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초반, 정권 바뀌고 나서 부쩍 이런 질문을 많이 하게 됐다. "만약 다음 생에 태어날 나라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어?" 물론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덴마크, 필란드, 스위스, 인도, 프랑스, 쿠바, 브라질 등 저마다 동경을 품는 나라는 달랐지만 "아무튼 난 이 나라에선 두번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라는 내 말엔 100이면 100, 심하게 공감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걸 말이라고 해?"라며 역정까지 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 나라라면 아주 질려버렸다는 듯이.)
사실, 행복한 나라, 불행한 나라가 따로 있을 순 없다. 한 나라 안에서도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은 섞여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행복은 100사람의 행복을 측정하고 총량을 내서 100으로 나눈다고 해서 그게 한 사람마다의 행복 지수일수도 없으니, '행복한 나라'뿐 아니라 '행복한 집단'이란 것도 존재하기 어렵다고 본다. 행복이란 측정할 수도 없는 데다 주관적인 거니까. 그런데도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모든 사람과 담 쌓고 살거나 국가 체제에 전혀 따르지 않고 살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아니 상당 부분 내가 속한 나라의 풍토나 정치경제 상황에 내 행복 정도가 영향을 받는단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행복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는 건, 행복할 때가 아니라 불행할 때란 점도 한몫한다. 지금 정부에 불만이 가득하기 때문에 '여기 말고 어디, 행복한 나라 없을까?' 하는 데 관심이 쏠린다.
저자가 돌아다닌 열 군데 나라 중 내가 특히 궁금한 나라가 많이 섞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시도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다. 한편으로는 각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를 다소 건조하게나마 르뽀 식으로 정리한 글일 줄 알았고 그 이상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자 에릭 와이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채롭고 자유로운 생각과 감성으로 이 프로젝트를 해나갔고 글로 정리했다. 먼저, 에릭 와이너는 가장 첫번째 코스인 네덜란드에 가서 '행복학'을 연구하는 학자 벤호벤을 찾아간다. 그에게서 얻은 행복 관련 데이터는 완벽하진 않지만 참고 삼아 볼 만한 자료가 된다. 또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조차도 행복을 정의 내리기 어렵다는 걸 더불어 깨닫는다.
나는 WDH를 찾아간 것이 훌륭한 출발점이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곳에 소장된 8000건의 연구 결과와 논문 가운데 어디에서도 나는 어떤 나라가 예술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냈다든가, 아주 사랑스러운 시를 훌륭하게 낭송하는 소리를 듣고 쾌락을 느꼈다든가, 버터를 바르지 않은 팝콘 한 통을 들고 죽여주게 좋은 영화를 보며 쾌락을 느꼈다는 기록을 보지 못했다. .... 세상에는 도저히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본문 43쪽(네덜란드 편)
저자는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대해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숱한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정의를 내렸지만, 어쩐지 딱 들어맞는 답은 없는 듯하다. 행복과 행복감이 같은 말인지조차, 사실 나도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어쩌면 '행복'에 관해 연구해보는 건 가장 오래된 철학인 듯도 하다. 섣불리 답 내리기 어려운 일이란 걸 알면서도 에릭 와이머는 행복의 지도를 그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어도 붓질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그 형태를 잡아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행복한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아니,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 행복할까? 스위스는 자연이나 정치경제에 있어 객관적으로 봐서 무척 부러운 환경을 갖춘 나라다.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 표정을 볼라치면 굳이 불행해보이진 않아도 그보다 못한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그닥 행복해보이지도 않는다. "불행할 만한 일이 없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라는 쇼펜하우어 말에 의하면 황홀할 정도로 행복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불행만큼은 완벽하리만치 피하고 사는 이 나라 사람들이야말로 행복한 사람들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도 그렇고 대개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이보다는 좀더 멋진 것이다. 적어도 행복한 사람이 무표정일 수는 없지 않겠나. 하지만, 겉으로만 봐서는 사람 속을 알 수 없는 법. 스위스 사람들은 '시기심'을 유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세계에 산다. 그러니 행복감 또한 겉으로 요란스럽게 드러내선 안 되는 감정일 수도 있다. 이방인이 볼 적엔 그저 권태로워 보이지만 당사자들은 무척 만족하며 살 수도 있겠다 싶다.
