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자크의 식탁 | 앙카 멀스타인 저 | 김연 옮김 | 이야기나무 | 2016-08
작가들은 대부분 유·청소년기의 기억을 숙명처럼 보듬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때의 생활습관이나 가정환경이나 특유의 버릇은 훗날 어떤 형태로든 작품 속에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행복한 기억이든, 아픈 기억이든, 슬프고, 기쁘고 즐거운 기억이든 특별히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작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작품 속의 배경으로 자리 잡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을 모아서 관심 있게 읽다보면 작품마다 동일한 소재가 들어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이미지는 선명하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인간에게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앙카 멀스타인의 <발자크의 식탁>(이야기나무, 2016)은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의 작품들 속에 빠지지 않고 초대받은 단골손님이 있다. 그것은 발자크의 작품마다 다양한 형태로 묘사되어 있는 ‘음식이야기’이다. 이러한 미각의 세계가 이야기 안으로 들어왔을 때 생기는 장점을 처음으로 이해한 작가가 발자크라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발자크는 사실주의 작가인 동시에 현실 도피적인 몽상가이기도 했다. 그의 상상력은 식탁을 그려낼 때 가장 생생하게 발휘되었다. 음식을 기록하고 설명하고 상세하게 서술하다가 묘사하는 것이 지겨워지면 마술 같은 세상으로 펜을 옮기곤 했다.(98쪽)
발자크가 음식에 집착했던 것은 당대의 사회상을 짚기 위해서였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몇 시간이고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나 소설 속에서 요리사의 습관이 상세하게 묘사되는 것, 가장 좋은 음식 재료를 파는 상점의 주소까지 소설에 등장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발자크는 맛 자체를 묘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혀 위에서 녹아내리는 굴의 맛을 감상하고 싶다면 모파상을 읽어야 한다. 노란 크림으로 가득 찬 항아리를 꿈꾼다면 플로베르를 소고기 아스픽을 생각만 해도 온몸이 간지럽다면 프루스트를 읽어야한다. 하지만 굴의 맛보다는 굴을 주문하는 젊은이의 취향에 흥미를 느끼고 차갑고 달콤한 크림의 맛보다는 그 크림의 가격에 관심이 간다면, 입안에서 녹는 아스픽보다 아스픽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가게 형편에 관심이 간다면 발자크를 읽어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항상 돈에 집착했던 부르주아 작가인 발자크에게 음식은 중요한 주제였다. 음식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했고 음식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은 유통기한이 무척이나 짧았으며, 먹는 사람의 내면에서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탐욕과 한없이 관대한 마음이 모두 출몰했던 것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풍부한 비유가 발자크의 문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 역시 발자크에게 음식은 단순한 영양 섭취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발자크는 음식을 통한 비유를 인물들뿐만 아니라 풍경에도 적용했다고 한다. 그동안 발자크의 작품을 읽으면서 유독 음식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궁금했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 해답을 얻었다.
