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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자연과 공공 건축이 빚은 또 다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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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건축, 공공 건축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물론 4대강 사업과는 별개로 봐야겠지만, 세계 디자인 수도, 서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해치라는 캐릭터와 함께 남산체, 서울체가 등장하고, 여기저기서 관광 상품 개발하듯 건축물을 찍어내고 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성과주의가 관행처럼 굳어진 정부 부처의 이러한 움직임은 대부분 치열한 고민과 계획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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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건축, 공공 건축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물론 4대강 사업과는 별개로 봐야겠지만, 세계 디자인 수도, 서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해치라는 캐릭터와 함께 남산체, 서울체가 등장하고, 여기저기서 관광 상품 개발하듯 건축물을 찍어내고 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성과주의가 관행처럼 굳어진 정부 부처의 이러한 움직임은 대부분 치열한 고민과 계획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런 속에서 한 건축가의 진정성이 담긴 공공 건축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바로 무주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건축가 정기용 씨다.

 

 

무주 풍경, 한 건축가를 운명 짓다

약 15년 전 여름 덕유산 무주 구천동. 시원한 계곡물에 부서지는 초록의 물결이 생생하다. 허나 덕유산 일대 리조트 조성으로 군데군데 깎여있던 산등성이를 발견하곤 약간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 무주를 장맛비 쏟던 7월의 어느 날 다시 찾았다. 무주 프로젝트의 공공 건축물에 대한 1박 2일의 짧은 답사이자 취재였지만, 그곳에 머물며 온전히 무주의 자연과 삶, 시간을 느끼고 싶었다. 사실 건축물 자체보다는 그 건축물을 바라보는 무주의 표정과 사람들의 삶을 더 담아내고 싶었다.

‘감응의 건축가, 공간의 시인, 건축계의 공익 요원’이란 별칭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건축가 정기용 씨. 나와의 첫 만남은 등나무 운동장과 무주군청 리노베이션이 소개된 한 TV 다큐멘터리에서다. 초여름 찰랑이던 등나무의 손짓과 아울러 펼쳐지는 풍경, 그리고 시원하게 새단장한 무주군청의 야경을 바라보며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후에 그것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동안 무주에서 진행된 30여 개 공공 건축 프로젝트 중 일부였단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됐다. 두 번째 만남은 2008년 출간된 그의 저서 ‘감응의 건축’이다. 이 책은 정 씨가 10여 년 동안 면사무소, 운동장, 청소년문화집, 납골당에 이르기까지 무주에서 써 내려간, 희망과 애환, 건축가적 책무를 아우르는 ‘감응의 그림일기’다. 이번 취재에도 이 책을 가이드북 마냥 손에 꼭 쥐고 동행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까? 정 씨와 무주와의 만남은 다소 극적이다. 무주에서 안성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안성재에서 바라본 벌판, 그에겐 그대로 운명이 되었다. 당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만큼 아름답게 보존된 풍광에 넋을 잃었다고. 이후 진도리마을회관 상량식 때 당시 김세웅 무주군수와의 만남은 그대로 무주 프로젝트 10년의 서막을 알렸다. 한 지자체장의 뚝심과 건축가의 감응이 올곧게 빚어낸, 대한민국 공공 건축의 유례 없는 대장정을 시작한 것이다.

 

 

주민이 원하는 면사무소, 목욕탕을 내다

무주. 산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오지에 펼쳐진 공공 건축의 사례는 실로 놀랍다. 급한 마음에 차를 렌트하여, 책을 더듬어가며 그 세월의 흔적들을 찾아 나섰다. 먼저 찾아간 곳은 TV에서 접했던 바로 안성면사무소(저서에는 주민자치센터로 표기)였다. 면사무소의 주체를 고민하고, 왜 지어야 하며, 어떻게 지어야 할 지를 고민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 이곳은 공중목욕탕이 있는 최초의 면사무소다. 정 씨는 처음 발주를 받았을 때, 마을을 돌며 주민들(대부분은 노인들)의 의견을 경청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한결 같이 “면사무소는 뭐하러 짓는다요. 목욕탕이나 지어주제”라고 말한다. 안성면에는 목욕탕이 없다. 평생 농사일에 아픈 곳 많은 주민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뜨끈한 물에 한 몸 담글 수 있는 목욕탕이 필요했던 것이다. 짝수 일에는 여자들이, 홀수 일에는 남자들이 쓴다는 이 곳은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도 유지 보수 문제였으리라. 면사무소 2층에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하고 있었다.

