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철학의 위대한 시절』(반비, 2014)은 한국현상학회가 일반 대중의 시선에 맞추어 서구의 위대한 현상학자들의 사상을 간단하게 소개한 입문서다. 현상학의 역사적 발전 방향과 저명한 현상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분야를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반 독자들이 현상학적 방법론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 접근이 무시되고 있다는 심각한 단점도 보인다. 집필자들이 예시를 통해 현상학적 기술을 선보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역시 현상학의 창시자인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로부터 시작된다. 후설의 대표작 『논리 연구』가 출판된 해가 1900년도이기에 현상학은 20세기와 더불어 태동한 철학사조로, 19세기 세계관과 근본적인 결별을 선언한 사상이기도 하다. 프랑스 1세대 현상학자인 리쾨르의 표현을 빌면, 후설을 위시한 '현상학 학파'는 후설의 학설을 그대로 계승하기 보다는 오히려 창조적으로 변용하고 전유하여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해나갔다. 베른하르트 발덴펠스가 『현상학의 지평』(울산대학교출판부, 1998)에서 지적한 대로, "현상학적 운동은 방사(放射)와 분기(分歧), 그리고 선취와 재취의 형태로 나타난다." 후설 현상학 자체가 세 단계 발전의 궤적을 보이는데, 초기의 기술현상학, 중기의 선험현상학, 후기의 생활세계현상학이 그러하다. 기술현상학은 "사태 그 자체로 되돌아가자"라는 구호처럼 무전제성을 강조하는, 특정한 색안경을 끼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사태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철학이다. 선험현상학은 선험의식의 주체인 선험적 자아의 순수의식을 연구하는 절대관념론 철학이다. 생활세계현상학은 실증주의에 물든 유럽학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생활세계의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이다. 후설은 심리학주의와 통속적 유물론, 논리객관주의라는 두 가지 철학적 흐름에 반대하며 이마누엘 칸트의 선험논리학과 인식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신칸트학파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심리학주의는 객관성을 상실해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의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고, 통속적 유물론 역시 뇌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면 인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연주의에 빠지게 되고, 논리객관주의는 인식론적 문제에 무능하다고 보았다. 논리객관주의가 논리적 수학적 내용이 주관성을 넘어 초주관성과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국 보편적인 논리적 대상과 이를 파악하는 주관의 관계에 관한 인식론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설은 심리학주의와 논리객관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프란츠 브렌타노의 인식의 '지향성' 개념에 착안한다. 지향성이란 대상의 본질에 까지 도달해 대상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작용으로 이해한다. 후설의 학설을 보다 해석학쪽으로 발전시킨 사상가가 바로 나치에 부역해 악명이 자자한 하이데거다. 후설 현상학과 하이데거 현상학은 고대 철학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계에 비견될 만하다. 하이데거의 현상학은 후설의 의식현상학과 구별되는 존재론적 현상학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후설이 존재의미에 대한 물음 없이 존재와 의식을 일치시켰다고 보고 자기의식에 기반한 후설의 선험현상학에서 존재이해에 기반한 현상학적 존재론을 제시한다. 이를 현존재 해석학으로서의 현상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후설의 키워드인 의식지향성을 자신의 키워드인 '염려'로 치환했다. "손 앞에 있는 존재로서의 사물과 손 안에 있는 존재로서 도구의 구분, 이론적인 통찰과 실천적인 둘러봄의 구분, 실존의 기획, 피투성, 퇴락, 실존의 시간적 해명, 의미의 발견으로서의 담화, 기분과 처해 있음의 모습 등에서 나타난 탈주관화는 분명 후설의 의식현상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30쪽) 독일 현상학을 수용하기 시작한 1930년대의 프랑스 철학계는 데카르트-칸트적 합리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철학자들이 레옹 브륑스비크와 알랭 등이었다. 독일과는 달리, 프랑스 현상학은 실존 현상학이라 할 수 있는데, 몸, 자유, 역사, 정치, 타인, 소외, 이방인에 관한 주제에 주목했다. 이 책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프랑스 현상학의 1세대인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 레비나스와 리쾨르 등을 소개하고 있고. 가브리엘 마르셀, 앙리 말디네, 장뤽 마리옹처럼 내가 한 번도 그 저서를 접해보지 않은 현상학자도 거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