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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가 쓴 세 편의 장편소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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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멀어서 얼룩으로만 드러나 버린   1 김연수는 1970년에 태어나 대학은 영문과를 나왔고, 1993년에 등단해 지금까지 어느 작가보다 활발하게 필력을 쌓아 왔다. 그에 걸맞게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90년대 이후 너무나 많은 여성 작가들이 우리 문단을 장악(?)했던 점을 생각할 때 선이 굵은 남성 작가가 제 몫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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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멀어서 얼룩으로만 드러나 버린

 

1

김연수는 1970년에 태어나 대학은 영문과를 나왔고, 1993년에 등단해 지금까지 어느 작가보다 활발하게 필력을 쌓아 왔다. 그에 걸맞게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90년대 이후 너무나 많은 여성 작가들이 우리 문단을 장악(?)했던 점을 생각할 때 선이 굵은 남성 작가가 제 몫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나는 사실 김연수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은 편이었다. 글을 쓰는 형식이 다른 탓도 있지만, 그가 쓴 글의 스타일이 나와는 맞지 않은 탓이 컸다. 시험공부를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닌 만큼 억지로 독흥(讀興)이 일지 않는 작가의 작품에 매달릴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 취향에 맞는 재미난 소설과 작가들이 많은데 굳이 책임감처럼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근래 갑자기 그가 쓴 장편 세 편을 모두 읽게 되었다. 느닷없이 시험을 보게 되어서가 아니라 내 필요 때문이었다. 이상(李箱)이라는 작가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간 출간된 자료들을 살피다가 <꾿빠이, 이상>을 읽게 되었고, 마침 최근에 민생단 사건을 다룬 그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가 나와 또 읽게 되었다. 나 또한 간도 일대에서 있었던 우리의 독립운동이나 일본군의 작태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두 소설을 읽고 나는 김연수란 작가에 대해서는 아니지만, 그가 쓴 장편소설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청탁을 받아 근래에 발표된 소설에 대한 얘기를 해 달라고 하기에 그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밤은 노래한다>만 가지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기왕 발표된 작품이 세 편인만큼, 또 두 편은 읽었으니 나머지 한 편마저도 읽고 내 생각을 밝혀야겠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의 장편에 대해 얘기하면서 다른 작품을 읽지 않는다면 어쩐지 지도의 일부만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손에 잡은 책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다.

 

2

김연수의 세 편의 장편소설은 결국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물론 역사라고 해서 광개토대왕 말 달리던 시절의 이야기는 아니고, 비교적 동시대에 가까운 시기의 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1937년에 세상을 떠난 작가 이상의 주변을 떠도는 일들을 세 개의 에피소드로 모은 것이 있는가 하면, 1930년대 전반에 간도 일대에서 벌어진 끔찍한 내부의 유형 충돌이었던 사건을 다루기도 하고, 아주 최근 작가가 대학 시절에 겪었던 90년대 초반의 우리의 현실에서 취재한 작품도 있다. 2000년에 들어오면서 좋든 싫든 우리는 1000년대와는 결별을 하게 되었다. 고작 그 간극은 1초의 차이인데, 이전과 이후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 조짐들이야 이미 세기말부터 드러났다고 해도, ‘1’과 ‘2’가 주는 숫자의 차이는 사람들의 의식을 엄청난 망각이거나 무모한 돌진이거나 차분한 천착이거나 또 다른 장벽 쌓기거나 새로운 변경(邊境)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그의 세 장편소설은 지난 세기에 대한 작가의 회고이거나 평가이거나 정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 장편은 인물이나 사건은 전혀 별개라고 해도 작품이 가지는 성격에는 통일된 부분이 있다. 즉 모두 ‘후일담’이다. 이 후일담이라는 말이 마치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일화를 소개하는 식의 깜짝쇼 같은 기분이 들어 개인적으로는 마뜩치 않다. 그러나 한 편으로 사건의 중심에서 거리를 두고 그 사건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기법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소설은 과거의 일을 얘기하는 것이니까.

그러면 작가가 쓴 이 세 편의 후일담 소설은 과거의 일에 대해 우리들에게 무슨 계시를 들려주려는 것이었을까? 나는 작가가 우리가 정말 망각하고 지나가서는 안 될 우리의 일들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자 했던 의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도 반감도 없다. 여기서 따지고 싶은 것은 그의 글 쓰는 방식에 대해,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일’들에 대한 그의 보여주기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3

내 관심 때문에 세 편의 소설을 읽었으니 어쩌면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처음부터 가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나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라는 가정에 따른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작가의 장편에 대한 생각은 나만의 해답에 머물 수도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또는 화자)들은 하나같이 외부인들이다. 우연히 또는 어떤 의도 아래 소설의 핵심사건 속에 휘말려 들어 사건의 진행 과정을 경험하게 되고 이를 기록한다. 외부인이니 공정한 시선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들이 너무나 외부인 티를 낸다는 것이다. 마치 외부인의 삶에 틈입해버린 핵심사건을 보는 듯하다. 그러므로 핵심사건은 소설에서 정당하게 대우받아야 할 중심적인 위치를 보장받지 못한다. 이상의 죽음과 그의 작품을 둘러싼 사실이 아닌 진실을 나는 <꾿빠이, 이상>에서 찾지 못했다. 또 90년대 초에 한국 땅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삶의 현장이나 그 의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발견하기 힘들었다. 민생단 사건을 겪으면서 억울하게 또는 허망하게 죽음으로 내몰렸던 또는 내몰았던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을 <밤은 노래한다>는 별로 들려주고 있지 않다. 온통 그런 이야기들로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하나같이 외부인들의 경험과 판단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화도 났고, 상당히 실망했다.

이상이나 90년대 초반의 우리의 현실이나 민생단 사건의 내면은 이들 소설에서는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인테리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을 지어도 아주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땅의 의식 있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나는 항상 시시콜콜한 주변 잡사 따위나 끌어들여 글발이나 세우는 작가가 아님을 보여주기 장치로 거창한 사건들과 인물들을 크리스마스트리의 금방울 은방울처럼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 첫 장을 열 때의 설렘과 기대감은 깡그리 붕괴되고, 어설픈 구호나 적당한 인용이 혼재된, 그리고 또 다른 잡사들로 얽혀있는 작품 때문에 내동댕이처진 실망감이 셔츠에 묻어 지워지지 않은 커피 흔적처럼 남는다면 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작품이 다루고 있는 사건의 비중이나 존재감 때문에 작품의 가치가 인정받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냥 지워버려도 좋을 의미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상세하게 묘사하고 하염없이 대화를 덧붙이면서도 정작 깊이 있고 심도 있게 다루어야 할 일들이 나오면 논설조나 사평(史評)을 쓰듯이 처리하고 있는 구성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작가의 독선과 월권처럼 보였다.

 

4

또 하나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단상은 장편소설은 무엇인가 하는 구태의연한 의문이었다. 단편을 열 개 모았다고 장편이 되지는 않는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흔들리지 않는 큰 틀이 있어야 장편이 아닐까? 특정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가 나오고, 크게 보면 연결 고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느슨한 데다 필연성도 갖고 있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러다 보니 결말도 요령부득으로 마감되어 버린다.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영화 <피아니스트>를 연상시켰고, 영화 ‘올드보이’의 어느 장면이 집요하게 드러난다. <밤은 노래한다>를 읽을 때는 두 편의 소설 <남부군>과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망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불행하게도 이 두 편의 소설은 그런 소설들의 잔영만 남겨 놓았지 전혀 뛰어넘거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랜 시간 소설의 소재를 탐색하고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면서, 심지어 그 현장에 가서 긴 시간 사건의 숨결까지 느끼려고 애썼던 작가의 진지함을 소설은 전혀 보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사건에만 매몰된 나머지 사건의 흐름을 과장해 묘사했거나 안이하게 처리해 꼼꼼히 뜯어읽어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작가가 영문과 출신이어서 그럴까, 너무 번역 투의 냄새가 나는 문체 역시 눈에 많이 거슬렸다. 단 한 구절만 소개하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172쪽에 나오는 묘사다.

 

그렇게 말할 때면 양쪽 눈썹이 이마를 향해 일어서다가 이내 우울한 일직선을 그리며 다시 아래로 내려앉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주 앉은 사람으로서는 눈썹 얘기를 꺼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상처를 건드린 듯한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구체적인 영상이 떠오르는 독자가 있다면 대단한 상상력의 소유자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 제대로 된 우리글인지도 조금 의심스럽다.

 

5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답게 그의 작품에는 몇몇 사람들의 멋들어지면서 함축적이고 아주 짧은 ‘헌사’가 띠지에 적혀 있다. 솔직히 비평가라는 사람들이 이런 찬송가나 부를 줄 밖에 모른다니 심히 우울해진다. 한국 비평에 대해 큰 기대를 접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도대체 작가의 명성에 경도되거나 부차적인 잇속을 위해, 작품을 읽고는 썼다고 느껴지지 않는 글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김연수는 몇 십 년 뒤 또는 한 세기 뒤에 ‘한국문학전집’이 나온다면 당연히 수록될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는 우리 문학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그러면 너는?”이라면서 삿대질을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이 글은 어차피 나의 독서평에 지나지 않는 글이라는 점을 들어 정중히 고개를 숙이겠다.

