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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수히도 많은 완전하지 못한 가족들에게...
"아버지는 무엇이고, 어머니는 무엇인가. 아버지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다면 부드러운, 혹은 걷잡을 수 없는 광기에 빠져들지 않은 채 과연 어디까지...." - 저자의 말 중에서 -
시대가 변했다는 말로만으로는 위로 삼기에 부족한 구멍이 난 가정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엄마 아빠 둘 중 어느 한쪽의 부모가 부재중이라던가, 아니면 함께 살더라도 함께 사는것만 못한 환경이라면... 그 어느것도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가정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살고 있다는 것은 부모와 자녀의 조화가 이루어진 모습일 것 같다.
보험회사 지점장인 펠릭스. 몇달 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주변에서는 모두 그를 걱정하지만 펠릭스는 괜찮다는 말로 지나친다. 그러던 중 담당하고 있던 건물에 화재가 나고, 화재가 났던 집에 살던 모자가 행방불명 된다. 펠릭스는 담당자로써 사라진 모자의 행방을 찾으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의 상태를 염려해서 일을 잠깐 쉬도록 한다. 그렇게 휴가를 즐기던 펠릭스는 모든 순간 모든 곳에서 죽은 아들 콜랭을 떠올리게 되고, 그 즈음에 콜랭의 사건을 재수사하던 형사는 펠릭스에게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한다.
제목만 봤을 때는 무슨 에로소설 같았다. 물론 내용이 그렇지 않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던 일이지만. ^^ 그리고 나서는 그냥 아들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질거라 생각했다. 한편의 드라마처럼... 펠릭스가 휴가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죽은 콜랭을 기억하며 이야기는 과거의 어느 한 부분으로 되돌아갔다. 콜랭이 태어나던 순간, 콜랭이 걷기 시작하면서 떠나버린 아내 마리, 그리고 엄마의 빈 자리를 자꾸만 찾는 아들을 위해 엄마(?)가 되어가는 펠릭스.
부정은 대단하구나 싶었다. 아이가 찾을 수 밖에 없는 엄마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줄까 궁금했는데, 결국 그는 엄마의 모습을 최대한 엄마처럼 보여주고자 애썼다. 엄마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어떤 의무수행이라기 보다는 진짜 엄마가 되어주고자 했던 모습이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 아빠의 역할을 모두 본인이 해내고자 했던 펠릭스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안에서 키워갔던 게 있었다. 아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사랑. 애정의 정도가 넘치지 모자란것만 못하다는 결과를 만들어버리는...
'너무 큰 사랑이 아이를 죽일 수도 있다'는 유치원 원장의 말처럼, 아들 콜랭에 대한 과도한 사랑은 펠릭스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질투와 집착을 넘어선 광기같은 사랑을 담게 만들었으며..... 결국은 그 지나친 사랑이 아이를 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물론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봐야만이 그 내용과 의미를 함께 공감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에 그가 바르던 붉은 애무 립스틱은 그가 가졌던 광기와 같은 사랑을 끝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결국엔 입술 주변에서 번져버려서 완벽하지 못하게 그 입술선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렸던...
마지막장까지 다 읽고난 다음에, 혹시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수사의 끝을 보지 못했던 콜랭의 사고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 결과가 나왔기에. 특이하면서도 애절한 무언가가 가슴을 꽉 누르던 여운을 남겨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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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특이한 작가,특이한 소설이라 해서 프랑스 소설이라 특이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편모아래에서 자란 작가의 삶이 소설속에 녹아 났다고 해야하나, 소설은 편부로 어린 아들을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하는 한 남자가 너무 엄마역할에 빠져 들다가 자신도 잃어버리고 자식도 잃어버리는 내용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너무 과하여 화를 불어온 것이라 해야할까..
<문하우젠증후군>인가 하고 소설을 처음 읽으며 궁금증이 생겼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펠릭스는 그룬바크라는 가입자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화제 현장에 가서 그곳에서 살았던 여자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화제현장은 참혹한데 그 현장에서 사라진 아이와 엄마인 여자,그들의 행복했던 한때가 담긴 불타다 남은 사진 조각을 들고 나오는 펠릭스. 그는 3개월전에 아들 콜랭을 뺑소니차에 치여 잃고 말았다. 아직 범인은 잡히지 않은 사건이었고 아들을 잃은 악몽이 다 가시기도 전에 이런 사건을 접하게된 그를 보고는 동료들은 쉴 것을 강요한다.
