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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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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란 무엇일까..?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나 관심사가 있다는 것, 그것이 떳떳하건 아니건 비슷한 수준의 마음을 서로에게 품고 있다는 것, 함께 공통의 목표를 서로 큰 이견없이 지향하고 있다는 것, 누군가 내 삶의 다양한 선택지에서 선택의 순간 꽤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등..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살면서 그저 '스치듯 안녕'이 아닌,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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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란 무엇일까..?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나 관심사가 있다는 것, 그것이 떳떳하건 아니건 비슷한 수준의 마음을 서로에게 품고 있다는 것, 함께 공통의 목표를 서로 큰 이견없이 지향하고 있다는 것, 누군가 내 삶의 다양한 선택지에서 선택의 순간 꽤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등..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살면서 그저 '스치듯 안녕'이 아닌, 그렇게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특히 내게는 더 그렇다. 자신을 깨끗한 백지의 한 가운데 세워놓고 주변과의 특별한 관계도를 그려나간다면 그 백지의 여백을 얼마나 채워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에휴-'라는 한숨이 나올 정도다. 누군가의 그런 채우기 과정 속에 내 이름이 쓰여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역시 '에휴-'다. 그러고보면 참 좁게 살고 있다. 누군가에게 어떤 (좋은, 따듯한.. 또는 가슴 먹먹한) 의미가 되고싶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그래서 곧 잊혀지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아무래도 불쌍한 쪽에 가까운 일이니까. 자기연민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그 쪽이 '어떤' 의미가 되는 일보다 확실히 기분좋을 리 없다. 제 아무리 'Let Me Be Alone'을 주장하는 이들이라도.

 

이 작품은 일상적 삶에 드리운 관계의 가벼움에 대한 이야기다. 도우코, 레이코, 에미코 이렇게 삼십대 중반 즈음의 세 친구를 중심으로 그들의 남편과 애인(불륜상대) 및 남편의 애인(불륜상대)에 대한 이야기다. 복잡하게 얽힌 이들의 관계는 처음 읽어나가는데 (이름마저 생소하고 비슷한 이유로) 다소의 혼란을 야기하지만, 삼분의 일쯤 읽어나가면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정리가 된다. 혹, 초반의 그 어지러움이 싫다면 아래의 관계도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현실에서도 관계에 서툴다보니, 영 익숙해지지가 않아 혼자 초반에 노트에 끄적이며 정리한 것을 워드로 정리하고 이미지로 떠서 올린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다들 정말 이렇게 복잡하게 사는걸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 보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관계가 불륜이라는 이름하에 만들어진 부적절한 관계다. 자신의 아내를, 남편을 사랑하고 의지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다른 사랑을, 즐거움을 찾은 사람들이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정말 세상물정에 어두운 맹추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 관계란 가족을 제외하곤, 나와 타인들이라는 복수형 사이의 일대일 매칭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친구가 되었건, 애인이 되었건, 또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건 개인대 개인으로, 둘 만의 추억이나 공감대, 관심사, 목표, 비밀 같은게 도통 없다. 건조하다면 건조할 수 있으며, 그래서 불쌍하다면 또 불쌍하다랄수도 있는 관계형성이다. '심플하고 깔끔해서 좋구만..'이라고 긍정적인 평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이런 관계들 속에서는 남다른 호의나 어려운 상황에서의 결정적 도움 같은 것들을 기대하기 힘들다. 내가 개별화되지 않고 집단화된 특정 대상들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나 자신도 그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들과 비슷한 처지와 생각 속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그 머무름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 나는 곧 잊혀져버릴 수 밖에 없는 '그들 중 하나(One of Them)'일 뿐인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것이 싫어 필사적으로 개별적 관계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 남들과는 차별화된 특별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면, 적어도 그 상대방에게는 '돌아서면 잊혀지는' 존재 이상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테니까. 흔히 불륜을 저지르는 핑계로 많이들 언급하는 '외로움' 이란, 본연적이고 존재적인 외로움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소중한 사람이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근거한 '관계적 외로움'일 것이다.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관계의 방법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안다. 무언가 한 발짝 이상 더 나가야 할 용기 내지는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도, 누구의 도움없이 나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막연히 그런 필요의 충족에만 급급하다보면, 이 작품에서 많은 이들이 만들어놓았고, 또 만들어가는 근본적 해소와는 무관한 부적절하고 불안한 관계형성만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 경우엔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그 관계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진단해본다.