안성면사무소 옆으로 ‘해를 좇는 새’ 형상의 청소년 문화의 집이 자리한다. 아이들이 많았다. 아마도 면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이곳을 찾은 듯 싶었다. 물론 로비 공간의 네모난 해시계와 컴퓨터실의 간접 채광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인상적인 것은 아이들과 공간의 어우러짐이었다. 대도시 문화센터의 경직된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르게 자유롭고 활기차다. 그래서 공간은 머무는 사람마저도 닮게 하는 힘이 있나 보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걸고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순박함에 마음 넉넉해짐을 느꼈다.

 

 

사람, 식물, 시간의 어우러짐

현재 정 씨의 무주 프로젝트는 새로운 군수가 부임하고부터 단절되었다. 허나 여전히 그의 건축물들은 새로운 세월을 기록하며, 그곳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표정을 달리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시간’이듯 그곳과 부대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온전히 담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무주군청이다. 이곳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 사람들이 움직이고 이동하며 머무르며 소통하는 공간을 구현해냈다. 권위주의적인 군청의 이미지를 탈피하여, 중앙 현관을 평범하게 바꾸는 대신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주차장이었던 곳은 잔디 광장으로, 주차장은 지하로 넣었다. 또한 군청 본관 3층에는 작은 정원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작은 위안을 선물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연 그대로가 건축이 되어버린 담쟁이 벽화와 현관 입구에 자리하고 있던 ‘사랑의 쌀통’이었다. 정 씨에 따르면 ‘사람과 식물, 시간’이 무주 프로젝트의 핵심이라 했다. 담쟁이 공공 디자인이 식물과 시간의 조우였다면, 군청뿐만 아니라 무주 전체 면사무소 입구에 자리한 ‘사랑의 쌀통’은 건축가의 바람대로 사람과 시간의 뜻 깊은 만남은 아닐까? 취재 중에 만난 몇몇 군청 직원과 방문한 주민들은 ‘무주군청 리노베이션’을 무주 프로젝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축물로 손꼽는다.

이런 유쾌한 만남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무주 등나무운동장이었다. 흔히 생태 건축, 에코 건축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곳은 아쉽게도 내부로 들어갈 수 없게 잠겨 있었다. 당시 무주 공설운동장은 주민들에게 외면을 받던 곳이었다. 행사가 있어 주민들을 불러모으더라도 참석자가 없다는 것이다. “군수만 본부석에서 비와 햇볕을 피해 앉아 있고, 우린 땡볕에 서 있으라고 하는 게 대체 무슨 경우냐!”와 같은 주민들의 반발에 군수는 스탠드 외곽에 등나무를 심었고, 이에 정씨는 등나무가 맘껏 자랄 수 있는 구조물을 세운 것이다. 적은 예산으로도 세계 유일의 등나무운동장은 이렇게 탄생했다.

 

 

별 헤는 밤, 죽음의 공간마저 자연을 닮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청정 지역. 특히 부남면에는 밤하늘에 별들이 흐드러지게 펼쳐진다. 금강을 따라가며 절경을 자랑하는 부남면은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힌다. 정 씨는 주민들에게 부남면에 사는 것에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별보는 집이다. 기존에 등을 돌려 떨어져있던 부남면사무소와 복지회관, 이 두 건물을 연결하며 그 가운데 천문대를 세웠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꽤나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이곳 천문대가 입소문이 나 어느덧 명소가 된 것이다. 부남의 별만큼이나 금강에서 막 건져 올린 민물고기로 만든 어죽이 내겐 더 인상적이었다. 자연을 닮아 사람의 품성뿐만 아니라 음식 맛도 오묘하게 끄는 솜씨가 있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이번 취재에서 얻은 최고의 절경은 무주 추모의 집, 납골당이다. 첩첩의 산과 인삼밭을 따라 중턱에 자리잡은 납골당은 ‘영혼을 위한 밝은 집’이란 말이 절로 나올 풍경을 자랑한다. 정씨는 죽은 자가 아닌 산 자가 찾는 이 곳을 ‘행복감까지도 느낄 수 있는 경건한 장소’가 되길 원했다. 납골의 공간, 영혼의 길과 기도소, 통곡의 방으로 이어지는 내부 공간은 물론 망자를 애도하기도 하고, 무주 읍내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휴게 공간을 배려했다. 내가 죽은 후 이곳에 자리하면 혼마저도 깨끗이 정화되어 저승 가는 발걸음이 가벼울 것만 같은,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공공 건축, 에코 건축의 참 의미

