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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이별과 상실의 경험은 아픔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에는 언제 다가올지 모를 이별의 순간이 항시 도사리고 있다. 결코 대면하기 싫은 그 경험을 신은 잔인하리만치 우리의 손을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고통과 상처와 발버둥질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밝은 태양 아래 서서 기억의 저편에 묻어둔 아픔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마치 남의 일인 양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걸어갈 때, 우리의 곁에서 희미한 등불이 되어준 것은 누군가의 ’사랑’이었음을 다 지난 후에야 알게 된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작은 깨달음에 감사하며 미소짓게 된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로 유명한 모리 교수가 죽음을 앞두고 매주 금요일에 자신의 치료와 관계없이 인간대 인간의 만남으로 선택했던 폴라 다시.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랑하는 딸을 잃고 다시 한 결혼도 남편의 학대로 5년만에 헤어져야 했던 그녀는 누구보다 상실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생의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면, 그 일은 굳이 좋게 끝나지 않아도 된다."고 갈파한 에델 퍼슨(Ethel Person)의 말처럼 저자가 겪었던 상실의 고통과 치유 과정은 깨달음을 얻는 축복의 길이었다. 저자가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게 된 계기와 경험 그리고 교도소의 재소자들과 만남을 통하여 저자와 재소인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기술하면서 책은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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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로 점철된 가슴으로 긴 날, 긴 밤을 지새운 적이 있습니다. 되돌릴수 없다는것, 미안하다고 말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숨쉬고 있는 매 순간 가슴을 후비는 고통으로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책......예고없이 닥친 영원한 이별이 남아있는 사람을 얼마나 잔인하게 갉아먹는지를 시험하는 것처럼 저는 그 슬픔과 아픔에 스스로를 방치해 두었습니다. 내가 아프고 괴로웠던건 한 사람과의 이별에서 오는 충격과 죽을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은 그 순간의 광경에서 오는 두려움때문이었어요. 이별과 죽음이 주었던 공포. 이별하기도 죽기도 싫다는 그 생각은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발악하며 떼쓰는 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항의하고 절규하게 만들었습니다. 행운이었을까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뜻하지 않은 계기로 저는 그 모든 시간과 나의 행동들이 스스로에게 주는 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슬픔에 허우적대며 정신을 놓았던 그 시간, 돌아볼 수 있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고 일으켜 주었던 것은 한권의 책이였습니다. 인간적이면서도 초월적인 모습으로 이별을 맞이하던 모리교수님의 모습을 담은 책이었어요. 눈물 범벅된 얼굴로 염치없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흐느끼면서 책장을 덮었을때 나는 어떤 후련함을 느꼈더랬습니다. 더불어 생과 사에 대해 겸허해 질 수 있는 용기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그래서 내 발로 정신 상담을 받고 싶을 정도로 암담하게 했던 그 혼란의 시간을 말끔히 게워낼 수 있었습니다. 한번도 만나지 못한 한 사람으로 인해 생의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또한 낯설지만 새로운 세상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습니다. 그런 모리 교수님의 남겨진 일화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떨림과 흥분, 기대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미치 앨봄씨와는 따로 모리 교수를 만났던 폴라 다시.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숙연해지는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불행이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예고하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이지요. 갑작스러운 남편과 아이와의 영원한 이별을 맞이한 그녀 또한 망가진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두번째 남편을 맞고 생의 한가운데서 상처로 얼룩진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고 맙니다. 그런 그녀를 일으켜주었던 것은 바로 물개가죽입니다. 잃어버린 물개가죽을 찾는다는 것은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곧 자신의 물개가죽을 찾기로 합니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를 하면서 전쟁같은 삶을 살아오면서도 그녀가 여성으로서 행복했던건 그 날 이후로 이별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고 그 힘은 바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잉는데서 나온것이였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거죠. 죽음을 앞둔 모리 교수와 대면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반추합니다. 자신의 상처가 치유된 시기가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그것은 바로 자신이 가진 것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 감사하게 여기게 된 때부터라고 고백합니다. 