|
|
'발자크의 식탁'.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자크는 누구나 다 아는 프랑스의 대문호. 그런 발자크를 중심으로 한 먹거리 이야기라니! 그렇지 않아도 그의 소설을 읽으면 한 번은 꼭 나오기 마련인 음식과 관련된 묘사 때문에, 왜 그렇게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마다 꼭 누벼놓는지 아주 궁금했던 차였다. 이 책은 그런 나의 궁금증을 확실히 해소시켜 줄 책으로 보였기 때문에 내겐 놓칠 수 없는 아이템이랄 수 있었다. ![]() 책의 외관은 이러하다. 언뜻 달걀 프라이를 연상시킬만큼, 노란색과 하얀색만 쓴 표지부터 참 담백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외관이 이렇게 심플 하다고 해서, 내용까지 그렇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프랑스의 정식 만찬과도 같이, 그것도 코스가 거의 수 십개의 달할 정도로 풍성하니까. 발자크가 자신의 소설 속에 음식 이야기를 주구장창 했던 것엔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그는 폭식과 절식 사이를 쉼 없이 오고갔던 사람이었다. 책을 써서, 출판사에서 인세를 받으면 가장 먼저 먹는 것에 아낌없이 돈을 썼다. 그는 빈털터리가 되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직접 요리사를 섭외하여 최고의 재료를 주문해 요리해 먹는 것을 즐겼다. 그는 파리에서 아주 유명한 미식가였고, 그 한없이 높은 미각을 충족시키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식탐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밀한 의미에선 보상이라고 해야 했다. 왜냐하면 작품을 쓸 때는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글을 쓸 때, 두뇌의 에너지를 오로지 창작하는 것에만 쏟고 싶었고, 음식 소화를 위해 그 에너지를 할애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는 오로지 신체 유지와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만 먹었고 때로는 커피만 마시며 단식도 감행했다. 그렇게 발자크는 자기 절제에 능한 사람이었고, 창작 시에 수행한 금욕의 보상으로 책을 출판사에 넘긴 뒤엔 폭식을 했던 것이다. 거기다 그렇게 음식에 집착했던 데는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도 한 몫했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스스로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고 그 차가웠던 유년 시절의 보상으로 제대로 된 만찬을 즐기는 데 탐닉했다. 이렇게 발자크에게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과 창작 모두에게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그가 자신의 소설마다 음식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했으리라. 이렇게 앙카 멀스타인의 '발자크의 식탁'은 그동안 작가로만 만났던 발자크를 인간 발자크로 다시 보게 만든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썼는지 보다 쉽게 그리고 깊이 헤아리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이 책에서 얻는 것이 비단 발자크 개인의 진솔한 초상만은 아니다. 지금 프랑스는 요리의 천국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그런 프랑스의 요리 문화를 살펴보고 이해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프랑스가 지금처럼 요리의 천국으로 여겨진 것은 '레스토랑'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온갖 고급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무엇보다 프랑스에서 처음 생겨났기 때문에, 그 여파로 프랑스의 요리 위상마저 높은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레스토랑은 어떻게 생겨났던가? 앙카 멀스타인은 발자크의 삶과 연계하여 그 역시 친절하게 이 책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원래 프랑스의 식당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당신이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의 프랑스로 돌아가 식당에 가게 된다면 분명 크게 실망할 것이다. 앙카 멀스타인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그러니까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이다) 프랑스 식당은 여관을 같이 했다. 2층엔 여관, 1층엔 식당의 구조로 된 그 곳에서 주업은 어디까지나 여관으로 식당은 부업에 불과했다. 그랬기에 손님이 식당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돈을 줘도,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요리가 아니라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권리였다. 손님은 자신이 먹고 싶은 요리를 주문할 수 없었다. 오로지 주인이 무엇을 주든 닥치고 먹어야 했다. 거기다 그 때의 프랑스는 외국인에게 배타적이었다. 식탁 중앙엔 오로지 현지인 그것도 단골 손님만이 앉을 수 있었다. 외국인의 자리는 식탁의 가장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되면 가장 맛있는 것은 가져올 수 없다. 그래도 불만을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프랑스 식당은 우리가 지금 상상하고 있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레스토랑의 '레'자의 'ㄹ'조차 같지 않았다. 그러던 식당이 언제 어떻게 지금의 레스토랑처럼 될 수 있었을까? 바로 여기에 프랑스 대혁명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대혁명으로 귀족들이 자신의 요리사를 내버리고 외국으로 달아났던 것이다. 많은 유능한 요리사들이 갑자기 실업자가 되었다. 그 실업자인 요리사들을 눈여겨 본 존재들이 있었다. 