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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하루 (나무처럼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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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해를 품은 하루   《나무처럼 산처럼》  이오덕  산처럼  2002.10.10.       《나무처럼 산처럼》(이오덕, 산처럼, 2002)이 나오던 무렵, 저는 서울 종로구 교동이라는 골목마을 작은집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서울 종로구 교동’은 길그림에서 가뭇없이 사라지고 잿더미(아파트단지)로 바뀌었습니다만, 2002년 무렵 서울 한복판이라 할 그곳에 ‘밑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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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해를 품은 하루

 

《나무처럼 산처럼》

 이오덕

 산처럼

 2002.10.10.

 

 

  《나무처럼 산처럼》(이오덕, 산처럼, 2002)이 나오던 무렵, 저는 서울 종로구 교동이라는 골목마을 작은집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서울 종로구 교동’은 길그림에서 가뭇없이 사라지고 잿더미(아파트단지)로 바뀌었습니다만, 2002년 무렵 서울 한복판이라 할 그곳에 ‘밑돈(보증금) 1000에 달삯 10’인 오랜 나무집(목조주택)이 있었어요.

 

  아직 서울에서 살던 그무렵 둘레에서는 제가 살던 달삯집을 못 믿었습니다. “임마, 서울 종로구 한복판에 어떻게 보증금 1000에 월세 10짜리 집이 있냐?” 하고 따지더군요. 그러나 이렇게 따지던 분들을 데리고 저희 집으로 부르니 “와, 어떻게 이런 골목이 다 있고, 이런 골목에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 남았어? 저 앞 경교장보다 여기 이 적산가옥이야말로 근대문화유산 아니냐? 서울에 화장실 없는 적산가옥이 있다고?” 하면서 놀라더군요.

 

  이른바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에 서울 종로구 교동 옆 ‘서대문구 냉천동·현저동’에도 ‘뒷간 없는 작고 값싼 달삯집’이 꽤 있었습니다. 그 작고 값싼 달삯집은 ‘밑돈 300에 달삯 10’이라든지 ‘밑돈 500에 달삯 10’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작고 가난한 살림칸을 용케 알아본다며 혀를 내두르는 분들한테 “저기요, 가난한 살림으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작고 값싼 집이 잘 보여요.” 하고 얘기했습니다.

 

  나무디딤칸(나무계단)을 오르내릴 적마다 삐걱거리던 오랜 달삯집에는 모기그물조차 없고, 달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즐거웠어요. 봄부터 가을까지 ‘골마루 미닫이’를 다 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던 나무집은 2층에 골마루가 있고, 이 골마루에 붙은 오래된 미닫이를 열면 밤새 하얗게 밝은 을지로나 종각까지 훤히 보였습니다. 가까이 ‘경희궁’이 있는데, 이 경희궁 작은숲에는 다람쥐나 오소리나 족제비도 살았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여름날에 골마루 미닫이를 활짝 열고서 책을 읽을라 치면 으레 다람쥐나 오소리나 족제비가 불쑥 창턱에 올라앉아 빼꼼 들여다보다가 휙 사라졌거든요.

 

  작고 값싼 삯집에 깃드는 사람들은 나란히 작고 가난합니다. 그무렵 1층에 살던 가난한 이웃은 아주머니가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더라도 살림을 잇기 벅찼고, 그 집 아이는 하루 내내 혼자 토끼우리에 있는 토끼한테 배춧잎을 먹이면서 심심하게 놀았어요. 그 집 아저씨는 일을 않고 핀둥핀둥 놀기만 하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아주머니를 때리면서 싸움이 불거지고, 이틀마다 경찰이 찾아와서 아저씨를 나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런 살림집에서 하루를 보내던 저는 서울 내발산동으로 일하러 다녔습니다. 한창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자료조사부장으로 일했어요. ‘국어사전 집필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너무 허름한 살림집에서 지낸다고 여긴 분들이 “그래도 그렇지, 사전 편집장이나 되는 자리에 있으면서 너무 가난한 집에서 살지 않는가? 월급이 그렇게 적나?” 하고 물으셨고, “몸뚱이 하나를 누이면 집이면 됩니다. 달삯은 많지도 적지도 않습니다. 저는 더 크거나 좋은 집에 돈을 쓸 마음이 없어요. 낱말책을 새롭게 쓰는 편집장이기에 ‘집에 들일 돈이 있다’면 ‘책을 사는 돈으로 쓰려’고 합니다.” 하고 대꾸했어요.