과거의 화려한 시간들을 기억하며 아쉬워하기를 그만두고 현재에 만족하며 감사하기 시작한 그 순간이라고요. 죽음을 맞이한 모리 교수와 그녀는 현재의 자신의 상태에 감사하기로 합니다. 모리 교수는 현재는 움직일 수 없는 육체이지만 제기능을 다해준 그것에 대한 감사로 이별 수업을 합니다. 움직일수 있는 그 순간까지 자유로이 걸을 수 있고,달리고 춤을 출 수 있었던 삶을 주었던 발에게, 살을 만지고 서로를 부둥켜안을 수 있는 감격을 주었던 손에게, 사랑하는 목소리, 음악,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수 있게 해주었던 귀에게, 무관심으로 넘겨보기 일쑤였던 세상을 새로운 의미로 볼 수 있게 해준 눈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바싹 구운 오리고기, 고구마 팬케이크를 맛 볼 수 있게 해준 입(혀)에게, 꽃들의 향기를 맡게 해주었던 코에게 모리 교수는 진정으로 감사하며 마음편히 그것들을 놓아 줍니다. 그리고 모리 교수는 그녀에게 연락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에게 다가갈 것을 강권합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마주하며 그녀는 어린 시절 황금빛 식탁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기억합니다. 그 속엔 아버지의 사랑, 가족들의 삶이 녹아있고 그것에 바로 그녀의 삶이었다는것을 깨달으면서 아버지를 받아들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주책없이 밀고 나오는 더운 눈물을 숨기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해봅니다. 폴라 다시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용기, 이별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 한 사람을 받아 들이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나를 이기는 용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주어진 내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과거의 것에 감사하고 담담히 이별 하는 것,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것. 이것들은 모두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지요. 모든것에는, 생의 의미를 찾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별수업이 제게 가르쳐준 삶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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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별수업>이라는 제목을 보고 좋아하는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인생수업>이 생각났다. 죽음을 통해 인생의 진정성을 찾으려던 그녀의 글과 이 책은 왠지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저자인 모리교수가 남긴 삶과 사랑에 대한 마지막 메시지라는 문구도 그의 글을 읽었던 독자로서 궁금증을 가지게 하는 부분이었다.
책은 크게 상처, 이별, 사랑이라는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상처, 이별,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그녀가 가지고 있던 상실의 아픔과 심리치료사라는 직업상 만나게 됐던 사람들의 아픔, 모리 박사를 만나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진리를 만날 수 있다. 저자 폴라 다시는 심리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는 직업이지만 그녀 역시 개인적인 삶에서는 아픔이 있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작은 전문대학원에서 상담가로 일하던 그녀는 남편을 만나 첫째딸 사라를 낳고, 둘째딸 베스를 임신한 상태에서 음주운전자의 사고로 인해 남편과 첫째딸을 잃는 상실의 아픔을 당했다. 그리고 두번째 남편과의 결혼 생활 역시 불행했고 결국열한 살난 딸과 둘이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개 가죽에 관한 동화를 생각해내고 자신의 내면 속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병든 아버지를 돌보느라 힘든 어머니를 만나며 자기 본연의 모습을 아는 것이 행복을 부르는 길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날 신뢰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점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 자신이 귀기울이지 못했던 내면의 목소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직업상 다양한 사람의 아픔을 들어야 했던 저자는 우연히 교도소 강의에 초청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감명받는 재소자들을 보고 어둠이 아닌 현재의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특히 재소자 중 한명인 음주운전이란 죄목을 가지고 있는 줄리아를 만나게 되면서 가까운 친구들과도 나눌 수 없었던 교감을 나눈다. 음주운전자로 인해 남편과 딸을 잃어야 했던 저자와 음주운전을 한 줄리아의 만남은 특별해 보였다. 이들과의 만남은 인생에서 정말로 귀중한 것이란, 황량한 방에서 벌거벗고 서 있을때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교훈을 그녀에게 주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모리 슈워츠 박사와의 만남이다. 모리 박사가 어느날 먼저 그녀의 상담실로 찾아왔다. 처음 만났을 때 오만한 느낌을 주었던 모리 박사는 사실은 어렸을때 어머니를 여읜 충격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이었다. 치료법도 없는 루게릭병에 걸린 그는 심리치료가로 월요일에 한번, 금요일은 인간으로 한번 와주기를 바랬다. 처음 거절하던 그녀는 예전에 자신의 상담으로 변화를 곁었던 스콧을 기억하며 모리 박사와의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죽음을 앞둔 모리 박사와의 만남은 두 사람을 서로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다. 죽음을 잘 맞겠다는 강한의지는 모리를 점점 바꾸기 시작했고, 모리는 하루하루의 중요성을 점점 더 인식해 나갔다. 예전에 만났던 재소자들이 하루하루의 중요성을 느꼈던 것처럼. 죽음을 앞두고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탐구 했으며, 일상적인 걷고 움직이는 것이 모리에게는 어려운 것이 되자 저자는 내가 가진 사소한 것들을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다. 