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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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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뛰어들어- Rush 저항하고- Resistance 마침내 혁명- Revolution 을 이루겠다는 젊은 벗들에게 띄우는 40대 언론인의 러브레터" 지난 학기말 분주함을 무릅쓰고 학교 신문사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렸다. 종강호에 우리대학 신문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돌아보는 기사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 기사를 읽은 당시에는 회의적이었다. 특히 '중도좌파'라는 그 단어가 마음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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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뛰어들어- Rush 저항하고- Resistance 마침내 혁명- Revolution 을 이루겠다는 젊은 벗들에게 띄우는 40대 언론인의 러브레터" 지난 학기말 분주함을 무릅쓰고 학교 신문사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렸다. 종강호에 우리대학 신문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돌아보는 기사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 기사를 읽은 당시에는 회의적이었다. 특히 '중도좌파'라는 그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한동안 글 올렸던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그 게시판에 들어가게 되었고 신문사 편집국장님께서 남겨주신 답글을 읽으며 글 올릴 때와는 조금 더 달라진 내 생각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회 전반에 팽배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떠밀려 돈을 사랑하고 정치에는 무관심해서 취업 준비생들로 방학에도 도서관이 미여터진단다.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사는 것이 요즘 20대의 모습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조차 어렴풋하게 지식권력, 언론권력의 횡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뿐이다. 사실 더 많이 알고 무엇인가 해보고 싶지만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몰랐던 부분을 더 많이 알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답은 나와있는 것 아닐까요?"라는 글귀가 막연해서 한편으론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하기도 한다. 적어도 사실을 알려고 노력하고 사실을 보는 눈을 키워야겠다는 것, 언론 권력에 휘둘리지 말고 싸워서라도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자극을 받은 것으로 이 책을 끝까지 읽은데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저자는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고 철저히 진보 편에 서서 글을 쓰고 있다. 보수가 아닌 수구세력을 비판하고 '부자신문'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언론운동가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는 분위기가 '세뇌적 분위기'라는 평가는 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젊은 벗'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책 내내 젊은 벗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 이 책에는 2000년 5월부터 2002년 8월까지의 편지들이 실려있다. '산소' 학번인 나는 책을 읽으며 그때의 월드컵 열기, 반미시위와 촛불집회 같은 것들을 다시금 떠올린다. 진작에 이런 책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그때 좀 더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친일언론, 족벌신문과의 투쟁이 꽤 활발했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비교적 조용한듯 하다. 그 투쟁이 완성되었다는데 대한 반증은 절대 아닐 것이다. '언론개혁'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2004년 6월 이후로 언론개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뚝 끊긴듯해 보인다. 논의의 주제가 신행정수도 이전문제와 국가보안법으로 넘어갔기 때문인가? 아니면 2002년 당시 저자가 우려했듯 '노사모'의 열정이 일시적인 팬클럽의 감정 그 이상은 아니었거나 노무현대통령의 정치도 실패해버려 '노사모'들마저 좌절시킨 것인가? 하지만 아직도 노사모가 조, 동 신문 절독 운동을 하는 뉴스가 검색엔진에서 보이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내 눈은 항상 수구언론을 향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언론개혁운동은 꾸준히 진행되어 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해본다. 책 내내 흐르는 감상적인 분위기가 기자 출신 답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젊은 벗들이 올바른 시각을 갖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그 안타까운 마음만은 제대로 전해져왔다. 20년동안 수구언론의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인지 '운동권(이 말 자체에도 군부독재가 부여한 특정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에 대해 거부감부터 갖기 쉬웠고 학생운동을 남의 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는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분열된 학생운동연합체의 모습을 보며 얼마전 뉴스에서 비치던 민주노총 내부 싸움이 떠올랐다(물론 그 뉴스에서 보여준 화면이나 들려준 이야기에도 어떤 의도성이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좋은 사회 만들어보자고 하는 일들인데 자기들의 정체성을 갖는 것도 좋지만 분열되지 말아야할 영역은 분명히 해야하지 않나하고 잘 모르지만 주제넘게 생각해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05.02.1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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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열정을 지닌, 젊은 저널리스트, 순석춘.
