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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하면 책으로도 애니메이션으로도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접하는 이야기들 중 하나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애독서 중에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집에 여러 작가 버전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이 '미하엘 쾰마이어의 그리스 로마 신화'다.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은 어떤 주제를 하나로 해서 챕터를 나눴는 데 이 '미하엘 퀼마이어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시간순으로 읽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순이 아니라도 에피소드 나열 형식이기에 재미있고 이해하기에도 무리가 없지만 그래도 연대순으로 읽는 게 왠지모르게 더 편하더라. 그리고 앞 페이지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넣어 책을 읽기 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인물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 놓음으로써 왠지 사전같은 느낌으로 더 쉽게 읽고 싶은 이야기를 찾을 수가 있다는 것이 좋다. 서양의 사상과 가치관을 볼 수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색다르게 연대순으로 읽을 수 있어 더 이해하기 쉽기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 늘 토마스 볼핀치의 신화를 읽을 때면 식상함과 남성우월적인 면을 의식하곤 했다. 그건 볼핀치의 신화에 기반을 둔 이윤기의 신화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미하엘 쾰마이어의="" 그리스="" 로마="" 신화="">.. 유려한 문체와 막힘없는 서술에 감동했고, 가끔 사견을 첨가해 그 부분에서는 나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책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 분명했기에, 이 책에 남다른 애착이 갔다. 내가 알고 있는 신화를 약간은 다른 시각에서 표현한 책. 이 책에서 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신화는 결코 어렵지 않으며, 사실은 너무 친숙하여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어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신화 전문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 역시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생활 속에 깃들여 있는 신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 나이키, 닉스, 헤라... 상품 중 신화와 관련된 상호명이 많다.-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가장 유명한 12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신들의 탄생에서부터 헤라클레스의 업적을 지나 트로이 전쟁 후 오디세우스의 방랑까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이야기들을 식상하거나 딱딱한 투가 아닌 친근하고 유쾌하게 말하고 있다. 신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신화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중반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이야기는 이나코스로부터 시작되어 다나이데스의 49명의 딸들, 암피온과 제토스, 탄탈로스와 펠롭스, 안티오페, 티에스테스와 아트레우스, 클리타임네스트라, 오레스테스에 이르까지 계속된 집안의 저주이다. 모두가 잘 아는 위의 인물들은 모두 제우스와 헤라, 포세이돈이 실을 제공하여 나약한 이나코스가 실타래를 엮어 에리스가 천을 짜 버려 모두 불행해졌다.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도 잔혹하면서 슬픈 이야기들이 모두 인간의 어리석음이 아닌 신들의 무책임함과 욕심, 변덕에 의해 일어났다면 얼마나 황당한가.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하는 신이 그 상벌을 결정하는 기준은 다름아닌 신의 만족도였다. 신이 만족하고자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벌을 줬다. 탄탈로스는 자신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타르탈로스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신의 권위에 도전했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 했다. 이나코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저주를 받아야 했던 까닭은 다름아닌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이었다. 제우스가 이오를 유혹하지 않았더라면, 헤라로부터 지켜주었다면 결코 위의 비극적인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나중에 만신창이가 된 이나코스를 위로한답시고 물 없는 강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제우스 자신이 만족하기 위해서였다. 그냥 이나코스가 불쌍하니까 동정하는 마음을 충족시키고자 도와준 것이다. 원인 제공자였던 자신의 행각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미하엘 쾰마이어 역시 나와 같이 불합리한 신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무책임에 화를 냈다. 특히 바람둥이 제우스와 위대한 여신에서 전락해 버린 헤라는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남성우월주의를 찾는 것은 쉽다. 