 

이 작품을 읽으며 그렇게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부딪치고 그래서 상처받고 깨어지고는, 그 깨어짐의 아픔을 숨기고 위로해가며 사는게 바로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 세상이 한 사람에 의해 창조된 솔직하고 순수한, 그래서 예쁜 사람들만의 모임인 이 작품속 세상같이 쉽고 편안하며 만만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p***i 2012.04.23. 신고 공감 9 댓글 7
리뷰 총점 종이책
그녀들의 사랑에 빠져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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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있을 때는 나만 쳐다봐요. 에리는 늘 그런 소리를 한다. - 240 page       가을날의 독서, 에쿠니 가오리, 사랑이야기, 벌써부터 짠했었던 그 마음, 장미 비파 레몬.   말해줘요,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지.   조용조용, 또 가만히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하고선- 글자 하나하나 정성스레 읽어나갔다.         그래서 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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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있을 때는 나만 쳐다봐요.

에리는 늘 그런 소리를 한다.

- 240 page

 

 

 

가을날의 독서, 에쿠니 가오리, 사랑이야기, 벌써부터 짠했었던 그 마음,

장미 비파 레몬.

 

말해줘요,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지.

 

조용조용, 또 가만히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하고선-

글자 하나하나 정성스레 읽어나갔다.

 

 

 

 

그래서 도우코는 혼자 있을 때만 캐니 지의 색소폰을 듣는다. 가슴속, 아주 비밀스러운 부분이 공명하는 탓에 미즈누마에게는 보일 수 없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봉인한 고독에 몸부림치는 자신을.

- 14 page

 

 

오늘은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세 시에 퇴근했다. 남편도 일찍 돌아오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조촐한 파티를 여는 꿈을 꾸었었다.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호스티스로서의 평판이 자자하다. 하지만 포인트는 어디까지나 '조촐함'에 있다. 따라서 거창한 음식은 만들지 않는다.

맥주와 포도주, 안주는 치즈와 살짝 튀긴 연근을 준비하고 오븐에다 채소를 듬뿍 구워놓는다. 주 메뉴인 닭찜은 어젯밤에 다 준비해놓았기 때문에 이제 바실리코 라이스만 만들면 된다. 디저트로는 타피오카가 들어간 코코넛 밀크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 53 page

 

 

이 사람은, 지금 같은 옆얼굴을 보면 내 온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간다는 것을 알면서 저렇게 웃는 것일가, 하고 소우코는 생각한다.

나는 어쩌자고 이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 하고.

- 160 page

 

 

"아, 따뜻하다."

에리는 눈을 감고 말했다. 앞머리와 눈꺼풀, 입술로 따뜻한 물이 흐른다. 츠치야의 몸은 정말 온도가 높다. 에리는 이렇게 츠치야의 품 안에 있으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그리고 이 품에 영원히 안겨 있을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한다.

- 179 page

 

 

남자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곳에 왔다. 거실에서도 부엌에서도 몸을 나눴다. 남자는 미치코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치코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남자의 입술은 미치코의 뼈 마디마디를 녹였다. 그 행복감으로 충분했다.

- 199 page

 

 

"나, 츠치야 씨 정말 좋아해요."

.

.

"츠치야 씨의 눈도 턱도 목도 좋아하고, 어깨도 팔도 손목도 좋아하고, 엉덩이도 무릎도 허벅지도 좋아하고, 배도 귀도 발바닥도 좋아하고."

.

.

"그러니까, 난 당신을 잃지 않을 거야."

- 202 page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남은 위스키를 물에 섞어 마시면서 부엌을 정리하는 아내에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작업실에 가봐야겠다고 했을 때,

놀람과 실망이 뒤섞인 그녀의 그 표정. 츠치야는 이때 이미 후회했지만, 후회란 늘 그렇듯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 237 page

 

 

후회 비슷한 감정에 휩싸일 것도 알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도 혼자, 밤에 잘 때도 혼자, 크리스마스나 새해 인사를 해줄 상대도, 생일을 축하해줄 상대도 없다.

목욕을 하고서 캔 맥주 하나를 땄는데, 다 마시지 못했다고 나머지를 마셔줄 사람도 없다. 알고 있었던 일이다.

- 245 page

 

 

 

"그 얼굴."

신 난다는 말투로 에리가 말했다.

"연기 때문에 매워하는 그 얼굴도 정말 좋아요. 나 절대 기억할거야."

"절대 기억해?"

에리의 말투는 때로 아주 묘하다.