YES마니아 : 골드 y*****n 2009.05.28. 신고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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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는 노래한다, 무거운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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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젊은 작가들 중에서 낯선 행로를 보여주는 두 작가를 들라면, 나는 단연 김영하와 김연수를 들 것이다. 그 중 김영하가 문학 속의 '오빠'로서, 언제나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면, 김연수는 좀더 어두운 곳에서 보다 무거운 글쓰기를 수행했던 작가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작가의 붓끝에서 동시대의 새로운 현실들이 문학적인 형상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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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젊은 작가들 중에서 낯선 행로를 보여주는 두 작가를 들라면, 나는 단연 김영하와 김연수를 들 것이다. 그 중 김영하가 문학 속의 '오빠'로서, 언제나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면, 김연수는 좀더 어두운 곳에서 보다 무거운 글쓰기를 수행했던 작가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작가의 붓끝에서 동시대의 새로운 현실들이 문학적인 형상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 이들의 작품은 미정형의, 불완전한 모험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여전히 젊은 열정을 지닌 젊은이면서 삶의 깊은 곳을 응시하려는 의지를 지닌 우리 소설의 바다를 항해하는 율리시즈들이다. 어쩌면 소설은 조금 더 무거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대중들에 충분히 영합할 수 있는 가볍고 경쾌한 상상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개를 접고 밤의 어두움 속으로 걸어들어가려는 용기가 가상하다.

 

  "밤은 노래한다"는 소설이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것은 상상력의 산물인가?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말들의 결실인가? 작가는 광대인가? 아니면 선지자인가?

 

  "밤은 노래한다"는 결코 완결되고 성숙한 소설은 아니다. 주인공 김해연은 자신이 지나온 밤을 충분히 납득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예컨대 도스토예프스키가 "악령"에서 예고했고 이후에 러시아에서, 그리고 중국과 그밖의 현실사회주의 속에서 실현되었던 인류의 위대한 망집과 공포가 어떤 폭력을 빚어내는가, 그리고 도대체 우리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란 물음에 있어서 이 소설은 더 두껍고 무겁게 밀고 나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략하고 건너뛰면서 이 소설은 여전히 신세대문학의 흔적을 남겼지만 동시에 그것은 공허한 포즈에 머문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책무로 여기고 있는 젊은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밤은 노래한다. 당연한 일이다. 밤은 언제나 다하지 못한 자신의 노래를 지닌다. 그래서 밤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언제나 그 밤을 기억하고 그 어둠 속의 비극을 증언해야 한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들은 그 비극을 다시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김연수가 어둠을 노래하는 자로서 올빼미보다 고독하고 두더지보다도 깊어져서 언젠가 한국문학의 '네오'(the one)가 되어주기를 희망해 본다.

 

 

s***3 2008.10.27.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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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위해 밤은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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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 김연수 진보 언론지를 들춰보고 시사 프로그램의 시청 빈도가 높다해도 내가 가진 정치적 의식과 정의감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걸 확인시켜준 게 지난 대선이었다. 패배감보다 견딜 수 없었던 건 그런 패배를 당할 때까지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한심함과 바뀐 시대를 받아 들이지 못하는 내 구태의연함이었고, 그런 스스로를 변명하기 위해 한 진보 정당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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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 김연수

진보 언론지를 들춰보고 시사 프로그램의 시청 빈도가 높다해도 내가 가진 정치적 의식과 정의감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걸 확인시켜준 게 지난 대선이었다. 패배감보다 견딜 수 없었던 건 그런 패배를 당할 때까지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한심함과 바뀐 시대를 받아 들이지 못하는 내 구태의연함이었고, 그런 스스로를 변명하기 위해 한 진보 정당에 입당을 했다. 그간 안온하게 살아왔던 것에 대한 책임 회피를 하고자 '소속' 이라는 물타기를 하여 나는 여태껏 잘해 온 마냥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비판할 수 있는 비겁한 완장을 찬 것이다. 그것이 비겁한 짓이라는 부조리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속이고 세뇌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열렬히 당에 마음을 기울이며 진성 당원으로서 인정을 받고자 평소 소극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그래서 생애 처음으로 시위에 출전하는 주제에 멋도 모르고 당기 아래에 바로 서 열심히 내달렸다. 온몸에 온갖 표어가 적힌 종이들을 휘두르고 목청껏 구호를 외칠 때만 해도 선봉에 있다는 희열에 즐겁기까지 했다. 그래서 전경 방패에 밀쳐져서 어깨가 퍼렇게 멍들고 얼굴 위로 소화기 분말이 뿌려졌을 땐 이게 무슨 일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이해 못한 걸 이해하려다 그대로 주저앉아 한가롭게 모닥불이나 쬐고 있으려니, 멀리서 얼음장보다 차가운 물대포가 발사 되었다. 경복궁의 담장 위로 새들이 지저귀고 새벽 어스름이 물러나며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름다운 색채로 6월의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그 하늘의 연장선 조금 아래에선 세 대의 물대포차가 수백명의 사람들을 마치 살충제로 벌레떼 쫓듯 뿌리고 몰아대는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의 분노와 표현은 더 거칠어졌다. 정당함을 인정받을 수 없을 정도로 '변질' 되었다는 말이 내부로부터 먼저 흘러나왔고, 폭력없인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강경론자와 버텨야 한다는 온건론자 사이의 대립이 팽팽해졌다. 프락치를 경계하라며 현장에서 애먼 사람을 몰아 세우기도 하고, 똑같이 한 손에 초를 밝히고 있으면서 서로의 태도나 자세를 비난하고 헐뜯었다. 시위가 게릴라전으로 양상이 바뀌면서 당내의 분열도 가속화 되었다. 의회 진출도 못해 반쯤은 동정표에 의해 당원이 채워진 곳이어서인지 사상적 스펙트럼이 그 어느 곳보다도 넓었고, 그러다보니 전 정권을 옹호하는 앞잡이들은 나가라는 거친 언사들도 오고갔다. 골수 진성 당원들은 그들 나름대로 발판없이 불안정한 당의 존립성을 지키려면 사상 검증을 통해 색출하고 배척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에 의해 얼추 합격선에 든 당원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스스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가 없어졌다. 솔직히 나는 그들의 언어를 전부 다 이해하고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삶의 현장에서 처절한 노동자 계급이었지만 나는 그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였다. 몰라도 너무 몰라 그들에게 이것저것을 질문하면 그들은 설령 그럴 의도는 아니었더라도 나를 보고 순진하다고 비웃기 일쑤였다. 나는 이미 당 안에서의 기름이 되었고 당 밖에서도 있을 곳이 없었다. 나와 비슷한 혼란을 느낀 사람들은 아예 당을 나가거나 아니면 슬그머니 양비론을 중얼대며 잠적해 버리곤 했다. 자기 권리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우민들이라고 국개론을 내뱉을 수도 없었고, 대책없는 유토피아에 대한 낭만을 함께 읊기엔 감정이 못따라가고 자격도 불충분 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를 나조차가 몰랐으니까.

그래서 다시 선봉에 섰다. 그때 그날로부터 한달 가량이 지난 6월말, 무자비한 구타가 자행 되었던 그 날, 시청 바로 뒷쪽까지 바리케이트가 바짝 다가 온 그 앞에서 날아오는 돌멩이도 맞고 물대포도 맞았다. 우비도 소용 없을 정도로 홀딱 젖어 스커트 밑으로 물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맞으면 달라질거라 생각했는데,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해 안되던 건 여전히 이해 되지 않았다. 체념인지 자기 합리화인지 모를 침묵만이 뒤를 따랐다. 한 가지 겨우 떠오르는 건, 분노의 대상은 저쪽도 이쪽도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영영 끝나지 않을거라고,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시대가 지나 새로운 아이들이 올 때를 믿어야 한다고. 그렇게 어렵게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하며 맥없이 주저앉아 두 손을 내려다 보았다. 도대체 이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무기력한 손으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되나.

고작 나보다 조금 더 힘들어 보이는 사람의 등을 쓰다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나는, 그래서 해연도, 정희도, 길룡도, 도만도, 도식도 무어라 할 수가 없다. 그 깊이에 도달하기엔 아직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그저 그들이 자존감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를 썼다고만, 그래서 그 대상이 나라건 사람이건 자기 자신이건 간에 필사적으로 사랑하려 했다는 것만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을 따름이다. 5년전에 썼던 이 소설의 결말을 2008년 6월의 밤을 겪고 나서야 겨우 완료할 수 있었다던 작가의 말을, 설령 그 결말이 이 시대를 참아야 하는 사람으로선 마뜩찮더라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무기력함을 견딜 수 없어 복수하려던 해연의 갈데없는 분노처럼, 나와 나를 닮은 많은 사람들은 이 시대에 그저 주저앉는 것에 죄의식을 견딜 수 없어 정처없이 밤을 헤매다가, 마음의 칼을 끄집어 난도질을 하며 분풀이를 하다가, 그 칼을 떨구고 남은 것 없는 빈 손에 절망한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기다리는 수 밖엔.