마리는 아들 콜랭을 낳은 후 그에게 아들만 남겨놓고 떠났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아들앞에 나타나고 그들은 일주일에 몇 일씩 나누어 아들을 돌보게 된다. 엄마가 없는 사이에 아빠와 함께 살았던 콜랭, '엄마가 보고 싶어..엄마가 보고 싶어' 라고 아들이 말할때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주기 위하여 여장을 하여 완벽한 마리로 재탄생한 펠랙스는 잠자는 시간에 엄마가 되어준다. 마리를 대변할 수 있는 노란머리의 가발과 스펀지공으로 채운 가슴과 털을 가리기 위한 긴 팔옷과 다리에 털을 밀고 원피스를 입고는 여자로 다시 태어나 아들 콜랭에게 엄마를 선사했던 펠릭스는 점점 자신이 그 역할에 빠져들어 간다.
자신과 옷장과 자신의 엄마의 옷도 아닌 콜랭의 엄마로 거듭나기 위한 여장에 필요한 옷장이 나란히 놓이게 되고 그는 점점 정체성을 잃어가게 된다. 아버지도 아니면서 엄마도 아닌 존재가 되어가는 펠릭스에게 유아원 원장은 ' 너무 큰 사랑이 아이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 아세요..' 라며 따끔한 충고를 해준다. '나는 실추한 어머니, 두께 없는 아버지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또한 아버지의 아들로 지낸 경험이 없기에 혼자서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도맡아 하기엔 그에겐 너무 벅찼다. 그도 아버지가 없었기에 아버지의 역할에도 자신이 없었다. 그런 그가 엄마의 역할은 제대로 해 낼 수 있었을까...
소설은 편부와 편모, 완전하지 못한 조화롭지 않은 가정을 다루고 있어서인지 독특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읽고 덮고 나면 섬짓하다. 원장의 말처럼 사랑이 과하여 아이를 죽게 만든것일까 생각이 든다. 자신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던 아들을 엄마인 마리가 돌아옴으로 하여 그녀에게 빼앗기면서 자신이 모두 누렸던 엄마의 자리도 아버지의 자리도 빼앗기면서 그는 자신의 전부였던 존재를 없앤다. 날은 넌무도 화창하고 좋은데... 마리가 보았던 범인은 남자 였을까 여자 였을까... 그가 여장을 하기 위하여 발랐던 붉은 애무 자국이 확실하게 남는 정말 독특한 느낌의 소설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엄마라는 아빠라는 위치의 그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더 일깨워준 소설이다.
나는 옷 몇 벌, 마스카라, 입술에 바르는 '붉은 애무' 립스틱을 도로 챙겼다.......마지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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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소설 한권을 만났다. 2007년 페미나 상 을 수상한 붉은 애무.. 제목만 보고는 19금의 책을 상상했다. 애무라고 하지 않는가... 작가 에릭 포토리노가 한국 독자들에게 쓴 내용. 붉은 색을 바탕으로 좋은 애무가 되기를... 역설적이다. 어떤것을 좋은 애무라고 할까?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글은 충격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충격이다.
그리 두껍지도 크지도 않은 책 한권. 손에 들고 읽기 편한 제본에 책 한권이 이렇게 강하게 심장을 뚫고 지나갈줄 몰랐다. 작가의 말처럼 아버지란 무엇이고, 어머니란 무엇인가? 아쥐라 보험 고블랭 대리점을 이끌고 있는 펠릭스는 화재사고 신고를 받고는 잔의 집엘 가게된다. 그곳에서 펠릭스는 잔과 그의 아들을 찾는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잔과 그의 아들한테 무언가가 있는 줄 알았다. 고슴도치 문신을 가지고 있는 잔을 펠릭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방법으로 관찰을 한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 인줄 알았다. 이 붉은 애무가... 붉은 애무.. 붉은 애무가 뭘까...?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든다. 붉은 애무는 립스틱 이름이란다. 붉은 색의 립스틱... 이 책의 제목이 왜 붉은 애무인지는 책을 읽어야만 알 수가 있다. 그 숨막히는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것이 사랑일까? 사랑은 너무나 강하고 아플때가 있다. 그러다 지나치면 구속이 되어버린다. 에릭 포토리노는 그 구속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구속의 끝은 보통의 사람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책을 읽고 마지막 장으로 넘어갈수록 설마 설마 했다. 책 선전 문구에서 책의 내용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설마 설마... 그 설마가 사실이 되는 순간 책을 놓치고 말았다. 누구를 위해... 누구를 위해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무엇이든 보통으로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말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들은 너무나 맘이 아프다. 어린시절의 아픔이 성인이 되어서도 치유가 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시절의 아픔을 고스란히 자신의 아이들에게 넘겨주고 있다. 맘이 아프고 아프다. 조금만 더 생각을 했다면... 다른 선택이 있지는 않았을까? 에릭 포토리노의 말처럼 붉은 색을 바탕으로 좋은 애무가 될 수는 없을것 같다. 가슴이 너무나 아프고 멍해져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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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는 걸 본 친구는 대체 무슨 이런 책을 읽느냐고 말했다.
