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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미국을 한자로 표기하면 美國 그러니까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다. 그 만큼 우리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다. 오죽하면 아메리카드림이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에 가서 정착만 하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보듯이 미국진출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지금 이시간에도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고 있지 않는가 미국이라는 큰물에서 놀아볼려고. 심지어 00 라이트라는 극우세력은 거침없이 미합중국의 일개주로 편입되는 것이 한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까지 거침없이 떠들어 대고 있지 않는가.
세계최강의 국가, 세계경찰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국가, 세계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국가, 세계의 모든 자본과 인재가 몰려드는 나라 그 곳이 바로 미국이다.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미국이 빈곤대국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빈곤이란 단어와 적합한 곳은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최빈국들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갑자기 세계최고의 강국인 미국이 빈곤대국이라니 믿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참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없이 가련해 보이고 딱해 보인다. 그 만큼 우리가 가지고 있던 미국에 대한 생각들이 그동안 너무나 과대포장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잘사는 나라에도 빈곤층은 있기 마련이다. 그게 칼 마르크스가 죽도록 주창했던 이론아니겠는가? 엄연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또 하나의 법칙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빈부의 격차가 개인의 후천적인 능력이나 자질을 떠나서 국가라는 공정한 제도에 의해서 그 원인이 제공된다면 이는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인것이다.
<<빈곤대국 아메리카>>는 세계경제의 대패러다임인 신자유주의가 불러오는 빈곤에 대한 르포이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의 근원국가이자 가장 충실한 신도인 미국내에서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를 사실 그대로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일본인인 필자가 9.11테러를 현장에서 직접목격하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변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신자유주의의 대전제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즉 시장경제에 맡겨두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아담 스미스보다 더 확실하게 이론무장하여 시장이외에 발생하는 모든 경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국가의 역활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고 신자유주의자들의 말처럼 작은 정부로서의 역활만 충실히 이행하면 경제적인 문제는 시장이 알아서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정말 좋은 이론 아닌가? 시장참여자들의 자율의사에 의거하여 가격이 결정되는 경제적 왜곡이 없는 완벽한 경제이론인 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가 영역확대를 시작했다. 국가의 기본의무라고 할 수 있는 교육, 의료, 국방에 관한 문제까지도 이제는 국가보고 그냥 뒷짐지고 지켜만 봐라고 요구하고 있고 그런 요구를 받아들인 나라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물론 부시나 딕 체니같이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들에게 민영화라는 허울속에 이권을 넘긴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 큰물결앞에 항복하고 만 나라가 미국인것이다. 교육경쟁력의 확보라는 차원, 의료서비스의 제고, 낙오 학생 방지법이란 명목으로 어린 학생들을 전장으로 몰아 가는 정책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허울속에서 미쳐 발견하지 못하는 점이다. 교육의 민간이관으로 발생하는 교육비의 지원삭감과 그로인한 등록금의 상승이 결국 빈곤층을 더 빈곤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낙오 되는 학생들을 구제한다는 명목하에 군입대 프로그램을 동원해서 이라크에 파병하는 제도는 가히 환상적인 신자유주의 절묘함을 보여주는 극치이다. 그 어떤 경제이론이 이런 절묘함을 보여줄수 있을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몸이 아프면 안되는 나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료보험제도가 민영화되어 있기 때문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의료비 부담으로 파산하는 자가 부지기 수이다. 환자나 의사나 둘다 민간보험회사의 먹이감으로 전락한지가 오래된 것이다.
시장원칙과 완전경쟁을 내세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결과는 빈곤의 확대이다.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미국에서도 살아진지 오래되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브프라임모기지도 이러한 발상으로 파생한 금융상품이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해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 타킷이 빈곤층에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에 관한 정부의 역활을 민간으로 이양하면서 기존의 국가개념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빈곤층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푸드 스템프를 손에 들고 급식시간을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패스트푸드 내지는 정크푸드와 콜라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식습관은 결국 비만을 초래하고 다시 비만은 갖가지 질병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 마져도 쉽지 않는게 미국 빈곤층의 삶이다. 탈출구라고는 군입대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입대한 군에선 아무런 목적의식 없는 병사 살인기계만을 양상해 내고 있는 것이 지금 미국의 현실인 것이다.
맨하턴의 마천루가 즐비한 미국을 생각하면서 자유의 나라를 동경하는 이들에게 그 자유의 나라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책이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이다. 국민들이 어떻게 먹고 살던 어떻게 죽어가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앞에서 그 어떠한 호소도 시장왜곡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빈곤대국 아메리카>>의 실상은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과연 국가 정부의 시장에 대한 역활이 어디까지이며 무엇인가?민영화만이 경제위기를 벗어나고 투명한 경영이 가능한가라는 점에 지금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국가의 역활>>에서 잘못 이양된 민영화는 돌이길수 없는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교육, 의료, 국방이다. 물론 국가가 주도하는 케이즈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국가의 역활을 제대로 숙지하자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맞이하여 새로운 희망 <담대한 희망>이라는 캐치프레이즈하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서로가 머리를 맛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신자유주의라는 장벽을 극복하게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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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인 '르포'는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관하여 보고자가 기록해 놓은 기사이다. 이것은 보고자의 식견을 바탕으로 심층 취재하여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하여 종합한 기사를 뜻한다. 저자 츠츠미 미카는 아메리카 사회의 빈곤 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왜 부유한 자는 더 부유해지며 중산층은 계속하여 하위층으로 전락하는 것일까? 여기에 저자는 미국의 사회적인 구조를 언급한다. 그 언급을 읽노라면 미국의 경제 시스템과 너무도 닮아 있는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게 한다.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거리 한켠을 메우고 있었다. '다음 달이 벌써 크리스마스구나.'라며 놀랐다.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름다운 장식으로 전구를 밝힌 거대한 트리와 귀여운 그 밖의 장식들이다. 전보다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는 점점 더 진해지고 강해지는 것 같아 신기하다.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상업화에 덜 물든 시골에 살아서 그런 것일수도 있고 크리스마스에는 덜 신경을 쓰신 부모님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즘은 설날과 추석의 우리 고유 명절마냥 크리스마스도 뭔가를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인다. 이렇게 변화된 개인의 인식 구조 속에도 거대한 상업화의 논리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책을 보고 하게 되었다.
