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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변하기는 했습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권위에 약한 편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권위있는 분이 하시는 말씀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대놓고 문제제기를 삼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권위 있는 분이 그동안 쌓아온 앎을 바탕으로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설마 틀린 말을 하겠느냐는 일종의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우리네 옛말도 있듯이 권위 있는 분들이 모든 이치에 통달할 수 없는 것이고, 심지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분야에서도 놓치고 있는 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엉뚱한 이야기로 리뷰를 여는 이유는 특별한 의미의 과학의 역사서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양에서는 종교가 모든 것에 우선하던 중세를 암흑기라고 일컫는 것은 신학이 정한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내놓을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로마교회의 이단심문소의 오랜 심문 끝에 자신이 입증한 지동설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가 심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했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100여년이 지난 후세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고 합니다만, 아마 그의 심정이 딱 그랬을 것 같습니다. 갈릴레이는 소신을 버리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중심으로 한 과학의 발전사를 다룬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은 과학의 연구에 투신한 젊은 학자들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기본소양, 즉 ‘이미 알려진 모든 사실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라’하는 원칙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입니다. 물론 과학 이외의 학문분야, 심지어는 세상사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에건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기 때문에 누구나 읽어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자가 이 책에 적용한 원칙은 ‘현대의 역사학자들이 가장 위험하게 여기고 피하는 방법’, 즉 과거 자연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연구 방식을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1933년 뉴욕에서 태어난 스티븐 와인버그는 브롱크스 과학 고등학교를 거쳐 1954년 코넬 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1957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재규격화 이론을 이용하여 약한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강한 상호작용의 효과」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 로렌스 방사능연구소,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 하버드 대학교 등을 거쳐, 1983년부터는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장(場)의 양자론에서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에 있어 다양한 분야를 연구해왔고, 특히 자연의 근본적인 힘들 중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합하는 이론은 그의 최대의 업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로 1979년에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소립자 이론의 ‘표준 모형’이라고 할 정도로 현대 물리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To explain the world(‘세상을 설명한다’는 의미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만, 이 주제는 철학이라는 학문영역이 태동할 때부터 다룬 아주 오래된 주제이기도 합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철학(哲學, philosophy)은 존재, 지식, 가치, 이성, 인식 등의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대상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합니다. 철학은 전통적으로 ‘세계와 인간과 사물과 현상의 가치와 궁극적인 뜻을 향한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천착’을 의미합니다. 이 책의 주제가 되고 있는 수학과 물리학은 18세기까지만 해도 자연철학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과학의 뿌리는 철학에 두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과학사적 배경 때문에 저자는 그리스시대 철학자들의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사유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학철학보다는 과학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라고 입장을 정리합니다. ‘현대과학의 발견(The discovery of modern science)’이라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 물리학과 천문학에 중점을 둔 것은 과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현대적인 모습을 갖춘 것이 천문학에 적용된 물리학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생물학 같은 분야는 많은 역사적 우연의 의존해왔기 때문에 물리학 모델로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생물학과 화학의 급속한 발전은 17세기 물리학 혁명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은 1부 그리스의 물리학, 2부 그리스의 천문학, 3부 중세시대, 4부 과학혁명으로 나누었고, 본문에 나오는 이론 가운데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 것들에 대하여 말미에 ‘전문해설’을 별도로 실었습니다. 