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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 보면
카이사르는 유언장을 작성하던 시점에서 적어도 자신이 그 후로도 12, 3년 정도는 더 통치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5권과 6권에서 다루고 있고 이 부분 역시 이 권에서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양자로 삼은 옥타비아누스를 그 동안 잘 훈련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 같다.
만약 카이사르의 계획대로,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지 않고 12년 정도 더 통치를 했고,
옥타비아누스가 그 그늘 밑에서 군대 경험도 착실히 쌓고, 명성도 얻을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사실 이런 가정들은 매우 흥미롭다.
어쨌든 카이사르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파르티아 원정을 앞두고 암살을 당했고, 옥타비아누스는 18살 6개월의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정치판에 들어서게 된다.
이때부터 키케로, 안토니우스 등의 숙적을 물리치고 또 여러 지난한 과정을 거쳐 황제로 등극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드라마틱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따라서 나는 황제가 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의 후반부보다는
황제가 되는 과정을 다룬 이 책의 전반부와 중반부가 훨씬 흥미진진했고,
그 중에서도 안토니우스와의 긴 동맹과 반목의 역사를 종지부 찍은 14장 <결전>과 15부 <긴 작별>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있는 것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약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결혼 여부)와 '알렉산드리아의 수여식'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해석이다.
이런 미묘한 해석의 차이들을 비교해가면서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다.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고 가정했을 때.)
물론 아우구스투스는 여러 가지 성격적 결함도 있었고 매우 병약했지만, 그저 시대를 잘 타고 나서 황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대 황제를 할 만한 성격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침착하고, 생각이 많으며, 일단 결단을 내리면 냉정할 정도로 추진력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과두정(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초대 황제라는 걸 감안했을 때 이 정도의 자질로도 충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영토 확장이 아니라 영토를 유지하는 게 목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점은 [삼국지]에서 오나라의 손권의 경우와 유사하다. 즉, 손책에게서 영토를 물려받은 손권이 '수성의 달인'이라 불릴 정도로 영토를 유지하는 데 탁월했던 것처럼, 카이사르에게서 제국을 물려받은 아우구스투스 역시 로마에 의한 평화(팍스 로마나)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완벽할 정도의 재능을 발휘한 카이사르와 비교하자면 부족한 면도 있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요구에 맞춰 시대를 이끌어 갈 역량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아우구스투스는 꽤나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TIP] 1. 아그리파에 대해 다소 저평가된 것 같은 점은 아쉽다. 사실 아우구스투스는 군사 경험이 일천했다. 그런 그가 황제가 되기까지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은 바로 아그리파이다.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된 이후에도 평생 그와 함께 하며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물론 아우구스투스도 나름의 업적이 있고 존경받을 만하지만, 그가 있게 해준 아그리파 역시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 것 같다. 2인자 없는 1인자는 있을 수 없으니깐.
2.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훨씬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위에서 거론한 차이 외에도 확연한 차이 중 하나는, 이 책에서는 성적인 부분을 거리낌 없이 다루고 있다는 거다. 그 당시 주고받았던 편지 등의 내용을 인용한다거나 하는 부분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거침없다. 동성애나 소년애 등도 그 당시 로마의 문화의 일부분으로 가감 없이 소개된다. 이런 건 문화의 차이라고 봐야 하나? 단지 작가들의 관점의 차이라고 봐야 하나?
