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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가 지우고를 거듭한다. 오늘은 정말 써야지...
뭐 이렇게까지 쓰기가 싫다면 별 수 없다. 그저 눈길을 끌었던 문장을 옮겨 적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나는 진리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찾는 것은 만족을 위해서일 뿐이다. 내가 찾으려는 것은 만족 너머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음.. 어쩌면 그렇다. 그러니까 진리를 찾는 것만으로는 만족하기가 매우 어렵다. 진리를 찾는 것은 진리를 찾음으로써 갖게 되는 만족감 이외에 또다른 이유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리라.
“...오동잎 한 장의 낙하는 세계의 가을을 증거한다...”
작가의 말이었는지 작가가 다른 이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멋진 말이다. 이번 가을에 한번 써먹어볼만하다. 물론 약간의 변형이 필요할 것이다.
“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믿는 데는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했다.”
마지막 말의 무서움을 잘 알고 하는 소리인지 약간 의심을 해본다. 그것이 마지막 말이거나 마지막 행동인 경우, 첫 번째 이해에 뒤이어 다시금 또다른 이해, 그리고 또다른 이해, 이렇게 계속해서 서로 다른 이해가 반복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애초에 자신이 이해했다고 생각한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어먹게 된다. 그렇게 마지막 말은 잊혀져갈 뿐이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그것이 정말 마지막이었다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의 경우 대부분은 자신이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병인 것이다...”
허걱...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으니 곧이어 주춤 안정을 찾는다. 나 자신이 반복하고 있는 이 글쓰기라는 행위의 병증에 당황했으나, 그것이 그나마 글쓰기인 것에 안도하는 것이다. 게다가 난 게으른 탓에 그렇게 반복적이지도 못하잖은가.
늦은감이 있지만 살펴보자면 책의 구성은 이렇다. 어느 정신병원의 보조의가 있다. 이 보조의는 어느날 새로 부임한 병원장으로부터 일종의 보고서 제출을 명령 받는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환자들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동굴에 관한 꿈을 꾸는 마술가, 대식증에 걸린 대학생, 다중인격장애의 은행원, 끊임없이 ‘왜?’ 라고 묻는 노인, 진시황의 환생임을 주장하는 선생, 갑자기 수에 도통하게 된 농부 등 정신병증에 관한 열 네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소설은 조금은 극단적인 예를 이용하여 인간 보편의 심리 상황을 훑어보려 애쓰고 있다.
일종의 다큐멘타리 연작과 같은 것으로 크게 일관성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하창수라는 작가가 나름의 의지를 갖고 계속해서 써간다면(작가는 이러한 의지를 담아 각 챕터의 번호를 1이나 2가 아니라 0001이나 0002로 적고 있다. 그러니까 잘하면 9999개의 이야기를 독자가 만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만, 뭐 쉬이 믿을 수 있는 다짐이나 배짱은 아니다.) 의미있는 소설가의 정신병에 관한 보고서 쯤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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