분노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요 부르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를 흥얼대는 발랄한 어린 소녀들과 비장한 얼굴로 '임을 위한 행진곡' 을 부르는 아저씨들은 서로 그 시대의 곡이 어색해서 자기 입에 맞는 곡만 열심히 부르다가 이내 익숙해져서 두 곡을 번갈아 함께 불렀다. 그렇게 밤은 세대를 엮어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동이 터온다는 걸 함께 믿을 수가 있었고, 설령 그 하늘 아래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또 한번 펼쳐지더라도 우리의 노래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다짐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밤의 노래는,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의 염원이고 희망이다. 이것이 설령 받아들이지 못하는 슬픔을 억누르고 마비시키는 아편에 불과하더라도, 밤은 노래한다.
YES마니아 : 로얄 q****e 2008.10.08.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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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하고.. 나는 그 안에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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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930년대 초반 연변의 항일유격근거지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리고 해석이 어려운 이 사건을 배경으로 김해연이라는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경험을 그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사랑에 배신당했음을 느끼고, 당시 나라잃은 조선인으로서는 상당한 엘리트의 길을 걷다가 이런 저런 질곡을 통해 유격대원 및 공산주의자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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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930년대 초반 연변의 항일유격근거지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리고 해석이 어려운 이 사건을 배경으로 김해연이라는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경험을 그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사랑에 배신당했음을 느끼고, 당시 나라잃은 조선인으로서는 상당한 엘리트의 길을 걷다가 이런 저런 질곡을 통해 유격대원 및 공산주의자로서의 첩보활동을 하게 되기까지..

 

소재의 어려움 때문인지 초반 진도를 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아마 작가도 이 글을 쓰늗데 상당한 고생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익숙하지 않은 북한과 연변사투리며, 익숙하지 않은 지명이며, 어려운 마르크시즘의 논리며.. 결코 가볍게 읽혀지지 않는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라를 잃고 타국에 눈치보며 사는 사람들끼리 왜 그렇게 서로 의심하고 죽이고 으르렁대야 하는지,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해제을 읽고 그로한 소설 속 현상이 철저히 사실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군에 의해 토벌되어 사살된 유격대원보다 서로를 의심하여 숙청으로 사살된 유격대원이 훨씬 더 많았다니.. 그건 그 당시의 상황이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아니 결국 자기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었던 처절하도록 슬픈 시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게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그들이 감히 꿈에도 생각치 못한, 아니 죽어서 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그들의 '천국' 보다도 더 나은 세상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생각만으로 이루저지지 않듯이 열망도 아무런 원인이 되지 못한다는 작가의 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열망은 그 자체로 결과일 뿐이라고.. 간절히 바란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그 바람에 색이 바랠정도로 너무 나이가 들어 깨닫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이 자꾸 머리속에서 맴돈다.

 

 

p***i 2009.09.18.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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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 나는 삼나무 높은 우둠지에 오르고픈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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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높은 우듬지까지 올라가 본 까마귀, 다시는 뜰로 내려앉지 않는 법이네'  - 어쩌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어가 이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추천한 이가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아니었다면, 굳이 이 책을 읽으려고 했을까? 아니, 한 번을 다 읽고도 내용이 정리되지 않아서 다시 처음부터 읽을 생각을 했을까? 이런 의문들이 찾아듭니다. 누군가 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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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나무 높은 우듬지까지 올라가 본 까마귀, 다시는 뜰로 내려앉지 않는 법이네'
 
- 어쩌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어가 이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추천한 이가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아니었다면, 굳이 이 책을 읽으려고 했을까?
아니, 한 번을 다 읽고도 내용이 정리되지 않아서 다시 처음부터 읽을 생각을 했을까? 이런 의문들이 찾아듭니다. 누군가 나보다 앞서 읽어보고 느꼈을 감정들, 생각들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쩌지...하는 부담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만일,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분이 계시다면, 한 번을 읽고나서 다시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아니, 기회가 되시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해 봅니다. 제 친한 친구의 추천에 제가 한 표를 더 보태어 추천하는 것이니... ㅋㅋ  읽어보시고 후회는 없으리라 감히 예상을 해 봅니다.
한 번에 전체의 줄거리와 얽히고 섥힌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신다면 한 번으로 족하겠지만...
현재를 말하는 주인공의 말에 과거와 미래, 등장인물들이 뒤섞여 있으니, 두 번은 읽어야 이야기가 제대로 정리가 될 듯합니다.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라는 글로 시작되는 연서로 시작되어, 낮의 세상에서 밤의 세상으로 스며들어가 밤의 노래를 부르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 일제시대를 만철(요즘으로 치자면, 철도공사?)에서 근무하는 행운(?)을 얻은 주인공이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경험하게 되는 가슴아픈 현실들이 하나 둘 어둠 속에서 걸어나옵니다. 혁명에 투신하였다가 주인공을 만나고서야 사랑에 눈을 뜨고, 비로소 사람으로서 자신을 찾으려 했던 '이정희'라는 여인과 혁명이나 독립과 무관하게 밋밋한 삶을 살아가던 '김해연'이라는 남자가 만나 사랑을 하였으나, 끝내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이정희의 죽음을 계기로, 그 죽음과 얽혀 있던 이야기들이 실타래에서 하나 하나 풀려나오고, 그 속에 얽힌 배신과 분노, 또 다른 죽음들을 겪으면서 김해연은 '밤'의 세계로 스며들게 됩니다.

주인공 김해연으로 대표되는 건, 일제시대거나 현재를 가리지 않고 그저 현실에 안주하여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삼나무 높은 우듬지까지 올라가 보지 못하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까마귀들... 하지만,
어떤 계기든 그 꼭대기에 올라 본 경험은, 다시는 땅으로 쉽사리 내려올 수 없게 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상황이나 흐름과 무관하게 살아갈 수는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흐름에 몸을 맡기거나 흐름을 거스르거나.. 어쩌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 흐름에 휩쓸리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전체의 줄거리와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길 권하며 따로 정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1930년대 초에 나라를 잃고 머나 먼 타국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와 싸우던 투사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500명이 넘게 동지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아픈 이야기입니다. '민생단사건'이 바로 그 실화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과거의 그 기억들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음에 더더욱 가슴 아프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현재 진보진영이라고 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PD, NL 간 노선투쟁의 시발점 혹은 그 미래를 봤습니다. 나라를 잃은 백성들이 타국에서 어떤 처지에 몰렸었는지, 수 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곳에서 민족을 넘어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봅니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조직을 와해시키는 일제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일제에 부역하는 독립투사들.. 이루고자 하는 꿈은 같지만, 그 목적을 위해 조선인독립투사들을 이용하는 중국공산당 등등 다양한 모습의 인간군상을 봅니다.  하지만,

이루고자 하는 유토피아가 어떻든, 이념이 어떻든.. 그 척박한 시대를 더 힘겹게 살아야 했던 민중이 있음을, 그들이 흘린 피 위에 역사가 자리하고 있음을, 내가 살아가는 현재가 그 피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봅니다. 결국, 저 멀리 꿈처럼 자리잡은 미래를 담보로 현실을 인내하기보다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견해 차이를 내세우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생각에 따라서는 제가 사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부분이 목숨보다 더 소중할 수도 있겠다는 전제는 두고서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념이나 사고마저도 거부하는 보수꼴통은 논할 가치도 없으니 아예 논외로 하겠습니다.

우듬지 높은 꼭대기에 오르거나 깊은 강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경험은, 내가 살아가는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재구성하게 하는 법입니다.
 그런 경험...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시죠?

s*****2 2012.12.2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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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함 마저도 진리의 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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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백을 넘어 진격하던 전사들의 붉은 발자욱 잊지 못해 돌아보면 부끄러운 내 생을 그들에 비기랴만은 뜨거웁게 부둥킨 동지 혁명의 별은 찬란해 - 「혁명동지가」 중에서   대학 시절, 과방 테이블에 굴러다니던 노래책. 제목이 '삶의 노래 진실의 노래'였던가. 아니 '희망의 노래' 였던가. 그 어느 페이지에 실려 있던 이 노래는 큰 목소리로,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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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백을 넘어

진격하던 전사들의 붉은 발자욱 잊지 못해

돌아보면 부끄러운 내 생을 그들에 비기랴만은

뜨거웁게 부둥킨 동지 혁명의 별은 찬란해

- 「혁명동지가」 중에서

 

대학 시절, 과방 테이블에 굴러다니던 노래책. 제목이 '삶의 노래 진실의 노래'였던가. 아니 '희망의 노래' 였던가. 그 어느 페이지에 실려 있던 이 노래는 큰 목소리로, 당당하게, 웅장하게 불러야 하는 노래였다. 아마 내가 끊어먹은 셀 수 없는 기타줄 중 하나는 이 노래를 부르다 운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국주의 세력이 반도를 삼키고 만주로 진격해올 즈음, 칼바람 부는 곳에서 비호처럼 내달리며 '붉은 발자욱'을 남겼을 그들.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이 목숨을 위협하는 가운데 동지를 믿으며 한덩어리가 되어 혁명을 꿈꿨을 그들을 떠올리며 노래. 그리고 그들에 비긴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나의 구차한 존재를 망각하며 노래.

 

그렇게, 그들은 한 치의 흔들림없는 전사로 남아야 했다. 그리고 내게 동만주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척박한 땅을 일구는 조선 농민, 신념에 불타는 독립군. 그리고 아주 추운 곳. 마치 행복이라고는 발붙일 조건이 단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이미지.