책의 한 켠에 나온 한 사진은 크리스마스의 아름다운 장식이 담겨 있다. 크리스마스 장식 옆으로 몸이 불편해 보이는 노숙자 차림의 극빈자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한 채 걷고 있다. 이 한 컷의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노숙자는 저런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어떤 기분으로 봐라볼까?'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저 벽에 단 장식 꽤 비싸보이는데, 저 장식이면 빵을 몇 개나 살 수 있을까?' 노숙자는 아무래도 두 끼 이상은 굶은듯이 보인다. '장식 하나를 덜 달고 배고픈 이에게 빵 하나를 더 줄 수 있는, 그런 사회는 왜 안이뤄 지는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들자, 나를 뒤돌아 보게 되었다. 거리의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낸 것과 크리스마스를 위해 샀던 일련의 선물들의 액수를 비교하면 후자가 큰 게 사실이다.
이 책에서 주로 꼬집고 있는 것은 국가의 정책이다. 부시 정권의 실태를 특히 실날하게 비판하고 있다. 언론까지도 민영화의 논리에 넘어가 객관성을 잃어버린 현실은 시민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알권리'는 커녕 '거짓된 공론'에 휩싸일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9.11테러가 났을 당시에도 다수의 미국인들은 저널리즘에 희생양이 된다. 애국심이라는 말을 위안 삼아 강력한 지도자를 지지하며 전쟁으로 내달린 미국인들을 이상한 눈으로 봐라보기 이전에 그들이 접했던 언론을 파헤칠 필요가 있다. 전쟁 자체도 민영화에 의해 이뤄진 거대 기업의 일로 넘어가 버린 사회 구조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포풀리즘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빈곤이라는 사회적인 악순환은 세대를 거듭할 수록 더 악화되었다. 미국의 군대 지원 방식의 문제에서, 그리고 학교의 무료급식 시스템에서 문제를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일까? 요즘들어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가난한 학생이 공부를 잘해서 성공할 확률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될까?'하는 질문을 제기하곤 한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는데, 해를 거듭할 수록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을 볼 수록 이 대답에 기운을 잃어가고 있다. 거대 기업들은 더 큰 힘을 갖고 성장해 가고 중소 기업들은 더 설자리가 없어지는 사회 구조 속에서, 그리고 부잣집 자식은 가정의 뒷바침으로 더 많은 교육 기회의 장을 갖게 되고 더 좋은 위치를 점하게 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기대를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애플, 브르디외 같은 사회 재생산론자들의 말이 계속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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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세계를 쥐고 흔든다는 나라.. 어찌보면 모든 것의 시작일것처럼도 느껴지는 나라.. 웬만한 개도국이라면 그들의 길을 따라 걸어가지 않을까 싶은 그런... 그런 나라에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요즘의 중국을 떠올려보게 된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굴욕에 대하여, 그리고 그와 똑같은 상황을 겪어냈을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하여.. 그랬던 우리도 지금은 값비싼 임금앞에 무너져 많은 것들을 빼앗기고 있다는 말을 심심찮게 보고 듣게 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듯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 대한민국으로 찾아오는 타국인들의 삶을 매스컴을 통해 바라볼 때마다 지구촌이라는 단어앞에 무안해지곤 했었던 기억도 있다. 무엇이 우리들에게 이처럼 가혹한 현실을 만들라하는가!
책을 읽으면서도 가슴 한쪽에서 스멀거리는 분노를 어쩌지 못한 채 애를 태워야 했다. 힘없는 나라 약소국의 서러움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저들의 이해득실앞에 무너져가는 우리의 아이들이 떠올랐던 까닭이다. 비만아 대책... 결국 저들의 이윤만을 따지는 시장원리에 멍들던 기업들이 희생양을 찾아 저소득층이나 개도국으로 방향전환을 했다는 것은 그리 놀랄일도 아니겠지만 그런 것들을 너무도 무책임하게 저항감없이 받아들이는 입장에 대해서는 개탄해마지 않을수가 없다는 말이다.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란 나라, 아니 이윤을 추구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들이 가혹하리만치 냉정하기만 하다. 평균 개인소득이 하위에 속하는 저소득층의 자녀들에게 실시되는 무료.할인 급식제도의 잘못된 점들에 대하여 정부가 책임지기를 꺼려한 채 외면해버렸다는 사실조차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건 정말 슬픈일이 아닐수가 없다.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주제를 나름대로 대략 기억해보자면 서글프게도 우리의 현실과 맞닥뜨려지는 점들이 참으로 많다. 푸드편을 보자면 이렇다. 빈곤이 만들어낸 비만이라거나 왜 빈곤층의 아이들에게 비만아들이 더 많은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남의 이야기만도 아닌것 같다. 패스트푸드제품에 찌들어가는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아프리만치 따끔한 질책처럼도 느껴지니 말이다. 그토록 잘산다는 선진국의 대표급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조차 기아에 허덕이는 국민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은 모순일까? 아니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는 저들의 모습일 뿐일게다.
