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 졌고 또 어디서 왔을까?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한번 쯤은 자신에게 던진다... 이 질문은 인간 본연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며 또한 우리의 철학과 사고 방식 자체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각 나라마다 수 많은 인간 탄생의 설화가 있다. 신에게서 부터 잘려진 팔다리로 부터 나왔다는 설화... 그리고 여호와라는 신이 만들어졌다는 전설... 등... 그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여호와라는 신이 우릴 만들고 7일째는 쉬셨다는 이야기... 즉... 예전에는 이스라엘 지방의 일부 종교였던 이야기.. 우리에게 창조론이라고 알려진 이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도 여전히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 믿는 사회의 경제적 크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가 오는 영향은 크다.. 이러한 창조론은 중세시대 말까지만 해도 강력한 파워를 지니고 있었으며 암흑시대였던 중세시대에는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 생물학자들 마져도 자연 발생설을 정설로 알고 있었으며 신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힘은 없다고 생각을 했다. 이러한 중세 암흑시대가 지나고 시민혁명이라는 정치적 사건과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철학 사조의 유행과 더불어 많은 생물학자들은 자연 발생설을 부인하기 시작했고... 결국 18세기 중엽 파스퇴르의 유명한 실험을 통해 이 이론은 허구로 증명이 된다.. 그와 더불어 진행되는 큰 혁명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진화론이다.. (이 이론은 실제로 혁명이라고 불러도 무방할것 같다.) 갈라파고스 섬의 생태계에 대한 연구를 통한 이론의 발전... 그리고 영국 시골에 살면서 농부들이 수 많은 종의 비둘기를 만들어 내는것을 보면서 창조론에 대한 의문을 지니기 시작한 다윈은 결국 [종의 기원] 이라는 책에서 우리에게 인간은 어디서 뚝 떨어진 존재나.. 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며 박테리아에서 부터 우리 인류까지의 연결고리를 생각해 낸 것이다.. 후에 다윈의 열성적인 팬이 된 헉슬리라는 생물학자는 왜 자신은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러한 진화론은 초창기에는 부인되고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진화론을 가르치느냐 마느냐는 내용으로 재판이 이루어 지기도 했으며 가르치면 구속이 되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진화론은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더욱 더 증명이 되고 분자 수준으로의 연구가 가능해 졌는다.. 신진화론자인 리차드 도킨스는 이 유명한 책 [이기적 유전자] 책에서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가차 없이 이야기를 한다. 모든 생물체는 DNA의 탈것에 불과하다는 과격적이면서도 또한 무서운 이 주장은 처음 다가가기에는 굉장히 거부감이 든다.. 나라는 존재가 겨우 DNA의 탈것에 불과하다니.. 결국 우리의 육체는 결국 DNA에 의해 조정당하는 로보트에 불과하다는 이 생각... 많은 사람에게는 섬뜻한 감정을 들게 한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어떤 개체의 행동을 결정하는 일관된 기준은 그 소속 집단이나 가족의 이익이 아니며, 그 개체 자신의 이익도 아니고, 오로지 유전자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 기계인 생물들에게 주는 단 하나의 지침은 이것이다. “유전자를 생존시킬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라고 생각되면 무엇이든 하라.” 인류가 얼핏보기에는 이타주의적이라고 보이는 행동... 예를들면 벌들의 희생적인 행동과 늑대 무리에서의 약한 녀석의 희생... 이러한 것은 실제로 보기에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행동 지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주장 아래에서 게임 이론을 통한 사회 상황에서의 해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밈이라는 단어로 문화 또한 이러한 이기적 유전자와 비슷한 과정으로 진화를 거치고 있다는 내용으로 글을 마친다. 내용이 너무나도 방대하고 깊이가 있어서 사실 여기에 그의 생각을 다 적기에는 부족한 감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 책은 반드시 모든 대학의 기본 교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고 믿는다.. 그리고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창조론을 믿고 또한 종교를 가진다... (과학자가 종교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나의 생각은 담 기회에 써보겠다..) 이런 사회 상황을 보면서.. 이기적 유전자와 진화론이 언제나 음지에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 사람들이 잘 못 이해하고 있는 몇가지의 이론이 있는데. 이 도킨스와 진화론 또한 그렇다. 도킨스는 절대로 우리가 박테리아 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우리의 정신이라고 믿는 부분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도 않다... 지난번 학교에서 어떤 분 강의에서 또한 이 도킨스 이론을 잘 못 이해하고 단순히 진화론의 연장이며 이기적 유전자 이론만을 주장하여 유전자 만능론식이라는 연좌분이 계셔서 용감히도 반박을 했지만..... 과학자라는 사람들도 이 이론을 잘 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답답하기는 하다.. 그의 책에 이런 주장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서 조립되어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다" 결론은 우리는 신이라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에게서 창조가 되지 않았고... 물질에서 부터 끊임없이 긴 시간을 통해 진화하고 변해 왔으며... 그 축은 유전자라는 점이다... 그리고 유전자 축에서 인간만이 특이하게(절대로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진화론은 절대로 어류가 파충류보다 우월하고 파충류보다는 조류가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문화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러한 문화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진화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가을 밤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 대학 시절 읽고 싶었던 책 중 하나였는데...그 때의 기대를 생각하며 설레는 맘으로 책을 들었다. 하지만 문장 하나 하나가 각자 플레이를 한다는 느낌이다. 좀 더 정성을 들여서 번역을 하고 수정을 거쳤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번역이 시원치 않았던 책들은 차라리 사전을 찾아가면서 어렵지만 원서로 읽었던 게 더 이해가 잘 가곤 했던 대학시절이 생각난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커서 그런지 아직 1/3도 채 읽지 않았는데 그만 읽으려고 한다. 인내가 많이 필요한 책인 것 같다. 이전에 쓴 다른 독자 리뷰 처럼 실력이 된다면 원서로..그게 좋을 듯하다. |