이들은 전직 요리사로, 당시 손님들에게 지금의 햄버거처럼 그저 단순한 음식 하나만 내놓던 식당에서 몇 가지 음식을 곁들어 한 끼 제대로 대접하는 식당으로 탈바꿈했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다들 자신의 전문 분야만 알았기에, 늘 내어놓을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가 한정되어 있었다. 이들의 눈에 다양한 전문분야로 이뤄진 실업자 요리사들은 아무래도 군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시 이들을 흡수했고, 그들의 식당은 보다 다양한 음식들을 손님에게 대접할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레스토랑이 탄생하게 된 계기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우리가 잘 아는 레스토랑이 된 것이다. 하지만 대혁명은 한 가지 더 레스토랑이 각광받을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다. 바로 손님들이었다. 당시는 여기저기서 감시와 고발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교양 시민들이 어느 집에서 몇 명 모이는 것만 목격 되어도 혁명 본부로 투서가 날아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뜻이 맞는 이들과 같이 만찬을 즐기고 싶다면 오직 레스토랑 밖에는 없었다. 거기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개방적인 곳이라 비밀 회담이라는 의심을 안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도 이것을 알고 별도의 폐쇄된 방을 제공하는 것으로 즉각 대응했다.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의 별실은 바로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었다. 이렇게 음식도, 식당도 결코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니 프랑스 사회의 아주 현실적이면서 생생한 모습을 모조리 담겠다는 웅대한 계획을 세웠던 발자크에게 프랑스인의 생각과 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음식을 소설마다 넣는 것은 당연했다고 하겠다. '발자크의 식탁'은 이런 식으로 발자크와 당대의 프랑스 사회를 씨줄로, 음식을 날줄로 하여 발자크 개인만이 아니라 음식과 연관된 프랑스 사회의 역사와 정치 그리고 문화마저 풍성히 맛보게 하는 책이다. 발자크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었던 사람, 프랑스라는 나라를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싶었던 사람, 그리고 음식이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를 헤아리고 싶었던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는 책이 아닐까 한다. 꼭 접해 보시기를... |
|
19세기 프랑스인은 무엇을 어디에서 먹었을까? 이 책의 소개를 본 후 문득 궁금해졌다. 궁금증이 생기면 바로 풀어야하는 법. 자연스레 이 책《발자크의 식탁》을 읽어보았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소설가로 사실주의의 선구자이다. 그의 작품 세계와 그 안에 녹아들어 있는 그 당시 프랑스 식문화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며 짚어보는 시간을 보냈다. '발자크'와 '식탁'에 대해 모두 볼 수 있는 책이다. 상상 그 이상의 책, 기대 이상의 책이었다.
당신이 어디서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 언제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책 속에서)
이 책의 저자는 앙카 멀스타인. 파리에서 1935년에 태어났다. 빅토리아 여왕, 제임스 로스차일드, 탐험가 로베르 드 라살 등의 인물의 전기, 카트린 드 메디치, 마리 드 메디치, 안느 도트리시에 대한 연구 및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스튜어트를 함께 다룬 전기를 출간했다. 책을 좋아하거나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둘 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새디 스타인, <파리 리뷰> 에디터
저자는 미각의 세계가 이야기 안으로 들어왔을 때 생기는 장점을 처음으로 이해한 작가가 발자크라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동시대의 작가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음을 예를 들어 설명해준다. 음식에 집착하지만 맛 자체를 묘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굴의 맛보다는 굴을 주문하는 젊은이의 취향에 흥미를 느끼고, 차갑고 달콤한 크림의 맛보다는 그 크림의 가격에 관심이 간다면, 입안에서 녹는 아스픽보다 아스픽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가계 형편에 관심이 간다면 발자크를 읽어야 한다. (12쪽)
서문을 보다보면 음식을 통한 비유를 인물, 풍경 등에 적용한 발자크의 작품 세계가 궁금해진다. 음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고 있던 발자크가 미식가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집필에 몰두할 때면 몇 주 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원고를 끝냈을 때에는 엄청난 양의 와인과 굴, 각종 고기 요리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으로 자축하곤 했다니 독특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책을 통해 발자크의 생애와 취향, 작품 세계와 프랑스 식문화에 대해 함께 짚어본다. '파리의 식사 시간' 이야기에서 눈을 번쩍 뜰만큼 매혹적인 이야기로 시선을 고정했다. 프랑스의 현재가 아닌 과거 식문화에 대해 잘 모른다면 이 책이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지금은 '프랑스 요리' 하면 당연히 맛과 멋을 겸비한 여유로운 장면이 떠오르지만, 18세기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의 식생활은 그리 훌륭하지 못했고, 파리에는 제대로 된 부엌을 갖춘 아파트가 거의 없었다고 하니, 먹기 위해 프랑스를 여행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프랑스 식탁의 변화하는 모습을 굵직굵직하게 살펴본다.
