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여자가 있다. 얼굴이 예쁘장하고 일하는 솜씨는 좋지만 도시적인 세련다움은 없다.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여자는 돈을 벌기 위해 악착 같이 일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자는 부와 재능을 두루 겸비한 사람이다. 잘생기고 친절하며 도시적이다. 잠깐 동안 둘만의 행복한 시간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된 남자 집안에서 난리가 난다. 온 식구가 방해 공작에 나선다. 처음엔 둘이 동반자살이라도 하자던 남자는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집안의 만류에 못 이기는 척 따른다. 여자는 이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린다. 1960~70년대 멜로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줄거리이다. 아니 어쩌면 이 이야기는 시대적인 환경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요하게 변한 부분이 있다면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이제 죽음을 택하거나 시궁창으로 떨어지지 않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거나 각고의 노력을 통해 배신에 대한 복수를 준비할지도 모를 일이다.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부키, 2008년)는 이와 비슷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을 수는 없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뽐므를 지칭한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속옷 가지를 맡은 하녀', '물 나르는 여인'과 의미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가난한 여인'이라는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다. 뽐므는 수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더 따른다. 현실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수긍한다. 이러한 성격은 대대로 물려받은 모양이다.
"뽐므는 도시에 있는 한 술집에서 손님의 시중을 드는 어머니의 그런 성향을 이어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떤 신사 나리가 자기를 술집 위층의 방으로 불러올릴 때마다 '손님 하자는 대로 할게요'라고 마음속으로 대꾸했다." (12쪽)
뽐므의 이러한 성격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파스칼 레네는 그녀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뽐므의 생각보다는 마릴렌이나 능력있고 배경있는 애인이었던 에므리의 말을 빌리거나 작가의 설명을 통해 표현한다. 이 소설이 다른 글들과 다르게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조금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작은 분량의 글을 다른 글처럼 쉽게 읽지 못하는 까닭은 또 있다. 단순한 줄거리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고, 철학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샤르트르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책의 중반쯤에서는 그를 떠올리는 말들이 자주 드러난다. 그녀를 두고 샤르트르 식으로 "내가 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타자를 일방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위치나 상태를 선호하는 것은 신(神)의 위치에 서려는 것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장 폴 샤르트르 시선과 타자>, 살림, 40쪽)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에므리는 타자로서 뽐므를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 타자와 다른 시선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뽐므는 그렇게 무(無) 속에서 피안의 세계를 즐기고자 하는 여인은 아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철학적인 개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의 구성은 단순하지만, 그 짧막한 이야기 속에 내포된 의미는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나와 타인과의 의사소통, 그리고 의사소통의 부재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결말들. 첫사랑하고는 절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통설이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통계를 내보면 어떨까? 과연 진실일까? 적어도 하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아끼고, 상처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많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인해 소통하기보다는 감싸주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것들이 내면에 쌓여 상처가 되고 한꺼번에 폭발하여 분노를 일으키게 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문예출판사, 2000년)에서 성숙한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 있어서의 합일. 사랑은 인간에 있어서 능동적인 힘이다. 인간을 타인과 결합시키는 힘.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 있어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뽐므는 타인과의 소통에 실패하여 자신의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비극을 맞은 것이다.
by 꽃다지, 2008년 |
|
뽐므의 하찮음은 무게가 엄청나게 나갔다."
이 소설의 명구절을 뽑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한 문장을 선택하겠다.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에서 "하루는 짧고, 하루가 모두였으니까"를 읽었을 때처럼.
나는 뽐므, 그녀의 하찮음에서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보았다. 밟히는 풀들이 말이 없는 것처럼, 백년 전부터 혹은 더 오래 전부터 고성의 계단은 침묵했겠지. 뽐므 그녀처럼.
이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68혁명 때이고, 한 지식인 남자가 뽐므라는 노동자 계층의 순한 여자를 어떻게, 부드럽게, 유린하는지 그려진다. (소설의 시점이 굉장히 독특하다. 전지적작가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변하는데, 굉장히 독특한 문체를 사용했다. 원본으로 읽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영화로도 나와있다는데, 찾아서 꼭 보고 싶다.