어차피 다양한 사료들을 취합해서 취사선택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기는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인지 여성과 남성의 차이인지, 아니면 단순히 작가적 관점의 차이인지 몰라도 이런 차이들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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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누스의 등장, 등극은 진정 의외의 이벤트였다. 그는 입양을 통해 간신히 어디 명함이나 내놓을 출신의 틀을 마련했을 뿐이었고, 인물됨됨이란 로마의 대중과 귀족이 선호하던 남성미 가득한 호걸풍과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가녀린 이미지의 그저 세련된 도시풍 뺀질이 이상이 아니었다. 이미지야 어찌되었든 정계에 입신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혁혁한 관직 패찰 퍼레이드라든가, 세기말 빈번하던('세기'의 획정이 없었으니 '세기말'이란 개념 규정에 큰 어폐가 있겠지만) 만족의 외침으로부터 도시 공동체를 구원한 군공(軍功)의 축적도 없었다. 대체 뭘 믿고 세상에, 그것도 영웅 준재, 혹은 거부(巨富)가 판을 치는 로마의 정계 한복판에 등장했을까? 정적 안토니우스는 그를 가리켜, 사실로 판명될 경우 남성으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만큼의 치욕적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후세 역사가들이 증명했듯 이 모략은 아무 근거 없는 것이었음에 불구, 카이사르의 일급 부장(副將)이 그토록 기세 등등히 제기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그의 외모가 빚은 대중의 선입견과 기가 막힐 만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말로 made to stick, 입에 착착 달라 붙게 제조된 악선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어 있는' 어리석은 대중에게는, 치명적이다 싶게 잘도 파고들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패망한 건 비열한 중상모략의 응보 따위는 아니었다. 물론 강력한 라이벌을 떳떳지 못한 수단으로 제거하려 든 한심한 작태가 역사 속에서 그에 합당한 제재를 받은 사건 전개는 후세의 독자에게 윤리적 쾌감을 결과적으로 전달할 수는 있겠으나, 그의 파멸은 그저 순전한 정치적, 그리고 심지어 군사적 측면에서까지의 무능력 탓이었지, 근거 없는 악선전의 패덕 탓이야 물론 아니었다(어디 역사가 그리 낭만적 성격을 띨 수 있을까!). 다만 우리가 눈여겨 볼 점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일생을 두고 아끼며 키웠고 광범위한 권한 위임마저 마음 놓고 행했던 이 불세출의 야전 사령관이, 어째서 일개 '보이 토이' 앞에서 그런 전술적, 전략적 무능을 노출했는가 하는 점이다. 일생을 전장에서 보내고, 그 경험 대부분을 승리로 장식한 역전의 명장이 무능했다면, 그런 '상대적 무능'을 입증하게 한 '상대방'은 대체 어느 정도로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나 이 말이다. 이 곱상하고 해사한 외모의 '양자'는, 제가 받은 모욕과 부당한 대우를 몇 천 배 곱으로 이자를 쳐 되갚아 줄, 더도 덜도 아닌 딱 '이길 만큼의' 지혜와 술수를 머리 속에 딱 채우고 있던 불세출의 정치가였던 것이다. 인간은 제 영혼에 여러 가치를 저장하고 산다. 사람에 따라 그것은 예술 창조의 재능일 수도 있고, 타인을 박애하는 한없이 큰 그릇일 수도 있고, 초인적인 계산 능력일 수도 있고, 그저 착각과 망념이 빚은 어리석은 광기일 수도 있다. 이 중 어떤 것은 그저 시류만 잘 만나면, 종래 아무짝에 쓸모 없는 헛것으로 여겨진 것이 더없는 천재의 자질로 평가받는 수도 있다(예컨대 히틀러식 집념 폭발 따위). 균형 잡힌 세상에서는 재능과 열정의 포트폴리오 최적 비율이 비교적 변하지 않는 안정성을 유지한다면, 이른바 난세라고 불리는 소용돌이에서는 특별한 이상 자질이 대박의 급행통로 구실을 하기도 한다. '입양아' 옥타비아누스의 위대성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이 난세는 분명 공화정의 소중한 가치가 한몫에 무너지고, 거칠고 예측 불허의 오리엔트적 전제성이 거대한 시대의 파고로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국면 직전에 돌입할 무렵이었다. 실패한 양부 카이사르나, 그의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그저 자신의 재능에만 집착했던 '뷸균형적 천재' 안토니우스와는 달리, 옥타비아누스는 냉철한 계산과 형량으로 필요 최소한의 수(手)만 스테이지마다 밟아 나갔다. 난세에 임해 난세적 자질로 일순간의 횡재를 노리지 않고, 보수와 혁신의 상반 파고를 그 주파수 최적으로 고루 배합, 정치 공학적 서핑을 즐길 줄 알았던 캘큘레이터를 당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 더 뛰어난 영웅은 그 이전에도, 그의 동시대에도, 그 이후에도 존재했지만, 그처럼 모든 것을 달성하고, 모든 것을 바꿔 놓고, 그 모든 것을 지킨 후에도 고스란히 자신의 위대성을 유지한 채 이카로스적 파멸을 면한 자는 없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로 죽었고, 이천 년이 지나도록 그리스도도 누리지 못한 '손상 없는 존엄'을 유지한 채 오늘도 살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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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와 AD로 구분되는 연도를 사용하는 것은 숨을 쉬듯 당연한 듯이 느껴지고 이에 별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습니다. 예전 "어린 예수"를 읽었을 때, 그 배경이 되는 시대상황을 약간 접할 수는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 당시에 세계의 중심이었다고 할 로마의 모습을 보고 그 사회를 운영한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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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이라는 소극(笑劇)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충분히 잘한 걸까?” - Augustus
