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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가 뜬금없이 열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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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제목이 <색깔>을 먹는 나무라길래 나름 판타지 동화쯤으로 생각했었다. 카멜레온처럼 이색 저색으로 바뀌면서 색깔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풍경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래된 나무 이야기를 말이다. 그런데 웬 걸? 처음부터 <영어교육>과 <조기유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니 <해외입양>의 문제를 지적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색깔 먹는 나무>는 이야기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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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보고는...

  제목이 <색깔>을 먹는 나무라길래 나름 판타지 동화쯤으로 생각했었다. 카멜레온처럼 이색 저색으로 바뀌면서 색깔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풍경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래된 나무 이야기를 말이다. 그런데 웬 걸? 처음부터 <영어교육>과 <조기유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니 <해외입양>의 문제를 지적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색깔 먹는 나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푸근한 이미지도 없고 아주 나쁜 캐릭터로 나온다.

 

 대강의 이야기는...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귀가 아주 얇은 엄마는 영어를 꽉 잡는데에는 유학만한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아들을 해외유학길에 오르게 한다. 그러나 아들은 숫기도 없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소심한 아이이기 때문에 순전히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영국으로 떠나는 것을 마뜩찮아 한다.

 

  물론 혼자 떠난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영국유학 경험이 많은 친구 편에 같이 가는 것이긴 하지만 친구라고 있는 게 영국가서는 한국말로 하지 말고 영어로만 말해야 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는 밥맛이다. 주인공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도 두려운데다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더욱 겁을 먹게 된다.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주인공이 유학길에 오르기 위한 비용을 마련한 것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살던 옛집을 팔아서 만든 돈이었다. 이 일로 할아버지께 죄스런 마음이 들었고, 유학을 가는 것에 반대하던 아버지마저 영어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부담을 주어서 더욱 주눅이 들었다.

 

  영국에 무사히 도착은 했지만 예상한 대로 유일하게 말붙이가 되어 주어야 할 친구는 안면을 싹 바꿔서 영어로만 말하기 시작하고, 식사시간이 되어 먹는 음식은 온통 버터투성이라 느끼해서 입맛마저 뚝 떨어졌다. 그래도 학교에 가니 몇몇 한국학생들이 있어서 어려운 가운데에서 한줄기 빛이 되곤 했다. 그런데 주인공을 유난히 째려보는 듯한 여학생이 등장하는데...

 

  결론부터 말을 하면, 이 여학생은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계 스웨덴사람이다. 물론 한국말은 거의 못하고 한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분노를 품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이 유학을 오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여학생은 한국말과 영어에 서툴고, 주인공은 영어에 서툴러 서로 의사소통조차 하지 못한 채 말 한마디 못하고 아웅다웅하게 된다.

 

  이렇게 힘들게 유학생활을 하던 주인공은 결국 향수병에 걸리고 만다. 문화도 낯설고, 음식도 입에 맛지 않은 데다가 배우려고 한 영어도 쉽게 배우질 못해 끙끙대는 데도 같이 온 친구는 영어도 배울 겸 여학생과 시시덕거더리기만 하니 병에 걸릴 만도 하다. 이 즈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색깔 먹는 나무>다.

 

  <색깔 먹는 나무>는 보통의 사람에게는 보이질 않고 <말벗도 없이 외롭게 지내는 이>에게만 보이는 나무다. 나무의 이름은 바벨인데, 이름에 걸맞게 <색깔>을 바벨에게 내주기만 하면 두둥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누구하고도 친구를 사귈 수 있고 답답한 마음을 떨치고 황홀한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는 신기한 나무다. 이름에 걸맞다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이기 때문이다. 외롭게 지내던 주인공에게는 딱 안성마춤이었다. 그러나 흠이라면 자신이 내준 <색깔>은 영원히 잃어버린다는 점이지만...

 

 <색깔>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색깔>을 내준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색깔>이란 '자기 자신의 개성이나 자아정체성, 더 나아가 한 나라의 문화를 일컫는 것'일 게다. 지은이는 <색깔>을 말하면서 여러 가지 뜻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색깔 먹는 나무 바벨에게 자기 색깔을 내어주는 것은 작게 보면 자신의 개성을 잃어버리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자국의 문화를 잃어버리고 강대국 또는 선진국의 선진문물을 주체없이 받아들여서 자기 나라 전통문화를 훼손하거나 잃어버림을 뜻한다.