"응. 절대 잊지 않을 거란 뜻. 간직한다는 뜻. 사진 찍는 것처럼."

- 301 page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거네."

 

'장미 비파 레몬'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그로인해 초반에는 집중이 잘;;;;)

다양한 시선들로, 그들의 사랑이야기들을 본인들의 방식으로 이야기 해주는데,

옴니버스 방식으로 서로(너무 복잡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잘 얽혀있다.

그리하여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거네! 라고 미소짓게 만들어 준다.

 

장미 비파 레몬을 읽는 내내 나는,

완벽한 남편을 두고도 다른 남자와 몸을 나누는 도우코도 되었다가,

일과 사랑, 우정 모두 가진듯 완벽해 보이지만 정작 가장 외로운 레이코가 되기도 했고,

가정이 있는 남자를 만나며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또 그를 닮은 아기를 낳고 싶어하는 에리가 되기도 했다.

스스로 결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고 뒤늦게 이혼하는 에미코,

언니의 옛 애인을 마음에 두고 한남자만을 바라보고 결국 그 남자가 소개시켜준 사람과 결혼을 결심하는 소우코,

선을 보고 남편과 결혼하여 귀여운 아들을 둔, 그렇지만 언제나 소녀처럼 누군가 손을 내밀어줄 사람을 기다리는 아야,

마흔의 나이에 사랑을 할 것 같다 예감하는 마리에,

직장상사 남편에게 찾아가 당당히 사랑을 달라 말하는 사쿠라코,

남편을 두고 두 살 아래의 남자와 불같은 사랑(온전히 그녀 혼자만의 사랑)을 한 후 남편에게서 남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미치코,

가 되었었다.

그녀들의 감정에 제대로 이입되어 그녀들과 똑같이 반응하고 느꼈다.

제대로  빠져있었다는게 맞는 표현이겠다.

 

과연 현실에선?

그래, 과연 현실에선 이런사랑, 이런상황들이 있기나 할까?

했었지만,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알 수가 없는게 사랑이기에.

우리가 알 지 못하는(표면적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지,) 사랑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굳이 현실과 소설을 구분지을 필요가 있을까-

 

 

에쿠니 가오리가 들려주는 사랑이야기.

 

조용한 카페에 앉아 타인을

(구석 테이블의 밀어를 나누는 연인을-

방금 막 씩씩하게 들어오는 여자의 발걸음을-

창가자리에 앉아 조용조용 책장을 넘기는 그녀의 손짓을-

가볍게 브런치를 즐기는 그녀들의 수다를-)

구경하는 것 처럼 그녀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D

g********7 2008.10.21.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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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결혼,이별 또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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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깐 읽은 무가지에 [20년이 지나도 뜨거운 사랑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기사가 나왔다.  배우자의 사진을 보고 일어나는 뇌의 변화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해서 나온 결과라고 한다. 풋... 그런 결과를 가지고, 정말..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연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의될 수 있을까? 100명이 하는 사랑의 종류는 100가지가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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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잠깐 읽은 무가지에 [20년이 지나도 뜨거운 사랑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기사가 나왔다.

 배우자의 사진을 보고 일어나는 뇌의 변화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해서 나온 결과라고 한다.

풋... 그런 결과를 가지고, 정말..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연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의될 수 있을까?

100명이 하는 사랑의 종류는 100가지가 될 것이다.

[결혼]이라고 정의되는 그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

 

에쿠니가오리의 소설에서는 독특한 관계들이 많이 등장한다.

동성연애자와 우울증환자, 헤어진 연인과 새로운 연인의 만남..

그런 독특한 관계들도 일상인듯 그려내는 담담한 시선이 참 좋았다.

그런 그녀가 드디어 가장 진부하다고 할 수 있는 '불륜'이라는 소재에 손을 댔다.

사실.. 독자들이 보기에 불륜이지, 그냥 일상적인 사랑에 대해 썼을 수도 있다.

사랑과 불륜의 차이는 아마도 타이밍일테니까.

 

불타는 사랑은 아니더라도 사랑했던 사람.

익숙해지면 장점조차 피곤하게 느껴지고 단점에는 질려버리겠지.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아.. 피곤하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너무나 많은 등장인물들.

(익숙하지 않은 일본이름이 기억하기를 더 힘들게 만든다)

그들 사이의 얽히고 설키는 관계.

이책이 드라마나 영화로 나온다면 꼭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잘 만들어진 구성. (인물들이 스쳐가고, 혹은 중첩되는 이미지들..)

