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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죽지 못한 파랑」청(靑)이여, 그대는 누구─?
"「미처 죽지 못한 파랑」청(靑)이여, 그대는 누구─?" 내용보기
소년은 무서웠다.  소년은 두려웠다.  소년은 겁이났다.  소년은 조용했다.    청(靑)은 분노했다.    청이여, 그대는 누구인가. 소년이여, 그대는 누구인가.   ─    개인적으론 얇은 책을 좋아합니다. 너무 길면 집중도가 흐트러진달까. 책을 오래 못 읽는 체질이며, 독서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 저로서는 이런 책을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헛소리 3권이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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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은 무서웠다.

 소년은 두려웠다.

 소년은 겁이났다.

 소년은 조용했다.

 

 청(靑)은 분노했다.

 

 청이여, 그대는 누구인가. 소년이여, 그대는 누구인가.

 

 

 개인적으론 얇은 책을 좋아합니다. 너무 길면 집중도가 흐트러진달까. 책을 오래 못 읽는 체질이며, 독서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 저로서는 이런 책을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헛소리 3권이 제일 재미있었는지도. 잡설은 언제나 여기까지─.

 

 소년은 작은 '오해'로부터 모두와 차단됩니다. 격리됩니다. 분리됩니다. 모든 것은 '그'의 두려움이었고, 그의 무서움이었고, 그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청은 소년의 곁에서 조언해주며, 분노해주며, 벗이 되어줍니다.

 

 그런 청은 누구일까요. 당신에게도 '청'은 있습니까─?

 

n*****s 2008.1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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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죽지 못한 파랑- 그것은 나 자신에게 있는 본능..
"미처 죽지 못한 파랑- 그것은 나 자신에게 있는 본능.." 내용보기
처음에는 소심하고 답답한 주인공에게 짜증이 났다. 사실 요즘 은따인 학생 하나 때문에 일주일째 머리 쓰냐고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혹시 그 아이에게 말 실수 할까봐 걱정하면서도 신경 안 써 줄수도 없고, 너무 신경 써주다 보면 애들에게 반감 사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까봐 이리 저리 머리 굴리느냐고 나만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은근히 따돌림 당하거나 완전히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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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소심하고 답답한 주인공에게 짜증이 났다.

사실 요즘 은따인 학생 하나 때문에 일주일째 머리 쓰냐고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혹시 그 아이에게 말 실수 할까봐 걱정하면서도 신경 안 써 줄수도 없고, 너무 신경 써주다 보면 애들에게 반감 사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까봐 이리 저리 머리 굴리느냐고 나만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은근히 따돌림 당하거나 완전히 따돌림 당하는 아이는 주인공처럼 뭔가 이유가 있다..

소심한 것이 무슨 죄냐고 할지 모르지만, 요즘은 자기 의사 표현을 잘 못 하면, 요즘은 살아 남기 힘든 시대이다.

물론 가만히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의 자기 불만을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풀어 버리는 아주 못된 인간이다.

처음에 시작은 그러했다..

그냥 소심한 이아이.. 어쩔 것이냐..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공격 대상으로 바뀌는 순간에는 주변에 모두가 다 나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왜 그 남자 선생님은 완벽해야만 했던가? 아니 왜 완벽하려고 했던가...

마지막에 나온 실수 투성이의 그 여자 선생님이 훨씬 더 인간적이지 않은가?

제발 교사들이 아이들과 수업 하는 것만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주인공의 반 신문을 돌려서 부모들도 좋아하는 교사라는 이미지를 만든 다는 것은 그 만큼 자기 시간에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아진다.. 더 조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고,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 대상은 소심한 주인공이 타깃이 된 것이다.

왜 그런 교사와 이런 아이가 만난 것인지.. 하긴 그 둘의 만남으로 주인공의 다른 자아인 파랑이 튀어 나오게 된 것이고, 이런 소설도 탄생하게 된 것이리라..

나는 이 소설에서 다른 것들도 많이 생각했지만, 제일 마음 속에 깊이 새긴 것은 그것이었다..

사실 하네다 선생님은 자신에게 올 나쁜 화살들은 주인공에서 쏟아 붓기 위해서 아무 죄도 없는 주인공의 "마사오가 하품을 더 해서 10분 더 수업한다."

라는 것.. 그리고 그 10분의 짜증은 마사오에게 간 다는 것..

나는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로 학생 하나가  수업을 방해하는 바람에 끝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하여 "00이가 저렇게 이야기 해서 여기 까지 못했으니까 이건 숙제로 해 오자."라고 한 적이 있다.

그 순간 아이들은 야유를 했었고.. 하지만 그 야유에 그 아이는 마사오처럼 부끄러워 하는 성격은 아니었고, 자신의 잘못을 아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넘어 갔지만..