무주시장, 청소년수련관, 곤충박물관, 향토박물관, 천문과학관, 버스정류장 등 31개의 무주 공공 건축물은 건축가 정기용 씨의 10여 년 세월의 흔적만큼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한다. 그 동안 무주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당장 올 9월에 대규모 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이 첫 삽을 뜨게 되고,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친 기업도시 개발도 여전히 논의 중이다. 과연 정부에서 말하는 녹색 성장은 무엇일까? 4대강 정비 사업이나 기업 도시 사업과 같은 ‘녹색’이, 시대를 대변하고, 사람이 중심이 되며, 온전히 자연을 지켜나가는 색깔일까?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 건축은 건축가 정기용 씨의 무주 프로젝트 이후로 전무한 상태이다. 그래서 공공 건축에 대한 정 씨의 말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공공 건축이란 공공이 발주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람, 주민, 시민)가 원하는 동시에 땅이 원하는 건축이며, 시대가 원하는 건축이고, 끝으로 지구가 원하는 건축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듣는 에코 건축, 지속가능한 건축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길, 건축가 정기용 씨를 무주로 이끈 안성벌판을 바라보며, 나는 산과 강과 사람들 속에서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t******2 2009.08.05.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추천 [서평] 주민이 원하는 공공건축은 무엇인가? [감응의 건축 :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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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정기용 저 < 감응의 건축 :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을 읽고 / 2008. 10. 15., 382쪽, 현실문화연구 건축 일반에 대해 그리고 공공건축물과 공간계획에 대해 독자들이 자신의 '관점'을 갖출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 이 책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만 10년간 돈벌이 보다 농촌과 마을 공동체를 고민하면서 면사무소부터 납골당까지 크고 작은 30여 개의 공공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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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정기용 저 < 감응의 건축 :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을 읽고 / 2008. 10. 15., 382쪽, 현실문화연구


건축 일반에 대해 그리고 공공건축물과 공간계획에 대해 독자들이 자신의 '관점'을 갖출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


이 책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만 10년간 돈벌이 보다 농촌과 마을 공동체를 고민하면서 면사무소부터 납골당까지 크고 작은 30여 개의 공공건축물 설계작업을 진행했던 '무주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다. 그 주인공은 건축가 정기용, 즉 정기용 선생의 건축 활동 내지 건축에 대한 철학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저자 정기용의 건축에 대한 철학은 말 그대로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농촌의 공동체 계획과 건축 계획을 준비할 때 그는 가장 먼저 '농촌'을 고민했다. "아직도 농촌을 '개량'의 대상이나 구제해야 할 문제로만 바라보는 한 아무 것도 제대로 해결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 농촌은 없다. 우리들의 소중한 국토가 있을 뿐이며, 농촌과 도시 사이만 있을 뿐이다."(p.7~8)


건축을 어떤 전문가들만의 유희나 시혜가 아니라 '공공서비스'로 바라보는 그의 관점 역시 신선하고 정확했다. "주민들에게는 면사무소보다 더 필요한 것이 면 단위의 공중목욕탕이라는 것을 소위 공간의 전문가들이란 사람들만 알지 못한다. 아주 사소한 이런 것들을 섬세하게 배려하는 일이 전문가들과 공공의 서비스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p.9)

 

도시나 농촌 등 공동체의 공간과 건축을 대할 때 역사적인 식견과 관점을 가지고  거주 문제와 지역 문제, 도시 문제와 주택 문제들이 서로 연동되는 종합적인 사고와 대처가 필요함을 지적하는 지점에서는 감탄이 절로 난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 다른 질문을 던질 것이다. 도시냐 농촌이냐도 아니고, 전원주택이냐 아니냐 하는 상업적 용어에 매몰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디에서 나는 자연과 더불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하는 점으로 이행할 것이다. '인간답게'란 혼자 외롭게 자기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따로 또 같이'의 가치관을 다시 공유하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유목민은 다시 인간이 될 것이다."(p.11)


그런 관점과 태도를 유지한 채 무주군청과 군민들이 요청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으니 각각의 공간 계획이나 건축이 자연과 호흡하고 이야기를 지니게 되며 사람들과 소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환기의 공공시설을 고민했던 진도리 마을 회관과 안성면/적상면/주남면/무풍면 주민자치센타, 사람의 삶과 자연의 삶을 고민하여 시대가 원하는 건축을 시도했던 공설운동장과 무주군청 뒷마당 리노베이션, 그리고 무주시장 현대화 프로젝트, 건축을 총체적으로 접근했던 청소년 수련관과 청소년문화의집, 곤충박물관과 향토박물관, 그리고 천문과학관과 버스정류장에는 그의 철학과 고민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또한 농촌의 문제를 넘어서는 접근이 돋보였던 농민의 집과 된장공장, 그리고 전통문화공예촌,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현하려고 노력했던 보건의료원 리노베이션과 종합복지관, 노인전문요양원과 무주공설납골당 프로젝트는 소위 '농촌문제'를 넘어서는 대상 프로젝트를 주어진 한계와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미래의 세대에게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하려던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특히 나는 '면 단위의 공중목욕탕'과 '공설운동장'에서 나타나는 "주민이 원하는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공공건축과 공공서비스의 가장 근본적인 태도와 접근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몇 개 건축물 설계에 실무자로 참여한 경험이 있지만) 지난 수십 년간 세금을 쏟아 부으며 건축된 수많은 관공서와 공공건축물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다.

