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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이 사유하기, 목적 없이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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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맨 앞에는 ‘동물원에 간다’라는 짧은 글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는 독자들이 이 책을 다 읽은 다음 이 글이 가장 마지막으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책의 맨 앞에 배치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배수아 즐기기 매뉴얼’로 읽었다. 소설이야 작가의 손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독자적인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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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맨 앞에는 ‘동물원에 간다’라는 짧은 글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는 독자들이 이 책을 다 읽은 다음 이 글이 가장 마지막으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책의 맨 앞에 배치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배수아 즐기기 매뉴얼’로 읽었다. 소설이야 작가의 손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진 것이고, 따라서 독자에게 읽히고 해석되고 교감하면서 본연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피그말리온이다. 일차적으로 작품은 소설가 자체이자 그의 유일무이한 갈라테이아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 배수아는 자기 작품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오해 받기를 아주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매우 친절하게도 작품에 앞서 일종의 매뉴얼처럼 자신의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렇게 읽으면 내 작품의 맛을 더욱 즐길 수 있어요.’

평론가가 쓰는 작가론이나 작품론은 많이 봤지만, 작가가 쓴 작품론, 그것도 자기 스스로가 쓴 작품론이라는 측면에서 이채롭다.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싶기도 하지만.

 

암튼, 각설하고… 배수아의 사유하기와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이방인 놀이’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이상한 흉내를 내느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작가는 ‘그것은 단지, 그냥 놀이일 뿐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어느 순간에 싫증이 난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p. 9).

 

본질적으로 배수아는 그의 글의 아이덴티티를 ‘고립’에 두고 있다. 작가는 그것을 ‘끊임없이 절교의 편지를 쓰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동일시하거나 비판하거나 개입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동일시하지도 않고 비판하지도 않고 개입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배수아가 내린 ‘고립’의 정의라고 할 수 있는데, 고립을 정말 멋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의 쾌락의 차원과 동일시하는 작가의 고립된 정신이 스스로 사물이나 장소가 되기를 원하며 쓰는 어떤 방식, 그러한 한 종류, 그것이 배수아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물원 킨트>는 이러한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과 사유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그대가 ‘독자’라면 이방인 놀이http://blog.yes24.com/lib/trackback.aspx?blogid=cy_hong&artSeqNo=6157765를 하듯 이 작품을 즐기길.

 



c*****g 2012.03.06.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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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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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하마, 누군가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고 해도, 너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냐. 그것이 십일 월 저녁 일곱 시였고 그리고 부다페스트 거리에서였다면 말이지. 원래 쓰려던 감상은 이 책이 아니였는데 문득 저 문구가 생각나서 숨도 돌릴 겸 동물원 킨트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이 책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책에 나왔던 양 동물원 놀이와 엽서이야기를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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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하마, 누군가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고 해도, 너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냐. 그것이 십일 월 저녁 일곱 시였고 그리고 부다페스트 거리에서였다면 말이지.


원래 쓰려던 감상은 이 책이 아니였는데 문득 저 문구가 생각나서 숨도 돌릴 겸 동물원 킨트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이 책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책에 나왔던 양 동물원 놀이와 엽서이야기를 동경했던 것도 있지만 몇년 전, 우연히 블로그를 통해 접한 다른 분의 감상 때문입니다.

동물원 킨트는 주인공인 '나'가 이야기하는 것으로 채워져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시점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배수아씨는 그 주인공의 이미지가 한정되는 것이 싫어서 성별을 언급하지 않고 해석도 하지 않겠다고 적어두셨었거든요. 몇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또다른 인터뷰를 하셨을지도 모르지만요. 어쨌거나 그런 의도에 충실하게끔 '나'의 감정은 다른 사람보다 자유롭게 흘러갑니다. '나'는 우연히 만나서 친해진 '하마'에게도 호감을 가지고있고 그녀의 쌍둥이 사촌에게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른 남자와의 썸씽도 있었노라 고백하기도 했구요. 딱 한줄이였습니다만은 의도되었든 의도되지않았든 인상적인 부분이였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굳이 없어도 될 부분이였단 생각도 했지만 삽입된 문장이 작가의 의도라고 해야하나, "이 부분을 신경써주세요!"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거든요.

