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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패배하여 식민국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보자면 여태까지 자기 것인 줄 알았던 남근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패배자로 인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는 전쟁 자체를 감성-미학적 차원으로 덮고자 시도한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과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이 만들어낸 대중영화는 패배자로서가 아닌 위기에 몰린 국민의식을 부각하여 국가적 차원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성향을 보인다. 그래서 전쟁을 묘사하는 영화를 분석하는 것은 그 나라의 정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행위가 된다.
‘패배’의 처리는 사활이 걸린 문제로 부상했다. ‘패배자들’이 패배했다는 사실조차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 ‘패배’를 어떻게 표상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패배에는 다양한 대처가 가능하다. 이야기로 만든다거나, 영화화한다거나, 혹은 정치적인 집단화로 삼거나 한다. 패배를 생각함에 있어서, 개인의 패배뿐만 아니라, ‘집단으로서 패배하는’ 일이 내 사고의 지평에 떠올랐던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희망의 위기’가 사람들의 위기의식으로 부상하기 이전에도, ‘패배’는 처리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상문제였다. p.28
여기에서 영화 속에 나타나는 공감대적 감정이 '정(情)'인지 '감상(感想)'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정'이라면 남녀의 연애사이나 가족, 형제, 친구 간의 우애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감상'은 스스로를 동정하는 나르시시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련의 전쟁영화들 속에서 부각되는 감정의 정체는 순수한 '정'이 아닌 관객의 '감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저자가 분석대상으로 삼은 영화는 일본의 <버마의 하프>, 미국의 <디어 헌터> 등이다. 여기서 그려지는 전쟁 참여자들은 개인으로 그려지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알레고리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들을 통해서 전쟁 참여자들은 관객으로부터 심정적 동의를 얻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전략적 장치는 그들 국민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역사적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태도를 보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세계인 ‘베트남’을 적=고문자=베트남인=아시아인=동양인=비인간이라는 연쇄적인 상으로 묘사하는 것은, 실은 쌍-형상적으로 ‘우리’의 재현-표상을 부여하기 위한 필요(~122)조건의 하나인 것이다. <디어 헌터>가 베트남인과 아시아인을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야 했던 이유는, “우리는 가해자가 아니라, 역사의 피해자다”라는 바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없어서 안 되는 절차였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들’을 이러한 방법으로 형상화했던 까닭은 그들이 실제 우리에 대해서 잔혹했는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리는 피해자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요청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같은 감상을 공유한 이들 사이에서는 '부끄러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끄러워 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자꾸 자기정당화하게 되고 그것은 과거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책임을 무는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침으로써 스스로 '국욕적'인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비판이 일본 내부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부끄러움은 국제사회에 안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기합리화와 국가주의를 선동함과 동시에 과거를 현재와 분리시키려는 현재 일본의 모습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일본이 '역사'라는 책임에서 벗어나려면 국제사회가 책임을 물을 때 올바로 대답하고 지금 세대가 과거의 일본인들과 공범관계를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계속 거짓말을 하고 이후 세대는 외부와 모순되는 역사관과 세계관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말로 '부끄러움'이라는 것이다. 또한 영화라는 매체가 그러한 부끄러운 감상적 이데올로기에 이용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영화 비평과 해석은 자유로우면서도 다각적으로 냉철한 시각에서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