모리는 죽음을 다가가는 과정을 그의 눈을 통해서 '그와 함께' 지켜볼 기회를 준 것이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도 '죽음'을 통해서 볼 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 되는 것 같다. 자유가 없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모리 박사의 근육이 점점 마비되면서 일상적인 걷기나 움직임이 소중함을 느끼고, 재소자들을 통해 폐쇄된 곳이 아닌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감사했던 것처럼 말이다. 책의 처음 부분에 나왔던 잃어버린 물개 가죽을 찾아 본연의 모습을 찾았다는 동화이야기 처럼 내가 잃어버리고 있는 본연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가르침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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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슬픈 일이지만 인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쁘게 변할 수도 있지만 좋게 변할 가능성도 있고 변화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변화한다. 슬픔에서 슬픔을 이겨내는.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삶의 과정들이 보인다. 이별을 앞둔 모리 교수와 세상과 이별을 한 소년과 이별을 당한 복역 중인 여자. 이별에 갖다 붙이면 이런 소개가 된다. 이 책의 작가 또한 이별을 당한 쪽이다. 그리고 슬퍼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별이란 사소하고 흔한 것일지 모르지만 슬픈 일이다. 그런 이별에 빗대어진 삶에 대한 메시지는 어떨까? 더욱 절절하다. 뼈 속 깊숙이 알겠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이별이란 죽음 때문에 이루어지는 이별의 경우라서 더더욱 가슴 깊이 다가왔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 앞에서 약해져버리는 마음은 어느새 물러져서 메시지를 더 잘 받아들이고 그 여운에 몸둘바를 모르며 오래 기억하게 된다. 더불어서 우리는 우리의 지금 현재 삶에 대한 고마워하는 태도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책에서 말하는 메시지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깊이 생각되는데 이런 감사하는 태도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 장점이 아닐 수가 없다. 상처를 받고 이별을 겪지만 결국에는 그것의 치료제가 되는 것은 다시 사랑이다. 나는 치료제는 결국에 사랑밖에 없다는 결론을 확정지었다. 사랑이란 상처 받고 이별을 당한 사람들의 것만이 아니라 아무렇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리 교수의 이야기, 작가의 이야기,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소년 이야기까지 그 이야기들이 말하는 메시지 하나하나가 평소에 우리가 알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라 더욱 돋보였다. 멋들어진 말은 아닐지라도 이런 말 한마디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게 지금도 신기하다. 이런 책이 왜 나오는 것일까? 바로 이별을 당하기 전에 상처받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애초부터 알라는 것이다. 내 삶을 내가 지킬, 내가 만들라고 하려고. 이별이 주는 삶의 의미를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해서 지각하기 전에 우리가 삶과 보내야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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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힘겨운 여정을 이겨내는 힘. 사랑..
타인과 관계를 맺는데 서툴고, 폭력으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했던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를 가졌던 심리치료사 폴라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첫 아이를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하였지만, 둘째 아이의 임신을 알고 여행을 다녀 오다가 음주운전사로 인해 자신의 남편과 딸을 잃게 된다. 임신중이였던 둘째가 열살이었던 때 재혼을 결심하였지만, 5년만에 다시 결심해야 하는 이혼의 상황. 삶의 절박하고 힘겨운 여정에서 자신을 잃어가기 힘든 상황에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도움을 구하면서 어려움을 하나씩 사랑의 힘으로 극복해 가는 과정이 책에 담겨있다.
#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맺어준 인연.
저자인 폴라 디시가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과 재소자 교화시절에 다니면서 자신과 재소인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기술하면서 책은 시작된다. 바쁜 스케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내키지 않았던 일에서, 마음을 열어가며 그들에게서 지금의 삶의 소중함을 배워가는 과정은, 그녀의 마음이 깨어있는 사랑이 넘치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과 부딪치면서 많은 관계를 맺어가지만, 어떤 눈길과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과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오만하고 자신감이 넘쳤던 모리교수와의 첫 만남과 그를 한 번 더 만나기 위해 1.5Km의 거리를 왕복해야 하는 수고와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을 버리면서 그 와의 만남을 선택하기로 결심하게 된 스콧과의 만남과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그들은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영성지도자로서의 저자의 경험을 차지하고라도, 모리 교수와 폴라 다시의 두 사람이 서로의 만남을 통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마음이 뭉클했던 일이었다.
