 

가령. 저자는 일본어의 문장 구조에서 ‘동사는 있는데 주어나 목적어가 없으면서도 타동사’를 통해 인식하는 주체도 없고 인식되는 대상도 없는 인식행위를 서구인이라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반문하고 있다. 그리고 날것 상태의 일본요리에는 서양과 달리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서구의 요리가 영양섭취를 고려한 선택된 것이라면 일본요리는 생명의 에너지보다는 색깔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도쿄라는 도시에는 중요한 역설이 존재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완벽한 장소인 동시에 불안감을 준다. 그런데 도쿄는 주행하는 차들이 끊임없이 돌아가야만 하는 ‘텅 빈 도시’라는 것이다. 이것은 도쿄가 도시 전체의 움직임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라진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이쿠의 욕망을 살펴보고 있다. 서구 문학이 설명이나 생각이 ‘긴 수사학적 노동’을 요구하는 반면에 하이쿠는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을 ‘작은 한계’에 담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이쿠의 3행이 삼단논법적 세 단계의 구조처럼 보이지만 내용면에 있어서는 전혀 삼단논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듯 하이쿠에는 서구의 고전적 글쓰기의 기본적인 두 기능이 없다. 그 하나는 묘사의 기능이 없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정의의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쿠는 이른바 ‘주석 없는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글쓰기는 깨달음이다’고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선(禪)의 깨달음이다. 그것은 곧 ‘말의 텅 빈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저자가 일본을 기호의 광범위한 네트워크 또는 기표의 은하수라고 묘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사상에서 말과 침묵간의 변증법적 관계는 ‘말은 침묵의 양(陽)이며 침묵은 말의 음(陰)’이 된다. 이른바 문화해석은 언어와 같다. 문화와 언어는 껍질이 또 다른 표면을 이루며 내부에 중심이 없는 하얀 양파가 아니다. 그래서 선에서도 무심의 심이 있듯 언어에서 기의가 없는 기표란 허튼 소리나 쓸데없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목소리는 강렬한 만큼 매력적이다.

 

<책 속 밑줄>

깨달음은 지식이나 주체를 동요하게 만드는 강력한 지진과도 같다. 그것은 말의 텅 빈 상태를 만들어낸다. p 14

공손한 몸짓은 하나의 충일성에서 또 다른 충일성으로 교환되는 존경의 기호이며 세속적 한계를 초월한다. p 85

하이쿠에서는 서구의 고전적 글쓰기의 기본적인 두 가지 기능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묘사의 기능이 사라졌다. 또 하나 사라진 기능은 정의다. p 110

기호의 제국? 그렇다. 그러나 여기의 기호들은 텅 비어 있고 그 의식에는 신이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p 146

말은 곧 사물이기 때문에 해석의 해석은 다시 사물의 해석이 될 수 있다. p 165



p******0 2010.09.14. 신고 공감 2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텅 비어 있음'은 이래서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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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은 고통도 따르고 기쁨도 따르는 과정이다. 텍스트를 접하는 순수한 즐거움은 으레 '누워서 읽을 수 있는' 독자들의 몫이었다. 의자에 앉아 글을 짓는 작가는 그런 지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작가들도 글쓰는 동안 순수한 즐거움을 향유하는 매우 독특한 혜택의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적어도 롤랑 바르트에게《기호의 제국》이란 책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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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은 고통도 따르고 기쁨도 따르는 과정이다. 텍스트를 접하는 순수한 즐거움은 으레 '누워서 읽을 수 있는' 독자들의 몫이었다. 의자에 앉아 글을 짓는 작가는 그런 지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작가들도 글쓰는 동안 순수한 즐거움을 향유하는 매우 독특한 혜택의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적어도 롤랑 바르트에게《기호의 제국》이란 책이 바로 그런 순수한 글쓰기의 기쁨을 선사한 텍스트였다. 텍스트의 생산자 바르트도 유쾌하게 써내려갔지만 소비자인 독자들도 유쾌하게 읽어내려 갈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은 기호학자의 입장에서 일본이라는 문화 텍스트를 정교하게 분석한 에세이집이다. 언어, 음식, 놀이, 건축 등 일본인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적 '몸짓들'을 읽어내고 있다. 가령 선과 깨달음, 무(無), 하이쿠, 스모 선수, 파친코, 꽃꽂이, 가부키, 분라쿠, 전학련, 젓가락, 미소 된장, 사시미, 스키야키, 덴푸라 등의 단상이 바로 일본의 문화적 기호를 구성하는 다채로운 몸짓들이자 퍼즐 조각들이다.

 

이 책은 교양이 무척 풍부한 인문학자의 일본 여행기를 연상케 한다. '기호의 제국'을 여행한 푸른 눈의 인류학자가 남긴 기념 앨범과도 같은 책이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는 일찍이 '책'과 '앨범'을 구분한 바 있다. 여기서 책이란 미리 심사숙고한 필연적 구성물인 반면, 앨범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종잇장들의 우연한 모음이다. 롤랑 바르트가 사용하고 있는 문체는 일본의 하이쿠나 아포리즘처럼 반선형적인 서사 형식으로, 말라르메가 말한 '앨범'과 매우 닮았다. 이런 앨범식 글쓰기는 줄거리를 말소한 소설이나 논리적인 비평에 반대하는 에세이처럼 자유분방하고 해체적이다. 그리고 이런 해체적인 글쓰기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안과 밖, 외견과 본질, 표면과 내면, 명백성과 잠재성, 추상성과 구체성, 텍스트와 의도, 스타일과 형식, 그리고 행위와 말 등의 이분법을 소멸하고자 고안해낸 스타일리쉬한 전략적 문체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르트가 말한 중심이 텅 빈 기호의 공간을 오늘날 일부 과격한 우익 꼴통들이 점유한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다. 젓가락이 아니라 총포가, 하이쿠가 아니라 배타적인 정치적 구호가, 명상의 선이 아닌 국수주의적 폭력이 그 텅 빈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텅 비어 있음'은 이래서 위험하다.   

z***a 2012.09.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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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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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의미 깊은 작품... 일본을 주제로 한 롤랑 바르트의 사유를 담고 있다. 97년 발간된 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재발간되는 작품으로 동일한 역자의 작업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왜 이리 어색한지... 프랑스어 판을 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의미를 의심하게 하는 부분도 조금 있는 것 같고... 역시 이런 언어의 놀이를 번역서로 읽는다는 것은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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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의미 깊은 작품... 일본을 주제로 한 롤랑 바르트의 사유를 담고 있다. 97년 발간된 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재발간되는 작품으로 동일한 역자의 작업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왜 이리 어색한지... 프랑스어 판을 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의미를 의심하게 하는 부분도 조금 있는 것 같고... 역시 이런 언어의 놀이를 번역서로 읽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c******e 2008.12.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