 

그러나 당연하게도 사람 사는 곳이 늘 그렇듯. 격렬한 와중에도 누군가는 행복을 누리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항일투쟁이 격렬하던 1930년대의 만주에도 웃음이 있고, 직장이 있고, 사랑이 있고. 평범한 삶이 있었다. 그렇게 하나의 시대, 하나의 공간에 서로 다른 세계가 존재하였고 이 소설의 주인공 김해연은 다행스럽게도 일제의 보호막 속에서 아주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었던 청년이다.

 

나라가 넘어가던 경술년(1910년)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나는 독립이니 해방이니 하는 말들이 좀 시큰둥했다. 더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만주 벌판에 가면 백마 탄 장군이 있어 일본군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거나 상해에는 가(假)정부가 있어 거기서 나온 사람이 서울의 북촌 대감들 집에 다녀가는 일이 잦다는 등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다 머리가 굵어지기 전의 일이었다. (p.19)

 

그는 가난한 일본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고등공업학교를 나와, 총독부 보다는 못하지만 조선인으로서는 들어가기 까다롭다는 만철에 들어간 인물이다. 그래서 꽤나 우쭐하는 마음에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일본군 장교들과 친분을 맺고 있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으며, 용정의 여학교 음악 선생과 사귀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여전히 독립이니, 해방이니 하는 말은 멀고, 친하게 지내는 일본군 장교 니시무라의 말은 가깝다. "여자부터 우선 사랑해 보고 그 다음에 떠들어라"

 

하지만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 같다. 하나의 시대, 하나의 공간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다른 세계와 마주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나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 투쟁이 맞부딪쳤던 1930년대의 만주처럼. 각각의 세계가 서로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격렬하게 부딪혔던 시대라면 더더욱. 그리고 김해연은 자신의 연인을 통해, 아니 연인이라 믿었던 이를 통해 다른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그의 연인이라 믿었던 이는 조선인 공산주의자였으며, 만철에 다니던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것. 그렇게 그가 알던 세계는 혹은 사랑은 무너졌으며, 그녀가 목숨을 잃은 곳에서 그 역시 목숨을 끊는다.

 

그렇게 그의 사랑과 함께 그의 세계는 저물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목숨은 저물지 못했다. 자살 시도가 미수에 그치고 그의 몸은 용정의 한 사진관에 의해 거두어지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진관이 혁명조직과 연결되었던 것. 그리고 그곳에서 사랑하게 된 여옥과 함께 여옥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유정촌에 가다 일본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는다. 모두 죽고 다리를 잃은 여옥과 함께 살아 남은 그. 여옥은 혁명조직에서 재봉대로 일하고 그 역시 유격근거지에 남아 혁명의 격랑에 휩쓸리게 된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이제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것은 일본군 토벌대와의 격렬한 전투도, 공산주의자들의 뜨거운 동지애와 신념도 아니다. 아픈, 아주 가슴 아픈. 낯선 우리에겐 아주 낯선. 하나의 사건을 만나게 된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소설에서 눈을 돌려 역사를 향해야 한다.

 

1930년대, 동만주. 이곳은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활발한 곳이었다. 하지만 나라를 잃고, 국경 밖으로 밀려온 공산주의자들은 제 나라 공산당을 가질 수도 없었던 것. 그들은 그렇게 중국공산당에 소속되게 되었다. 하지만 만주는 중국 본토와는 달리 중국 공산당의 당세가 극히 미약했고, 결국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의 당원 90%는 조선인이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바로 이곳. 간도, 즉 동만주에 집중되어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조선인 당원들이 입당할 때 '조선혁명'과 '중국혁명' 모두를 수행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침공하자, 중국공산당은 만주의 조선인들이 조선혁명에 주력할 것을 우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작된 대립. 만주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조선 혁명에 주력해야 한다는 '민족적 입장'과 조선 혁명을 위해서 '중국혁명'에 조력해야 한다는 '국제주의적-현실적 입장'으로 갈라졌다. 이 틈을 타고 이른바 '민생단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는 항일혁명가들이 서로가 서로를 일제의 스파이인 '민생단'으로 의심해 죽이고 죽은 사건이다.

 

그렇다. 일제와 친일파는 적, 독립운동가는 아군, 너무나도 선명할 것 같은 식민지 시대에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사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동지들끼리 서로를 쏘게 된 사건을 우리는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해제를 쓴 한홍구 교수에 따르면, 동지를 처형한 근거는 사실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래도 초기에 처형된 사람들은 '조선혁명', '조선독립'을 주장한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숙청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일제에 체포되었다가 구사일생 탈출하거나 처형장에서 중상을 입고 살아 돌아오면 가차없이 민생단으로 처형되었다. 일을 열심히 하면 정체를 감추려 한다고 민생단으로 처형되었고, 일을 게을리하면 민생단의 지령으로 태업을 한다고 처형되었다. 밥을 흘리면 어렵게 구한 식량을 허비한다고 민생단, 밥을 물에 말아먹어도 용변을 자주 보느라 혁명과업을 게을리하게 된다고 민생단... (pp.330~331)

 

이 가슴아픈 사건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이리도 오래 걸린 것은 바로 이 '어이없음'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방 후 친일파와 우익 지주를 기반으로 정부를 세운 남한에서는 좌익들의 독립운동 사실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남한 내 반체제 세력들은 똘똘 뭉쳐 맞서야 할 시기에 동지들끼리 죽고 죽인 사건을 입에 올리기가 꺼림칙했을 것이다. 절대악인 지배계급에 맞서며 스스로를 절대선으로 구축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치부와 같은 일로 여겨졌을 지도 모르겠다.

 

노동조합 간부가 부정을 저지르면 노동운동 전체가 지탄을 받고, 소련과 북한의 억압적인 국가사회주의(혹은 국가 자본주의)로 인해 사회주의 전체가 오류로 매도당하는 오늘의 현실로 가늠해보더라도, 반정부세력의 입장에서 작은 오점 하나라도 드러내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군사독재의 서슬퍼런 독재 아래서는.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결국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비정규직의 희생을 바탕으로 실리를 얻으려는 대공장/정규직 노동운동의 존재는 감춘다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북한의 실상도 감춘다고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모든 운동이 가져야 할 자세는 절대선으로 스스로를 (억지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현실은 - 올바른 것을 추구하는 활동이라 할 지라도 - 선과 악이 뒤섞여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에서 성장을 일구어 가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이같은 끔찍한 사건을 목도하고도, 희망을 잃지않는다고 말하는 조선인 공산주의자 박도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성장한다는 것이오. 그게 힘이라오. 물론 나 역시도 사람을 죽인 뒤에 톨스토이의 책을 버렸소. 결국 잔혹함마저도 진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오. 톨스토이가 10월 혁명을 목격했더라면 어떤 책을 썼을 것 같으오? 그는 세계 속에서 투쟁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대한 대서사시를 썼을 것이오. 인도주의는 죽는 그 순간까지 지키고 싶은 아름다운 가치지만, 그래서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인간의 힘을 믿겠지만, 잔혹함마저도 진리의 한 부분이라는 것만은 톨스토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오." (pp.234~235)

 

누구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휴머니즘과 인도주의를 원하지만, 현실은 잔인함을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 누구나 올바르길 원하지만 세상은 이것저것 뒤죽박죽 잡탕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어떤 잘못을 근거로 현실에 대해 혹은 어떤 활동에 대해 비난하고 손을 놓아버린다면, 혹은 그 사실을 은폐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현실 자체를 저버리는 것일 수 있다. 모든 현실은 선과 악이 뒤섞여 있는 것이므로. 하기에 서로를 쏘아 죽인 이들의 잔인함, 비인간적 행위를 이유로 그들이 지녔던 독립, 자유, 평등 등의 가치를,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삶을 부정하거나 묻어둘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그 잔인함과 비인간성이 뒤섞인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뿐. 때로는 나 역시 잔인하고, 비인간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채로.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몇십년 전 가장 날카로운 울음을 낳았을 그곳 어느 골짜기는 오랜 밤 조용했다. 누구도 그 골짜기에, 그 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통해 비로소 역사에 묻힌 동만주의 밤은 노래한다. 내게는 그 노래가 '세상과 저항이 함께 실망스러운 이 시대'에 적절한 것 같다. 모든 실망은 세상과 저항에 등 돌리는 것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이 실망스런 시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조금 덜 실망스러운 시대를 위해 묵묵히 노력해볼 방법 밖에 없다는 의미심장한 노래. 그 노래가 들려온다.

c*****9 2009.08.24.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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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건 믿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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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이 아픈 것과 ‘몸’이 아픈 것중 어느 쪽이 더  아픈걸까? 내가 구입한 책 중 김연수 작가의 책은 제법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그의 책을 완독한 것이 하나도 없다.  생각해 보면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껴서였던 것 같다.  최근 출간된 ‘밤은 노래한다’ 역시 그런 선입견이 작용했으나 이번엔 기필코 완독하리라는 마음으로 덤벼들었는데 생각보다 기존 출간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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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이 아픈 것과 ‘몸’이 아픈 것중 어느 쪽이   아픈걸까?


