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마라
여기 두 사람이 있다. 남자와 여자. 둘은 시간도, 그리고 공간도 공유한다. 속의 내밀한 이야기도 나눈다. 물론 성적으로 친밀한 행동도 나눈다. 그러면 두 사람은? 애인 또는 부부 물론 그렇게 단순하게 같이 있다고 해서, 성적인 행동도 한다 해서 애인이나 부부는 아닐 것인데, 그렇다면 대체 둘은 어떤 사이
그런 궁금증을 지니고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런데 두 남녀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정상이 아닌 듯도 하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그 사이를 짐작하게 하는 글이 있어, 소개한다. 여성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남자의 모습도 드러난다.
그러니 남자는 성불구, 여자는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두 사람은 어울려지낸다. 이쯤 하면 과연 남녀간의 사랑은 어떤 모습이 정상인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성관계가 반드시 남녀 사이에 필요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 둘은 성관계 없이도 잘(?) 지내고 있다.
남자의 입장도 들어보자.
여성으로부터 성적인 만족을 얻지 못하면서도 그는 삶이 즐거운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타마라, 그녀가 그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
여기서 그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 무엇 있을까, 살펴보니 이런 것들이다. 우선 양해해 둘 게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문장들 상당수가 19금이라는 것, 그래서 부득이 생략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 미리 공지한다.
타마라는 자기의 업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다음에 나의 요청에 따라 그 밤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또 어떤 때는 그런 사건들에서 만난 남자들의 모양, 취향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들려주기도 한다. 해서 이 책에는 그런 이야기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여기서 생략했던 부분이 무척 궁금할 독자들을 위해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이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저자가 말한 게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이 책에는 그런 『천일야화』에서 나올법한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지성인인 남자가 타마라의 행동과 말에 이어서 수많은 철학적 주제들, 사랑을 둘러싼 심오한 통찰들이 같이 등장해, 육체와 정신의 아름다운 변주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또한 이 책의 특징이다.
다시, 이 책은
이런 말이 두 남녀의 사이를 묘사하는 것이다.
타마라가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으로부터 받은 전화에 대고 자문을 해주는 과정에서 하는 말이다. 그게 실질적으로 저자가 독자들에게 이 책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을 읽고나면 누구나 사랑에 관하여, 남자는 여자에 대하여, 여자는 남자에 대하여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이 용솟음 칠 것이다. 이 책이 그런 사랑을 노래하고 있으므로. |
|
북유럽 소설을 잘 접할 기회가 없는데 얼마 전에 읽은 북유럽 소설은 그 나름의 맛이 있더라고요. 추운 지방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책이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는지라 이 책 역시 저자가 핀란드 사람이라는 이유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1972년 작품인데 핀란드 최초 에로티시즘 소설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11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하니 유명한 책인 것 같습니다. 우린 또 에로티시즘 좋아하거든요. 완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 근데 이 책은 에로티시즘 책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네요. 제가 음란마귀가 쓰인 건지 제 눈엔 그런 분야로는 평범한 소설책으로 느껴졌습니다. 1972년 작품이니 그 당시로는 파격적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소재가 좀 파격적이긴 하더라고요. 성적으로 불구인 남자가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자와의 사랑이 가능한 건지.. 그래서 소제목에 불가능한 사랑이라고 적어놓은 것 같습니다. 남자가 화자가 되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오는 타마라에 대하여 묘사하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묘사합니다. 사랑과 질투와 분노까지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여성 작가라 그런지 글이 섬세하고 심리묘사가 뛰어납니다. 읽는 내내 내가 주인공인 남자처럼 느껴져서 아무리 애써도 안 움직이는 몸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닿을 수 없고 그 여자가 다른 남자들 품에 안기는 모습을 상상하고 그 고통을 참으며 여자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맘이 너무나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내용을 담담하게 묘사해서 그게 더 슬펐습니다. 그래도 사랑한다니.. 어쩌겠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사랑의 형태가 정말 여러 가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 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기이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저 같음 이런 사랑은 못할 것 같습니다. 너무나 숨이 막히고 답답할 것 같습니다. 요즘 날이 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외출이라도 하려고 하면 숨이 컥컥 막힙니다. 이럴 때 추운 나라 핀란드에서 온 에로티시즘 소설 한 번 읽어보시면 어떨까 싶네요. 안타깝고 기이한 이들의 사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속으로 빠질 것 같습니다. 정말 새로운 이야기라 순식간에 읽으실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
성과 사랑은 언제나 두 가지 차원을 동시에 내포한다. 육체적 차원과 이야기 차원이다. 육체적 차원에서, 성은 몸의 만남, 즉 뼈와 살의 만남이다. 흠, 영혼의 교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동시에, 성은 시각과 촉각, 청각과 같은 감각의 상호교류이기에, 얼마든지 이야기 차원으로 번역할 수 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면, 눈으로 본 것을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몸으로 느낀 바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야한 이야기의 원조격인 『천일야화』의 여주인공 세헤라자드처럼 말이다. 물론, 성과 사랑의 경험을 이야기로 '번역'하는 과정이 세밀하다면 얼마나 상세하겠는가. 허나, 충분히 듣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마른침이 꼴깍 넘어가게끔 만들 수 있다. 다 인간의 타고난 상상력이란 도구 덕분이다. 핀란드의 대표작가 에바 킬피의 소설 『타마라』(들녁, 2016)는 심리주의 색채가 매우 강한 고백소설이자, 지식인의 관음증적 상상력이 폭발하는 에로티즘 소설이다.