단지 제목만으로 무언가 야한 내용일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내가 느낀 것처럼.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이 책은 존재의 부재, 결핍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한 과잉에 관한, 지나치다 못해 결국 광기에 이르고 마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 부재와 과잉은 바로 아빠 또는 엄마의 자리를 일컫는다.
서로의 역할이 바뀐다면 과연 아이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
보험사 대리점장인 펠릭스는 마리와 결혼했지만 마리는 아들 콜랭을 낳은 후 갑자기 떠나버린다. 온전히 콜랭의 삶을 가지라는 말과 함께.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콜랭을 위해 펠릭스는 금발가발, 스폰지 공, 원피스를 구입하고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점점 그 역할에 빠져들게 되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도 사랑하게 되어 버린 펠릭스 앞에 갑자기 마리가 등장한다. 자신이 끼어들 틈이 없이 가까운 마리와 콜랭을 보며 펠릭스는 질투를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콜랭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게 된다. 늘 바르던 '붉은애무' 립스틱을 바른 채.
엄마의 자리와 아빠의 자리. 어느 하나가 빈다면 그 빈틈을 아이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작품 속의 펠릭스처럼 비록 엄마의 자리를 아빠가 채워주고 있다 하더라고 근본적으로 역할이 다르다보니 아무리 충실히 엄마 역할을 하더라도 진짜 엄마 앞에서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 버린다. 균등한 사랑의 배분은 매우 중요하다. 작품에서 유아원장이 말했듯이 자식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결국 아이에게 해가 될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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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문학과 추리문학의 결합'이라는 띠지의 글귀는 확실히 매혹적이었다. 이전에는 그다지 보지 못했던 프랑스작가의 소설임에도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 띠지의 글에도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인공 펠릭스는 보험 대리점의 점장으로 화재사건이 난 아파트에서 사라진 모자의 사건에 매달리면서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듣는다. 그 또한 몇 달전 범인을 알 수 없는 교통사고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표시내지 않는 슬픔이 얼마나 클지를 예감하는 주위 사람들은 휴식을 권하고 그 또한 주위 사람들이 귀찮아 휴가를 갖기로 한다.
.. 휴가의 첫날 장을 보러 나가면서 그는 아들 콜랭의 유모차를 끌고 나간다. 사실 시골 할머니들이 지팡이 대신에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넘어가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참 특이한 모습일 것이다. 아이가 없는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남자. 생각만 해도 이상하다. 무엇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될 것이다. 물론, 그는 아이를 잃었다.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고, 그런 그의 행동 또한 아이를 그리워하는 한 아버지의 한순간의 이상행동으로 오히려 동정을 받을 일일지도 모르겠다. 슬픔을 드러내면 오히려 가벼워질텐데 과거 가족들이 모여살던 때와 달리 한 가정만 살게 되는 현대사회에선 이혼이나 별거등으로 헤어져 살게 되면 실제로 아픔을 덜어줄 가까운 이들이 부재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나고 그만큼 인간은 더욱 고독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도 솔직히 주인공 펠릭스를 걱정할 뿐이었다.
.. 그러나 점차 밝혀지는 펠릭스와 콜랭의 비정상적인 생활들은 또 어찌할 수 있을지. 누구말처럼 변태의 기준은 자기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타인이 나눌 것은 아니라고 하기도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들의 집요한 요구가 있더라도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사람이라면 펠릭스처럼 행동하지는 않지 않을까? 어쩌면 펠릭스는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을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아원 원장 몽테이 양의 말처럼 지나친 사랑은 아이를 죽일 수 있다. 사실상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고 쉽게 말들은 하지만, 그 경계에서 흔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것도 지나치지 않게 사랑한다는 것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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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젊은 나이에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은 한 보험 대리점의 점장인 주인공 펠릭스.