# 이별과 눈물이 주는 힘..
눈물을 흘려본 이는 인생을 아는 사람입니다.
출전 : 유안진의 <그대 빈 손에 이 작은 풀꽃을> 중에서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사랑.
'비전'을 믿고 영적체험을 하는 그녀의 에피소드는 '영적 신앙'을 가진 이에게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신'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내게는, 신의 뜻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그녀의 모습이 좋아보였다. 그와 모리와의 만남이 있었기에 많은 이 책을 읽을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랑만 하기에도 짧은 인생, "사랑할 수 있는데도 사랑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일이 많지 않았는지 내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조건을 감사하고 고마워 할 줄 아는 일, 내 자신안에 모든 해답이 있고, 살아갈 힘이 있다는 믿음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면의 힘'과 저자와 모리교수의 아름다운 만남을 볼 수 있어 기뻤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이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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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다보면 수많은 만남을 가지지만 그만큼 이별도 많이 하게 된다. 그 뜻에서도 알수 있듯이 이별은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뜻이라서 이별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되면 참으로 낫설고 서글프고 때로는 눈물이 난다. 우리는 흔히들 이별하면 연인들 헤어짐을 많이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헤어짐의 종류는 참으로 많고도 많다. 그 많은 이별을 매번 대할때마다 우리는 그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은 늘 서툴기 마련이다. 이 책은 이런 이별과는 조금 다른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이 글을 쓴 저자는 첫 결혼 생활중 사고로 남편그리고 자식과 이별을 해야 했고 두번째 결혼 생활에서는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로 인해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채 두번째 남편과 이별하게된다. 그뿐인가 저자는 알수 없는 아버지와의 멀고도 먼 거리로 인해 부녀관계가 점점 이별의 단계를 밝고 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직업은 심리치료사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심리치료사 . 어찌보면 참으로 모순된 직업이다. 정작 본인의 마음의 이별치료는 치료받지 못한체 남의 마음의 이별치료를 치료해 주어야 한다니 말이다.
저자가 먼저 치료를 한 사람은 교도소에 있는 여성죄수들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사연이 많고 마음의 이별이 많은 이들을 저자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그들의 마음의 이별을, 상처를 치료해준다,마치 모모처럼 말이다. 그 속에서 저자는 자기자신과 똑같은 사고를 당한 줄리아를 만나게 되고 이 만남은 소중한 만남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둘의 만남은 똑같은 사고로 인해 닫친 마음의 이별과 정말로 이별을 할수 있게 한다.
저자가 만난 두번째 이별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모리 교수와의 만남이다. 모리 교수가 ALS란 병의 진단을 받기 전의 만남은 조금은 아니 어찌보면 저자에게 있어서는 많이 괴짜었을 모리 교수와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교수가 죽음이란 사형선고를 받게 되므로써 새로운 만남이 된다. 이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모리 교수와의 만남으로 인해 오히려 저자는 용서와 치유를 알게 되고 또다른 마음의 상처를 가져다준 아버지와의 이별을 치료하게 된다.
이 책은 치료상담사인 저자가 환자들을 치료해주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실제는 본인이 그들로 인해 마음의 치료를 받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일까 너무 이야기가 조금은 개인 이야기에 치유치는 같아서 조금 아쉬었다. 이책은 [이별수업]이다. 물론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읽어본 [이별수업]은 좀더 넓은 의미의 이별수업이다. 즉 마음의 문을 이세상과 닫아버린 이별, 이 세상 삶과의 이별, 그리고 또다른 이별 그리고 ... 그 마음의 이별을 취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닌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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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주말의 시간이었다.. 한순간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가족과 함께 네 끼의 식사를 하였으며,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 돌이 되는 조카의 재롱을 보았으며.. 내일 휴가를 나오는 남동생과 통화를 했다.. 다함께 집앞 공원으로 산책도 다녀왔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겼을 주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연히 그들과의 내일이.. 또 그 다음날이 있을거라는 나의 오만함을 깨우쳐 준 책을 만났으니, 그 책이 바로 <이별 수업>이다..