책을 여는 첫 말이자 ‘옮긴이의 말’을 통해 마무리되는 이 말이 여운을 남긴다. 그가 인생을 정말로 소극(笑劇)이라 생각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77세까지 광활한 제국을 통치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풍파들이 그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인생을 소극이라 비유한 점도 그렇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했는지를 되돌아보는 뒷말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현재의 나는 회사의 팀장으로서,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이러한 생각들을 종종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보다는 후회스러운 일들이 더 많은데, 과연 난 내 인생 최후의 순간에 내가 맡아온 역할에 대해 무엇이라 평가할 수 있을까.
로마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인생을 돌아보는 물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우구스투스>(다른 세상, 2008년)는 아우구스투스의 전기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종종 작가의 상상과 자료의 조합에 의해 살이 붙여지고 있는 부분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최대한 사실적인 부분에 접근하고자 노력했고, 자료가 부족했던 부분들은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방대한 분량으로 쓰인 만큼 모든 면에서 뛰어나리라 생각했던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은 실제로 그렇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역사에서의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약 종조부인 카이사르가 나이가 어린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면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없었을 것이다. 나이가 어렸기에 전투경험도 없이 실전에 참가하여 전장에서 특별한 공을 세우지 못하고, 꽁무니를 내빼기에 바빴던 그를 보면서 이렇게 병약한 그가 어떻게 황제의 칭호를 얻게 되는지 의심부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역사가, 정치가 어디 능력 있는 자에게만 특혜를 베풀었던 적이 있었는가. 옥타비아누스는 그 와중에도 충실히 경험을 쌓고, 계획성 있게 판단을 하여 조금씩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쌓고, 로마 시민의 신뢰를 얻어갔다. 그리고 제국의 통일을 달성한 뒤에는 그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속국들을 관리하고, 로마 시민을 위한 공공의 정책들을 펼쳐 나갔다. 결국 그는 이러한 노력들로 인해 로마 최초의 황제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리라.
<아우구스투스>를 읽으며 당시의 시대상을 아주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소설처럼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그의 일대기와 로마제국 초기의 현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역사상 가장 긴 번영을 누렸던 로마의 역사는 항상 알고 싶은 미지의 세계였다. 이번에 아우구스투스의 전기를 읽으며 로마사의 첫 단추를 아주 쉽게 풀 수 있었다. 또한 광대한 제국을 이끌었던 통치자로서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한 성과는 ‘나는 내 인생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우구스투스는 뛰어난 장점들이 많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로마 최초의 황제가 되었고, 50년 가까운 세월을 통치하며 로마제국의 기초를 닦았다. 그가 황제의 지위를 획득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는 어려운 고비들을 때론 신중하게, 때론 저돌적으로, 때론 선하게, 때론 악하게 행동하며 풀어나갔다. 지금의 나는 모든 일들을 다 잘하려는 마음 때문에 무언가를 후회하거나 놓치곤 한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중요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도 존재할 것이다. 좀 더 긴 안목으로 인생이라는 소극에서 맡은 역할들에 충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아우구스투스를 통해 정말 소중한 것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대왕이 제국을 정복하는 것보다 제국을 정복한 뒤 질서 있게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는 게 놀랍군.” (507쪽)
“그는 ‘권력은 합의 없이 지탱될 수 없고, 합의는 급진적인 정치적 변화와 전통적․도덕적 이념을 결합시킴으로써 가장 폭넓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507쪽)
by 꽃다지, 2008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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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로마사 관련 책은 단연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일 것이다. 나 역시 그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로마사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로마사를 읽으면서 가장 존경하는, 사랑하는 인물로 꼽는 것은 단연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다. 그의 번뜩이는 재치와 창조적인 정치력, 천부적인 카리스마가 어우려져 만들어낸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삶은 언제나 나에게 뜨거운 열정을 보여준다.
