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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조용하고 있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너무도 충분했다.
그만큼, 호기심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지고 너무도 오랜만에 읽는 동화란 생각에 한달음에 읽었지만, 결코 짧은 시간내에 읽고 싶지는 않았던 책이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여운은 너무도 길고, 지금도 바로 조금전 읽었던 듯이 생생하기만 하고 나도 때론 새가 되고 싶고 또한 산이 되고 싶은 행복한 상상을 해보았다.
아마도 제목을 "산을 사랑한 새"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산의 그 넉넉하고 넓은 마음과 깊게 자리한 그 마음속에 조이와 같은 "새"가 있었기에 산이 산다워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1년에 꼭한번 그것도 잠시 머무르는 동안을 연이어 오랜기간 산에게 씨앗을 가져다주고, 산에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조이는 너무도 아름다운 날개짓을 한 것이 아닐까..
나는 산보다 '조이'이고 싶다. 누군가에게 영원토록 어떤 조건도 없이 그저 묵묵히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내가 있어 기쁨이 될 수 있는 그런 조이(joy)이고 싶다.
또한 그러한 기쁨이, 단 하루, 그것도 단 하루의 몇 시간만을 위하여 아무조건 없이 그렇게 364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그것도 모자라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영원한 기쁨이 되는 그러한 조이이고 싶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단 1번뿐인 이 삶을, 누군가에게 영원한 기쁨이 되도록 조이와 같은 364일의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 되기 위하여 나의 삶을 끊임없이 날개짓하는 그러한 삶, 그러한 인생을 위해 매일의 노력과 겸허한 마음을 지니는 그러한 조이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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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로 이 아름다운 책을 표현해야 할까. 다른 산들은 내가 오는지 가는지 관심조차 없었는데......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났다. 그렇게 해를 거듭해 찾아와 노래를 불러주었지만 이 책을 읽기 이전에 읽었던 찬사는 책을 읽고나서 더 찬란한 빛으로 내게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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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이 아주 잘 어우러져 있는 아주 뛰어난 작품이다.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고나면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사실적인 자연묘사와 차분하면서도 밝은 칼라톤의 그림 그리고 잔잔한 글이 감동의 물결로, 새와 산의 사랑의 대화가 따뜻함으로 감싸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바위로만 이루어진 아무도 찾지 않는, 생물을 알지 못하는 바위산에 어느 날 새‘조이’가 날아와 앉는다. 모든 것이 신기한 산은 조이에게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되겠니?”하고 묻는다. 조이는 산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함께 살 순 없지만 매년 찾아올 것을 약속한다. 새는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자신이 죽으면 자기의 자녀한테 그 자녀가 죽으면 또 그 자녀에게 말해서 영원히 봄마다 찾아와 인사를 건네며 노래해 줄 것을 약속한다. 조이는 그 약속을 지켰고, 조이의 후손 ‘조이’도 백년의 세월동안 약속을 지켜 찾아온다. ‘조이’가 그리운 산의 가슴은 무너져 내려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 개울을 이룬다... 조이는 바위산에 올 때마다 씨앗을 갖다 떨어뜨린다. 해가 거듭될수록 산은 초록으로 점점 물들어간다. 이제 산에는 온갖 동식물이 서식하게 되고, 조이는 나뭇가지를 물고 와 둥지를 튼다. “산아, 이제 너랑 영원히 함께하려고 왔단다.” 8살 아들과 6살 딸과 함께 읽었다. 우리 모두 정말 행복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새를 사랑한 산’이 아니라 ‘산을 사랑한 새’ 아니야 라고 물었다. 아이들의 말에 공감하며 원제를 보았다. ‘새를 사랑한 산’이 맞았다. 그러나 ‘산을 사랑한 새’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제목은 ‘새를 사랑한 산’이지만 새가 보여준 사랑은 산이 보여준 것 이상으로 깊고 큰 것이었다. 물론 산은 새가 그리워 큰 슬픔에 잠기기는 하지만, 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를 이어가며 해마다 바위산을 찾아온 것이 보다 더 큰 사랑으로 느끼진다. 새는 해마다 씨앗을 가져다 뿌리고 인내심있게 기다려 마침내 서로 함께 영원히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말한다. ‘산아, 이제 너랑 영원히 함께 하려고 왔단다.’ 