마지막에는 각 인물들에 동화되어가고 있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관점들이 계속 바뀌면서 각각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들은

어느 누구하나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

(아.. 좀 이해안되는 인물도 등장하긴 한다.. )

여튼.. 시점이 변하는 부분이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처음에는 읽는데 좀 어려움이 있었지만.. 뒷부분으로 가면서 등장인물들에게 좀 익숙해지고나면.. 그 감정선을 따라 쉴새없이 책장이 넘어간다.

 

그리고.. 끝인지 아닌지 모를정도의 허무한 결말.

아니.. 결말이랄 것 없는 그냥 끝.

관계들을 정리하지도, 어떤 마무리를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사실.. 사는 것도 그렇지 않나?

k****8 2008.11.20.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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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장미 비파 레몬 - 에쿠니 가오리
"[서평]장미 비파 레몬 - 에쿠니 가오리" 내용보기
그냥 그대로 지낼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그대로라면, 하고 에미코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한다. 그냥 그대로라면 뭐 때문에 결혼했다는 말인가. 이미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244p)   오랜만의 가오리 책을 읽는다. 이 감성이 느낌에 젖어드는 것도 오랜만이라 이내 빨려든다. 옮긴이의 말과 함께 해설이 실려있다. 유이카와 케이. 낯설지 않은 작가다. 몇권의 책을 읽은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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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대로 지낼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그대로라면, 하고 에미코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한다. 그냥 그대로라면 뭐 때문에 결혼했다는 말인가. 이미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244p)

 

오랜만의 가오리 책을 읽는다. 이 감성이 느낌에 젖어드는 것도 오랜만이라 이내 빨려든다. 옮긴이의 말과 함께 해설이 실려있다. 유이카와 케이. 낯설지 않은 작가다. 몇권의 책을 읽은 적도 있다. 이렇게 보니 느낌이 비슷한 감성으로 읽히는 것도 같다. 글을 읽으면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펴본다. 등장인물이 많다고 했다. 어느 정도일까 예상을 해본다. 헷갈릴 정도는 아닌 듯 하다. 본격적으로 읽어본다.

 

 

단순하고 명쾌하며 타산이 없는, 즉 불필요한 것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연애는 멋지다고. 그리고 그런 연애는 서로가 결혼한 사람일 때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라고. (311p)

 

여기 한 부부가 있다. 아이는 없다. 개는 한마리 있다. 남편은 일을 한다. 아내는 전업주부이다. 별다르게 일을 해서 돈을 번다든가 하지는 않는다. 오후에는 개를 산책시키러 나간다. 부부 사이에 별 문제는 없다. 그녀의 친구 부부가 있다. 그녀는 늘 바쁘다. 그녀의 남편도 늘 바쁘다. 회사에는 아르바이트생 한명이 있다. 그들도 아이가 없다. 그녀의 결혼식에 부케를 만들어 준 꽂집 주인이 있다. 그녀는 남편과 같이 꽃집을 운영한다. 남편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들에게도 아르바이트생이 있다. 아이는 역시 없다.

이 꽃집에 정기적으로 꽃을 사러 오는 여자가 있다. 아이를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나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들른다. 꽃에 관한 지식은 별로 없어 보인다. 늘 그냥 보이는대로 권하는 대로 사는 편이다. 남편이 있지만 늘 투닥거린다. 뭐 그게 정상 아니겠는가. 일요일이면 그녀는 청소를 하고 남편을 집에서 내보낸다. 빈둥거리는 것이 보기 싫은 것이다. 그 동안 남편은 어디에 가 있을까.

 

- 혼자서 생활하고 있다니, 유혹이 많았을 텐데, 올가미를 식별하는 안목이 있다는 뜻이겠죠. (370p)

 

가오리의 책에는 딱히 누가 주인공이다 라는 개념이 드러나 있지 않다. 한 부부이 이야기가 시작되는가 싶다가도 또 다른 커플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공평하게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 담담함이 바로 그녀의 책을 읽게 하는 힘일 것이다. 늘 불륜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불륜마저도 무채색으로 칠해버려서 그것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없게 만든다.

물론 사랑이 빠지지는 않는다. 활짝 핀 흐드러지게 피어서 진한 향기를 풍기는 장미보다는 그저 아주 흐린 파스텔톤으로 보여질 뿐이다. 전체적으로 그렇게 은은한 바탕에 강렬한 색감을 한방울 톡 아주 가볍게 떨어뜨린다. 그 강렬함은 퍼져 나가서 섞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포인트가 된다. 역시 가오리의 책은 좋다. 뭐라고 왈가왈부할 필요없이 좋다.