건축과를 졸업했다는 것이 그리고 그 건축물을 설계한 이들 중 상당수를 내가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결코 자부심이 아니라 굴욕이고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지역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건축문화와 공간문화가 크게 개선되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런 시점에 이 책은 '공공건축을 통한 지역발전의 모색'이라는 특수하고, 유용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축계에서는 두루 회자되고 있다고 들린다.


건축설계를 하는 이들에게 물어보면 상당수 전문가들이 이 책을 읽은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정기용의 깊은 고민과 노력, 성과와 한계를 이해하거나 공감한 사람은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다. 건축계 대부분이 '성공'과 '성장', 돈벌이와 기득권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현재 시점으로는 공공기관과 건축 전문가들이 몇 가지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와 문제제기를 받아들이는 데 만족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공감대의 확산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고질적인 한국 지식인층의 문제라 생각한다. 한국의 학벌주의와 엘리트주의의 최고봉인 서울대를 졸업했음에도 건축학과가 아닌 미술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건축학계 주류와 건축설계 업계를 장악한 서울대 건축과 출신들에게 '왕따'당한 정기용 씨...

나는 공간과 건축 문화의 답보상태가 한국사회만의 독특하면서도 강력한 문제,  즉 '실력' 보다 '학벌'이 기득권 체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수의 양심적인 건축가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 건축과 나 ---


나 역시 대학에서 건축을 배우고(?) 설계사무소에서 5년 가까이 실무를 했다. 건축 설계나 건설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대학 선후배, 동기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고 업무 진행을 위해 미팅도 자주하고 여러 자리에서 정보도 듣고 의견도 나누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건축가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건축업계에 종사한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물론 '범 건축계'에 종사한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작년에 영화 <건축학 개론>을 보면서 이십 몇년 전 대학 새내기 시절이 생각났는데, 특이했던 점은 내가 공부할 때 영화 속에서 교수가 '건축학 개론'을 강의하던 식으로 건축에 대해 접근하는 교수는 전혀 없었다. 영화 첫 장면을 보면서 "아! 건축을 저렇게 자신이 사는 동네와 지역과 연관지어서 접근시키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겠다."라고 느꼈다.

내 기억으로는 6 ~ 7명 정도 되던 건축 전공 교수들은 세부전공이 건축계획이나 건축설계 또는 건축구조나 건축사이던 간에 그냥 국내외 교과서나 참고서, 또는 오래된 '강의 노트(?)'를 가지고 거창한(그렇지만 결국 단순한) 개념이나 이론을 가르치는 정도였다.


분명 그 당시에도 새내기들 중 건축이라는 학문에 대해 뭔가 잘 알거나 어려서부터 적성으로 생각하거나 무언가를 탐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학력고사 점수에 맞추어 입학한 경우가 다수였음에도 교수들과 대학은 그런 새내기들의 조건과 처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강의를 할 뿐이었다. 물론 몇몇 교수는 몇 년이나 된 너덜너덜한 강의노트를 강의(수업)시간에 들고 왔고.(덕분에 '족보'라는 말도 배우고...ㅋㅋ)


건축이라는 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고 서로의 관심사를 가지고 이야기하기보다 주어진 강의시간에 출석하려 일방적인 설명을 듣고 때 되면 시험치르고 설계숙제(테크닉을 가르치는)을 제출하면서 한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면 졸업을 하는 구조...

건축이라는 학문에 대한 교수들의 지식과 시각 속에는 도시도, 농촌도, 근대화도, 지본도, 산업도, 문화도, 사회도, 그 어떤 사람사는 것과도 관계없는 '순수학문(?)'이었습니다. 철학의 고사하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최소한 양심도 책임도 지혜도 상실하였지만 기득권은 쥐고 있는 '지식 소매상'들이었다.


고등학교에서도 교사들의 수업에서 배우기보다 스스로 원리를 깨닫고 공부방식을 터득하고 암기하는 데 익숙한 새내기들은 고등학교보다 난이도가 조금 높은 것 말고는 차이가 없는 대학 강의와 수업에 대해 탁월하게 적응해 갔다. 다행인 것은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간의 공부모임이나 의견교환을 '커닝' 비슷한 분위기로 몰고 갔지만 대학은 학생들의 어떠한 공부방식에 대해서도 '자유방임'했다는 것...^^


지금 대다수의 40~50대 건축사, 건축과 교수, 건축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은 아마도 나와 비슷하게 대학을 보내면서 스스로 공부하고 인맥을 쌓고 진로를 개척했을 것이다. 대학은 그냥 간판만 필요했던 셈이다. 물론 대학을 졸업한 후에 명문대학 중심의 학벌체제의 위력과 공고함에 놀라기는 했겠지만...