내가 구입한 책 중 김연수 작가의 책은 제법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그의 책을 완독한 것이 하나도 없다.  생각해 보면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껴서였던 것 같다.  최근 출간된 ‘밤은 노래한다’ 역시 그런 선입견이 작용했으나 이번엔 기필코 완독하리라는 마음으로 덤벼들었는데 생각보다 기존 출간된 책들과는 사뭇 다르게 내게 느껴졌고 아주 감명 깊게 책읽기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기에 또 한국 근대사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지 못하여 이 책의 중심인 ‘민생단사건’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우리나라가 식민지조선이었던 시절 일본의 제국주의와 중국의 공산당, 민족주의의 대립이 가져온 정치적 혼동과 모호함속에서 우리는 같은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처절하리만큼 잔인해졌고 명분 아닌 명분으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서로를 죽이고 상처를 냈던 복잡한 사건이었다는 정도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누군가 내게 책을 한 번 더 읽어 보라고 말할런지 모르겠다.


어쨌든 ‘밤은 노래한다’는 바로 우리 과거 속 가장 어두운 한 시대에 밝은 세상을 구현하고자 험난한 현실로 뛰어들었던 4명의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 김해연이라는 남자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다.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나의 글쓰기 실력이 모두 드러날터이니.. 그 부족함을 아는 나는 이쯤에서 멈춰야 할 것 같다.  다만 설명하지 못하는 줄거리이지만 김연수 작가의 풍부한 문장력은 가히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주인공과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겪는 내면의 세계가 이렇게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하게 전해질 수 있는 건지.. 김연수 작가의 저력을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새삼 내가 해왔고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랑이 모두 진짜 사랑이었는지를 되짚어 보게 되는 이 소설은 내 가슴속 작은 별이되어 노래하고 있는 것만 같다.

t*****a 2008.10.18.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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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인터뷰]사운드트랙이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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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홍대 근처 <상상마당>에서 김연수의 신작 소설 출간기념 낭독회(북살롱)에 다녀왔다. 처음으로 <사운드트랙>이 있는 소설을 만났다. 북살롱에서는 자연스럽게 음악이 흘러나왔고 김연수는 여섯 쪽이나 되는 단원을 뭉텅이로 낭송하는 기술을 뽐냈다. .(김연수 낭독회에서 들었던 음악이 듣고 싶은 독자들은 김연수 블로그에서 <아키라디오>를 클릭하면 된다) 독자들과
"[김연수인터뷰]사운드트랙이 있는 소설 " 내용보기

지난 13일 홍대 근처 <상상마당>에서 김연수의 신작 소설 출간기념 낭독회(북살롱)에 다녀왔다. 처음으로 <사운드트랙>이 있는 소설을 만났다. 북살롱에서는 자연스럽게 음악이 흘러나왔고 김연수는 여섯 쪽이나 되는 단원을 뭉텅이로 낭송하는 기술을 뽐냈다. .(김연수 낭독회에서 들었던 음악이 듣고 싶은 독자들은 김연수 블로그에서 <아키라디오>를 클릭하면 된다) 독자들과 함께 한 낭독회는 시트콤을 방불케 할 정도로 '큰웃음'을 선사했다. 김연수는 남은 장작을 땔감으로 쓰듯 연변에서 품고 살았던 사진집과 자료집을 행운의 독자에게 선사했다. "소설이 다 끝났으니 제게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서요"라는 말과 함께. 선물을 받지 못해 아쉬운 독자들은 김연수의 목소리를 군불 삼아 '밤의 노래'를 되살리려 애썼고, 나는 지금 김윤아의 '야상곡'(夜想曲, 사운드트랙 두 번째 수록곡)을 들으며 다리 잘린 여옥이(김해연의 애인)를 회상한다.


▲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예스24 북살롱에서 김연수는 신작 <밤은 노래한다>의 구절을 사운드트랙과 함께 낭독했다. 김연수는 독자와 함께 하는 낭독을 몹시 좋아한다. 낭독을 하면 시간이 잘 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1930년대가 아니었다면 등장할 수 없었던 인물

김연수의 신작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를 들고 나는 '1930년대'라는 질문에 맞닥뜨렸다. 1930년대는 현대사에서도 잘 소개되지 않는 대목이다. 1930년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은 대륙에 대한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다. 이들은 그 구실을 만들기 위해 봉천(奉天; 현 瀋陽) 외각의 류타오거우에서 스스로 만철(滿鐵) 선로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측 소행이라고 트집잡아 32년초까지 거의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같은 해 3월 1일에는 일본의 괴뢰국가(傀儡國家)인 만주국의 성립을 선포하여 만주를 일본 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었다. 괴뢰국가 수립 이후 전방(동만, 즉 간도)과 후방(조선)의 항일연합투쟁을 두려워한 일제는 '간도(間島)에서의 조선인 자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민생단'을 창설해 중국 공산당으로 하여금 민족배타주의에 빠져 조선인을 탄압할 빌미를 제공했다. 때문에 항일 유격근거지 내에서 조선인이면 일단 민생단의 스파이라고 한번쯤 혐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간도 전역에서 민생단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한 반민생단투쟁이 대대적으로 전개돼 최소 500여 명의 한국인 항일운동가들이 체포·살해되거나 도망가야 했으며, 많은 하부조직들이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일제와 중국 공산당, 심지어 같은 조선인에게 공격을 받게 된 조선인들의 기막힌 사연과 그 잔인한 시간을 수진무구하고 별볼일 없는 청년 김해연이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이 소설의 이야기틀이다.

김해연이라는 이름은 이상의 본명인 '김해'경과 본인의 이름 김'연'수에서 따온 거라고 작가는 말했지만, '김해연'이라는 관광가이드를 통하지 않고는 이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김해연이라는 인물이 별로 맘에 내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스펀지처럼 사랑에도 잘 젖고 혁명에도 잘 젖는 듯 보이지만, 반대로 두 가지 모두 제대로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김연수는 "김해연이라는 인물은 바로 현대의 여러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인기리에 상영되는 영화 <모던보이>의 이해명처럼 탄탄대로를 달리며 부르주아의 모퉁이에서 별 유감없이 살아가는 만철의 '드문' 조선인 기사로 일하며 '이정희'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이정희가 사실은 중국공산당의 당원으로서 첩보활동을 하고 있는 요원이었던 것이다. '이해명'이 사랑한 '조난실'과 비슷하다. 조금 더 오래된 영화를 원한다면 <플래툰>의 크리스 신병처럼 젊은 시절의 번민을 이겨내기 위해 살점이 찢기고 나부끼는 전쟁터에서 적군보다 더 두려운 동료들의 전쟁을 견뎌야 하는 잔인한 운명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이 사람(김해연)은 '아이'고 '소년'이다. 사랑을 하면서 소박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세상이란 원하는 대로 돌아가 주지 않는다. 그는 '아이'의 세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만나며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 김연수의 인물평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와 우리들'이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김연수는 1930년대의 다양한 인물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공산당, 중국공산당, 국제주의자, 민족주의자, 친일파, 난봉꾼, '이상' 같은 아웃사이더 등 시대가 만들어낸 온갖 사람들이 살아가는 1930년대를 끝으로 김연수의 이분법적 사고와 결별하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분법적 사고로 설명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1930년대를 살아가는 '김해연'의 상황이다.


▲ 소설을 쓰는 내내 품에 안았을 것 같은 사진자료집에 손수 사인을 해서 독자에게 선물했다. 김연수의 선물을 받은 독자 3명은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소설가가 애착하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애착은 하나도 생기지 않는다. 내가 애착하는 사람은 고생고생하면서도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지도 못하고 누군가 기억해주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소설가는 이들의 인생에 묘하게 끌린다."

힘없는 약자와 기억될('기억할'이 아니라) 가치조차 없는 군상들을 기록하는 것은 역사가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소설가의 펜끝에서 되살아난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선망의 눈빛으로 본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다. 역사책 속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에 역사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우리들은 정체성에서 멀어지고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이 틈으로 소설이 들어온다. 소설은 역사가가 쓰기 싫어하는 것을 다룬다.

서금원의 바이올린은 실명하기 전 그가 만들었던 사제폭탄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사람들은 그 가락에 맞춰 혁명가요를 부르며 학교 마당을 빠져나갔다. 지난 몇 주 동안, 반민생단 투쟁을 거치면서 모든 일에 소극적이었던 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들 날창 하나면 38식 보총을 가진 적군 10명쯤은 상대할 수 있다는 듯 기세가 동등했다. 박도만은 적이 찹잡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반면에 여옥이는 벌써 부녀대원 사이로 들어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밤은 노래한다>, 256~257쪽

항일전설집에서 연길작탄(깡통에 탄약을 넣어 수류탄처럼 터지게 만든 폭탄)을 만들어 혁명에 큰 보탬이 되었다던 송원금의 화신인 서금원을 비롯해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행동들과 넘치는 자신감은 꽤나 역설적이다. 작가는 매우 공력을 많이 들인 대목이라는 것을 강조하기라도 한 듯 자세히 설명했다.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이 사람들은 그것을 아무도 믿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만약 그런 것(혁명 따위)을 믿었더라면 아무도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무척이나 탐이 났다는 소설의 제목 <사랑하라, 희망없이>를 예로 들었다. 소설의 결말과는 별개로 이곳이 자신이 도달한 지점이라고 김연수는 고백했다. 이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 전에 했지만, 소설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쓰는 동안 도대체 자신이 이 소설을 왜 써야 하는지 몇 번이고 되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못 상투적인 고백 하나를 더 보탰다.

