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를 이야기할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문장일 것이다. 사유하는 자신의 존재를 제외한 모든 것은 확실성을 긍정할 수 없다는 그의 철학은 많은 이들에 의해 ‘회의주의’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의심할 수 없는 대상을 찾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서양 철학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은 데카르트를 철학자로서 기억하며 나 역시도 그러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다소 의외로 다가왔다. 아니, 어쩌면 이는 나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학문의 분과가 오늘날과 같은 전문화된 체계를 확립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니 말이다. 갈릴레이가 천체 망원경을 이용, 목성의 위성을 발견했고, 케플러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수정, 발전시켰던 17세기, 데카르트는 그 시대를 살았고, 그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물론 여전히 전통적인 철학 질서 및 교회의 권위가 사회의 많은 부분을 장악하고 있긴 했으나, 데카르트는 이 책을 통하여 자신의 물리학, 천문학적인 견해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오히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철학에 있어서의 순수함의 농도를 보다 높이려 들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데카르트는 자연과학의 논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데카르트는 인간 인식의 원리, 물질적인 것들의 원리, 가시 세계, 지구의 4가지로 크게 구분, 무려 504개의 의문을 해결한다. 그렇기에 교육에 사용되길 바라며 쓰여졌다는 이 책은 일종의 백과사전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많은 부분, 특히 두 번째 부분은 뉴턴의 운동 법칙을 연상시킨다. 또한 가시 세계와 관련된 부분은 우주의 팽창, 수축 등을 비롯하여, 행성, 항성의 정의 등 많은 천문학적인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 동시에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데카르트의 사유에 대한 절대성 추구 성향 역시 보여준다. 촉감, 미각, 후각, 청각, 시각은 단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의 모양, 크기, 운동만을 지각할 뿐이며, 그 지각 역시 완벽하지 않다는 그의 논거는 궁극적으로 사유하는 객체 이외의 모든 것은 철학을 위한 전제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데카르트 본인이 언급(이 책에서 빠뜨려진 자연현상은 하나도 없다.)했듯이 이 책은 다방면에 걸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가 살았던 시대와 관련하여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계몽주의가 태동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사회는 종교 전쟁에 찌들어 있었던 그 시대였기에 데카르트의 철학은 (사유의 가치를 종교적인 것의 가치보다 우위에 둔다는 점에서) 급진적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이 책이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나의 교회의 권위에 맡긴다.’라는 모호한 문장으로 끝나도록 만든 요인이라 하겠다. (나의 미천한 지식으로 인한 것이겠지만, 지동설과 관련, 데카르트는 코페르니쿠스와 티코의 가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지구의 운동을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는 갈릴레이의 유죄판결로 인한 영향일지도…) … 지금까지 인류의 발전을 가능케 한 것은 인간의 이성, 즉 사유라는 측면에서 데카르트의 사유에 대한 중시는 적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환경, 핵 문제 등,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는 것마저도 인류는 적지 않은 부분 사유에 의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중시했던 사유가 철학의 무의미성을 역설하고, 더 나아가 인문과학을 무너뜨리는 도구로 오늘날 작용하고 있는 현실을 그가 알게 된다면 어떠한 표정을 지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