전문해설은 수식과 그림 등을 곁들이고 있지만, 제목 그대로 전문적인 내용이라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분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점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 학자들이 이룩한 학문적 업적이 어떻게 중세의 암흑기를 건너 르네상스시기로 연결될 수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중동지방에서 일어난 압바스 왕국은 물론 이베리아반도에 자리 잡은 후기 우마이야왕조를 비롯한 이슬람세력들이 그리스학문의 맥을 이어받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학자들이 남기 학문적 성과들을 이슬람어로 번역하여 확산시킨 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이슬람학자들의 연구업적까지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그 누구도 오늘날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방식의 추론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는 저자는 아나톨리아의 밀레투스에서 활동한 물리학자 가운데 기원전 6세기의 탈레스를 처음 인용하여 그리스 물리학을 설명합니다. 물론 탈레스가 남긴 어떠한 기록도 전하는 것이 없습니다만, 탈레스야말로 ‘모든 물질은 하나의 기본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물질의 본성이 모든 것의 유일한 원리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초기 철학자들 중에서 (…) 이 철학 학교를 세운 탈레스는 그 원리가 물이라고 말했다.(20쪽)”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탈레스에 이어 아낙시만드로스는 의문의 물질을,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크세노파네스는 흙을,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만물의 재료라고 제안했고, 그로부터 100여년 뒤에 등장한 엠페도클레스는 모든 물질이 하나가 아니라 물, 공기, 흙, 불 등 네 개의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무렵에 활동한 파르메니데스는 자연의 변화와 다양성은 환상일 뿐이라고 가르쳤고, 그의 제자 엘레아의 제논(스토아학파 제논과는 다른)의 경우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려 했습니다. 저자는 두 사람의 주장이 틀렸다고 잘라 말하고, 그들의 사유체계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즉 운동이 불가능하다면 왜 물체들이 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여겼는데, 이로 인하여 과학이 발전할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에 대한 철학적 개념들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랍의 철학자들에게 엄청난 존경을 받았습니다. 아베로에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철학자’라고 한다면 아베로에스는 ‘해설자’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저자 역시 검증하려는 노력은 없었지만, 평범한 관측에 근거한 것이지만 자신이 가정한 원칙에 따라 정교한 추론을 통하여 자연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의 법칙에 대해서 틀리긴 했지만, 자연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은 자체는 상당히 중요하다.”라는 저자의 입장은 과학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교회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자연주의적이었고, 우주에 대한 그의 시각은 법칙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수도회마다 다른 입장을 취하였던 것인데,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경우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반면, 도미니크 수도회에서는 그의 사상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현대과학의 시작, 즉 과학혁명의 시작이 코페르니쿠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했습니다. 1473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코페르니쿠스는 중세 폴란드 왕국의 수도 크라쿠프에 있는 크라쿠프대학에서 천문학과정을 포함한 교육을 받고 1496년 볼로냐로 옮겨 천문관측을 시작했습니다. 1510년에는 폴란드로 돌아와 프롬보르크에 천문대를 짓고 1543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천문연구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귀국 직후 그는 이전까지의 행성이론을 비판하고 자신의 새로운 행성이론을 담은 <천체의 운동과 그 배열에 관한 주해서>를 썼지만, 이 글은 그가 사망하고서 한참 뒤까지 출판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때까지의 천문학 이론의 핵심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버리고, 모든 천체들은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지동설을 새롭게 정립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론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관측자료를 내세운 것은 아니었고,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마게스트>에서 인용한 관측자료를 재해석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천체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구가 움직인다고 가정하였을 때, 태양, 별 그리고 다른 행성들의 여러 가지 겉보기운동이 잘 설명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저작은 출판되기 전부터 다수의 종교지도자들의 반발을 불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에 가톨릭교회가 심각하게 억압하기 전까지는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억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1540년에서야 출판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551년 에라스무스 