장바구니 대신 유모차를 끌고 혼자 장을 보러 다니고, 콜랭이 다니던 유치원 근처를 서성이며 아들 모습을 떠올리고..
'난 혼자였지만 두 사람 몫의 사랑을 줘야만 했다' (99쪽)
엄마 없이 혼자 아이를 키워야만 했던 펠릭스의 현실을 통해 이 책의 주제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제목부터 특이한 강함을 풍기며 파격적인 주제와 극적인 반전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잘 묘사한 '붉은 애무'를 통해 '넘치면 부족한만 못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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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애무..책표지를 보며 많은 상상을 하며 책을 열었다. 책표지를 딱보는순간 습하고 칙칙해보이는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과..붉은 꽃.. 왠지 이 축축해보이 땅에서 시체가 하나 툭 하고 나올것 같은 으시시한 느낌이든다. 그러나 이책은 내가 상상했던 그런 책은 아니였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설마 아니겠지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설마 설마를 되뇌이며 읽었는데.. 그 설마를 확인하고 나니 ...무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들었다.
지은이 에릭 포토리노는 언론인이자 소설가로써.. 많은책을 썼고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분이다. 또 이 책으로 프랑수아 모리악상과 ,프랑스 최고의 추리작가에게만 수여하는 장 클로이드 이쪼 상을 동시에 수여하였고 , 이책의 찬사로 순수문학과 추리문학의 절묘한결합이라는 평가를 받고 특이한 작가 특이한 소설이라는 문구들이 따라다니고 있다.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특이한 소설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어 더 흥미로웠고 .. 크기도 손에들기 딱좋은 크기이며 일반 추리소설은 대개 조금 두꺼운편인데.. 이 책은 두께도 부담감없을정도의 가지고 다니며 읽기에 안성마춤일것 같았다. 그러나 가지고 다니며 읽기는 ..내가 읽기시작하면서 부터 아니다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을 든순간 어느 새 다 읽어버리니 말이다. 그정도로 흡입력이 좋은 책이였다. 그리고 다른 추리소설들은 등장인물이나 복선들이 많아서 읽다가 앞으로가서 다시 찾아 읽어보곤 했는데.. 이책은 등장인물도 그렇게 많지않고 사건 배경들도 넓지 않아서 읽기에 아주 수월했던것 같다.
책 내용을 잠시살펴보면 .. 어느건물에 화재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보험회사 지점장인 펠릭스가 조사를 나갔다가 건물에 살고 있는 모자가 행방불명된것을알고... 이건물의 담당자인 펠릭스가 모자의 행방을 찾으려 하지만 , 주위 동료들의 걱정으로 잠시 휴가를 가기로한다. ( 펠릭스는 몇달전 사랑하는 아들 콜랭을 교통사고로 잃었기때문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는 이사건을 풀어가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나..충격적인 반전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일반가정의 해체로 우리사회에서 흔히 양산되는 외부모 가정에서 벌이와 양육을 홀로감당하는 이들의 처지를 잔델벡의 어깨에 새겨진 고슴도치 문신으로 상징하고.. 사랑하면서도 서로 함부로 다가갈 수 없고 힘껏 껴안을수록 고통과상처가 더 커지는..