빗소리가 들린다. 일기예보에서는 내일도 모레도 이런 날씨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싱크대 위의 형광등 빛, 프라이팬에 담긴 홍당무, 전기밥솥에서 오르는 김. 다짐육 냄새, 양파 냄새, 된장국에 넣을 감자가 삶아지는 냄새. (267p)

이달의 사락 b***8 2021.05.07.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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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이 당당한 소설은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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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사랑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불륜이 소재가 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랑이 잔잔하고 애잔하고 아무리 아름답게 묘사해도 불륜은 불륜이니까....   살아가는 모습도 성격도 다른 여자들. 도우코, 소우코, 미치코, 에미코, 레이코, 에리, 사쿠라코, 마리에, 아야... 그녀들은 결혼을 했거나 하지 않은 사람,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 혹은 사랑을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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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사랑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불륜이 소재가 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랑이 잔잔하고 애잔하고 아무리 아름답게 묘사해도

불륜은 불륜이니까....

 

살아가는 모습도 성격도 다른 여자들.

도우코, 소우코, 미치코, 에미코, 레이코, 에리, 사쿠라코, 마리에, 아야...

그녀들은 결혼을 했거나 하지 않은 사람,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 혹은 사랑을 맞이하는 사람,

또는 사랑에 빠져들거나 집착하는 사람등 다양한 모습으로

다른 삶을 이야기 한다.

 

어떤 삶을 살든 모두들 고독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고독함을 몸부림 치지도 않고 사랑해 달라고 외치지도 않지만

웃긴것은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

집착하기도 한다.

 

내가 이런 소설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너무도 쿨한 여자들.

힘들다는 소리 한번 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기에는 당당하고 멋지고 부유한

걱정이 없어 보이는 여자들이지만

속으로는 외롭고 힘들고 아픈 사람들...

하지만 그 방법이 다른 사랑을 찾는다는 것에는 별로

공감하지 못하겠다.

 

결혼은...

생각하는 것 만큼 달콤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다.

끝없는 인내와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참고 인내하는 이유는 또한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기때문이다.

 

책에서 처럼 그런 이유들로 다른 사랑을 찾는 다면

현실에서 결혼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부부가 과연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결혼한 지 오래된 사람들에게

사랑. 연애....

참 좋은 말이지만, 너무 행복하겠지만 그 불가사의하고 감미로운 존재앞에서

흔들리지 않은 것 또한 지금의 내가 지켜야 할 사랑은 아닐까 싶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0.11.15.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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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비파 레몬>
"<장미 비파 레몬>" 내용보기
아홉 명이나 되는 여인들이 등장해 그녀들만의 일상을 공개한다. <장미 비파 레몬>을 통해서.   일본 소설을 읽어도 일본인 이름에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는 통에 아홉 명의 여인들을 포함해 그녀들의 남편들, 남자친구들, 이웃들의 이름까지 열 명이 훌쩍 넘는 인물들을 머릿속에서 구분 짓고 알아두려니 책읽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평범한 가정주부인 도우코,
"<장미 비파 레몬>" 내용보기


 


  아홉 명이나 되는 여인들이 등장해 그녀들만의 일상을 공개한다. <장미 비파 레몬>을 통해서.


  일본 소설을 읽어도 일본인 이름에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는 통에 아홉 명의 여인들을 포함해 그녀들의 남편들, 남자친구들, 이웃들의 이름까지 열 명이 훌쩍 넘는 인물들을 머릿속에서 구분 짓고 알아두려니 책읽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평범한 가정주부인 도우코, 미치코, 아야, 잡지 편집회사에서 일하는 레이코, 아담한 꽃집을 운영하는 에미코, 회사원 마리에, 소우코, 모델 에리, 학생인 사쿠라코 등 이렇게 9명의 여성들은 각각의 지위와 역할에서 타인들과의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때로는 끊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의 인연은 알게 모르게 얽히고설켜 꽤나 복잡하다. 바람이라고, 혹은 외도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감정, 사랑하는 이를 두고 다른 이로부터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에쿠니 가오리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담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녀들의 일상은 평범하다면 아주 평범하면서도 독특하다면 정말 독특하다. 겉으로는 완벽하고 행복해 보이는 그녀들의 일상은 크게 부족할 것도 없고 크게 불만족스러운 것도 없지만, 뭔지 모를 것에 쓸쓸해하기도 하고 한숨짓는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서로의 이야기를 넘나든다. 뚜렷한 경계 없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오가며 전개되고 있었다. 처음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런 전개는 책을 읽어나갈수록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들 덕분에 우리가 너무 행복을 좇아가려고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혼은 무조건 행복해야만 한다고, 사랑 역시 늘 행복으로 귀결되어야한다고 말이다. 물론 온전히 맞는 말일 테지만, 어느 날 만약 행복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걱정하며 사는 것 같다. 그런 걱정들을 안고 살면서 우리가 오히려 행복을 온몸으로 밀어내는 것은 아닐까.