만약 그것이 자주가 된다면 이게 마사오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아 교사 하나가 아이 하나 죽이기는(진짜로 목숨을 죽인다는 게 아니라) 정말 순식간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구나..

라는 생각엔 "누구 때문에 뭐를 더 하겠다." 라는 발언은 삼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l 2010.05.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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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처 죽지 못한 파랑
"- 미처 죽지 못한 파랑" 내용보기
학교 옆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아들인 미치오와 친한 마사오는 겁이 많은 아이다. 벽장 틈새에서 무언가 툭 튀어나올까봐 무서웠고 열린 문 틈으로 무언가 들어올까봐 겁나기도 했다. 소심하고 겁많은 마사오가 5학년이 되던 해,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으로 인해 마사오는 지옥같은 한학기를 겪게 된다. 햇병아리 하네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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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옆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아들인 미치오와 친한 마사오는 겁이 많은 아이다. 벽장 틈새에서 무언가 툭 튀어나올까봐 무서웠고 열린 문 틈으로 무언가 들어올까봐 겁나기도 했다. 소심하고 겁많은 마사오가 5학년이 되던 해,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으로 인해 마사오는 지옥같은 한학기를 겪게 된다. 햇병아리 하네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은 남자였다. 학급신문 형식의 <5학년 타임즈>를 발간하면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하던 그 선생님은 유독 마사오에게 잔인하게 굴기 시작했는데 그날은 뭔가 감도는 공기부터 불편했다고 한다.

 

평판이 좋았던 담인 선생님은 학급 내에 공공의 적을 하나 두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마사오였던 것이다. 사소한 오해로 빚어진 이야기는 하네다 선생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다 너희들을 위해서야~여러분이 제대로 수업을 안들으니까" 식의 모두를 향한 비판이 그의 평판을 떨어뜨리게 되자 다른 작전을 쓰기 시작했는데

 

"마사오가 하품을 해서, 마사오가 숙제를 안 해 와서, 마사오 때문에..."

 

학급내 모든 안 좋은 일은 마사오의 탓으로 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불만은 이제 선생님이 아닌 마사오에게로 향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학급내에서는 아무도 마사오에게 말을 걸거나 함께 하는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이 흘러 학급내 공공연한 왕따로 존재하던 마사오에게 누군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입을 열 수 없게 입술이 꿰매어진 피부가 파란 끔찍한 몰골의 아이. 피부가 파래서 '아오'라고 이름 붙인 그 아이만 마사오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아오는 마사오의 눈에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오로 인해 용기를 낸 마사오가 담임의 뒤를 밟고 그에게 복수 하기 위해 그 집에 들어갔다가 들켰을 때도 아오는 함께였다.

 

햇병아리 선생님의 인간성이 범죄인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은 이때 증폭되고도 남는데, 선생은 아이를 감금하고 폭행하고 급기야 생매장 하기 위해 산속으로 끌고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선생이고자 시작한 일의 끝이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라면 그는 분명 정상인이 아니다.

 

p191  반항하지 않는 양은 조용히 잡아먹히는 먹이가 된다

 

겁쟁이에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였던 마사오는 최후의 순간에 변덕을 부려버린다. 자신을 그간 괴롭혀왔던, 죽음으로 몰고가려했던 어른인 선생님을 고발하기 보다는 동정심을 발휘했다. 아이도 이렇듯 자신을 극한의 상황까지 괴롭힌 어른을 배려할 수 있는데 어른이었던 선생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시선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리 그랬다고 쳐도 그는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선택과 행동을 일삼아 온 것이다.

 

새로운 선생이 왔다. 이번에는 여자다. 어딘지 엉성하고 인기도 없다. 하지만 마사오는 이 선생님의 답변을 듣고 안심했다. "노력한 결과가 이거니까 어쩔 수 없쟎니" 이 어른은 정상이다. 하고. 주로 이 작가의 공포소설만 읽어왔던 내게 이 장르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의미있는 이야기로 읽혔다. 학급내 문제를 드러내면서도 인간의 저 깊은 밑바닥의 것을 건드리고 있었으니까. 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멋지다.

i*****i 2014.06.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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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어둠을 만나는 이야기
"자신의 어둠을 만나는 이야기" 내용보기
학교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간이다.  하지만 또한 반대로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기도 하다.  친밀감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빵셔틀'이라는 말처럼 학교라는 공간은 우리가 살아갈 사회를 준비하게 하는 공간이라는 부분에서 가장 최악의 그리고 잔혹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국성적이든 아니면 다른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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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간이다.

  하지만 또한 반대로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기도 하다.

