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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930년대는 대중문화가 꽃피어나는 시기였다. 암울한 대공황의 그늘에서 대중에게 여흥거리를 제공하는 할리우드는 무척 활황이어서, 평균 주간 관객수가 인구의 절반 이상인 8천만명에 육박했고, 여가비용의 83%를 영화표 구입에 썼다. 그 자신도 영화산업에 몸담고 있었던 웨스트는 할리우드를 통해 인간의 꿈이 기만 당하고 결국 그 파국인 폭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해간다. 꿈의 모조품을 만드는 일이 영화 연예산업의 본질이다. 세트장 뿐 아니라, 그들이 사는 피니언 캐니언조차, 예술의 가치는 없고 실용적 가치, 위장술만 남은 꿈을 내다버리는 하치장. 사르가소 바다가 된다. 그들은 그들의 진정한 꿈을 이룰 수 없는 대신 모조품인 세트장 안에서 생각하고 살도록 길들여진다. 마치 오늘 우리의 여가와 같이. 이런 헐리우드를 상징하는 여주인공 페이 그리너, 즐거움으로의 초대가 아닌 힘든 갈등으로의 초대를 하는 인물, 그녀의 초대가 갈등이 되는 이유는 다수가 원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충족적 존재인 그녀는 결코 그 사랑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그 아름다움은 마음이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듯 그녀의 목적은 상대를 매혹하고 자기가 원하는것을 얻어내는 것이다.지저분한 검은 암탉처럼, 자기 얘기인듯 들은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할리우드는, 바다에 부유하는 코르크판자처럼 그 자신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정복을 사랑으로 착각하며 싸우는 수탉들의 죽음을 지켜볼 것이다 오드리 제닝스, 악덕을 기막히게 포장해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돈버는 재주꾼들. 그들에게 사랑은 자판기에서 나오는 물건일 뿐이다. 돈벌이이고 인간성과는 무관한 사업의 영역이다. 이 놀음에 속는 [사랑은 호주머니에 감추기에는 너무 큰 그런 물건]으로 여기는 자에게는 사랑이 인생일지도 모르지만. 할리우드의 정신은 꿈을 닮은 유사품을 팔아 돈을 만드는 3차산업에 충실하다. 중서부 출신의 호머 심프슨, 변화나 흥분이 없는 생활, 동정童貞만이 유일한 방어기제이고, 짜증나게하는 체념 친절 겸손을 가진 미국인의 표상적 인물. 할리우드에게 손쉬운 먹이감이고 밥줄이다. 그는 할리우드에 속아 진짜 꿈과 걱정과 해결해야 할 현실은 잊고 아무런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들은 [덫에 걸린 새, 몰개성적이고 희망없는 슬픔] 뿐이다. 그들이 군중의 틈에 들어갔을 때, 그 무감각은 분노로 이행한다. [불타는 로스앤젤레스], 죽기위해 캘리포니아로 오는 사람들에 의한 폭력, 미국적 광인들이 등장한다. 영화산업은 폭력일보 직전의 사악하고 메마른 권태를 가진 그들에게서 돈을 뽑고 더 처참한 도덕적 사회적 경제적 자아의 상태에 내팽개쳐진다. 무의미한 존재들. 그들은 사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해리처럼, 빨간 닭처럼. 탈진하고 피곤한 육체와 야성적이고 무질서한 정신. 컬트문화로 대표되는 어불성설의 메시아적 분노와 감정적 반응은, 무의미에 던져진 자들의 유일한 해답이다. 가련한 비이성과 폭력에의 의존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타고 있지만 그 곳에서 그들은 탈출하려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일의 이유는 우리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이다. 꿈을 만드는 대신 꿈을 사려했고,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을 제대로 알아 보지 못했다. 우리 사랑의 대상은 결국 나 자신일 뿐이었다.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은 진정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남이었는데. 나의 꿈이 나를 배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만을, 내 자녀만을 위해서 살면 꿈은 이루어지는줄 알았다. 멍청하고 노력하지 않았다. 사실 이것이 단단하고 지속적인 까닭은 사회 전체가 원하는 기만이기 때문이다.[칸은 쾌락의 돔을 선언했다.] 사기 당하고 배신 당했다. 헛것을 위해 노예처럼 일하고 뼈빠지게 저축했던 것이다. 그들은 일상의 고통을 참고 견디면 쾌락이 온다고 믿고 일해왔다. 기적의 약속을 믿고 움직였으나 결국은 폭력으로 밀려갔을 뿐이다. 폭력의 이유는 권태고 무능력이었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를 비난치 말라. 그들은 지쳤다. 그들의 무의식은 좌절해있다. 시끄럽고 듣기 싫은 사이렌을 울려야한다. 이대로 있다간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이다. 이 성에서 빠져 나가라. 달콤한 노랫소리에 빠져들어 그 성에 들어가지 말라. 서로를 죽이는 것은 그 성에서 일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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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도 아닌데....소문에 사버렸더니, 뉴스에 나올만큼...심드렁했다.
글쓴이는 미국의 존업다이크와 그 뭐냐...위대한 개츠비를 쓴 작가와 더불어 여하튼 3대 작가 중의 한명이라고 했다.