네덜란드나 스위스는 행복하고 평온할진 몰라도 왠지 내가 가서 살 만한 나라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딘지 사람 냄새가 희미하기도 하고, 너무 번듯해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국민총생산량보다는 국민행복지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부탄'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폐단도 있겠지만, 물질보단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가치에 더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만으로도 멋지다. 상업적인 광고나 네온사인 대신 "마지막 나무가 잘릴 때, 마지막 강이 비워질 때, 마지막 물고기가 잡힐 때, 그제야 비로소 인간은 돈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리라"라는 문구가 광고판에 씌어 있는 나라. 희망이란 이런 것 아닐까. 부탄도 멋지지만, 특히 관심 가는 나라는 아이슬란드다. 인구가 너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서로 감정적으로 가까운 사이다. 이게 왜 좋게 느껴지냐 하면, 이웃에 벌어지는 일이 바로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가령 우리 나라에서는 실업률이 높다는 보도가 나와도 혀를 끌끌 차며 한숨을 쉬긴 하지만, 그 와중에 어떻게든 나 자신은 실업을 피해야겠단 생각을 먼저 한다. 그런데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실업률이 5퍼센트만 되어도 온 나라가 난리가 난다. 대통령이 쫓겨날 정도다. 반면 인플레이션은 잘 참는다. 차라리 다같이 힘든 건 견뎌도 극소수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거다. 이렇게 불행을 여럿이 나눠 짐 지는 게 한두 사람 극도로 고통스러운 것보다 낫다는 인식이 참 맘에 든다. 사람으로 치자면 "된 놈"이니 실로 '된 나라'다. 또 하나 아이슬란드의 강점은 바로 자기 말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진다는 거다. 요즘 한글 맞춤법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인간이 대통령이 되어 영어 몰입교육 하자고 설치는 꼴을 보니, 아이슬란드의 모국어 사랑이 더욱 빛나 보인다. 나라 말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내 인식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측면은 아니다. 말이 살아야 생각이 산다고 생각해서다. 어느 누구도 내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앵무새처럼 쫓아하는 데서 창의성을 발휘할 순 없다. 텔레비전-구경거리 전달자, 컴퓨터-숫자의 예언자, 대륙간탄도미사일-장거리를 날라가는 불... 아이슬란드 국어학자들의 고심이 얼마나 재밌나. 게다가 실패해도 되는 나라, 라니... 이만큼 좋을 순 없다. 실패조차도 성공한 후 후일담으로나 가치를 발휘하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아이슬란드는 실패 자체도 빛나는 경험으로 생각하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저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불행한 일로도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은 무언가 시도하는 데 망설이지 않고 또 그래서 행복하달 수 있다. 게다가... 게다가 이 나라 사람들은 엘프니, 요정이니, 유령이니 하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현실적으로 믿는다!! 이런 신화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은 고되고 아플지라도 결코 불행할 순 없을 듯하다. 내가 꿈꾸는 삶이기도 하다.
이 책에 소개된 곳 중, 가장 부러운 나라가 아이슬란드라면, 저자가 일부러 '불행'을 체험하고자 찾아간 몰도바는 말할 것도 없이, 카타르도 지옥과 다를 바 없다. 카타르는 물질적 풍요에 정신이 뒤따라가지 못하는 나라다. 오히려 그 반대가 낫다. 졸부의 삶은 싫다. 사실, 기이하다리만치 낙천적인 태국의 모습이나, 영국에서의 에피소드는 앞선 나라 탐험기만큼 재밌진 않았다. 인도와 미국에서는 그보다 더 힘이 빠졌기에 끝 부분은 책장을 넘기는 게 흥이 별로 안 났다. 특히 미국 편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등잔밑이 어두운 걸까. 저자는 자기 나라에 대해선 눈초리가 매섭지 않아서 실망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저자 에릭 와이머는 시종일관 유쾌한 입담을 자랑해서 마치 동네 아저씨나 말 잘하는 친구에게서 모험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났다. 여러 대목에서 키득거리며 읽었다. 한 나라에 대한 분석과 경험이 아주 심도 깊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경치와 개인적인 감상만 담은 여행기와는 확실히 다른, '뭔가'가 있다. 그 '뭔가'는 행복에 대해 계속 고민하는 점.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더라도 그 과정이 충분히 흥미로웠고 설득력도 있었다는 점일 거다. 또 '행복의 지도'를 쫓아가기로 한 그 시점부터 저자 자신은 무척 행복한 사람 아니었을까. 손에 잡을 수 없고 실체도 형체도 없는 가치를 탐구해보고자 하는 열정을 높이 산다.