 

  낱말책을 여미든 이야기책을 쓰든 글꽃(문학)을 밝히든, 배부르게 살지 말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부른 돈이 아닌 넉넉한 마음이 되어 하늘을 보고 별을 바라고 풀꽃을 품고 나무를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잿집(아파트)에서 사는 몸이라면 낱말책을 여밀 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글을 쓸 수 없고,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며, 빛꽃(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잿집(아파트)은 발바닥이 땅바닥에 안 닿아요. 배부른 몸으로는 이웃을 읽지 못 하고 만나지 않아요.

 

  《나무처럼 산처럼》은 책이름대로 나무처럼 살아가기를 바라고 멧숲처럼 푸르게 노래하기를 꿈꾸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말을 듣는 마음을 속살이고, 멧새가 알려주는 노래를 나누는 길을 밝혀요. 시골에서 살든 서울에서 살든 우리 마음밭을 나무빛으로 보듬는 하루를 이야기합니다.

 

  해를 품으니 햇살처럼 눈부십니다. 해를 안으니 햇빛처럼 무지개입니다. 해를 그리니 햇볕처럼 포근합니다. 해바람비는 뭇목숨을 살립니다. 해바람비가 깃든 낟알하고 열매로 밥살림을 지으니 누구나 든든하면서 푸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땅밑길을 지나는 전철을 아침저녁으로 타고서 일터를 오가던 2002년에 이오덕 어른 책을 읽고 거듭 읽는 동안 ‘아무리 매캐하고 시끌벅적하고 별빛을 만나기 어려운 서울 한복판이어도 풀벌레 노랫소리가 온몸을 휘감고 미리내가 밤마다 가만히 토닥여 주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글 한 줄로 티끌을 훅 씻어내는 길을 보았습니다. 글 두 줄로 먼지를 싹 걷어내는 살림을 만났습니다. 글 석 줄로 앙금을 털어내는 사랑을 느꼈습니다. 글 넉 줄로 생채기가 아물도록 가꾸는 사랑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나무처럼 서고 싶습니다. 나는 나비처럼 날고 싶습니다. 나는 나로서 나답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나는 너랑 도란도란 어우러지는 살림살이를 지피고 싶습니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나 숲빛이고 싶습니다. 내가 쓰는 글은 숲글이요, 내가 읊는 말은 숲말이며, 내가 부르는 노래는 숲노래이도록 온마음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ㅅㄴㄹ

 

그분들은 모두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는 분들이었는데 매미 소리를 모르고 있었다. (5쪽)

 

사람이 그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개나 소나 돼지만큼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싶다. 사람이 무슨 학문이고 철학이고 예술이고 문학이고 떠벌리면서 거짓과 속임수로 살지 말고, 저 풀숲에서 우는 벌레만큼 고운 울림으로 자연 속에 어울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것이 내 꿈이었는데. (52쪽)

 

세상에서 사람의 아이치고 어른들 개 잡는 것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구경할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아이들 마음이고, 하늘이 준 자연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하도 그런 어른들의 행동을 자주 보게 되고 그런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질서 속에 살다 보니 그만 그 아이들도 차츰 감각이 둔해지고 본성이 흐려지고 길이 들여져서 어느새 병든 어른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81쪽)

 

이것이 모두 어린이들과 삶을 같이 하지 못 하고 책만 읽어서 시를 쓰고, 아이들을 멀리서 한갓 풍경으로 바라보고 생각만으로 썼기 때문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155쪽)

 

글쓰기만 해도 그렇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시나 소설 같은 것, 동화 같은 것이 아니면 글이 아닌 줄 압니다. 가치가 없는 글로 여깁니다. 서울이고 지방이고 각처에서 문학강좌 같은 것을 열고 있는데, 그런 자리에 가 보면 참 가관입니다. (180쪽)

 

지루한 글이 되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이나 잘못 쓴 말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소름끼치는 인간들의 끝장을 부디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18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h*******e 2023.02.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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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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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산, 산에 무엇이 있나? 모든 것이 있다. 흙이 있고 돌이 있고 물이 있다. 나무가 있고 새가 울고 풀이 우거지고 벌레가 기고 온갖 짐승이 산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쳐져 있다. 해와 달과 별이 있다. 사람도 거기 안겨 살아간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산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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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산, 산에 무엇이 있나? 모든 것이 있다. 흙이 있고 돌이 있고 물이 있다. 나무가 있고 새가 울고 풀이 우거지고 벌레가 기고 온갖 짐승이 산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쳐져 있다. 해와 달과 별이 있다. 사람도 거기 안겨 살아간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산으로 들어가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산으로 들어가면 된다. 인간의 욕망, 그 끝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가? 無. 없음이다. 아무것도 없을 따름이다.