그런 작가의 메세지에도 불구하고 전 처음 읽기 시작했을때부터 이건 당연히 여자다, 라고 믿어의심치 않았었는데 어떤 분이 "당연히 남자다."라고 적어두신거예요. 놀랐었어요. 아, 남자로도 읽힌거구나, 배수아씨의 의도는 성공했군! 뭐 이런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이런 게 리뷰와 블로그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타인의 글을 볼 수 있는게 좋아요. 그리고 제 블로그와 리뷰도 그런 식으로 생각될 수 있다면 바랄나위 없겠죠.

그분이 계속 블로그를 하고 계셨다면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마지막 포스팅이 그 시점에서 일년이 지나있길래 덧글 다는 것도 포기하고 돌아서야했지요. 지금이라도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나눠보고싶어요. 제가 느낀 여성적인 부분과 그분이 느낀 남성적인 부분을 교환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물론 그러려면 동물원 킨트를 한번 더 읽어봐야하지만요.

맨 위에 적어둔 글귀는 제가 동물원 킨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저 부분을 떠올리면 에쿠니 가오리의 웨하스 의자도 떠올라요.


미키, 우리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내자. 사라.

우리집 바로 근처에서, 신호 대기에 걸린 택시의 창문 너머로.

미키, 우리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내자. 사라.

나의 뇌리에 두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글썽해진다. 가로등 빛에 드러난 그 낙서는 빨갛고 자극적이다. 과거에 내게도 그런 여자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생각도 나지 않지만,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모두들 귀여운 아이들이었는데.

나는 창 밖을 바라보며 몇 명을 기억해낸다. 땋아 내린 머리에 리본을 묶은, 나비를 싫어했던 친구. 약국집 딸로, 곱상하게 생긴 남동생을 유난히 귀여워했던 친구. 엄마와 둘이 살면서, 초등학생인데 트로트를 좋아했던 친구.

세상은 지금도 그런 여자애들로 채워져 있는 것일까.

에쿠니 가오리 '웨하스 의자'  p95


미키, 우리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내자. 사라. 이 부분 너무 좋지 않나요..
그러니까 하마, 누군가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고 해도, 도 좋아하지만요..

 

 

 

b******u 2009.09.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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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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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킨트, 동물원을 좋아하고 자주 가며, 동물원을 갖고 싶어하고 동물원이 되고 싶어한다. 왜하필이면 동물원이었을까? 동물원은 도시와 이방인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에는 동물원이 필요치 않다. 양동물원, 그것은 양이 있는 목장이고 동물원은 아니지만 그녀에겐 동물원으로 승화되었다. 그, 혹은 그녀. 주인공은 성이 없다. 굳이 남,여 라고 구분짓지 않는다. 그는 남자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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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킨트, 동물원을 좋아하고 자주 가며, 동물원을 갖고 싶어하고 동물원이 되고 싶어한다. 왜하필이면 동물원이었을까? 동물원은 도시와 이방인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에는 동물원이 필요치 않다. 양동물원, 그것은 양이 있는 목장이고 동물원은 아니지만 그녀에겐 동물원으로 승화되었다. 그, 혹은 그녀. 주인공은 성이 없다. 굳이 남,여 라고 구분짓지 않는다. 그는 남자일수도 있고 여자일수도 있다. 하마라고 부르는 그가 이책을 통틀어 찾아다니는 그녀가 미겔일수도 있고 깐나일수도 있으며 누구도 아닐수도 있는것이다. 이책의 전문은 주인공은 그, 혹은 그녀가 동물원에서 일하기 위해 동물원에 내야하는 모니터링이다. 실명할 처지에 놓여있던 그, 혹은 그녀, 마지막부분에선 실명한 후 찾아다니던 하마를 만나게 된다. 이책은 지금까지 읽었던 배수아의 소설과는 많이 달랐다. 스토리는 있었지만 중요하지 않았고, 인물들이 있었다 성(젠더)이 정해져있지 않은 주인공, 하마, 미겔 또는 깐나, 보도, 두스만, 등등 이책을 다 읽고 난후 난 매우 혼란스러웠다. 사실 지금 글을 쓰고 있기는 하나, 내가 무슨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어쩌면 동물원 킨트가 되고 싶다거나... 그리고 그안에 고립되고 서서히 소멸된다면...

