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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태어남과 죽음일 수 밖에 없는데, 태어남은 생각할 수 없지만 죽음은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이 된다. 그러나 태어남이 열 달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고 일어나는 예상할 수 있는 사건인 데 반해, 죽음은 예상할 수도 있지만 느닷 없이 다가올 수도 있는 그런 일이다. 내가 지금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질병을 갖고 있지 않다 하여 내일 반드시 죽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태도는 사람마다 어떤가? 속마음과 실제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거야 희화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심각한 고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죽음과 투쟁하지만, 어떤 이는 순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투쟁도 순응도 어쨌든 맞이할 죽음이라는 필연적 사건을 앞두고는 그닥 멀리 떨어진 반응 같지는 않아 보인다. 죽음이 나에게는 단 한 차례의 사건이므로, 다시는 오지 않을 사건이므로 언제나 특이하며 언제나 유일하다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놓고 봤을 때는 그리 특이하지 않은 사건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은, 심각한 좌절과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바이올렛 아워』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의 문턱 가까이 갔었다고 고백하는 한 작가가 다섯 명의 작가의 죽음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기록한 책이다. 지크문트 프로이트, 수전 손택, 존 업다이크, 딜런 토머스, 모리스 샌닥이 그 다섯 작가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크문트 프로이트야 구강암으로 수십 차례나 수술을 받으면서도 삶의 의지를 불태웠고, 진통제를 거부하며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려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수전 손택도 『은유로서의 질병』 등으로 알려졌듯이 유방암을 비롯하여 죽음 문턱의 경험하며 강렬하게 죽음을 거부한 이이다. 이들에게서는 삶의 의지의 위대함이 위대한 죽음에 대한 각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들은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아니 패배한 이후에도 싸우고 있었다.
미국 현대 문학의 거장인 존 업다이크는 어떤가?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섹스를 했다. 글로는 체념을 얘기했지만 결코 체념하지 않았다. 천재 시인 딜런 토머스는 자기 파괴적 본능으로 술을 마셨고, (공식적으로) 술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다. 그에게 질병, 즉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가져오고, 자신의 일탈을 용서받을 수 있는 핑계였다. 그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을 향한 질주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다. 유명한 그림책 작가 모리스 샌닥은 기꺼이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그에게 죽음이란 닥칠 일이었고, 변해야 할 것이 변한 것이었을 뿐이다. 초연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산 떨 지도 않았다.
이 다섯 명의 작가, 그리고 추가로 그녀가 인터뷰했던 또 한 명의 작가 솔터(그는 책이 나오기 전에 죽는다)를 통해 삶의 마지막 순간, 혹은 그 순간까지의 여정이 사람에게 갖는 다채로운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살아가는 일처럼 죽는 것에도 정답이 없다. 그리고 그녀가 쓰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는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준비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므로 특이하지 않은 것, 그러나 단 한 차례만으로 모든 것이 마감되는 것이므로 가장 유일한 사건. 그 죽음이 가장 위대하고 후회 없기 위해서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진부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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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평전 다니엘 슈라이버의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은 수전 손택의 죽음으로 끝난다. 당연한 것 같지만, 대부분의 평전은 그렇지 않다. 죽은 후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있게 마련인데, 여긴 그렇지 않다. 그렇게 수전 손택의 죽음으로 끝낸 책을 가만히 보다 문득 수전 손택의 죽음을 다룬 책을 읽었었단 기억이 났다. 바로 케이프 로이프의 《바이올렛 아워》.
수전 손택을 포함한 다섯 명의 죽음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 나는 수전 손택에 대해서 이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죽음에 관해 별 달리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손택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만은 사실이었다. 몇 달 후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었다. 그 책을 먼저 택한 이유도 아마 손택의 죽음부터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손택은 두 번이나 암을 이겨냈다. 1974년 40대 초반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었고, 1998년에는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 그때마다 악착같은 삶의 희망으로 공격적인 치료를 시도했고 결국 이겨냈다. 그러나 2004년 세 번째 찾아온 암, 이번에는 아마도 이전 암을 치료하기 위해 썼던 방사선이 원인이 되었을 혈액암, 즉 백혈병이었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 그것마저 이겨낼 수는 없었다. 케이티 로이프의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의 2장은 바로 그 수전 손택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다.