남자 주인공은 대학교수인데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성적으로 불능이다. 성적 무능은 두 가지 경우를 곧잘 야기한다. 한 가지는 경찰이 따라붙게 되는 정신적 결함이다. 다른 하나는 성적 결함이 오히려 보상작용을 일으켜 나머지 온전한 기능들의 초과발달을 부르는 경우다. 남자의 경우는 아무래도 양쪽 다인 것 같다. 한편, 여자 주인공은 미모의 정신병원 심리치료사로 성에 개방적인 자유부인이다. 남녀 모두 지식인 출신이기에 에로티즘에 사로잡힌 먹물 특유의 문체가 돋보인다. 남자는 타마라와의 관계를 "서로 포개어진 두 개의 깔대기와도 같다"고 말한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타마라의 모든 것이 자기 안으로 흘러들게 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깔대기'란 표현을 썼다. 주인과 노예의 상호의존성을 이처럼 고상하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소설은 줄곧 남자의 시선에서 전개되기에, 남자의 속내를 읽을 수 있을 뿐, 타마라의 진짜 속내를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전형적인 에로티즘의 구성처럼, 일단 타마라는 남자 주인공을 비롯한 가부장적 시선을 사로잡는 관음적 대상이기 쉽다. 타마라는 현대판 세헤라자드가 되어 자신의 방탕한 성적 모험담을 들려준다. 성관계로 만난 남자들의 생김새, 취향, 개성 등도 안주감으로 삼아서 말이다.
남자 주인공은 기자처럼, 탐정처럼, 형사처럼 타마라의 남자관계를 심문하고 탐색하고 상상한다. 도대체 왜 남자 주인공이 타마라의 베드신을 훔쳐보거나 관찰하지 않는지 궁금해진다. 단지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시각보단 청각을 통한 교감이 더 자극적이고 도발적이기 때문일까. 아님, 자신만이 타마라의 영원한 사랑의 반쪽이라는 믿음을 굳이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남자가 타마라의 일방적인 '남자관계 보고서'를 일말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한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
|
핀란드 최초의 에로티시즘 소설로 알려져 있고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
"다리를 좀 주물러드려도 될까요?" 그때 그녀의 입에서 간청하듯 흘러나온 말이었다. 같은 해 봄,그녀는 심리언어학 공부를 중단하고 오늘의 직업으로 곧장 이끈 심리요법 실습과정에 등록했다. 그리고 조금 뒤, 인류 사회학과 집단 심리학 등 이론 연구에도 뛰얻즐었다. 그렇지만 학위를 딴 것도 아니고, 나의 잇단 간청에도 불구하고 내 집에 아예 들어와 둥지를 틀 생각일랑 결코 하지 않았다. (-34-)
순간 나는 '체크무늬 사나이'가 그동안 내 머릿속을 그토록 지배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랬으니 요 최근 타마라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 아닌가! 나는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속이 불편해졌다. (-81-)
방금 들어온 타마라가 내 널찍한 침대에 걸터앉아 옷을 벗기 시작할 때쯤, 나는 전혀 새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우리 두 사람만 거하던 집 안에 또 다른 여자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내밀한 관계에 미묘한 빛을 던져주는 듯했다. 둘이 같은 방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현듯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136-)
타마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르가슴 속에서만 존재해. 그 사람은 내게 더 이상 영속성의 느낌을 주지 않아. 그 사람 목소리에서 어떤 절망의 기운을 본 것 같거든. 아님, 그냥 환청이었을까? 나는 균형에 목말라하고 있어. 안정된 균형에 도달하고 싶다구.이제 거의 다 온 것 같긴 해. 다만, 딱 2퍼센트 모자라긴 한데 말이지...." 나는 이런 모든 존재론적 문제들이 왜 하필 그날 우리에게 엄습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로 말하자면, 신체적 장애와 한계가 지금껏 보다 열정적으로 사는 데 도움이 됐고 ,매 순간 나의 존재를 뇌리에 상기시키는 요인이었음을 수도 없이 곱 씹어온 몸이다. (-233-)
타마라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녀의 사고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 언젠가 그런 우울한 일에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다 궁금해했던 기억이 나" 언어심리학 연구의 관점에서 이런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될 만 했지만, 일단 지금의 상황도 상황이니 만큼 ,나는 나중에 조용히 따져보기 위해 수첩에 간단히 끼적여둔느 걸로 만족했다. (-302-)