+
만약 저자가 한국 땅에 와서 감상을 글로 적었다면 어땠을까? 국보 제1호가 허망하게 불타버린다든지, 촛불 평화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발사한다든지, 하는 부정적인 모습들 틈에서 그럼에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때론 웃기까지 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진 않았을까. 우리는 헌법재판소까지 권력과 재물신의 신하가 판을 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부님과 스님이 함께 오체투지 순례를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방인 눈으로 봤을 때 쉽사리 그 풍속과 상황을 정의내리기 어려운 나라임엔 틀림없겠다. 한국이 국민행복지수보다는 정치인행복지수가 훨씬 높은 나라라는 점, 더불어 정치경제의 부패지수에 비해 시민의식은 급성장하는 나라라는 점이 우리 행복을 발목 잡고 있다는 게 무척 씁쓸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음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한번은 더 한국에서 태어나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
|
서점 한 모퉁이에서 발견한 이 책의 제목이 스러져가는 2008년의 끝자락에 선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아마도 나 자신이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불평꾼임과 동시에 행복을 갈망하나 찾을 길을 몰라 방황하는 길 잃은 어린아이와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렵 나는 한 해 동안 내가 속해 있던 자리와 나에게 주어진 이름들을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부끄럽지만 나는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는 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짙은 회색조로 무겁게 내려앉은 마음의 짐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행복이란 의미는 무엇이며, 진정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어떤 것 일까? 사람들은 제각기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며, 그 행복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 일까? 답도 없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들이 나의 구멍 뚫린 가슴속을 메워가고, 뒤엉켜 버린 고민들은 생각의 공간을 넘어서 뼈 속까지 잠식해 들어와 나약한 관절 마디의 삐걱 이는 소리는 녹이 슨 깡통로봇을 연상하게 하였다. 답답하고 이유 없이 쉬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는 멍하니 흘러가는 시간 속에 이방인처럼 서서 누군가 나타나 행복에 닿는 길을 가르쳐주길 바랐다. 살면서 힘든 적이 한 번도 없이 늘 행복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거짓말 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들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슬픔, 아픔, 고민, 괴로움이 마음 속 저 바닥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나름의 방법으로 어쩌면 피상적일 수 있는 그 심리적 고통을 이겨내고 행복을 추구해 간다. 나 역시 나만의 시련을 딛고 일어설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2009년 새해를 맞이하며 한국을 벗어나 유럽 여러 나라들을 배낭을 둘러메고 여행하면서 다른 환경과 문화를 경험하고 여러 모습의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무엇인가 해답이 있을 것만 같았다. 배낭 한편에 자리 잡은 <행복의 지도>라는 책은 길 잃은 나를 온전히 행복으로 향하도록 인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동시에 긴 여정 속에서 지쳐 잠시 쉬어가는 길에 틈틈이 펼쳐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바탕이 되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모든 나라들을 돌아 본 것은 아니지만 책의 내용과 더불어 유럽 여행을 통해 바라 본 나와 다른 이들의 삶과 그들의 가치관, 행복함이 묻어나는 웃음 등을 통해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가장 아이러니 했던 것은 여행 중에 어느 나라를 가도 내가 떠나온 한국만 못하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괴로움에 못 이겨 삶의 피난처와 행복을 얻고 싶어 떠나온 그 자리가 그리워 여행 중에 힘들 때마다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여행 후 제자리로 돌아와 취하는 꿀맛 같은 휴식에 기뻐하는 내 자신을 보면 참 간사한 것 같다. 즉, 나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지금 서 있는 곳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의 열쇠가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잊고 살았다. 마음속이 오랫동안 황폐화 되어 그 폐허 더미 속에서 나는 행복의 열쇠를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고개 돌려 자꾸 지나온 시간들을 바라보면서 과거의 일을 잊지 못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미래의 일을 두려워했다. 사소한 일에도 마음 쓰고 기대하는 일이 많았으며, 자기만족의 척도가 너무 높고 가질 수없는 것을 얻으려고 발버둥 치기 바빠서 행복하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내 자신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않고 만족할 줄 모른다. 어디서 어떻게 행복을 얻는지 모른 채 어리둥절 주변만 둘러보다가 난 점점 낙오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오랜 기간 방황을 하면서도 마음속에 많은 갈등과 고민이 떠나질 않고 풀리지 않는 숱한 질문들과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다. 계속해서 밀려오는 시험들과 빈틈하나 없이 숨 막히게 짜인 시간표에 나를 맞추어 살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휴식하고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저 공부를 잘하고 성적을 높게 얻으면 난 그게 이상적인 행복인 줄만 알았다. 내 마음의 편안함과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인데... 억누르지 못한 바람들과 나의 삶 속에서 내가 저지른 실수들은 많은 후회와 걱정을 낳고 결국에는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와 깊은 상처를 냈다. 모두에게 잘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욕심도 많고 그 만큼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모든 방면에서 제일 좋은 것을 얻고 싶어서 스스로를 다그치길 반복했고 잘 안되면 많이 좌절하고 우울했다. 이렇게 안고 있던 짐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한계에 부딪힐 것을... 상처자국들이 자리 잡은 것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난 그냥 방치했고, 저절로 아물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막연히 기대하면서 모른 척 하나 둘씩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끝도 없이 재발해서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게 될 줄 전혀 모른 채 말이다. 