무심히 넘겼을 2장의 제목은 “나는 죽음을 거부한다”이다. 그리고 “결코 죽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 결심을 꿋꿋하게 실천하며 끝까지 죽음에 대항한 사람”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더 이상 손택이 죽음에 대해 가졌던 태도를 달리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표현들이다. 죽음은 분명 운명이고, 손택 역시 그 운명을 끝까지 거부할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그 운명을 결코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 삶의 ‘질’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삶 자체’가 중요했으며 그러므로 살아야 했다.
살아있는 내내 자신에 관한 신화에 열중했던 그가 그렇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그 신화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죽음을 완벽하게 이겨 냈다는 신화, 죽음이란 역경을 이겨 내고 살아남았다는 신화는 그녀가 그때까지 만들어 낸 최고의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113쪽). 그래서 그에게는 환상이 필요했다. 지고 있지만 결코 지고 있지 않다는(절대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두 번은 승리했지만, 마지막은 승리할 수 없었던.
죽음 앞에서 손택은 평범해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는 똑같다. 손택도 마찬가지였다. “손택은 결코 평범하게 전락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고 맹세했지만, 어쩔 수 없이 평범한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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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결코 성공하지 못할 테니까.” -버나드 쇼 (2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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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토록 사는 일이 힘들다고 생각될 때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책을 보았다. 보라빛은 죽음을 뜻한다는 누군가의 멘트를 떠올리며 죽음을 앞두고 살아가는 작가들의 진솔하고 의미심장한 스토리에서 무언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금 정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눈길이 갔다. 작가들의 삶과 죽음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죽음 앞에 초연이라는 단어보다는 두렵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내색을 띠었고 그런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는 것 이외에는 뭐 특별히 할 것도, 할 의욕도 생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고 한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는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음을 거의 염두하지 않은 채, 사는 일이 바쁘고 해결할 일이 매일 눈앞에 가득하다. 막상 병이나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고 죽음이 임박한 순간이면 비로소 그때야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급하게 살핀다. 바로 이 순간에 나의 죽음을 정면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리라.
죽음은 끝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한다. 죽음을 통해 삶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니 죽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 여겼던 인생도 한계가 있음을 알려주고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소중함과 나와 관련있는 주변인들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워 준다. 그래서 살기 위해 죽음이라는 끝이 반드시 필요한가보다. 죽음이 있어야 삶이 완성되나보다.
어느 날 문득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 이라는 가정을 해보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날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기에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늘상 마음에 새기고 시간 활용을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 느낀 적이 있었다. 즉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은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만들며,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가꿔 나갈 힘을 얻게 만드는 것 같다. 어찌할바를 모르겠다고 생각될 떄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는 가정을 자주하고자 한다.