라인홀트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활용하여 특정한 시간에 황도 위에서 행성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는 새로운 천문목록인 ‘프로이센 목록’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론은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천문관측을 통하여 확인되었고,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과학이론의 혁명을 불러왔다면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태양 중심의 천문학구조를 지지하는 최초의 ‘관측적인’ 증거를 제시하여 실질적인 과학의 혁명을 일깨웠다고 하겠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개발된 스파이글라스를 개량하여 스무배의 배율을 가지는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관측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천체관측을 통하여 달표면이 울퉁불퉁하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고, 맨눈으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행성들이 달처럼 둥근 모습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네 개의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고, 금성이 달처럼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태양의 표면에서 흑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즉 새로운 기술이 순수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알려준 것입니다. 과학혁명의 절정은 뉴턴에서 맞았다고 했습니다. 뉴턴은 과거의 자연철학과 현대과학의 경계에 걸친 인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분명 현대과학이 된 모든 과학이 따르고 있는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1687년 왕립협회를 통하여 뉴턴이 출판한 <자연철학의 수학 원리; 약칭은 ‘프린키피아’입니다>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없이 물리학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책입니다. 물질의 양, 운동과 힘에 대한 정의, 법칙 및 추론을 제시하고, 이어서 1부에서는 그 결과를 차례로 유도합니다. 2부에서는 유체 속에서의 물체의 운동을 다루고, 3부에서는 천문학의 증거들을 찾습니다. 이미 측정된 것들에 대한 계산과 아직 측정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예측을 보여줍니다. 뉴턴도 알고 있었지만, 중력이 유일한 물리적 힘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이론이었습니다. 2천년이 넘는 물리학과 수학의 역사를 요약한 방대한 과학의 역사를 몇 줄의 리뷰로 요약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끝에 붙인 전문해설은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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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과학사를 정리하고 있다. 그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물리학에 한정하고 있지만, 그건 저자가 물리학자이기 때문에 그렇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물리학이라는 과학의 분야가 어떻게 발달하여 지금까지 와 있나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며, 그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 즉 과학 일반의 작동 방식과 의미에 대한 물음과 저자의 답변이다.
스티븐 와인버그의 방식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보통의 역사 서술, 특히 과학사의 서술에서는 과거의 과학에 대해, 그것이 현대의 시각에 봤을 때 분명히 틀렸다 하더라도 그 시대적 한계에서 알아낼 수 있었던 것에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스티븐 와인버그는 일부러 그런 시각을 버려버렸다. 그에게는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특히 과학적 방법, 즉 어떤 근거에 의거하지 않은 추론이나 철학적 사유를 과학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 과거의 과학이 현대의 과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 리 없다는 것이 바로 저자의 주장이다. 물이나 불, 공기 등을 만물의 근원으로 본다든지 하는 것 자체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근거가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없었던 고대의 과학을 과연 긍정적으로 볼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의 교과서에서도 원자설의 효시로 인용하고 있는 데모크리토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도 마찬가지다.
또한 스티븐 와인버그는 과학의 발달에 어떤 영향도 주었음직하지 않은, 단순한 철학적 사유에 대해서도 평가절하한다. 역시 현대의 교과서에서 강조하는, 과학적 방법의 두 축, 즉 귀납적 방법과 연역적 방법의 베이컨과 데카르트가 그 대상이다. 특히 베이컨의 경우에는 누구도 베이컨의 방법을 따라서 과학적 활동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이미 그의 방법은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수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경우에는 수학의 발달에 기여한 점은 인정하나 그가 과학적 발달에 방법론적으로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고 본다.
나는 이러한 스티븐 와인버그의 견해에 적지 않은 정도로 동의할 수 밖에 없는데, 과학이라고 하는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어떤 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등대 삼아 과학 활동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 이러 방법, 저런 방법을 동원하며, 미리 존재하는 심오한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수행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과학은 이상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이상이며, 과거의 이상에 매달리지는 않는다.