진정한 고급스러움과 고상한 품위가 드러나는 식탁, 평범한 일상의 식탁, 구두쇠와 음식 숭배자, 사랑 등의 이야기를 이 책을 보며 하나씩 짚어보았다.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프랑스 음식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그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해본다.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그래서 오히려 신선한 자극이 된다. 게다가 발자크의 문학 세계 속에서 당시의 사회상을 짚어주니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발자크의 작품과 당대 프랑스 식문화가 잘 어우러져 있는 책이다. 발자크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 끌어올리고, 발자크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상도 살펴볼 수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발자크의 식탁
미각의 세계가 이야기 안으로 들어왔을 때 생기는 장점을 처음으로 이해한 작가가 발자크라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들과 달랐다. 빅토르 위고나 찰스 디킨스에게 음식, 정확히 말해 음식의결핍은 가난의 비참함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될 뿐이었다고 한다. 앤서니 트롤럽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레스토랑에 가는 법이 없었다. 트롤럽의 소설 속에서 남자들은 로스트비프를 최고의 요리로 취급하는 클럽에 다녔고 여자들은 집 안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이런 풍경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여자들은 집 안에 머물면서 가족들을 위해 집 안 일을 하였다. 요즘이야 여성들도 사회생활을 활발하게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 비율이 훨씬 낮았다. 19세기 파리는 유럽의 미식 수도였다고 한다. 계층을 막론하고 음식은 집착의 대상이었고 발자크는 이러한 현상을 한발 앞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역시 시대를 앞서 간 작가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항상 돈에 집착했던 부르조아 작가인 발자크에게 음식은 중요한 주제였던 것이다. 음식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했고 음식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은 유통기한이 무척이나 짧았으며 먹는 사람의 내면에서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탐욕과 한없이 관대한 마음이 모두 출몰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발자크가 이처럼 음식에 집착했던 것은 당대의 사회상을 짚기 위해서였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 한 가지 예로 발자크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몇 시간이고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나 소설 속에서 요리사의 습관이 상세하게 묘사되는 것이나 가장 좋은 음식 재료를 파는 상점의 주소까지 소설에 등장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를 통해서도 발자크가 얼마나 대단한 미식가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글도 잘 쓰고 음식에 대한 조예도 깊었던 발자크에게도 부러운 것이 있었을까. 발자크에게 음식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독특한 식사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뱃살이 유독 많은 발자크의 초상화를 보면 한결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발자크는 감옥을 집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이 집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당시 남은 음식을 놓고 옥신각신 다투던 간수들은 이 수감자가 음식에 후한 데다 무심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발자크를 정이 많은 사람으로 추억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투옥되는 것을 피하고자 발자크는 파리에서 7.5마일 떨어진 세브르로 이주해 병역의 의무에서 벗어나 버리기로 결심했다. 기차를 타면 세브로에서 파리 한복판에 있는 마들렌 교회까지 20분 만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파리에서 오래 머물러야 할 때면 파시에 있는 작은 집에 숨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마음씨 착한 여인 루이즈 드브뤼놀의 보살핌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서적상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혔고 아무리 조심해도 귀신같이 찾아오는 채무자들도 쫓아 보낼 줄 아는 훌륭하고 에너지 넘치는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성공하는 남자들 뒤에는 항상 훌륭한 여인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발자크에게 보모이자 요리사였던 것이다. 