한 때는 바닥까지 우울해졌고 그렇게 점점 무너져내려갔다. 모든 게 자신 없고 두려워져 막막했으나 다행히 책과 함께 한 여행의 여러 길목에서 행복을 향한 나의 간절한 마음을 발견했고, 앞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갈 용기를 얻었으며,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아직도 일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가슴 한 구석에서 고개를 들고 부정적인 질문들을 던져 오기도 한다. 이렇게 심약한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갖은 애를 다 써가며 끝없는 시간을 행복을 좇는데 허비하지 않을까? 결국 끝없는 삶의 불합리성에 부딪혀서 포기 하지는 않을까? 슬프지만 과거에 내가 잃어버렸고 현재 나에게 없고 미래에 오지 않을 그 무엇이 바로 진정한 나의 행복, 내가 그린 이상적인 유토피아, 마음의 평화와 안식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차갑게도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것이 내가 꾸며내고 상상 속에서 가공된 허상일지라도, 실제로는 볼품없고 가난한 실체일지라도 나의 지친 영혼을 쉬게 해주고 힘겨운 삶을 버티게 해준다면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 행복을 얻고 안식처와 평화를 찾고 싶다. <행복의 지도>라는 책은 분명 우리들 눈에 보이는 행복을 바로 가져다 안겨 줄 보물지도는 아니다. 자신의 마음속의 행복의 열쇠를 찾고 숨겨진 보석을 발굴해 내어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중심을 잃지 않을 뚜렷한 가치관을 세우고 멋지게 삶을 이끌어나갈 주인공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또한 많은 것을 누리는 풍요로운 삶 속에서 마음의 빈곤이 주는 괴로움의 덫에 걸리는 실수를 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현명함을 갖추는 것도 우리들의 숙제 일 것이다. |
|
해가 바뀌고 날은 밝아 오는데, 冬장군은 어제 그 놈이다. 그 놈은 집에도 안 가고 남을 괴롭히는 친구도 없는 외톨이인가 보다. 그는 내가 책을 귀하게 여기던 그 때 그 시절의 그 놈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는 읽을거리라고는 교과서가 전부였다. 그 중에서 '사회과 부도'가 단연 인기였다. 심심하면 지도를 보며 동생과 지명 찾기 놀이를 했다. 지금처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때에는 뜨뜻한 아랫묵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삶은 고구마를 먹으면서 그 놀이를 하는 것은 아주 행복했다. 그 때부터 인생의 행복 지도를 그렸다. 그 지도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 지도를 따라 앞만 보고 왔다. 그 지도에는 모든 세상이 있었고 꿈과 미래가 있었다. 언젠가는 지도의 한 구석은 내 것이 될 것이라는 맹랑한 상상을 했다.
지금도 그 상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것은 내가 아직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지금의 행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아마 모든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꿈꾸며 행복지도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나 행복을 갈구하는 이도 행복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우리가 행복을 그릴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행복한 미래를 위해 우리는 어떤 지도를 그리고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에릭 와이너의 안내로 행복을 찾아 지도를 따라 가보려고 한다. 이 책은 행복이 무엇인가라는 본질론에 관한 책이 아니라 방법론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릭 와이너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행복지수) 나라를 찾아 간다. 거스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 스위스, 부탄, 카타르, 아이슬란드, 몰도바, 태국, 영국, 인도, 미국을 찾아가, 사람들이 '어떤 곳에서 무슨 이유로 행복을 느끼는지'를 찾아 길을 나선다. 이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삶의 철학을 듣고 삶을 노래하는 순례이다. 그는 객관적 상황을 보고 주관적으로 수 많은 철학자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에게서도 배운다. 질적, 정신적 행복 모두를 찾는 것이다. '관용'과 쾌락, 자연, 행복에 대한 무관심, 돈에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행복을 공시적, 통시적으로 찾아 헤맨다.
행복에 관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수 많은 철학자들이 도전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The Conquest of Happiness'에서 행복을 증진하는 방법에 대해서 논하였다. 신앙도 세상에 행복을 가르친다. '행복'은 욕구가 만족되어 부족함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 하는 심리적인 상태를 의미한다.(위키백과 참고) 노아 웹스터는 행복은 '좋은 것을 즐길 때 나타나는 기분 좋은 느낌'이라고 정의했다. 행복은 심리상태나 느낌을 말하는 것으로 매우 주관적인 것이다. 이 주관적인 것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진짜 행복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지능지수나 감성지수도 IQ,EQ 같이 숫자화하는 것으로 보아 행복도의 정도도 기수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행복지수(GHN)도 모호한 개념이고 새로운 생활방식도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스위스에서 '권태'를 본다. 스위스인들은 지루하고 유머도 없다. 그래도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권태가 행복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권태는 삶이나 일상에 대한 싫증을 의미한다. 부부간의 권태는 우울증으로 원인이고 심지어 자살에 이르게 한다. 이상 김해경은 권태는 삶을 질식하게, 싱겁게 만드는 존재라고 했다. 그러나 버트런드 러셀은 어느 정도의 권태는 행복한 삶에 필수적이다. 그는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세대는 소인배의 세대이다.(66P) 그의 저서 '행복의 정복'에서는 권태는 역사상 어느 시대에서나 변화의 원동력이었고 변화의 자극이었다고 한다. 권태는 욕망의 좌절에서 생기지만, 인간은 그 권태를 탈출하려는 길을 발견했다. 이를 건설적 권태라고 명명하였다.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는 엄마를 찾아서 행복하게 산다. 이 글의 저자도 행복을 찾아 떠났지만, 가끔 행복한 순간이 있기는 하나 완전히 행복해 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한다.(477P) 그는 행복을 찾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행복의 지도를 찾았다고 본다. 그 지도는 하나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지도를 읽을 수 있는가이다.