"순수와 열정을 지닌, 젊은 저널리스트, 순석춘." 내용보기
이 칼럼집의 부제처럼 이 책은 그야말로 편지글이다. 실제로 나도 인터넷 한겨레로부터 주기적으로 보내오는 손석춘의 메일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메일을 다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칼럼집을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했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손석춘은 상당히 순수한 열정의 소유자로 보인다. 고3 때 이화여대에서 그의 강연을 실제로 접했을 때도 그는 순수함
"순수와 열정을 지닌, 젊은 저널리스트, 순석춘." 내용보기
이 칼럼집의 부제처럼 이 책은 그야말로 편지글이다. 실제로 나도 인터넷 한겨레로부터 주기적으로 보내오는 손석춘의 메일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메일을 다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칼럼집을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했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손석춘은 상당히 순수한 열정의 소유자로 보인다. 고3 때 이화여대에서 그의 강연을 실제로 접했을 때도 그는 순수함과 동시에 열정을 가진 모습이었고, 이 칼럼집에 실린 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은 무디어진 나를 계몽하게 하는데, 이것은 자유로운 사유와 때때로 능청스러움까지 가진 고종석의 칼럼과는 또 다른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젊은 벗들"에게 애정어린 편지를 띄운 흔적이 이 칼럼집이지만, 내가 볼 때 누구보다도 젊은 의식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손석춘이 아닐까 싶다. 이 칼럼집에서 그의 사회과학적인, 역사적인 의식의 책무와 순수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것과 동시의 그의 서정적인 문체와 우리말에 대한 사랑도 찾아볼 수 있다. 잠깐 그의 목소리를 이곳에 퍼뜨려볼까? : "환상은 어쩌면 삶의 미덕일지 모른다. 안톤 체호프가 우수에 잠겨 고백했듯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그나마 환상이 낫기 때문이다. 설령 환멸의 순간에 이르더라도 사랑의 환상은 삶을 가멸게 한다. 기실 슬픔의 늪을 건너지 않은 사랑의 깊이는 얼마나 얕은가. 하지만 환상이 허용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정치가 위대해서가 아니다. 터무니없게도 정치가 뭇사람의 삶을 틀짓고 있어서다. 사랑이나 비애가 숨슆 틈이 그곳엔 없다. 숨겨졌을 뿐 정치의 밑절미는 첨예한 이해관계다. 눈빛 맑은 사람일수록 그걸 부정한다. 하지만 아니다. 이해관계를 촘촘히 분석하지 않은 정치의 끝은 참혹하다."(251쪽) 그 글에서 소설가로서의 싹이 엿보인다. 그가 쓴 『아름다운 집』도 언젠가 읽어봐야겠다.

[인상깊은구절]
환상은 어쩌면 삶의 미덕일지 모른다. 안톤 체호프가 우수에 잠겨 고백했듯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그나마 환상이 낫기 때문이다. 설령 환멸의 순간에 이르더라도 사랑의 환상은 삶을 가멸게 한다. 기실 슬픔의 늪을 건너지 않은 사랑의 깊이는 얼마나 얕은가. 하지만 환상이 허용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정치가 위대해서가 아니다. 터무니없게도 정치가 뭇사람의 삶을 틀짓고 있어서다. 사랑이나 비애가 숨슆 틈이 그곳엔 없다. 숨겨졌을 뿐 정치의 밑절미는 첨예한 이해관계다. 눈빛 맑은 사람일수록 그걸 부정한다. 하지만 아니다. 이해관계를 촘촘히 분석하지 않은 정치의 끝은 참혹하다.
