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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웃음의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시청자를 웃기려고 기를 쓰는 주말 코메디 프로에 등장하는 개그맨들의 우스꽝스러운 ‘몸개그’와, ‘리얼’을 연기하는 기만적인 행위들을 보며 웃는다. 또한 정장을 차려입고 누구보다 경직된 자세로 격론을 펼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음울한 공포영화도 환한 조명 속에서 소리를 죽인 채로 보면 우스꽝스럽다. 웃음을 통해서 우리는 현상의 본질을 마주하는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남을 경험한다. 웃음의 의미는 이렇듯 늘 양가적이며 동시적이다.
19세기말 기계문명과 정신연구가 동시적인 발전을 구가하던 시기에 그 양극의 긴장 속에서 베르그손은 ‘웃음’에 관한 연구를 시도한다. 베르그손은 웃음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기계 / 영혼, 경직성 / 우연성, 반복 / 변화 라는 이분법 구조 사이에 놓인 웃음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응시한다. 그 응시를 통해서 베르그손은 웃음의 특성을 몇 개로 정의 내리고 있다. 반성적 기제로써의 웃음, 기계적인 것의 틈입으로써의 웃음, 그리고 웃음에 내재된 공범의식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웃음을 통해서 그것을 생성하는 현실에 대해 더욱 뚜렷하게 자각할 수 있다. 동시에 아이러니와 풍자를 통해서 견고한 질서 속에 은폐된 ‘틈’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한 웃음을 통해서 묘한 공범의식을 형성하면서 친밀감을 느끼기도 한다. 문제적인 것은 이 세 가지 웃음의 본질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두 가지 힘, 즉 파괴적인 속성과 형성적인 힘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촛불시위가 진행되고 있던 08년 6월의 새벽, 시청거리에서는 경찰의 경고방송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불법시위를 해산하지 않으면 강제진압에 들어간다는 경고방송에, 시민들은 어떻게 대응했던가. 80년대의 거리를 회상한다면 그 경고방송은 전투 직전의 선전포고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여경의 경고방송에 대응하여 시민들은 웃으며 외쳤다. “노래해. 노래해!!” 그 순간 방송을 하던 여경은 마이크를 쥔 무대 위의 여자와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을 목도하던 시민들은 웃으면서 야유회에 온 듯한 심정을 ‘공유’ 하고, 경고방송이라는 공권력의 억압적인 소리를 야유회의 노래자랑 마이크로 전락시키는 파괴적인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왜 경찰들이 그 시간에 서울 한복판에서 시민들에게 경고방송을 해야 하는가, 라는 반성적인 사유를 동시에 행할 수 있었으리라.
우리를 둘러싼 풍경은 심층과 표층으로 나뉜다. 심층은 구조와 본질을 담고 있으며, 표층에는 우연적이며 유동적인 에너지가 흐른다. 표층에서 우리가 웃음 지을 때, 그것은 형성적인 힘을 발휘하면서 때로는 심층에 도사리는 견고한 구조와 본질을 뒤흔든다. 그 흔들림 뒤에 우리는 풍경의 이면을 사유하면서 새로운 모색을 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한다. 19세기말 기계문명의 발전 속에서 웃음에 대한 사유를 행했던 베르그손의 연구는 그 시기보다 훨씬 정교하며 경직된 제도와 기계, 고정적인 것들에 둘러싸여서 생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에게 유연함과 생성-변화의 가치를 깨우쳐준다. 반복 속에서 변화를 읽어내기, 고정된 질료를 탈피하여 형상의 변화를 깨우치는 것, 미세한 웃음의 공유를 통해서 풍경의 이면을 느끼는 것. 이러한 응시는 제도와 문명 속에서 고착되어가는 인간의 현실을 분석하는데 하나의 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여기에서, 나와 당신은 무엇 때문에 웃는가. 그 웃음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정으로 건강한 웃음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