그럼에도 정기용 씨의 무주 프로젝트 이야기를 읽으면서 9학기 동안 다녔던 대학 생활에 대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컸다. 대학과 학과, 교수들 탓만 하면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꿈'이었던 '건축'을 내 스스로 깊이 고민하고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잘 몰랐던 건축의 '진가'를 대학을 떠난 후 20여년 만에 이 책에서 발견한 셈이다. 


* 인상 깊은 문장 : 


"경작지는 있으나 농민이 드물고, 사람의 기척은 있으나 동질적 농촌 공동체는 사라지고 있으며, 농업은 있는 듯하나 몰락하는 산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농촌과 농업은 국가의 '골치 아픈 영역'이다. 그러나 의외로 앞으로 쓸 예산은 많다. 바로 이런 것이 문제다. 이런 상황 속애서 아직도 농촌을 '개량'의 대상이나 구제해야 할 문제로만 바라보는 한 아무것도 제대로 해결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잘못된 질문을 바로잡아야 한다. 농촌을 타자화하는 버릇을 버려야 하고, 세계시장 속에서만 바라보는 농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농촌은 없다. 우리들의 소중한 국토가 있을 뿐이며, 농촌과 도시 사이만 있을 뿐이다. 농촌을 늘 변방으로 보고 자신의 일부를 식민지 경영하듯 하는 자가당착을 벗어던져야 한다.

지금 농촌은 최후의 보루처럼 남아 있다. 살기는 모두 도시에 살면서 늙은 부모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 그 후손은 전 국노를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들었다. 농촌 식당에서도 미국산 수입쇠고기 태우는 냄새가 진동한다. 모든 농촌은 '도시화'의 후유증에 앓로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화의 여파에 시달리는 중이다. 따라서 이제는 형식과 구호에만 머무는 '마을 만들기'식의 사고에서 탈피해 농업과 농촌의 문제를 전 국토의 공간 재편 문제와 함께 생각할 때가 온 것이다."(p.7)


"사실 농촌에서 개발의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농촌 주민들도 개발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 이 어려운 농촌에서 해방될 것인가가 그들의 당면 문제였으며, 여기에는 또한 그들의 미래가 달린 것이다.

한국에서 농촌의 개발이란 무엇보다도 땅값을 올리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개발론자들은 개발을 위해 땅이 필요하고, 오랫동안 땅을 섬기고 살았던 농민들은 그 땅을 지키려 한다. 그 팽팽한 긴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종종 충돌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결국 한국의 많은 농촌 거주민들은 '높은 가격으로 땅을 파고 농촌을 탈출하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자본에 굴복하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지속적으로 잉태한다. 모든 농촌을 자본의 논리로 개발한다면 누가 남아서 오래된 땅을 지키고 살아갈 것인가?"(p.29)


"오늘날에도 여전히 붕괴되고 있는 농촌사회를 지키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자부심과 정체성을 이어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농촌에서 살아가는 것에 조금이라도 자부심을 느낄 때, 농촌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 이런 모든 것을 탐색하고, 또 사람들을 세살과 사회와 소통할 수 있게 하느 것고 건축가의 몫임을 필자는 무주에서 배웠다."(p.43)


[ 2013년 5월 21일 ]

c****n 2013.05.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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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건축가를 봤던 것이 작년이었나던가.. 무주의 공설운동장을 설명하던 저자의 모습_ 등나무 운동장으로 다시 태어나 이 얼마나 아름답게 흔들리냐며 관중석에 드리워진 나뭇가지를 보던 그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등나무 운동장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모더니즘 건축이 놓친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감성’을 일깨워준 작업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건축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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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건축가를 봤던 것이 작년이었나던가.. 무주의 공설운동장을 설명하던 저자의 모습_ 등나무 운동장으로 다시 태어나 이 얼마나 아름답게 흔들리냐며 관중석에 드리워진 나뭇가지를 보던 그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등나무 운동장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모더니즘 건축이 놓친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감성’을 일깨워준 작업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 알려져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시간’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일.

 

별 것 아닌 것처럼 던지는 평범한 주민들의 말 속에 주목해야 할 진정성. 무주군수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필자는 그 꿈의 프로젝트에 다리를 놓았을 뿐이라 말하던 그에게서 공공건축은 과연 어떠해야할지 자문해보게 된다.

 

공공성 혹은 공공건축이란 과연 무엇인가.