가급적 좋은 작품을 읽어보려고 노력하는데..소문에 비해서...작품이 그저그러면..참 난감하다. 명작은 세월을 뛰어 넘어서 살아남고..그렇지 않으면 다 사라지는건지... 내가 구입한 책이 1판 1쇄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책을 덮고나니, 숙제마친듯이..기분이 홀가분하다는 것이다. 신경숙의 신간과 함께 읽었는데...이 책은 정~~~말 그저그랬고, 줄거리도 생각도 나지 않고, 당연히 임팩트도 없다.종합정리해보면...너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얘는 큰 빛을 보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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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아수라장을 연상케 하는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소설 <메뚜기의 하루>다. 너대니얼 '호손' 아니고 너새네이얼 '웨스트'다. 나다니엘 호손이라고도 적곤 하는 이는 <주홍글씨>의 작가다. 내겐 너무나 생소한 이름의 작가라 굳이 익숙한 작가의 이름을 나란히 적어봤다. 미국 작가 중에서는 무척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이 책 역시 여의도 윤중로에서 다 읽고 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이 비처럼 쏟아지던 길 위에서 책 두 권을 읽은 기록적인 독서를 했던 지난 일요일의 추억의 책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꽃 구경 아니고, 책 구경만 하다 왔다는 느낌이었다. 윤중로에서의 책 읽기의 발단은 종종 행사를 돕곤 하는 '책읽는지하철' 부스에 도와준다고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은 것에 움츠러든 나머지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게 된 데 있었다. 결국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잊기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책 읽기였는데, 이게 퍼포먼스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윤중로에서 책을 읽게 된 거다. 4월 12일 윤중로 한 자리에서 펜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봤다면, 아마 그게 나였을 것이다. <메뚜기의 하루>는 미술을 하다 스카우트 되어 헐리우드로 흘러 들어온 '토드'와 호텔의 경리 직원으로 근무하다 호텔을 그만두고 요양을 겸해 헐리우드에서 지내고 있는 '호머' 심프슨, 단역 연기자인 '해리'와 그의 딸 '페이 그리너, 난쟁이, 건달이나 다름 없는 얼과 멕시코인 미겔, 그리고 싸움 수탉 등의 캘리포니아 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생활은 아수라장 혹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다. 토드의 말 중에 '캘리포니아에 죽으러 온 사람'이라는 표현이 몇 번 등장하는데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다. 페이는 아름다운 여자다. 토드는 페이를 좋아한다. 페이는 토드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고, 호머라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있으며 얼과도 어울리지만 정작 아버지 해리가 죽어 장례를 치를 돈이 필요해졌을 때는 고급 매춘을 알선하는 여자를 찾아가서 몸을 판다. 왜인지 알 수는 없는데 이야기의 끄트머리에서는 멕시코인 미겔과 관계를 갖는 상황을 페이가 '아픈 것'으로 착각한 호머로 인해 얼과 미겔이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페이는 배우로 성공하고자 하지만 결국 어울리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들이다. 자신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호머에게는 오히려 호감이 없다. 호머는 이름이 미묘하다 했더니 나중에는 토드를 '토디'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등 '호모'의 정체성을 드러내서 토드의 경고를 받는다. 수라장이다. 솔직히 사방에서 꽃이 날리고 사람들이 끝도 없이 지나다니는 바람에 제대로 읽지 못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게 됐다고 변명하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더 솔직히는 지금부터 차분히 앉아서 메모해가며 읽는다고 해도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건지 이해할 자신이 없다. 캘리포니아에 죽으러 온 사람과 헐리우드와 연기자와 닭싸움과 과일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걸까? 아무래도 아직은 이 작품을 읽을 때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는 무언가 어긋나 버린 것 같은 생각만 떠오른다. 제목이 왜 '메뚜기의 하루'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메뚜기'의 이미지는 '크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혼란스럽고' 그런 것이 아닐까? 곳곳에 여러 세트장이 세워져 있어서,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영화가 촬영되고, 어떤 세트장에서는 세트가 공사 중이라는 사실이 전달되지 않아 연기자들이 다리가 부러진다거나 다치는 일도 일어난다.(그 영화는 빅토르 위고였는데 워털루 전투 신이었다) 책 속도 혼란스럽고, 책 밖도 혼란스러웠으니 내 머리가 멀쩡히 남아있을 리가 없다. 일단은 지금의 감상은 이렇게만 적어둬야겠다. 메모해 둔 것도 없고,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부분만 기억이 남아서 더 떠올리기 어렵다. 제일 멀쩡한(학력이나 직업 등) 것처럼 보이는 호머는 호모고, 토드는 페이가 마음에 들어 그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고백한 번 못하고, 페이는 배우로 성공하고 싶어하면서도 영양가 없는 사람들만 만나고, 페이의 아버지 해리는 말도 안 되는 순간까지 연기를 하려고 시도하면서 비극적인 희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엄마가 아역 배우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꼬마는 막돼먹은 꼬맹이고, 도대체 캘리포니아가 어땠길래 이 모양인건지 모르겠다. 아, 미국 알고 싶지가 않아졌어. 허허허. 우리나라 메뚜기가 작아서 다행이야. 그나마 큰 메뚜기라고는 유재석 밖에 없으니 정말 다행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