n****w 2003.10.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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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질 연서(戀書) , R통신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질 연서(戀書) , R통신" 내용보기
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세대간 단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대 차이’와 ‘세대간 단절’은 그 의미가 현격히 다르다. ‘차이’는 서로 다름을 의미하지만 ‘단절’은 어떤 관계나 교류를 끊는다는 의미, 즉 절단의 다른 표현이다. 한 세대가 습득한 여러 형태의 유산이 다음 세대에 이어질 때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발전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윗세대가 겪은 시행착오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질 연서(戀書) , R통신" 내용보기
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세대간 단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대 차이’와 ‘세대간 단절’은 그 의미가 현격히 다르다. ‘차이’는 서로 다름을 의미하지만 ‘단절’은 어떤 관계나 교류를 끊는다는 의미, 즉 절단의 다른 표현이다. 한 세대가 습득한 여러 형태의 유산이 다음 세대에 이어질 때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발전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윗세대가 겪은 시행착오들은 그 다음 세대에게 반면교사가 되어 이들의 수고를 덜어준다. 말 그대로 윗세대의 피와 땀은 그 다음 세대가 물려받아 일구어 갈 이 땅에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는 것이다. 다양한 생각들이 부딪혀 깨어질 때 내가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가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있다. 또 그리 해야 더 나은 결과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하여 원활한 의사소통과 이를 위한 건전한 언로의 형성은 필수적이다. 이는 이 땅에 존재하는 여러 언론사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둘러보면 세대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의 중심에 언론이 있다. 일부라고는 하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세대 차이가 갑자기 세대간 단절로 격화된 까닭은 무엇인가? 그 시기를 조금 더 정확하게 짚어보면 그 속내를 가늠할 수 있다. 언제부터였나? 지난 해 말에 치러졌던 대선 이후부터였다. 진부한 색깔론과 지역갈등을 무기 삼아 부당하게 언론 권력을 누려왔던 일부 수구 언론이 이제 세대간 갈등을 조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분할통치의 전형적인 본보기이다. 손석춘 씨의 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반기를 든다. 그러나 섣부른 오해는 금물이다. 전투적이라거나 난해한 사상으로 도배된 딱딱한 책이 아니다. 현직 언론인으로서 불혹을 넘긴 그가 이 땅의 젊은 벗들에게 띄우는 달큰한 사랑편지다. 육체적으로 젊다 하여 그 편지의 수신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나이가 많다 하여 ‘내게 온 편지는 아니겠거니’ 속단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만약 당신이 패배주의와 깊은 회의에 빠져 자신의 현실부터 바꾸어갈 용기를 아예 포기했다면 이 편지들은 당신의 마음을 아주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금 당신이 자신의 신념과 공동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한 면면들과 싸우고 있다면, 혹은 그 치열한 투쟁 가운데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가슴 절절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어느 혁명가는 그렇게 말했지만 무릇 한 사람의 말이 힘을 가지려면 그 말이 그의 삶과 일치해야 하는 법이다.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지만 내가 손석춘 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글에서 바로 그러한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해 주었고 힘에 겨워 주저 앉고 싶을 때마다 다시금 제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준 글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부끄럽지만 이 편지묶음을 눈빛 맑은 당신께 바칩니다.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의 답 장을 밤을 지새우며 기다리겠습니다. 먼동이 틀 때까지”
b*****y 2003.01.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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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벗과 소통하고픈 지식인의 편지이야기!!