| 이기적 유전자는 두 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당시만해도 생물학 관련 교양 서적을 거의 읽지 않았던 터라 ''어려운 과학적 개념이 그것을 잘 이해하고 수고하는 사람에 의해 쓰여진다면 얼마나 알기 쉽게 설명될 수 있는지...'' 어쩌구 하는 뉴욕 타음즈의 서평이 내 무지를 꾸짖는 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 속에서 그 서평은 ''알기 쉽게 설명된 책도 역자의 미숙함과 안이함으로 얼마나 독자를 피곤하게 할 수 있는지''라는 문구로 대체 되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책을 이 정도 수준밖에 번역하지 못 한다 라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 출판계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기적 유전자를 내던진 후 읽었던 ''이타적 유전자''라는 책은 정확하게 하루만에 읽어 버렸지만, 그 후 몇 년이 지나 다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마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고고학자마냥 읽고 다시 읽고-_-) 심지어 소리까지 내서 읽어봐야 했다. 내 ''이기적 유전자''는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보며 솟아나는 분노로 ''생존 기계''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 보다 동네 도서관에 기증해 버리는 것이 독서광 유전자의 미래를 위해 옳은 일임을 강력하게 권하고 있다. |
| 진화론에 이어 유전자가 세상에 나온 이상, 이 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진화론적 인간관, 진화론적 생명관을 넘어서 유전자적 인간관, 유전자적 생명관이 아닐까? 마치 '종의 기원'이 처음 나왔을 때 다윈의 얼굴에 원숭이 몸뚱아리를 붙인 만화로 다윈을 조롱하기까지 했듯이, 아직은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인간관이다.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나기 전에 그것이 이기적 인간관이든, 이타적 인간관이든, 유전자적 인간관이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인간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 된다. 따져보면 유전자적 인간관은 그 이름만 바뀌었지 아주 전통적인 인간관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 않는가?? 이 말은 혈연적 유대와 동시에 개인의 유전적(전통적으로 '선천적' '천재적'이라는 말로 불리어왔다) 한계를 뜻하는 말이다. 유전자적 차원에서 말하자면, 혈연적 유대와 개인의 '선천적' 한계 또는 재능도 결국 유전자 차원의 이익과 유전자 설계도 위에 기초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감정과 사고능력도 결국은 유전자의 지시로부터 나왔다는 것. 하지만 분자수준의 단백질 덩어리일 뿐인 유전자 차원 이후의 문화적 차원과 정신적 차원의 사건과 행동들이 인간을 정의한다는 것, 다시 말해 인간만이 유전자에 반항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 그 발달에 있어 어떤 임계치를 넘는 순간, 단순히 유전자의 노예나 기계 수준을 넘어서버렸다는 것이다. 누구는 '반항'이라는 말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다지만... |
| 이 책은 굉장히 유명한 책이다. 그래서 읽어보게 되었다. 표지의 깔끔함과 활자의 크기등 모든게 맘에 들었다.. 하지만.. 내용을 읽어갈수록.. 번역자에 대한 분노가 점점높아져 갔다. 통일성 없이 아무렇게나 등장하는 대명사와 추상명사의 남발.. 도대체가 감을 잡을수가 없었다. 대체로 문맥을 통해서 의미를 유추해서 읽어가야하는데 이건 무슨 그냥 대는대로 직역해서 같다 부친꼴이 되었다. 그래서 문장 자체의 밸런스도 제대로 맞지 않고 있었다. 직역을 해서 문장의 내용도 괴상하기 짝이없었다. 번역자를 보니 생물학 계통 전공자인것같은데.. 아무리 관련 지식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번역에 대한 기본은 잇어야 하지 않는가.. 원작에 대한 모독에 가까웠다. |
| 인간의 수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연장되고 있으며,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는 불치병 혹은 난치병으로 분류되던 몇몇 질병들이 오늘날 더 이상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 윤리성의 문제에 직면해 있긴 유전공학은 분명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정도는 더욱 증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기에 유전자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유전자로 환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렵다. 인간의 겉모습에서부터 시작하여 많은 부분을 유전자가 제어한다 할지라도, 나의 모든 것을 유전자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꺼려진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유전자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나의 생각은 지독히도 인간 중심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전자 속에 내재된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의 삶으로부터 의미를 찾는 것은 어려워질 듯 싶다. 게다가 우리의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유전자가 지닌 ‘이기적’ 성향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는 것도,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모두 이기적인 유전자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해버릴 수 있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실로 많은 예를 들고 있으며, 이는 그 발상만큼이나 흥미롭다. 