조이가 가져온 씨가 뿌리를 내려 산의 가슴 깊은 곳을 보듬어 줄 때에야 비로소 산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고 슬픔이 한없는 기쁨과 사랑으로 바뀐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산이 새에 대해서 보여준 사랑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산의 깊은 사랑은 어쩌면 산의 울음에서 표현되고 있는지 모른다. 새가 뿌린 씨앗은 산의 슬픔을 통해 싹을 띄울 수 있었고, 풍성한 숲을 이루게 되고 마침내 새와 산은 함께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랑은 기다려 주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 걸릴지라도 상대방을 신뢰하고 기다려줄 때 마침 내 사랑은 꽃을 피운다. 새는 척박하고 불모지인 땅에 해마다 씨를 뿌린다. 마침내 산은 풍성하고 생명이 넘치는 숲으로 바뀐다.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도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이들은 이런 세상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운 가득한 소망만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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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사랑한 산...
바위로만 되어있고 아무것도 없는 한 산에 새 한마리가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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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이 참 아름다운 책이예요.
바위로만 이루어졌던 산... 변할 것같지 않은 그 산이 새를 사랑하면서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네요. 동물도, 새도, 벌레조차도 살 수 없었던 그 바위산이 어느날 찾아온 새 '조이'를 사랑하게 되요.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되겠니?" 간절히 바라지만 음식과 물이 없는 그곳에 새가 살 수는 없어요. 대신 매년 봄에 오겠다고 약속을 한답니다. 많은 산에서 쉬었지만 그 어떤 산도 새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바위산은 다시 와달라고 합니다. 새는 오래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자녀에게 또 그 자녀에게 이름을 '조이'라 지어주고 그 산에 오는 방법도 알려주겠다고 약속을 하네요. 아흔 아홉 해가 지나고 백 년째 되는 해 봄까지도 계속 조이가 찾아와요. 산이 다시 묻습니다. "제발....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되겠니?" "미안하지만 안 돼. 내년에 또 올게." 조이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산은 가슴이 갑자기 무너져 내려요. 단단했던 돌 사이에서 눈물이 용솟음칩니다. 눈물 개울이 흐르게 되고 다음 해에 온 조이는 잠시 또 머물르고 떠납니다. 다음 해 봄 조이는 조그마한 씨앗을 가지고 돌아와요. 또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 봄에도... 그러는 사이 뿌리를 내린 식품들이 눈물 개울 근처의 바위를 부드럽게 했네요. 세월이 흘러... 개울은 산 주변의 평지에 온갖 생물들을 모았어요. 또 봄이 되었고... 조이는 산에 자란 나무에 둥지를 틀었답니다.
조이가 산과 함께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참 오랜시간이 걸렸네요. 그리고 함께 하게된 '조이'는 산이 처음만났던 '조이'는 아니지요. 하지만 산은 앞으로는 영원히 조이와 함께 하게 되었네요. 봄뿐만이 아닌 사계절을~* 산이 새에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새가 잊지않고 매년 오게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수많은 산 중에 한 곳이었는데 매년 꼭 와야되는 특별한 곳이 되었고 그리움이 눈물 개울을 만들어 생물들이 살 수 있게 되었네요. 하나씩 하나씩 몇 해에 걸쳐 씨앗을 물고 날아온 조이의 인내심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휴대폰이 생기다 보니 기다리는 것이 참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드라마도 16부작 안에 모든 것이 해결되다 보니~ 결과를 빨리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마음이 있답니다. 백년도 넘어 계속되어온 산과 새의 한결같은 사랑이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앨리스 맥레런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따뜻한 마음까지 느끼게 되어서 책이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한 마을에서 살게된 한국인 친구에 대한 우정, 그림에 대한 감사함, 장소를 뛰어넘은 번역자와의 우정 그리고 한국 출판사에 대한 감사가 적힌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답니다. 작가의 바람처럼 가슴에 오래오래 남을 책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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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고독으로 황무지 같이 메마른 가슴으로 수세월을 살아온 바위산과 오랜 여행으로 힘들고 굶주리고 목마름에 지친 작고 아름다운 새 조이의 이야기.