"젊은벗과 소통하고픈 지식인의 편지이야기!!" 내용보기
손석춘은 젊은이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학생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대학내에서 개최되는 토론회에는 단골인사로 출연하며 기꺼이 학생들과 술잔을 기울이고자 한다. 손석춘의 >도 그 연장선상에 쓰여진 책이라 할 수 있다. 총 100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비단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고 있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의 흔적들이 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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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은 젊은이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학생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대학내에서 개최되는 토론회에는 단골인사로 출연하며 기꺼이 학생들과 술잔을 기울이고자 한다. 손석춘의 << R통신 : 젊은 벗들에게 띄우는 손석춘의 러브레터 >>도 그 연장선상에 쓰여진 책이라 할 수 있다. 총 100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비단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고 있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의 흔적들이 뭍어있다. 물질주의적 가치가 팽배해진 현 세태에 대한 선생님의 고민에서부터 대학 새내기의 복잡하기만한 현실 인식, 안티조선에 대한 생각들, 최근에 미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까지... 현실의 수많은 문제들이 편지 하나하나 적지 않은 무게로 표출되어 있고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 보다는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며 또 다시 답장을 기다린다. 자신의 기득권의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끊없이 언론개혁에 매진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국통일과 노동해방은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 땅 모순이라는 저자의 외침을 생각해 보며 이제 젊은이들을 향한 그의 짝사랑에 우리가 진정 R세대라는 이름으로 화답해 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인상깊은구절]
현실에 뛰어들어(rush) 저항(resistance)하고 마침내 혁명(revolrution)을 이루겠다는 젊은 벗들의 다짐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당신도 알다시피 신문과 방송은 그 동안 20대를 일러 온갖 이름을 붙여 왔습니다. 최근 <조선일보>가 'W세대(월드컵 세대)'라는 조어를 작심하고 퍼뜨리는 것도 그 한 예입니다. 언론이 붙인 이름들은 대체로 소비지향적이거나 탈정치적이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이 떠들어대는 그 이름은 실제로 현실을 규정해나가기도 했습니다. 그에 맞서 스스로를 R세대로 선언한 젊은 벗들이 가슴 뭉클했던 까닭입니다.젊은 벗들과 더불어 우리 시대의 외로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망설임 속에 편지를 들이고 손을 내민 사연입니다.
m*****0 2003.01.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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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와 나누는 그의 대화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젊은이와 나누는 그의 대화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내용보기
언론개혁에 대한 확고한 작가의 의지는 이미 그가 발표한 여러 책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왜 그리도 집요하리만치 열성적으로 언론개혁을 부르짖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오랫동안 잘못된 언론에 의해 새뇌되어 버린 기성세대는 그렇다치더라도 이제 막 세상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의지를 쏟아부으려 하는 젊은이들에게도 그러한 언론의 폐단이
"젊은이와 나누는 그의 대화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내용보기
언론개혁에 대한 확고한 작가의 의지는 이미 그가 발표한 여러 책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왜 그리도 집요하리만치 열성적으로 언론개혁을 부르짖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오랫동안 잘못된 언론에 의해 새뇌되어 버린 기성세대는 그렇다치더라도 이제 막 세상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의지를 쏟아부으려 하는 젊은이들에게도 그러한 언론의 폐단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그래서 저자는 그런 젊은 벗들과 이야기 나누며 세상에 대한 개혁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말 한마디는 살인도 저지르게 하는 무서운 무기이다. 그래서 잘못된 말 한마디에 우리는 온통 세뇌되어 정의와 부정을 가릴 수 있는 눈과 마음과 머리를 빼앗겨 버릴 수도 있다. 칼보다 펜이 무섭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나 역시 어쩌면 이제 30대 후반이라는 나이만큼 세상의 잘못된 언론 속에 너무도 쉽게 나의 모든 것을 맡겨 버렸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잘 알고 있지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게 만든 세상을 원망하는 것으로 나 자신에 대한 변명을 삼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잘못된 언론에 냉철한 비판과 저항의식, 이것은 이 세상 위에 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의무임을 다시금 상기해 본다. 벌써 사 놓은지 꽤나 시간이 흘러버려 이젠 내가 샀었나 싶었던 손석춘 '작가'의 '아름다운 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l*****i 2003.08.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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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벗을 향한 간곡한 부탁