정말 오랜만에 근사한 캐릭터를 보았다.
뽐므는 동요하지 않는 오래된 슬픔이다. 그녀는 사과처럼 빨갛고, 걸레처럼 누추하고, 조용하고, 순수하고, 겁이 없고, 지나치게 오래 견디고, 온몸이 녹이 슬어 버려질 때조차 신중하고, 파랗고, 때론 갈색이고, 부드럽고, 우울하고, 귀가 활짝 열려 있고, 백합처럼 자고, 뽐므는 식초 같고, 가장 무거운 배 같고, 한 번도 출항하지 않고 묶여있는 오래된 배 같고, 또 뽐므는-
뽐므는 자꾸 울고 싶어지게 만든다.
한 여자의 존재가 얼마나 가벼운지, 혹은 무거운지, 사랑이 얼마나 잔인한 잣대로 잴 수 있는 도형인지, 소통의 단절이 불러오는 허망함이 얼마나 크게 부푸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몇 군데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아름다웠다. 파스칼 레네, 파스칼 레네,
천천히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는 무겁게, 공들여 울고 싶다.
|
|
서평: 레이스 뜨는 여자 – 파스칼 레네
프랑스 소설은 기묘하다. 문장이 일직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끝이 조금 말려 들어갔다고 해야하나. 어쨌거나 편하게는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하나하나 모여 소설을 이룬다. 물론 번역되어 들어온 소설이기에 어느 정도 한국어에 가까워졌다고는 하나, 프랑스어 특유의 음악과 같은 음조가 묻어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나라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는 사실은 참 놀라우면서도 즐거운 일이다.
|
|
겉과 속이 둥글둥글하고 참한 아이, 뽐므(사과)라고 불린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뽐므, 단 둘이서 살아왔다. 어머니는 "손님이 원하시는대로 할께요"라고 말하는 수동적인 여자다. 뽐므의 아버지가 떠날때도 잡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세상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대로 살았을 뿐이다. 어려운 집안 살림이였지만,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지만, 뽐므는 아름답게 자란다. 뾰족뾰족 모가 난 것이 아니라 동글동글한 마음으로 말이다.
뽐므는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마릴렌'과 친해진다. 마릴렌은 아름답기는 하나, 세상과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쓰는 여자다. 뽐므의 순수함에 이끌리나, 그것을 짓밟아버리고 싶기도한 양면을 지닌 채 그녀와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곧, 그녀는 뽐므를 떠난다. 그녀의 순수함 대신 세상을 택한 것이다.
뽐므는 곧 '에므리'라는 남자를 만난다. 둘은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에 대한 마음에 확신을 갖게 된다. 다음날, 만날 약속을 하지 않고도 서로 만날것을 알고 있듯이. 둘은 서로 사랑한다. 적어도 처음은 그랬을 것이다. 에므리는 말없는 뽐므를, 순수한 뽐므를 옆에 두고 싶어하고 결국 두 사람은 동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에므리는 뽐므를 바꾸고 싶어한다. 점점 더 그녀의 침묵, 그녀의 눈빛,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숨막혀하기 시작한다. 뽐므는 에므리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왔고, 열심히 집안일을 했으며 에므리가 싫어하면 자리를 비켜줄 줄도 알았다. 하지만 뽐므가 어떤 행동을 하던 에므리는 그녀를 내치려하고 결국 둘은 헤어지게 된다.
사과같이 둥글고 예쁘게 빛나던 뽐므는 점점 말라간다. 그녀는 아무 잘못없이, 어떤 이유도 없이 내쳐진것이다. 믿었던 친구로부터, 그리고 사랑하던 사람으로부터 내쳐진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점점 말라간다.
어떤 관계든, 그것의 시작은 '소통'일 것이다. 나와 그것이 서로 교류하며 주고받는 모든 것이 소통일진데, 뽐므는 연인과 세상으로부터 일방적일 것을 강요받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어떤 잘못도 하지 않고서도 벌을 받은셈이 되었다. 철저히 버려지는 것으로.