카이사르 다음으로 꼽는 인물이 바로 아우구스투스이다. 아우구스투스에게는 카이사르와 같은 번뜩이는 재치도 창조적인 정치력도 천부적인 카리스마도 없었다. 대신 그에게는 끈기와 노력, 그리고 냉철함이 있었다. 그는 일반적인 귀족 계급이 타고 가는 출세 루트를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 하고 18세의 어린 나이에 '카이사르의 후계자'로써 덜컥 로마의 정치판으로 밀어보내졌다. 자칫하면 시기와 질투에 그대로 매장되어버릴 위험한 곳으로 말이다. 그는 많은 실력자와의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조심스럽게 권력을 획득해 나갔고 마침내 최고의 실권자로 등극했다. 최고의 실권자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원로원에 돌려주고 공화정으로 복귀한다고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로마 제정을 시작하는 모순을 빚어냈다. 그리고 로마의 제정이 갖는 모순을 적절히 이용하며 권력과 권위를 집중시켰고 결과적으로 그는 최초의 로마 황제가 되었다.
내가 처음 로마사를 접했을 때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로마제정의 시스템이다. 동양인인 나에게 익숙한 제정은 황제의 머리 위의 빛나는 관으로 상징되는 전제왕국이다. 그런 제정의 이미지를 버리고 로마 제정을 바라보면 참 재미있다. 국가 권력이 잘개 쪼개져 분산되어 있고 많은 견제책이 얽혀져 있으나 결국은 황제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정치체제라니... 이런 정치체제를 고안하고 실천에 옮긴 아우구스투스의 조심성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건, 첫 번째로는, 아우구스투스의 황제로의 업적뿐만 아니라 그의 성장과정, 권력 획득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였다는 점이다. 보통 아우구스투스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 그가 황제가 되어서 했던 업적에 초점이 맞춰져 정작 '인간 아우구스투스'에 대해서는 접하기 어렵다. 저자는 그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전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날카롭게 묘사해놓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시절의 철없는 실수와 분노, 슬픔, 무자비함, 잔인함, 그리고 내면의 유약함. 아우구스투스는 고민 많은, 생각이 많은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두 번째로는, 로마세계에 대한 배경설명이 자세하다는 점이다. 아우구스투스가 살았던 시대는 로마사 전체를 조명해도 가장 빠르게, 급박하게 변화하는 시기 중에 하나로 꼽아도 좋을만큼 격동의 시대이다. 이 책은 장편 시리즈인 로마인 이야기와 달리 한 권의 아우구스투스의 전기이기에 로마사에 대해서 배경지식이 없으면 읽기 힘들지 않을까하고 걱정했던 처음의 생각과 달리 로마세계에 대한 배경설명이 꼼꼼하게 되어있어서 좋았다. 로마인이야기처럼 그림이나 도식, 표로 나타내거나 길게 설명하는 것은 지면 관계상 힘들지만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었다.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지닌 2000년 전의 로마시대의 사람의 뒤를 쫓는 것이기에 그 당시 로마세계의 사고방식, 생활방식 등을 이해하지 못 하면 그 시대 사람인 아우구스투스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합격점이라고 해도 좋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우구스투스의 가장 뛰어난 조력자였던 아그리파에 대한 평가가 다소 낮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마이케나스와 함께 10대 청년시절부터 물심양면으로 아우구스투스의 조력자였던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에게 모자란 군사적 재능을 채워주는 인물이었으며, 그의 혈통을 이어 주기 위해 그 딸과 결혼을 해서 가족이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아그리파가 없었다면 아우구스투스는 황제가 되지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그리파에 대한 평가가 다소 차갑게 되어 있어 아쉽다.