이러한 측면들에서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은 상당히 새로운 차원의 과학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 과학사는 과거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사가 아니다.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사이다. 어마어마한 권위자가 던져놓은 울타리 안에서 활동하는 과학이 아니라 그 권위를 의심하고, 정당한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했을 때 나오는 결과와 추론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 책은 과감한 과학사다. 전체 분량의 1/4 정도에 해당하는 부분이 <전문 해설>이라고 해서 난해한 수학 수식과 물리학 추론을 행하고 있다. 저자에게는 쉬울 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과학교양 독자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부분이다. 심지어 그런 수식이 별로 없는 본문도 그닥 쉽지는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시시콜콜한 부분이라기 보다는 큰 관점에서 과학을, 과학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면, 수학적, 그다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좀 고민하며 이해한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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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리뷰에 앞서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여태 기계적 학습자였다. 과학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과학교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대학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를 따라다니는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어떻게 채점될지 머리를 굴리며 짜맞추는 사고에서 탈피했다. 과학은 그 자체로 숭고하고 어딘가에 꽁꽁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늘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렇게 나름의 깨달음을 얻게 된 데는, 스티븐 와인버그의 과학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영향이 컸다. 과거를 현재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은 많은 역사학자들이 피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대가는 실로 과감하고 대단하다. 저자의 이런 시각이 처음에는 와 닿지 않았고 거부감이 들었다. 주입식 교육과 기계적 학습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회로를 움직이는 것이 꽤 힘이 들었다. 받아들이기가 어려우니 진도는 나가지 않았고, 제자리 걸음을 자주 했다. 이러다가는 리뷰대회 마감일까지 다 읽지도 못하겠다 싶어서 본론들을 건너뛰고 ‘감사의 말’과 ‘역자의 말’부터 읽었다. (독서를 하며 잘 읽히지 않을 때마다 하는 나만의 독서 방법이다. 중간에 방향을 잃으면 작가의 말, 역자의 말 등을 곱씹어 읽곤 한다.) 역자의 말을 읽고 스티븐 와인버그의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역자인 이강환 천문학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그가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고자 한 것은 더 유리할 수밖에 없는 후세대 사람의 위치에서 과거를 내려다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과학 개념이 과거와 얼마나 다른지를 분명하게 비교함으로써 이것이 얼마나 완성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_p355”
읽는 데 오래도 걸렸다. 한 달 간 눈에 불을 켜고 이 책만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내 역량으로 이 책을 온전히 읽어내려면 반년은 꼬박 읽었어야할 지도 모른다. 또 나의 무지함을 반성하고 세상에 알아야할 것들은 무수함을 인지했다. 그래도 세부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고 흐름을 따라가니 꽤 즐거웠다. 과학교육론을 공부하며 내가 과학사에 대해 배운 것은 구우일모였다는 것도, 현대 과학에 이르기까지 어떤 역사를 거쳤는지도 알게 되니 뿌듯했다.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을 읽지 않았다면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며,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몰랐을 것이다. 나의 앎에 대해, 세상의 앎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되어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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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과학의 역사, 세상을 설명하다 -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 _ 스토리매니악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은 여러가지다. 과학적 학문의 영역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또는 문화적으로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이해의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과학적 접근은 지금의 세상을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관점을 제시해준다. 나는 그다지 세상을 이해하고픈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그 합리적 근거가 어떻게 쌓여 지금에 이르렀는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세상의 비밀은 무엇인지, 이러한 것들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에는 정말이지 관심 없다. 새로운 관점과 합리적인 추론들이 증명될 때, '아, 그렇구나' 짧게 감탄하고 말 뿐.. 이런 내 관심 부족은 학자들의 탓도 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한 여러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다. 