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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플란은 조지메이슨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그의 주요 관심 분야에는 공공선택이론이 있다. 그런데 캐플란은 이 책에서 전통적인 공공선택이론의 가정을 공격하면서도, 결국 동일한 처방을 더욱 강한 어조로 내린다. “민주주의는 줄이고, 경제학자라는 엘리트 집단 또는 시장이 민주주의를 대체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캐플란의 주장이 이러한 전통적인 공공선택이론과 견해를 달리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투표자들은 그냥 ‘합리적으로 무지’내지는 ‘무관심’한 것이 아니고, ‘관심도 갖고 있고’ 거기다 ‘비합리적으로 편향된 의견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편향성은 주되게 세가지인데 (1) 시장을 미워하는 ‘반시장 편향성’, (2) 외국과의 교역의 혜택을 이해못하는 ‘반외국 편향성’, (3) 생산보다 고용을 중시하는 편향성,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기는 ‘인위적 일자리 창출 편향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4) 비관주의 편향성이 있다. 투표자들이 깜냥으로 이런 견해를 강하게 갖고 있고, 이 견해를 투표에 투영하기 때문에, 정책 결정의 결과는 (1)에서 (4)까지의 편향성을 강하게 반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위 투표자의 정치적 입장은 만족을 극대화하는 지점이 아니라 이미 편향되어 있는 잘못된 결론의 중간 지점을 의미할 뿐이다. 줄여서 말하자면 “대중은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아주 멍청하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하면 편향되고 잘못된 결과가 나온다”이다.
저자는 그래서 민주주의를 축소시키고자 한다. 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당연히 예상하고 저자는 일축한다. 민주주의는 일종의 비합리적인 종교라고 말이다. 따라서 저자의 대안은 바로 정책결정은 전문경제학자들에게 이양되어야 하고, 시장이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책이고, 앤서니 다운즈의 호텔링 모델에 의해서 집약되었던 중위 투표자 결정의 합리성 명제를 비판한 것은 괜찮은 부분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다수결과 단순 동치시킨 것은 큰 문제이고, 자기이익 투표자 가설을 부인하면서 논거로 드는 실증연구들이 매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이익 투표자 가설은 이를 지지하는 연구결과가 매우 많다. 저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저자는 민주주의가 정치적 가치, 도덕적 가치, 규범적 가치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 세계를 상정하고 있다. 그런 문제가 없고 GDP 극대화가 단일한 해결 과제라면 경제학자들에게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만 실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그것이 아니다. 그리고 저자가 경제정책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입장을 ‘만장일치’ 수준이라고 한 것은 너무나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어리석은 대중들의 신념 중 많은 부분은 어리석은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를테면 래퍼 곡선을 주장한 아서 래퍼를 생각해보라)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며, 세계 대공황 당시에는 경제학자들 집단 전체가 어리석은 학설을 신봉하면서 엉터리같은 대처만 한 적도 있고, 오늘날 IMF의 반복되는 행태를 보면 이것이 옛날 이야기만도 아닌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장하준 교수의 <23>만 해도 이를 격렬하게 반박하는 경제학자들과 지지하는 스티글리츠 같은 경제학자들 사이의 간극이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가? 대중의 다수결이 편향되어 있다면 경제학자들 집단 내부의 다수결도 편향되어 있을 것이고, 이는 끝없는 인식론적 회의주의의 정당화 소급 문제로 귀착될 수 밖에 없다. 고전적인 공공선택이론에 대한 자신만만한 비판에 대비하여, 결국 그 공공선택이론과 동일한 처방을 내리는 민주주의 축소라는 저자의 대안은 정치철학과 정치학에 무지한 경제학자의 왜소한 전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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