이런 종류의 인생 에세이를 좋아한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릴수도 있겠지만, 읽을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나는 그동안 또 잊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살아가고 있는 것과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계속 될 것 같은 이 순간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걸.. 나도 별나지 않은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겸손케 한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여겼을 모든 것들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은 심리 치료사인 저자 '폴라 다시'의 치유 에세이이다.. 음주 운전을 한 한 사람의 실수로 남편과 딸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상처를 치유하고, 그 뒤 어렵게 선택한 또 한번의 결혼을 이혼으로 마무리하면서 겪게 되는 상실감을 다스리는 과정을 기록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아픔의 경험들을 공유하며 함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완벽한 주말이 끝나갈즈음, 이 책의 구절구절이 생각이 났다.. 나에게 이런 행복을 주는 사람들의 부재에 대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지경이다.. 많이 사랑할수록 후의 이별은 더욱더 힘들듯이.. 우리가 나눈 행복한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이 떠난 후의 상실감 또한 더 크겠지.. 그런 인생의 당연한 진리 앞에,, 그래서 더 아름답고 덧없는 삶에 눈물이 나지만 나는 더 사랑하며 살고 싶다.. 상처받을까봐.. 더 아플까봐 도망가는 인생은 아니기를 희망한다.. 지금의 행복감을 하나도 남김없이 흡수하련다.. 나중에 더 아프더라도..
<나는 죽어가고 있소> "더욱 괴로운 건, 이 내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세. 모든 것이 덧없어. 내일 또 내일이 있다고 더는 스스로를 기만할 수가 없네. 이제 나에게 미래는 사치일 뿐이야. 지금 이 순간이 새롭게 인식된다네." 자신의 입으로 누누이 말했다시피 모리는 죽어가고 있었다. 더는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점은 언제나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까닭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업다는 깨달음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 심리 치료사인 저자가 만난 그 유명한 '모리'와의 이야기..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사랑의 규칙>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곁에 있어주신 분이잖아요." 그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낮게 깔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선생님 곁을 지켜드리고 싶었어요." 사랑을 갚으려고 한걸음에 달려왔다는 얘기였다. 예기치 않은 그의 방문이, 무너진 내 가슴을 보듬고자 주저없이 내디딘 그의 발걸음이, 어떤 의미를 지녔으며 얼마만한 치유 효과를 이끌어 냈는지 그 누가 측정할 수 있으랴. 사랑의 그 한없는 힘을. --- 저자가 도움을 주었던 아이 '스콧'이 저자의 첫번째 상실의 아픔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서..
<잠이 든 것처럼> "강물을 떠밀지 마라" 당신의 영혼을 무시하지 마라. 어딘가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무슨 일을 억지로 벌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미 주어진 선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목적이다. 삶에 온전히 몸을 담그는 것이 목적이다.
<아버지 당신은 누구인가요?>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원래 모습 그대로 사람들을 볼 수 있기만 해도 좋겠다" 아버지는 실재하는 어떤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 사람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이건 내 마음에 품은 아버지 상과는 배치된다고 판단했다. 내겐 나만의 조건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거기에 등장할 필요조차 없었다. 당연했다. 난 내가 원하는 아버지 상을 추종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행동이 이 모험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아버지의 행동이 더는 내 사랑의 조건이어선 안되었다. 내 사랑은 내 손에 맡겨져야 했다. 관계라는 이름의 방정식에세 내 필요와 기대를 제거하고 나니 남는 건 내 아버지로 존재하는 한 사람뿐이었다. 그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모리 교수와의 만남 후, 소원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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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어보진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던 책이었는데 .. 모리교수와 그의제자가 만나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그러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깨우친다는 그 책의 내용만을 알고 있을뿐이었다. 그래서 그 책에서의 모리교수의 성향이나 말투에 관해서 아는바가 없다. 이책 이별수업은 모리교수의 심리 치료사였던 폴라다시가 모리교수와의 화요일 심리치료시간 외에 .. 1.5km 먼거리를 걸어서라도 모리교수가 원했듯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할수 있는 시간을 내어준 금요일의 시간도 함께 이야기 한다.