이런 내용이 즐거운 이들도 있겠지만, 내게는 흥미를 뚝뚝 떨어뜨리는 방식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기조와는 다른 방식을 통해 과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설명한다. 저자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가 아닌,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방식대로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는지" 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과학의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자세를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 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때문에 좀 더 능동적으로 그간의 과학이 어떤 추론과 증명, 비판과 수정을 통해 발전해 왔는지, 지금의 우리는 지금의 과학을 어떻게 믿고 이해하게 되었는지 큰 그림으로 이해하게 된다. 저자는 물리학의 본질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설명하고, 과학이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온 종교, 기술, 수학, 미학 등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 왔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단순한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것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즉, 과거의 시선에서 그 당시의 과학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선에서 과거의 과학을 바라본다. 현대 과학자의 시선으로, 저 멀리 그리스 물리학에서부터 과학 혁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과학을 세세히 들여다 보며, 과거의 과학이 가졌던 문제와 오류들을 짚어보고, 지금의 과학에서 본 그 때의 과학들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짚어보고 있다. 언뜻 어려운면서도, 또 묘하게 이해가 되는 이러한 과정들은, 그간 과학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시원함을 가져다 준다. 과거의 과학이 지금의 과학에 비해 비과학적이었다, 오류 투성이였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의 역사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그런 과정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었는지, 그런 과정의 산물인 현대 과학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느낄 수 있다. 과학은 모르는 것에 대해 추측하고 이를 증명하며, 증명한 것을 비판적으로 보며 발전시키고, 때로는 이를 뒤엎는 혁명이 뒤섞여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과적인 것에만 집중해 과학을 바라본다면, 당연히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학문 그 자체로 남고 말 것이다. 때문에 저자가 또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는 고대 과학의 새로운 모습, 과학 역사의 새로운 모습은 흥미롭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학은 변할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여러 변혁의 과정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는 것 같다. 과학은 완벽하지 않다. 지금은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과학 이론도 언젠가는 오류로 판명날 수도 있다. 과학은 지금도 변하고 있다. 그런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지나온 과학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결과론적 관점이 아닌 저자가 제시한 새로운 관점을 유지하며 과학을 바라볼 때, 또 다른 모습의 과학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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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찾아보니 ‘과학’이란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자연의 원리나 법칙을 찾아내고, 이를 해석하여 일정한 지식 체계를 만드는 활동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과학의 역사라고 하면 과학의 탄생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주요한 각종 사건들을 말한다.
이 책은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가 과학, 역사, 수학에 대해 전혀 배경지식도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의 역사를 장장10년에 걸친 강의를 마친 뒤, 강의 노트에 담겼던 내용들을 모으고 자신의 의견을 더해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과학의 역사를 ‘현재의 과학’에 입각해 풀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시, 음악, 운동, 철학과 과학이 밀접하게 연관되었던 그리스 시대부터 아랍인들과 유럽인들의 과학이 발달한 중세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아무리 과학의 역사라도, 역사적 사실의 나열 외에 무언가 다른 것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첫머리에 “현대의 역사학자들이 가장 위험하게 여기고 피하는 방법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자연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연구 방식을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읽고 분명한 오류에 충격을 받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용어나 그가 관심 있었던 문제에 대해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그가 부주의했거나 바보였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p.125)고 말했다.
데카르트의 기본적인 물리학 원리들에 대해서도 “데카르트가 신뢰할 만한 지식을 찾는 올바른 방법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놓고 본다면, 그가 자연에 대해 얼마나 많은 측면에서 심각하게 틀렸는지는 놀라울 정도다.”(p.276)라고 말했다.