얼마전 미국을 강타했던 뉴올리언스의 재난을 기억한다. 그 이재민들이 지금은 고향땅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버려졌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세계에서 제일 비싼 의료비로 인하여 중류층이 몰락해가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병원이 하나의 주식회사처럼 운영되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앞에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균형적인 식사와 운동, 수면으로 충분히 지켜낼 수 있는 건강마져도 의료비가 너무 비싼 나머지 건강보조제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씁쓸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국가가 도와주지 않으니 아프면 병원가서 치료할 엄두조차내지 못한다는 그들.. 그 건강보조식품의 폐해가 날로 늘어만가고 있다는 데 우리는 어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건강보조식품을 대하는 우리의 강박관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가시스템이나 사회적인 구조가 그들과 똑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여지는 결과가 비슷한 걸 보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저들을 닮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까닭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영화된 전쟁’.. 세계 여러나라의 근로 빈곤층들이 지탱해나가고 있다는 전쟁의 현실.. 저 밑바닥에 숨어 자신의 실체는 드러내지 않은 채 하나의 기업이라는 이름만을 내세워 힘없고 돈없는 세계의 빈곤층들을 겨냥하여 끝도없이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저들의 악마적인 모습.. 그 악마가 내미는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는 그들의 서러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저들의 웃음뒤에 숨어 버린 나라의 이해타산적인 비굴함을 어이할까.. 개인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정말 괜찮은 일자리가 있는데 말이죠”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파견이라는 순수한 비즈니스입니다”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고 겨우겨우 풀칠해가며 살아가고 있는 전 세계의 빈곤층을 향한 저들의 비열함앞에서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던 말이 떠올라 내심 한숨을 내쉬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하나의 거대한 눈길.. 1984라는 소설속의 빅브라더.. 참으로 무서운 현실앞에서 무엇을 탓하고 무엇을 원망하랴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또 왜일까? 어느 누구도 이런 세상을 만들라고 등떠밀지 않았을거라는 사실이다. 테러보다 무서운 민영화라는 말을 들으면서 앞으로 더 힘겨운 세상을 살아내야 할 우리의 아이들을 어이할까 싶었다.
저자 후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중요한 것은 그 적을 결코 잘못 알아서는 안 되는 것 이라던 말이 가슴을 찌른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번지르르함보다는 그 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성질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살 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국가적 시스템에 손발이 묶인 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서도 저자는 아프게 꼬집고 있다.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인간이 '생명'이 아니라 '상품'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결코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책장을 덮기전 저자가 말하고 있는 뼈아픈 결론을 여기에 옮겨 적으며 다시한번 기억해 두고자 한다. 그 가슴아픔에 대하여... /아이비생각
무지나 무관심은 '바꾸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공포를 낳고, 언젠가는 무력감이 되어 우리의 힘을 뺏는다. 눈을 감고 입을 다문다면 우리는 패할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가 아이들에게 있어서 절망의 시작이 된다. 현상이 괴로울수록 우리는 시험당한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차세대에게 건네줄 수 있는 것은 한없이 귀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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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의 허상이 솔솔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마이클 무어라는 다큐영화감독의 영화들을 하나둘 보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미국내 총기소지, 9.11테러에 대한 정치권의 배후,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그가 다룬 주제들은, 미국이란 거대한 이미지뒤에 감춰진 실제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듯 위대하거나 결토 낭만적이지 않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미국의 비만인구에 대한 반성과 패스트푸드 식습관을 고발한 모건 스퍼록의 '수퍼사이즈 미' 역시 또하나의 이면을 드러내주는 자료영화라 할 것이다.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요즘에는 마구잡이 신용팽창이라는 미국의 경제적 부실과 직면하여, 케네디시절의 프론티어 정신이 무색해진 취약한 나라의 뒷모습이 처량하기만하다. 마침 이즈음 일본인 작가의 미국 르뽀는 현실감과 함께 시의적절성을 띠고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빈곤대국 아메리카...... 미국이 빈곤하다는 말에 몇프로 정도가 동의할까? 달러보유고로 한 나라의 경제기반이 평가되는 시절에 그 달러의 종주국인 미국이 가난하다면 말이 되는가. 물론 빌 게이츠도 워렌 버핏도 미국국적이다. 그리고 뉴욕의, 엘에이의 명품가에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일년 생활비의 옷값 가방값이 즐비하지 않는가. 명품구매자들은 비싼 의료보험에도 가입하고 마음껏 그 혜택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미국내 빈곤계층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나. 한 나라가 국민 생활의 기초를 보장하고 사회적 재분배를 통해 빈곤층을 끌어 안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에 따라 국가의 기본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은 자본주의가 가장 성공적으로 실현된 나라이자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단도 몸소 겪고, 아니 앓고 있는 나라이다.