해와 바람과 비와 눈 그리고 하늘만 보고 느끼며 살아가다 어느날 찾아온 조이에게서 그 동안 접하지 못했던 신기한 것들을 보고 느낀 바위산. (조이의 작은 발톱이 콕콕대는 느낌, 보드라운 깃털의 뽀송한 촉감들.) 많은 산들을 다녀 봤지만 자기에게 다정스런 관심을 가져준 것은 바위산이 처음인 조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벗이 될 수 있을텐데도 바위산에겐 조이에게 꼭 필요한 물,음식 그리고 둥지를 틀수 있는 큰 나무가 없기에 떠나야 하는 조이와 떠나 보내는 바위산의 안타까운 심정들.
대대손손 매해 봄이면 꼭 찾아 오겠다고 약속하는 조이. 그 약속은 백년이 넘도록 지켜 지지만 잠시 왔다 떠나는 조이를 보낼때의 안타까움은 세월의 크기만큼 더해지는 바위산.
세월이 많이 지난 어느날 조이가 물고온 씨앗을 시초로 물,나무,동물들이 사는 아름다운 곳으로 변한 바위산. 그리고 맨 처음 물고온 씨앗이 자라 서된 가장 큰 나무에 둥지를 트는 조이 이제는 언제나 조이와 바위산 함께 할수 있답니다
사랑은 기다림인가 봅니다 인내와 부단한 노력이 함께하는 기다림... 그리고 서로에 대한 애틋하고 따뜻한 배려와 관심 조이와 바위산의 사랑에서 그소중한 진실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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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따뜻한 책 한권이 나에게 왔다. 아름다운 그림과 서정적인 내용들... 새와 산과 눈물과 아픔과 그리고 기쁨이 들어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가르쳐 주는 책이다.
사랑은 관심에서 출발한다. 바위산이 조이에게 관심을 가졌을때, 조이도 기뻐하며 관심을 가져 준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둘의 관계가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사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바위산의 다시 또 와달라는 부탁에 조이는 약속을 지킨다. 조이의 자녀 그리고 또 그의 자녀 그리고 또 그의 자녀들은 계속적으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위산에 들른다. 사랑은 인내하는 것이다. 바위산은 조이가 오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항상 조이를 기다렸다. 한해에 한번 오는 조이를 기다렸으며 보내는 것을 힘들어했다. 사랑은 견디는 것이다. 바위산은 어떻게 할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그냥 조이가 자기랑 같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슬퍼하며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냥 울기밖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저 울며 견뎌내는것....그때 바위틈 속에서 눈물의 시내가 흐르기 시작한다. 사랑은 충만한 것이다. 조이가 물어다 준 씨앗이 바위산의 눈물을 통해 온갖 아름다운 창조물로 충만하게 만든다. 바위산은 더이상 바위산이 아니다.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먹고 쉬는 아름다운 동산이 된다. 사랑은 행복한 것이다. 조이는 바위산과 같이 살려고 둥지를 만든다. 조이는 행복한 마음으로 둥지를 튼다. 바위산도 행복했겠지...