  친밀감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빵셔틀'

이라는 말처럼 학교라는 공간은 우리가 살아갈 사회를 준비하게 하는 공간이라는 부분

에서 가장 최악의 그리고 잔혹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국

성적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서열을 요구하는 사회가 이제는 그 영역을 확대해서 학

교까지 침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어쩌면 '빵셔틀'이라는 말로 우리

에게 제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 '오츠이치'의 이 작품 '미처 죽지 못한 파랑'은 그러한 학교의 공포를 보여준다.

그리고 더불어 그 학교의 공포가 만들어내는 아이의 마음속에 숨겨져있던 자신의 공포

를 직면하게 된다. 마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철저하게 계급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하고, 같은 아파트도 평수에 따라서 친구가 달라지는 그 이상한 세상이 어느 순간

학교라는 아이들이 자라는 공간에 만들어질 때, 직면하게 되는 공포를 '오츠이치'는 너

무나 담담하게 그린다. 그리고 그 절망적인 상황을 경험하는 아이가 만나는 일그러진

자신의 내면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너무나 편안한 학교 생활을 하던 주인공 소년은 어느 순간 세상에 잘 보이려는 새로운

담임으로 인해서 학급의 최하층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때부터 학교는 세상의 어떤

공간보다도 가혹한 공간이 되어버린다. 어른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해결책도 그 상황에

떨어진 아이에게는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모든 잘못된 일의 책임이 자신에게 돌

아오는 상황,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한 저항이 다시 자신을 괴롭히는 악순환 속에서 소년

은 자신의 마음 속의 어둠을 만나게 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소

년이 만난 상황에서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년이 직면한 사회만큼이나 소년

이 만난 어둠은 두려운 존재가 되어간다.

  이 작품 '미처 죽지 못한 파랑'은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이야기다. 그것은 사회를 빗

대어서 그려낸 이야기로 읽히기도 하고, 또한 들려오는 학교의 문제점들의 한 단면을

풀어내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문제의 핵심이 자신을 위해서 다른

이를 희생시켜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현대의 너무나 보편적이고, 모두가 그

렇다고 생각하는 생각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이들은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조금 잔혹한 한여름밤의 꿈처럼 지나가는 학창시절의 이야기로 읽어도 상관

은 없다. 그리고 계급이 만들어지고, 가장 낮은 계급이 모든 잘못의 책임을 지게 만드

는 현대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읽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느쪽

이든 그 상황이 옳바른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지금 자신

의 마음 속 어둠도, 세상의 어둠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회를 살고 있으니, 작가는

그 두 가지 어둠을 모두 똑바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d 2011.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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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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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이치의 본 작품은 역자 후기에서 기존에 국내에서 소개되었던 작품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고 하였다. 트릭이나 반전 등의 미스터리 면과 가슴뭉클한 치유계면에서 본다면 확실히 본 작품은 다르다. 그러나 작품 기저에 깔려있는 오츠이치 특유의 분위기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주인공인 마사오는 5학년이 되었다. 신학기가 되고 첫 부임한 새로운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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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츠이치의 본 작품은 역자 후기에서 기존에 국내에서 소개되었던 작품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고 하였다. 트릭이나 반전 등의 미스터리 면과 가슴뭉클한 치유계면에서 본다면 확실히 본 작품은 다르다. 그러나 작품 기저에 깔려있는 오츠이치 특유의 분위기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주인공인 마사오는 5학년이 되었다. 신학기가 되고 첫 부임한 새로운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다. 학생들의 시선에서 그들을 대해주어 학생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는 하네다 선생님. 신학기 금붕어를 돌보는 학급 당번을 두고 오해를 사게 된 마사오는 반 아이들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배척당하기 시작한다. 내성적이었던 마사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오해는 자꾸만 깊어져갔다.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하네다는 마사오를 희생양으로 삼아 수업 분위기를 비롯한 반 분위기를 조절한다. 추가 수업을 하는 것도, 추가 숙제를 하는 것도 전부 마사오 탓이 된다. 마사오만 잘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사오는 잘 할 수 없다고 아이들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수업 시간이나 종례 시간 등에서 하네다가 마사오에게 수치심을 주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사오는 열심히 공부 해 자신만 꾸짖는 담임의 시선을 바꿔보려 하지만, 마사오가 잘 하면 잘 할수록 하네다는 마사오에게 네가 잘했다고 다른 아이들을 비웃으면 안 된다며 주의를 준다.  

 

 하네다의 행동이 이상함을 알고 마사오는 용기를 내서 말한다. 하네다는 성심껏 들어주는 척 하다가 마사오를 과학실로 끌고 가 '저는 나쁜 아이입니다'를 비롯한 자기 비하 발언을 말하도록 강요한다. 선생님은 항상 옳곧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마사오는 문제를 자신에게서 계속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계속되는 선생님의 지독한 괴롭힘과 점점 더 반에서 고립되어가는 마사오의 눈에 언제부턴가 '아오'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오'는 온 몸이 파랗고 한쪽 귀와 머리카락이 없으며 오른쪽 눈은 감겨있고 입술에는 실로 꿰메져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마사오는 아오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마사오는 소꿉친구였던 미치오와 귀가하는 길에 예전 일상을 떠올리며 오열을 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 담임인 하네다가 잘못 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갈수록 하네다의 괴롭힘은 심해져가고, 아오는 마사오에게 지금과 같이 살고 싶지 않다면 담임을 죽이라고 말한다.  