<빈곤대국 아메리카>가 꼽고 있는 빈곤 미국의 요소들은 크게 5가지이다. 비만, 재난의 민영화, 의료보험, 청년층의 학자금대출과 모병비리, 그리고 전쟁의 민영화가 그것들이다.
비만이란 소득이 높은 계층에서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란 것이 저자의 견해다. 실제로 고소득층의 자녀들은 가정에서 질좋은 재료로 만든 슬로 푸드와 영양가 있는 음식들로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는 반면 빈곤층의 자녀들은 푸드스탬프로 겨우 한끼 때우는 방식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햄버거와 피자등 고열량, 저영양의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적은 돈으로 수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재료는 저가에 요리가 간편한 냉동음식들 뿐이다. 이렇다보니 빈곤층의 아이들중에 비만아가 많아지는 것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쑥밭이 되어버린 뉴올리언즈는 사실 좀더 일찍 재난 방재를 준비할 숟 있었음에도 재난이라는 중대한 사안마저 민영화라는 자본주의적 발상에 노출되어 뒤늦은 처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폐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정부의 일은 어디에 있는가?
민영화의 폐단은 의료보험제도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 '식코'에는 넷째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절단당하는 사고를 입은 환자가 어마어마한 치료비때문에 가운데 손가락의 치료를 포기하고 넷째 손가락만 잇는 수술을 받았다고 피력하며 절단된 가운데 손가락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처럼 고가의 보험료를 부담할 수 없는 중류층이하의 사람들은 그저 살아있는 동안 아프지 않기만을 간절히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를 출산한 산모가 당일 퇴원이라는 무리수까지 무릅써야 한다니 이 무슨 비극인가. 호주 정부는 임산부의 건강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영양제(초유같은)를 공급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비교되는 현실이다.
학생들까지 학자금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빚을 갚기 위한 방편으로 전쟁에 파견될 군인 모집에 어쩔 수 없이 응하게 된다는 보도는 또다른 놀라움을 자아냈다. 얼마전 우리나라에도 대학졸업자의 학자금대출 신용불량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짧은 뉴스를 접한 적이 있는데 무엇이든 미국만 따라하는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의 한 단면인 것같아 우울해졌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근거는 애국심에 불타는 젊은이들이 많아서가 결코 아니었다. 한계상황에 도달한 청년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었고, 대출금 전액 상환과 전장파견불가라는 계약조건을 위반하면서 전쟁터로 학생들을 가게한 정부의 술수로 가능한 것이었다. 심지어 낙오된 고등학생들에게도 군대는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꾸며진다.
젊은이들을 모병한다면 민영화된 전쟁관련 파견회사들은 전장에 수급되는 물자를 나르는 운송트럭의 기사를 모집한다. 전국을 다니며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물색해 조건을 제시한다. 핵에 노출된 시신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풀어낸다. 그만큼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부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파견회사와의 계약으로 전 세계 약소국에서 모여든(아니 팔려온) 계약자들은 군인들이 마시는 생수조차도 얻어마실 수 없고 최악의 조건에서 계약기간을 버텨낸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는 일이 된다. 참으로 모든 영역이 비즈니스가 된 미국사회를 바라보면서 이러한 잔인한 거래가 테러에 버금가는신형 공포가 아니고 무얼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직도 유학하면 미국을 떠올리고 세계비즈니스의 현장하면 월가를 염두에 두고 세계 학문이 몰딩되고 다듬어져 세계인의 표준치로 거듭나는 곳이라고 생각되는 미국이다. 미국비자가 면제되면 미국에 쉽게 입국할 수 있을 것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한편 땡기고 헐리우드작 영화로 맛을 돋구고 보스톤으로 날아가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순회해보고... 미국하면 가서 경험해보고 싶은 게 셀 수 없이 많아진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보도되지 않았던 이면에 눈을 돌리고 그들의 삶의 노곤함도 헤아려 볼 수 있어야할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집잃은 서민이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홈리스 텐트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어제의 멀쩡한 중산층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렇듯 신자유주의의 방만이 낳은 병에 호되게 시달리고 있는 미국이 우리가 더 궁금해야할 미국의 본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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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스타벅스 매장이 많은 나라일수록 이번에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타격을 많이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미국식 자본주의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일수록 이번 경제위기에서 취약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십년 전, IMF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과정에서 타의에 의해 통째로 경제구조 자체를 미국식으로 뜯어 고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바로 여기에서 츠츠미 미카가 쓴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의 화두는 시작된다. 구소련이 몰락한 이래, 전 세계에서 유일한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던 아메리카가 빈곤대국이라니?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 그녀의 글을 통해 펼쳐진다. 일단 이번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는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금융대출을 통한 이익의 창출해낼 방법이 없어지자, 투기 금융자본들은 파생금융상품이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약자들을 상대로 한 가계대출에 나서기 시작한다.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하류층이나 불법이민자들이 그들의 얄팍한 상술에 걸려들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은 물론이고 한 때 천정 높을 줄 모르고 치솟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게 되면서 대출 상환을 못하게 되면서 파산지경에 이르게 된다. 