[인상깊은구절]
내가 소멸된다는 것은, 참 좋고 편안한 느낌이야. 나는 조인트를 할때 언제나 그런 기분을 느껴. 정확히 설명할수는 없지만 동물원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에도 나는 비슷한 것을 느끼거든. 나는, 점점 없어지는거야. 그 이후에 나를 지배하는 것은 그토록 먼 거리감. 절대치로 가벼워지는 존재의 소멸. 슬픔없는 눈물이나 같은 옷을 입은 구별되지 않는 백명의 오케스트라 단원. 그런것에 불과해. 나는 동물원으로 걸어 들어가. 이윽고 나는 사라져.
m*****4 2004.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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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동물원 킨트가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 없다.
"나는 아직도 동물원 킨트가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 없다." 내용보기
주인공인 '나'는 동물원 킨트다. 동물원을 좋아하고, 자주 가고, 그리고 동물원을 사고 싶어한다. 혹은 동물원이 되고 싶어한다. 그런 나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주위에서 계속 떠오르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 하마, 혹은 미겔, 혹은 깐나. 어느 것도 그녀의 이름이 아니고 모두 그녀의 이름이다. 나는 유모차와 함께
"나는 아직도 동물원 킨트가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 없다." 내용보기
주인공인 '나'는 동물원 킨트다. 동물원을 좋아하고, 자주 가고, 그리고 동물원을 사고 싶어한다. 혹은 동물원이 되고 싶어한다. 그런 나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주위에서 계속 떠오르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 하마, 혹은 미겔, 혹은 깐나. 어느 것도 그녀의 이름이 아니고 모두 그녀의 이름이다. 나는 유모차와 함께 늘 동물원에 오는 하마와 함께 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마는 사라지고, 나는 하마의 사진을 쥔 채 그녀를 찾는다, 점점 보이지 않는 눈을 하고. (아, 지금 뭐라고 말을 이어가야 할 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다시 한번 책을 뒤적였다. 얇은 책은 이런 점이 매력이다) 아 그래. 양 동물원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나는 양 동물원에 갔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동물원은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동물원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마을에서. 마을에는 양이 있다. 아주 가득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양들과 함께 동물원이 된다. 양 동물원이 된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나는 엽서를 보낸다, 깐나, 혹은 하마, 혹은 그냥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 미겔이라고 불리는 그녀를 생각해 냈으니 이제 벙커에 대해 이야기하자. 1945년 4월 16일, 두스만과 두 명의 일본인과 함께 갔던, T.J.의 두개골과 그의 늑대의 두개골이 있는 벙커. 두스만은 개의 두개골이라고 믿고 있던 그 두개골이 늑대의 것이라는 것을 (것이라는 것을, 문장이 조금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어 멈췄다가 다시 쓴다.) 알려 준 아이코. 그것은 우연일까, 동물학자인 그녀가 그곳에 간 것은. 그리고 두스만과 T.J와 그의 늑대는 그 벙커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 그리고 하마는, 그가 찾던 미겔일까. 그리고 이번에는 사람들 대신에 '나'에 대해서 생각한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될까봐 책도 읽지 못하는 도서관 킨트, 결국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동물원에 보내는 이 길고 긴 신청 양식의 끄트머리, 나는 눅눅한 냄새가 나는 동물원을 생각한다. (참고로, 나 또한 작가처럼, 책 서두의 '동물원에 간다'를 가장 마지막에 읽어주기를 바란다. ) 나는 '나'가 동물원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동물원에 가끔 놀러가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옆에서 걷고 싶다. 나의 뒤를 스쳐 지나가 버리는 모든 사람들처럼, R1라는 담배의 흐릿한 향을 맛보며, 그 묵묵한 고독의 그림자 끝을 밟으며 걷고 싶다. 난해한 문장들 사이를 헤치며 모든 사람들에게 절교 편지를 쓰는 나의 옆에 앉아 나도 한두 장쯤 절교 편지를 쓰고 싶다. 그 담담한 고독, 아름답기까지 한 이름을 맛보며 걷고 싶다. 동물원 킨트는 난해하다. 해독하기 어렵다. 한국어로 쓰여 있는데 내게는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한번도 멈추지 않고 죽죽 읽어내렸다. 눅눅한 동물 냄새가 섞여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그나마 바람이 씻어 가 준 바람에 겨우 산책 정도를 하며 원숭이나 공작 한두마리를 볼 수 있는 동물원에, 나는 가고 싶다. 동물원 킨트가 한 두 명쯤 산책을 하고 있는 동물원에. 그리고 조용히, 그 고독에 동참하고 싶다, 어느 특별한 비 일상의 하루에.
s*******0 2003.04.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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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미지를 창조하는 배수아의 실력... <동물원 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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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어야 하나?   배수아는 종종 아니 꽤 자주 이야기의 필연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이 배재를 전면에 내세운 채 소설을 밀고 나간다.   소설은 스스로를 동물원 킨트라고 지칭하는 내가 겪은 이야기(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동물원에 취직하기 위한 주인공의 리포트인 셈)이다.   “...동물원이라는 장소는 나에게 평가하거나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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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가 있어야 하나? 