출판사에 궁금한 점이 있는데 왜 책 표지를 판테온의 내부 사진으로 했는까이다. 판테온과 아우구스투스의 관계를 굳이 찾으라면 못 찾을 것도 없지만, 판테온은 아그리파가 세우고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재건한 로마의 만신전인데 말이다. 사후 아우구스투스도 신격화되었으니 만신전에 모셔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인가?
아우구스투스는 위선자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황제가 되면서 그는 스스로 위선자가 되었다. 공화정을 가장한 제정을 고안해내면서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위선자가 되었다. 때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러나 카이사르의 의지를 가슴에 품은, '존엄한 자'로써 위선자가 되었다.
이번 여름에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갔을 때 아우구스투스의 청동상을 보고 소소한 기쁨을 느꼈던 적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외모를 묘사하거나 이성 관계 등의 사생활을 묘사할 때 자꾸만 그 호감형이었던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이 보여주는 권위와 신성함에 경건한 신적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그의 사생활, 특히 이성관계를 묘사할 때에는 무척 흥미롭다. 카이사르의 문란한 사생활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아우구스투스까지? 내 안의 이미지와 달라서 더욱 재미있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로마제국의 위대함을 더욱 느낄 수 있다. 어디에 가나 로마의 흔적이 남아있다. 도시와 길, 유적지, 박물관 어디에도 로마의 이름이 남아있다. 게다가 우리는 어쩌면 매년 8월을 August라고 부르면서 은연중에 그를 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위대한 로마제국을 창건한 아우구스투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것 같아 뿌듯하다. 이 책을 읽기전에 읽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전기와 함께 내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든든해지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위대한 사람의 전기를 읽으면 항상 느끼는 공통된 궁금증이 있다. 기원 전후를 넘나들며 격동의 로마를 재건하고 드넓은 로마세계에서 단 한명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권력과 권위를 손에 쥐었으며 77세까지 장수를 누린 아우구스투스는 행복했을까? 그가 행복을 느꼈다면 그것은 유년시절? 청년시절? 아니면 황제가 되고 나서? 업적과 위대함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선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그가 인생에서 행복함을 느끼며 살았던 인물이기를 바라기에 이 전기를 읽으며 그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다.
이 전기를 다 읽고나서 아우구스투스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을 고민해봤지만, 역시 그에게는 스스로 했던 이 말이 가장 어울린다.
"내가 발견한 로마는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내가 그대들에게 남겨주는 로마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가 덧붙여 말했던
"나는 인생이라는 소극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충분히 잘한 걸까?"
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그에게 이제 쉬어도 괜찮다고 진심으로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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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를 공부하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만나게 됩니다. 알다시피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화가 아시아 문화를 만나서 융합된 문화입니다. 헤브라이즘은 유대인들의 유일신 사상이 전 유럽에 카톨릭이란 이름으로 퍼진 문화를 일컫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양사는 그리스의 다신교(인본) 사상과 유일신 사상을 거쳐 르네상스(복고)를 거쳐 근대, 그리고 현대에 이릅니다. 이렇게 문화적, 철학사상적으로 서양을 바라보면 그닥 <로마>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몇 줄, 스토아 학파,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정도입니다. 그 외에는 전부 <로마군단>으로 일컫는 군사적인 위대함을 논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로마는 별 볼 일 없는 걸까요?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지요. 로마를 모르고서 서양을 논할 수 없습니다. 조그만 <로마>에서 시작해서 이탈리아 전역을 넘어 지중해를 장악하고서 <팍스 로마나(로마의 의한 평화)>를 건설한 뒤,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되고도 <비잔틴 제국>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는 1000년에 걸친 대하드라마는 <웅장함>, 그 자체입니다. 감히 말하자면 <로마>가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이런 로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이 있는데, 바로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지요. 한 명은 <공화정 로마>가 처한 위기를 <제정 로마>로 재건하려 하였고, 다른 한 명은 <제정 로마>를 완성하여 위기의 로마를 건져낸 영웅이었습니다. 사실 누가 더 위대한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지요. 토대를 닦은 사람이 위대합니까? 그 토대 위에 잘 건설한 사람이 위대합니까? 둘 중 어느 하나가 잘못된 경우에 무너지기는 마찬가진데요.