 

  지은이는 이에 대해 서문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밝혀 놓았다. 외국의 친구가 말하길. 한국친구들은 왜 자신의 원래 이름은 놔두고 영어이름을 짓느냐고 물었단다. 이에 대해 지은이의 대답은. 외국사람들은 한국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하니 부르기 편하라고 그런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외국 친구는 "퍽이나 친절하구나"라며 비아냥 섞인 말을 들었다는 경험담을 옮기며 이 책을 쓴 동기를 밝혔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왜 외국인에게, 특히 서양사람들에게 이토록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 더이상 '동방예의지국'이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듯 하다. 이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것, 우리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드높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의 이름이 서양인이 발음하기 힘든 것마저도 '한국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이름을 부르는 것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사람이 진국'이라면 이름을 부르기 어렵다고 놀려먹거나 따돌리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색깔을 드러내기보다는 애써 감추려 하고 심지어는 아예 없는 듯이 행동한다. 아니 더 나아가서 외국스럽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기에 이른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점점 세계는 좁아지고 각 나라의 문화는 서로 섞이는 마당에 우리 것만 옳다고 좋다고 우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시대라고 하더라도 '우리것'을 주체로 삼고 '남것'을 품는 식으로 나아가야지 '우리것'을 미련없이 버리고 '남것'을 쫓을 수는 없지 않느냔 말이다.

 

 책 읽다가 슬슬 열받기 시작하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점점 '우리것'을 잃어가는 형국이다. 말글살이부터 그러하다. 우리말은 태고적부터 있어 왔으나 우리글이 없었던 시절이 길었던 탓에 이웃나라의 글을 빌어와 썼으나 이마저도 '이두'나 '향찰'로 '우리식'대로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래도 우리것을 놓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학문>과 <사상>을 빌어온 것이 삐걱대어 마침내 '우리것'을 업수이 여기기 시작하였다. 이를 심히 걱정하던 임금께서 우리말글살이를 풍부하게 하고 흥성하게 할 <우리글>을 손수 만들었으나 이 또한 500여 년이나 소홀히 여기는 바람에 결국 나라를 빼앗기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일깨었던 것이다. 곧 우리말글살이는 그저 우리가 편히 쓰고 말 것이 아니라 '우리얼'이자 '우리혼'이라던 선각자의 말씀을 온 백성들이 깨우쳤단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것'을 업수이 여기던 놈들(매국노, 친일파 따위)이 해방 뒤 어수선한 틈을 타 정권을 휘어잡고서 또다시 '우리얼'이고 '혼'인 말글살이를 <오염>시키기에 바빴다. 그것이 저들이 영구히 정권을 잡을 유일한 길인 것처럼 말이다.

 

 흥분하더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고..

  우리의 학문과 사상체계를 우리말글로 채우지 못하고, 이를 간단히 도식시키자면, <한자어(중국어)>로 채워놓더니 일제가 강제로 <일본어>로 채우고, 해방 뒤 이 빈자리를 <영어(미국어)>로 채워놓았단 말이다. 그래서 우리말글살이는 온통 한자어투성이에, 일본어잔재가 남고, 이제 영어가 우리말글을 오염시키는 형국이란 말이다. 이는 출세하려면 한자어에 능하고, 일본어, 영어를 잘해야 하던 시기와 딱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한자와 일본어, 영어를 배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한자어는 우리 역사를 돌아보아도 '중국것'이기보다는 '우리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고, 일본어에서, 영어에서 유래한 용어를 단박에 솎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요는 이렇게 오염(?)되었으니 이제는 점점 우리말글살이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진데 되려 거꾸로 가고 있으니 문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국어와 자국문화를 왕성하게 습득할 어린 나이에 <조기유학>을 보내버려 '한국인'도 그렇다고 '그나라사람'도 아닌 사람으로 길러내는 풍조를 우려하는 것이며, 아무리 영어를 배우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하더라도 어린자녀의 혀뿌리를 잘라내는 등 유난스러울 까닭을 모르겠다는 말이다. 이제는 온 국민이 해외유학을 갈 수 없으니 국가가 나서서 곳곳에 <영어마을>을 만들어 국민들의 목마름을 해갈하려하고 있다. 막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말이다.