어디 그 뿐인가, 철저한 신자유주의 이론과 후진 서비스라면 모두 민영화시키자는 말도 안 되는 구호로 국민들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의료와 문제마저 모두 경제 논리에 의해 희생당하게 되었다. 이제 무엇을 먹고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이들 빈곤층의 직면한 문제가 되었다. 그 결과 3억 미국 인구 중의 1/6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분류가 되어 푸드 스탬프로 연명을 하게 되고, 싸구려 저질 음식을 먹게 된 청소년들은 비만과 갖은 질병으로 시달리게 된다. 미국 중산층의 막대한 개인 의료보험에 의한 지출로 인한 파산은 이제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다. 이미 마이클 무어가 영화 <식코>에서 보여준 것처럼 의료보험 민영화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기본권마저 앗아가 버렸다. 게다가 날로 벌어지는 빈부간의 격차로 인한 교육의 불평등과 천문학적인 교육비의 증가는 빈곤층에서 신분상승의 유일한 길로 여겨지는 대학 교육의 기회마저 어린 청년들에게서 빼앗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청소년들에게 또 다른 유혹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군대다. 도대체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이라크 전쟁에 천문학적인 정부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해결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라크에 엄청난 수의 군대를 파견해야 하는 미국 정부는 부족한 병력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혹은 졸업을 앞둔 청소년들, 심지어는 살인적인 학비에 시달리고 있는 대학생들에까지 입대를 권유하고 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방법으로 예전에 번영과 영광을 구가하던 미국의 중산층이 하루가 다르게 처참하게 몰락해 가고 있는 과정을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에서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실조차 본인들은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역설이다. 그 이유는 바로 미디어를 장악한 대자본의 지배를 받는 대기업과 더 이상 자국민의 건강과 교육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그나마 신자유주의 정책이 그 절정으로 향하던 레이건 정부 때보다, 닉슨 행정부 시절이 좋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건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미국의 공공 의료시스템의 붕괴는 이미 닉슨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사실은 <식코>를 한 번 보고 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르포라는 사실을 알리는 본연의 임무에서 보면 이 책은 탁월한 성과를 제시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런 제 문제점들을 기반으로 해서, 보다 건설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서 구체적인 논의와 문제제기를 보여 주었다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배어났다. 물론 책 말미의 ‘에필로그’ 부분에서 어느 정도 다루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빈약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진행될 21세기에 더 이상 경제대국이 아닌 빈곤대국으로 불릴 미국의 모습이, 100여 년 전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가 몰락해 버린 영국의 그것과 오버랩되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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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서는 현재 미국사회 구석구석 터져나오는 사회적 문제들과 실태들을 선명하게 르포형식으로 조명하는 의미있는 도서이다, 책을 읽은 동안 한편의 사회 다큐멘타리를 보는 듯했다.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에 하나둘씩 무너져가는 미국의 중류가정,사회 피라미드 분포상 중류가정이 무너져 간다는 것을 사회 전체의 파멸을 의미한다는 데서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요즘 한창 회자되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지금 미국에서의 최대 이슈이다. 상환연체로 인해 빈집이 늘어난 마을은 유령도서 처럼 쥐죽은듯 고요하다고 한다. 마치 한편의 우울한 허리우드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시장원리에 경제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빈곤 비지니스의 하나였다. 내집마련의 꿈을 산산조각낸 비정한 신자유주의 원리, 저소득층을 겨냥한 ,파탄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안전한 대안망이 없는 저소득층 사람들이었다. 금융기관의 영업사원들은 일정목표를 정해놓고는 빈곤계층을 겨냥한 영업을 했던 것이다. 일종의 기업사냥꾼이나 다름 없었다. 약자는 제물이 되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생존권마저 빼앗기고 버려지는 무서운 현실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약자층,빈곤 아동의 낮은 교육수준과 비만도는 비례한다.빈곤 지역일 수록 무료,할인 급식에 등록하는 학생의 수가 많아지면서 부유한 지역의 아이들은 부모가 저열량의 영양가 높은 음식을 해 주는대신 빈곤층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비만을 유발하는 학교급식 정크프드를 매일 먹고 있는 실정이다. 건강 상태의 악화는 물론이고,학력저하로 이어지면서 빈곤의 악순환은 이어지고 있다. 모건 스펄론의 다큐영화 "슈퍼사이즈미"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인류재앙에 1천명 이상의 사망자 수가 발생한다. 이것에 대한 대안으로 어떤 방법으로 재해의 피해를 축소시켜 많은 인명을 구할 것이냐는 대책업무를 보다 싸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민영화 방침에 국민의 목숨과 관련된 일을 민간 회사에 위탁하는 것은 절대적 위험요소이다. 민간회사의 목적은 효율적 이익을 올리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안전유지라는 목적과는 상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경제적 동물이기 때문에 이윤만을 추구한다. 이로인해 버려지는 이재민들이 속출하고 있다.대부분 이재민은 새로 분양되는 분양자금은 커녕 일자리는 물론, 교통비 조차 없는 실정에서 원래 자신들이 살았던 토지는 부유층에게 조금씩 잠식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의 민영화로 인해 국가의 교육예산이 대폭 줄면서 빈곤가정의 아이들은 교육에서조차 평등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 허리케인 카트라나 이후 공공부문의 민영화로 버림받게 된 루이지 애나주의 빈곤층 계층의 대책은 무엇인가? 참으로 암담한 현실일 뿐이다. 이제 그들에게 대안은,가난에서 벗어나기위한 대안은 군에 입대하는 방법외에는 없는 현실이다.