그러나 축구의 예를 들자면, <어시스트>를 아무리 잘해도 <골>로 만들어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말짱 꽝인 점에서 저자는 어시스트를 한 <카이사르>보다 골을 넣은 <아우구스투스>에게 관심을 더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사실 이 책은 설명이 필요없는 책입니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길게도 썼는데도 손에 잡자마자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거든요. 책이 좀 두껍긴 하지만 문체가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아서 잘 읽히고, 역사에 문외한이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구석이 없을 정도로 잘 풀어썼기 때문에 그냥 <장편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는 책입니다. 마치 <옥타비아누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소설을 읽는 기분입니다.
이 점은 <역사서>로써 적당하지 않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대사> 영역은 참고자료나 문헌이 빈약하거나 왜곡된 것이 많기 때문에 저자나 역사가의 <주관적 개입>이 불가피 합니다. 그래서 객관적이어야 할 <역사적 사실>이 왕왕 <윤색>되기 십상이죠. 이 책도 이런 단점을 벗어날 순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이 순전히 뻥을 친다거나 저자의 상상물로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즉, <관점>을 조금 달리볼 수도 있다는 정도란 말이지요. 이런 정도만 감안하고 책을 접하신다면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독서가 될 것입니다.
딱딱하고 어려운 <역사서>에 실망하셨다가 다시 도전하는 분에게 권하면 딱일 것 같네요. 물론 역사에 흥미를 느끼신 초보자에게도 무난한 책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에겐 새로운 <시각>을, 처음 접하시는 분에겐 <흥미>를 만끽할 수 있는 책입니다.
책의 내용 좀 소개해 달라고요? 전 스포일러가 되고 싶진 않아요^-^ 쉽고 재미있는 책일수록 더더욱...카이사르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아우구스투스의 일대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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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위대한 업적들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실로 로마사에 길히 남을
위대한 인물입니다...
로마사에 이 인물이 없었다고 가정을 하면..
과연 로마는 그렇게 화려하게 문명의 꽃을 피울수 있었을까
하나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 책은 아우구스투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철저한 고증과 함께...고증할수 없는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의 상상력을 빌려서...멋지게..생각해 볼수 있는 여운을 주는 책입니다...ㅎㅎ
공화정...로마인에게는 이 정치체계가...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않는 체계였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있는 듯 없는 듯...천천히 거북이 걸음으로...
일반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그렇게..공화정을 군주정으로
옮기게 되는데..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어느덧 일인독재...카이사르가 그렇게 원했던 정치체계....
그의 후계자...아우구스투스...드디어 완성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비대해진 로마를 다스리는데에는
군주정이라는 정치체계밖에 없었으니...
이 인물이 없었다면...광대한 로마를 다스릴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저자 앤서니 에버렛....
로마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이 책 또한 정말 재미있게 볼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우구스투스를 더더욱 세밀하게 알고 싶다면... 카이사르도...아우구스투스가 없었다면 그렇게
위해한 인물이 되지를 못했을겁니다..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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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같은 3일 연휴를 마치고 유난히 바쁜 한 주를 아우구스투와 함께 보냈다.
일주일간 매일 밤 두 시간씩 그의 생애를 함께 걸었다.
참고문헌 소개를 제외하고 513 페이지, 보통 읽는 책의 딱 두배 두께이지만, 손에 딱 잡히는 느낌이나 책장 넘어가는 느낌이 부드럽고, 보기보다 가벼운 편이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부드럽게 잡히고 넘어가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첫인상은 좋았다.
표지는 로마시대 건축물 벽면 바탕에 '아우구스투스'라는 커다란 글자가 허리에 때처럼 써 있고, 띠지에 "내가 발견한 로마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지만, 내가 남기는 로마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을 것이오." 라고 쓰인 말이 제법 무게 있어 보인다.