공공건물과 도로나 교량 같은 토목 구조물들, 인도와 같은 길들을 포함한 모든 공공시설물을 공공디자인 영역으로 인식해야 함에도 그것은 건축인가 아닌가 하는 단순 분류법에 따라 분절되어 나타나곤 한다. 무주군청의 작은 주차장과 마당의 조성은 바로 이런 단절된 분류법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마당을 조성하는 일도, 주차장을 만드는 일도 근본적으로는 ‘건축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여 군청 뒷마당은 군청과 별도로 떨어진 곳이 아니라 군청 내에 존재하는 일상적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것들의 근본적인 전환, 이런 것들이 모여 역사는 서서히 바뀌는 것일까.

인터넷 방이 군청에 생기면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의 방문이 업무를 방해하는 결과를 낳았을까? 아니다. 아이들은 군청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간접적으로 사회적 학습을 할 수 있으며, 공무원인 어른들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매일 확인하며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교감을 하였을 것이다.

 

하나의 공간이 새롭게 탄생하면서 평소 상상하지 못했던 삶이 조직되고, 그것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그 어떤 건축 행위보다 우선시 되는 것은 건축의 형태나 모양이 아니라 작지만 소중한 사람들의 삶이라고.

 

어떤 건축이든 간에 건축가는 설계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건축은 건축가의 일이기 이전에 사회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오지 않은 미래를 지금 결정해야 하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로이 횡단하여 사유해야 하고, 땅과 시대와 세상과 관습과 싸우기도 해야 하며, 모든 기술적 경제적 요인을 결합하는 능력도 발휘해야 하는 총체적 작업가이기도 하다.

 

도시로 가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들. 이렇게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촘촘한 노력들은 세월이 가면서 더 견고해지리라. 섬세하고 작은 것들의 축적을 고마워하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때, 사회는 진정으로 한 발자국씩 진보해갈 것이다. 진보란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마음과 손길 속에 깃들여 있다는 그의 말이 내내 가슴을 울린다.

 

한 건축가가 무주라는 한 지방에서 10년 동안 한 수많은 일을 ‘사회적 조절자’였다고 말하는 사람. 자신 이외의 수많은 전문가, 수많은 사람, 기술, 경향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 독특한 전문가이자 여러 곳에 감응하는 열린 사람_ 하여 보다 다수를 위한 좋은 건축, 좋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던 사람.

 

기용건축이 무주에 뿌린 공공건축의 ‘씨앗’은 더는 자라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바로 형이상학적이고, 현대적이어야 하고, 건축가의 소신으로 한귀를 틀어막고 위용을 뽑내고 서있는 것만이 뭔가 건축이라 생각하는 세태를 벗어나 목욕탕이 필요한 이들에게 공공건물에 목욕탕을 만들어주고, 강한 햇볕을 막아주는 등나무 운동장을 만들 수 있는 그러면서도 이용할 사람들이 목적에 따라 이용할 수 있도록 건축의 여백을 남겨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재능이란 열정을 지속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그 재능을 지속적으로 갈고닦는 것은 ‘진정성’일 터. 이 열정과 진정성은 모두 ‘시간’이라는 거푸집에서 버려진다. 한 사람의 유한한 인생 속에서 무한히 계속되는 노력. 매일매일 자국은 남지만 마침표는 없는.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에서 열정과 재능, 그리고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은 공공건축을 일상의 삶과 감응하며 화답하도록 만드는 것이리라.

w********s 2015.02.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무주에 가보세요. 그리고 정기용과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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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주를 3번 방문했었다.  1993년, 1997년, 2007년. 앞의 두번은 학생이었을 때고, 다른 지방을 방문했을 때와 크게 다른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2007년의 방문은 출장이었고, 우연치 않게 무주군청 공무원의 안내를 받으면서 이 책에 나오는 공공건축물들의 몇 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등나무 운동장은 압권이었다.  등나무 터널과 같은 운동장의 입구를 통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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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주를 3번 방문했었다.  1993년, 1997년, 2007년.

앞의 두번은 학생이었을 때고, 다른 지방을 방문했을 때와 크게 다른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2007년의 방문은 출장이었고, 우연치 않게

무주군청 공무원의 안내를 받으면서 이 책에 나오는 공공건축물들의 몇 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등나무 운동장은 압권이었다.  등나무 터널과 같은 운동장의 입구를 통과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공공운동장이 가능하구나' 하고 놀랐던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무주군의 여러 공공건축들이 각각의 특징을 가지면서도 묘하게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나중에 그 건축물들이 모두 한 사람,

즉 이 책의 저자 정기용 선생에 의해 설계된 것을 알게 되고 역시 그렇군! 하고

무릎을 쳤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건축문화는 '조악하다. 천박하다. 철학이 없다' 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데, 막상 그러면 어떻게 고쳐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 하다.  물론 비판이 항상 대안을 수반할 수는

없지만, 대안이 없는 비판은 종종 허공에 대고 삿대질하기가 되기 쉽다.