레이스 뜨는 여자 뽐므는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멀어져갔다. 레이스는, 얼키고 섥힘으로서 작품이 완성된다. 뽐므도 그걸 원했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이 아닌, 소통을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버림받았고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레이스를 풀어버림으로서 공허한 존재로 남고 말았다. '레이스 뜨는 여자'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끝난다. 뽐므 역시 공허한 한마디를 내뱉으며 나를 책 속으로 붙들어버렸다.
"당신은 그리스라는 나라를 모르지요? 난 살로니카까지 가 봤어요. 알아요?" |
|
해석이 뚝뚝 끊어진다.
예를 들면, 20페이지 정도에 '그들은 그들을 거느리되 그들 위로 천천히 움직이다가 옆으로 미끄러져 나가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거나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라는 문구를 보고는, 이게 도대체 뭔소린가 싶어서, 여러차례 읽었다. 비단 이것 뿐만 아닌데, 옮겨 적기가 귀찮아서 냅두기로 했다. 번역이 아닌 해석에서 종종 발견되는, 우리는 잘 쓰지 않는 수동태 문장이라던지, 주어와 서술어의 매칭이 어설퍼서...뜨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여러번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아마, 내 인생에 다시 이재형의 번역본은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콩쿠르 상을 받았다던데, 그러거나 말거나...그닥 임팩트 없는 이야기에 대해서...난 금방 싫증이 났고, 급기야 짜증나는 순간까지 이르렀다. 주인공의 이름은 뽐므(불어로 사과), 생긴것도 동글 동근 하댄다. 그러다 뜬금없이 뜨개질 하는 여자,로 칭해지기도 한다. 에므리인지 하는 남자 주인공도 좀 쪼다처럼 보이고, 동거하다가 헤어져서는 거식증에 걸리는 여자도 이해 안되긴 매 한가지. 다른 분들의 평을 읽지는 않았지만, 별을 보니..별잔치다. 물론, 읽는 사람의 취향이 다르니...그러려니 하겠는데, 이건 보편적으로 좋아하기 힘든 작품 아닐까?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뒤에 책의 1/4에 육박하는 해설 부분은 읽지도 않았다. 2012년 읽은 책 중에서, 시간 낭비의 극치인듯 싶음. |
|
레이스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는지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다. 어쩌면 레이스란 여성의 전유물(아니 요즘은 그렇지 않다) 아니면 하늘하늘한 느낌으로 보일듯 버이지 않을듯한 유혹! 또 한가지는 어쩌면 나와는 어루리지 않을 그 무엇. 그런데 그 레이스를 뜨는 여자라면 어떨까?
이 글을 읽기전에 처음부터 가볍지 않은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일게 되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참 반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생각처럼 그리 어렵게만 느껴지는 소설이 아니라 일으면서 또 읽고 나서 그 이야기들의 장면 장면이 머리 속에 떠오르고 또 그 내용의 한 부분들이 되새겨지는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게 되는 그런 소설이었다. 그래서 파스칼 레네가 유명하구나 하는 수긍이 들었다.
