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 스노우의 59년 리드강연과 수년이 지난 후 두문화논쟁에 대한 그의 입장, 그리고 모학자의 최근 양상을 담은 논고, 이렇게 세편을 모아서 한권을 구성했다.
"옛날에 뒤적거리던 책들은 결국 보게되더라."는 최근 스스로의 깨달음이 들어맞은 책이다.
결국은 이렇게 보게 되네..
내용인 즉슨
문과와 이과의 교류가 없다.
이것은 문제다.
문과쪽은 이과쪽을 알아야 하고, 이과쪽은 문과쪽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스노우는 이과쪽으로 약간 편든다.
왜냐면 과학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1900년대 초의 이과쪽에서의 지적흐름을 잡아야 하므로, 그 혁명이 우리를 '진보'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과쪽에 있는 이들이 고루한 편견에 빠져있는 것에 반해, 이과쪽은 생각자체가 조금 트여있기 때문에 자신은 심정적으로 이과쪽이 더 좋다라는 것을 확실히 드러낸다. <-이부분에서 내가 약간 터프하게 이해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지적한 내용들을 교정할 수 있는 방안의 시작은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학자의 최근의 양상을 담은 논고에서는
지적흐름이 문과가 이과를, 이과가 문과를 포섭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
과연 문과보다 의과쪽이 더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
그의 제언때문인지 교육내용이 좀더 제너럴하게 바뀌었다는 것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 책과 저자를 알게 된 것은 다카시의 책을 통해서였는데, 그는 오직 이과쪽의 지식에 문외한인 문과생들을 질타하기 위해서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스노우의 기본적인 입장에 적극적인 찬성이다.
양 분야가 서로 교류해야 한다. 자기들만의 성벽에 둘러싸여 자족하는 분위기, 아주 싫다.
스스로의 집단내에서 세상넓은 줄 모르고 지식을 한정시키면서 나름대로의 신념까지 키우면 더 문제다.
이는 굳이 거창한 학문적 영역에 국한해서 할 얘기가 아니다. 개인 간에도 넓게 적용시켜볼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스노우조차 '이과'쪽에 편향된 입장으로서, 두분야를 고루 경험한 보기 드문 이력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균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못한 점, 그리고 '교육'의 개선이 이러한 국면을 타개할 수 있다고 해놓고서도 청사진을 제시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오늘날의 한국은?
학문의 진화과정이라는 것이 전에도 언급했듯이 영역을 넓고 깊게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문과쪽에서 이과쪽으로 영역의 확장을 기도하는 모습이 발견되고 있다. 사회과학 내에서도 특히 경제학은 '경제제국주의'란 말이 나올 정도로 다른 분과의 학문을 포섭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들이 모 학자가 지적한 것과는 달리 나로서는 '두문화 사이의 교류'라는 측면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스노우가 지적한 두문화간의 배타성, 경직성 문제가 단지 조금 완화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스노우의 지적은 아직도 유효하다 생각이 된다.
'유연한 사고', '넓은 교양', '다각적 시각'
21세기 지식인의 키워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