그리고 그 생각은 흥미롭다 못해 다소 발칙하다 라는 느낌까지 든다. 진화론의 한계(?)를 굳이 논하자면, 최초의 변이에 대한 설명이 부재한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즉, 우연히 출현한 종이 다른 종에 비해 환경에 적응함에 있어서 우위를 점할 경우, 이러한 우연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저자 역시 ‘우연’이라는 단어를 통해 변이를 이야기한다. (이는 아마도 나의 자연과학적 지식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박학다식 하지 못하며, 다분히 기형적인 지식 습득 과정을 거쳐 지금에 도달한 존재인지라…;;) 저자의 주장은 다분히 수학적이다. 어머니와 자녀, 같은 부모를 가진 형제 간의 유전자의 근친성 및 평균 여명을 통해 본 각각의 행위 내에 내재되어 있는 유전자의 이기성을 살펴보는 과정이 냉정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거기에 멜서스주의적(?)인 관점과, 나의 전공(사회복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까지 종종 엿볼 수 있었으니, 나로서는 당연히(?!) 거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저자의 생각은 매력적이다. 인류, 어느 누구도 인간이라는 종이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굳이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을 고려하지 않더라도-우리 모두는 가족 구성원의 행복을 바라며 전혀 모르는 이보다는 나의 가족 구성원이 좀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길 바란다는 점에서-우리 모두는 이기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우리 사회에는 인간 개인의 유전자를 뛰어넘어 소위 ‘사회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물론, 이 모든 것도 개개인의 유전자가, 혹은 인간 종의 번영을 위해 인간 집단 전체가 발현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말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국가에 의한 가족계획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임신과 출산은 가정, 적게는 여성의 문제에 국한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인구를 억제 혹은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분명 유전자에 의한 자가 조정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남녀간의 성행위가 자녀 출산의 목적을 띄고 행해지는 경우는 전체 성행위 중 몇 %나 될까? 이것 역시 ‘의도치 않은 임신’을 고려한 유전자의 행위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아들선호사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부모와의 유전자의 근친성을 통해 본다면 딸, 아들 모두 1/2로 동일하고, 평균 수명이 일반적으로 여성이 더 길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딸의 평균 여명이 아들의 그것보다 높은데도 왜 딸보다는 아들이 선호될까? 남성을 선호하는 것도 유전자의 이기적 성향 때문일까 등등. 물론 저자는 이에 대해 간단한 언급을 하긴 했다. 어미가 갖고 있는 자원을 아들에게 모두 투자하는 것이 보다 많은 개체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딸에게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그는 봤다. (남성은 평생에 걸쳐 생식이 가능하며, 직접 임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는 모든 여성에게 자신의 정자를 퍼뜨릴 수 있는 존재이다.-_-) 하지만 우리 사회는 분명 일부일처제 사회인걸 고려한다면 아들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보다 많은 개체수에 전파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고려하고 난다면, 아들선호사상은 유전자보다는 문화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분명 유전자는 인간의 삶에 엄연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굳이 유전적인 질병을 따지지 않더라도 이는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의 삶, 그 근원에 존재하는 이성, 타인을 사랑하는 그 마음까지 유전자의 행위로 설명하고 싶진 않은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어쩌면 이는 자연과학을 공부한 사람과 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건널 수 없는 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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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이며,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를 연장한 개념인 '밈'(문화 유전) 이론을 제시한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주요 쟁점인 이타주의의 본질, 협동의 진화, 무리의 발생, 혈연 선택 등과 방대한 현대 게임 이론,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의 진화 실험, 등을 보여준다. 우리는 유전자 기계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지며 밈의 기계가 되도록 길러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창조한 자에게 대항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복제자의 폭정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것이다. p.291 |