여기서는 사랑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을 ... 이 붉은 애무는 어느날 어린 아들만 남기고 훌쩍 떠나버린 마리.. 그로인해 엄마없이 홀로 어린 콜랭을 키우는 펠릭스의 아들에 대한 지나친 사랑으로 붉은 애무를 짙게바르고(립스틱이름) 넘어서는 안되는 금기사항을 넘어서 결국은 그 사랑의 광기로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마는.. 이야기이다. 아이에게 아버지란 무엇이고 ..어머니란 무엇인가..책에서도 물었듯이 .. 나도한번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아버지 어머니호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 한 가정에서 사랑해 주며 자리를 지켜주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는 한번 해본다. 이 책은 외부모 가정의 지나친 과잉사랑이 아이를 죽일수도 있다는 무서운 이야기이자.. 현 사회의 외부모 가정들을 다시한번 생각 해 보게한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함을 다시한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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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젊은 나이에 심각한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여자 후배가 있다. 그 후배는 사춘기 시절에 세상에서 가장 다정했던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어느 평온했던 날의 오후, 한 통의 전화는 그 후배의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찢어놓았다. 아침 인사를 하고 나간 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며, 그날 이후 후배는 심각한 건망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날을 떠올릴 때마다, 후배의 온 몸에 돋는 소름을 나는 알고 있다. [붉은 애무]는 그처럼 심각한 외상으로 감각이 마비되어버린 남자가 등장한다.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수수께끼같은 말로 들리겠지만, 주인공이 경험한 부재의 고통은 결국 그 위에 덧입혀진 상실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을 파괴해버린다. 좀 더 쉬운 말로 다르게 설명하면, 원래 애인이 없는 사람이 느끼는 ’부재’의 고통보다, 그런 부재를 경험한 사람이 다정한 애인을 갖게 된 후, 그 애인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의 고통이 더 크다는 말이다. 주인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버지의 부재’라는 고통을 견뎌왔고, 그렇게 아물지 않은 채 뿌리 내린 상처 위에 다시 ’상실의 고통’이 덧입혀졌을 때, 그의 모든 이성과 판단은 마비되어버렸다. 이야기는 주인공 ’펠릭스’의 직업인 ’보험’ 업무에 관한 설명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 ’화재’가 발생한 현장에 펠릭스가 방문하게 되면서 전개된다. 화재가 발생하고 두 모자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여기까지 읽으면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야기의 핵심은 이 사건이 아니다. 독자의 시선이 화재 사건과 실종 사건에 머물러 있을 때에, 저자는 슬쩍 ’펠릭스’가 4살이 된 아들을 사고로 잃은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너무도 건조하고 덤덤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아들의 사고가 스쳐지나는 사건쯤으로 들릴 정도이다. 펠릭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을 잃었다. 펠릭스의 행동과 감정 상태는 그가 심각한 외상을 입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펠릭스의 내면과 아들을 잃기까지의 ’광기’어린 이야기는 그것을 들려주는 덤덤한 목소리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부재와 결핍으로 고통스러운 주인공의 심연과 마주하게 만든다. 책이 나에게 보여주는 한 가지 흥미로운 설정은 주인공의 직업과 그에게 닥친 불행이다. 주인공은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유능한 사원이다. 보험이 무엇인가? 느닷없는 사고에 대비하는 인간의 안전장치이다. 그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예고없이 닥치는 불행에 대비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안정장치라는 것이 얼마나 얼서픈 대책인지, 인간은 불행 앞에 무기력하기만 하다. 사회적 제도와 안정망을 아무리 견고하게 짜놓는다 해도, 인간에게 닥치는 불행의 심연 그 끝자락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펠릭스의 정신적 건강을 염려하며 그에게 아무리 긴 ’휴가’를 준다한들, 아들을 잃은 상실과 슬픔으로 상처 입은 그의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겠는가. 저자가 이 스토리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는 극한 감정과 광기 어린 사랑, 그리고 기존 질서의 위반이라고 설명한다. 주인공 펠릭스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 어머니의 차가운 무관심 속에 성장했다. 그렇게 성장한 그가 어느 날, 아들을 얻었다. 그런데 그 아들에게는 엄마가 없다. ’아버지’의 역할을 경험하지 못한 그가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혼란 속에서, 엄마의 부재로 고통을 호소하는 아들에게 펠릭스는 스스로 ’엄마’가 되어주고자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에는 솔직히 공감하기 어렵다. 오히려 주인공과 그의 아들이 편부모 가정에서 부재와 결핍을 경험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런 물음을 갖게 되었다. 인간에게는, 특히 어린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상은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왜 ’아버지’와 ’어머니’의 필요를 느끼는가? 그것은 사회적인 가르침인가, 아니면 본능인가? 그것도 아니면 또래 아이와의 ’비교’를 통해 나의 결핍을 스스로 깨닫는 것인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구분짓는 것 또한 본능인가, 사회적인 학습인가? [붉은 애무]의 주제의식은 사회학적인 탐구에 가까운데, 그가 풀어내는 스토리와 묘사는 심리적인 탐구에 더 근접하다고 생각된다. 기억 저편에 묻어버린 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의 목소리와는 달리, 그의 행동은 너무 심각한 심적 충격과 고통으로 마비되어 버린 그의 영혼을 보여준다. [붉은 애무]는 어떠한 사회적인 해석도 답변도 말해주지 않는다. 붉은 피가 흥건한 사고의 현장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아내듯이 보여줄 뿐이다. 사건의 개요와 문제와 해결은 고스란히 독자의 몫이다. 혹시 내 기억의 심연에 잠재된 상처의 뿌리가 오늘 내가 맺고 있는 관계와 사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며 읽어도 좋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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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파괴에 대한 날카로운 애무!
