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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죄와 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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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죄와 벌이라는 시는 나에게 약간의 혼동을 일으켰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최와 벌이라는 소설과 제목이 흡사해서이기때문인데 김수영의 죄와 벌이 시라는 점에서 그 차이가 날뿐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탐구했다는 점에서 같은 점을 발견할수있었다. 일단 이 책을 추천해주신 교수님의 책에 실린 글을 짧막한 글속에서 나와 같은 느낌이라는 점을 발견할수있었다. 바로 '남에게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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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죄와 벌이라는 시는 나에게 약간의 혼동을 일으켰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최와 벌이라는 소설과 제목이 흡사해서이기때문인데 김수영의 죄와 벌이 시라는 점에서 그 차이가 날뿐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탐구했다는 점에서 같은 점을 발견할수있었다. 일단 이 책을 추천해주신 교수님의 책에 실린 글을 짧막한 글속에서 나와 같은 느낌이라는 점을 발견할수있었다. 바로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가 있어 차마 살인을 하지 못하고 그저 우산대로 아내를 두들겨 패고 행여 누가 보았을까 두려워하는 소시민의 일상적 삶과 그 삶을 관통하는 의식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인데 정말 그 결말이 싱거울정도로 단순하고 허무하기까지 하다. 집에 돌아와서 캄캄한 방안의 나를 발견하니 아내를 우산대로 때리고 아이들이 우는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현장에서 놓고온 우산그 자체에 후회가 간다는 내용은 정말로 이 시를 읽는 사람으로하여금 일상적인 모더니즘으로부터 탈피가 느껴질정도로의 감정을 느꼈었을것이다. 최소한 나 자신만큼은 이 시의 매력이 바로 감동을 느끼거나 아니면 애절함이 묻어나서 나를 끄는 것이 아닌 후회하는 것이 엉뚱한 우산이라는 점이 나를 이끌었고 과연 그런 허무한 삶속에 살아가는 시민들은 얼마나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혼란스러운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주인공 못지 않은 삶을 나또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남에게 피해를 주며 그것을 미안해하기보다 오히려 피해를 주며 피해입은 나를 걱정하고 있을것 같지 않아 자못걱정된다.-_-
j******4 2003.05.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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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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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름이 다가왔다. 세상은 온통 푸르른 녹음으로 가득하고 짙은 풀내음들이 코를 찌른다. 이러한 아름다움들을 시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냥 바라보며 느끼는 아름다움보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보다, 더 깊고 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시 속에 빠져들어 마치 거울을 처음 보듯 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나를 발견한다 또 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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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름이 다가왔다. 세상은 온통 푸르른 녹음으로 가득하고 짙은 풀내음들이 코를 찌른다. 이러한 아름다움들을 시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냥 바라보며 느끼는 아름다움보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보다, 더 깊고 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시 속에 빠져들어 마치 거울을 처음 보듯 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나를 발견한다 또 그 시의 내용이 즐겁건 슬프건 간에 감동하게 되고 나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얼마 전 김수영 전집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보는 순간 무엇을 말하는지 느낌이 확 오는 시들도 있었지만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시들도 있었다. 김수영의 '풀'. 느낌이 오는, 마음에 왠지 모르게 와 닿는 시였다. 이미 예전에 많이 들어 알고 있던 시이긴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더 감탄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풀은 일반적으로 민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바람은 민중에 대한 억압으로 해석된다. 나는 이 비유에 놀랐다. 실제로 그렇다. 바람은 풀을 쉽게 쓰러뜨리지만 그 뿌리를 뽑지는 못한다. 결국 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는 그 시대의 민중들에게 희망의 시였을 것이다. 잠시 쓰러지고 고통받더라도 언젠가 우리는 다시 일어나 또 대항하겠다는 신념으로 살아간 사람들. 아마도 그들은 커다란 폭풍우가 몰아쳐도 곧 다시 일어 날, 풀보다 훨씬 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아마 여기서 풀은 일반적 민중이 아닌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생애에 대한 여러 글을 읽어보았지만 그의 생애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시가 그의 인생에 없었다면 더욱 더 그러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시와 하나가 되어 자신의 시련을 스스로 이겨낸 것이 아닐까? 또 그 시대의 '바람'이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민중들이 받는 억압과 고통.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민주화하려는 민중들의 노력에 대한 억압일 것이다. 나는 좀더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만약 민중들의 끝없는 노력이 바람에 해당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 노력을 막으려는 거대한 억압은 큰 나무에 해당할 것이다. 