 

 급기야 해결방안까지 내놓으니...

  '오렌지'를 애써 '어륀지'라고 하지 말자. 하려고도 말자. 그냥 '귤'이라고 해도 무방하고 꼭 품종을 따지고 들어 궂이 구분해야 속이 시원하다면 그냥 생긴 것에 따라 '큰귤', '동그란귤' 색깔에 따라 '진노랑귤', '연노랑귤' 또는 '외국귤'(좀더 세분하여 '브라질귤', '캘리포니아귤'이라고 해도 좋다)이라고 해도 큰일나지 않는다.

 

  현재 패션잡지를 보면 가관이다. <이공일공 에프더블유 트랜드는 스티치한 디테일과 빅버튼이 큐트한 오렌지 컬러 코트가...> 이를 우리글로 뒤쳐보면 <올 가을겨울엔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마무리하고 큰 단추가 아주 귀여운 브라질귤색 외투가 인기를 끌...> 난 이런 문구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또 <스티치>라는 단어가 언뜻 해석이 안 되어 검색까지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을 때는 머리가 띵~할 지경이었다.

 

 진정이 되나 싶었는데..마지막 하이킥! 아니아니 높이차기!

  어린이를 위한 책 한 권을 보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 자식은 <외국어공부>보다 <우리말글살이>부터 꼼꼼히 다지는 데 중점을 둘 것이며, 우리 <색깔>이 무엇인지부터 가르친 연후에 <해외유학>을 보내든지 말든지 할 것이라고.

 

  그리고 나에게, 더구나 <사교육계의 현실>에 빠삭한 나에게 '그런 식으로 가르쳐서야 자식 잘 가르쳤다고 할 수..' 이따위 소리를 한다면. 그 예쁜 입에 식용버터 좔좔 바른 총각김치를 꼭꼭 씹어드시게 할 테다. 이 멀마나 어울리지 않느냔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z******8 2010.10.21. 신고 공감 4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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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빛깔을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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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이 책 제목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 뒤를 보고 그저 어렸을 때 떠난 해외 어학연수에서 겪은 일에 대한 것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현실에 대한 것만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환상이 조금 섞여있다. 같은 아파트에 태혁이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인 영우 엄마가 이사를 오고, 고등학교 때는 서로 잘 몰랐지만 친하게 지냈다. 영우네 식구는 아빠가 미국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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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이 책 제목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 뒤를 보고 그저 어렸을 때 떠난 해외 어학연수에서 겪은 일에 대한 것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현실에 대한 것만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환상이 조금 섞여있다. 같은 아파트에 태혁이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인 영우 엄마가 이사를 오고, 고등학교 때는 서로 잘 몰랐지만 친하게 지냈다. 영우네 식구는 아빠가 미국에 있는 회사에 다녀서 2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그래서 영우는 영어를 잘했다. 한국에 오고는 가끔 다른 나라에 어학연수를 갔다. 이런 말을 들은 태혁이 엄마도 태혁이를 해외 어학연수에 보내려고 했다.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가 살던 집을 팔았다. 태혁이는 영우와 함께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태혁이는 여섯 달이고 영우는 한 달이었다. 그런데 학교에 가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가? 6학년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이것은 지금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태혁이의 영어 이름은 제임스였다. 태혁이는 영어를 잘하는 영우가 같이 있어서 조금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영우는 태혁이를 많이 도와주지 않았다. 먼저 시험을 봐서 반을 갈랐는데 태혁이는 초중급반으로 가고 영우는 중상급반으로 갔다. 태혁이가 어학연수를 간 곳은 한국 사람이 그다지 않이 오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도 한국 사람이 몇 사람 있었다. 태혁이보다 한살 많은 미나가 있었다. 영우는 이곳에서 영어로만 말했는데 미나는 태혁이한테 한국어로 말했다. 태혁이와 같은 반에 중국 사람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태혁이를 째려보는 것 같았다. 여자아이 이름은 소피아였고 중국이 아닌 스웨덴에서 온 거였다. 그래도 태혁이는 중국계일 거라고 생각했다.