뽐므는 사과같은 뺨과 몸을 가진 여자이다. 그녀는 술집에서 시중을 드는 엄마와 프랑스의 북부에서 살다 파리의 변두리로 옮겨 산다. 그곳에서 그녀는 미장원에 다니게 되고 마들렌(마릴렌이라고도 불렸던)을 만나고 함께 여름 휴가를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에므리를 만나게 되고 그와 동거를 시작한다. 서로 달랐던 그들은 끝을 예감했던 에므리에 의해 끝나게 되고 뽐므는 집으로 돌아가 거식증을 앓게된다. 그녀는 요양원으로 가게되고 마지막으로 쓴 편지를 받은 에므리는 그녀를 찾아온다.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이다.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메세지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우선 그곳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소통의 부재를 느낀다. 말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서로간의 적당한 말을 하지 못하고 말을 하는데도 그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문제들은 요즘의 우리들도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말로 표현되는 경우도 그 내면의 숨은 뜻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또는 말하고자 하는 것과 다르게 말이 나와 서로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소통의 문제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부딪치면 아파하며 끌어안고 살아가야할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시각의 문제이다. 여성을 단순히 수동적인 입장에서 또는 무엇인가 해 주어야만 하는 입장에서 보는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시대가 변화하고 있고 여성이라도 자신의 입지를 가지고 삶을 개척해 나가는 남성에게 의존적인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어쨎든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 만들어 졌다는데 그 작품을 찾아서 보고 싶다. 어렵다는 광고 문안에 주눅들어 읽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 꼭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
|
프랑스 영화나 책은 쉽게 다가오지 않으나 한번 맘속에 들어오면 쉽게 빠져나가기 힘든것처럼 이책은 맘속에 쉽게 스며들지 않아서 조금은 당황하고 수동적인 뽐므를 보면서 어쩜 저리도 답답할까라는 생각을 느끼기까지 하지만 읽어나감으로써 새로운방식의 글구성은 읽어감으로써 다시한번 읽게되고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거 같다. 쉽게 다가가길 원한다면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책속에 감긴 특유의 프랑스 소설을 알고 싶은사람은 또 그소설에 빠지고 싶은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여운을 길게 간직하고 싶어진다. 이가을 깊어가는 밤에 깊이 빠져들게한책 한권은 날 가슴뛰게하는것 같다. |
|
2008. 09. 17. l 2008. 10. 19. l 파스칼 레네 l 부키 l 레이스 뜨는 여자 무채색의 수묵화같은, 아름다운 뽐므여. 나는 이미 소모성이 짙은 글들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었던걸까, 하고 생각했다. 소설 뒤편에 실린 소설가 차현숙씨의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다는 말에 나는 백번 만번 동감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만큼 내게 이글은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익숙치 않은 서술방식과 생소한 어휘들. 문장 하나 하나에 실린 느낌이 달랐다. 지극히 무겁지도, 그렇다고 날릴듯이 가볍지도 않았다. 약 150페이지 분량의 얇은 책이기에 금세 읽을 줄 알았더니, 웬걸.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이건 무슨 시험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문장을 몇번이나 읽곤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몇 장 읽다가 마음을 고쳐 잡았다. 제대로 읽자고. 까맣고 하얀 책의 모습은, 이미 그 내용 자체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 글은 마치 흑백영화 같았다. 전체적인 내용이 그랬고, 뽐므, 그녀 역시 그랬다. 뽐므는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여자이지만, 왠지 모르게 눈이 가는 여자였다. 말이 없고, 조용한 그녀는 흑백사진같기도 했다. 뽐므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녀는 마치 새하얀 화선지같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때묻지 않은 아이였다. 그녀는 너무도 순수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였고, 저항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세상을 잘 몰랐다. 그녀는 말이 없었고, 침묵을 택했다. 그 침묵 속에서 뽐므는 행복했다. 그러나 어딘가 불안정하고 삐걱거리는 침묵이었다. 뽐므가 침묵했기 때문에 그녀의 사람들은 그녀의 침묵을 멋대로 해석하고, 왜곡하고, 결국엔 그녀에게 상처만 남겼다. 그렇게 잔뜩 상처입어 고통받는 뽐므를 보며 '해석의 폭력이 어떻게 한 여자의 현전이 감춘 감수성, 아름다움, 평온함 따위를 지워 버리는지'라는 말을 이해했다. 뽐므 속에 감추어진 -그래서 더욱 그녀에 끌렸던- 감수성, 아름다움, 평온함은 해석의 폭력이란 이름 하에 지워지고 있었다. 뽐므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단지, 순수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까지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무채색의 수묵화같은, 흑백 영화같은, 흑백 사진같은, 이 글은 정적이고, 고요하다. 뽐므에 대해 내가 느꼈던 바를 제대로 표현 할 수는 없지만, 그녀 역시 그랬다. 그녀도 정적이었고, 고요했다.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긴장감에 나 혼자 불안해하고 있을 때에도 그녀는 그랬다. 조용한 새벽에, 어두움에 싸여 있을 때, 책이든 영화든 좀 더 자세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한편으로는 편안하게 보고 싶어졌다. 안녕, 뽐므, 그때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