지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의료비로 인해 파산하는 중류층으로 골치를 썩는다.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어도 적용을 받는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일단 병원에 갔다하면 순식간에 빚쟁이가 되는 것이다. 의료비를 지불하지 못해 파산 신청한 사람의 대부분이 중류층의 의료보험 가입자라는 것이다. 궁지에 몰리는건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산부인과 의사는 수술 반대 운동에 살해 위협까지 껴안고 있고, 보험회사의 청구서,소송의 공포,제약회사의 압력,의사에 되는 것에도 단점이 많은 것이다. 이러한 것에 기인해,주식회사형 운영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의료써비스의 질은 눈에 띄게 저하 되게 된다. 병원이익을 올리기에 전력을 기울이고,환자의 생명이나 의료질의 문제는 나중으로 재껴두는 현실에 이르렀다. 병원에 가보면 웃고 있는 간호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병원 인원 감축의 처음 표적이 간호사이기 때문이다. 인원이 줄어드는 만큼 업무량이 많아지다보니 간호사들의 수면시간이 줄어들게 되고,직장 분위기는 당연히 삭막해 질 수 밖에 ㅇ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현실과 비슷함을 느낀다. 이로인해 어떤 병원에서는 다른 병원보다 평균 8퍼센트 비싼 금액을 청구하는 곳도 있었고,일회용 의료기구를 아끼려고 여려차례 재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과는 연평균 7만 1천명의 환자가 의료 과오로 사망하고 있다 아파도 치료한번 못 받고,중류층 국민은 너무비싼 의료보험료와 치료비에 파산하고, 의사들은 경쟁에서 밀려나 폐업하는 악순환.... 민주주의의 현실이란게 이런 것인가?
이제 이들에게 한사람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생활을 하기 위한 선택은 군에 입대 하는 것이다.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느니 전쟁터에 가서 세끼를 보장 받는 것이 낳다는 것이다. 경제적 징병제에 의해 가난한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보내 지고 있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많은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막대한 빚에 눌러 졸업후 취직이 어려워 지면서, 학자금 대출 상환 면제 프로그램이라는 속임수에 군에 입대하게 된다. 가난에서 벗어라려고 군에 입대하지만 결국은 군에서도 밑바닥에 내던져지는 젊은이들...이라크에 파병하게 되는 젊은이들은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도 불안증,불면증,등 전쟁의 후유증으로 제대로된 직업을 갖지못하고 노숙자가 된다. 이라크 주둔 병상 6명 가운데 1명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미국내에는 350만명 이상의 노숙자가 있으며, 그중 3명당 1명이 귀환병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희생양이 된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가?
전쟁을 민영화 시키는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선택한다. 빚을 갚기 위한 빈곤층이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으로 전쟁을 선택하는 것이다. 용병으로 말이다. KBR사,헬리버턴사,블랙워터 USA사가 대표적인 민영화 전쟁 파견 업체다. 현재 이들에 의해 이라크는 "골드러시'라 부른다. 이들은 미국 국방예산에 훨씬 못미치는 예산으로 전쟁을 수행하겠다고 한다. 이에 희생자가 누가 될것인지는 자명하다. 이라크에 파견되는 65퍼센트가 미국인이고,35퍼센트는 제3국의 이주 노동자라고 한다. 민영화된 전쟁 비지니스에 인간은 정보로 매매되고,값싼 노동력으로 소비되는 상품인 것이다. 글로벌화란 기치를 내세워 그들은 우리에게도 접근할 수 있다. 911 테러 사건이후론 룰이라는게 없어졌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하에 무자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하에 단숨에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괴물이 문제인 것이다. 민영화된 전쟁이라는 국가차원의 빈곤 비즈니스와 그로인해 사회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인간의 대량소비되는 무서운구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위기만이 진정한 변화를 가져다 준다고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말했다. 냉정한 신자유주의,시장원리주의의 흐름에 말려들지 않기위해 우리는 긴장해야 하고,대비해야 한다. 저자는 싸워야 할 적을 알면 전략도 세울 수 있다고 소개한다. " 깨우침은 뒤늦게 찾아온다"는 저자의 말처럼 뒤늦게 후회 하는 일이 없도록 현실을 인식하고,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 까지 안일했던 나의 경제관과 행동관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도서이다. 223페이지가 전부인 도서 한권이 지금의 게으름과 나태에 빠진 나를 조금씩 변화 시키는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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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와 실상에 대한 경고
세계가 휘청이고 있다. 날로 치솟는 물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주가,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게 외화, 도무지 요지부동인 실물경제등 전세계의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불안한 상황은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지닌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거기에 시발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사회적 신용도가 비교적 낮은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담보대출로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부유층에서는 더이상의 수요는 존재하지 않기에 눈을 돌려 불법이민자나 저소득층을 내집마련이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올가미에 가두어 옴싹달싹 하지 못하게 가두어 버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내집마련은 가정을 이루어가는데 최우선 과제이고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내집마련의 꿈은 클수밖에 없다. 자기집을 갖겠다는 소망이 그렇게 크나큰 욕심이었나?