시차적응을 했는지 푹 자고 일어난 아침 창문을 연 태혁이는 멀리에 보이는 유채꽃을 봤다. 태혁이는 그곳에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공부 시간에 중국에서 온 빌과 낱말 받아쓰기를 하다가 힘이 빠졌다. 태혁이는 컴퓨터실에 가다가 멀리에 있는 노란 유채꽃밭을 보았다. 그런데 노란색이 하얗게 보였다. 그때는 눈의 착시현상이라 여겼다. 런던 나들이를 하는 날이 찾아왔다. 그런데 영우는 버스에서 다른 아이와 앉아버렸다. 태혁이는 혼자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와서 옆자리에 앉아도 괜찮냐고 물었다. 얼굴을 보니 소피아였다. 소피아는 자리에 앉자마자 책을 읽었다. 태혁이는 자기도 만화책이라도 가지고 왔으면 좋았을 거라며 후회했다. 이날 태혁이는 길을 잃는다. 태혁이가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지도가 생각나서 그것을 보여주고서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태혁이는 늦게 일어났다. 창문을 열고 멀리에 보이는 유채꽃밭을 보았다. 태혁이는 그곳에 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숙사 방에서 나와 뛰었다. 유채꽃밭에 도착해서는 ‘나는 김태혁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하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갑자기 노란 꽃들이 희미해지며 하얗게 색이 바랬다. 그리고 나뭇가지가 태혁이의 팔목을 감쌌다. 태혁이는 사람을 잡아먹는 나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색깔을 먹는 나무 바벨이었다.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태혁이의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었다. 나무에는 수많은 동물이 동그란 방울 안에 있었다. 그 안에서 동물들이 나왔다. 그러고는 태혁이한테 인사했다. 곧 바벨이 동물들한테 목이 마르다면서 색깔 구슬을 달라고 했다. 동물들은 조금 괴로워하다가 입 안에서 색깔 구슬을 뱉어냈다. 바벨은 태혁이한테도 색깔 구슬을 바치라고 했다. 태혁이가 눈을 감고 색깔을 떠올리자 목 안이 답답해지며 기침이 나왔다. 그때 파란 구슬이 함께 나왔다. 태혁이의 몸은 작아지고 가벼워져서 방울처럼 동그래졌다. 색깔 나무 위에서 태혁이는 동물들과 노래하며 놀았다. 그런데 작은 새가 날아와서 색깔 나무의 나뭇가지 사이를 돌아다니며 나뭇잎을 쪼아댔다. 동물들은 떨어지고 태혁이도 떨어졌다. 밑으로 떨어진 동물들한테 색깔이 없는 곳이 있었다. 태혁이는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다른 경험을 한 태혁이는 유채꽃밭과 색깔 먹는 나무에 대한 얘기를 누군가한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미나한테 하얗게 바뀌는 유채꽃 얘기를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태혁이가 뱉어 낸 파란 구슬 때문에 택혁이가 입으려던 옷에서 파란색이 없어지고, 파란색 형광펜은 하얗게 바뀌었다. 하루는 소피아가 나무로 만들어진 연필깎이를 가지고 왔다. 새 모양으로 그것은 참새였다. 소피아의 아빠가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태혁이는 소피아한테 참새에 대한 것을 묻고 싶었다. 색깔 나무의 나뭇잎을 쪼아대던 작은 새가 참새였다. 유채꽃을 본 소피아는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태혁이는 다시는 바벨한테 색깔 구슬을 바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으면서 유채꽃밭에 간다. 그곳에서 들은 노랫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또 색깔 구슬을 바벨한테 바쳤다. 이날은 참새 떼가 나타나서 쪼았다. 태혁이는 비를 맞고 기숙사에 돌아왔다.