언젠가 스님이 쓴 책에서 본 글귀가 떠오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바라면, 작가가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쓴 이야기가 독자의 입장에서는 뭐 그리 새롭거나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작가라면 몰라도 일반인들은 그리 작가에게 별다른 관심이 있지도 않을테고 그들의 생의 마지막과 연관된 죽음 관련 에피소드나 그들의 작품과 행적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만큼 여유롭지도 못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좀 지루하고 따분함면도 있었다. 아마 기대를 너무 많이 한 모양이다. 누구의 죽음이나 그저 생의 끝일 뿐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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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로이프 저의 『바이올렛 아워』 를 읽고 내 자신도 환갑을 넘어섰다. 인생 후반부에 들어섰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욱 더 건강관리를 포함하여서 시간 활용은 물론 전반적으로 주어진 삶에 대한 활용 여부를 잘 따져서 생산적인 모습으로 즐겁게 생활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갖기도 해보지만 각종 매스컴이나 책이나 주변의 입담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면 민감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입담을 통해서 내 자신의 경각심을 삼게 되기도 한다. 생활하면서 자주 이런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내 자신에게 주문하기로 하였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죽음에 관해서 많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내 자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되는 자랑스러움까지 갖출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 만큼 죽음은 우리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람은 태어난 이상 죽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의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고서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했느냐의 당당한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당당하게 자신의 죽음을 밝히면서 자신 있게 마무리 하거나 끝을 맺을 수 있다고 한다면 대단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일상적인 모습에서는 대개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사람의 욕심과는 달리 전혀 예측하지 못하거나 본인이 마음과는 관계없이 죽음의 길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본인은 물론이고, 자녀를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을 애태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죽음에 대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뉴욕대 교수 케이티 로이프가 전 세계 위대한 작가들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직접 추적하여 죽음의 의미를 돌이켜 보여준다. 참으로 귀한 모습이다. 쉽게 대할 수 없는 그래서 삶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이 죽음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나는 죽음을 거부한다”로 끝까지 죽음을 거부한 미국의 사상가 수전 손택, “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삶을 마칠 것이다”로 원하는 시간에 스스로 삶을 마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크문트 프로이트, “나는 죽음이 두려울 때마다 글을 쓰고 섹스를 했다”로 죽음에 대항하기 위해 창작과 섹스에 몰두한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존 업다이크, “나는 술을 마신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으므로”로 죽는 날까지도 자기 파괴적이던 영국의 천재 시인 딜런 토머스, “나는 기꺼이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로 죽음에 관한 그림을 그리며 죽음을 준비한 그림책의 모리스 센닥의 죽음의 의미를 통해서 내 자신의 죽음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앞으로 부지런히 준비하여서 내 나름대로의 당당한 모습을 통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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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아니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이 책을 읽는다. 이전에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면서, 나는 ‘죽음’에 대해 정확히 말해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도 죽는다는 것을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머리의 긍정일 뿐 현실로는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톨스토이가 그럭저럭 성공한 인생을 산 평범한 인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다루었을 때, 나는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남들처럼 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적당히 돈도 벌고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온 이반 일리치는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 자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어찌 보면 이반 일리치 자신이 그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죽음과 삶은 연결되어 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을 생각하는 것이지도 모르겠다.
이제 <바이올렛 아워>를 읽으면서, 나의 죽음이 다가올 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생각을 집중해 보았다. 이 책에 소개된 다섯 명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독특한 태도를 취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진통제를 맞지 않고 맨 정신으로 죽음에 직면하고 싶었다. 수전 손택은 죽음을 거부하고 극복하려고 했다. 존 업다이크는 죽음의 두려움을 회피하려고 글을 쓰며 섹스를 했다. 그는 평화로운 죽음을 염원했다. 딜런 토마스는 죽음이 오기 전 술로 스스로를 파괴했다. 모리스 센닥은 아름다운 것을 상상하며 죽음을 준비했다. 나는 누구의 죽음을 본받고 싶은가? 딱히 ‘이 사람이다’하고 말할 수 없다. 저자 케이티 로이프가 말한 것처럼, “내가 실제로 두려워 한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p. 332)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도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 나도 죽는다.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조용히, 고통과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잠을 자는 것처럼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일 뿐 이런 죽음을 맞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지금까지 죽음에 대한 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도 이런 죽음을 맞이하는 비결(?)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죽는 순간까지 해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죽음은 갑자기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무리 늙어도 1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두 개의 라틴어 문구와 한 묘비명을 마음에 새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너는 반드시 죽을 것임을 기억하라. 내가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도움이 되리라! 그리고 “아르스 모리엔디’(Ars Moriendi)” - 죽음의 미학. 죽는 것도 예술이다. 