어느날 뉴스를 켰다. 어느 집에 엄마와 아들 2명이 화재로 사망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참 안타까운 가족사이구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났는데 아뿔사.. 그것이 그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 그것도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인 20대의 남편이 홧김에 흉기로 살해하고 그 흔적을 없애고자 저지른 방화였던 것이다. 너무도 끔찍하여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것이 시대가 낳은 비극일까? 진정한 현실일까.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순식간에 온 세상을 뒤덮는 현실, 그 속에는 안타깝게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해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건 사고가 많아지면서 외부모가 많아지고, 자식을 잃은 실의에 빠지기도 하며, 이상과 현실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파괴되는 가정에 대한 진지한 해부, 그것이 바로 <붉은 애무>의 초첨이다.
보험회사 직원인 주인공 '펠릭스'가 갈랑드 가 화재 사건을 접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잔 델벡과 아들 브루아는 화재 초기에 자취를 감추었던 모자로 이웃들의 말에 따르면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한다. 잔의 어깨에 새겨진 문신, 고슴도치가 전해주는 메세지는 무었일까?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고슴도치 가족들은 부둥켜 안을 수가 없다. 가족이라 해도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사라지는 모든 것을 애써 그렇게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 안타까울 뿐이였다. 그 모자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펠릭스는 또 뭐란 말인가. 그의 일생은 마리에 대한 배신과 콜랭에 대한 집착으로 일순간에 성정체성 혼란까지 극에 달한다. '붉은 애무'의 립스틱이 그렇게 피와 같은 잔인함으로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슬프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이토록 찢어지도록 아픈 것은 그들이 불쌍해서라기 보다 이런 상황들이 진짜 현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로써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실제로 이 시대 곳곳에서 마치 당연하다는 듯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역할에 재미가 들렸다는 펠릭스를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슬픔이 나를 억누른다. 이렇게 가볍고 얇은 책이 이토록 무겁게 독자들을 짓누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기러기 가족인 것도 같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서 훨훨 떠난 철없는 부모들의 실태도 같으며 가족애가 부족해진 현시대의 모든 사람들같기도 하다.
저자가 이 책을 얼마나 섬세하고 진지하게 표현했는지 읽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주인공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아주 자세하고 은밀하게 말해주고 있어서 읽는 내내 숨이 멎어 빨려 들어갔다. 눈동자는 빠르게 굴러가고 가슴은 먹먹해진다. <붉은 애무>는 이처럼 독자들을 빠르게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충분한 매력을 지닌 꽤 괜찮은 소설이다. 얇은 책에 쓰여진 소설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의 탄탄한 스토리마저 가지고 있어서 부담도 없고 단숨에 삼킬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세상에 대한 한탄과 씁쓸함은 어쩔 수 없나보다. 나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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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를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돼서 혼자서 피식하는 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제목을 봤을때 왼지 붉은색과 애무라는 단어가 들어가 19금의 내용일 것이라고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그건 나만의 착각이란걸 알게되었다.
이글은 펠릭스 마레스크라는 의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한남자의 정체성이야기다 사회적으론 성공한 그가 어느날 사고로 아이를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현재와 과거가 곁쳐지면서 진행된다.
그는 아이를 홀로키우는 아빠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아이를 그것도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는 아이를 키우는건 무척 힘들다 펠릭스는 아이에게 엄마의 빈자리까지 채워주기위해 노력을 하지만 아이는 그의 노력에 아랑곳 하지 않고 끊임없이 엄마를 찾게돼고 그때부터 그는 엄라라는 역활놀이를 아이와 같이 하게 된다
솔찌히 펠릭스는 아이를 과보호합니다 세상을 살아감에 모든것을 갖추고 살수는 없는데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온실속에 화초같이 키우려고 하지만 아이가 거부할때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하는 그를보면서 엄마가 없는것에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않고 현실을 인정하고 같이 행복할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펠릭스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것 같은데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꼭 그랬어야만 했을까 좋은부모가 되는 것이 아이가 원하는대로
이글이 나왔을때 프랑스에서도 적지않는 파장이 있었다고 하고 작가또한 그런 전개때문에 21세기 최첨단의 시대로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접하는 지금 읽어도 펠릭스의 사랑에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