강이 있는 곳에 살고 있다면 강에 들어가 강을 느껴야 한다. 자연의 일부가 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효율적이지 않아도 좋다. 자연과 함께 하면서 어울리는 것 자체로 행복한 것이다. 자연과 너무나 멀리하면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가까운 곳에 가서라도 자연을 즐겨야 한다.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자연과 접촉하면서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면서 살아가자.

 

P51

그런데 까치는 옛날부터 제비와 함께 사람에게 이로운 새로 알려져 왔는데, 어째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기를 쓰고 잡아 없애려고 할까? 들으니까 요즘 까치는 논밭의 곡식을 먹는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까치가 벼를 훑어 먹어요"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까치가 어쩌다가 한두 마리 눈에 띌 정도이다. 그런 까치가 벼를 훑어 먹은들 얼마나 먹겠나? 이건 농민들이 논밭에 제초제를 마구 뿌리고, 마당이고 길가고 논둑 밭둑에까지 심심하면 제초제를 뿌려 풀과 나무들이 무섭게 타 죽은 땅으로 만들고 있는 것과 똑같은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까치가 곡식을 먹게 된 까닭이 있다. 농약을 마구 뿌려서 벌레들이 다 죽어없어졌으니, 이제 까치가 먹을 거라고는 논밭의 곡식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농약을 뿌려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싹쓸이로 죽이는 데 아주 재미를 들였다. 그리고 개구리고 뱀이고 까마귀고 고양이고 너구리고 곰이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느라고 환장을 했다.

사람이 그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개나 소나 돼지만큼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싶다. 사람이 무슨 학문이고 철학이고 예술이고 문학이고 떠벌리면서 거짓과 속임수로 살지 말고 저 풀숲에서 우는 벌레만큼 고운 울림으로 자연 속에 어울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것이 내 꿈이었는데……

우리나라가 남의 것 숭배하는 것은 뿌리 깊은 병통이다. 왕조 시대에는 천년 동안 중국의 문물을 하늘같이 떠받들어 살았고 일본의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을 상전으로 받들어 친일파들의 세상으로 만들었고, 일본이 물러간 뒤로는 또 미국에 기대어 살면서 미국의 군대가 이 땅을 떠나면 우리는 버림받은 고아 같은 신세가 된다고 떨고 있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불쌍하고, 알 수 없는 이상한 일인가?

 

P94

아직도 자연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자연의 소리를 놓치지 않고, 자연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가끔 있다. 이런 사람은 여름날 감나무 밑을 결코 무심히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그 짙푸른 잎들이 보여주는 싱싱한 목숨의 빛깔에 그는 우선 감탄할 것이고, 그래서 그 넘쳐나는 푸른 기운을 온몸으로 흠뻑 들이마시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 한참 머물러 서 있거나 차라리 땅에 두발을 뻗치고 드러누워 있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하여 쳐다보는 푸른 잎 사이사이 푸른 열매들이 어머니 등에 업혀 잠든 아기처럼 더없이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온몸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을 느낄 것이다.

만약 그 푸른 잎들 속에 보이지 않게 숨어서 짹짹거리는 참새 아기들의 소리와 그 아기들을 거느린 어미 참새의 째르륵거리느 소리를 들었다든지, 짙푸른 잎 사이 어쩌다가 감 잎사귀 한두 장만큼 되는 하늘이 파랗게 틔어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는 분명 이 땅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의 세계에 와서 숨 쉬고 있다는 행복감에 젖게 될 것이다.

 

 

 

《나무처럼 산처럼(이오덕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2.05.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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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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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산처럼》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땀에 젖은 몸을 씻으로 냇가로 간다. 풀밭과 돌밭을 지나 산그늘이 내린 냇물 앞에 서면 벌써 온몸이 시원해진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는 한 시간도 더 남았겠다. 옷 벗기가 주저되어 동서남북을 살핀다. 모래밭과 돌밭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냇물, 미루나무 숲, 앞산과 뒷산……어디를 보아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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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산처럼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땀에 젖은 몸을 씻으로 냇가로 간다. 풀밭과 돌밭을 지나 산그늘이 내린 냇물 앞에 서면 벌써 온몸이 시원해진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는 한 시간도 더 남았겠다. 옷 벗기가 주저되어 동서남북을 살핀다. 모래밭과 돌밭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냇물, 미루나무 숲, 앞산과 뒷산……어디를 보아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다. 자연은 여기 이렇듯 풍성하구나. 나 또한 한 조각 자연이라면 거짓스럽게 가린 옷이 여기서는 오히려 부끄러워야 할 것 아닌가. 훌훌 벗고 물 속에 뛰어든다. 물 속에 번듯이 누워 쳐다보는 하늘엔 구름이 가고, 제비가 날고, 건너편 벼랑 위에서 우는 것은 무슨 산새일까. 물가의 하얀 돌밭에서도 낄룩끼룩 우는 낄룩새 소리, 피라미들은 눈부신 배때기를 번득이며 물 위에 뛰어오르고, 물속에 쭉 뻗고 있는 내 정강이를 조그만 놈들이 와서 자꾸 간지르고……, 사람이 숨쉬는 동안 이보다 더한 기쁜 순간을 맛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다.