"내 쪽에서 그 사람을 단념할 수 있었다면,결과적으로 내가 이기는 거였겠지. 그러고 보면 단념이란 강력한 무기인 것 같아. 모든 연인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그걸 사용하는 거야! 사랑 앞에서 자신을 무장하는 거지. 그는 바로 그 방법으로 내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 사랑으로부터 그가 기대했던 것이 그게 전부가 아니었을까?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절망에 빠트리는 것? 결국 그런게 바로 '불능'이라는 거지. 다만 그는 나와 하께 있을 때 육체적 차원에서 그걸 현실화할 수는 없었을 거야... 아 소름끼쳐!"(-381-)
소설가 에바 킬피 는 핀란드 출신 여류소설가이며, 페미니스트치기도 하다. 이 소설 <타마라> 에는 주인공 타마라와 대학교수 '나'가 등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우연치 않게 ,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연결되었고, 타마라의 독특한 성적 취향, 성적 도착증이 대학교수인 '나'에게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타마라는 서슴없이 자신의 경험을 주인공 '나'에게 말함으로서, 원하는 것을 취하려고 한다. 이 소설의 구도는 '영속성'과 '안정'에 있었다. 왜 타마라는, 반신불구인 대학교수'나'의 발에 성적 매력을 느끼면서, 그에게 다가가려고 하였는가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그리고 발을 쓰지 못하는 반신불구 '나'는 그런 것을 알면서도, 타마라를 놓지 못하고 잇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 꿈에선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반인듶은 얼마든지 가능한 발을 들러 올리는 것은 '나'에겐 힘든 , 최고난이도의 미션에 해당되었으며, 타마라가 떠나는 것, '나'를 단념하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숨어 있었다.
그래서, 타마라는' 주인공 '나'에게 자신의 성적인 경험을 얼마든지 뱉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에 대한 이야기, 그녀는 구스타 모리와 함께 했던 것 , 모든 것을 주인공 '나'에게 말함으로서, 원하는 것을 취하고 싶었다. 반신불구라는 것,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 타마라에게 결정적인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던 거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불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 대화 속에서, 여성의 심리가 깊이 반영되고 있었으며,대학교수'나'는 서로가 서로를 단념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우치게 된다.'영속성','안정' 이 두가지 개념에 대해서, 단순히 추상적인 단어가 아닌, 연인을 서로 이어줄 수 있는 매개체였으며, 그것이 서로 불안을 감추면서, 서로 단념하 수 없었다.남녀 간에 ,'불능' 과 '불구'에 대해서, 스스로 자각하게 되는 그 순간, 그것을 해소시키거나 제거하려는 인간의 심리가, '나'와'타마라'를 연결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1972년에 쓰여진 소설이 지금 현재에도 유효한 이유, '나'의 사고와 '타마라'의 사고는 우리에게 삶의 균형이 어떻게 반영되는이 깨닫게 해 주고 있었다. 이 소설을 남성이 읽을 때의 관점, 여성의 시선에서 읽을 때의 관점을 토론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
|
핀란드 소설 핀란드 최초의 에로티시즘 소설 핀란드 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주로 주로 성性과 애정생활에 관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페미니스트 작가
이 책을 읽게 만든 이 책의 <소개> 이다. 북유럽 소설이라니 너무 낯설다.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북유럽 작가가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북유럽이라. 북유럽 하면 추위, 청정 자연, 복지...?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런 미지의 세계에서 온 책. 게다가 상상하고 있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에로티시즘 소설이라니 안 읽어볼 수가 없었다.