지하철에서 네 살 딸아이가 잠든 틈을 이용해 이 책을 펼치고 열심히 읽고 있을 때는 퇴근길 직장인들의 시선을 아주 많이 받았다.
그만큼 뽀대가 나는 책이었다. 흠흠..
번역도 대체로 편안한 편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인생을 연대기별로 26 챕터로 각 20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쉽게 쓴 편이라 인물 중심 소설을 읽듯 술술 읽을 수 있다.
다만 그 시대 특성상 비슷하고 같은 이름이 너무나 많고 입양기 보편화 되어 있었고, 재혼을 장려하던 때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가계도를 놓치지 않고 잘 꿰고 따라가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읽다 지루해 질만 하면 인물들이 주고 받았던 편지나 대화를 그대로 옮겼다는 당시 성문화 내지는 인물들의 성적 편력을 표현한 아주 저속하기도 하고 솔직하기도 한 내용이 가끔 나오는데, 역사 속 큰 인물들이 나눈 대화라기에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라 의외의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읽는 내내 작가의 노력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 많은 전쟁과 전투들에 동원된 병사의 규모, 함대 수, 이동 경로, 당시 병사들의 월급이며, 퇴직금 규모까지 수치화된 이 엄청난 사료들을 다 어떻게 찾고 모으고 정리하고 적소에 나열하였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로마의 모습, 풍속에 대한 묘사도 세심한 편이라, 역사적 사실을 아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다만 사료에 근거한 객관적인 접근에 중점을 두다 보니, 한 가지 사안에 대해 해석 관점이 다른 여러 역사가의 관점도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다고 펼쳐두는 편이라 극적일 수도 있는 내용이나 시점에서도 밋밋하게 넘어가게 되어서 읽는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작가의 의도가 문체나 서술 방식등 다른 데서 재미를 얻기 보다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집중하길 바래 일부러 그랬는지도 알 수 없지만, 나처럼 초심자들은 깊이있는 역사서 보다는 영화나 소설에서 로마사를 처음 대했을 경우가 많을 터라 상대적으로 좀 지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로마사 입문서로도 좋은 소스이고, 아우구스투스의 일생을 꽤 세세히 둘러 볼 수 있는 소스로서도 좋다는 생각이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로마 하면 누구나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떠올린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그려지기는 영화나 소설에서 클레오파트라를 가운데 두고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가 주연인 경우가 많고 옥타비아누스는 동시대 인물로 상대적으로 큰 색깔없는 조연이었기에 '어떻게 저 사람이 카이사르 이후 제정 로마를 건설했을까?'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의 일대기를 읽어 보고, 그는 아주 매력적이고 배울점이 많은 인물이었기에 현대에 와서도 꼼꼼히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는데 동의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누구보다 먼저 깨닫고 인정하고 그걸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리하고 노력했기에 자기계발 분야의 모델이 될 만하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황제가 된 이후에도 중요한 때마다 병약한 신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항상 식사와 생활 건강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애썼다.
건강문제 뿐만 아니라, 태생적 신분상의 약점 - 카이사르라는 이름에 빗진 자- 을 극복하고 정계에 굳건한 힘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자녀들의 결혼과 재혼에 관여하고 수차례 입양하며 노력한다.
또한 자신이 갖지 못한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유능함이나 카리스마를 보다 뛰어난 사람에게 일임하고 그를 인정하고 크게 보상하며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자리를 넘보아서는 안된다'는 절대 원칙은 확실하게 지킨다.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그는 제국을 유지하고 키워나가는 것은 혼자 할 수 없음을 일찍 깨닫게 되어, 원로원이나 삼두체제의 다른 축이자, 결코 좋아하지 않았던 안토니우스와도 끊임없이 협력 공조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이런 노력이 결국 실질적 독재이나 시스템상 분립이 갖춰진 탄탄한 국가의 모습으로 현대 국가의 모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는 정말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중요한 결정 사항에 대해 9년씩 심사숙고 하기도 하고, 왠만해선 성급히 결정하는 법이 없었던 듯하다.
책에선 그를 달팽이 걸음으로 나아가는 개혁가 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달팽이 걸음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튼튼한 국가를 이루는 데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후세는 인정하고 있다.