"제 인생의 긴 나날이 이 책에 묻어 있어서 특히나 정이 가는 책이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희망'이라는 둔탁한 팻말을 만들어 그것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로소 작품에 헛된 의미를 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애초에는 '현대사'나 '현실',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리는 소설가의 관점을 부여하려 하였지만,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어린애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김연수를 읽는다면 독자인 나도 어른이 될 방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 몹시 침울하고 멍한 듯하면서도 한 곳을 분명히 주시하는 듯한 어두운 표정의 남자는 어린애에서 어른으로 가는 잔인한 여행의 길잡이 김해연이다. 김연수에 의하면 소설가 이상의 본명인 '김해'경과 작가 본인의 이름 '연'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김연수는 이 소설을 집필하며 두 가지 원칙을 지켰다고 말했다. '믿는다'와'혁명'이라는 것은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d*****7 2008.10.15.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민생단 사건의 일부를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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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분명 우리나라 식민지 시대의 동만주 지역 역사인데, 이렇게 무슨 소리인지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주인공 김해연과 그 주변 인물들의 얘기가 나오면 이해가 됐다가도 항일유격대니 중국공산당이니 조선공산당이니 소비에트니 토벌대니 도대체가 앞뒤 분간이 안갔다.  이책은 민생단이라는 뜻모를 집단의 궁금증으로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내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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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분명 우리나라 식민지 시대의 동만주 지역 역사인데, 이렇게 무슨 소리인지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주인공 김해연과 그 주변 인물들의 얘기가 나오면 이해가 됐다가도 항일유격대니 중국공산당이니 조선공산당이니 소비에트니 토벌대니 도대체가 앞뒤 분간이 안갔다.

 이책은 민생단이라는 뜻모를 집단의 궁금증으로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님의 추천도서에 이책이 오른적이 있었기에 꼭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것이다. 물론 김연수 작가에 대한 호감도 한몫했다.

 우선 역사적 배경 이야기를 해보겟다. 1930년 초 간도에는 조선인들이 많이 있었다. 오히려 중국지역이었지만 조선의 자치구적인 분위기를 더 풍겼다. 1931년 일본이 만주로 밀고 들어왔을 당시 상황은 이러했다. 국제 공산조직은 '일국일당'원칙이 강력히 시행되어서 그 나라에 체류하면 외국인일찌라도 그 나라의 공산당에 가입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즉 만주 에있는 많은 조선인들이 자치적인 조선 공산당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당원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 공산당은 '중국혁명'이라는 과업을 달성하고자 조선인을 이용하는 것이고 또한 '조선혁명'도 그 이후에나 실현가능하다고 이해시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인이 침략하자 조선인들이 중국혁명이 아닌 조선혁명에 주력하게 되리라 보고 '조선혁명'이나 '조선독립'이란 말을 금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만주를 점령하자 친일조선일들과 전향 공산주의자들을 모아 '민생단'이라는 정치 조직을 결성햇다. 이 민생단은 조선인의 간도 자치를 표방했는데 이를 중국인들이 강력히 반발 할 것이라 보고 6개월 남짓 활동하다 해산하였다. 그러나 이 민생단의 존립햇던 자체가 큰 파장이 되었다. 중국 공산당측에서는 민생단이 중국 공산당내에 스파이를 침입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는 동족간에 유격대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존재를 부정하면서 죽이고 죽이는 싸움의 불씨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토벌대가 우리 민족을 사살한 숫자 보다. 우리 민족간의 사살로 500에서 2000정도가 죽어나갔던 사건이 민생단 사건이었다.

이 이야기는 간도에 4명의 중학생 박길룡, 박도만, 최도식, 안세훈 등 혁명을 꿈꾸는 이들과 이미 많은 경험을 한 이정희 란 여인과 만철의 직원으로 대련에서 일하다가 용정으로 파견된 김해연이 간도임시파견대 중대장인 나카지마 타츠키 중위의 말 '사랑을 우선 해보라'는 말에 자극 받아 이정희를 만나면서 시대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게 된 이야기이다.

 이정희는 박길룡의 계략으로 인해 김해연에게 접근은 하나 톨스토이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는 순수청년 김해연에게 남몰래 연모의 정을 갖게 되는 듯하다. 또한 이정희는 나카지마 중위에게도 접근해서 토벌대의 정보를 유격대에 넘긴다가 발각된다. 그래서 토벌대에게 쫒기는 도중 박길룡과 최도식이 김해연에게 모든 죄를 다 뒤집어 씌우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자살을 선택한다.  김해연은 나카지마와의 관계를 의심하고 오해하고 실상을 알게되기까지 괴로워하다 약을 하다가 결국엔 자살을 결심하나 죽지 못햇다 그 충격으로 실어증에 빠지고 어떻게 흘러들어간 사진관 또한 당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연락책 여옥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여옥의 언니 결혼식에 참가하러 유정촌에 들어가다 토벌대의 습격을 받아 여옥은 다리를 자르게 되고 김해연은 살아남아 어랑촌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하게 되고 사상교육을 받게 되는등 시대에 휘말리게 되나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 도대체 이모든 것이 뭐하자는 놀음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빛도, 어둠도 아니면서 동시에 빛과 어둠인 세계" "땅에서 측량해서 그리는 지도가 있고 하늘에서 사진으로 찍어 판독하는 지도가 있다. 그 두 개의 지도는 서로 같은 것이면서도 전혀 다르게 경험된다. 그런데도 나는 애써 하나의 지도만을 바라봤을 뿐이다." 이것이 그시대 간도에 있었던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실상이었다.

 김일성도 민생단으로 많이 몰렸다고 한다. 죽을 위기도 겪었지만 중국인 공산주의자 덕분에 위기를 모면햇다고 한다. 이 민생단 사건을 알아야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책 한권으로는 감이 안온다. 아무튼 이 소설은 처음으로 민생단 사건을 다뤘다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s*****7 2011.04.2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변경의 청춘들에게 바치는 진혼곡
"변경의 청춘들에게 바치는 진혼곡" 내용보기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에서 김연수가 들려주고 있는 노래는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전적으로 비가(悲歌)이다. 슬프고 음울하고 무겁다. 이전에 쓴 여러 소설들에서 마치 자신의 전매특허인 양 다채롭게 보여준 바 있는 우아하고도 유쾌한 농담은 이 작품에서는 그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굳이 찾아보자면, 경성사진관 식구들이 여옥의 언니 결혼식에 참석하러 찾아간 유정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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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에서 김연수가 들려주고 있는 노래는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전적으로 비가(悲歌)이다. 슬프고 음울하고 무겁다. 이전에 쓴 여러 소설들에서 마치 자신의 전매특허인 양 다채롭게 보여준 바 있는 우아하고도 유쾌한 농담은 이 작품에서는 그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굳이 찾아보자면, 경성사진관 식구들이 여옥의 언니 결혼식에 참석하러 찾아간 유정촌에서 서로 주고받는 걸쭉한 육담 정도가 되겠는데, 저승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대화를 소재로 하고 있는 그 육담을 채 끝맺기도 전에 일본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아 그들 자신이 정말 저승행을 하고 말았으니 이를 김연수식 농담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터.

 

작가의 말에 따르자면 첫 구상에서부터 출판까지, 아무리 짧게 잡아도 거의 15년 가까이 걸린 작품이기에, 김연수가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자면 얼마든지 발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밤은 노래한다』가 결국은 이렇게 슬프고 음울하고 무겁기만 한 비가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무거움 때문이리라. 그래서 김연수는 탁월한 이야기꾼인데도 이 소설을 쓰는 데에는 10년 가까이 뜸을 들여야 했고, 뜸을 들이는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이 소설의 무대가 되고 있는 연변에 직접 가서 집필을 해야 했던 것이리라. 더군다나 그렇게 공들여 이 소설의 초고를 완성하고 나서도 출판을 하지 않은 채 4년 동안이나 묵혀 두었다고 하니,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김연수가 얼마나 무거워했는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작가의 그런 무거운 마음이 이 소설을 읽는 내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 탓일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름이 지났는데도 나는 리뷰를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미적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작가가 15년 세월을 들여서 쓴 소설이니 독자가 그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데 보름 정도 허송세월 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큰 허물은 아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밤은 노래한다』는 오히려 그 정도 숙성을 시키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리뷰를 쓸 수 있는 종류의 소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무거움을 덜어내자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내게는 그게 보름 정도의 시간이었다는 말이다.

 

1. 두 개의 지도 : 역사와 문학

 

이쯤 되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이렇게 요란스레 설레발을 치느냐고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겠다. 그 정확한 답을 얻으려면 직접 이 소설을 읽어보는 수밖에 없겠지만, 이 글이 다른 것도 아니고 이 소설을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잡이 삼아 참고하라고 쓰는 리뷰인 만큼 이 소설의 해제를 쓴 한홍구 교수의 글을 빌려 살짝 소개하자면 이렇다.

