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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습관처럼 박진규 시인의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를 읽는다. 이유는 간단한다. 치열한 경쟁으로 지친 감정들을 카타르시스하는데 최근에 이 시집이 상당히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조심(操心) 가까이 가서 보니 탱자나무 울타리 속 작은 새들이 오글오글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다 바빴습니다 저 많은 가시 요리조리 피해가며 탱자나무 울타리 속 커다란 미로를 조각하는 중입니다 내 안에도 저 새처럼 많은 것들이 있어 이토록 시끄럽게 지저귀며 복작대는 중입니다 그러다 불현듯 새떼가 몽땅 날아가 버렸습니다 나는 탱자나무가 새들에게 한 말이 있을 것만 같아서 조용해진 미궁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탱자나무는 그저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조심(操心) 감상문 탱자나무 가시에 갇힌 고통이 따끔한 행복임을 깨치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날카로운 가시공간이 가장 포근하고 안락한 공간임을 역설적으로 노래하는 박진규 시인의 조심(操心) 시(詩)를 접하지 않고 세상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탱자가시의 미로는 작은 새에게 제일 포근한 보금자리이다. 탱자가시의 위리안치(圍籬安置)는 맹금류를 막아주는 보금자리일 뿐 자유를 박탈하는 감옥이 아니다. 이빨보다 더 날카로운 가시일수록 더 포근한 삶이 보장되는 곳, 이곳이 탱자나무 가시울타리 보금자리이다. 시인은 지저귀며 복작대는 생명들을 위해 스스로 가시 울타리를 가슴에 품는다. 가시 울타리는 어느듯 가시 면류관이 되어 시인의 가슴에 아프고 따끔한 행복이 되었다. ‘조심(操心)’의 시를 통해 탱자나무 위리안치에 주리 주리 열린 향긋한 탱자 열매의 향기는 어느듯 나의 가슴을 적신다.
박진규 시인의 시(詩) 사직시장 한 쪽에 할머니 오도카니 앉았다 출처: 박진규 시집 <문텐로드를 빠져나오며>, 신생출판사
박진규 시인의 시(詩) “애호박”감상문 고려청자 모양 매끈한 애호박은 할머니의 푸르고 동그란 장날 일기장이 된다. 애호박은 봄날 봄새들의 노래를 간직한채 아직 초여름 이른 새벽 이슬맛도 못 본 채 호박잎에 낯을 가린다. 여기 별안간 할머니의 손길 따라 시골장에 당황스레 옴찔한 애호박 둘이 있다. 애호박에게 텃밭 봄새들의 합창이 귀에 아직 맴도는데 갑자기 수다스런 장터 여인들의 흥정소리에 동그랗게 놀란다. 어제 밤 상현달 밝은 빛에 눈 동그랗게 밤샌 뒤 새벽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장날 바닥에 않은 샐쪽한 애호박이라 할머니는 잔돌로 애호박 양볼따구니 공구어 세웠다. 노란 호박꽃 동생들에게 아직 작별 인사도 못한 애호박 둘은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사직장터 바닥에서 눈만 초롱 시골장이 낯설다. 할머니는 두 개의 어린 초록 호박이 안스러워 눈도 못 맞추고 멍하니 담벼락만 응시한다. 사직시장 한 쪽엔 지금도 애호박과 할머니의 오랜 이야기는 도란 도란 자리를 애틋하게 꽃 피운다. 2023.08.19. 부처님의 편지 통도사 영각 영각(靈閣) 앞 매화나무가 아픈가 보다 영양제를 몸에 꽂고 늦봄 햇살로 보양 중이다. 겨울날 탐매객 사랑 독차지하는 노거수 오늘은 그 앞에 '카메라 플래시 사용금지'라고 적힌 커다란 팻말 하나가 떡하니 내걸렸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플래시 빛에 눈이 부셔 어지럽다는 뜻인데 아니 그 눈이 어디 붙어있다는 말씀인가 그럼 저 늙은 매화나무에 코도 있다는 것 아닌가 부처님과 대화하는 귀와 입도 있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살금살금 매화나무를 지나기로 하였다 출처 : 박진규 시인, ??문텐로드를 빠져나오며??, 신생출판사 박진규 시인의 <부처님의 편지> 시를 읽고 난 감상문 통도사에는 스님께서 살아 지내는 곳과 죽어 지내는 곳이 있다. 살아 지내는 곳은 전향각(篆香閣)이고, 죽어 지내는 곳은 영각(靈閣)이다. 살아 지내는 곳에는 수행자의 향초 향기와 고고한 염불 소리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수행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죽어 지내는 곳은 윤회의 수레바퀴가 멈춘 자리에 매화 향기를 머금은 고고한 침묵의 한 그루가 지키는 곳이다. 전향각은 내처(內處)와 외처(外處)를 다듬어 용선(龍船) 만드는 곳이지만 영각은 이미 피안(彼岸)에 도달하여 용선(龍船)을 버린 곳이다. 차안(此岸)은 세속의 물정(物情)을 얻어 먹어야 살지만 피안(彼岸)은 무심한 매화 향기만 먹어야 사는 곳이다. 해와 달의 절제있는 불빛만 먹고 사는 매화목이라. 영각 매화목이여 미안하여라. 휴대폰 저장장치로 수리부엉이 먹이 채듯 탐욕어린 눈빛으로 고귀한 매화에 인공 플래시 빛으로 분칠하여 함부로 그대 영상을 뺏어가는 탐매객(探梅客)으로 인해 매화는 저자거리 작부(酌婦)가 되었다. 피안에 계신 고승(高僧)께서 적정계(寂定界)에서 편안하지 못할 것 같아라. 황화각(皇華閣) 학승(學僧)들은 무슨 생각나시는고. 매화목 비틀어 말라가는 몸매 하나로 우주에 내처 외처 없는 곳이 없다는 진리를 나투시는데 어째 십이처를 제 목에 달린 곳에서만 찾으려 하실까? 시인께서는 “매화나무에도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도 있고, 귀도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신다. 그래서 우주 만상 나무 한그루 아래를 걸어도 “살금 살금 지나기로 지나기로 하였다”는 싯귀가 있다. 부처의 깊은 심연(深淵)은 가사장삼 화려하게 걸치고 얼굴 아이돌끼 가득찬 젊은 스님의 제나름대로 확신에 찬 법설보다 이 시인의 담담한 글 속에서 더 빛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23.8.19
박진규 시인의 시 “모과나무를 지나며” 출처: 박진규 시집 <문텐로드를 빠져나오며>, 신생출판사 박진규 시인의 시(詩) “모과나무를 지나며”감상문
박진규 시인의 시 “모과나무를 지나며”
모과는 풋모과 시절부터 몸속에 어린 벌레를 키웠던 것이다 벌레가 나방이 되어 훨훨 날아갈 때까지 그 자리에 천천히 새살이 차오르면서 할 수 없이 한쪽으로 불거졌던 것이다. 출처: 박진규 시집 <문텐로드를 빠져나오며>, 신생출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