| 우리는 흔히 생명의 기본 단위는 ''개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개체''가 아닌 ''유전자''가 생명의 핵심적인 단위이며, 개별 생명체는 유전자의 생존과 자기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생겨나 진화해 온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방대한 사례들을 들어 어떻게 각 개체들이 유전자의 영속을 위해 프로그램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처럼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가 사실은 유전자의 이기성에 바탕을 둔 것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쨌든 생존과 번식을 위한 냉혹한 생물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를 왜곡한 각종 동화나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 같은 것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라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BBC 동물 다큐멘터리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즐겨 보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책이 나왔을 때에는 아직 자연에 대한 지식이 일반화되지 않아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이 책에서 충격을 받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간 역시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며, 그 유전자는 오로지 생존과 자기복제만 목표로 한다는 내용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인간은 ''유전자'' 혹은 ''본능''에 지배받는 존재이므로 오늘날 이 세계에 만연한 범죄, 전쟁, 갈등과 반목 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나 유전자는 이기적일지라도 개체는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신을 위해 죽는 게 자신에게 가장 큰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자살 테러를 감행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유전자에 있어서는 극히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다. 인간처럼 복잡한 존재에 있어서는 유전자 하나하나가 인간의 행위를 관장할 수 없으므로 극히 기본적인 프로그램만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어 있을 뿐, 개개의 행위는 다양한 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유전자의 지배는 의식적인 차원이 아니므로, 인간 개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보다는 자신이 좀더 안락하게 사는 데 집착한다. 오늘날 출산율은 지극히 감소했는데, 이는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되는 대로 아이를 낳아 보육원 앞에 버리면, 정부에서 키워줄 것이므로 그만큼 자신의 유전자에게는 이익이 되겠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복잡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다양한 욕구를 발전시켜 갔는데, 그러면서 유전자의 이익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나아갔다. 예를 들어 공명심 같은 것은 실질적으로 유전자의 이익과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유명해지는 데 무척 집착하여 그것을 위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저자는 인간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문화적 진화'', ''밈'' 등의 개념을 창안했는데, 이는 적절한 설명이다. 인간은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문화''를 통해 유전자의 독재에서 벗어난다. 아마 고등한 동물들 역시 유전자의 지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을 것이라고 예측된다. 음악을 들을 때의 즐거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고통을 볼 때의 슬픔, 나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먼 곳에서 일어난 불의를 볼 때 일어나는 분노 등은 내 유전자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상관이 없다. 인간이 유전자를 담는 그릇으로서 애초에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인간의 진화는 너무도 격심했으므로, 더 이상 유전자로만 인간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물학을 넘어서 인문학, 사회과학 등의 분야에서 사회와 문화의 맥락에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
| 이 책의 가치는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데에 있다. 도킨스가 지적한대로 새로운 관점은 새로운 지적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읽고 생각해 볼만한 책이다. 그 새로운 관점이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 진화의 원동력이 그룹 선택이나 개체 선택이 아닌 유전자적 선택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도킨스의 이론에 기본이 되는 것은 물론 다윈의 '자연 선택설'이다. 자연이 생물의 진화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킨스의 유전자적 선택설에도 마찬가지이다. 유전자는 목적도 의식도 의도도 없다. 단지 계속 자기 복제를 할 뿐이고 자연에 더 적합한 놈이 살아남아서 그 형질을 보존한다. 더군다나 유전자는 미래를 예측할 능력이 없다. 유전자적 선택 관점이 타당한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를 떠나서 실제로 그의 견해는 많은 발견과 연구가 가능하게 했다. 실제로 그의 이론을 충실하게 반영한 유전자 알고리즘(Genetic Algorithm)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방법이 있는데 나는 사실 이 책보다 먼저 그 알고리즘을 통해서 유전자적 진화 관점을 접했다. 유전자 알고리즘을 보면 도킨스 이론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섯 개의 숫자로 이루어진 생물이 있다고 가정하자. '55555', '33333', '77777'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자연 상태는 낮은 숫자일 수록 생존할 확률이 높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55555와 33333이 살아남아서 자식을 낳게 된다. 그런데 서로의 유전자를 교환하게 되므로 '33535'. '35353'. '53355' 와 같은 자식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33535와 35353이 살아남게 된다. 아마 최종적으로는 00000이라는 생물이 생존하게 될 것이다. 유전자 알고리즘은 아무 생각이나 의도없이 임의의 5개의 숫자를 발생시키게 되어 있고 그 중 더 적합한 일부만 살아남게 된다. 재밌는 것은 정말 이 알고리즘을 쓰면 최종적으로 00000의 생물이 남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유전자 알고리즘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신뢰성이 높은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잠깐 옆길로 샜는데, 바로 이것이 지극히 진화론적인 관점을 적용한 방법이다. 