저자는 위대한 학자들을 서슴없이 비판을 하되 무작정 비판을 하지 않고, 왜 그들의 이론이 틀렸는지를 과거 과학과의 비교를 통해 현대 과학이 얼마나 힘들게 완성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리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나는 과학 혁명이 지식의 역사에 실제로 불연속성을 나타낸다고 확신한다. 이것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관점에 의한 판단이다. 몇몇 뛰어난 그리스인들을 제외하고는, 16세기 이전의 과학은 내가 연구하는 것이나 나의 동료들의 연구에서 보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과학 혁명 이전의 과학은 종교나 우리가 지금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혼재되어 있었으며, 아직 수학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p.203)고 말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다소 부주의하고 바보 같은 구석이 있었으며, 피타고라스학파는 컬트에 가까웠고, 데카르트는 과대평가되었으며 플라톤의 업적도 과장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을 통해 현재 우리가 맹신하는 과학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현대 과학이 아직 최종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과 현대인들이 이뤘다고 생각하는 발전의 위대함만큼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을 위험성이 크다는 경고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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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가 쓴 책이라 눈길이 가지만 책 내용은 저자의 전공분야가 아닌 과학 역사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해 17세기 과학혁명을 이끈 뉴턴까지 물리학과 천문학에 중점을 둔 서술이 이어진다. 또한 동양에서 발전한 과학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적 과거를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단순한 역사서는 아닌것이다. 이를테면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4원소설 등을 설명하면서 어느 누구도 현실에 대한 그들의 이론이 사물의 겉모습을 어떻게 설명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지적으로 게을러서 그런 것은 아니며, 초기의 그리스인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일종의 지적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초기의 그리스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물리학자나 과학자가 아니고 심지어 철학자도 아닌 시인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헬레니즘 시대의 과학을 언급하면서 고전 시대의 과학적인 성과를 무색하게 할 뿐만 아니라 16세기와 17세기의 과학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어느 시대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에 올랐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언급은 그리스의 수학은 기하학을 강조했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에 필수적인 기술인 대수학적인 공식들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고대 세계의 천문학에서 지구, 태양, 달의 크기와 지구에서 태양과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한 것이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지적한다. 그 수치가 너무나도 부정확했지만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세상의 본질에 대한 정량적인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 수학이 올바르게 사용되었다는 점 때문이라 한다. 이후 아랍의 과학이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런 아랍 과학의 성과들은 많은 개인들의 개별적인 작업이었다고 한다. 그중 누구도 과학 혁명에서의 갈릴레이나 뉴턴처럼 나머지 사람들에 비해 뚜렷하게 특출난 사람은 없었으며, 이렇게 찬란하게 발전했던 아랍의 과학과 수학도 곧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중세시대에 과학이 많은 발전을 이루워내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로 기독교가 어쩌면 수학자나 과학자가 될 수도 있었을 영민한 젊은이들에게 교회에서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라는 언급이 눈길을 끌었다. 그 당시 주교와 사제는 보통 민사 법원의 사법권에서 벗어났고 세금도 면제될 수 있었다면서 말이다. 중세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의 가르침이 죄로 규정되었다가 복원된 사건에 대해서도 과학의 미래에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지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의 법칙에 대해서 틀리긴 했지만 자연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은 것 자체는 상당히 중요했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몇몇 뛰어난 그리스인들을 제외하고는 16세기 이전의 과학은 저자 자신이 현재 연구하는 것이나 자신의 동료들의 연구에서 보는 것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과학 혁명 이전의 과학은 종교나 우리가 지금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혼재되어 있었으며, 아직 수학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반면 17세기 이후의 물리학과 천문학은 지금 시대의 과학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폭넓은 현상들을 자세하게 예측할 수 있게 해주며, 이 예측을 관측이나 실험과 비교하여 입증할 수 있게 해주는 수학으로 표현되는 객관적인 법칙으로 표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17세기에 행해진 실험에서 한가지 새로운 점은 대중들이 물리 이론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데 실험 결과를 사용하기를 바랐다는 점이라 언급한다. 