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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이상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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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상이 된 세계이다. '전달된 전쟁'은 전쟁 자체만큼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매체가 발달한 덕택이다. 국제뉴스에 조금만 귀 기울이면, 폭격당한 거리나 피살당한 이들의 참혹한 이미지가 넘친다. 나의 감각은 서서히 눈을 감는다. 무감한 게 아니다. 무기력해지는 거다.  전쟁의 참상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사진이나 영화 같은 시각매체의 힘은, 몹시 세다. '우리'를 그 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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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상이 된 세계이다. '전달된 전쟁'은 전쟁 자체만큼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매체가 발달한 덕택이다. 국제뉴스에 조금만 귀 기울이면, 폭격당한 거리나 피살당한 이들의 참혹한 이미지가 넘친다. 나의 감각은 서서히 눈을 감는다. 무감한 게 아니다. 무기력해지는 거다.

 

전쟁의 참상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사진이나 영화 같은 시각매체의 힘은, 몹시 세다. '우리'를 그 현장에 순식간에 옮겨놓는다. (시각매체는 '우리'에게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떼로 모여 영화를 볼 때 나는 옆사람의 감정적 동요에도 사로잡힌다.)

하지만... 왜 전쟁이 지속되는지 묻게 만들고, 나는 이 세계에서 무얼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고, 개인 내면에 침투해 생활을 돌아보는 자세까지 이끌어내는 힘은 글이 더 끈질기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문자 자체는 선으로 구성된 기호일 따름이나 문자들이 모여 기술하는 이야기는 인간에 대해 묻는다.

 

소설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10대에 참전해 20세를 맞이한다. 소년이라니! 전시에는 참전가능한 인력일 뿐, 소년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파울 보이머의 소년적 면모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는 그냥 군인이다. 몸을 씻을 때 드러나는 희디흰 종아리에서 나는 아주 잠깐, '아! 이 사람은 청소년이지!' 생각한다.

파울 보이머는 전쟁터에서 겪는 일을 들려준다. 소설에 언급된 1918년이라는 말에서, 독일군과 영국군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독자는 1차 대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알 수 없다. 전쟁에는 그런 속성이 있다. 무언가의 목적이나 존재의미를 묻는 질문 따위는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생존만 있다. 이 소설을 펼치는 순간... 나는 전쟁터로 이동하게 된다. 소설을 덮고 나면 내가 책을 읽은 건지 참전을 한 건지, 참전해서 죽어버린 건지....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다. 개인이 어찌 되든 아무 이상이 없는 서부전선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이구나 느낀다. 매우 힘이 있는 소설이다.

 

최근에 번역된 여러 책보다 2002년에 출간된 이 책이 나았다(독일어를 전혀 모르니 번역이 특별히 좋았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함께 수록된 다른 소설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덕에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품 하나를 책 한 권으로 만들지 않고 다른 작품도 함께 싣다니. 해외작가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책'의 역할에 충실한 책이다. 또 독일 비평가 해설이 꽤 좋았다. 레마르크가 '진짜 전쟁현장'에 참전했는지를 두고 벌어졌다는 논란, 소설에 단지 전쟁을 보여주기만 해서 받았다는 비판... 이런 글을 읽으면 작가의 진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 생각하고, 1900년대 후속판에 다름없는 2000년대라는 시대를 바라보게 된다.

 

10대 후반 청소년들과 함께 읽고픈 소설.

 

o********s 2018.06.1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