  배수아는 종종 아니 꽤 자주 이야기의 필연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이 배재를 전면에 내세운 채 소설을 밀고 나간다. 

  소설은 스스로를 동물원 킨트라고 지칭하는 내가 겪은 이야기(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동물원에 취직하기 위한 주인공의 리포트인 셈)이다. 

  “...동물원이라는 장소는 나에게 평가하거나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거야. 동물원이란, 그 자체로 내가 지도에서 발견한 모든 첫 번째 장소, 그것이야.” 

  “난, 동물원 킨트야... 동물원을 갖고 싶어하거나, 그곳에 계속해서 있고 싶어하거나, 그곳을 찾아간다거나, 그곳에 속하고 싶어하는 거야. 혹은 그것이 되고 싶어하는 거야. 서서히 말이야.” 

  그러니까 이러한 설명과 함께 감상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도대체 동물원이 왜 등장하고 동물원 킨트라는 것은 또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으니 말이다. 

  이렇게 1. 동물원 킨트, 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 글은 2. 짐승의 눈, 에서는 자신이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3. 하마, 에서는 유모차를 몰고 다니며 보모 아르바이트를 하는 하마를 소개하고 4. 보도, 에서는 보도의 상점(점원이지만 그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부른단다)과 보도를 5. 두스만, 에서는 공간의 명칭이자 남자의 이름인 두사믄을 설명한다. 

  6. 카챠의 남자, 라는 항목에서는 오랑우탄인 카챠에게 끊임없이 잣니을 사랑하는지 묻는 남자가 등장하며 7. 겨울의 유령들, 에서는 눈 속의 늑대와 실명의 순간이 늘어나는 자신의 눈을 비교하고 8. 1945년 4월 16일의 벙커, 에서는 두스만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벙커에서 발견한 옛 병사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9. 러시아 호프 호텔, 에서는 이 호텔에 근무한 적이 있는 페터라는 친구에게서 하마의 본명이 실은 깐나라는 사실을 주워 듣고 10. 양동물원, 을 통해 500킬로미터나 떨어진 양동물원에서 깐나에게 엽서를 쓰고 있음을 알린다. 

  11. 새로운 슈테피, 에서 나는 슈테피의 두 아이인 릴라와 휴고를 돌보고 12. 모든 친구에게 쓴 절교의 편지, 를 쓰는 동안에는 막스 토마의 집에 묵고 13. West Berlin, 에서는 보도와 합칠 결심을 하고 14. 부다페스트 가街, 에서는 하마와 재회한다. 

  낯선 이미지를 창조하는 실력 하나만큼은 뛰어난 배수아는(특히 이 글은 작가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쓰여진 것) 독일, 헝가리, 러시아 등의 나라를 하나의 공간에 묶고 하마, 보도, 두스만, 카챠, 슈테피처럼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명칭들로 사람과 공간, 동물을 일렬로 늘어 놓고 있다. 