폴라다시에 대해서 아는바도 없다. 이책을 읽으며 유명한 모리교수의 심리치료사였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상대방의 한순간의 실수인 음주운전으로 인해 저 세상으로 보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견뎌 내는되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 가장 가까운 가족 조차도 그 슬픔에 대해 끼어드는것을 허락할수 없었지만 .. 그녀가 심리치료사로 일할 무렵 5 살 스콧의 아픔을 알기위해 무작정 세 계절을 밖으로 걷고 뛰며.. 이야기 했던 그렇게 힘든곁에 있어준 스콧의 옆자리를 폴라다시가 해주었던것처럼..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폴라다시가 자신의 곁을 지켜준것처럼 .. 스콧이 폴라다시의 옆자리를 지켜주겠다는 그 말과 두손을 잡은 따듯한 온기 만으로도 닫혀있던 슬픔의 벽을 허물기에는 충분했다. 이책 이별수업은 모리교수의 까칠함과 그렇게 자신의 영혼속에 쌓여 아픔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모리교수의 모습과 폴라다시를 통해 점점 삶을 바라보는 모습과 .. 둘의 대화속에서 눈물속에서 모리교수와 폴라다시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 들일수 있게 되었다. 삶의 단단한 고뇌 속에서 나의 아픔이나 슬픔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는건 당연하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아픔을 보듬어 주려고 다가서는것 조차 달갑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이대로 혼자 걸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아픔의 상실은 영원한 죽음은 아니었지만 내 삶의 소중한 몇해를 통째로 보내버려야 하는데 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덮어 버리는것이 더욱 힘들었다. 그 자체를 누군가의 힘을빌려 치유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애써 그 아픔을 갈기갈기 파헤쳐서 난도질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놔두고 망각이라는 선물로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다.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상실의 슬픔은 차갑고 낯설지만 .. 영원한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아니니까 . 내가 살아가는 한 생은 .. 사랑할수 있는데도 많은 이들은 사랑대신 상처를 선택한다는 이야기 처럼.. 나또한 남은 삶은 사랑으로 채워내고 싶다. 폴라다시의 아버지를 향한 마음의 문을 여는것 또한.. 자신이 택한 아버지상의 모습에서 .. 그 모습을 뺀 나머지.. 그 외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고 했지만 결국 ..그녀는 아버지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며..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며 살아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폴라다시처럼 있는 그대로 그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바라는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그 사람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수 있으면 좋겠다 . 내가 잃었던 상실의 아픔은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 조금 더디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아픔이 치유되었으면 한다. 가끔 생각이 나고 , 가슴아프기도 하지만 그럴땐 슬픈만큼 울음으로 상처를 씻어낼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별수업 . 나는 아직 이별보다는 만남이라는 선물을 더 가지고 있다. 그 만남속에서 누군가의 기억속에 행복함을 안겨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만남이라는것도 쉽지않듯.. 만남과 이별또한 소중한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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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 그 말이 당연한 진리이긴 하지만 어쩐지 '이별' 이란 두글자는 항상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마도 이별이란 말에는 영영 볼 수 없을 거라는 헤어짐이 깃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연인과의 오랜 사귐뒤의 이별이 그럴테고 사랑하는 가족과의 아픈 이별이 그럴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과연 그 아픔들을 딛고 한걸음씩 더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본다면 이 책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주운전 사고로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은 작가는 우연히 교도소에 강연을 나갔다가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공교롭게도 음주운전을 해 복역 중이었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맡게 된 강연이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와 교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마음과 마주설 수 있었고 상처도 조금씩 치유가 되었다. 또 하나는 그 유명한 모리교수와의 만남이었다. 대학시절 감동적으로 읽었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의 그 모리교수라니... 그와 함께한 시간들에서 얻은 그녀의 생각들이 나와 있다.
가슴아픈 이별을 경험한 이가 쓴 책이라 그런지 절절한 느낌이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듯 했다. 하지만 단지 그것은 이별의 아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선 용기와 변화가 있었다. 마지막에 오랜세월동안 원망만 해 온 아버지와의 조우를 하게 된 부분에선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았던 말은 자신의 마음을 바로 알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었다. 이 글을 계속 읽고 있으니 마치 명상 메세지 같기도 해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 했다. 간간이 그림도 곁들여져 있어서 그런 글들에 더욱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지금 혹시 이별로 인해 아프고 힘든 이가 내 곁에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분명 마음의 휴식이 되어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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