누구를 위한 경제 정책이란 말인가 경쟁을 통한 서비스와 질적 향상이라는 명목하에 나라의 책임을 민영화라는 거창한 포장지에 싸여 마치 국민에게 멋진 선물인것 마냥 제공된 신자유주의 정책. 급속도로 확산된 민영화라는 시장원리의 도입은 국가의 책임회피와 공공서비스보다는 철저히 이익만을 추구는 기업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결과 중산층이 무너짐으로써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빈부격차를 양극화 시키고 빈곤층이 늘어남에 따라 경제상황은 악화일로에 놓이게 되었고 빈민구제 정책의 일환인 푸드스탬프로 연명하는 빈곤층의 아동들의 비만을 초래하였고,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민영화로 인해 늦장 대처는 수많은 이재민과 재산피해를 남겼으며, 비싼 의료비로 인해 파산하는 중류층, 과도한 학비로 인해 부채를 떠안게 되는 학생들은 사회로의 출구가 차단되고, 빈곤을 탈피하기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징병문제와 이라크 전쟁문제등 신자유주의의 물결속에서 날로 힘든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기회의 땅 미국, 노력 여하에 따라 삶이 풍요롭다고 믿었던 아메리칸 드림은 옛날 얘기가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미명아래 들어나는 문제점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의 미국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누군가 나에게 꾸며낸 얘기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더군다나 강건너 불구경하듯 넋놓고 있다가는 넋놓고 있다가는 세계 10위라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속빈 강정이 되어버리는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 <p57> - 민영화가 결과를 알리는 문장으로 카트리나로 인해 버려진 이재민중에 한사람의 외침이었다.
여담이지만 얼마전 한밤중에 급성 장염으로 인해 동생을 데리고 응급실에 간적이 있다. 수액한병 맞고 피검사에 하루치 약을 들고 나오는데 예상외의 병원비에 깜짝놀랐다. "왜이렇게 청구액이 많냐"고 물었더니 병원측은 이런저런 이유를 설명하였드랬다. 만약 이 상황과 똑같이 의료보험이 민영화가 되었다면 몇만원에서 그치는것이 아니라 몇십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될것은 자명한일. 그때는 병원가자는 소리는 입밖에도 내지못하고 죽어라 참는 수밖에 길이 없는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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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빈곤한 경제대국, 미국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가 당선되었다.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한 사회적 약자층이었던 그의 당선은 미국 내에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있다는 미국적 가치와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노선을 주도하던 조시 부시와 공화당의 정책 실패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의미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미국 경제회복에 대한 미국민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큰 것 같다. 미국이 지금처럼 극단적인 위기상황에 처하리라고는 섣불리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상황들을 잘 알지 못했다. 미국의 행보들이 위험하다는 것, 무조건적인 경쟁체제는 위기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것, 경제적으로 부유하면서도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나라라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가 아닌 일반론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게 된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문학수첩, 2008년)을 통해 경제대국 미국의 실상을 아래로부터 알 수 있었다. 미국의 현실은 정말 처참했다. 설마 저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국내에서 의료보험 민영화 이야기가 불거져 나오고 영화 <식코>가 개봉되면서 의료보험 민영화의 폐해와 위기감에 몸서리를 쳤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빈곤대국의 실상들은 의료보험 민영화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부시 행정부의 책임이 아주 클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회복지, 교육 등 공공 부문에 필요한 예산들을 대폭 삭감했다. 전쟁을 주도했고, 공공기관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각종 FTA 체결을 통해 경제 약소국을 위협했다. 이러한 정책 추진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으며, 빈곤층을 더 많이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오바마라는 인물을 선택하게 했으리라.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빈곤대국 미국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 ‘빈곤이 만들어낸 비만국민’이다.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수많은 중산층을 하층민으로 전락시켰다. 많은 이들이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푸드 스탬프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가 됐다. 그나마 먹을 것이라도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정크푸드나 가공식품뿐이다.
둘, 민영화에 의한 국내 난민과 자유화에 의한 경제 난민이다. 필자는 민영화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언급한다. 위력이 컸고,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던 자연재해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카트리나의 피해는 사실 인재라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FEMA(연방긴급사태관리구)이 있다. FEMA는 강력한 허리케인이 올 것임을 10년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민영화된 이후 이익실현을 위해 그 같은 경고를 무시했다고 한다. 공공업무의 민영화는 이렇듯 크나큰 결과를 불러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한국의 이명박 정부 또한 공공기관의 민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상수도도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까지 했다. 공공기관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시민을 볼모로 무조건적인 민영화를 추진한다면 큰 화를 불러올 것이다. 진정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한다면 공공기관을 민영화하려는 생각은 거두어야 한다.
셋, 단 한 번의 질병으로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이다. 정말 이 이야기는 생각만 해도 소름끼친다. 필자는 산부인과를 예로 들고 있는데, 산모가 아이를 낳고 바로 퇴원한단다. 입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이다. 하루 병원비가 400만원부터라니…. 어느 누가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게다가 병원은 보험사와 협약을 맺어야 하는데 보험사로부터 입원일수 등을 제한받는다. 보험사의 말을 듣지 않으면 보험계약을 거부당한다. 결국 의료보험 민영화로 혜택을 보는 건 보험사와 기업형 병원밖에는 없다. 의료서비스의 질은 점점 더 낮아지고, 의료사고는 점점 더 많아진다. 비싼 의료보험비를 내지 못한 하층민들은 병을 치료하지도 못한 채 죽어갈 수밖에 없다.