 

 

옛날부터 까치는 제비와 함께 사람에게 이로운 새로 알려져 왔는데, 어째서 그렇게 돈을 들여가면서 기를 쓰고 잡아 없애려고 할까? 들으니까 요즘 까치는 논밭의 곡식을 먹는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까치가 벼를 훑어 먹어요"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까치가 그 옛날처럼 흔하지 않다. 참새도 시골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까치도 어쩌다가 한두 마리 눈에 띄는 정도다. 그런 까치가 벼를 훑어 먹은들 얼마나 먹겠나? 이거 농민들이 논밭에 제초제를 마구 뿌리고, 마당이고 길가고 논둑 밭둑에까지 심심하면 제초제를 뿌려, 풀과 나무들이 무섭게 타 죽은 땅으로 만들고 있는 것과 똑같은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까치가 곡식을 먹게 된 까닭이 있다. 농약을 마구 뿌려서 벌레들이 다 죽어 없어졌으니, 이제 까치가 먹을 거라고는 논밭의 곡식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농약을 뿌려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싹쓸이로 죽이는 데 아주 재미를 들였다. 그리고 개구리고 뱀이고 까마귀고 고양이고 너구리고 곰이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느라 환장을 했다.

 

사람이 그저 더도 말고 덜고 말고 개나 소나 돼지만큼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싶다. 사람이 무슨 학문이고 철학이고 예술이고 문학이고 떠벌리면서 거짓과 속임수로 살지 말고, 저 풀숲에서 우는 벌레만큼 고운 울림으로 자연 속에 어울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것이 내 꿈이었는데…….

 

 

요즘 농촌이 자꾸 허물어져서, 산골 마을에는 흔히 사람들이 다 떠나 버리고 한 집도 없어, 논밭이 오랫동안 묵어 그만 사람이 살던 자취조차 찾을 수가 없이 된 곳이 많은데, 그런 산골에 가서도 산기슭 우거진 풀밭이나 잡목숲 가운데 감나무가 서 있으면 아하, 여기가 옛날 사람이 살았던 곳이구나 하고 알게 된다.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에 감나무가 있었던 것이다.

 

 

옛날부터 외국에도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먹는 이야기를 써서는 좋은 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사람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일인데, 이것을문학으로 쓸 수 없다면 문학이란 것 자체가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것 아닌가, 문학이란 대단히 의심스러운 수작이나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런데 그림에는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입니다. 방안이 온통 어둑어둑한데, 가운데 남포등이 달려 있고, 그 밑에 다섯 사람이 빙 둘러앉아 쟁반에 담아 놓은 찐 감자를 먹고 있는 그림입니다. 다섯 사람 가운데 바로 앞에서 저쪽으로 앉아 있는 아이는 얼굴이 안 보이고 등만 시커멓게 그림자로 보입니다. 이 아이는 그저 자리만 채워서 식구의 한 사람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어른 네 사람이 이 그림의 중심이고 주인이지요. 모두 들판에서 일할 때 쓰던 모자를 그대로 쓰고 말없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네 사람 저마다 앉은 모양과 눈길과 손이 가 있는 곳이 다르지만, 감자를 집어먹으려고 하는 사람이나 주전자로 차를 따르는 사람이나 차를 마시려고 하는 사람 모두가 어쩌면 그렇게 따뜻해 보이고 수수해 보이고 큼직하게 보이지요. 저녁 식사로 먹을거리는 단지 찐 감자와 차뿐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얼마나 맛있게 기쁘게 정답게 먹고 있습니까? 이것이 100년도 훨씬 넘은 서양의 어느 시골 농민들의 모습이지만, 내 생각 내 느낌으로는 금방 이웃에 있어 달려가 함께 그 감자를 나눠 먹고 싶은 고향 사람들이요. 내 형제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0.09.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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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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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의 글은 처음 읽는다. 무척 익숙한 이름이고 많이 본 글이지만 선생님의 책을 읽은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전까지는 다른 이들의 책에 인용된 선생님의 글만을 보아왔을 뿐이다. 그래서 많이 접해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다른 책에서 선생님의 글을 봤을 때 '참 곧고 맑은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역시나 그리 길지 않은 이 책을 보는 내내 선생님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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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의 글은 처음 읽는다. 무척 익숙한 이름이고 많이 본 글이지만 선생님의 책을 읽은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전까지는 다른 이들의 책에 인용된 선생님의 글만을 보아왔을 뿐이다. 그래서 많이 접해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다른 책에서 선생님의 글을 봤을 때 '참 곧고 맑은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역시나 그리 길지 않은 이 책을 보는 내내 선생님의 강직하고 순수한 모습들을 한껏 느낄수 있었다.