너무나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하지만, 몇 군데 살펴보자. 헤라. 그녀는 대지모신이었지만, 이방신인 제우스에게 겁탈당하여 질투쟁이 여신으로 전락해 버린다. 악녀 메데이아. 그녀는 악녀라는 호칭이 앞에 붙어있지만, 사실은 이아손의 야망과 우유부단함에 희생된 가엾은 여자 아니던가. 아프로디테. 미의 여신이라 칭송받는 그녀가 어째서 그렇게 성적으로만 묘사되는가. 제우스가 건드린 모든 여성들은 하나같이 다 불행해졌다. 여자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제우스의 행각으로 얼마나 불행한 여성들이 탄생했는가. 게다가 그들이 낳은 아이들 중 남자는 영웅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여자는 잊혀져 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제우스의 딸은 다름아닌 헬레나.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 그녀의 이야기에서 역시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방식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레스테스. 모친살해의 주범인 그는 무죄 판정을 받았다. 여성이면서 남성이기를 바랬던 아테네에 의해서 말이다. 읽다보면 울화통이 터지는 이야기들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자꾸 읽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신화를 보면서 현재를 살고,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일까. 알 수가 없다. 미하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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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뿐인 세상에 가이아의 존재로부터 세계의 탄생이 시작된다. 가이아는 우라노스라는 신을 탄생시켰고, 가이아의 존재로부터 생명이 생겨나고 다른 존재들도 탄생하게 되었다. 티탄 족, 거인 족, 그리고 그의 자식들인 신들이 그리고 신들로부터 인간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신들의 이야기, 신들과 인간의 이야기, 인간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양을 대표하는 미술품으로 조각이나 그림 중 그리스로마신화를 모티브로 그려진 작품이 많다고 느꼈다. 작품들을 볼 때면 그만큼 유럽 사람들의 의식 속의 살아있는 이야기 또는 자신의 신분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조상을 높이는 상징적 존재라는 생각을 가끔 해 본 적이 있다. 풍부한 이야기들 속에서 수치심, 분노, 감동, 안타까움, 안도 등의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읽게 되었고, 그 중 나에게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를 살펴본다. 본 신화에 첫 부분에 등장하는 크로노스, 우라노스라는 아버지의 폭력을 종결하고자 했던 크로노스는 권력을 움켜쥐자 아버지처럼 폭군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위협할 자식을 없애기 위해 자식을 잡아먹는다. 단지 신화에서 나오는 이야기지만 권력이란 현실에서도 이러한 속성을 드러내는 것 같다. 이에 권력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권력은 어떤 것이 선한 건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권력에 대한 개념이지만 이 신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절대적 권력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두 번째 적용으로는 이카로스(다이달로스의 아들)의 추락을 통해 볼 수 있다. 미궁을 빠져나가기 위해 밀랍과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공중을 날아 미궁을 빠져나가는데 성공했지만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날개가 녹아 추락을 하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너무 높이 나는 것을 금했지만 나는 것에 심취하여 정도를 지나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사회복지현장 속에서 사회복지사는 마땅히 뜨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머리는 차갑게 하므로 이성적인 판단이 될 수 있도록 컨트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적용으로는 안티오페의 지루함의 재앙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은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다. 그것이 사람의 정확한 속성일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꾸준한 변화와 약간의 스트레스는 필요하다 생각한다. 따라서 꾸준한 자극과 변화, 약간의 스트레스를 통해 자활의 의지, 동기를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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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왜 읽는가? 이제껏 신화를 읽어 왔지만 요즈음 나이 들어서 읽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과 똑같은 감정과 욕망을 갖고 행하는 모습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낀다. 그리스 신화는 우리가 끊임없이 들여다 보는 어둡고 깊은 거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그 뜻이 오묘하다.특히 터어키에 관심이 많은 나는 트로이 전쟁 편에 관심이 많았다. 트로이 전쟁은 서양 역사의 전쟁의 원형이라나.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 역사적 배경까지 뚜렷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당시 트로이는 그리스의 속국 내지 식민 도시였다고 한다. 트로이의 멸망에 관한 신화를 다시 읽으면서 그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전쟁의 시작이 결국은 무엇인가에 대해. 트로이 전쟁에 대한 신화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인상깊은구절] 우리 아버지께서는 인문적 교양을 심어 준다는 구실로 내게 곧잘 그리스 신화를 이야기해 주시곤 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그에 대항이라도 하듯 그림 형제의 동화를 열심히 들려주셨다. |