 

김연수『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초반 동만주의 항일유격근거지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민생단 사건은 내 박사논문의 주제이기도 한데, 이게 어디 가서 쉽게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모를 얽히고설킨 복잡함과 혼돈이 민생단 사건의 특징이다. 이 참담한 사건을 통해 희생된 항일혁명가가 최소 500여명. 일제의 자료조차 토벌에 의해 희생된 숫자보다 혁명조직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해서 죽고 죽인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 참담한 민생단 사건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김일성 등 이북의 지도부가 된 항일유격대 출신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중국 당국이 혁명에 승리한 후, 왜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만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500여 명의 혁명가가 적이 아니라 동지의 손에 의해 죽어간 사건이라면 얼마나 기막힌 사연이 많았을까? 박사논문을 쓰는 내내, 이건 논문이 아니라 소설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논문으로는 다 담을 길 없는 그 깊이를 모를 혼돈과 암흑의 심연 속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에 빠져든 인간들의 이야기를 김연수는 처음으로 끌어안았다. (326-327, 해제 그 긴 밤, 우리는 부르지 못한 노래, 밤이 부른 노래’)

 

500여 명의 혁명가가 적이 아니라 동지의 손에 의해 죽어간 사건이라면 정말 어느 소설가라도 탐낼만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몇 번이나 내쳐두었다가도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다시 원고를 붙잡고 자료를 수집하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현장을 답사하고 그 현장에서 고쳐 쓴 원고를 돌아와서 다시 고쳐 쓰는 방식으로 마침내 이 소설을 완성시킨 김연수의 끈질김도, 따지고 보면,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참담하고 충격적인 이 민생단 사건의 강렬함에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민생단 사건이 아무리 강렬한 사건이라고 해도, 사건의 원인보다는 결과에 더 주목하는 역사 기술의 방식으로는 그 강렬함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역사적 사건의 강렬함은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사건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생생하게 복원할 때 비로소 온전하게 체험될 수 있다. 한홍구 교수가 민생단 사건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면서도 이건 논문이 아니라 소설로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터이다. 또한 소설가 김연수가 민생단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품었던 최초의 의문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였던 것도, 그러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벌어졌는가, 가 아니라 벌어지는가, 라고 현재형으로 질문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라.)

 

명백하게 구분되는 역사와 문학의 이러한 차이란,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자 화자로 나오는 조선인 측량기사 김해연의 말을 빌리자면, 땅에서 측량해서 그리는 지도와 하늘에서 사진으로 찍어 판독하는 지도의 차이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즉 역사가 항공사진지도라면 문학은 실측지도라는 말이다. 이 두 개의 지도는 내용상 같은 것이면서도 전혀 다르게 경험된다. 문학이 그려내고 있는 지도는 자신의 몸으로 직접 세계를 재어보려는 욕망의 소산이기에 당연하게도 인간을 앞세우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렇게 인간의 몸으로 측량한 세계를 도면으로 옮길 때(즉 역사적 사건을 문학으로 형상화할 때), 세계의 참값(즉 역사적 사실)은 다소 흐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밀한 카메라가 아닌 인간의 몸으로서는 오차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측량의 역사를 배우던 시절의 일이다. 수업시간에 이노 타다타카(伊能忠敬)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16세기 사람인 이노 타다타카는 쉰 살이 넘은 뒤, 자신의 발로 일본을 측량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15년에 걸쳐서 일본 열도를 걸어 다닌 사람이었다. 총 발걸음 수는 4천 만보, 거리는 34,900킬로미터. 측량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욕망이 존재한다.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재어보려는 욕망 말이다. 그런 탓인지, 어느 틈엔가 나는 모든 상황을 내 몸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 돼버렸다. 하지만 측량의 세계에 더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노력하는 한, 인간은 잘못을 범한다라는 괴테의 말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측량의 세계에는 근사치만 있지, 참값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측량이란 완전해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익히는 일이다.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재어보면 분명 참값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을 도면으로 옮길 때는 참값을 포기해야만 한다. (54~55)

 

『밤은 노래한다』 역시 이러한 측량의 방식으로 씌어진 소설이기에 민생단 사건의 역사적 사실과는 부합하지 않는 오차가 분명 존재할 텐데, 그 오차가 작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선택된 사랑이라는 테마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흥미롭다. , 이 소설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안세훈, 박도만, 박길룡, 이정희 등 젊은 공산주의자들의 죽음은, 표면적으로는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두 노선 중 어느 것을 우선하느냐라는 문제를 두고 서로 격렬하게 다투는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자면 중학교 시절부터 그들 모두가 연모했던 여학생 이정희를 두고 은밀하게 벌인 오랜 암투의 산물인 것으로 암시되어 있다.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당시의 특수하고 구체적인 현실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인간조건에서 찾아내는 김연수의 이러한 상상력은,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것이겠으나 소설적 진실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두 개의 지도를 모두 들여다볼 때, 즉 역사라는 항공사진지도를 문학이라는 실측지도와 대조해가면서 들여다볼 때,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 속에 파묻혀 있어서 우리 눈에는 쉽게 띄지 않던 역사의 진실이 비로소 그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연수가 이 소설을 쓰는 데 15년이나 걸렸던 이유도 바로 두 지도를 모두 들여다보면서 꼼꼼히 대조해가면서 작업해야 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고된 작업을 통해서 그가 들려주고 있는 역사의 진실은 우리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 언뜻 보기에는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우리의 간절한 열망으로도 이 세계는 조금도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열망이 있었기에 분명 어제와는 조금 달라진 세계에서 우리가 살게 되었다는 것. 수백 년, 수천 년을 두고 늘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 앞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믿고 있기 때문이리라. 김연수는 『밤은 노래한다』에서, 자칫 패배와 수치의 역사로 간주되기 쉬운 민생단 사건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이러한 역사의 진실에 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2. 변경의 청춘들 : 희망과 사랑 사이에서

 

하지만 『밤은 노래한다』는 되풀이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역사소설이 아니라 연애소설로 읽힌다. , 민생단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이 가져다 준 충격으로 자신의 삶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총체적인 붕괴를 경험한 한 낭만주의자가 주위의 도움을 받아 애인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고 관련자들을 복수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세계를 다시 굳건하게 쌓아 올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로 읽혀지는 것이다. 민생단 사건은 그 과정에서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되는 사건들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도 조금의 희망도 보여주지 않은 채, 농담 한 마디 들려주지 않은 채 어둡고 무거운 비장한 정조로 시종일관하고 있는 것은 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민생단 사건이 그만큼 압도적이고 충격적으로 소설 전반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1930년대 초반 동만주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간도(間島)라고 불리기도 했던 만주 땅은 일본 제국주의와 동아시아 민중이 격돌하는 최전선으로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이곳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던 조선인들에게는 더 나아갈래야 나아갈 수 없는 변경이었다. 조선(아니 일본이라고 해야 옳겠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으니까), 중국 및 러시아의 국경선이 서로 만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공산주의라는 같은 이념 내에서도 민족주의자와 국제주의자로 파가 갈리어 서로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는 의미에서도, 1930년대 초반의 동만주는 변경이었다.

 

당시 이 변경에서 살던 조선인 청춘들이 꿈꾼 푸른 빛의 희망(즉 민족의 독립)붉은빛(즉 공산주의)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밖에 없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붉은빛은 심장의 붉은빛(즉 사랑)을 용인하지 않았다. 그건 1927년 용정에서 학교를 다니던 네 명의 중학생들, 안세훈, 박도만, 최도식, 이정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당장 천국을 보고자 했으나 결국에는 제가끔 지옥을 보게 될 운명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또한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말할 수 없었으므로. 따라서 자신이 누구인지 끝내 알지 못했으므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는 점에서, 1927년 낡은 세계를 부숴버리겠다며 밤마다 영국더기 동산교회에 모여 열에 들뜬 목소리로 혁명을 떠들어대던 네 명의 중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뒤질세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서둘러 선언했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당신도, 나도,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빼앗기고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꿈꿀 수밖에 없다. 주인만이, 자기 삶의 주인만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지 않는다. (247~248)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변경의 청춘들이었기에 다른 세계(즉 공산주의 혁명)를 꿈꿀 수밖에 없었는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꿈꾼 그 다른 세계조차도 그들이 살고 있던 변경에서는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즉 민족주의자와 국제주의자로). 아직 꽃다운 청춘들이었기에 어쩌면 사랑이 그들에게는 구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혁명가를 꿈꾸는 그들에게 있어 사랑은 한낱 여분의 것으로 치부됐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혁명에 걸림돌이 되는 위험한 욕망이어서 기껏해야 추문이 되거나(안세훈이정희의 연애의 경우) 아니면 다만 혁명을 위해서만 이용가치가 있는 전술로서 그 진정성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고도의 위장술(박길룡과 이정희의 연애의 경우)이 될 뿐이었다.