잘 살아야 하고 잘 죽어야 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고 한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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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건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다. 옛 어른들은 죽음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지나온 일생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했다. 세상에 같은 얼굴을 가진 이가 없듯이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모습 또한 그들의 얼굴만큼이나 다르다. 작가는 그 죽음의 모습을 찾아 나섰다. 우리가 언젠가 마주할 삶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의 모습을 통해 삶의 또 다른 모습을 찾고자 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명료한 정신을 잃지 않고자 폐암으로 인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치료제도 거부하고 죽음의 모습을 온전한 정신으로 보고자 한 지크문트 프로이트,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죽음을 거부하고자 몸부림 쳤던 수전 손택, 죽음이 두려워 마지막 순간까지도 글을 쓰고 섹스를 했던 존 업다이크, 무절제한 음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 딜런 토머스,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회화화 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자 한 동화작가 모리스 센닥.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응했다. 작가는 5명의 문인들의 죽음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들과 가까이 지냈던 지인들과 그들의 죽음을 지켜본 이들과의 면담을 통해 그들의 죽음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시선은 죽음이 아닌 삶을 향해있다. 작가인 케이티 로이프는 5명의 문인들의 죽음의 모습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극심한 두려움,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고 변명을 늘어놓는 못난 모습까지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애썼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들여다볼 때 죽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원할 것 같은 삶에 마침표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죽음은 삶에 있어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죽음으로 인해 삶이 충실해지고, 삶이 위대해 질수 있기 때문이다. 5인의 작가에게 부여된 시간의 개념은 달랐다. 절대적인 개념의 시간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의 시간으로도 그렇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이들과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생을 낭비하듯 허비해버린 이들과의 개념은 절대 동일하지 않다. 일부 작가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고 변명하지만, 그건 이미 의미 없는 몸짓이었다. 삶의 마지막인 죽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죽음은 죽음을 통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말해주는 셈이다. 그래서 삶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남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영원할 것 같은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삶에 있어 소중한 것과 소중하지 않는 것이 돌아다보게 된다. 영원하다는 것과 종착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의 삶의 방식은 다르다. 우리가 꿈꾸는 내일, 언제나처럼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그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내일을 기대하기 보다는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삶. 그것이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이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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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아파보거나 지인의 죽음을 겪어본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폐가 안좋았고 죽을 위기를 겪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들고 있는 나도 지인을 먼저 보냈다. 사람들은 건강할 때는 죽음에 대해 잘 상상하지 않는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을 다루지 않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수전 손택 , 존 업다이크 , 딜런 토마스 , 모리스 센딕 이렇게 5명을 다룬다. 내가 들어본 이름은 프로이트 , 손택 , 업다이크 뿐이다. 한국에 낯선 인물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라 감정이입하기가 좀 어렵다. 하지만 죽음에 처하는 순간,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순간을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해주는 부분을 읽다보면 아마 내가 볼 수 없을 나의 이생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죽기까지 16년간 암과 싸웠다. 1세기전임에도 수술을 세번이나 받았고, 결국 죽었다. 나도 알고 있는 발자크의 '나귀 가죽'에 감정이입했다는 대목이 있었다. 나는 그 책이 썩 재미있지 않았다. 나에겐 아직 읽을 때가 되지 않았던걸까. 나귀가죽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아편이 우리 몸에서도 비물질적인 부분에 물질적인 힘을 발휘한 탓에 무척 강력하고 활발한 상상력을 지닌 그도 게으르고 나태한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먹잇감이 나타나도 꿈쩍하지 않는 게으른 짐승의 수준으로." 프로이트는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프로이트는 긴 투병속에 고통밖에 남지 않은 순간(자칭)을 맞이했고, 모르핀을 맞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 수전 손택은 40대에 암판정을 받았으나 모험적인 수술로 살아났다. 그렇게 세차례 암을 만났고 2004년 71세의 나이로 마지막 암과 만났다. 그녀는 평생 살아온 것처럼 각고의 의지로 그 과정을 겪어나갔다. 하지만 그녀의 몸상태는 시시각각 나빠졌다. 결국 약물없이는 충분한 수면과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전성기와 다른 모습의 마지막모습들을 보이며 병원침대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실 이 책은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죽어가는 유명인들의 삶을 가급적 많은 기록들과 함께 엿보는 책이다. 그들의 죽는 순간은 언젠가 찾아올 우리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썩 즐거운 순간은 아니다. 현재 삶의 순간과 미래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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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아워"
이책의 제목 바이올렛 아워란 삶과 죽음의 경계의 시간,즉 삶의 마지막 시간을 가르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책을 쓴 저자는 어릴때부터 몸이 약해 늘 병을 달고 살았고 잔병치레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녀는 12살이 되던해 죽을꺼 같은 고통으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게 되었고 한쪽폐의 절반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아야한 했는데.그 수술을 계기로 어린 나이에 너무도 힘든 경험을 하게 되는데..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녀는 다시 찾은 생을 살아가면서 "죽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너무도 힘든 마음에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해본다던지 주변사람에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렇게 죽을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번쯤을 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 죽을것이고 그에 대한 대비를 생각해 보지는 않았을리라 생각된다.