 

 읽는 내내 정말 지독히도 화가 나고 또 슬펐다. 마사오의 어리숙함을 이용하고 선생이라는 직함으로 무자비한 힘을 행사한 하네다를 용서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보호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가.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건 하네다 자신을 위해 마사오를 사회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노력 없이 자신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한 아이의, 한 사람의 마음을 짓밟고 어리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요리하려는 심보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도대체 인간이 어디까지 망가지면 이렇게까지 타락하는 걸까.  

 

 한줄 한줄 적혀 있는 글자들은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괴로워하던 마사오를 보며 꾹꾹 참아왔던 눈물이 끝내 흐를려고 할 때, 나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하네다 같은 인간에게 당하며 울 수 만은 없다고. 그래서 아오가 마사오에게 하네다를 살해하자고 말했을 때, 난 윤리관도 법도 모두 머릿속에서 지운 채 환영을 했다. 그래, 마사오! 더 이상 참지 마! 2학기가 되도 하네다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네게 한 행동을 그만 두지 않을 거야!  하지만 머릿 속 어딘가로부터 슬그머니 무언가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살인'이라는 것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법과 살인을 통해 복수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사오의 짧은 5학년 생활동안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과도 닮은 일면을 발견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과는 필요 외에 가까이 하고 싶지도, 하기 힘들었던 나. 책상에 앉아 홀로 나라는 존재의 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하며 속으로 울었던 나. 나를 평가하는 타인의 시선이 신경쓰였지만 태연한 척 했던 나. 결국 나란 인간도 하네다를 비난하고 있을 처지만도 아닌 것이다. 그리곤 끝내 회의주의에 빠진다. 인간이란 어찌해도 나약한 존재며 구원의 여지가 없다고.  

 

 그러나 오츠이치는 다르다. 인간은 나약하지만 현실은 그런 인간들이 만들어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은 부조리할 수 밖에 없다고. 오츠이치는 마사오를 통해 그러한 현실에 맞서라고 말한다. 하네다를 살인하겠다는 것으로 현실에 맞서는 최후이자 최악의 수단을 보였지만, 그것만큼 확실하고 강력한 것은 따로 없다. 아오가 마지막에 사라진 것도 마음 먹고 살인이라는 형태로 현실에 맞서려고 했더니, 현실은 나보다 더 나약하고 하등했다는 것을 알고 허무해져서 사라진 것이 아닐까. 결국 가장 정점에 있다고 생각했던 존재는 계급 사회에 있어서 가장 아래에 있으면서 겉으로 그렇지 않은 척 포장만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닐까. 한편으론 아오는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독한 현실과 마사오 사이에 녹아들어갔는지도 모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9 2011.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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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죽지 못한 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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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린다는 행위는 굉장히 나쁜 짓 같았다. 하지만 다들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무서워하는 건 나뿐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에 겁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바보취급을 당할 것 같아서 평소처럼 행동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 p12~13 中      단지 그것 뿐이다.  또래들처럼 아무한테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거나, 발표하기 위해 스스로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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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린다는 행위는 굉장히 나쁜 짓 같았다.

하지만 다들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무서워하는 건 나뿐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에 겁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바보취급을 당할 것 같아서

평소처럼 행동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 p12~13 中

 

 

 단지 그것 뿐이다.

 또래들처럼 아무한테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거나, 발표하기 위해 스스로 손을 들거나, 다 먹지도 않은 과자를 그냥 버려버리거나 그런 소소한 일들을 잘 못하는 소심한 소년일 뿐이다. 조금 뚱뚱해서 오래달리기에서 꼴찌를 하고 축구에서 큰 활약을 못하는 것 뿐이다.

 소심해서 발표를 못하고, 남들이 당연하게 하는 비도덕적인 일들 (비도덕적이라고 해서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소소한 일들을 말하는 것이다) 을 무서워하고, 달리기와 축구를 못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소심한 성격이 그 아이가 잘못된 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주인공인 '나' 마사오는 단지 남들보다 조금 소심할 뿐인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이다. 학급에서 눈에 띄는 편은 아니지만 게임과 만화를 좋아하는 공통취미를 가진 친구들과는 잘 웃고 떠들며 어울린다.