[타마라] 불가능한 사랑
여주인공 이름이 타마라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인공의 여자이다.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성불구인 '내'가 '타마라'라는 여인을 만나서 남다른 애정관계를 이루어 나가는 이야기다. 에로티시즘이니 페미니스트 작가이니 해서 약간 긴장하고 읽었는데 사랑 이야기다. 대부분이 해봤을 '어려운 사랑' 이야기다. 쉬운 사랑이 있었던가. 아름다운 육체, 많은 부, 뛰어난 지식 등등 그 어느 것을 또는 그 모든 것을 가지고도 어려운 것이 사랑이었다. 그러니 주인공이 사고로 인해 하반신에 장애를 입고 성불구를 가졌다 한 들 '더 어려운 사랑'일뿐이다.
다만, 성적 장애가 있는 '나'와 '타마라'와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누군가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기이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독특한 설정, 불편할 수도 있는 그들만의 세계,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랑으로 채워지길 갈구하는 영혼들. 정신과 상담사(?)로 보이는 '타마라'는 망가지고 부서진 사람들과 관계를 하고 성불구인 '나'는 책에서 쓰인 단어에 성적 의미를 찾는 교수이다. 그런 두 사람이기에 서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제처럼 불가능한 사랑이지만 끝내 놓을 수 없는 사랑. 이게 내가 읽은 [타마라] 의 줄거리였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다. 1972년 이 책이 쓰였을 때 핀란드에서는 '타마라' 가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성적 주체자로 묘사되어 논란이 됐다고 한다. 당시의 핀란드의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인 것처럼 차별과 고정관념에 시달렸던 듯하다. 그래서 남녀관계에 있어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던 작가는 여성인 '타마라'를 관계의 주체자로 세움으로써 당시 남녀관계를 통념을 깨부수려 했던 듯하다. 언제든 관계를 끊어버리고 떠날 수 있는 '타마라'와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의 구도는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남녀관계의 모습이다. 마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의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작가에 대한 설명이 이 책을 읽게 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특히 요즘의 분위기는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등의 단어가 들어가면 여성 우월주의나 이기적이면서 무지하기만 한 여성상을 떠올리면서 읽어볼 만한 가치도 없는 그 무엇으로 치부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1972년과 2022년은 아주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다. 당시에는 [타마라]가 작가의 의도대로 정교하게 쓰여진 여성 해방을 위한 소설로 읽혀졌다면 지금의 [타마라]는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사랑 이야기의 하나로 변했다. '타마라'도 더 이상 타락한 여성이 아닌 당당하고 열정적인 여성으로 재탄생 했다.
그러니 사랑이 지나가버린 사람들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나 또한 한창 젊었을 때의 그 사랑이 지나가버린 후에 읽게 되어서 그런지 묘하게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는 서로 헤어져서 살 용기가 없을 거라는 점을 여러 차례 확인한 상태다. 만약 따로따로 혼자 살면, 우리는 둘 다 지금보다 형편 없이, 시들시들 살아갈 것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정말로 우리에게 근본적인 무언가가 부족한 건지, 똑같은 질문만 끊임없이 곱씹느라 몇 시간이고 일도 팽개친 채 멍하니 있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걸 가져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질 정도로, 지엽적인 행복에 혹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 page 28 중에서
책을 펼치면 목차나 작가의 말이나 서문 같은 것이 없다. 책을 펼치면 간단히 차례가 나오는데 1~30으로 구분만 되어 있다. 책의 시작과 끝에는 늘 이런저런 얘기가 실리기 마련인데 깔끔하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마음에 든다. 어쩐지 작가에 대한 소개가 좀 더 있었으면 싶었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소설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
** [타마라] 의 어느 책 소개를 보다 보면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적혀 있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자 목록을 찾아보니 없었다. 수상자가 아닌 후보자였나, 수상자인데 제대로 찾아보질 못했나 어찌 된 건지 궁금하다.