작은 바람에는 끄떡도 없는 나무이지만 점점 더 그 노력의 바람이 커져 폭풍이 되면 나무는 뿌리 채 뽑혀버릴 것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푸른 하늘을'을 읽고도 나만의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것 역시 많이 들었던 시였고 짧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시였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자유'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는 국어사전 등을 통해 그것을 간단히 정의 내리곤 하지만 자유가 그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고 김수영은 말했다. 아마도 어느 시인이 말한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아름답다'는 말은 국어 사전에 쓰여지듯 표현을 통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이에 반대로 피의 냄새가 섞인 김수영의 자유. 그것은 진정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피이고 그렇게 얻어낸 자유야말로 행동이 수반된 현실적 자유일 것이다. '시골 선물'과 '거리'도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김수영과 마찬가지로 나도 도시에서 태어나 계속 도시에서 자랐다. 늘 살고 있어서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김수영에게 도시는 아마도 세속적인 욕망과 문명이 가득한, 번잡한 공간이었나 보다. 도회의 소음과 광증과 속도와 허위가 그를 슬프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사랑을 듣고, 사랑의 기운을 느꼈던 것 같다. 이러한 것에 나는 가장 큰 감명을 느꼈던 것 같다. 시 속에서 도시는 더 이상 이기심과 문명의 피로가 가득한 소외의 공간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의 가능성을 잉태한 '사랑의 위대한 도시'가 되어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고 그렇게 생각한다. 도시는 사랑이 없는 장소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만 사랑과 가능성이 너무도 많아 오히려 안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때 진짜 사랑이 가득한 우리 도시가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내가 가장 감동 받은 시는 위의 네 편이지만 다른 여러 시들을 읽으면서도 나는 계속 감탄했다. 마치 그 시대의 역사의 장면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그는 참여시를 썼다. 참여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런 것 같다. 그 시대와 동떨어진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 시대의 현실을 시에 반영하면서도, 그대로 나타내기보다는 작가와 독자가 직접 참여하여 새롭게 창조하는 시. 이것이 참여시이고 김수영의 시가 아닐까? 김수영. 그는 그 시대를 가장 잘 표현했던 인물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냥 단순히 나타낸 것이 아니라 자신과 민중들의 바램과 소망을 담아 현실보다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시를 썼던 것이다. 오랜만에 시를 읽고 나니 머리가 오히려 맑아진 느낌이 든다. 깊은 생각을 하고 많이 생각했으면서도 오히려 뿌듯함 같은 감정들이 생긴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오늘 하루 너무나도 높은 태양 아래 계속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더니 살랑살랑 예쁘게도 바람이 분다. 나도 나의 감정과 소망을 담아 오늘의 이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한 편의 시를 써 볼까?

[인상깊은구절]
거리 오래간만에 거리를 나와 보니 나의 눈을 흡수하는 모든 물건 그 중에도 빈 사무실에 놓인 무심한 집물 이것저것 누가 찾아오지나 않을까 망설이면서 앉아있는 마음 여기는 도회의 중심지 고개를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태연하다 일은 나를 부르는 듯이 내가 일 우에 앉아있는 듯이 그러나 필경 내가 일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일을 끌고 가는 것은 나다
4****7 2001.08.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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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에서 긍지를 확보하는 시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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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사랑의 시인, 김수영의 시전집이다. 김수영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알려진 것에 비해서 많이 읽히지는 않는 시인이다. 그의 시의 난해성 때문이다. 하지만 시는 난해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또 반대로 난해하다고 나쁜 시가 되지 않는다. 시의 가치 문제는 난해성을 떠나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동을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에 있다. 김수영 시는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많이 읽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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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사랑의 시인, 김수영의 시전집이다. 김수영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알려진 것에 비해서 많이 읽히지는 않는 시인이다. 그의 시의 난해성 때문이다. 하지만 시는 난해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또 반대로 난해하다고 나쁜 시가 되지 않는다. 시의 가치 문제는 난해성을 떠나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동을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에 있다. 김수영 시는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많이 읽히지는 않지만 꾸준히 읽힌다. 그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은지 30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에 대한 평론이 요즘 더욱 많이 쓰여지고 있다는게 그 증거다. 김수영 시의 주제는 자유, 사랑, 혁명, 설움, 비애, 분노, 긍지, 바로 봄 등의 변주를 통해 일구어진다. 그의 시 중 가장 초기에 쓰여진 [공자의 생활난]이란 시에서 바로 봄의 테마가 나온다. 그 시에서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이라고 선언한 바 있는 것이다. 