현대 실험물리학은 낙하하는 물체의 운동에 대한 문제와 공기 압력의 본질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면서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적인 운동으로 간주한 자유 낙하 운동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사면을 굴러 내려가도록 제안한 공과 앞으로 던져진 물체와 같은 인공적인 운동에 대한 연구로 나아갔다고 설명한다. 이런 면에서 갈릴레이의 경사면 실험은 자연에서는 절대 발견될 수 없는 인공적인 입자들을 만들어내는 오늘날의 입자 가속기의 먼 조상이라 언급한다. 이어서 과학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확립한 프랜시스 베이컨과 르네 데카르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베이컨은 실용적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연구를 폄하했다고 한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과학 혁명을 완성한 뉴턴의 여러 업적들에 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뉴턴의 유명한 책 "프린키피아"를 살펴보았을 때 기하학적인 그림은 많이 있지만 방정식은 거의 없다면서 마치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을 떠오르게 한다는 언급이었다. 어쨌든 뉴턴은 이전에는 미스터리로 보였던 많은 것을 성공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보편적인 원리들로 제공해주었으며 이런 방법으로 물리학 이론이 어때야 하며 어떨 수 있는지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모델을 제공해주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마지막으로 다양한 현상을 하나의 원리나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환원주의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의 지적능력이 현재 고갈되어 가고 있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부록으로 이 책에서 언급된 많은 과학적 주장에 대한 전문해설이 두툼하게 딸려있다. 고등학교에서 대수학과 기하학을 배우고 아직 잊어버리지 않은 독자라면 여기에 있는 수학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언급되어 있는데, 아크탄젠트 계산도 한두번 나오는 수준이니 만만치는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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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머릿말대로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의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어떤 점에서 더 유익한지는 잘 모르겠고 어떤 점에서 덜 유익한지는 잘 알것 같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마디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라서 끝까지 다 읽기는 했다. 이 책은 독자에게 과거의 학자들이 처해있던 상황을 이해시켜주면서 그들이 겪었던 사고과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기 보다는 오히려 과거를 이해하는데 장애물의 역할을 하고 있는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많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어, 쟤 좀있다 죽어"라고 스포일러를 하는 식으로 잔소리같은 내용을 계속 읽다보면 좀 짜증이 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재미있었던 부분은 저자의 그런 태도가 잘 드러나지 않는 장면이었다. 예를 들면 그리스 시대의 천문학자들이 어떻게 지구의 모양이라든지, 지구의 크기, 달까지의 거리, 달과 태양의 크기 비율, 달 혹은 태양까지 거리의 비율 등을 수학적으로 추론해 나갈 수 있었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당시 학자들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그 흥미진진한 발견에 나도 동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다른 부분에서는 좀 이해할만하면 자기는 반대한다는둥, 이것은 명백한 오류라는둥 계속 훈수를 받으면서 장기를 두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게 문제다. 물론 저자가 잘난척 하려고 쓴 것은 아니겠지만 지나치게 자기 관심사에 집중된 혼잣말같은 설명을 늘어놓기만 하고 정작 독자에게 설명해주는 역할에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해 보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굳이 파인만이나 리차드 도킨스의 글들과 비교하자면 그런 점에서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글을 재밌게 쓰는 저자는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보통이다. 천재적인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에게만 '쉬운 문제'이거나 '단순한'문제인 것들로 설명되는 부분들이 많다. 예를들어 450페이지의 무지개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휘어지는 각을 입사각으로 편미분 해서 0이 되는 지점을 찾고 있는데 어쩜 이렇게 재미없게 설명하고 있는지. 나도 물리전공이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고, 심지어는 내가 이것보단 잘쓰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이부분은 몇 가지 복잡한 요인들을 단순화시켜서 풀고있는데 저자의 머리속에서만 정리된 내용들을 일방적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는 무지개라는 아름다운 현상을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결국 실패할 거라고 생각된다. 