** 결은 다르지만 故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 가 생각났다. 사랑이란 이름을 붙여서 가능한 일은 어디까지일까.
** 이 책을 소개할 때 북유럽 소설로 묶어도 될까 싶다. 핀란드 소설로 소개하는 게 좋지 않을까. 북유럽도 각국의 색깔이 있을테니까.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
|
유럽은 문화에 있어 발전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개방적인 성향을 보인다. 특히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이고 일찍부터 여성의 사회진출과 함께 국가의 제도적인 부분도 발달했다고 본다. '타마라'가 그런 유럽 여성들을 대표할 순 없지만 소설 <타마라>는 파격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타마라와 연인 관계처럼 관계를 가지고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사이지만 보통의 연인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나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이고 타마라는 나외에도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타마라는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고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줌으로 나는 그 남자들과 자신을 동일시시키며 타마라와의 관계에 만족한다. 이렇게 보면 타마라와 나의 관계는 진정한 연인인지, 정상적인 관계인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나는 하반신 마비로 병원에 있지만 논문을 쓰는 지식인이었고 수년 동안 일과 섹스, 그리고 영속성의 3요소가 타마라로 하여금 충분한 만족감과 안정감을 주었다고 생각하며 이 의미들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있다. 나는 타마라에게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고 하며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는 타마라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만족하는 것 같았지만 타마라는 나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미르자라는 여자를 소개하기도 한다. 타마라가 미르자를 불러온 것을 알고 화를 내며 두 사람은 다투기도 한다. ![]() ![]()
<타마라>는 보통의 애정소설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타마라의 애정소설로도 보이지만 그 속엔 더 많은 의미를 가진다. 이 소설이 쓰여진 것은 1970년대라고 한다. 5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타마라는 현대적인 여성이다. 자신의 성과 애정생활에 자유롭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줄 아는 여성이다. 이 소설이 에로티시즘 소설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그것만 집중하기엔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깊이가 있으면서 오직 에로시티즘만 보기엔 어려운 소설이기도 하다. <타마라>를 읽고보면 결국엔 인간이 가진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사랑'의 결핍. 이것이 나와 타마라의 이야기에서 핵심이고 골격이었다. 나는 성불구가 되었지만 인간의 본능인 성욕을 채우기 위해 타마라의 사랑을 상상하고, 타마라 역시 영속적인 사랑을 찾고 있지만 매번 유부남들과의 일시적인 관계만 가진다. 타마라가 영속적인 사랑을 찾는 것은 아마 타마라에게 채워지지 않는 사랑 즉, 그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것이다. 나 역시 타라마에게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 관계를 가지라고 하지만 타마라는 괜찮은 남자들은 유부남이거나 관계를 가지지 않는 남자들이라고 한다. 타마라 역시 내면에서는 그런 사랑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
|
타마라의 자유 분방한 삶과 사랑 이야기
옷가지가 방안을 펄럭이며 날아다닌다.
타마라는 마음이 내키면 자신의 열정적인 데이트에 대해 이야기 한다.
타마라는 자유롭길 원하지만 외로운 건 못 참는 여자다. 타마라에게 살아갈 가치는 사랑이며,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는 남자를 갈망한다.
타마라와 수년을 함께 하면서 놀라움과 의미가 충만되었다. 타마라는 진정한 인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고 자신이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타마라는 사랑에 빠지면 모든 사람과 기쁨을 나누고 싶어하지만, 사랑이 떠나면 인간을 피하고 혐오한다.
집에 온 타마라에게 "순교의 역사"를 성애심리학 관점에서 연구하자고 제안하고 타마라는 응한다.
타마라에게 주인공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의 주인으로 영속성을 의미한다.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주인공은 타마라에게 연애를 자세하고, 상세하게 들려 주기 요청한다.
타마라와 애인들의 연애 이야기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면서 위안을 받는다.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타마라가 들려주는 다양한 남성들과 자유 분방한 연애사는 상세한 묘사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며,
타마라와 주인공이 오랜 기간 함께 하면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은 섬세하다.