 

 사건은 사소한 데서 출발한다. 누구도 눈치 못채게 시작된 그 '게임'같은 것은 점차 마사오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그 사건의 주모자격인 담임인 하네다 선생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할 수 밖에 없었지만, 사실 그 작은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현실의 그것을 그대로 담아낸 것에 불과했다. 어쩌면 그런 현실 자체에, 그리고 매번 알면서도 입다물고 있었던 나 자신에 분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 칭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고, 그것이 두려운 사람은 어떻게든 사랑받고 싶어 갖은 방법을 물색하게 된다.

 또래집단과 선생님으로 구성된 '교실'이라는 세계는 모두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물론 그 안에는 소심한 아이도, 대범한 아이도, 똑똑한 아이도, 뒤처지는 아이도 있다. 군중의 대접을 받기 위해 그 중 가장 착하고 가장 만만한 아이를 타겟으로 삼아 조금씩 공격을 가한다. 주변에서도 점점 그 공격에 합세한다. 나중에는 희생양이 된 아이가 완전히 교실에서 소외가 되어도 모두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한 명이 희생양이 됨으로써 주동자는 군중의 대접을 받고, 군중들은 자신이 그런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우월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교실'이라는 눈에 보이는 세계는 평화롭게 돌아가는 것만 같다.

 

 

 그런 교실의 법칙을, 마사오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사오가 그 희생을 말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마사오의 상처투성이인 마음은 조금씩 그 분노와 증오로 부풀어오르게 된다.

 

 

 

 이 책에서는 피부색이 파랗고 흉측한 얼굴을 하고 있는 마르고 창백한 소년 '아오'를 내세워 마사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정확히 뭘로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오는 마사오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처음에는 가만히 앉아 바라보고 있을 뿐인 아오와 점점 가까워지고 말을 하게 되면서, 마사오의 감정이 변하는 것을 그야말로 팽팽하게 잘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사오에 감정이입이 되서 뱉어내지 못하는 분노와 터질듯 말듯한 긴장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나하고 누나의 사이가 특별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나가 내게 거는 말은 교실에서 듣는 말과 온도가 달랐다.

내가 꼭 실수를 저지르고 혼나는 아이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따스한 뭔가가 퍼져 나갔다.

그것은 울음이 터질 만큼 상냥한 것이었다.

- p71 中

 

 

 

 나는 소심한 것 같지만 그 누구보다도 속이 깊고 마음이 넓고 따스한 마사오의 이런 모습들에 더더욱 마음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마사오는 부당한 일에 대항해 큰소리를 못 내는 연약한 소년이었지만 '따뜻한 사랑'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상한 '현실'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한 모두가 다 그렇다.

언제나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며 점수를 매긴다.

망신당하는 것은 싫고, 좋게 보이고 싶다.

칭찬을 받으면 기쁘지만, 실수를 하면 비웃음을 살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분명 모두들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며, 겁을 먹거나 불안해하는 것이다.

- p211 中

 

 

 

 결말이 영 마음에 걸린다.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이게 해피엔딩인지 아닐지는, 초등학생 유년기를 지나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된 마사오를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일 것 같다. 하지만 마사오라면, 분명 괜찮을 거라는 그런 작은 희망이 가슴에 퍼져나간다.

 

s*******4 2010.08.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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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폭력과 육체적 폭력의 향연. (스포포함)
"정신적 폭력과 육체적 폭력의 향연. (스포포함)" 내용보기
페이지 수가 200을 약간 웃도는 이 책을 나는 퍽 가벼운 맘으로 집어들었는데, 읽을수록 어둑어둑해지는 스토리는 나의 마음을 무척 무겁게 만들었다. 담임의 주도하게 진행되는 집단 따돌림과 이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혐오스럽고, 역겹고, 또 공포스러웠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그때그때 비겁한 변명과 이유를 들어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현실에 안주하고, 부조리한
"정신적 폭력과 육체적 폭력의 향연. (스포포함)" 내용보기

  페이지 수가 200을 약간 웃도는 이 책을 나는 퍽 가벼운 맘으로 집어들었는데, 읽을수록 어둑어둑해지는 스토리는 나의 마음을 무척 무겁게 만들었다. 담임의 주도하게 진행되는 집단 따돌림과 이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혐오스럽고, 역겹고, 또 공포스러웠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그때그때 비겁한 변명과 이유를 들어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현실에 안주하고, 부조리한 상황에 적응하면서 사건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당하게 되는 수많은 굴욕들을 냉정하게 지켜 보면서 녀석의 무기력함과 안일함 그리고 나약함에 갑갑증을 많이 느꼈다. 상처가 곪다 못해서 썩어들어가는데도 나몰라라하는 당사자나 가해자의 역할게임같은 상황들이 말같지도 않았고, 어의없었다.

