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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 나가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 가장 최근에 역을 이용한 것도 벌써 일 년이 다된, 작년 봄 부산에 갈 때였다. 역에는 다양한 시설이 있지만 일일이 둘러보지 않는다. 그러니 역 주변을 살펴보는 일도 드물다. 역은 필요할 때 이용하는 시설일 뿐 다르게 신경 써 본 적은 없다.
이 책은 기차역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심한 듯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기차역에는 보통 광장이 있고, 사람들이 잠깐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이 있다. 근처 건물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20년 전 중국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중국은 언제나 관심 있는 이웃 국가가 아닌가. 앞으로도 뗄 수 없는 관계가 될 중국인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00년 한 해는 새천년이 시작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모두에게 중요한 이야깃거리였다. 중국은 20세기 대부분을 폐쇄국가로 지내다가 국가를 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굶주림이 뭔지 아직 기억하고 있었고, 돈의 가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그렇듯 기차역 근처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은 무지개에 지나지 않는다. 21세기가 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나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장밋빛 미래는 하룻밤의 단꿈에 불과하다.
기차역 주변에 있는 2성급 여관에 금발머리를 한 소녀가 들어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 당국은 21세기가 밝자마자 2001번 종을 치기로 된 광장의 '21세기맞이 괘종시계'가 표준시각과 맞지 않아 그 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발머리 소녀는 연예인이 되기 위해 이 도시로 왔지만 자신을 불러낸 사람들과 연락이 닿지 않자 당황해한다. 집에서 돈을 훔쳐 성형까지 하고 왔는데 기대한 꿈이 멀어진 것이다. 여관 직원인 렁옌은 똑똑하지만 한량인 남편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남편은 직장으로 찾아와서 돈을 달라고 조르기 일쑤다. 렁옌은 자신이 살 길은 이혼뿐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같은 직원인 슈홍은 단정하고 인정 많은 사람으로 소문 나 있지만 속으로는 복권당첨을 꿈꾸고 있다. 사채업자의 부하인 커위안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채무자 앞에서 위협을 가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일도 하지 못해 안달인 사람에 비하면 괜찮은 직업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가까스로 살아가지만 그런 위태로운 생활마저 오래 이어가지 못하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처지가 곤궁하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멋진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의 모습마저 위기에 처하고 그 뒤의 더 딱한 사정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금발머리 소녀는 성형수술 부작용을 안고 이 도시를 떠났다. 엎드려서라도 조용히 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사회는 그것도 지키기 쉬운 일은 아님을 다양한 사건을 통해 보여준다.
고대했던 새천년 종소리도 듣지 못하고 도망치는 커위안이 창밖을 보며 ‘뱀이 어떻게 날 수 있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났다. 뱀도 노력하면 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태어날 때부터 날개가 없는 뱀은 아예 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뱀도 어느 순간이 오면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는 쪽이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자신이 있는 현 위치에서 탈출하는 일이 시급하다. 대부분 붙잡히거나 굶어 죽거나 하겠지만 그 중에 어떤 뱀은 커위안이 본 것처럼 허공을 훨훨 날기도 할 것이다. 결국 좋은 소설이 그런 것처럼 중국 어느 기차역 부근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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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날개가 없다. 중국의 상징중 하나라는 용이야 하늘을 날 수 있지만, 용에 버금가는 이무기 조차도 하늘을 날수는 없다. 하물며 일반 뱀들은 겨우 몸을 비틀어 낮고 낮은 땅위를 비천하게 기어갈 뿐이다. 비천하게... 꿈틀꿈틀... 밟으면 밟혀죽는 것이 뱀이다. 뱀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는다. 곡굉이에 맞아서, 삽에 찢혀서, 심지어는 여자가 휘두르는 하이힐에 찢겨서 죽기도 한다. 이 책의 서두에 나오는 수많은 뱀들의 집단 탈출이 결국은 그런 허망한 죽음으로 끝이 나고 말았지 않는가. 그러나 희망은 있다. 기차를 타고 먼곳으로 옮겨온 뱀들이 자유를 얻는데는 실패를 했지만, 그들 뱀들중 몇 마리는 자신들을 끔찍하게 여기고, 아무런 고의도 없이 오로지 살기만을 바랬던 자신들을 사정없이 죽이려 드는 인간들을 물어뜯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었다. 바야흐로 2000년 중반. 이 책은 그때부터 그해의 마지막 날까지를 기술하는 책이다. 2001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거대한 종탑을 짓고,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 그 높다란 종탑에서 울려나오는 2001번의 멋진 종소리를 듣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종탑의 용도는 멋진 새 시대를 자랑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 종탑은 빛에 쫒기고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용도로 먼저 사용된다. 그 종탑은 가난에 쫒겨 몸을 파는 사람들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 종탑은 무망한 희망을 쫒아 희미한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적인 욕망과 그 좌절의 증표가 되기도 한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책이다. 세상에는 잘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돈을 버는 사업가도, 새로운 시기를 잘 타서 엄청난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이 책의 표지에 보이는 검은 점처럼 보통사람들의 모습은 그저 흔들리고 움직이는 힘없는 잡티에 불과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잘 나가는 사람들을 다루지 않는다. 세상의 밑바닥에서, 저마다의 삶의 목표를 향해서 살아가지만, 저마다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허망한 몸부림들의 모음집 같은 책이다. 저마다 아픈 삶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은 서로를 보듬기는 커녕 서로의 아픔을 더욱 키우고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힐 뿐이다. 마치 가래침과 온갖 오물로 덮인 땅바닥을 비실비실 기어가는 비천한 뱀들처럼 날개가 없는 그들에 세상은 온갖 힘을 다해 끊임없이 기어가야 하는 아픈 세상일 뿐이다. 권투선수가 링위에서 날리는 멋진 펀치같이 조명을 받지도 못하고, 그저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 새 밀레니엄을 맞는 전날에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날개 없는 뱀과 같았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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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맞이 괘종시계는 제멋대로 울린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우리네 인생처럼. 하지만 사람들은 새천년에는 2001번의 종소리가 들리길 기대한다. 다가오는 새천년 2001년을 새롭게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 물론 늘 똑같은 삶이 바뀔리 없지만 그들은 여전히 희망을 꿈꾼다.