그럴듯한 그림 하나라도 있으면 훨씬 좋으련만 왜 그렇게 친절한 설명에 무관심한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부분에서는 아마 와인버그님은 자기 책이 재밌게 읽혀지기를 포기하신 것 같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그냥 혼잣말 하는 것 같은 부분들이 꽤 있다. 그런부분들을 읽고나면 - 물론, 내 이해력이 부족해서이겠지만 - '그래서 어쩌라는거지?'라는 문장이 머리속에 남게 된다. 예를 들면 194페이지에서 '그는 균일하지 않은 운동의 한 순간의 속도를, 그 속도가 일정했을 경우에 흘러갔을 시간으로 거리를 나눈 것으로 정의했다. 이 상태라면 이 정의는 순환 논리이므로 쓸모가 없다.' 라고 했는데 나로서는 이게 왜 '순환논리'라는 건지 이해하는데 오래 걸렸다. 물론 바로 뒤에 그것을 좀더 잘 정의된 문장으로 바꿔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왜 '순환논리'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어서 이분은 독자들을 과대평가하고 있거나, 아니면 물리학을 잘하는 사람만 읽을 걸로 기대하거나, 아니면 원래 불친절하거나, 아니면 이게 일기가 아니라 책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242페이지 주석을 보자 '행성들의 각크기는 충분히 크기 때문에 행성 원반의 다른 지점에서 나온 빛이 지구의 대기를 통과할 때 일반적인 대기 요동의 크기보다 더 넓은 범위로 통과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오는 빛에 미치는 효과는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기의 요동이 증폭되기 보다는 상쇄되는 경향이 있다. 이때문에 행성은 깜빡거리지 않는다.' 솔직히 이런 문장은,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모를 설명이지, 결코 모르는 사람을 알게 만들 설명은 아닌 것 같다. 무지렁뱅이인 나로서는 결론은 알겠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이해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건지? 이런 부분에 적절한 그림 하나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될텐데 이렇게 말로만 떼우는건 아닌것 같다. 역자이신 이강환님도 이런 부분을 느꼈는지 역자 후기에서 '이 책은 세부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전반적인 흐름을 따라가며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파악하는 것에 집중해서 읽기를 권한다'라고 하고 있는데, 나는 이 말씀이 명백이 독자를 달래고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책이 애초에 흐름을 위주로 쓰여진 책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조금만 읽어봐도 와인버그가 모든 문장마다 본인이 명확히 이해한 것만을 바탕으로 아주 디테일하게 썼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결국 이 책은 이도저도 아닌 책이 되어버렸다. 책을 반 정도 읽는 동안 과거 학자들의 업적에 대한 사전식 나열을 주욱 읽었다는 정도의 기억만 남았던 것이다. 분명이 매우 훌륭한 책인데.. 재미가 없다.. 물론 재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슬람 과학자들에 대해 쓴 부분들도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고 뉴튼을 찬양(?)하는 부분도 재밌었다. 그런데 뭔가 딱부러지게 남는 재밌는 결론이나 흥미진진하다고 할 만한 2%는 없었다. 결국 나도 무지렁뱅이 대중인지라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동안에는 무언가 나를 흥분시켜줄 어떤 것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수학적인 모델들(예를 들면 주전원이라든가)을 그림과 수식을 곁들여서 설명을 더 해주든가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 내용들은 맨 뒤에 전문해설로 몰아 넣었는데 그것 말고는 제대로된 그림 한장 없는 책이라니! 그래서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전문해설에 희망을 걸었는데 전문해설은 더 실망스러웠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의 발견을 담담하게 설명해놓은 것들이 주류이기 때문에 '그냥 물리 개론책이나 보면 될것을 뭣하러 이런책을 봐야 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 학자의 발견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완전한 현재의 지식 체계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 참으로 어중간한 설명이다. 우리가 만약 유클리드 원론이나 뉴튼의 프린키피아를 본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 책들을 학습을 위해 본다면 너무나 비효율적일 것이다. 그런 책들은 주로 그들의 머리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보는 것이지 학습만을 위해 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저자의 어떤 고집때문에 결국 이 책에 만족할 사람은 저자 혼자뿐일 것 같다. 독자로서는 정말 이도저도 아닌 책이 됐다. 책 제목도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이라고는 했지만 책 전체를 통털어서 화학과 생물학에 대해서는 몇페이지 정도만 할애하고 있다. 생물학에 대한 그의 결론은 '생물학은 아직도 과학스럽지 않고 과학스럽게 되기도 어렵다' 인듯 하다. 차라리 제목을 '천체물리의 역사에서 왜 뉴턴이 짱인가?'라고 했으면 적절했을 것 같은데 과하게 거창한 제목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로써 다시한번 학문, 특히 물리나 수학은 본인 말고는 원래 재미 없는 것임을 다시한번 인정해야만 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나 역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반성의 눈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수학이나 과학 얘기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스티븐 와인버그와 같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