 

이제는 알겠다. 사랑은 여분의 것이다. 인생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찌꺼기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사는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데츠트보』라든가, 니콜라예프스크 같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들 속에서, 열병에 걸린 듯 현기증을 느끼며 사랑한다. 한 번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했던 것들이, 우리를 환상 속으로 이끄는 그 모든 낯선 감각의 경험들이 사랑의 거의 전부다. (31)

 

젊은 육체가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걸 주체하지 못해서 그들은 몸부림쳤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 품었던 그 뜨거운 열정을, 자유를 위해서라면 폭력도 불사하겠다며 손에 움켜쥔 총과 칼에게로 옮겨놓았을 뿐이다. 그대가 아닌 자유와 해방에게로, 지금이 아닌 다가올 미래로, 여기가 아닌 다른 낯선 곳으로. 당장 자신들의 가슴속에서는 지옥불이 타오르고 있는데도 그들은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천국을 위해서 자신들의 사랑을 한없이 유예시켰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마음 바깥으로 풀어놓지 못한 그들의 사랑에는 의심과 증오가 스며들었으며, 열렬히 품었던 그들의 희망 역시 가장 어두운 숲 속까지 들어가서야 간신히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어두운 숲에 밀어닥친 민생단 사건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서 희망도 사랑도 모두 잃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3. 뒤바뀐 운명 : 사랑에서 혁명으로

 

이정희로 대표되는 이러한 변경의 청춘들과는 달리,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김해연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이는 청년이다. 그는 나라가 넘어가던 경술년(1910)에 경상도 통영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독립이니 해방이니 하는 말들에 좀 시큰둥했으며 또한 당시 청년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혁명이니 공산주의니 하는 사상들도 단지 한가한 날들의 소일거리로 여기며 지나쳤던 인물이다. 그랬기에 그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취업을 목적으로 진학한 가난한 일본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고등공업학교를 다녔던 것이고, 졸업 후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대륙으로 뻗어나가는데 필수적인 철도망을 건설하는 회사인 만철(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 측량기사로 취업한 것이다.

 

김해연이 만철 용정 사무소에서 실지측량 작업을 하면서 사귀게 된 일본군 중위 나카지마는 이러한 그를 두고 열정이 없는 따분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민족이니 혁명이니 하는 것들과는 다른 성격의 열정이 씨앗처럼 뿌려져 있었다. 그가 비록 몸은 측량기사로 일하고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시인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듯이, 그의 가슴속에는 그 자신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은밀히 간직된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동면하고 있던 그 열정의 씨앗을 움트게 만든 이가 바로 이정희였다. 그러나 이정희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그의 삶은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변경의 청춘인 이정희는 일찍이 한 개인으로서의 그 누군가를 사랑하는 대신에 오직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만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혁명가였으니 말이다.

 

영남은 내게 손바닥을 펼치라더니 검지로 글씨를 쓰면서 말했다.

내 말 잘 들으시오. 마음 심(), 아니 있습니까? 그거 하나지, . 마음 심, 들이대는데 뉘 어쩌겠누? 사내 대장부, 남들이 뭐라 해도 마음 심 하나 끝까지 밀고 가는 거지, .”

술이 취한 나는 영남의 검지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렇겠지, . 마음 심, 그거 하나겠지, . 남들이 뭐라 해도. 남들이 뭐라 해도. 마음 심. (15)

 

몇 달에 걸쳐 주말마다 그녀와 꿈같은 데이트를 즐긴 김해연2주간 대련으로 출장을 다녀오느라 그녀를 만날 수 없게 되는데, 그때 김해연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대체하는 것들이지만 그 어떤 아름다움도 그리운 단 하나의 얼굴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김해연은 이렇게 오로지 마음 심()자 하나 높이 쳐들어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드러내면서 그녀에게 청혼한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듯이, 이정희는 그가 내미는 반지를 잠시 망설이다가 받아들었을 뿐 선뜻 손가락에 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적미적 세 달이 지난 후 그녀가 보내온 운명의 편지 한 통. 죽음 직전에 그에게 보낸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에는 때늦은 사랑의 고백이 씌어 있었다.

 

() 지금 와서 가장 후회되는 건 내가 결국 사랑을 두려워하게 됐다는 점이죠. 열한 살 시절, 차가운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나는 내 인생에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했더랬죠. 가슴으로, 어깨로, 목으로 밀려들던 그 차가운 물결처럼, 더 많은 기쁨이, 더 많은 고통이 내 몸을 감싸기를…… 그리하여 죽는 그날까지 배우고 또 배울 수 있게 되기를. 그런 시절은 이제 아득하게 멀어졌군요.

이렇게 말해도 될까요? 지금까지 내게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이 우주는 신생 우주이고, 그토록 고요한 우주라고. 지금까지 나는 눈도, 귀도, 입도 없었던 존재라고.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맛보지 않았어요. 지금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앳된 사람이에요. 갓 태어난 인간이에요. 이제 막 돋아난 새싹이에요. 그처럼 이 세상도 이제 막 태어난 세상이에요. 한때 나를 사로잡았던 그 소망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네요. 옷에는 얼룩만이 남아 지나간 시절들에 대해서 말해주네요. 이렇게 해서 나는 평안을 얻게 되는 건가요? 송어들처럼 힘이 넘치는, 그 어떤 것에도 지지 않는 그런 평안인가요. 이제. () (323~324)

 

이처럼 이정희는 마음 심자 하나 들고 그녀의 가슴 속 아주 깊은 곳까지 치밀고 들어온 김해연의 사랑에 힘입어, 그 동안 두려워하고 거부하기만 했던 사랑을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그 동안 그녀가 알고 믿고 원했던 세계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그녀는 사랑의 세계에서 갓 태어나자마자 죽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두 세계를 양립시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으니까. 너무 깊숙이 혁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으니까.

 

당연하게도 김해연은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싸고 하나 둘씩 밝혀지는 그녀의 정체와 비밀스러웠던 삶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아편에 빠져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고 이정희가 자살했다는 나무에 자신도 목매달아 죽으려고 한다. 그런 그를 혁명조직과 연결된 용정의 경성사진관 사람들이 구해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그의 삶은 다시 한번 극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 이정희의 삶이 거쳐온 과정을 역순으로 고스란히 되밟아가면서 사랑의 세계에서 혁명의 세계로 옮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정희와는 달리, 김해연은 혁명의 세계에서도 사랑을 배제하지 않는다. 사진관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은밀하게 혁명조직의 연락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여옥과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과 혁명은 함께 가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혁명을 꿈꾸었던 변경의 청춘들이 거의 예외 없이 민생단 사건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똑같은 희망을 품었던 동지들의 손에 의해서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과는 달리, 김해연은 끝까지 살아남아 중국 공산당원이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숱한 죽음을 목격하고 또한 그 자신이 죽음 직전에까지 내몰리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그가 알고 지낸 이들과의 인연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그리고 혁명조직 내에서 이정희와 동지관계였던 박도만과 박길룡을 만나 그녀의 죽음과 관련된 숨겨진 진실들을 듣게 되면서 새삼 복수심에 치를 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희를 죽음으로 내몬 가장 결정적인 책임이 있는 인물인 최도식을 그가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것은, 그를 처단하려고 하던 마지막 순간에 최도식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오른손 약지를 칼로 자를 정도로 한 여자를 지독히도 사랑했던 남자. 하지만 혁명을 위해서 그 여자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남자. 그리고 자신이 오랫동안 소망했으나 끝내 받아내지 못한 사랑의 편지를 엉뚱한 사내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아야만 했던 남자. 그리하여 어쩔 도리 없이 그가 사랑했던 여자의 죽음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남자.

 

김해연이정희와는 정반대되는 코스를 밟아서 혁명가의 삶을 살게 되지만, 결국에 가서는 이처럼 더 큰 사랑으로, 연인의 살인자이자 혁명의 변절자인 최도식을 용서하는 것은 참으로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김연수작가의 말에서 이런 결말에 이르게 된, 그리하여 묵혀 두었던 이 소설을 마침내 출간할 수 있게 된 계기를 고백하고 있는데, 그게 무척이나 흥미롭다. 즉 취재를 위하여 2008 5 31 시청 앞 촛불 시위에 참가했을 때, 남총련의 깃발을 든 학생들이 경찰 앞에서 운동권 노래와 격렬한 구호를 외치는 대신 대중가요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그 모습을 목도하고 웃음을 터뜨리다가 그는 홀연히 깨달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열망 때문이든 아니든, 물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아닐 확률이 높지만, 어쨌든 우리는 어제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 그게 중요한 것이다. 반드시 복수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당장 내 눈앞에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 이게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라면. (345, 작가의 말)

 

그렇다. 이게 역사다. 이게 바로 역사의 진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증오의 역사가 결국은 사랑의 역사가 되고 마는 놀라운 비결이다. 하지만 1930년대 초반 동만주에서 살았던 변경의 청춘들은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했다. 인간이 국경보다는 조금 더 큰 존재이며 또한 인간은 이념보다도 조금 더 큰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혁명과 사랑은 동반자 관계일 때 비로소 둘 다 살아남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부인했다. 부인해야만 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선택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치열했던 삶과 어이없는 죽음을 추적하는 이 소설은 진혼곡이 될 수밖에 없다. 밤은 노래한다. 그건 분명 청춘의 노래이지만 슬프고 음울하고 무겁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부른 밤의 노래 덕분에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새벽, 이 아침이 가능했다는 사실(차마 대낮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누군가는 아직도 어두운 밤이라고 말하겠지만.

c*****t 2010.03.18.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