선택권은 유전자에게 있지 않다. 바로 자연에게 있다. 이런 관점은 이 책의 기본적인 관점이자 자연 선택설의 기본 원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약간 당혹스러웠던 점은 진화를 그룹이나 개체 혹은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결정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말을 쓸 수 있냐는 것이다. 즉, 유전자는 자신의 형질을 복사해서 남기고자 하는 본능이 있을 뿐 계속 존재하려는 의도는 없는데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도킨스는 "목적이란 생각은 어떤 경우에서나 단순한 은유에 불과하다(p.315)"라고 말하며 목적이란 단어의 정의 자체를 바꾸어 버린다.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동시에 약간 아쉽기도 하다. 오히려 자연선택이라는 진화론적인 관점을 버린다면 도킨스의 이론은 더 명료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생물의 최소 생존 단위 혹은 기본 설계도에는 이기적인 생존 본능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의 이론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도킨스는 동물 행동학자이다. 이 책도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의미보다는 동물 행동을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으로 의미를 축소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관점에서 동물의 행동을 해석한 그의 논리가 아주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도킨스가 예외로 두었던 동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그는 스스로 인간에게는 진화를 생각할 때 유전자만을 그 유일한 기초로 보는 입장을 버려한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개념이 인간의 문화를 고려한 '밈'이라는 것이다. 그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을 특별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인 혹은 유전자적인 관점에서만 다시 말해서 과학적인 관점에서만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진화론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진화라는 말만을 가지고 마음대로 생각한다. 즉, 무생물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물이 되었고 그 생물은 어떤 방향을 향해 계속 자신을 발전시켜왔다고 믿는다. 즉, 환경을 정복하고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을 진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은 그 주도권이 자연에게 있음을 주장한다. 생물이 자신의 발전방향과 자식의 형질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선택한 것이라는 관점이 진화론이다. 또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무생물에서 생물로의 진화,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로의 진화, 원숭이에서 인간으로의 진화 등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된다. 왜냐면 과학이라는 학문은 실험과 관찰이 기본인데 아무도 그 진화 과정을 본 사람도 없고 기록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 관찰할 수 없는 것이라면 당연히 유추와 가설을 사용해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도킨스도 그 부분은 소설을 쓰고 있다. 즉, 그럴 듯한 상상만 있을 뿐이다. 또한 논리적인 비약과 우연이라는 소설의 특징도 그대로 나타난다. 도킨스는 그의 논리적 비약을 위해 '살아 있다'는 말의 정의를 흔들어 쓰러뜨려 버린다.(p.46) 다시 말해서 진화는 증명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타당하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 "Only two things are infinite, the universe and human stupidity, and I'm not sure about the former. " 과학자들은 우주의 모든 것을 알아야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주의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자신의 방법과 이론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올 것이다. 도킨스가 그런 부담감을 버렸다면 이 책의 논리가 좀 더 명확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도킨스의 이 책의 예상 독자를 세 부류로 정의하고 있다. 생물학에 문외한인 일반 독자, 전문가, 문외한에서 전문가로 이동하고 있는 학생 이렇게 세 부류이다. 도킨스가 나같은 기독교적 창조론자가 이 책을 유쾌하게 읽었다고 한다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도킨스의 이론에서 새로운 관점의 유익을 배웠고, 생물학적으로 윤리의 기반을 찾을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이전 과학자들의 다소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이론에서 발전되고 있는 과학의 모습을 보았고 인간이 정말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생물학적으로도 알게 되었다. 인간이 유전자의 보존을 위해 존재하는 '생존 기계'라는 그의 진화론적 신념을 반영하기 위한 일종의 추론만 뺐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진화론 이야기가 나왔으니 창조에 대한 한 마디만 하고 마치려고 한다. 나는 웃찾사의 "잉글리쉬는 마음 속에 있는 거니까요."라는 대사를 좋아한다. 영어 해석이 그 때그때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그것은 잉글리쉬가 해석자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자연 속에 수없이 많은 종류의 살아있는 존재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가장 최적의 생물로 귀결이 안 되고 다양한 종이 분화하게 되었는가? 인간은 왜 인간으로서 다른 모든 생물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자연의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주는 신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