바로 봄은 그러나 설움에 시인을 빠뜨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바로 본다는 것은 바로 한국의 후진성을 파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헬리콥터에서 '동양의 풍자'를 느끼고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라고 탄식하듯 말한다. 헬리콥터는 첨단 문물이라 할 제트기보다 늦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서양 횡단을 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기계다. 동양의 현대성은 서양 보다 늦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체되있다. 김수영이 설움을 느끼는 한국, 동양의 현대는 하지만 시인의 고향 속에 세워진 것이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하여 전통을 '거대한 뿌리'라고 명명하고 바로 우리 자신을 긍정하게 되는 김수영을 보면 그가 설움 속에서 긍지를 찾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김수영의 이 긍지 찾기는 타인과의 사랑, 그리고 그 속에서의 자유, 자유를 위한 혁명 속에서 이루어짐을 그의 전집을, 좀 어렵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읽으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YES마니아 : 로얄 r*******1 2001.0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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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부지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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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든 '처음' 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처음으로 먹는 음식을 접할 때, 그 음식을 잘 하는 집에서 먹느냐 못 하는 집에서 먹느냐에 따라, 그것을 좋아하게 되느냐 싫어하게 되느냐가 결정된다. 혹은 처음 바다를 접했을 때, 그 바다가 시원한 느낌의 광의의 세계로 다가오는지 아님, 생선 비린내와 각종 찝찌름한 냄새를 풍기는 장소로 다가오는 지에 따라, 그 사람이 가지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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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든 '처음' 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처음으로 먹는 음식을 접할 때, 그 음식을 잘 하는 집에서 먹느냐 못 하는 집에서 먹느냐에 따라, 그것을 좋아하게 되느냐 싫어하게 되느냐가 결정된다. 혹은 처음 바다를 접했을 때, 그 바다가 시원한 느낌의 광의의 세계로 다가오는지 아님, 생선 비린내와 각종 찝찌름한 냄새를 풍기는 장소로 다가오는 지에 따라, 그 사람이 가지는 바다에 대한 생각이 반쯤은 결정된다. 그리고 그것은, 문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처음으로 접한 문학이 자신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가, 문학을 좋아하게 되는지 싫어하게 되는지의 척도가 된다. '김수영' 의 시는 나에게 바로 그런 존재였다. 내가 처음으로 김수영 시를 접했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왜 사람들이 시를 읽고 느끼고 쓰는지를 막연하게 나마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런 그의 시는 알 수 없는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기억이 불현듯 생각나서 일까, 요즘 한동안 들춰보지 않았던 김수영의 시를 다시 들추어보고 있다.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시부터 전혀 처음 보는 시까지 말이다. 대부분의 시가 그러한 의도를 끊임없이 하겠지만 김수영의 시를 읽으면, 세상 속에 똑바로 서 있길 바라는, 그래서 그 세상을 일구어 나가길 바라는 그를 볼 수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풀'에서도 이러한 그의 의지가 잘 느껴진다. 그가 말하는 '풀'은 단지 '동풍에 나부껴 누워 울기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한번 누웠으니 그냥 누워있으면 편하련만 '풀'은 결코 누워있지만은 않다. 다시 쓰러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일어난다. 끈질기다. 그러나 그 끈질김이 있기에 '풀'은 '풀'로서 그 의미를 다 할 수 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이 그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설 때 비소로 자신의 의미와 존재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자신과 우리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에서 처럼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조그만해 보일지라도, 그 자신은 ' 비겁한 것이라고, 옹졸한 반항이라고' 자책할지라도, 내 생각에 그것은 스스로 일어서기 위한 마지막 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끈은 처음에는 아주 가는 것이었다가 굵은 노끈으로 성장해 버린다. '허튼소리'를 하기 위해 조그만 용기를 냄으로서, '기침을 하길' 권유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바로 서기'를 하려하면서 때론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여유와 생활로 돌아가는 길 또한 잊어버리려하지 않는 노력을 한다. 그런 흔적이 보인다. 바로 '여름 아침'에서처럼 '간밤의 쓰디쓴 후각과 미각과 통각마저 잊어버리려고 하며' , 사람들에게 '차라리 숙연(熟練)이 없는 영혼이 되어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을 하고 고물개질을 하자' 한다. 자연과 지금의 생활에 충실하자고 한다. 그것이 어찌 보면 우리들이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기에... ... . 시인은 부지런해야 한다. 부지런히 자신을 반성하고, 넘어뜨려야 한다. 그리고 넘어진 자신을 보았을 때 다시 재빠르게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이 세상 속에 하나의 점이 되어버린 자신을 내세우되, 숨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 생각을 글로 써야 한다. 그 글이 하나의 마술이 되도록 다듬어야한다. 김수영의 '풀'이나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여름 아침'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시를 보면, 은연중에 부지런해지는 나를 볼 수 있다. 작가의 마음과 생각이 투영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시를 '아는 것'이 아닌, 그냥 '느끼는' 것에 굶주리지 않는 그런 마음의 부지런함을 배우면서 말이다.