"젊은 벗을 향한 간곡한 부탁" 내용보기
2년 전, 입학 통지서를 받으러 학교에 왔을 때 신입생들을 유난히 살갑게 맞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락처를 남겨 주면서 나중에 하숙집을 구할 때 연락 주면 도와주겠다는 말이 고마워서, 한편으로는 신입생답게 어리버리했던 탓에, 얼떨결에 얇은 책자 하나를 받았다. 집에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 잠깐 책자를 훑어 보신 어머니는 ‘운동권’ 학생과는 가까이 하지 말라는 염려스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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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입학 통지서를 받으러 학교에 왔을 때 신입생들을 유난히 살갑게 맞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락처를 남겨 주면서 나중에 하숙집을 구할 때 연락 주면 도와주겠다는 말이 고마워서, 한편으로는 신입생답게 어리버리했던 탓에, 얼떨결에 얇은 책자 하나를 받았다. 집에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 잠깐 책자를 훑어 보신 어머니는 ‘운동권’ 학생과는 가까이 하지 말라는 염려스런 주의를 주셨다. 그 책자는 곧장 쓰레기통으로 향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랫동안 사회주의는 무조건 몹쓸 것이고, 학생 운동은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을 강요 받았던 나에게 그러나 지난 2002년은 ‘조용한 혁명’의 해였다. 여러 진보적 지식인들의 저서를 통해 우리 사회를 다시 보게 되면서 그 동안 가정과 학교, 언론이 어떻게 나를 기만하였는가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2002년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난 학생 운동에서 ‘낭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학생 운동의 현실은 경험해 보지 못하여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학생 운동의 이상만큼은 내 안에 있는 청년의 붉은 피를 출렁이게 하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저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난 학생 운동은커녕 작은 시위에도 참여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너무 늦었다고, 소극적 성격 탓이라고,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구차한 핑계를 대며 난 그들을 멀리서 지켜만 보았다. 이 책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향한 간곡한 부탁의 글이다. 글쓴이는 차분한 어조로 우리 젊은 벗들이 그저 가만히 현실에 안주하여서는 안 된다고, 국민을 기만한 족벌 언론에 저항하고 이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쓴이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글쓴이에게 보내진 많은 이들의 생각도 함께 들려 주면서, 때론 찬성하면서 때론 반박하면서 또 때로는 반성하면서 겸손하게 젊은 벗들에게 부탁하는 글들을 읽으며 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할 줄은 알면서도 이런 저런 핑계로 직접 행동에 나서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 그래서 학생 운동의 이상은 아름답지만 그 현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학생 운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아무 것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물론 학생 운동이 다 바르고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국민의 정부’가 막을 내리고 ‘참여정부’의 새 날이 밝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참여정부’의 떳떳한 젊은 벗이 될 수 없을 것만 같다. 어떻게 하여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참여하라! 그러나 그 실천은, 나와 같은 의지 박약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02년이 나에게 있어 생각의 혁명이 있었던 해라면 2003년은 행동의 혁명이 있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k***7 2003.0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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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되지만, 공감가진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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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인 손석춘씨가, 한겨레 신문사의 언론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독자들에게 띄운 메일들을 모아 만들어졌다. 그가 가지고 있는 언론개혁에 관한 생각들, 사회운동에 관한 생각들이 묻어 나는 책이다. 그와 독자간의 주고받은 메일들의 내용도 간간히 포함되어 있어, 쉽게 듣기 힘든,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20대 초반인 나이나, 사회운동을 그리
"이해는 되지만, 공감가진 않는" 내용보기
이 책은 저자인 손석춘씨가, 한겨레 신문사의 언론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독자들에게 띄운 메일들을 모아 만들어졌다. 그가 가지고 있는 언론개혁에 관한 생각들, 사회운동에 관한 생각들이 묻어 나는 책이다. 그와 독자간의 주고받은 메일들의 내용도 간간히 포함되어 있어, 쉽게 듣기 힘든,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20대 초반인 나이나, 사회운동을 그리 해보지 못한 환경탓인지 그의 말들이 이해는 되었으나 공감이 가진 않았다. 물론 언론개혁의 당위성이나 젊은이들의 순수하고 열린 사회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r****n 2003.01.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