 

그런 점에서 무주군의 수많은 공공건축에 직접 참여했던 정기용 선생은

행동하는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전 김세웅 무주군수의

전폭적인 지지에서 가능했다는 점, 즉 제도적 합의가 아니라 군수와 건축가의

인적결합에 의해서 가능했다는 점은 한계다. (정기용 선생도 책에서 그 부분을

일종의 '전횡' 이었다며 인정하고 있다)  제도적 합의가 아닌 인적결합은

그 결합의 대상 중 한 명이 자리를 떠나면 - 무주군처럼 김세웅 군수가 물러나게

되면- 완전히 소멸해버리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또 한 명 떠올린 사람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가 열린 우리당에서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당내후보들 중 한명으로 나섰을때

이른바 '생활공약' 이라는 것을 잠시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중에 시선을 끌었던 것으로 면단위 시골에 공공목욕탕을 짓겠다는 것과

공수부대원을 동원해서 농사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 사냥이 있었다.

(물론 이게 유시민 공약의 핵심은 아니었다) 

 

이러한 공약이 소개되면서

반응은 두 가지로 갈라졌는데, 하나는 "대통령이 무슨 면장이냐? 장난하냐?' 는

것과 심지어 특전사 전우회(?)라는 보수단체에서는 특전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네,

어쨌네 하면서 유시민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난리법석을 피우기도 했다(그들에게는 광주항쟁에 동원되어서 시민들을 학살한 것은 명예실추가 아니었다보다.

전두환이나 노태우한테는 왜 그런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가?)

 

다른 반응은 '그것 참 가려운데 긁어주는 얘기네' 라는 찬성이었는데

주로 시골에 살거나, 아니면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을 둔 도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고작 9시 뉴스에서나 멧돼지의 피해를

가끔 뉴스로 접할 따름이지만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맷돼지의 피해는

정말 심각하고 목욕탕을 못 가는 불편은 컸기 때문이다.

 

즉, 그런 불편을 직접 겪지 않는 사람들은 유시민의 이런 공약을 비웃었고

실제로 그런 불편을 겪는 사람들은 찬성했던 것이다.

 

 

내가 정기용 선생의 이 책에서 그가 면사무소에 주민들의 요청을 듣고

목욕탕을 진 이야기를 보고 느꼈던 것도 , 정기용 선생이나 유시민 전 장관이나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서 정기용 선생은 건축가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조절자(Social Coordinator)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사회적 조절자가 되어야 할 사람이 건축가 뿐이겠는가?

정치인, 의료인, 공무원.  공공부문에서 일하고 관여하는 이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f********g 2009.1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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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의 건축-정기용(현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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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찍은 날 2011년 4월 15일   부제: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서문: 잘 사용되는 것들도 있고,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면서 고쳐 쓰는 것도 있고, 주민들의 참여로 보완되는 것도 있고, 미완인 채로 썰렁하게 명맥만 유지 되는 것도 있다. ~ 아직도 농촌을 '개량'의 대상이나 구제해야 할 문제로만 바라보는 한 아무것도 제대로 해결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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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찍은 날 2011년 4월 15일

 

부제: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서문: 잘 사용되는 것들도 있고,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면서 고쳐 쓰는 것도 있고, 주민들의 참여로 보완되는 것도 있고, 미완인 채로 썰렁하게 명맥만 유지 되는 것도 있다.

~ 아직도 농촌을 '개량'의 대상이나 구제해야 할 문제로만 바라보는 한 아무것도 제대로 해결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잘못된 질문을 바로 잡아야 한다.

농촌을 타자화하는 버릇을 버려야 하고, 세계시장 속에서만 바라보는 농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농촌은 없다.

~ 농촌을 늘 변방으로 보고 자기가 자신의 일부를 식민지 경영하듯 하는 자가당착을 벗어던져야 한다.

~ 이제는 형식과 구호에만 머무는 '마을 만들기'식의 사고에서 탈피해 농업과 농촌의 문제를 전국토의 공간 재편 문제와 함께 생각할 때가 온 것이다.

 

 

한국에서 농촌의 개발이란 무엇보다도 땅값을 올리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 한국의 많은 농촌 거주민들은 '높은 가격으로 땅을 팔고 농촌을 탈출하는 것' 에 기대를 걸고 자본에 굴복하게 된다.

~ 모든 농촌을 자본의 논리로 개발한다면 누가 남아서 오래된 땅을 지키고 살아갈 것인가?

