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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광고 강의석 사건>때문이었다. 한참 학교 채플이 강제성이다 뭐다 해서 시끄러울 때이다. 지금은 서울대 법대에 가있고, 얼마전 알몸으로 국군의날 행사를 막아 화제가 된 강의석의 배후(?)에는 류상태 전 목사가 있었다. 그는 정상적인 목회자 코스를 밟았고, 그에 따라 직장도 고등학교 교목이라는 안정된 곳이었다. 그런데 그가 강의석 이라는 학생의 운동에 자극을 받아서, 고민 끝에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을 믿지않는다는 말. 진위여부를 떠나서 용기 있는, 소신 있는 발언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나는 그를 받아들였다. 자신의 식솔들을 책임져야 하고, 이제는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 그의 인생을 걸만한 양심선언을 누가 인정하지 않을까?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대광고 강의석 사건>이 후, 약 3년여에 걸쳐 ‘기독교 의식 개혁운동’을 하며 그가 써낸 책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2005)』와 지금도 쏟아지고 있는 다수의 칼럼들은 한국교회를 향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글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마치 기독교를 무너뜨리려는 것 같았다. “성경을 찢어라”, “예수님, 이제 그만 죽어주십시오” 등 자극적인 제목의 칼럼들과, 강도 높은 교회 비판이 그의 스타일이 되어버린 것.
나는 그때부터 류상태 전 목사에 대해서 편견을 갖게 되었다. 기독교에서 나갔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 반감을 갖고 있구나. 기독교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구나. 이때부터 그의 행동들이 무엇을 해도, 밉상으로 받아들여진다. 비판할 에너지가 있으면, 그 힘으로 다른 덕스러운 일을 하지 왜 남 욕하는 것에 시간을 쓸까? 인터뷰의 동기는 이러한 편견에서 시작됐다. 인터뷰를 응해줄까? 정중하게 이 메일을 보냈다. ...., 그는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더 커 보이는 것 같았다.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매우 자상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몇가지 편견은 질문을 하면서 깨지게 되었다.
그의 나쁜의도?
신앙의 진정성
“기독교 문제의 중심에는 ‘독선적인 교리’가 있다. 그리고 그 독선적인 교리를 이용해서 목사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오늘날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는 재료가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은 틀 안에 사람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전제 없이’ 모든 인류 모든 생명을 하나님의 딸 아들로 선포한 파격적인 대자유의 선언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식개혁운동’에서 말하는 복음의 원형에 대해서 밝혔다.
이것이 그가 말한 본질이었다. 모든 인류가 구원받는 인식말이다. 사실 이러한 견해는 쉬쉬하는 경향이 있지만, 적지않은 목회자, 신학자들이 인정하는 추세다. 구원받을 사람/안 받을 사람의 구분 자체가 신 앞에서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꼭 반기독교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틀린 신학이 아니라 다른 신학은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는 예수는 믿고 있었지만, 기독교는 믿지 않았다. 마치 간디처럼 말이다.
맹목적 비판자?
그는 내가 보수신앙에서 존경하는 사람이 없냐고 묻자, 매우 당황했다. 자기한테 보수적인 신앙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물은 의도는 뭔가 연결고리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수신앙인들과 류상태 전 목사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는 것 같았다. 존경하는 보수신앙인들에 대해서 물으면, 소통의 물꼬를 틔울 수 있지 않을까? 마지못해 대답하는 그의 입에서는 한경직 목사, 임영수 목사 등이 나왔다. 있긴 있구나 싶으면서 내 마음이 좀 풀려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같은 물이라고, 같은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싶었나보다.
대형교회에 대해서도 단점이 아닌 장점을 묻자, 또 당황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조직과 열정이라는 장점은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 열정이 바른 믿음위에만 선다면 우리 사회에 큰 공헌을 할 뿐만 아니라, 선교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다. 그에게 이러한 장점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신문사 기자들이 알면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어쨌든 바른 믿음이라는 전제가 붙기는 했지만, 그는 맹목적 비판자는 아니었다. 단지, 시기와 상황이 그를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포퓰리즘 중독?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의도가 더 커보였다. 강의석처럼 군대에 가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만약 강의석이 현역으로 군복무를 하고, 해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어서 시위를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류상태 전 목사는 자신의 생각, 그러니까 그가 생각하는 복음의 원형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작업이 참 고되다.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이 사회의 아버지이지 않은가?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칠만큼, 그는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을 불안정이라는 영역에 저당잡힌 채,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빗겨간다.
끈질긴 비판자
이토록 그가 기독교 비판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와 대화하며서 느낀 것은...그가 기독교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미친 사람을 보면 피해가는 것이 우리네 인간이다. 그런데 그는 그 미친사람을 고쳐보겠다고 인생을 거는 게 아닌가.(물론 기독교가 미쳤다는 말은 아니다. 그의 개념에서.) 어쩌면 그가 기독교로부터 파면당했기 때문에, 그 한과 분노로 끈질긴 비판을 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쪽이던지 간에, 그는 기독교에 애증이 있다. 결국 그의 끈질긴 비판이 한국 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날이 올 것이다.
※ 인터뷰 전문은 <뉴스파워>(http://www.newspower.co.kr)에 가면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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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서점에서 사서 읽고 있는데 이 책이 있군요.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제국이 어떻게 하여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었는지 정말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저도 류상태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제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과 상통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