  타인과 자신 사이에 놓인 어둠이 무엇인지 모색하기가 귀찮아지면 이미 때는 늦어버리는 것처럼 평균적으로 두루두루, 대충, 그런 걸 하니까 연애를 못하는 거라는 말, 일리 있는 말이다. 아주 작은 소소한 일상들, 감정이라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가는 일상들이 에쿠니 가오리를 통해서, 그리고 <장미 비파 레몬>이라는 이름을 빌어, 하나하나 의미를 갖고 특별하게 새로이 태어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이 책의 제목, 어떤 의미일까?

  장미, 아름답고, 레몬, 상큼하고, 비파, 달콤한데,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고, 상큼하지만 많으면 좋지 않고, 달콤하지만 온도를 조절해주지 않으면 갑작스럽게 죽기도 하는, 뭐 그런 것? 잘 모르겠다. 어차피 책은 읽는 사람 마음이니까, 라는 무책임한 생각도 해본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는

       오래도록 함께한 사람을

       가장 사랑했다고 생각하게 되겠지,

       아마.


       연기 때문에 매워하는 그 얼굴도 정말 좋아요,

       나 절대 기억할거야.

       절대 기억해?

       응. 절대 잊지 않을 거란 뜻. 간직한다는 뜻. 사진 찍는 것처럼.


    



k*******5 2009.0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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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칠맛나는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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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과 '도쿄타워'란 소설을 재밌게 읽고 에쿠니 가오리의 팬이 되어 버렸다. 이번에 나온 이 책 역시 에쿠니 가오리만의 살아있는듯한 감정처리와 미묘한 시선... 책을 읽는 내내 난 이 책의 9명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는 한가로운 오후. 이 책과 함께라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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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과 '도쿄타워'란 소설을

재밌게 읽고 에쿠니 가오리의 팬이 되어 버렸다.

이번에 나온 이 책 역시 에쿠니 가오리만의

살아있는듯한 감정처리와 미묘한 시선...

책을 읽는 내내 난 이 책의 9명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는 한가로운 오후.

이 책과 함께라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m*****0 2008.11.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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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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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소설로 읽히기 보다는 감성적인 에세이가 더 어울릴듯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많이 접해본 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라는 작품은 특히 가장 많이 공감했던 이야기였다. 어떤 작품들은 에쿠니 가오리의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녀의 작품은 여성의 감성을 표출하고 공유하게끔 하는 힘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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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소설로 읽히기 보다는 감성적인 에세이가 더 어울릴듯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많이 접해본 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라는 작품은 특히 가장 많이 공감했던 이야기였다. 어떤 작품들은 에쿠니 가오리의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녀의 작품은 여성의 감성을 표출하고 공유하게끔 하는 힘을 지닌 것만은 분명하다. <장미 비파 레몬>도 스토리로만 따지자면 일본 소설의 가장 흔한 특징인 부부나 연인 사이의 권태로 인한 불륜을 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의 속깊은 사정을 잠시라도 생각해 볼만한 나이가 되다보니, 그들의 감정 중 어떤 부분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을 뿐더러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기만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되었다.

 