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 지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우리가 많은 부자학에 관한 책을 읽느다고 해서 모두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남의 수석합격기를 읽었다고 해서 수석을 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성취되는 것이지 쾌락처럼 경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을 성취하는데는 중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무엇이든지 적당히 해야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아니함만 못하다(過猶不及). 지나침은 불행의 원인이 된다. 항상 행복하기만 하는 삶도 견디기 어려운 삶일 것이다. 스위스나 스웨덴처럼 복지시설이 훌륭한 나라가 자살율이 높은 것도 지나친(?) 행복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카가 10명이 있는데, 이들은 '사회과 부도'라는 책을 보지 않는다. 지도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것같다. 아랫묵이 뭔지도 모른다. 고구마도 잘 먹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어렸을 때의 세상이 아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게임하고 노래방 가고, 성인들의 놀이 문화와 별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래도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행복지도가 있다. 그들도 그들만의 행복을 쫒고 있다. 그들의 방법이 잘된 것인지도 잘못된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우리의 과거가 그랬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 십년간 경제가 발전하고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지금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었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볼 뿐이다. 지금의 상태를 누구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반성을 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진정한 방향으로 사회를 이끄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좋은 조상이 되고 싶다. |
|
행복의 지도 이런 지도가 있으면 불티나게 팔린 것 같은데. 나도 당장 사고 싶다. 하지만, 어디서 행복을 찾지? 아니 행복이 무언지도 잘 모르고, 사람마다 다르니 어떻게 찾을 것인가? 설령 찾았다고 한들 한때의 바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발전이 행복을 찾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삶이 행복이요, 삶이 불행이기에 우리는 행복에 중독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행복하고 싶어하니, 불행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행복의 반대가 불행이 아니고, 가끔 오는 행복이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사회가 행복하지 않기에 행복바이러스를 퍼뜨려야 하는지…. 행복을 생각하다 만난 책 “행복 How to Be Happy” 행복 전문가 6인이 밝히는 행복의 심리학을 담은 영국 BBC TV의 다큐멘터리 <슬라우 행복하게 만들기>에서 얻은 성과들을 전해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행복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실천하기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이렇게 살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제시하는 행복을 얻기 위한 방법 12가지 좋아하는 일을 하라, 즐겁게 행동하라,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자신이다, 자신에게 작은 보상이나 선물을 함으로써 매일 현재를 살아라, 친구와 가족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라, 현재를 즐기라,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라, 시간을 잘 관리하라, 스트레스와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준비하라, 음악을 들으라, 활동적인 취미를 가지라, 자투리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라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좋은 책이지만, 행복이 머리에 잡히지 않았다. 행복에 관해서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여행서적인 것 같아서 선택했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 책은 뜬 구름 잡는 행복이 아니라 어디를 가면 행복해지는지 알려달라니까요 라는 질문에 나름의 10곳을 소개한다.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나라마다 다른 생활과 생각을 통해서 공통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미국 공영방송 전국공영라디오 NPR의 해외특파원으로 1년간 10개국 여행하면서 행복이란 질문을 계속 던진다. 무엇보다 각 나라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국민들이 행복한가는 그 나라의 거리를 거닐어 보면 알 수 있다. 변하는 환경속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자신이 아닐까? 헨리 밀러 “사람의 목적지는 결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간”의 말처럼 우리 시각의 변화가 사물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저자의 시각 때문인지? 풍경이며 사람들을 솔직하게 바라본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시작은 “세계행복데이터베이스”로부터 행복과 시기심, 행복의 적을 제압하자. 무엇보다 돈에 춤추는 행복이기에 돈이 만든 환상, 부국과 빈국의 사람들(돈이 넘치는 카타르와 돈을 잡기 위해 발버둥치는 몰디바)을 들여다보면서 돈이 행복의 주요요소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행복하다? 행복과 편안함이 비슷한 의미일까? 역시 무엇보다 문화가 문제다. 그 사회가 행복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한 것 같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길이 존재하기에. 전체적으로 서양과 동양의 차이, 개인적 행복과 관계의 행복에 대해서도 탐구하지만, 세계적 추세가 개인적 행복으로 흐르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개인이 잘 살고, 만족하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얼마 전에 모 일간지에서 부탄 전총리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부탄이지만, 행복지수는 항상 상위권이다. 부와 행복은 정비례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돈, 돈, 돈을 찾는다. 마치 돈을 거머쥐면 행복을 거머쥔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코 만족이란 배고픈 중생을 구원할 수 없으리. 행복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면 행복은 모르게 다가올 것 같다.