  심지어는 주인공 녀석은 당할만 해서 당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녀석은 너무도 무기력하고, 소극적이기만 했던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갖은 구박과 불이익을 당하면서 찍소리하나 못내다니..... 하지만, 나역시도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탈피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결국 파국이 서서히 다가오고, 주인공 녀석은 담임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너무도 극단적인 전개에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설득력있는 심리묘사와 리얼한 상황설정으로 스토리는 비교적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담임의 집을 감시하고, 몰래 담임 집에 침투하기에 이르른다. (미치오 슈스케 작-<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 유사한 장면에 있어서 상당히 놀랐다. 작가의 문체도 유사하고, 혹 작가가 두개의 필명을 쓰는 것은 아닌지 적찮이 충격적이었달까.......)

  그러나 갑작스런 담임의 귀가로 오히려 담임에게 붙잡혀 야산에 매장당할 위험에 처하게 되나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주인공은 나약하고, 허약하기만한 정신상태를 탈피하게 된다.

  그 장면이 나왔을때 박수를 보냈다. 일부러 상대에게 폭력을 가할 이유는 없겠지만, 도발하거나 폭력이 가해지면 대응은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한쪽 빰을 맞고, 다른쪽 뺨을 내주는 것은 성인군자나 할 일이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한대를 맞았으면 나도 한대 쳐주는 것이 예의(?)인 것이다. 여태 주인공이 그걸 못해서 왕따의 표적이되고, 최 하층민취급으로 갖은 모욕을 감수해야 했지만,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을 괴롭힌 이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각오와 배짱으로 최악의 공포를 직면해서야 주인공은 자신을 가두었던 틀을 깨게 된다.

  너무도 극단적이고 폭력적이고, 잔인한 진행이자 결말이었지만, 아주아주 속이 다 후련했다. 초등생에게 권하기엔 퍽 공격적인 내용이지만, 현실에서 상당힌 교훈이 될것이라고 본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불상사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비실비실 야리야리하기만 하고, 자신을 보호하지 못해서 불이익을 당하게 되었을때 그런 그를 지켜줄 이는 자신 뿐이라는 현실의 냉엄함을 깨닫고 좀더 분명하게 인식하는데, 상당한 메시지를 얻게 하는 작품이 될테니......

  무시무시하지만, 엄정한 현실의 잔인성을 깨닫게 해주는 괜찮은 작품이다. 왕따 학생들이 읽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비굴한 굴종으로 한없는 모욕을 감내하기 보다는 적정한 선에서 자신의 각오와 용기를 보여 상대에게 충분한 존중과 두려움을 얻어내는 것이 어느정도는 처세의 요령이 아닐까 생각된다.

b***i 2010.04.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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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억압해도 죽일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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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にぞこないの青 :: 乙一 갈수록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 분명 하루가 다르게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는데 뱃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이제 목구멍에도 와닿지 않고 그저 스스로의 무력감만 매번 재확인 하게 된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이렇게 억압 당하는 '나' 를 보고도 내 주변의 다수가 침묵하고 있다면 그건 내가 잘못 되었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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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にぞこないの青 :: 乙一

갈수록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 분명 하루가 다르게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는데 뱃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이제 목구멍에도 와닿지 않고 그저 스스로의 무력감만 매번 재확인 하게 된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이렇게 억압 당하는 '나' 를 보고도 내 주변의 다수가 침묵하고 있다면 그건 내가 잘못 되었다는 뜻일까. 비록 내가 누구보다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많이 가진 것도 아니지만 이 땅에 사는 만큼 내 작은 권리만 보호 받고 싶을 따름인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피켓을 든 것이 정말 탄압 받아 마땅한 일인걸까. '나' 를 포함해 항의하는 이들이 1%도 안될 만큼의 소수라면 나머지 99%는 정말로 탄압자의 편에서 그를 옹호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도 덩달아 탄압 받을까 두려워 그저 숨죽여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뿐일까.

이것이 현재의 우리 사회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만 소소하게 어울리다보니 저기의 '나' 는 정말 얼마 안되어 보인다. 시내에 나가 길거리를 조금만 걸어다녀 보아도 '나' 와 같은 이들은 좀처럼 눈에 띄질 않는다. 온라인의 이슈 게시판에는 '나' 들이 꽤 많이 모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오프라인의 현실엔 그닥 반영되지 않는다. '먹을거리' 같은 공통 화제가 있을 때는 그나마 그 1%의 '나' 가 10% 정도쯤은 되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강자의 억압이 시작되자 다 흩어져 버렸다. 여전히 비정규직의 부당함을 울부짖는 '나' 들이 모인 현장에는 연대하는 이들 없이 쓸쓸하게 억압 받고 탄압 받는 '나' 들 뿐이다. 탄압자를 옹호하는 이들은 별로 없어 보이는데, 함께 싸워달라 손을 내밀면 난색을 표한다. 무기력을 변명으로 제 코가 석자라며 꼬리를 감추면서도 어느새 길거리에서 문화를 즐기고 자의식에 도취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 암묵적으로 탄압자에 호응하는 셈이 된다는 걸 의식하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

