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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유신과 함께 막이 오른 1970년대는 유신의 종말로 그 끝을
마무리했다.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으로 시작된 1970년대는 YH무역 김경숙의 죽음으로 마감되었다. 광주 성남대단지로 내몰린 도시빈민의
절규로 시작된 1970년대는 탐욕과 부정의로 대변되는 강남아파트 공화국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고, 국기하기식이 시작되면 전국민이
그 자리에 서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가슴속에 새겨야 했다. 국민총화와 총화단결을 일상적으로 외쳐야 했던
시대, 정권은 국민 모두를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고, 그런
국민들을 감시한 시대이기도 했다.
1970년대를
생각하면 우선 유신체제와 새마을운동이 떠오른다. 유신체제는 정권이 국가안보와 정권안보가 혼재된 안보위기론을
핑계 삼아 장기집권을 하기 위한 도구였다. 유신체제하에서 학교는 지배체제 재생산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반공정신의 생활화를 목표로 반공교육이 체계화되었고, 교련조례나 국기하기식과
같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불어 넣는 의례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는 학생들이 산업과
국방에 동원될 자원으로써 자격을 갖추었는지의 여부를, 반복되는 시험과 군사검열을 통해 검증하는 기관으로
전락하였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일주일에 두 시간씩이나 되는 교련시간과 월요일 아침이면 의례 행해지던
교련조회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것을 보면 우리 역시 그렇게 세뇌되었던 시기가 맞지 싶다. 문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정치사회 영역과 마찬가지로 문화계에도 권력의 감시와 검열, 통제의 그림자가 곳곳에 배어 있었다. 영화, 가요, 음반, 공연 등
예술활동 전반에 대한 사전심사와 검열이 강화되었고, 언론 또한 관변언론이 되기를 강요당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금지곡이나 금서가 속출했고, 급기야 1974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건 이후로 언론은 정권의 충실한 나팔수가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다. 이촌향도로 농촌을 떠난 농민들이 난민과 같은 삶을 살면서 그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수출입국, 수출제일주의라는 슬로건아래
헌법이나 노동법에 규정된 노동3권 등의 기본권은 원천 부정되었고, 기업들은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도입하여 자연스럽게 공장 내 지배를 정당화했다. 이처럼 이촌향도는 단순한 공간이동이
아닌 기존의 생활양식과 가치관 등 삶의 기본 틀이 뒤바뀌는 것임에도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만큼
농촌이 몰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기에 몰린 농민들에게 국가가 내민 손이 바로 새마을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을 근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농촌을 개조해야 하고, 그 주체는 바로 농민들 자신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살아온 모든 것을 부정하고 개혁을 해야 했다. 이를
위해 정권은 중앙에서 리동에 이르기까지 수직계열화 된 관료제를 촘촘하게 만들었고, 영농과학화란 이름아래
농업생산과정을 장악했다고 한다. 관의 사업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과 집행을 강제하는 군대식 사고방식이
강하게 작용되었음은 불문가지이다. 당시 시험에도 단골출제 되던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운동 3대정신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조였다. 이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새마을운동의
극성기는 농민이 농촌을 떠난 극성기이기도 했다는 점이 새마을운동의 성격이 어떤지를 말해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농촌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아침이면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울려 퍼지던 새마을노래, 한반도 북쪽이 아닌 남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한국현대사에서 1960년대를 규정짓는 것은 5.16군사쿠데타이다. 그리고 1970년대는 유신체제가 시대를 규정한다. 그러나 유신체제도 어찌 보면 5.16군사쿠데타가 만들어낸 망령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런 망령들을 곳곳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
무렵 북한과 동아시아는 어떠했을까? 북한의 1970년대는 1960년대 경제성장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완전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1967년 유일사상체계 확립 이후 북한은 소위 유일지배체제의 혁명전통교양을 위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항일혁명예술작품을 영화와 가극 등으로 재생산하여,
인민들에게 주인공과 같은 삶을 구현하도록 하는 음악정치를 펼쳤다고 한다. 이를 위하여 '피바다' 근위대와 '꽃
파는 처녀' 근위대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북한의 사상적
일체화를 이루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편 일본은 고도성장을 넘어 선진국으로 편입이 되었고, 중국은 마오쩌둥의 시대가 끝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는 창비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조건과 행위가 맛 물리며 역사가 창조되는 공간으로서의 생활문화영역, 일상의 생활문화를 통해 시대의 특성을 불어넣는 인간들의 행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변화를 풍부하게 보여주고자 하는데 기획의도'가 있다고 한다. 195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세분하여 생활문화사를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성찰하고 있는 셈이다.
1970년대라면 내가 중고등학교를 보냈던 시기이다. 먼 과거의 일처럼 생각되어지지만 불과 40년 전의 일이다. 중학교 때는 수많은 궐기대회에 참가했고, 반공영화를 보기 위해 줄 맞추어 극장에도 갔으며, 무슨 일이 생기면 인도에 서서 영문도 모른 채 태극기를 흔들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늘상 교련복을 걸치고 다녔던 것 같다. 또 학교가 파하고 집에 가기 위해 광화문에 나가면 자로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고, 머리가 길다고 바리깡으로 대학생들의 머리를 미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당연히 밤이 깊어지면 골목 곳곳에서 뛰는 소리와 호각소리가 들려왔고 말이다. 이렇게 당시에는 몰랐던 한국의 현대사를 정치적인 사건이 아닌 생활문화를 통해 다시 한번 알아가면서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는 것들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생각해본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1980년대에는 또 내가 모르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