  딱히 고정된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고 그런 이미지들의 지향점도 없으며 그러 막연한 몽롱함으로 초지일관하고 있는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 때문에 환상적이면서도 시시콜콜 객관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소설 작법은 글의 프롤로그 격이면서도 작가가 모든 글을 읽고 나서 읽기를 요구한 0. 동물원에 간다, 에서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그 자체로서의 현실과 그 기준이란, 유행이나 다수결 혹은 파티에 초대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금박 글자의 명함처럼, 글을 쓰고 있을 때의 나에게는 가장 무시하고 경멸해야 할 대상이 된다.” 

  “...글을 쓰는 방법에 있어서 나에게는 대개의 경우 선호하는 몇 가지의 사소한 방법이 있는데, 동일시하거나 비판하거나 개입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7.0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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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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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하면 '찢어진 청바지에 껌일 찌이익 쓉는 약간은 비뚤어진 표정' 이 떠 오른다. 다른 여느 여류 작가와는 너무나 색다른 느낌. 나 스스로 만든 그 느낌에 이끌려 그녀의 글을 이해하기가 쉽지도 않으면서 그녀의 책을 꺼내들곤 하는 나를 발견한다. 동물원 퀸트. 홀로 동물원에 남겨진 듯한 느낌. 그만큼 고립되어 있고 홀로임이 명백하다. 동물원 창살을 앞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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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하면 '찢어진 청바지에 껌일 찌이익 쓉는 약간은 비뚤어진 표정' 이 떠 오른다. 다른 여느 여류 작가와는 너무나 색다른 느낌. 나 스스로 만든 그 느낌에 이끌려 그녀의 글을 이해하기가 쉽지도 않으면서 그녀의 책을 꺼내들곤 하는 나를 발견한다. 동물원 퀸트. 홀로 동물원에 남겨진 듯한 느낌. 그만큼 고립되어 있고 홀로임이 명백하다. 동물원 창살을 앞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혹은 동물원 창살에 가리워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고립되어 있지만 그 고립 자체가 결코 차가우거나 쓰라리지 않는 달콤한 통증이 좋다. 배수아 책을 읽기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난해함을 각오해야 한다. 책을 읽기 전 이 책의 돌파(?) 한다는 욕심 보다는 배수아 씨가 책 안에 숨겨놓은 그 냉철하고 당혹한 향기를 슬쩍 음미하는 것으로만으로도 나는 만족하며 배수아씨의 책을 배 책장 서랍 한 칸에 고이 장만해두곤 한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양을 바라보면서 걸어. 양을 바라보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야. 즉, 이방인은 나 혼자 인거야. 다른 사람은 아무도 양을 바라보지 않아. 양들은 원주민에게는 그만큼 일상적인 것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지루해. 나는 어느 도시에서나 나누어 주는 구시가지의 지도를 손에 들고 있어. 관광객을 위한 지도에는 동물원은 빠지기 쉬워. 게다가 이렇게 동물원이라고는 이름 붙혀지지 않는, 그런 동물의 장소일 경우는 말이지.
5***1 2003.07.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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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절교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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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은 언제나 멋지다. 소통되지 않은 인간들 사이에서 언제나 꿈꾸는 것. 게다가 선택한 혼자는 왠지 귀족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니까. 언제나 배수아의 책을 읽기전에는 수많은 광고들과 소개를 읽은 후에야 집어들게 되곤 했는데 그렇다보니 온전한 내 느낌이 없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난해하고, 잡히지 않는 내용을 가진 책이기 때문에 더더욱 말이다. 작가의 바램대로 서문도 읽지 않
"너와 절교하고 싶어.." 내용보기
고립은 언제나 멋지다. 소통되지 않은 인간들 사이에서 언제나 꿈꾸는 것. 게다가 선택한 혼자는 왠지 귀족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니까. 언제나 배수아의 책을 읽기전에는 수많은 광고들과 소개를 읽은 후에야 집어들게 되곤 했는데 그렇다보니 온전한 내 느낌이 없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난해하고, 잡히지 않는 내용을 가진 책이기 때문에 더더욱 말이다. 작가의 바램대로 서문도 읽지 않고, 읽은 책은 한참이 지난후에 다시 생각해 보려해도 도대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 속에 동물원 킨트가 하는 말들을 엿듣고, 멋진 고립에 대해 상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도저히 문자로 표현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생생한 감촉.
YES마니아 : 로얄 n***0 2002.11.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