마사오는 힘 없고 심약한 초등학교 5학년생으로, 늘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를 걱정하고 두려워 하는 아이다. 스티커만 모으기 위해 과자 봉지를 뜯고 내용물은 버리는 또래 아이들의 행위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행여 아이들이 자신을 비웃을까 두려워 가책을 느끼면서도 그네들의 그런 행위를 따라하는 척 한다. 그런 중에 새 담임 교사가 전근을 온다. 매우 의욕적인 그는 아이들을 다그치며 반이 우수해지기를 독려하고, 쫓기는 아이들의 불만이 조금씩 새어 나오자 가장 약한 마사오를 타겟 삼아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리고 부당한 괴롭힘을 일삼기 시작한다. 선생의 독화살이 마사오에게만 집중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반 아이들은 내심 안도하며 자칫 그를 돕다가 불똥이 튈까봐 아예 마사오를 왕따 시키고 만다. 괴롭힘에 억눌리면서도 항의조차 할 수 없게 된 마사오는 어느날부터인가 그만이 볼 수 있는 자신의 '분노의 분신' 을 보게 되고, 그 존재를 의식해 나가며 선생에게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자들을 주인공 삼기 좋아하는 오츠 이치의 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소설은 겉으로만 보기엔 한 모자란 초등학생의 고군분투기쯤으로 읽히겠지만, 작금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좀 남다른 우화로 읽혀질 것 같았다. '자기가 맡은 반이 우수해지기를 바라는 의욕적인 선생' 만으로도 연상되는 존재가 있지 않나. 또한 마음은 약하지만 옳고 그른 일이 무엇인지 아는 마사오가 그런 선생에게 억압 받는 모습은 현재 바깥에서 외롭게 투쟁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결정적으로 마사오가 괴롭힘 받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나서지도 않고 아예 왕따에 동참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그래서인지 나는 강권을 휘두르며 무력으로 협박하는 선생보다, 기괴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마사오의 '분노' 보다, 무력하고도 잔인한 반 아이들이 훨씬 무섭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 내가 이렇게, 나도 모르는 새에 어딘가의 '마사오' 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죄책감 때문에.

차라리 자신의 분노를 볼 수 있는 마사오가 낫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분노는 커녕 부조리함도 점차 표현해 가지 못하는 반 아이들, 우리들은 마사오보다도 안쓰럽다. 뒤에서 선생 욕은 몰래 하면서도 감히 대들었다간 마사오와 똑같은 신세가 될까봐 몸을 사리는 모습은 약한 초등학생들의 모습만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초등학생 때부터 그렇게 길들여져 왔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무기력하고, 무언가를 느껴도 내뱉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버린 건지도 모른다. 탄압자를 두려워하고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우리 대신 탄압 당하는 이들을 말없이 바라만 보는 것도 정녕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사실 저기 저 사람들만이 '마사오' 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마사오' 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 내부의 '분노' 를 바로 볼 수 없다는 것만큼 섬뜩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미처 죽지 못한 파랑, 아무리 탄압하고 억압해도 죽일 수 없는 인간의 분노와 항거 의식, 이것은 '힘없고 심약한 마사오' 인 우리 내부 깊숙이에 숨어 있다. 아직 충분히 탄압 받지 못해(!)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억눌러 보고 싶지 않은 것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탄압이 탄압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굳이 꺼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개중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스티커만 모으기 위해 정작 먹을 것을 내버리는 것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남들이 분노하지 않을 때 더 분노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자기 권리가 그토록 중요해 내 몫은 달라 요구하는 사람이라면 남의 권리도 함께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잘못된 걸 알면서도 그저 남들이 뭐라 할까 따라만 했던 마사오는 다시 새로 온 담임에게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두렵지 않나요' 라고 질문한다. 그 선생의 대답은 우리가 꼭 듣고 싶은 정답이 아니면서도 어쩐지 위안을 준다. 그 대답은, 좌절과 무기력이 최선의 대응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q****e 2009.0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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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무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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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녀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수 있을 내용입니다.   이상과는 달라서, 현실에서는 교사는 '평등'하게 아이들을 대하지 않고, 친구들도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 법이죠.   은밀하게 진행되는 이지메, 말로는 하지 않지만 세워져 있는 서열 관계, 쉬는 시간이면 깨기 힘든 그룹간의 벽, 언제 내가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이상의 감정들을 아주 순진한 초등학생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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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녀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수 있을 내용입니다.

 

이상과는 달라서, 현실에서는 교사는 '평등'하게 아이들을 대하지 않고,

친구들도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 법이죠.