부부란 대부분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관계이지만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낳고 몇십년을 같이 지내다 보면 서로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시간의 틈이 생기기 마련인 것 같다. 그 틈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이후의 관계가 재설정된다고 보여지는데, 이 소설은 그런 다양한 관계의 틈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있다. 틈새에 새로운 관계가 끼어들었을 때, 시간이 멈춘 느낌, 잊고 있었던 자신을 되찾은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신이치의 감정에 공감하기도 했다. 서로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아홉명의 여자들과 그 주변의 남자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한가지 공통된 점이 있다면 바로 고독이라는 기본 밑그림으로 깔려 있다는 것이다. 결국 고독과 사랑은 서로의 필요한 부분을 보충해주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지나치면 고독이 그립고 고독이 지배하게 되면 사랑이 고파지니 말이다

l********d 2011.07.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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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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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 책을 만난 시기 나는 지쳐 있었다. 일에 지쳤으며 이른 장마에 지쳤으며 누군가를 향한 마음에도 지쳤을 것이다. 수업을 취소하고 무작정 서점으로 달려간 이유는 아슬아슬한 내 무게 때문이었다. 바늘 하나에 허리가 부러질 수도 있다는 말을 되뇌이며 달려간 서점에서 무릎을 쫙 피고 책을 읽어 내려가며 안도한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냄새를 맡으며 책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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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 책을 만난 시기 나는 지쳐 있었다. 일에 지쳤으며 이른 장마에 지쳤으며 누군가를 향한 마음에도 지쳤을 것이다. 수업을 취소하고 무작정 서점으로 달려간 이유는 아슬아슬한 내 무게 때문이었다. 바늘 하나에 허리가 부러질 수도 있다는 말을 되뇌이며 달려간 서점에서 무릎을 쫙 피고 책을 읽어 내려가며 안도한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냄새를 맡으며 책을 읽으며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 이 가슴 시린 아픔도, 이 습한 공기도, 당신을 향한 열망도 다 지나 갈거야, 괜찮아.'

 

 한 가득 책을 안고 나와 차 속에 책을 내려놓자마자 울음이 터지고 만다. 대체 이 서글픔은, 이 외로 움은 어디서 오는 것이기에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도 결국 터지고 마는 것일까? 대체 무얼 찾고 싶기에 무얼 갖고 싶기에 내 삶은 이렇게 바람이 통하고 구멍이 뚫린 것일까?

 

 아무 일도 없는데 가슴에 바람이 불 때 떠 오르는 작가가 에쿠니 가오리이다. 그녀의 글 속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는 일상이 있으며 그 일상 속을 들여다보면  미세한 금과 정제된 감정들, 곧 터질듯 불안한 주인공들의 감정들이 보인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나이대에 들어선 사람들 누구에게나 있을 무언가로부터의 어긋남, 틈을 그녀보다 잘 이야기하는 작가를 아직은 만나보지 못했다.

 

 에쿠니 가오리는 소설 속에서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는 듯 보인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면 그들 스스로 살아간다, 삶을. 그저 에쿠니 가오리는 그들의 모습을 글로 적고 그들의 감정을 옮겨 적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등장인물들은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처럼 살아간다. 정지된 듯 보이지만 분명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그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고, 우박이 될 수도 있으며 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책에 빠져들면서 깨닫는다. 어쩌면 에쿠니 가오리는 바람이고 등장인물들은 구름인걸지도. 바람은 아주 조용히 움직이게 한다, 구름을. 독자가 눈치채지 못 할만큼 천천히. 그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삶은 평온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그렇게 하고 싶은 다양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펼쳐진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 속에 이렇게나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는 것에 놀라고만다. 그들 각각의 삶에 아슬아슬한 바람이 분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고 각자의 가슴에 박혀있는 투명한 얼음같은 상처에 가슴을 내려 놓고야 만다.

 

 어찌하여 인간이란 이렇게 약하고 외로운 생물인채로 자라는 것일까? 스스로의 나약함을 숨기려 하면 할수록 혼자 큰 침대에 누워 무릎을 꼭 안고 자야할 밤이 많아지고 케니지의 음악을 혼자 들으며 가슴 깊은 곳에 숨겨진 고독을 곱씹으며 햇살의 한 줌에 위로받는 안타까운 존재인 것일까? 누군가에게 상처 받고 아파함에도 어찌하여 인간은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몇 번의 사랑 혹은 한 번의 사랑으로 인해 가슴 속 깊이 아프고 아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나약하지만 따뜻한 생물인걸까?