발자크와 한 식탁에서 식사하는 일은 없었지만 가끔 침대를 같이 썼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음식을 상상하고 꿈꾸는 것은 여성을 꿈꾸는 것처럼 궁핍을 버틸 힘을 준다. 여러 주에 걸쳐 금식하며 작품을 집필할 때 상상 속의 음식에서 위안을 얻었던 발자크는 이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음식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해서 실제로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듯이 발자크는 사랑에 대해 글을 썼지만 실제로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하니, 음식을 상상하는 것이 여성을 꿈꾸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 발자크의 말이 결코 틀릴 것 같지는 않다. 발자크가 미식가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집념이 강한지는 몰랐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 유독 음식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발자크의 식탁은 여러 가지로 내게 많은 생각을 심어주었다. 책의 내용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어서 독서하기에 아주 좋았다. 읽을 때는 쉽고 읽고 나서는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
|
<인간 희극> 이 말하는 프랑스 문화 [발자크의 식탁]
<골짜기의 백합>, <고리오 영감>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발자크를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분명 고전의 반열게 끼어 있을 텐데, 너무 유명한 나머지 그 이름자에 기가 눌려 감히 거들떠 볼 생각도 못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프랑스 제 2 제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방대한 가족 서사, 에밀 졸라의 <루공 - 마카르 총서> 에 영향을 준 것이 바로 발자크의 <인간 희극>이다. 발자크는 1842년에 자신이 발표한 소설과 앞으로 발표할 소설 전체에 <인간 희극>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작품 속 인물들이 교차되면서 다양한 인물 군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묘사해 냄으로써 자신의 소설들이 당시 프랑스 사회전체를 이해하는 수단이 되게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로서 작품 속의 세계는 그 깊이와 폭에서 더욱 현실감을 얻게 되었다. 발자크는 '호적부 보다 더 완전히 당대인의 생활을 기록할 것'이라는 작품 철학으로 연애와 풍류로 점철 되어 있던 당대 프랑스 소설에 충격을 주었으며, 낭만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도 있으나 전체적인 작품의 기조는 정밀한 관찰, 완전한 기록에 초점을 둔 사실적이며 자연적인 것이었다. (예스24, 작가 소개 중)
[발자크의 식탁]의 저자 앙카 멀스타인은 공쿠르 상의 전기 부문을 수상한 작가로, 이 책에서는 음식과 식탁의 예술이 발자크의 문학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박식하고 위트있게 설명하고 있다. 발자크의 작품을 하나라도 읽어본 뒤 이 책을 읽으면 좀 더 확연하고 뚜렷하게 그 분위기가 잡힐 것을, 하고 읽는 내내 몇 번이나 후회했다. 책의 곳곳에서 <인간 희극> 속 다양한 작품과 인물들이 즐겼던 음식과 식탁 문화 그리고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프랑스의 문화들이 튀어나온다. 발자크와 동시대 혹은 약간 후대의 작가들인 졸라, 플로베르, 빅토르 위고 등도 역시 그들의 작품에서 음식에 관한 기술을 했지만 발자크와는 다른 뉘앙스를 띈다. 자연주의, 사실주의 성향을 띈 발자크의 작품 약 90편의 소설이 <인간 희극>에 속하며 등장인물만 2000명이 넘는다. 프랑스 전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항상 집이 아닌 곳에서 식사한다. 발자크 소설의 백미는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스토랑이 프랑스에 처음으로 출현한 시기, 발자크는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쏟아내는 레스토랑을 찾아 거리를 누볐다. 19세기 파리는 유럽의 미식 수도였다. 계층을 막론하고 음식은 집착의 대상이었고 돈에 집착했던 부르주아 작가인 발자크에게 음식은 중요한 주제였다. 음식을 통해 짚어보는 당대의 사회상.
혀 위에서 녹아내리는 굴의 맛을 감상하고 싶다면 모파상을 읽어야 한다. 노란 크림으로 가득 찬 항아리를 꿈꾼다면 플로베르를, 소고기 아스픽을 생각만 해도 온몸이 간지럽다면 프루스트를 읽어야 한다. 하지만 굴의 맛보다는 굴을 주문하는 젊은이의 취향에 흥미를 느끼고, 차갑고 달콤한 크림의 맛보다는 그 크림의 가격에 관심이 간다면, 입안에서 녹는 아스픽보다 아스픽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가계 형편에 관심이 간다면 발자크를 읽어야 한다. -12
저자는 발자크의 생애를 중심으로 발자크가 음식과 <인간 희극>에 부여하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 파리의 식생활을 바꿔 놓은 가장 큰 사건인 프랑스 대혁명 전후의 레스토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식탁보와 은식기 등의 겉치레에 신경 쓰는 특별한 날들의 식탁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중산층의 일상적인 식탁도 들여다본다. 구두쇠와 음식 숭배자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 침대와 식탁의 관계를 말한다.