이런 냉철한 판단력, 솔직한 자기인식, 깊은 사고, 신중한 행동, 높은 도덕적 신념, 사명감 이런 바탕을 가지고 그는 카이사르가 연 새로운 로마를 잘 정비되고 기틀이 갖춰진 제국으로 잘 꾸려놓았던 것이다.
비록 개인적, 가족사적인 불운들도 있었으나, 그 한 사람 인생을 놓고 볼 때, 인정하고 칭송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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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헌법의 정부구성은 대통령, 상원, 하원 세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구성은 고대 로마공화정의 구성요소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 로마 공화국의 최대치의 모습을 꿈꾼이가 바로 아우구스투스였다. 그것을 실현시킨 그의 원칙은 정말 단순했다. '가장 오래가는 제국 만들기'. 이에 필요한 인격적 조건에는 약간의 눈치와 야비함. 그게 거의 다였고 그리고 약간 애매한 하나, 난 이것을 맹목성이라 부르겠다. 여기서의 맹목성은 무대뽀랑 다르다. 맹목성은 자기완성적인 특성이 있고 모대뽀는 자기몰아적인 특성을 가진다. 그는 그 뭔가를 알고있었다. 순 골치덩이인 공화정체와 원로원을 끝까지 안고 간 것은 단지 그에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세인들 눈치를 잘 살피던 그에겐 특히 말이다.
고대 로마의 공화정은 통령(컨슬), 원로원(세나투스), 민회(코뮤티아)로 구성되는 혼합정체로 통령은 군주적 요소, 원로원은 귀족적 요소, 민회는 민주적 요소를 각각 대표하는 것이다. (박홍규의 『누가 아렌트와..,』)
아우구스투스는 권력의 최정점에서 스스로를 제1시민(프린켑스)이라 칭하며, 한낱 행정관 격인 집정관이란 직함으로 유명유실한 공화국을 끝없이 진화시켜갔다. 그는 시민과 속주민들에게, 그리고 대립관계인 원로원들에게조차 두려움과 동시에 고마움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1500년 뒤에 나타난 마키아벨리즘의 가히 사적 전범이라 할만한데, 로마시민권을 얻기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로마에 안가도 로마법을 따르게끔 로마식 생활방식이 주변국들로 퍼져나갔다. 무엇보다도 근대도시가 갖춰야할 기본 틀을 당시에 세웠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창조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개같이는 벌지만 정작 정승같이 쓰는 이는 보기힘들다. 아우구스투스는 정말 개같이 권력을 좇았고 정승같이 지배했다. 어떤 개같음이냐가 문제인데, 저자가 도출한 바로는 폭군이나 전제군주의 살벌함 따위가 아닌 비릿하게도 교활함과 치졸함의 진수만을 드러내고있다.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된 양부 카이사르의 자리를 되찾는다는 명분을 뒷배삼아 그는 배신과 술수를 밥먹듯 일삼는데, 중요한 전투 때마다 딱 맞춰 앓아눕는 신경쇠약성 체질에다가, 반대파들을 현상금을 내걸어 인간살육을 벌이던 비열한이었고, 필요하다면 양아들마저도 제거하는 잔악함까지 보였다. 그런 인물이 어이없게도 친누나를 끔직이도 사랑해 평생을 극진히 보살폈으며 아이를 갖지못한 아내와 50년을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영위한 인물이기도 했다. 어떤 일관성이 없이 여기저기 얼룩진 그의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런 동의와 이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그의 삶 한 켠에는 가면과 연극이란 단어가 줄곧 따라다닌다. 시커먼 간악함과 자애로운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녔던 인물이 자신의 생을 한편의 소극으로 바라봤던 것은 어쩜 그가 내릴 수있었던 유일한 결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양부 카이사르가 암살된 그 날부터 자신의 임종의 순간까지 줄곧 두가지의 역을 무리하게 끌고 온 것은 아닐까. 그리스비극의 처절한 운명들을 생각하며, 맹목적인 욕망과 한사람의 여인에게 편히 안주하고 싶은 흐릿한 경계지점에서 허덕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