|
|
지난 10월에 펀트래블의 중국현대문학기행을 하면서 읽었던 책입니다. 여행길에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이 세상에는 지금 최대한 많은 지적 낙관주의와 진정한 행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작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 돈키호테 같은 여행길에 나섰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올해 1월에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을 시작으로 10월에는 중국현대문학기행을 하게 된 것은 필자만의 행복추구의 일환이었던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작가의 여행길은 스위스, 부탄, 카타르, 아이슬란드, 몰도바, 태국, 영국, 인도를 거쳐 자택이 있는 미국으로 이어집니다. 작가가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이유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있는 에라스무스 대학에서 나온 행복경제학 연구의 내용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루트 벤호벤 교수를 만나 행복을 연구하게 된 이유와 그 결과를 듣고 어디를 찾아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던가 봅니다. 세계행복데이타베이스(World Database of Happiness, WDH)는 삶의 질에 대한 주관적 인식에 대한 연구결과를 수집해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개인이 자신의 삶의 질을 전체적으로 호의적으로 판단하는 정도로 정의된다고 합니다. 행복은 정서의 향락적 수준(즐거운 정서가 지배하는 정도)와 만족감(욕구의 인지된 실현) 등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2023년에는 행복에 관한 16,000개의 과학출판물을 분석하여 23,000개의 분포결과(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와 24,000개의 상관관계 결과(더 많은 행복과 더 적은 행복과 관련된 요인에 대해)가 추출되었다고 합니다. 세계 행복 데이터베이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목록을 만드는 데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곳에서 얻은 자료와 자신의 육감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행복의 지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앞서 들은 10개의 국가들이 선정된 이유는 다양합니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행복은 끝없는 관용에서 온다’라고 간단하게 정리하였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위스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스위스의 경우는 ‘조용한 만족감이다’라고 정리되었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위스 사람들이 과연 행복한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길지 않은 여행에서 만난 제한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그나라의 행복에 대하여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이어진 나라는 부탄입니다. 행복이 국가의 최대 목표라는 부탄은 흔히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2024년 사이에 143개국의 국가행복지수의 평균점수에 따른 국가행복지수의 순위 60위 안에 들지 못한 것 같습니다. 1위는 핀란드이고, 2위는 덴마크, 3위는 아이슬란드입니다. 작가의 여행이 시작된 네덜란드는 5위에 올라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10개 나라들 가운데 60위 안에 드는 나라는 네덜란드(5위), 아이슬란드(3위), 스위스(13위), 영국(23위), 미국(24위), 태국(49위) 등이며 부탄, 몰도바, 인도, 카타르 등은 60위 안에 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작가가 몰도바를 여행한 이유는 행복한 곳을 돋보이게 해줄 정도로 불행한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몰도바는 행복의 지도에 포함되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행복을 찾아 여행하기 위하여 WDH를 참조했다고 하면서 여행지에서는 상위에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 선택되지 않은 것을 보면 행복에 대한 작가의 주관이 객관적이지 못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방문국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으로 그 나라가 얼마나 행복한지 가늠한다는 것도 적절한가 싶기도 합니다. 면담할 사람도 알음알음으로 선택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였습니다. 결국 작가가 이야기하는 행복의 지도라는 제목이 적절한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기억할만한 대목은 “낯선 땅을 떠돌 때, 별 다섯개짜리 호텔의,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편안한 만큼 위안이 되는 것은 없다.(171쪽)”였습니다.
|
|
사람들은 노동을 한다. 행복해지려고. 모두들 시기심을 숨기기 위해 튀지 않도록 사는 스위스, 이 책의 저자인 에릭 와이너는 이 나라들을 찾아다니며 현지인들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1제곱미터를 차지하고 있는 땅, 그러니까 내가 밟고 있는 곳. 이 저자 또한 마찬가지. 그가 어디있던 간에, 그가 있는 곳에서 그가 느끼려고 했다면 그는 항상 '행복'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약간의 마약을 하며 황홀감을 느낀다든가, (알프스 마테호른 근처라고 하는데 가 봤어야 알지 ㅡ,.ㅡ;;)
|
|
행복을 찾아서.
동북 아시아에 있는 한국이란 조그만 나라에 사는 나는, 이 책에 나오는 객관적인 비교를 통해 보면 <행복 강박증>에 걸린 나라에 산다. 행복해 보이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조급증에 시달리면서 그 행복의 의미에 대해 늘 묻고,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 행복해 지기 위해 연애를 하고 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또 충분한 잠을 자려 한다. 나는 늘 최면을 건다. 난 여행을 다녀오면 더 행복해질거야. 하지만 늘 나에게 돌아오는 건 여행에 대한 아쉬움과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한 뭉텅이의 욕망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른 살 심리학 책’도 거의 동시에 읽었는데, 재미있었던 것은 이런 상담이나 자기계발에 관련된 것 자체도, 그러니까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실체 역시도, 하나의 <학습> 또는 <문화>에 따른 것이지 다른 나라에 가면 또 다른 모습의 행복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심리상담이나 자기계발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니, 뭔가 속고 살아온 것 같다!