기차역에 갑자기 나타난 뱀떼들, 대부분의 뱀들은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이 뱀들은 기차역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하층민들에겐 새로운 사건임에 틀림없다. 목욕탕에 뱀이 나타나 옷을 입고 나오지 못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금발소녀에게는 이 뱀들이 끔찍한 존재로 느껴지겠지만 말이다.
뱀은 날개가 없어 날 수가 없다. 그저 꿈틀거리며 나아갈 뿐이다. 비상할 수 없는 뱀은 하층민의 삶과 닮아 있다. 뱀 이야기를 빼놓고는 이 책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뱀'에 대한 것들이다. 빚을 갚지 못해 21세기맞이 괘종시계에서 떨어져 죽은 량젠, 전 남편의 죽음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렁옌, 그리고 그의 죽음을 막지 못한 사채업자 더췬 밑에서 일하는 커위안까지, 새천년이 다가오지만 이들에게 희망은 없어 보인다.
입에 담기 힘든 욕설, 폭력.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면서 점점 거칠게 변해가는 사람들을 보며 책을 읽는 것이 불편해지지만 한편으로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사람들의 모습때문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더췬과 커위안 앞에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섹시춤을 추는 금발소녀, 사기꾼인줄 알면서도 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탁자위에서 춤을 춘다. 이런 금발소녀에게 사랑을 느끼는 커위안. 어쩌랴 답답하긴 하지만 이것도 그들의 인생인 것을. 밑바닥 인생이지만 커위안과 금발소녀의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했다. 사채업자 밑에서 일하긴 하지만 금발소녀에게 안정적인 삶을 줄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기차역이라는 소재는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들의 삶을 대변한다. 기차역 여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묵어가지만 누가 다녀갔는지 잊혀지기 마련이라 21세기맞이 괘종시계가 울리는 것을 듣기 위해서는 그나마 이 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뱀은 영원히 날 수 없다. 이들 하층민들도 멋지게 날아올라 화려한 인생을 살아갈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그들의 마음이 그나마 제대로 된 '삶'이라는 생각이 드니, 내가 참 비정하고 냉정한 세상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뱀이 어떻게 날 수 있냐'고, 소리라도 지르면 답답한 가슴이 뚫리기라도 할까. 살아가는 것이 참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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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라는 이미지는 그닥 와닿지 않지만, 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적절한 소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황당한 상황을 그려내기도 했지만, 현실 세계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21세기를 기다리는 2000년 6월부터 12월 31일까지를 배경으로 여러가지 사건들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번역자처럼 읽어내진 못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중국의 하층민의 삶을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중국소설을 아직까지는 크게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 매번 새로운 느낌으로 읽게되는데, 역시 이 책도 중국을 다시 느끼게 했다.
작가의 시선은 너무도 냉정하다. 아니, 내가 그렇게 느낀 건 아니지만, 번역자의 글을 통해 내게도 그렇게 인식된 듯하다.
따뜻한 감성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을 예리하게 그려낸 작가의 시선은 그런대로 공감이 가는 글을 써내려 간 것 같다.
내게는 이로서 작가의 작품 첫 대면이었다. 이전에 번역되어 나온 작품도 천천히 만나보고 싶다.
작품 시대순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그 감상은 새로운 느낌을 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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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소설은 어렵다. 소설이 어려워서 일수도 있지만, 소설을 번역한 사람의 뉘앙스가 바뀌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에 대해 일관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그 세계의 내용을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 대개 외국의 소설을 번역한 경우, 자신의 문화 정체성을 양국에 동시에 갖고 있지 않다면, 일관된 번역이 어렵다. 그래서 때때로 번역 소설의 경우 앞에서의 뉘앙스와 뒤에서의 뉘앙스가 틀린, 아귀가 맞지 않는 흠결로 인해 소설을 읽는 맛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다.‘뱀이 어떻게 날 수 있지’는 그러한 한계를 걱정하지 않고 읽어도 좋은 번역중국소설이다. 소설 내용을 떠나, 소설을 번역한 사람의 능력치가 중국을 이해하고 체득하고 있는 경지에 오른 경우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 대해 정확히 알고자 한다면, 특히 현재의 중국에 대해 정확히 알고자 한다면, 그 연장선상의 가까운 과거가 될 수 있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충분히 중국인들의 뉘앙스까지 전달받는, 그래서 한층 더 그들의 골수 속에 박혀있는 정서를 겪어보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