사랑에 대해서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동화다 동화를 읽다가 아주 가끔씩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나기도 하는데,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새를 사랑한 산을 읽으며 눈가가 촉촉히 젖었다. 아이를 위한 동화이기도 하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이기도 한것 같다. 소장하고픈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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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산이 새를 사랑하면서 어떻게 변했는가를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모습을 본다. 처음 한번 읽었을 때는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일까? 도대체 이런 이야기를 왜 썼을까에 대한 의문점 투성이였다. 어떻게 산이 새를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부터 시작해서, 새가 떠났다고 하여 울음을 터트리는 산에 대한 이야기, 새가 계속 해서 몇번인가 오가게 되면서부터 산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설정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새 한마리가 찾아온 것으로 시작해서 바위산이 푸른 산으로 바뀔 수 있을까? 이건 도대체 무슨 뜻인지조차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산이 뭘까? 도대체 산이 뭐기에 잠깐 스쳐 지나갔던 새를 저렇게 사랑하고, 새를 사랑하다가 보니까 자신이 변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진짜일까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가지 정리되는 것은 산과 같이 황량하고 바위만 있는 것이 내 마음이 아닐까 였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바로 이 꽃이라는 시가 담고 있는 것처럼, 산에게 있어서 의미 없는 새 한마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이 새를 사랑하다가 보니까, 자신이 푸른 산, 물이 풍성한 계곡으로 변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살게 되면 풍성한 삶을 유지하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바로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것이라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이 책은 어른들이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어릴 적에 가슴 속에 가지고 있었던 꿈들, 그 꿈이 갇혀 있는 장소, 그러다가 아예 바위처럼 전혀 미동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어른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감정도 굳어버리고, 꿈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어른들이 한번 읽어 봤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인하여 바위산이 푸른 숲으로 변했던 것처럼, 이 시대의 무력한 어른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앞에서 풍성하고 푸른 나무를 가지고 있는 숲으로 변화되는 모습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핀란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전후 배상금으로 모든 것을 다 지불해놓고 보니까, 나라 경제가 파탄이었단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무를 심었는데, 나무는 계속 죽었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나무를 심고 심고, 심었더니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목재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단다. 이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한다고 하면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쉽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으면서 산과 같이 변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모습이 훨씬 더 많은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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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한창인 10월에 만난 가을과 너무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앨리스 맥레런의 새를 사랑한 산은 너무도 잔잔한 책입니다. 이른 아침 깊은 산속 넓은 호수의 평온함에 작은 돌맹이 하나 덩지자 고요히 퍼져가는 동심원의 파장과 같은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처음 책을 손에 쥐고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또 읽고 또 읽고 하기를 몇차례반복하였습니다. 그렇게 나와 새를 사랑한 산은 만남을 시작하였습니다.
바위 투성이의 황량한 산을 찾는 죠이를 통해 사랑을 배웠습니다.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죠이를 보면서 사랑은 댓가를 바라지 않음을 배웁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는 것이 너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죠이가 그의 딸 죠이에게 또 그의 딸의 딸 죠이에게 그렇게 많은 세월을 끊임없이 변하지 않는 사랑을 품고 산을 찾는 모습이 인스턴트에 빠져있는 현대인의 마음에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사랑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깨닫게합니다. 바위산도 그 사랑에 감동이 되었는지 외로움은 그리움으로 그리고 설레임으로 그리고는 이별의 슬픔을 가지면서 풍부한 감성을 갖게 됩니다. 결국 자신 속에서 풍성한 자양분을 만들고 여기에 죠이는 씨를 뿌리는 모습은 가히 압권입니다. 씨를 품은 산은 자신을 부수어 나무의 뿌리를 받아들이고 나무는 숲을 이루어 갑니다. 결국 산은 사랑하는 죠이와 함께 살게 됩니다. 처음 죠이만을 소유하고 했던 산은 내면의 변화를 통해 죠이와 함께 하는 방법을 익히게 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배우게 하지요.
책을 통해 조급하지 않는 사랑을 배웠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가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이제 죠이와 산의 만남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 가야겠어요. 누군가 해주길 바라지말고 나부터 변하고 시작하겠습니다.오늘도 나의 가슴에는 죠이가 찾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 새를 사랑한 산은 나의 가슴에 한글자 한글자 새겨져 가고 있습니다.
모두 행복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