자신이 추구하는 사랑을 얻지 못하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애쓰는 타마라와 그녀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는 주인공의 관계는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들녘과 컬처블룸 서평단 에서 "타마라"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타마라 #들녘 #에바킬피 #북유럽소설 #북유럽문학 #소설 #컬처블룸서평단 #컬처블룸 |
|
아무런 소개없이 "오늘 저녁, 타마라는 외출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문득 '나'의 정체가 궁금해질 거예요. 타마라의 외출을 묵묵히 지켜보는 사람,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재잘재잘 떠들어대던 타마라가 나간 뒤 조용해진 집 안에서 서류와 오려낸 신문 쪼가리를 꺼내고, 두 시간가량 일을 하고 있어요. '나'의 직업이 궁금한 거라면 바로 답할 수 있어요. 대학교수. 그러나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려면 한두 문장으로는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가 쉽게 짐직할 만한, 일반적인 유형은 아니라는 거예요. 중요한 건 이 소설의 알맹이가 '나'라는 화자를 통해 들려주는 타마라의 모든 것이라는 점이에요. '나'는 나와 타마라,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서로 포개어진 두 개의 깔대기' (20p) 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타마라의 모든 경험, 모든 남자관계에 관한 것들을 공유하는 남자, 그가 바로 '나'예요. '나'는 타마라에게 최종단계의 남자라고, 그녀가 일과 섹스를 끝내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의 주인이자 항상 손닿는 곳에 머물러서 어디로 달아나버릴 일이 없는 남자라고 여기고 있어요. 타마라 역시 '나'에게 "당신은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25p)라고 말했으니 서로 동의된 관계인 건 틀림이 없어요. 세상에 이런 관계가 존재한다는 게 다소 파격적이지만 어쩐지 '나'의 독백과도 같은 이 소설을 읽다보면 서서히 그들의 관계에 설득되는 느낌이 들어요. 문득 영화 제목이 떠오르네요. 헤어질 결심... 내일 개봉되는 따끈한 신작이라 내용은 잘 모르지만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가 사망자의 아내를 만난 후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이야기라고 하네요. 이 소설 역시 '나'는 타마라에게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어요.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가 아니고, 함께 살면서 타마라의 성적 경험을 공유하는 동거인이에요. 연인이라기엔 멀고 친구로 보기엔 훨씬 더 가까운 관계인 거죠. '나'는 남자로서의 성 역할을 할 순 없지만 성적 본능이 사라진 건 아니라서 타마라가 데이트를 나갈 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끼는데 애써 아닌 척 하고 있어요. 회피하다가 결국엔 타마라를 동일시함으로써 자기합리화에 이른 거예요. 둘은 서로 헤어져서 살 용기가 없다는 걸 여러 번 확인했어요. 만약 따로따로 혼자 산다면 둘다 지금보다 더 형편없이 시들시들 살아갈 거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각자의 결핍을 참아내면 함께 사는 거예요. 과연 '나'와 타마라의 인생에서 정말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섹스, 성적인 쾌락은 육체에 속하는 단면일 뿐...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그 답을 찾고 싶네요. 《타마라》 는 핀란드 최초의 에로티시즘 소설로 유명한 1972년 작품이에요. 주로 성性에 초점을 둔 이야기라서, 우리나라에는 이제서야 소개된 게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보네요. 저자 에바 킬피는 핀란드 태생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페미니스트라고 하네요. 욕망 앞에 인간은 평등하지 않을까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에로티시즘은 좋아할까 모르겠네요. 어찌됐든 이 소설은 터널 같은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나아가게 될 테니, 그래야만 끝이 보일 테니까요.
|
|
참으로 생각지 못한 난해한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게 된 느낌입니다. 어찌보면 영화의 소재로나 쓰일 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남녀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많이 느껴지지 않나 싶네요.
사랑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인 것 같았는데, 여자는 다른 남성들과 자유로운 연애를 하면서 그것을 남성에게 돌아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불구자인 남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타마라의 이야기는 저자가 왜 자신의 나라인 핀란드에서 이 책으로 논란이 되었는지 또한 잘 알겠더라고요.
서로 각기 다른 사랑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요. 한 명은 자기 나름대로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옆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을 말이죠. 이것이 정말 사랑일까를 생각하면 할말이 없습니다.
페미니스트인 저자가 쓴 책이라 그런지 여성의 입장에서 성의 주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사랑을 하는 남녀의 이야기만 놓고 볼 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네요. 이 책에 등장하는 두 남녀를 서로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고 볼 수 있는지 말이죠.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곧 욕망에 대한 이야기로도 직결됩니다. 서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는 이들은 서로에게 어쩌면 위안이 되기 보다는 상처만 주는 것은 아닌지 저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함께 하지 못함을 서로 알면서도 어딘지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시대적으로 보면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기존의 남성 위주의 사랑 이야기에서 이제는 여성을 당당히 성의 주체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남녀를 떠나서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주체가 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지만 글의 소재를 놓고 보았을 때는 다소 파격적이란 느낌은 지울 수가 없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