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혹의 기술} (Robert Greene, {The Art of Seduction}, New York: Viking, 2001)은 결코 일독을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금서가 되어야 하며, 독자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 서점 진열대와 창고의 책들, 출판사나 인쇄소 창고에 쌓여 있는 책들이며 원판 모두 꺼내다가 불질러 버려야 한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다. 저자의 서재와 출판사 사무실로부터 집필 원고와 자료를 훔쳐 폐기 처분해야 마땅하다. 물론 내가 소장한 책은 폐기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하는 이유, 이 책이 금서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유혹가(誘惑家, seducer) 되는 법'을 1부, 2부로 나눠 서술하고 있다. 1부에서는 유혹가의 9가지 유형을 제시하면서 그에 덧붙여 반유혹자(反誘惑者, anti-seducer)의 전형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유혹하는 절차' 24단계를 서술한다. 쉽게 말해서 이 책은 '사람 후리는 법'을 전수하는 교육 서적이다. 교육서 치고는 상당히 재미있다. 우선 자료와 사례가 풍부하다. 익히 알려진 대표적인 유혹가들—클레오파트라, 마릴린 몬로, 카사노바, 엘비스 프레슬리, 존 F. 케네디 등등 이루 셀 수도 없다—을 유형별로 등장시켜 그들의 성공 사례와 교훈을 제공한다. 신화, 문학, 심리학, 정치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서 가져온 다양한 근거와 자료들을 제시하며 유혹의 성공비법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한편, 피해야 할 위험 요소들까지 친절히 덧붙인다. 각 페이지의 양쪽 여백에 배치한 방대한 양의 인용문들 또한 대단하여 절로 탄성을 부른다. 여타 관련 서적들로의 탐색 의지를 부추긴다. 특히 저자의 관점이 흥미롭다. 저자는 유혹의 상대를 타겟(target) 혹은 희생자(victim), 심지어는 먹이(prey)라고 부른다. 유혹자는 타겟의 마음 속에 감추어진 불안심리, 신화에의 열망, 대리만족 욕구, 비겁함, 소외감, 좌절감, 허영심 등 나약한 측면들을 은밀히 이용하며 접근할 것을 강조하고 권장한다. 포식자와 먹이 사이에는 사랑의 마법이나 우연, 도덕, 윤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먹는 자의 굳은 의지, 창조성, 근면이 관건이며 상대를 희생시켜 삼켜 버리라고 부추긴다. 부추김에 망설임은 없다. 명쾌하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은 개인 및 집단 심리에 잠재된 두려움과 나약함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따라서 이 책은 유쾌한 문명 비판 서적이기도 하다. 나는 매료 당했다.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유혹이다. 이 책은 나를 유혹한다. 꼬드기고 후린다. 나는 먹이가 되었다. 이 책은 나를 타겟(target)으로 삼아 결국 나를 희생자로 만들어 버렸다. 책장을 덮고 나서 급기야 나는 유혹가가 되기를 결심하고 말았다. 나는 사람들을 후려서 그들을 내 유혹의 희생자로 삼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내가 이 책의 지침에 따라 유혹가로 나서서 꼬드김 활동을 전개하자면 사람들이 가급적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 내가 후리기로 마음 먹은 상대가 이미 이 책을 읽었다면 상대는 내 작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금서가 되어야 하며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은 모두 폐기해야만 한다. 아무도 이 책을 읽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문제는 해결 불능이다. 내가 무슨 수로 전세계 서점이나 출판사, 독자들 서재를 돌아다니며 그 많은 책들을 일일이 수거하여 불태운단 말인가? 더군다나,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나는 인문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이렇듯 재미나고 유익한 서적을 모두 불태운다는 것은 너무나 비극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다른 무슨 좋은 수가 없겠는가? 나는 고민에 빠졌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루는 '유혹'은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유혹의 기술'은 저자의 본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유혹의 상대를 가차없이 무너뜨리라고 저자는 부추기고 있으나 그것은 결코 희생자를 지배하고 이용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반대로, 유혹은 상대의 내면에 감추어진 감성, 억눌린 덕목을 이끌어내어 인생의 새로운 국면, 새로운 세계로 펼쳐내는, 깊은 관심과 기나긴 노력의 과정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것은 유혹자의 이득을 철저히 버리고 오로지 희생자의 소망만을 추구할 때 비로소 성공 가능한 작전인 것이다. 이 책은 '유혹'의 탈을 쓰고 있으나 기실 유혹에 관한 책이 아니다. 사람에게 다가서기, 매혹시키기, 감동시키기를 권장하는 감동과 매혹의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유혹의 과정은 일종의 입문 의식이다. 유혹자는 사람들을 인습으로부터 끌어내고, 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며, 그들을 시험장으로 보내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어주는 과정인 것이다. (In fact, the seductive process may be thought of as a kind of initiation ritual, in which you are uprooting people from their habits, giving them novel experiences, putting them through tests, before initiating them into a new life.)"[p.164]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의 일종의 전도 서적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의 측면—교육서적, 비판서적, 혹은 전도서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앞에서 나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라고 썼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다. 나의 지인들과, 앞으로 나와 지인이 될 이들에게 나는 이 책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그대들은 빠짐없이 이 책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이 책을 읽고 학습하고 숙지하며 모두들 유혹의 전선(戰線)으로 나와 유혹자로서 활동해 주기 바란다. 나를 유혹해 달라, 나는 그대들을 유혹하리라. 우리 일상이 유혹과 매혹으로 채워진다면 우리 인생은 지금보다 한결 아름다우리라. 유혹과 매혹의 길로, 동지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