 

비록 무수동 예술인마을(구름샘마을)은 성공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되었지만, 필자를 무주로 이끈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다.

~ 공공건물을 발주할 때마다 관련 공무원들은 설계지침서를 작성하게 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이 건축의 목적과 공간배분 및 그 성질을 규정하는 프로그램 작성이다.

~안성면 주민자치센터를 설계하는 것으로 무주에서의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무주에서 10년을 작업하며 느낀 것은 군청의 모든 직원은 감사원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공무원들이 다 같은 처지다.

직원들이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은 일이 잘 되느냐 못되느냐가 아니라 감사에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다.

 

필자는 수의계약을 통해 무주 프로젝트를 10년간 진행할 수 있었다.

~ 수의계약이라는 것은 규모가 큰 설계 일도 최소한의 한도 내에서 진행해야 하는 터라 일을 할수록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안성면) 주민이 원하는 것 : 공중목욕탕

 

농촌 사람들에게 개발의 개념이란 땅값이 오르면 땅을 팔고 도시로 떠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남면) 천문대 망원경

건물이 항상 건물의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위안을 주기도 하고,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며,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 주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곤충박물관>

 

무주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향토박물만큼은 늘 가슴에 부담으로 남아 미완인 것처럼 느껴진다.

 

소위 선진국이란 건물을 신축하는 데 드는 비용만큼 건물의 유지 관리 보수에 예산을 아낌없이 쓰는 나라들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무주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은 건축물의 수명을 5-10년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종합복지관

예측되는 기능이 지속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변용이 가능하도록 불확정적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 필요했다.

 

노인전문요양원

노인들의 눈은 노안이 되어서 어두운 것을 싫어한다는 점과 점점 소멸되는 노인들의 거리감각을 고려해 벽면의 모서리를 없애 노인들이 부딪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무주 추모의 집(무주공설납골당)

 

공공건축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공이 해야 하는 것은 돈으로 생산할 수 없는 지역의 문화와 지역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일이다.

마뉴엘 카스텔이 주장하는 집합적 소비재들(병원, 학교, 공원, 복지시설 등)의 공공건축에서 건축행위의 '필요성'에 대한 검증과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검증이야말로 건축 이전에 철저하게 고민해야 하는 요체이기도 하다.

이런 뜻에 잘 회답할 때, 공공건축은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소통의 공간으로 이행될 것이다.

 

좌담

김봉렬: 선생이 지은 무주의 건축물들이 기념비적 명작, 후세가 오래 보존해야 할 명작은 아닐 것으로 본다. 무주의 건축물은 현실적 중요성, 일상적 건축의 발견이 주제인데, 이 주제는 시대와 일상이 바뀌면 따라 변화하고 또는 폐기될 수도 있다. 곧, 인간생활처럼 '살아가는 건'이다.

 

홍성태: '5대 난개발' = 아파트, 도로, (송전탑, 전봇대, 전깃줄), 간판, 펜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한미FTA가 결정되면서 농업개방정책이 사실상 '농업 죽이기'에 가까운 정책으로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재능이란 열정을 지속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이 말을 이어 생각해 보자면, 그 재능을 지속적으로 갈고닦는 것이 요즘 자주 말하는 진정성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열정과 진정성은 모두 '시간' 속에서 버려진다.

한 사람의 유한한 인생 속에서 무한히 계속되는 노력.

매일매일 자국은 남지만 마침표는 없는.

 

*건축가의 스케치로 채워진 표지가 매력적이다.

무주 프로젝트에 관한 책이다.

그것도 10년치.

TV에서도 했었다는데 못 봤지만 등나무 운동장과 목욕탕 등의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이 책이 낯설지는 않았다.

좌담에서 말한 5대 난개발이나 농업죽이기에 대한 생각은 어느정도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도로의 개발과 확장으로 외국처럼.

물론 땅이 적어서 1-2시간이면 도시에 도착하여 생필품을 사고 즐기고 인터넷을 이용해 배달을 시키면서 농촌의 상권은 무너질 수 밖에 없고 도시는 편안한 삶의 공간을 찾아 교외로 나갈 수 밖에 없는.

둘의 평행 달리기가 교차점을 맞이하는 시점은 어느때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과연 그 해답이랄 것을 지금의 모습에서 찾아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도...

 

무엇보다 공공건축에 대한 그리고 건축적 예산에 대한 건축가의 시각이 멋진걸 알면서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현실에 고 정기용 선생님의 작품이 오래 살아남기를 희망하지만...좌담에서 김봉렬 선생님의 말처럼 '살아가는 건축'이기에 살아있을 수도 있고 폐기될 수도 있음을 알지만...계속 살아남아 있기를 바래본다.

c****h 2014.12.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