| <트로이아 전쟁에서="" 아가멤논이="" 딸을="" 아르테미스에게="" 준="" 것이="" 정당한가?=""> 아가멤논이 딸을 주게 된 배경은 순전히 그의 잘못에서 기인한다. 그가 수렵 도중 아르테미스에게 봉헌된 수사슴을 죽임으로써 원한을 산 때문이다. 아르테미스는 군대에 악질(惡疾)을 퍼뜨리고 배를 항구에 붙들어 매 놓는 등의 심술을 부렸다. 이때 예언자는 여신에게 처녀를, 그 중에서도 범죄자의 처녀를 제공해야만 노여움을 가라앉힐 수 있다고 공언했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조국이 트로이아에 함락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때문에 그리스군의 발이 꽁꽁 묶였으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이 일을 처리하겠다는 일념 하에 딸을 꼬여왔다. 아버지와 딸이라는 개인적 의미로 보았을 때, 이는 얼마든지 비난의 여지를 갖는 처사이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대사를 결정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큰, 중대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부녀관계에 얽매여 마음가는 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역사상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가정에 소홀히 하고 국가의 막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는 다수결의 원칙을 강조함으로써 생겨나는 문제이나 아가멤논의 특수한 위치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아가멤논의 결정은 오이디푸스와 같은 운명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아가멤논이 딸을 희생시킨 것은 곧 그 자신의 희생이 뒷받침된 결정이었으므로 그를 매정한 아버지라 욕하는 것은 속 모르는 비난이다. 아가멤논이 정당하지 않다면, 아르테미스가 이피게네이아(아가멤논의 딸)를 극적인 순간에 살려줄 수 있었겠는가.-모든 신은 권선징악의 상징이다. 질문1)트로이아 전쟁은 아가멤논보다 아킬레우스의 공헌이 크다. 그런데 아가멤논이 여신에게 딸을 준 것이 과연 전쟁의 승리에 영향을 미쳤는가? 과거의 전쟁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트로이아 전쟁의 시초도 신탁에 의해서였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씌어진 황금사과를 던짐으로써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간에 싸움을 붙였듯이, 또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함으로써 그녀가 나머지 두 여신의 미움을 사게 만들었듯이 이 모든 것은 운명지어져 있었다. 이처럼 트로이아 전쟁이 진행되는 도중에 패륜행위가 만연해 있었고, 이를 문제삼은 전쟁에서의 패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시 신탁에 의지하는 상황이 생겨났다. 그때 아르테미스 상(像)이 요구되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도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피게네이아였다. 물론, 아가멤논과 비교하여 아킬레우스의 공헌이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아가멤논이 전리품 중 여자포로를 취함으로써 생겨난 시비를 아킬레우스는 지혜로서 해결했다./아킬레우스는 병사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전쟁에 임할 것을 훈시했다.) 하지만 아가멤논이 딸을 내 놓은 결단 역시 부정적 결말을 상쇄시킨 결정적 지표가 되었다. 질문2)아가멤논이 아버지로서 딸을 준 것은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가?(윤리성) 인간을 형상화한 신에게는 여러 가지 역할이 주어지기 마련이다. 윤리성은 상대적 가치이므로 역할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윤리적인 신이 될 수도 있고, 부도덕한 신이 될 수도 있다. 아가멤논을 한 처녀에게 있어 아버지에 해당하는 역할로 보았을 때 두드러지는 비윤리성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역할의 경중을 따져보았을 때 보다 많은 사람의 안위와 국가의 존망을 자신의 핏줄보다 좀더 우위에 둔 아가멤논의 선택은 고차원적 차원에서 상당한 윤리성을 획득하고 있다. 부분의 비윤리성을 전체의 비윤리성으로 취급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 ◆ 아버지가 자식을 희생물로 취급한 사실만 가지고 정당성을 운운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물론, 이는 비난받아 마땅한 패륜이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는 아버지로서의 아가멤논을 논할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의 경중을 객관적으로 판단한 아가멤논의 처사는 그리스의 오랜 역사를 존속시키는 데 공헌한 바가 크다. 또한, 자식의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던 아가멤논은 당시 그 누구보다도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고차원적인 차원에서 윤리성의 유무를 판단하려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자세만이 정당성을 논하기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가장>트로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