미국식 행복주의에 길들여져 있고, 행복하기 위해서 자기 계발서를 읽고, 또 성공과 행복의 사이에서 그게 같거나 또는 다르다고 여기며 자신의 방향을 선택하고, 늘 행복의 의미에 대해 묻는 거에 익숙해진 나는 행복이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거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에릭 와이너는 행복을 찾아 떠난다. 각 나라별로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건조하고> <객관적으로> 취재한다. 행복이란 걸 수치화 할 수 있다면, 그 수치에 이름 붙인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사람들을 취재하며 행복에 대해 묻는다.
우린 행복이란 걸 대부분 정서적으로 접근하면서 감상적이고 뭉클한 뉘앙스를 풍기며 나의 영혼이 맑아져야만 할듯한 압박감을 느끼는 대부분의 행복 컨텐츠 속에 살아왔다.
그런데, 행복을 객관화시키려 하며 - 뻔뻔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에릭 와이너의 유머!! 는 정말 모조리… 다 외워버리고 싶을 정도다. !!!
+
에릭와이너도 빌 브라이슨 처럼 시종일관 유럽인들에 대해 비꼬면서도 질투하면서도, 같은 ‘서양인’으로 냉정히 바라보는게 있다. 이런 시선들을 읽을 때면, 우리가 가진 유럽이란 <이미지>가 얼마나 터무니없고 환상에 부풀려져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된다. 요 근래 1년 사이 가장 맘에 드는 책이 바로 빌브라이슨의 유럽여행기와 바로 이 책이다!!!
P16 유럽의 카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전혀 죄책감 없이 아주 오랫동안 빈둥거리는 것. 위대한 철학자들이 대부분 유럽 출신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들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생각이 마음대로 떠돌아다니게 내버려 두었다. …. 나는 행복 사냥을 하는 중이다.
P32 …저녁에는 내 단골 카페로 가서 따뜻한 맥주를 마시고, 자그마한 시가를 피우며 행복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을 많이 하고, 술을 약간 마시며, 실질적인 작업은 별로 하지 않는 일상이다. 다시 말해서, 아주 유럽식 일상이라는 얘기다. 나는 여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
|
행복의 지도란 제목만 듣고보면 이 책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될까?를 알려주는
이작가는 꽤 똘똘한 것 같다. 거기다가 '기자'출신이기에 되도록 자신의 주관보다는 여행한 10개국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립적인 태도로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이 워낙 사람들 마음가짐에 달려있기에 행복에대해서 쓰려면 작가의 행복관과 연관될 수 밖에 없다.
읽으면서 난 나는 '네덜란드'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다. (그게 첫번째 장이었으므로.. 이후의 행복한 나라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공공질서만 어기지 않는다면 매춘을 하든, 마약을 하든 개인의 선택에 나라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매춘과 마약이 공공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저 나라의 범죄율을 그리 높지 않다) 거기다가, 죽는것마저도 개인의 자유다. 안락사를 최초로 허용한 나라다.
그러다 빵 터지게 웃으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발견했다. 바로 영국이다. 한도 끝도 없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나 자신의 불행과 염세주의 때문에 점점 난 불평주의자에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투덜이라는 평을 듣는데 나 스스로는 낙천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신나게 한숨을 내쉬고, 실컷 투덜거리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다. 불평보다 더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어딨겠는가?? ㅋㅎㅎㅎㅎ 갑자기 영국이 마음의 고향이 되버렸다.
만약 작가가 우리나라를 와서 행복의 치수를 재봤다면 어떨까?
일명 '다구리'문화.
내가 이 작가가 여행한 10개국을보며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이 된다면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은 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영국의 한 이혼녀의 실업자인 자신의 행복점수를 10점 만점에 6점이라고 이야기 했다. 이 점수는 자기가 느껴야할 사회적인 행복 점수일 뿐, 실제로 자신은 8.5점 정도 행복하다고 했다. 불평꾼들의 나라 영국에서 말이다.
우리도 솔직해지자. 다구리로 키보드 워리어가 되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까대고.. 정치권 생각만 하면 행복지수가 급다운되긴 하지만, 우리도 저 영국 여인네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행복지수는 8점 정도... (난 불평꾼 투덜이지만 9점을 찍을란다) 그러나 다른 이가 묻는다면 사회적으로 '어떻게 고것밖에 못벌면서, 행복지수가 그렇게 높아?' 라고 물을 염치없이 몰상식한 질문들 때문에 행복점수를 감하게 주는 건 아닐까? 돈없고 빽없고 줄도 없지만, 매일 매일 사는 일상에서 큰 무리 없이 살아내는 귀중한 삶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맡겨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라고 말이다. 이 책은 부자나라, 가난한 나라, 그리고 그것과 상관없이 행복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다. 이 책을 통해서 스스로 행복지수를 매겨보는 것도 연초에 할 귀중한 작업이 아닐까 한다.