j*****0 2003.06.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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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 침을 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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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고등학생이다. 어쩌면 나같은 깜냥이 부족한 사람이 책을 읽는 자체가 작가를 무시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이유는 그만큼 좋다는 것이 아닐까? 아무 뜻 없이 읽었다. 내가 생각이 없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냥 읽었다. 모르는 한자가 많아서 고생을 했다. 그러다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 6.25를 격었구나!. 이 사람 4.19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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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고등학생이다. 어쩌면 나같은 깜냥이 부족한 사람이 책을 읽는 자체가 작가를 무시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이유는 그만큼 좋다는 것이 아닐까? 아무 뜻 없이 읽었다. 내가 생각이 없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냥 읽었다. 모르는 한자가 많아서 고생을 했다. 그러다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 6.25를 격었구나!. 이 사람 4.19도 격은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작가의 생애를 보니까 정말 이 사람이 6.25와 4.19를 격었었다. 김수영의 시는 특히 난해시로 유명하다. 그런 시를 읽고 난후 내가 이 사람의 생애를 조금이나마 짐작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난 이 시를 쓰라리기보다는 재미 있게 읽었다. 시에서의 김수영의 말투는“자유는 고독한 것이다. 그처럼, 시는 고독하고 장엄한 것이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처럼 과격한 발언을 던졌다. “시여, 침을 뱉어라”고 외쳤던 김수영의 도발성은 그의 시대에 시인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 세상에 대고 침뱉기였음을 웅변하고 있다. 과격한 발언과 위정자들이나 지식층들에게 정곡을 찌르는 말들은 정말 내가 누구에게 복수를 한 것처럼 통쾌하다고 생각 할 정도 였다. 그의 주된 주제는 자유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냥 자유 그 자체를 노래하는 것이 아닌 시적 이상으로서의 실현 불가능한 자유들로만 절규하듯이 노래한다. 너무나 절규하는 그의 자유는 찾아 주고 싶지만 어디에도 실현 될 수 없는 그리고 너무 포괄적인 자유를 원하는 것 같아서 찾아 줄 수 가 없다. 시의 이런 부분이 생각난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의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 아니 된다”라든가, “우리나라의 시단은 자고로 완전한 자유를 누려본 일이 없다. 자유가 없는 곳에 무슨 시가 있는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김수영 시인을 예술파적인 기교를 지닌 참여시인이며 동시에 참여의 정신이 농후한 순수시인이라고 보면서, 그것이 “우리 현대시의 그만한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목한다.

[인상깊은구절]
거리 오래간만에 거리를 나와 보니 나의 눈을 흡수하는 모든 물건 그 중에도 빈 사무실에 놓인 무심한 집물 이것저것 누가 찾아오지나 않을까 망설이면서 앉아있는 마음 여기는 도회의 중심지 고개를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태연하다 일은 나를 부르는 듯이 내가 일 우에 앉아있는 듯이 그러나 필경 내가 일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일을 끌고 가는 것은 나다
m******g 2000.06.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