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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우선 각 칼럼들을 모아서 만든 책이라 분량이 부담되지 않아서 좋고, 한가지에 치우치지 않는 주제, 의견이 좋다. 현대 우리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현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평서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이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복거일의 "쓸모없는 지식을 찾아서"가 떠오르는 것은 그 주제의 다양성 때문인 듯하다. 특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컴퓨터 문화에 대한 부분이다.
하이퍼텍스트와 문학의 관계, 하이퍼텍스트와 생활의 관계 등 이제 생활속에 깊숙히 박힌 컴퓨터 문화에 대한 견해는 종종 탁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컴퓨터 전공자가 아닌, 오히려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을법한 문학평론가의 컴퓨터 문화 읽기를 읽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인 듯하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정말 문명은 "너희를 자유케 할"것인가? 별로 의심할 게 없다는 듯이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컴퓨터 문명이 현시하는 모든 종류의 자유와 능동성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사용자에게 금지된 구역이 있다. 바로 그러한 자유와 상호성을 가능케 하는 기반으로서의 컴퓨터 체계들이 그것이다. 하드웨어 규격, 운영 체계, 통신규약, 프로그래밍 등등이 그 기간 체계들이다. 그 체계들이 현상적으로 사용자에게 접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거꾸로다. 우선, 컴퓨터 문화 내에서 생산과 수용은 근본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하이퍼텍스트는 문자와 동영상과 소리 등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복합 텍스트다. 그것은 보통 문서에 비해 훨씬 감각적이고 쉬운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실제의 하이퍼텍스트는 아주 복잡한 언어와 구문에 의해 작성된다. 하이퍼텍스트의 원본에는 이상한 기호들과 문자가 암호문처럼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이 전문가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난삽한 원본이 일정한 디코딩 과정을 거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서로 재탄생한다. 또 다른 구조적 문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용법이 편리해지면 질수록 그 체계로부터 사용자의 거리는 점점 |
| 이 책을 고르게 된 것은 우선 저자의 이름이 낯익었고, 또 <문명의 배꼽>이라는 책 제목이 흥미로워서였다. '배꼽'이란 게 과연 뭘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할 때의 그 배꼽일까, 엉뚱한 생각을 해봤었는데, 책 첫장을 넘기니 그건 프로이트 <꿈의 해석> 중에 나오는 말인가보다. '꿈의 배꼽'처럼, 보이지 않는 저 어두운 무의식. 현상적인 것의 뒤에 큰 덩치를 숨기고, 드러나지 않게 웅크려있는 그 무의식의 배꼽에 대해 저자는 끈질기게 성찰하고 있다. 읽어나가다 보면, 문학에 관한 얘기도 있고, 영화에 관한 얘기도 있으며, 컴퓨터부터 가요들까지 문화와 문명에 이르는 내용들까지를 맛깔스럽게 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저기 발표되었던 칼럼들을 모아엮은 책이라, 그것들의 논의가 크게 일관성있다고 말할 순 없겠으나 하나는 분명하다. 문학 평론가인 저자의 성향 탓이겠지만, 그가 문화와 문학의 접점에서 많은 현상적인 것들의 이면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는 것-. 발표된 지 4~5년 정도씩은 된 글들이라, 지금 읽기엔 약간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특히 컴퓨터 문학에서 pc 통신상의 문학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 부분은, 약간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음이 기억난다. 이 책- 알레고리로써의 문학, 현실의 한 우화로써의 문학이 사회 현상 그 자체와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을 믿고있는 나로서는 재미있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글모음집이었던 듯하다. 이미지(가상)는 실제를 만들어내고, 실제는 다시 이미지를 창출해나가는 과정을 이룬다고 했던가. 읽어나가며, 살아나가며 그 피드백의 과정을 철저히 실현시켜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