시험공부를 하려고 태혁이는 도서실에 갔다. 같은 반 아이들이 태혁이를 불렀다. 달려가다 잘못해서 소피아의 연필깎이를 건드렸다. 그것은 둘로 쪼개지고 말았다. 태혁이가 미안하다고 했지만 소피아는 화를 내고 그곳을 떠났다. 이 일 때문에 태혁이는 시험을 망쳤다. 태혁이는 소피아한테 주려고 연필깎이를 사 가지고 왔다. 용기를 내서 여자 기숙사에 찾아가다가 소피아를 만났다. 태혁이는 소피아와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맥이 잔디 깎는 소리를 듣고 유채꽃밭을 떠올렸다. 태혁이는 소피아와 바벨이 있는 곳에 갔다. 색깔 구슬을 바벨한테 주고 태혁이는 소피아에 대해서 알게 됐다. 소피아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네살 때 스웨덴 사람한테 입양되었다. 참새 모양 연필깎이는 소피아가 부모님을 찾을 수 있는 단서라고 생각해서 소중하게 여겼던 거였다. 이렇게 알게 된 것은 좋았지만 둘은 색깔을 모두 잃고 투명해졌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곳에서 자신들과 함께 살자고 했다. 두사람은 색깔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누군가는 색깔 할아버지를 찾아가라고 했다. 두사람은 서로가 보이지 않았지만 손을 잡고 색깔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색깔 할아버지는 자신의 색깔을 바벨한테 모두 주었다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소피아의 참새 연필깎이를 본 색깔 할아버지는 색깔을 다 주지 않았다고 보고 꽃을 가꾸라고 했다. 시들어가는 꽃에 태혁이와 소피아는 물을 주었다. 시들지 않고 꽃을 피웠을 때 태혁이와 소피아는 자신들의 색깔을 찾았다. 여기에서 나타내는 색깔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가진 개성이기도 하고, 나라마다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모두가 영어로 말을 하고 영어 이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 이름을 쓰고, 말을 쓰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말이 통한다고 해서 사람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태혁이는 소피아와 마음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소피아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희선


n***8 2011.0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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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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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많은 이들이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 잠시지만 많은 효과와 그에 따르는 기대를 품고서 나들이를 해야 하는 즈음, 나를 버리고 발 딛고 서 있는 공간속 모든 것과의 일체감을 누리기 위해 악을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겨진 우리들의 일상도 그와 별반 다를 것은 없지만......   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집을 정리해야만 하는 부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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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많은 이들이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 잠시지만 많은 효과와 그에 따르는 기대를 품고서 나들이를 해야 하는 즈음, 나를 버리고 발 딛고 서 있는 공간속 모든 것과의 일체감을 누리기 위해 악을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겨진 우리들의 일상도 그와 별반 다를 것은 없지만......

 

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집을 정리해야만 하는 부모나 그 모든 것을 등에 지고 스스로 역할과 책임을 떠 맡아야 하는 부담감은 의지를 불태우게 하기 보다는 태혁이를 움츠러들고 소극적으로 만든다. 의지만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자책을 하기도 하고 주변의 이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도 된다.

 

도무지 노력해도 해결될 것만 같지 않음에 조급증도 나고 주위 아이들을 보며 욕심을 내보지만 의지와 상관없는 현실 앞에서 더욱 불안함을 느끼며 주눅들게 되는 태혁이. 그러던 중 알게된 바벨 나무는 그 혼란스러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그것들은 어느새 마음의 병으로 생겨나게 된다.

 

바벨에게 주게 되는 색색의 구슬들 그리고 그 이후 사라지게 되는 색깔들.그로인해 어느 순간 아무런 색도 지닐 수 없는 투명한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는 태혁은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색을 지켜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피아가 자신과 같은 한국인임을 알게 되고 그 아이게게 한국이름를 적어 주며 의미를 다지는 것처럼, 영어를 잘하기 위해 나를 버리고 제임스로 살아야 하는 과정의 혼란스러움을 현명하게 이겨갔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본연의 의미와 다르게 자신의 존재나 의지를 잊게 되는 이유를 작가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임을 알 수 있듯이, 바벨에게 모든 색을 주어버리고 주체성을 잃게 된다면 어떠한 결과가 벌어질지 실감케 된다. 생각의 틀을 비껴나서 무분별하게 추종하게 되는 배움도 문제지만 그것만이 능사인양 몰아대며 다독이는 많은 우리 어른들의 마음가짐과 자세 또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m*******7 2009.07.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