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스 M. 디쉬(Thomas M. Disch)는 말 그대로 "르네상스"적인 인간이다. 시인이자, 비평가, 소설가, 그것도 SF만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호러, 판타지 모두에 능한... 그는 거의 유일무이하게 뉴 웨이브의 참된 의미를 파악한 미국작가였으며, 어린시절부터 즐겨 읽고 또 스스로 써 온 SF가 보다 성숙한 단계로 진화하지 못한 채 주저앉은 현실을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Free Press라는 이상한 출판사에서 1998년 나온 그의 휴고상에 빛나는 논픽션 The Dreams Our Stuff is Made of는, 디쉬가 에스에프계에서 등을 돌린 이유를, 그러나 언제나 어깨 너머로 자신의 고향을 넘겨다 보면서 고향의 소박하지만 유치찬란한 걸음마가 언제쯤 앞으로 내달리는 자신의 꿈과 희망을 따라올 수 있을지 늘 걱정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낄낄 웃으며 읽고 나서 가슴이 아픈, 비평서이다. 그는 이 책에서 브라이언 올디스(Brian W. Aldiss)에 의해서 광범위하게 유포된 "설"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에스에프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과감히 공격한다. 그는 꿈 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의 유아적인 취향이 미국이라는 천박한 거짓말로 가득 찬 문화와 야합함으로써 SF가 탄생했다고 설파한다. 에드가 앨런 포우라는 걸출한 거짓말장이로부터 끊임없이 등장하는 꿈을 먹고사는 사기꾼들의 행적이야말로 왜 SF라는 잠재적으로 한계를 느끼지 않고 뻗어나갈 수 있는 장르문학이 (적어도 미국에서는) "스타트렉" 수준에서 머물 수 밖에 없는가를 설명하는 산 증거라고 그는 믿는다. 로켓, 로봇, 에얼리언이라는 삼 박자를 고루 갖춘 당금의 SF는 그러므로 디쉬의 눈에 거의 절망적일만큼 유치찬란한 애들의 꿈놀이동산이 된다. 데뷔 시절부터 SF가 스스로 짊어진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말이다) 유치함의 근저에는 8기통 우르릉 쾅쾅대는 신형 자동차에 대한 선망과, 종부리듯 부리는 유한계급에의 꿈을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포장하는 미국인의 가식과, 소수 백인 문화 이외의 모든 것들을 두려워하고 말살시키려는 종족적인 공포감이 도사리고 있다. 거기에 대한 대책이 그러나 디쉬에게는 영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페미니즘은 당파적인 이분법과 과잉보상으로 새로운 역차별을 가져오고, 보수주의의 재대두는 SF의 기둥을 갉아먹는 흰개미 군단과도 같다. 상업화에 따른 일률적인 출판계 역시 꿈을 꿈답게 가꿔나갔던 그리고 가꿔나가려는 작가들을 고사시키고 있다. 그래서 디쉬가 진단하는 에스에프의 미래는 새빨간 거짓말로 과학기사를 써서 사기를 쳤던 포우의 진면목처럼, 허황된 의사심리학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면서 신흥종교교주로 떠올랐던 론 허버드의 검은 뱃속처럼, 꿈을 파는 듯하면서 실상 획일화된 보수주의의 재교육장으로 떠오른 스타트렉의 무대처럼, 지적이고, 진지하며, 날카로운 혜안을 가진 그와 같은 작가들이나 독자들에게 철저하게 암울할 뿐이다. 디쉬와 같은 이들이 더욱 멋진 에스에프를 앞으로 더 많이 쓰지 않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