당신이 어디서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 언제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 -9
이 책을 읽으며 배가 불뚝 나온 발자크, 끝없는 식욕과 식탐으로 도무지 만족을 모르던 발자크를 알게 되었다. 채권자들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방문을 닫아걸고 하루 18시간씩 글을 썼고, 빨리 썼으며 방대한 저작을 남긴 발자크는 폭식과 절식 사이를 오갔다고 한다. 1850년 3월 맘에 품고 있던 미망인 한스카 부인과 결혼을 했지만 8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인생 자체도 평온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자전적인 이야기도 소설 속에 많이 녹여냈다고 하니 <인간 희극> 속 수많은 인물들에는 발자크의 자취가 어느 정도 스며들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미식가는 아니지만 [발자크의 식탁] 속에 펼쳐진 음식과 프랑스 문화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입이 향기로워지고 배가 불러오는 느낌이다.
한 번에 굴을 100개씩 시키는 게 기본이었다는 프랑스 문화며, 레스토랑의 기원과 발달에 관해 이보다 흥미진진하게 적은 글은 없을 것이다. 발자크의 작품과 함께 프랑스 문화에 깊이 탐닉하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리뷰는 예스 24에서 작성되었습니다.
|
|
제목만 보고 이런이런 내가 좋아한 <골짜기의 백합> 작가가 아닌가~!! 라며 집어들었던 책. 물론 발자크가 쓴 책은 아니다. 그저 발자크의 식탁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뭔가 발자크와 가까워 지는 기분?
그러고보니 그의 글을 읽은게 십여년이 넘은 거 같은데도 여전히 좋았던 기억이 많이 남아서 여전히 애정하는 작가긴 한데, 이래놓고 당최 왜 난 다시 그의 책을 안 집어 든 걸까?
근데, 문제는 <골짜기의 백합>이라는 책에 완전 감동 받고 좋아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것도 역시 내 기억력 탓이려나. 이 책을 읽은 이상 다시금 재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의 또다른 대표작 고리오영감도......
그래서 사실 이 책에서 언급한 발자크의 음식 묘사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흠, 기억이 희미해서... 거참 그의 글을 읽었는데도 그가 그리 묘사했던가? 막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아, 슬프도다.
그나저나 일단 발자크에 대해 알고 그의 식탁을 들여다 보자는 생각에 검색을 해 봤더니... 19세기.. 생각보다 그리 오래(?)전 사람은 아니었다는 거. 그 시대는 뭐랄까. 나폴레옹을 숭배하던 이들과 프랑스 역시 요동치던 시대? 그래서 뭔가 발자크를 내세웠지만 프랑스의 식탁과 문화등을 자세히 묘사하는 그런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면 되는 그런 거였다. 발자크에 대해 찾기보다 프랑스 19세기 시대상을 들여다 보는 한마디로 발자크는 상징적인 의미로 느끼면 되는 그런 것.
근데, 이 아저씨 하루에 커피를 40잔 마시고 배를 12개 먹었다는게 진심인가?
사진에 오동통해 보이긴 하지만서도..커피 40잔이면..허걱... 밤에 잠은 잘 주무셨을래나... 나도 요새 커피 광이 돼 가지만 카페인때문에라도 그건 안되겠더만... 막 긴가민가하는 기분이 든다.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된 이 시대 이야기는 알지 못했던 과거로 들어가는 기분이라 꽤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라면 어차피 다른나라의 역사도 재밌는 건 마찬가지. 특히나 이런 시대상과 식습관등등...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세밀히 재밌게 알 수 있게 하는건 또다른 매력이 아닐런지.....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를 엿보는(!) 맛도 꽤 재밌고 말이지. 우리는 그때 어떠했던가? 이러면서 같이 비교하는 느낌도 들었달까.