 

평생을 교육자, 한글 지킴이, 어린이문학가로 살아오신 이력답게 그의 글들에는 교육에대한 확고한 믿음과 우리 글에대한  애정, 어린이들과 자연, 더 나아가 생명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선생님의 맑은 글들 앞에서 내 자신은 한없이 발가벗겨지면서 부끄러움도 잊은채 내 자신을  돌이켜볼수 있는 소중한 시간에 빠져들게 되었다.생명을 경시여기고 자연을 우습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풀한포기,새한마리 심지어는 식용을 목적으로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마저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해주는 선생님의 마음은 진정으로 자연과 동화되어 가는 사람의 모습을 엿볼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땅과 우리들의 글을 경시여기면 그것은 곧 우리들의 혼을 팔아먹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는 선생님의 글은 비장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자연과 더불어 빼놓을수 없는 것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물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동시라는 것들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강도높게 말하고 있다. 어른들이 쓴 동시라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 어린이들이 읽을 만하고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차 있는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계신다. 감자,옥수수와 같이 우리 일상 생활에 같이하는 먹거리들에 대한 글들이 없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직무유기라고 까지 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윤동주의 굴뚝이라는 시를 예로 들고 있다.윤동주는 실제로 감자를 구워먹지 않은채로 시를 썻다는 것이다. 관념적인 글쓰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감나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애정또한 듬뿍 느낄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감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말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참으로 신비로운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 언제나 우리곁에 존재할 것만 같은 자연이지만 인간의 무관심과 애정 결핍은 언젠가는 인간에게 무서운 재앙으로 되돌아 올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또한 빼놓지 않고 있다.권정생 선생과의 편지글에서는 우리 시대의 문학에 대한 아쉬움과 생활글이라는 진솔한 맛이 나는 글들의 부재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엿볼수 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사무실이 있다. 오랜만에 들어가보니 이름모를 새 한마리가 죽어있었다. 열려진 창문으로 들어와서 나갈 길을 잃어 버린 채 몸부림치다 결국 굶어 죽은 모양이다. 그 새를 보면서 불쌍하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동안 했지만 나는 끝내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순간,아주 작고 여린 새 한마리는 나에게 그저 불결한 쓰레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생명의 고귀함이라는 거창한 말을 떠나, 나 자신이 얼만큼 살아있는 것들에 대하여 무관심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러고도 죄책감이라고는 전혀 느낄수 없었으니 말이다. 인간과 자연은 별개가 아니라는 아주 기본적인 진실을  오랫동안 잊은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된다. 선생님의 서릿발같은 질책이 온몸 구석구석을 아프게 한다. 살아있는 모든것들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겠다.   

 

까치가 곡식을 먹게 된 까닭이 있다. 농약을 마구 뿌려서 벌레들이 다 죽어 없어졌으니, 이제 까치가 먹을 것이라고는 논밭의 곡식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농약을 뿌려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싹쓸이로 죽이는 데 아주 재미를 들였다. 그리고 개구리고 뱀이고 까마귀고 고양이고 너구리고 곰이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느라고 환장을 했다.

그렇게 하면서도 이런 땅에서 복을 받아 잘 살겠다고 제 자식들까지 방안에 가두어 놓고 닭이나 소, 개 기르듯이 '교육'이란 걸 하고 있으니 정말 소가 웃고 개가 웃을 일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이 그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개나 소나 돼지만큼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싶다. 사람이 무슨 학문이고 철학이고 예술이고 문학이고 떠벌리면서 거짓과 속임수로 살지 말고, 저 풀숲에서 우는 벌레만큼 고운 울림으로 자연 속에 어울려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것이 내 꿈이었는데.....   본문 52쪽

 

s******2 2010.03.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