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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인 파트릭 펠루는 프랑스 파리의 공립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이다. 그는 이 책에서 본인이 응급실에서 겪은 사건들을 중심으로 의료서비스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에 관해 논하고 있다. 이 글에 실린 약 80여편의 칼럼들은 2004년 11월부터 3년간 프랑스의 진보적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 그가 게재했던 것들이다. 에피소드식이기 때문에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의사이지만 어려운 전문용어를 남발하거나 전문인으로서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의사로서의 양심과 그릇된 의료제도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소박하게 글을 썼다. 파트릭 펠루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프랑스 병원들이 공립, 사립 할 것 없이 비용절감 혹은 고수익을 위해 인력과 시설을 축소하는 탓에 응급실에서 겪게 되는 고충이다. 특히 그가 일하고 있는 공공종합병원의 경우, 사회보장제도로 인한 국가 재정 부담 증대로 공공종합병원 축소 및 기업화 정책이 추진되어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저자는 주로 환자들의 구체적인 스토리를 통해 민영화의 폐단을 지적하지만, 때로는 직접적인 화법으로 의료계의 문제점을 단호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비단 의료서비스 문제뿐만 아니라 응급실을 찾아오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정치, 사회, 문화 문제에 관한 논평도 자연스럽게 시도한다. 한국에서는 국공립, 사립 할 것 없이 모든병원들이 영리를 추구하지 못하도록 규제되어 있다. 이는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와 더불어 국가가 정책적으로 전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주는 좋은 사례로 전세계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정권도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를 본받아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는 영리병원이 들어서기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FTA 체결로 인해 기업(영리병원)이 영리추구를 방해하는 요소(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두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현재 미국에서 그러하듯이 한국에서도 부자들은 (이미 가입한) 사보험을 통해 영리병원에서 고급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고, 건강보험을 안 받는 영리병원이 많아지면서 부자들의 건강보험 탈퇴(요구)와 서민층의 보험료 부담 인상이 뒤따를 것이고, 그러다가 건강보험이 유명무실해지면 별다른 사보험이 없는 서민들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길이 차단될 것이다. 한마디로 “가난하면 죽어라”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설병원과 비영리 공공종합병원이 공존하고 있다. FTA 이후 한국도 곧 나아가게 될 방향이다. 이 책에서 지적되듯이 아마도 사립 병원과의 경쟁 때문에 70여 개에 달하는 한국의 국공립병원들은 하나둘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살아 남은 국공립병원들은 경영 마인드에 따라 운영될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응급실에서 몸소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병원이 영리를 추구할 때 국민의 건강, 나아가 국민의 인권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생기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머지 않아 부자를 위한 나라는 있을지언정 환자를 위한 나라는 없어지고 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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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침체되기 시작한 경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와 같은 난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일까? 손 놓고 앉아 있는다면 그 정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현 정권은 기존의 공공부문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미국 경제가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구사하다 한 차례 휘청거리는 것을 보아서인지 두려움이 앞선다. 더구나 우리 경제는 유럽의 몇몇 국가들처럼 거대한 사회복지 지출로 인해 고통 받아왔노라고 말하기도 뭐한 상태였다. 진단 자체가 어렵기에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어려운…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는 국가가 한 개인의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사회복지국가를 일컫는 말이다. 프랑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국민들의 세금을 통해 나름 훌륭한 사회보장제도를 구비한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는 기본적으로 수익을 창출해야만 한다. 일을 하지 않아도 국가가 모든 것을 제공해주니 사람들은 더 이상 일하지 않으려 들었단다. 경기의 활성화를 위해 각국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개개인에게 노동할 것을 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에겐 과거와 같은 복지가 주어지지 않는… 우리 역시 ‘생산적 복지’라는 말이 유통될 정도로 그들의 흐름을 어느 정도 수용했다. 한 정책이 성공적이었는가는 그 정책이 얼마나 널리 수용되었는가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각국은 각종 수치를 쏟아내며 그들의 정책이 옳음을 우리에게 주지시키려 들었다. 하지만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통계치도 알고 보면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면이 없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완벽한 것 같지만 거리마다 늘어난 노숙자의 숫자나 이웃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홀로 죽어가는 독거 노인의 수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전체의 생산성은 향상되었을지 모르나 개개인의 삶의 질은 분명 퇴보하고 있었다. 경쟁에 기반한 사회, 이는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 원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쟁의 도가 지나쳐 애초부터 경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는 큰 문제가 된다. 사회의 입장에서 그들은 스스로 가난을 택했으니 돌볼 필요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다수가 그런 상태라면 그 사회는 어떨까? 끔찍한 상상이라 하겠다. 돈이 있고 없고의 간단한 사실에 의해 한 사람은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게 된다. 병원에서는 아예 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치료를 행한다. 당장 수술을 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 사람의 재산이 얼마인지를 묻고 있다니, 의사로선 자격 미달이다. 하지만 자유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하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보편화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응급실은 항상 사람이 넘친다. 현재의 인원으로는 충분한 치료를 베풀기에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력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이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한 사람이 관두면 그 사람을 대체하는 것은 비정규직이다. 의사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의사보다 낮은 위치로 인식되곤 하는 간호사의 경우 관련 과정을 전혀 밟지 않은 사람에게도 열릴 예정이란다. 나의 환부를 돌보는 이가 의료 행위를 하기에 적합한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아도 된다니 그들을 믿어도 좋을지 싶다. 지금껏 구축해온 제도들이 무너지고 있다. 사람들은 실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과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질서가 아무리 거세더라도 예외여야 하는 곳이 몇몇 있다. 학교가 그 중 하나이고, 병원도 마찬가지다. 가난이 한 개인으로 하여금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 하고 회복도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는 얼마나 매정한가? 그 사람이 가진 돈의 액수를 묻기 전에 그 사람에게 따스함을 베푸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다움을 꿈꾸는 저자는 돈키호테일까? 하지만 저자와 같은 돈키호테들이 보다 활개를 쳤으면 싶다. 그래야 인간으로서 사는 삶이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