문제는 발자크를 전면으로 내세운 것 답게 그의 글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아,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런 세밀한 부분이 기억이 잘 안난다는 데 있다. 무작정 좋아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닌거. 그냥 그의 책 한권읽고 무조건 나 발자크 다 알아. 막 이런 허세를 떤 기분이 들어서 부끄러웠다. 그의 글 묘사력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게 없으면서 말이지.
이 참에 이 책 본 김에 다시금 발자크의 책을 꺼내들어 본다. <골짜기의 백합>이 다행히 색이 바랜채로 책꽂이에 꽂혀 있다는 걸 기뻐하면서.... 그리고 <고리오 영감> 역시 어딘가 사서 쟁여놓은곳에 숨어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면서..... 발자크와 19세기 프랑스의 문화를 함께 음미해 보고 느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
|
프랑스 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패션이고, 미슐랭 가이드란 책이 생각난다. 예술의 도시란 명성답게 전 세계의 패션의 현상의 중심지 중 하나이면서 역시 미식가들을 위한 별도의 별점을 통해 그곳의 맛난 음식을 경험하게 하고픈 욕구를 발산시키는 곳-
그렇다면 프랑스란 나라의 이러한 중심지로의 태동은 어떻게 발전이 되었을까? 그중에서도 '레스토랑'이란 이름이 누구나 쉽게 입에서 나올 정도의 보통의 명사로서 불리게 된 프랑스의 역사적인 발전상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 에 대한 재미난 에세이를 접했다.
그 중심엔 전혀 의외의 인물인 발자크가 있다. 발자크 하면 우선적으로 그와 떼려야야 뗄 수 없는 커피가 생각나고 그의 영원한 연인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의 문학의 원천적인 발산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커피 외에도 이 책은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 그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남긴 작품을 통해서 그가 부여한 음식의 세계와 책 속의 등장인물들 간의 연관 관계를 통해 음식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과 레스토랑의 변천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진을 보면 그는 조금 통통(?)한 듯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는 의외의 창작에 몰두할 때면 음식을 멀리한 절제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작품이 끝나고 나면 무섭게 먹어대는 식욕의 발산 욕구는 아마도 그동안 한 곳에 몰입했던 나머지 자신의 부족했던 점들을 보충하는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그가 그의 작품에서 드러낸 식탁에 오르내리는 음식들은 기존의 작가들의 작품에선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그가 음식에 집착했던 것은 어릴 적, 보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기숙사 생활을 했던 탓도 있었고 당대의 사회상을 짚기 위해서였단 구절만 봐도 그가 생각했던 이러한 발상은 그 후 여러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작품 속의 소품이자 비유, 그리고 음식과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의 전개가 어떤 형태로 발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창작들을 할 기회를 제공했다.
아시다시피 프랑스란 나라의 음식의 발전은 프랑스 대혁명이 가져다준 일대 변화의 기회를 가져왔다. 왕의 음식을 만들던 요리사들이 혁명의 회오리바람 속에 살기 위해 궁을 탈출하고 거리로 나가 자신들이 익힌 음식 솜씨를 가게를 열게 됨과 동시에 그동안 고위층의 음식이란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고 보통의 사람들도 맛볼 수 있는 유행의 시대를 타게 된 것이 지금의 프랑스 요리의 첫걸음이자 그 후 이러한 음식의 변천은 식재료의 변천사를 가져오게 된다.
책의 구성은 발자크의 어린 시절부터 엿볼 수 있는 음식에 관한 에피소드, 파리의 식사 시간의 변화를 가져온 사회상의 흐름, 여기엔 지금의 레스토랑이란 존재가 나타나게 되고 어떻게 프랑스 사람들에게 어떤 기능과 자리를 제공했는지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식사 예법이라 함은 당시만 해도 예절과 규범에 얽힌 귀족들만의 것, 일테면 특별한 날들의 식탁이라 이름을 붙인 제 3장을 보면 화려한 저녁식사와 연회가 주 무대로써 식탁의 천은 무엇을 깔고 장식을 어떻게 하는지, 이는 발자크가 '인간희극'이란 대 역작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계층과 야망들을 음식을 통해 들여다보는 계기를 엿볼 수가 있게 한다.