 

  이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안아주고 싶다. 그들은 분명 더 많이 넘어지고 더 많이 울 것이며 더 많이 소리를 지를 것이며 더 많이 주저앉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슴에 사랑을 집어넣고 가슴을 불태울 것이다, 스스로를 상처내면서도. 사람이기에. 어른이라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의 삶에 바람이 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두고 온 것이 많아서, 지난 사랑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안쓰러워서, 사랑한 이를 보내는 일이 서툴러서 우리의 삶에는 분명 바람이 분다. 그 바람마저 사랑스럽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기존의 에쿠니 가오리의 책에서 얻었던 소리 없는 위로는 이 책에서 받지는 못했지만 한번 더 이 책을 읽는다면 노을처럼 알싸한 위로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YES마니아 : 로얄 n******7 2009.07.29.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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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비파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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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 지음 소담출판사    이 소설은 제1장 '어느 멋진 날'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제26장인 '어느 여름날'로 끝나는 세 여자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각각의 이야기를 장 별로 구분해서 묘사한 것도 아니고 해서 초반에는 참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혼미하게 시작되었다. 도우코의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단락이 끝나고 에미코의 이야기로 접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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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 지음

소담출판사

 

 이 소설은 제1장 '어느 멋진 날'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제26장인 '어느 여름날'로 끝나는 세 여자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각각의 이야기를 장 별로 구분해서 묘사한 것도 아니고 해서 초반에는 참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혼미하게 시작되었다. 도우코의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단락이 끝나고 에미코의 이야기로 접어들었고, 또 레이코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나 했더니 도우코의 여동생인 소우코가 나타났다. 물론 중후반 부터는 이내 적응해 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옮긴이 김난주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속이 텅 빈 행복만을 붙잡은 채 결혼이란 틀을 고집하는 여자, 자신에게 있어서는 철저하리만큼 완벽하지만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지 못하는 여자, 상대방에게 사랑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만을 낳길 원하는 여자, 직장 상사의 남편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여자. 이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불완전한 존재이다.'라고….

여기서 속이 텅 빈 행복만을 붙잡은 채 결혼이라는 틀을 고집하는 여자는 바로 도오쿠를 말한다. 프리지어를 좋아하는 도우코는 야마기시와 3년 간을 연애하다가 불현듯 미즈누마 이쿠오와 결혼을 감행하고 무난하게 잘 살고 있는 듯 하지만, 산책길에서 만난 곤도 신이치와 매주 뜨거운 불륜의 사랑을 나눈다.

도우코의 갑작스런 변심에 상처를 받은 야마기시는 우연히 만난 동창 미치코와 결혼하지만, 미치코는 연하의 남자와 바람이 났다가 그에게 차이는 바람에 다시 집에 안주해 버린 껍데기 같은 결혼생활을 유지해간다. 그만큼 야마기시 도모야에게 여자란 상처를 주는 존재일 뿐일 듯하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철저하리만큼 완벽하지만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지 못하는 여자는 레이코로 내가 생각할 때는 외도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묵인하는 것 같다. 레이코의 남편은 츠지야 다모츠로 다케다 에리와 고지마 사쿠라코 등 애인이 줄을 선 소위 여복이 넘치는 사람이다.

남편 시노하라와 함께 꽃집을 운영하는 에미코는 제 3자가 봤을 때는 별다른 이유없이 이혼을 감행한다. 그리고 남편 시노하라와 동업자 관계만을 유지하다, 그마저도 정리하게 되고 홀로 캠프까지 다녀오는 독특한 여성이다. 그러니 결국 제일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이 에미코라고 하겠다. 그 긴 시간을 아기를 가질 생각도 안하고, 그저 사는 거지 딱히 문제가 될 것도 없는데 왜 이혼은 하며, 청승맞은 것도 유분수이지 캠프를 혼자서 다녀오다니…,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뭐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한다면, 모두 이혼 도장을 찍어야 할 판일껄? 아마도~

도우코의 여동생인 소우코는 레이코의 홈파티에 직장 선배인 독신 마리에와 참석하곤 하는데, 언니 도우코의 애인이었고, 그 이후에 오랫동안 흠모해오던 야마기시의 소개로 후지오카를 만나 결국 결혼을 결정하게 된다.

상대방에게 사랑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만을 낳길 원하는 여자는 츠지야 다모츠와 모델과 카메라맨으로 만나 애인 사이가 된 다케다 에리이다.

직장 상사의 남편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여자는 여기 등장하는 여자들 중에서 가장 어린 편집 일을 하는 레이코 회사의 알바 생으로 고지마 사쿠라코이다. 레이코가 주최한 홈파티에서 레이코의 남편인 츠지야 다모츠를 만나 그에게 저돌적으로 달려든 무모해보이는 청춘이다.

이상하게 등장인물의 풀네임에 집착하는 나는 일일히 등장인물을 포스트 잇에 써가면서, 시험공부 하듯 정리해가며 책을 읽는 특이한 습성이 있다.

2014.4.23.(수)  두뽀사리~

 



i***2 2014.04.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