이런 우리들에 마음과 저자가 죽음에 문턱에 까지 다녀올정도로 죽음에 대해 생각했듯이 다른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 내는지 ,저자는 궁금했다고 한다 . 가까스로 살아났음에도 불구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위해 결코 잊지 말아야 할것은 무엇인지 저자는 절실히 알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의사이면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그녀는 그것으로 하여금 "죽음"이라는 주제에 더욱더 몰두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물로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고.. 죽음을 맞이하는 위대한 작가들의 마지막 순간들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이책속에 그 내용들을 고스란히 기록한 것이다. 우리가 알지못했던 그들의 죽음을 보면서 나는 나도 과연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 죽음을 맞이할수 있을까하는 깊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는 아직 젊다는 오만과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죽음이라고는 생각안했다.그것은 머나먼 이야기라고 생각할뿐 그것까지 생각할 여유도 만들고 싶지 않았고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행동은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책속에 수록되어진 죽음을 맞이하는 여러사람들을 접하면서 나도 그 죽음이라는것에 두렵고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언젠가 나도 모르는 순간에 찾아올 죽음에 대해 다시한번 뒤돌아보고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것이 삶의 중요한 결정을 할때마다 가장 현명한 답을 찾게 해 줄 것이다."
맞다.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살아간다. 언젠가 우리는 죽는다. 아무리 좋은 신약이 나오고 기이한 신문물이 들어온다한들 생각해보면 정말 불로장생하는 생명은 없다. 전설속에서나 존재할뿐 그런 생명은 없기에 어느순간 지금 이순간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수 있다. 그런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음을 직시하고 두려워하며 살 필요도 없으며 다만 이 책을 통해 멋지게 죽는법을 알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멋지게 죽을 필요도 없지만 그것을 꿈꿀 필요도 두려워 할 필요도 없으며 죽음을 정면 바라봄으로써 두려움을 덜어내고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옴을 깨달고 매순간을 알차고 행복하게 살아갈것을 알림이 이책을 쓴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름답게 죽고 싶다.내가 죽음을 맞이할때.화려하고 풍요로운 그런 죽음을 원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웃으면서 죽음을 맞이했음 하는게 나에 작은 소망이다. 그 순간을 되새기며보다 열심히 아름답게 매순간 노력하며 살것이다.웃으며 행복하게 살길바라고 그런 순간을 맞이하기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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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violet hour, when the eyes and back 보라빛 시간, 눈과 등이 Turn upward from the desk, when the human engine waits 책상에서 일어나고 인간의 내연 기관이 Like a taxi throbbing waiting, 택시처럼 털털대며 기다릴 때, I Tiresias, though blind, throbbing between two lives, 비록 눈이 멀고 남녀 양성 사이에서 털털대는 Old man with wrinkled female breasts, can see 시든 여자 젖을 지닌 늙은 남자인 나 티레지어스는 볼 수 있노라. At the violet hour, the evening hour that strives 보랏빛 시간, 귀로를 재촉하고 Homeward, and brings the sailor home from sea, 뱃사람을 바다로부터 집에 데려오는 시간 The typist home at teatime, clears her breakfast, lights 차 시간에 돌아온 타이피스트가 조반 설거지를 하고 Her stove, and lays out food in tins. 스토브를 켜고 깡통 음식을 늘어놓는 것을, Out of the window perilously spread 창 밖으로 마지막 햇살을 받으며 마르고 있는 Her drying combinations touched by the sun's last rays, 그녀의 컴비네이션 속옷이 위태롭게 널려 있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태양은 더욱 요란히 타오르고, 바다는 어금니를 드러내 출렁이며 기뻐 날뛴다.(p247) |