그렇다고 귀족들만의 식사만 그린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식탁을 보여줌으로써 일반적인 가정, 특히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탓에 교통의 미개발로 인한 도시 소식에 대한 둔감함, 어느 가정에서나 부릴 수 있었던 하인들의 존재가 부각이 되면서 식재료값을 줄이기 위해 애를 쓰는 주인과 이를 어기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가정에 진심으로 충실했던 하인들과의 신경전을 들여다보는 재미와 함께 레일 시장의 복잡하고도 생기 넘치는 묘사도 인상적이다.
발자크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음식과 인간관계는 인간이 어떤 것에 심취해 있었고 그런 과정 속에 하나로 음식이 주는 매료에 흠뻑 빠진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통해 구두쇠가 음식에 음식에 인색했던 장면들과 대사, 또는 지나치게 다른 인간관계에 등한시했던 점에 비해 유독 음식에만 집착했던 부류들을 통해 음식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해 가는 과정들이 재미를 선사한다.
발자크가 생각했던 연애의 이야기 속에는 침대와 식탁이란 제목을 통해 그가 주장했던 다른 작가들이 썼던 것과는 반대로 식탁과 침대의 쾌락은 서로 이루어질 수없다는 주장이 반영된 작품들을 통해 그가 써왔던 연애관을 다룬 부분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한다.
누구나 살기 위해 음식을 먹지만 발자크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들 속에서는 음식이란 것이 역사와 사회상의 신분 붕괴, 주인과 하인들 간의 대립, 사회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충족시켜주었던 '슈베'란 공간이 지녔던 특이한 상황들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한 나라의 역사와 함께 한 음식의 역사 변천사를 보는 책이기도 하다.
연이어 전개되는 '인간희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심리와 식탁에 오르내리는 음식들을 통해 역사, 문화, 사회,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심리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던 발자크의 식탁은 그야말로 음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나 한 나라의 한 시대의 여러 가지를 통틀어서 알길 원하는 사람들에겐 재미와 지식을 알게 해 주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
표지만을 보면 요리책이 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식기 도구가 등장한다. 그런데 식탁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나름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답니다. 다양한 식탁위에서늬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을 예시로 알려주는 제목에 느낌이 전달 되는 글귀들이 많이 자리한다. 발자크의 식탁이라는 것에서는 그의 유년 시절이 담겨 있는데 그는 호사를 누릴 수 없는 집안 이기에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먹게 된다. 바구니에 음식 다른 친구들보다 가난했기에 친구들에 놀림에도 그는 침묵을 지키는 것을 조금은 안타까워 보인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식사하는 것이면 다양한 그에 대해서 조금은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리고 다른 주제로 넘어 가다 보면 프랑스에 대해서 나오는 프랑스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 나기전에는 정말 형편없는 식사 풍경을 전달해준다 .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서 새로운 식사 풍경을 내민다. 그것은 프랑스혁명 인것이다. 우리가 프랑스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역사적 사건인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식탁위를 호화스럽게 꾸미게 된다. 사람들을 초대해서 자신을 과시하는 용도 로 말이다. 식탁이 그런 의미를 부여 할 수 잇다니 생각도 못한 부분이지만 새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됨녀서 파리에는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손님들이 시킬수 있는 음식에 가지수도 늘어나게 되는 게기를 마련한 시기가 된것이다. 이 처럼 다양한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것을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도 못하던 부분이기에 그냥 식탁이지 했는데 식탁을 중심으로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것은 새로운 경험을 전달해준다. 그리고 역사 안에서 식탁은 역사를 새로이 전개하는 전달에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 나름 촉진제를 주는 것 같다. 식탁이라고 생각 하기보다는 시대의 한페이지로 나타내고자 하는 기분을 만들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