넷, 출구를 차단당한 젊은이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바로 88만원세대들의 아픔을 미국도 겪고 있다. 아니 어쩌면 미국의 젊은이들이 더 먼저 겪었고, 지금도 더 불운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 한해 2,000만원 가까이 하는 대학 등록금. 졸업해도 갈 곳이 없는 세대. 졸업할 때쯤이면 학자금 대출과 카드빚으로 신음한다. 이는 장학금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빚을 갚기 위해, 갈 곳이 없어 군에 지원한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전쟁에 팔려 이라크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죽어나갔고, 돌아와서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시달린다.
다섯, 전 세계의 근로 빈곤층이 지탱하고 있는 ‘민영화된 전쟁’. 이는 이라크 전쟁을 생각하면 쉽다. 이제 전쟁도 민영기업에서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그곳에 불려온 이들은 전 세계의 빈곤층이다. 많은 돈을 준다기에 불려온 그들은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일하다 쓰러져 실려 가고, 폭탄 테러의 희생양이 된다.
빈곤대국 아메리카의 이야기는 단지 미국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또한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성장위주의 경제정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해나간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빈곤대국 아메리카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되길 바란다.
by 꽃다지, 2008년 11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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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있는 아메리카 대륙. 떠오르는 것. 부의 상징, 빈부격차. 지금 내 머릿속에 박혀있는 단어만 해도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 단어가 머릿속에서 나오게 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아메리카 하면 빈곤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빈부격차를 떠올리면서도 빈곤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이상하고 애매모호한 이미지의 아메리카. 그 곳의 진짜 현실이야기를 이제야 제대로 듣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하게 되면 일단 아메리카 하면 떠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힘이 강한 나라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도. 그래서 그런지 방송을 보게 되면 우리나라 현실을 꼬집기 위하여 미국의 모범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경우를 볼 수 있게 된다. 그것도 미국이고 이렇게 빈곤에 허덕이는 곳도 미국이다. 빈곤이라는 게 단순한 단어이지 않다. 이 책에서만 보더라도 그렇게 한 가지 사회문제만 꼬집는 그런 단어가 아닌 것이다. 조금 더 복합적이다. 일본인의 눈에서 보았기 때문인지 일본의 사례를 언급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제 3자의 눈으로 본 미국이기 때문에 조금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미국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우수한 면을 여럿 보았던 나로서는 조금 색다른 내용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조건 좋은 곳은 아니라는 생각뿐이었다. 여기저기 주워들은 내용이 다시 이 책에서 얘기되고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단지 허상만을 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빈곤을 접하고 대신 접하고 있지만 단지 미국만의 얘기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이면을 보고 수근덕댈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고 우리를 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빈곤은 그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라도 당장 일어나고 있고 오래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단지 미국이라는 이름을 보고 따라하기식으로 하지 말고 제대로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도 지나치지 말고 보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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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국과 구소련은 서로의 정치이념체제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를 놓고 한치의 양보없는 싸움으로 결국 세계를 양분시켜 오랜 기간 동안 냉전하의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현재 자본주의가 승리하여 공산 주의를 고수하는 국가는 그야말로 북한과 쿠바 정도만 남았지만 공산 주의 내지 사회주의의 장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 것은 빈부격차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들이 의료 및 교육의 서비스를 균등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수십년 전 독재자 박정희가 북한의 의료무상서비스에 충격받아 전국민 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미국도 소련에 대하여 자본주의의 단점인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기업이익의 극대화를 보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 복지제도를 강화하여 결국 중산층의 탄탄한 구축을 꾀하였다.그러나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자 슬그머니 복지재정을 줄이자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계층이 바로 중산층이하의 계층이었다.특히 의료보험의 민영화는 이윤을 중요시한 보험회사들이 백인을 제외한 소수민족계층을 보험가입자로 받아들이지 않아 이들이 병을 얻을 경우 대부분 병원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즉 대 기업 또는 번듯한 기업에 근무하지 않고서는 의료보험자체가 가입이 되지 않으니 일반적으로 막노동 또는 파트타임직에 종사하는 하위계층 에게는 병원의 문턱이 턱없이 높은 것이다.
불법체류자들이 많은 미국에서는 이들을 타켓으로 이루어진 것이 서프 라임 모기지를 활용한 주택의 취득이었다.평생 벌어도 집한채를 구입 할 수 없는 이들 계층에게 매년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매력적인 거품 을 심어준 채 대출업체들이 접근한 것이다.그러나 집값거품은 현재의 비극적인 서프라임사태를 불러 일으켰고 결국 집경매를 하여도 대출 원금은 커녕 추가로 빚을 더 지게 된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빈곤상태를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팍스아메리카를 위한 군사력강화시 가장 기본인 군인의 충원은 소외계층의 젊은이들이 메꾸었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 군인을 지원한 계층들은 국가적 애 국심에 불타 군입대를 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비참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 군입대를 하였다는 것이다.국가적인 이익 극대 화를 위하여는 대기업중심의 이익극대화로 이어졌고 이는 제조업체의 외국이전을 통한 제조업의 몰락을 가져와 상당수 중산층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일본인 저자가 오랫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알게된 미국자본의주의 모순은 모든 것이 시장원리로 해결함에 따른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나타났다.따라서 이러한 격차가 근본적으로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더더욱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