 

은밀하게 진행되는 이지메, 말로는 하지 않지만 세워져 있는 서열 관계,

쉬는 시간이면 깨기 힘든 그룹간의 벽, 언제 내가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이상의 감정들을 아주 순진한 초등학생의 시점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투는 정말 담담하지만 그래서 더욱 파괴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에 생겨 버린 어둠 속에서 결국은 끔찍하게 왜곡된 '나만의 친구'를 만들어 낸 초등학생 마사오가 본 교실 풍경은 정말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사교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따금 들곤 하는 감옥의 이미지와 흡사했습니다.

 

 

조금 얇은 편이지만, 그런 만큼 강렬한 책이었습니다.

 

책장을 덮은 뒤에는 제가 가해자였던 것은 아닐까? 혹은 인식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츠 이치라는 작가는,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작품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조만간 다른 작품도 읽어 보고 싶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심리 소설이었습니다.

읽어 보실 분들께는 추천합니다.

g******8 2008.11.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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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죽지 못한 파랑 - 오츠이치 (김선영 옮김, 북홀릭)
"미처 죽지 못한 파랑 - 오츠이치 (김선영 옮김, 북홀릭)" 내용보기
교실에서 빚어진 사소한 오해와 담임선생의 악의에 찬 행동이 평범한 초등학교 5학년생 마사오의 세계를 서서히 일그러뜨리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그를 무시하고 담임선생의 노골적인 차별은 점점 더 심해져 마사오는 결국 ‘최하층 계급’으로 전락한다. 친숙했던 교실이 지옥으로 변해가던 어느 날, 마사오 앞에 괴물의 형상을 한 소년 ‘아오’(靑)가 나타난다. 섬뜩한 구속복을 입은
"미처 죽지 못한 파랑 - 오츠이치 (김선영 옮김, 북홀릭)" 내용보기

교실에서 빚어진 사소한 오해와 담임선생의 악의에 찬 행동이 평범한 초등학교 5학년생 마사오의 세계를 서서히 일그러뜨리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그를 무시하고 담임선생의 노골적인 차별은 점점 더 심해져 마사오는 결국 최하층 계급으로 전락한다. 친숙했던 교실이 지옥으로 변해가던 어느 날, 마사오 앞에 괴물의 형상을 한 소년 아오’()가 나타난다. 섬뜩한 구속복을 입은 채 흉측한 흉터와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새파란 피부를 지닌 아오는 그날 이후 마사오의 분노가 극에 달할 때마다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책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마사오에게 위험천만한 속삭임을 건네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미처 죽지 못한 파랑은 여러 면에서 오츠이치가 17(1996)에 발표한 데뷔작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치정에 얽힌 살인과 엽기적인 시체 유기가 난무하지만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들이 9살에서 11살 사이의 소년소녀라는 점은 과연 오츠이치의 데뷔작답네!”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설정이었는데, ‘미처 죽지 못한 파랑역시 왕따와 폭력, 호러와 복수 등 결코 낮지 않은 수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주인공은 초등학교 5학년생인 마사오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일본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01년에 발표된 오츠이치의 일곱 번째 작품으로, 작품연표를 살펴보면 암흑동화고스(GOTH)’ 사이쯤 위치합니다.

 

역자후기에는 그렇게 괴로운 경험을 하게 될 때 부조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힘을 내야만 한다는 것.”이 작가의 메시지라고 설명돼있는데, 큰 얼개만 보면 이런 착한 해석이 정답일 수도 있고 오츠이치의 의도 역시 그런 방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으론 좀 다른 의견, 후천적 소시오패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오츠이치 식 호러풍으로 그린 작품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해 보입니다.

평범한 소년 마사오가 담임선생과 친구들에 의해 최하층 계급으로 추락하는 과정이라든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파란 피부의 소년 아오가 마사오의 의식과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며 분노와 살의를 북돋는 과정, 그리고 마사오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결심등은 말 그대로 후천적인 소시오패스의 성장기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오츠이치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작가후기를 읽어도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미스터리 같은 결말도,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라스트도 감안하지 않고 진짜로 좋아하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썼다.”고 고백했는데, 달리 말하자면 오픈된 결말이니 어떤 해석도 가능한 자유로운 텍스트.”라는 고백으로 볼 수도 있어서 그야말로 독자마다 다양하고 색다른 평가의 여지가 많은 작품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칫 판에 박힌 교훈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소재를 이처럼 극단적인 해석이 가능하게끔 그려낸 건 오롯이 오츠이치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 덕분인데, 개인적인 취향만 따지고 본다면 오츠이치가 이 작품의 엔딩을 데뷔작인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처럼 충격적으로 마무리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츠이치 특유의 천진난만한 문장 속에 깃든 극도의 공포와 호러풍 판타지의 매력은 충분히 만끽했지만 말입니다.

 
h****s 2021.08.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