결국 이책의 결론은 나의 마음의 고향은 영국일 뿐이야.
|
|
'행복의 지도'의 저자 에릭 와이너.. 그는 <뉴욕타임스>의 기자로 근무했으며, 세계적 언론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 NPR의 해외특파원으로 활동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자신이 불행한 나라들의 전쟁, 질병같은 소식만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번에는 반대로 아무 소식도 전한 적 없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를 찾겠다는 기상천외한 여행을 나서게 되었다. 1년 동안의 행복을 찾아 떠났던 그의 여정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져 있었다.
네덜란드, 스위스, 부탄, 카타르, 아이슬란드, 몰도바, 태국, 영국, 인도, 미국등을 돌아다니며 그는 행복에 관한 여러가지를 쫓으려고 애썼다. 두꺼운 책 만큼이나 그의 노력이 한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것은 아이슬란드 편이였다. 아이슬란드는 이전에는 몰랐던 나라였는데, 최근에 tv를 알게 된 나라였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갔다. "아이슬란드는 실패가 낙인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실패를 오히려 찬양하죠."란 구절이 특히나 마음에 와 닿았다. 실패를 찬양한다라..돌이켜 생각해 볼 수록 멋진 말인 것 같다. 그들은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것 같다. 긍정이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미국에서의 실패는 성공의 맛을 더 달콤하게 하는 에피타이저의 역할이지만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실패는 메인 코스라는 것이다. 사실 실패라는 꼬리표는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긴 해도, 어느 순간 실패라는 것과 맞딱들인다면 정말로 낙담하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고,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나란 사람은 실패자는 낙오자라는 등식이 머리속에 콕 박혀 있었던 것 보다. 하지만 정말 실패가 메인코스라면 내 인생에 한번 쯤 찾아와도 웃어 넘길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를 더 성장시켜줄, 꼭 거쳐야 하는 성장통처럼..
난 책을 읽으면서 그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찾기 위해 여러 나라를 여행한다는 목적만을 가지고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는 사람도,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도 무척이나 적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여행을 떠났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사람마다 다른 이유로 찾아오고, 같은 이유라 하더라도 정도를 달리하기 때문에 조금 상대적인 개념이고, 다양함을 가진다고 생각 한다. 나도 나만의 행복의 지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언젠간 나도 행복을 찾아떠나는 여행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행복을 찾아 떠나지만 아마 그 과정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내 삶이 행복으로 그득해 질 것만 같다. ^^ |
|
지금 당장이라도 서점에 나가보라. 여행서 섹션에 이르면 이런저런 책들이 수도없이 널려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의 여행가이드들, 론리 플래닛, 저스트고, 세계를 간다와 같은 프랜차이즈 시리즈, 런던, 뉴욕, 도쿄, 홍콩, 파리의 사진으로 도배된 소위 지금 여행객들에게 "꿈"을 가져다 주는 도시의 쇼핑 혹은 먹거리 지침서, 어쩌구 저쩌구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쉽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요란한 제목으로 값싸게 치장된 여행수필서 가히 지금 서점가는 여행서의 홍수라고도 할 만하다. 특히 여행수필서 부분에 이르러서는 할말을 잃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거창해 보이는 제목에 어떤 내용일까 책을 들춰보다보면 내가 미친것인지 아니면 이 출판사들이 미친것인지 도무지 책이라고 할만하지 않은 쓰레기들이 곳곳에 자랑스럽게 널부러져 있다. 어떤 책들은 여행서 섹션이 아닌 사진섹션에 가야될 것 같고 어떤 책들은 요리 식도락 섹션에 어울릴 듯 하고 어떤 책들은 어린이용 수필서에 가야될 것 같은 책들이 요즈음 여행수필서들의 특징인듯 싶다. 그럼에도 그러한 책들이 여행서의 베스트셀러랍시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자면 아직도 여행서란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환상을 가져다 주는 도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책은 그런 구토나는 환경에서 건져낼만한 보물과도 같다. 작가는 행복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이라는 거창한 목적에서 길을 떠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렇다. 결론은 뻔하다. 행복이란 나 자신에게 있다. 그럼에도 그 뻔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빛이난다. 이 책안에는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갖고 있을만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트려준다. 여행의 낭만? 그런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장기간 여행을 하다보면 그런일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이다. 그것이 여행을 좌지우지 하지는 않는다.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 모 여행서적은 이 책앞에서는 유치하고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이책을 왜 읽어야 할까? 글쎄...이 책을 왜 읽을까? 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것일까? 행복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하기 위해서?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여행서로서 이 책의 매력은 여행이란 자신의 생각의 흐름이어야 한다는, 그것은 보고 먹고 놀고의 관광이 아닌 생각하는 여행이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단순하지만 고대의 비밀인 것처럼 잊혀져가는 여행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인 것이다.
제발이지 여행과 관광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환상주의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단한권의 여행서인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