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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평생의 희로애락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숟가락 하나, 밥 한 그릇이리라. 제일가는 부자라도 열 그릇을 먹을 순 없고 가장 빈한한 이에게도 한 그릇은 돌아가야 하는 것. 그러니가 밥은 물이나 공기 같은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분명하게 밥은 공기가 아니다. 쌀도 보리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키워낸다. 심고 키우고 털고 찧는다. 그러나 그 누군가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농민일까. 하늘일까. 흙일까. 그 모두일까. p5 책머리에 -농사직는 소설가 최용탁-
고등학교 다닐 때 쌀소비 촉진 운동을 한다며 하루 세끼 밥을 꼬박 먹었던 기억이 난다. 식당에 가서도 무조건 쌀밥이 들어간 음식을 주문했었다. 군것질도 떡으로 했다. 그런데 그 쌀이 미국산이란 사실을 알고나서부턴 나의 쌀소비 촉진 운동도 끝나고 말았다. 참 미련한 운동이었다. 그런데 요즘도 쌀이 많이 남아 돈다고 한다. 기업들이 쌀이 들어간 가공식품을 만들어 내도 쌀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에따라 농사짓는 인구도 점점 줄어든다. 자연히 쉬는 논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아무도 만석꾼의 꿈을 꾸지 않는다. 부의 척도가 땅이 되었을지언정 볏섬이 아닌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타작하는 들녘에 꽹과리와 징이 울리고 열두 발 상모가 돌아가도 예전의 흥이 이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쌀이 귀한 세상이 아니다. 농민도 사라져가고 논도 사라져간다. p33
이 책에서 논이 떠맡고 있는 하고많은 일들을 이렇게 나열하고 있다. 1.홍수 조절기능 2.지하수 저장 3.배기가스로 오염된 대기를 정화하는 기능 4.수질정화 5.한 여름 대기의 온도를 낮추는 역할 6.논둑으로 인해 흙이 물에 쓸려 내려가는 것 방지 그 밖에도 생태계를 보존, 녹지 공간으로 환경을 보존, 도시민들의 심신을 어루만져주는 기능 뭐.. 어디 이뿐이겠는가? 생각해 보면 논이라는 존재가 꼭 쌀 생산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 생활에 정말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고마움도 모르고 관심 밖의 일로만 생각했다니...
논은 온갖 생명의 기원이 된다. 쌀을 키워내고 그 쌀로 인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논에 사는 작은 생명들과 그 작은 생명을 먹고 자라는 다른 생명들... 모든 생명들을 포용하고 있는 논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논을 닮을 수 있다면...
논의 푸르른 생명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거짓을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생긴다. 황금 들녘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넉넉해지고 겸손해 진다. 모든게 지나간 허허 벌판에 서면 무언가 다시 시작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 솟는다.
우리의 논, 오랜만에 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것 같다. 오늘 하루도 감사히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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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9 《논, 밥 한 그릇의 시원》 최수연 마고북스 2008.10.1. 물은 흙 속에 있는 양분을 녹여 벼에 전달한다. 다시 말해 공기에 있는 양분이나 흙 속에 있는 양분을 물에 녹여 벼가 빨아들이기 쉬운 형태로 바꿔 주는 역할을 한다. (46쪽) 논이 하는 일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일차적으로 쌀을 생산해서 밥을 먹게 해 주고 거대한 녹지공간을 제공해 몸과 마음을 안락하게 해 준다. 논의 공익적 기능을 생각하면 우리가 먹는 쌀은 조금 과장되게 부차적인 생산물이라고까지 생각할 수도 있다. (50쪽) 논을 나타내는 다른 표현으로 섬지기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볍씨 한 섬의 모 또는 씨앗을 심을 만한 넓이를 나타낸다. 즉, 한 섬지기는 한 마지기의 열 배인 약 2∼3천 평의 논을 가리킨다. (56쪽) 겨울이면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치고 멍석을 짠다. 그 모두가 짚이 재료다. 신도 삼고 다래끼도 만들고 이엉도 얹는다. 콩깍지와 함께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가마솥에서 끓어 넘치던 소여물도 바로 짚이다. (130쪽) 가을이 되어 나락을 베는 철입니다. 요새는 나락을 기계로 말리기도 하지만, 자동차가 뜸한 두멧시골에서는 길바닥에 나락을 죽 펼쳐서 말립니다. 어쩌다가 자동차가 지나가는 시골에서는 널따란 찻길은 나락이며 깨이며 콩을 말리기에 무척 좋은 마당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한때 논을 늘리려고 갯벌을 메꾸었습니다. 꽤 너른 갯벌이 논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논뿐 아니라 갯벌도 우리 터전에서 매우 대수롭습니다. 논이 하는 구실이 있듯이 갯벌이 하는 몫이 있어요. 둘 가운데 어느 하나만 넓어야 하지 않습니다. 둘은 나란히 들하고 바다를 살찌우는 밑바탕입니다. 《논, 밥 한 그릇의 시원》(최수연, 마고북스, 2008)을 읽습니다. 이 책을 누가 읽으려나 하고 헤아립니다. 누구보다 시골 지자체 군수를 비롯해, 군청 공무원이 좀 읽을 노릇이지 싶습니다. 시골 논을 밀어내어 발전소라든지 공장이라든지 비행장이라든지 관광단지로 바꾸고 싶어하는 산업개발과 공무원부터 이 책을 읽어야지 싶어요. 시골에서 살며 시골 공무원을 지켜보자면, 거의 모든 시골 공무원이 이웃 큰도시 아파트나 읍내 아파트에 살면서 자가용으로 다니는구나 싶습니다. 읍이나 면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흙집에 살며 공무원살림을 잇는 이는 매우 드물지 싶어요. 시골 공무원으로서 늘 논이나 갯벌을 바라보는 집에서 살지 않는다면, 들녘이나 숲이나 멧골이나 바다를 언제나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시멘트 군청 건물 책상맡에만 앉는다면, 이들은 어떤 행정을 펴려나요? 밥을 얻는 논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삶터로 있는 논입니다. 어른은 일하는 자리요, 아이는 놀이하는 자리인 들판입니다. 사람은 풀열매를 얻는 터이며, 새랑 풀벌레랑 민물고기는 곁에서 고이 어우러지는 터이지요. 아파트를 줄여 숲으로 바꾸어야지 싶습니다. 찻길을 줄여 논밭이나 풀밭으로 돌려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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